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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탈북자 가장한 북조선 여성 스파이죄로 기소(NHK)
CIA Bear 허관(許灌) 2008. 8. 27. 20:50북조선에서 탈출한 이른바 탈북자를 가장해 한국에 잠복중이던 북조선의 여성 공작원이 한국군 등의 정보를 북조선에 보고해 왔다며 국가보안법위반죄로 기소됐습니다.
기소된 사람은 북조선의 공작원 34살의 원정화 피고입니다.
한국 검찰 등의 발표에 따르면, 원정화 피고는 2001년에 한국에 잠입한 후 한국군 부대의 위치와 장교의 명단 그리고 한국에 주둔중인 미군의 시설에 관한 정보를 모아, 북조선의 치안기관인 국가안전보위부에 보고해 왔다며 국가보안법위반죄로 기소됐습니다.
원정화 피고는 자신을 중국의 조선족이라고 속이고 입국한 뒤, 그 직후 한국정부에는 자신은 탈북자라고 속여 한국 생활에 적응하기 위한 연수 등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그리고 탈북자로서 한국군 부대를 순회하며 북조선에 관한 강연을 했는데 이 활동을 통해 군 장교 몇 명에게 접근해 장교 등과 교제하면서 군 정보를 수집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NHk 2008.8.27)
*북한 국가안전보위부 소속 직파 간첩 원정화(34, 여성)?
북한국가안전보위부 소속 직파 간첩 원정화(34·여)는 빼어난 미모로 군 장교들과 교제하면서 간첩활동을 벌였다. 제 1차 세계대전 당시 프랑스 국방장관과 외교관, 고급장교들을 농락했던 미모의 독일 여성 스파이 ‘마타하리’를 연상케 한다.
27일 공안당국에 따르면 원정화는 열다섯 살이던 1989년부터 남파 공작원을 기르는 특수부대에서 훈련을 받았다. 그러나 원정화는 3년 뒤 훈련 도중 부상을 당해 제대했다. 이후 생활고에 시달리던 원정화는 백화점에서 물건을 훔치는 등 절도행각을 벌이며 교화소(교도소)를 드나들었다.
원정화는 1989년에는 아연 5t을 훔쳐 적발됐다. 아연을 1㎏만 훔쳐도 총살되는 북한 상황을 감안하면 그 대담성을 엿볼 수 있는 사건이다.
원정화는 그러나 친척의 도움으로 절도 사건을 무마한 뒤 대신 북한 국가안전보위부의 공작원으로 포섭돼 중국으로 파견됐다.
원정화는 1999~2001년 중국 연길과 훈춘 등 재중보위부에서 탈북자와 남한사업가 등 100여명을 납치하는데 관여했다. 이후 2001년 10월 원정화는 남한 침투 지령을 받고 조선족으로 위장, 남한의 최모씨와 ‘위장결혼’을 한 뒤 국내로 잠입했다.
그녀는 그해 9~12월까지 재중보위부로부터 수차례 모두 6만달러의 공작금을 받았고, 10월과 11월에는 양주와 서울 등 미군기지 6곳을 사진을 촬영해 북한에 넘겼다.
그리고 같은해 11월 탈북자라며 국가정보원에 허위자수했다.
입국 당시 임신 7개월이었던 그는 딸을 낳았고, 경기 시흥시에 대북 수산물 무역업체를 차렸다. 이후 2002년 말부터 4년간 중국을 14차례 드나들며 북한의 지령을 받았다.
원정화가 받은 지령은 ▲ 황장엽씨의 소재 파악 ▲국정원·하나원·대성공사 위치 파악 ▲군 장교 포섭 후 군사기밀 탐지 및 중국 유인 관여 ▲대북정보요원 활동내역 파악 및 중국 유인 ▲남한정보기관과 연계된 남한 사업가 포섭 등이었다.
원정화는 특히 대북정보요원이었던 이모씨와 김모씨 등 2명을 살해하라는 지령을 받고 북측으로부터 독약과 ‘독침’을 받기도 했지만 실행에 옮기지는 못했다.
원정화는 지난 2005년 9월 결혼정보업체를 통해 소개받은 김모 소령과 사귀면서 군사기밀을 빼내려 했고, 북측 지령을 받아 김 소령을 중국으로 유인하려는 시도도 했다.
원정화는 이같은 간첩활동을 하면서도 2006년 9월~20007년 5월까지는 전국 군부대를 돌며 50여 차례 안보강연을 하며 “북한 핵은 자위용” 이라는 등 북한의 주장에 동조하는 CD를 상영하는 ‘대담성’도 보였다.
원정화는 2006년 11월 군 안보강사를 하면서 알게 된 정훈장교 황모(27)대위에게 접근했다. 원정화는 ‘성(性)로비’를 통해 황대위로부터 군에서 안보강연을 하는 탈북자 명단을 빼내 북측에 보고하기도 했다.
황 대위는 2007년 9월 원정화가 보위부 공작원이라는 사실을 알았으나 신고를 하지 않았던 것으로 밝혀졌다. 원정화는 황 대위를 포함해 경기 북부지역 부대 정훈장교 3~4명에게 이성교제를 미끼로 접근해 군사기밀을 빼낸 것으로 조사됐다.
그는 일본으로 건너간 탈북자의 위치를 파악하기 위해 3차례 일본을 다녀왔으며 일본 활동을 감추기 위해 일본 남자들과 교제도 시도했다.
그러나 원정화는 주요 지령 완수에 실패하자 정작 자신이 살해당할 수도 있다는 공포심에 사로잡혔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자신의 집에 자물쇠를 무려 4개나 설치했고, 3년 전부터는 신경안정제를 복용하기도 했다.
원정화는 탈북자 출신이면서도 대북무역을 하고 군장교들과 교제하는 점 등을 수상히 여긴 경찰의 수사에 꼬리를 밟혀 지난달 15일 체포됐다.
*북한 '국가안전보위부'는 어떤 곳인가
北中 접경 반탐과 내부 방첩 주력..
간첩직파는 활동범위 확대 시사
대북 소식통과 보위부 출신 탈북자들에 따르면, 보위부는 특히 수백만의 아사자가 발생한 1990년대 중반 '고난의 행군' 시기부터 단둥과 선양, 옌볜 등 북중 국경지역에서 반탐 활동에 적극 나섰다.
식량과 생필품 구입을 위해 국경지역을 드나드는 북한 주민이나 무역업자들이 급증하면서 이들에 대한 감시와 통제를 강화하는 한편 급증하는 탈북자를 색출하기 위해서였다.
보위부는 특히 북중 국경지역에서 남한 정보기관의 대북 정보 수집 및 파괴 공작활동이 활발하다고 보고 이에 대응해 대북 공작요원들과 탈북자들을 지원하는 활동가들을 찾아내 납치하는 등 해외반탐에 안간힘을 쏟았다는 것.
국내에 정착한 뒤 중국을 드나드는 탈북자들을 포섭해 황장엽씨를 비롯한 고위층 탈북자들의 동향 파악 등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보위부 출신의 한 고위층 탈북자는 "국가안전보위부는 90년대 중반부터 단둥을 중심으로 무역회사와 음식점 등 각종 회사를 설립하고 한국 정보기관의 대북 정보공작에 대응한 '대적 활동' 즉 해외반탐 활동을 하고 있다"며 "조선족과 탈북자, 남한 사람들을 포섭해 대남 공작활동을 벌였다"고 말했다.
이 탈북자는 "보위부의 주업무는 반탐(방첩)과 해외반탐이고 간첩의 대남 직파 같은 직접적인 대남공작활동은 다른 기구에서 했지만, 이번에 발각된 여간첩 사건을 보면 보위부가 해외반탐의 범위를 넓히고 있는 것 같다"고 추측했다.
다른 고위층 탈북자는 "단둥 총영사관이나 베이징 주재 북한 대사관 영사국 등 영사업무는 전적으로 국가안전보위부의 소관"이라며 "단둥 총영사 자리는 한동안 국가안전보위부 해외정보국장의 몫이었다"고 설명했다.
한 대북 소식통은 "선양과 옌볜 등 북중 국경지역은 보위부가 사실상 장악하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며 "한국에 정착한 탈북자들이 이 지역을 들락거리는 것은 보위부의 함정에 빠질 수도 있어 매우 위험한 일"이라고 말했다.
이 소식통은 특히 김일성종합대학 교수 출신인 조명철씨가 2000년 1월 베이징에서 동료와 함께 납치됐다 탈출한 사건과 관련, "보위부가 조씨의 동정을 면밀히 추적해오다 조선족을 이용해 납치한 사건"이라며 "당시 보위부가 조씨를 납치하기 위해 혈안이 돼 있었다"고 주장했다.
더욱이 북한 당국은 탈북자 급증을 막지 못하자 오히려 이를 대남공작에 역이용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어 경각심을 높여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앞서와 다른 대북 소식통은 "보위부 뿐 아니라 노동당 대외연락부(부장 강관주)를 비롯한 북한의 대남전문 공작부서들도 탈북자가 급증하자 탈북자나 탈북자 루트를 대남 공작에 적극 활용하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소식통은 "북한은 남한에서 활동하는 고정간첩 대부분이 오래전에 침투해 나이가 많이 들었기때문에 젊은 간첩들을 침투시키는 새로운 루트를 마련하는 것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보위부는 북한 체제 보위를 목적으로 1972년까지는 사회안전부(현 인민보안성)내 정치보위국으로 있다가 이듬해 국가정치보위부라는 명칭의 독립기관으로 공식 출범했다.
사회안전부장을 거쳐 국가정치보위부 초대 부장을 지낸 김병하는 출범 초기 '노동당의 영도'에서 벗어나 무소불위의 막강한 권력을 휘두르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직격탄'을 맞아 본인과 그 일가족은 모두 자신이 관리했던 정치범수용소에 구속됐다.
이후 이진수 사회안전부장이 국가안전보위부장을 맡았으나 그가 1987년 사망한 이후 현재까지 그 자리는 공석인 채 90년대 초반까지는 계응태 당 비서가 관장했고, 이후 김정일 위원장의 매제인 장성택이 90년대 중반부터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에 이어 작년 행정부장을 맡으면서 보위부를 관장하고 있다.
현재 부장과 함께 제1부부장도 공석이며 보위부 해외정보국장 출신인 우동축 부부장이 수석부부장인 것으로 알려졌으며, 우 부부장은 일본측과의 일본인 납치문제 논의에도 관여했다는 후문이다.
보위부는 대외적으로는 설립 날짜인 2월15일을 따서 인민군 제215부대로 호칭되고 있다.
민간인 담당 국가안전보위부 외에 우리의 기무사격인 군 공안기관으로 인민군 보위사령부가 있다.(서울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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