Notice
Recent Posts
Recent Comments
Link
관리 메뉴

Asia-Pacific Region Intelligence Center

덩샤오핑.후야오방 아들들, 정협 부주석 피선 본문

-미국 언론-/한국 언론

덩샤오핑.후야오방 아들들, 정협 부주석 피선

CIA Bear 허관(許灌) 2009. 12. 5. 20:04

덩샤오핑(鄧小平)과 후야오방(胡耀邦).

   중국의 개혁.개방을 상징하면서도 대립각을 세웠던 두 인물의 아들이 나란히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政協) 부주석으로 지명됐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는 베이징에서 열리고 있는 11기 정협 회의에서 덩샤오핑의 장남 덩푸팡(鄧樸方.64) 장애인연합회 주석과 후야오방의 장남 후더핑(胡德平.65) 공산당 통일전선부 부부장이 정협 부주석으로 선출됐다고 11일 보도했다.

   정협 부주석은 `국가 지도자'급에 속하는 막강한 자리다.

   장애인 복지증진에 기여한 덩 주석의 정협 부주석 승진이 개혁개방 30주년을 맞은 중국 지도부의 덩샤오핑에 대한 헌사라면, 후 부부장의 발탁은 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의 존경을 받고 있는 후야오방에 대한 복권 의지를 보인 것으로 무방하다.

   덩샤오핑과 그의 후계자로 꼽히다 실각한 후야오방 두 인물의 얄궂은 운명은 20여년만에 두 아들의 정협 입성으로 또다시 두드러져 보인다.

   1980년 덩샤오핑에 의해 공산당 총서기에 임명된 후야오방은 개혁.개방과 경제성장을 진두지휘하다 1986년말 일어난 학생시위를 적극적으로 진압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1987년초 역시 덩샤오핑에 의해 실각했다.

   중국인들이 개혁.개방 정책으로 오늘의 중국을 설계한 위인으로 덩샤오핑을 존경한다면 후야오방은 정치개혁과 언론자유로 중국내 지식인과 반체제 인사들의 기대를 한몸에 받았었다.

   1989년 6월 심장마비로 사망한 후야오방의 추모행사가 후야오방의 명예회복과 민주화를 요구하는 톈안먼(天安門) 사태를 촉발하면서 그의 후임자였던 자오쯔양(趙紫陽) 전 총서기도 실각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그는 사후 자산계급 자유화 사상에 물든 반동분자로 비판받아오다 후 주석 체제가 들어선 지난 2005년 그의 탄생 90주년을 맞아 기념행사가 열리면서 서서히 복권의 길에 들어서고 있다.

   후 주석은 1980년대 초반 중앙당교 룸메이트였던 후더핑 부부장의 주선으로 공산주의청년단(共靑團) 대부였던 후야오방에게 소개된 뒤 후야오방의 적극적인 관심과 천거로 정치지도자로 성장해왔던 인연이 있다.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는 "이번 후 부부장의 승진은 후 주석이 자신의 정치적 스승인 후야오방의 위상을 회복시키려는 조용한 움직임"이라고 전했다.

   jooho@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