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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사마 빈 라덴의 가정과 여자들 "4명의 아내를 둔 이슬람 근본주의자로 3억 달러 재산 가진 갑부"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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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람이 궁금하다] 미국 자살테러사건의 주범으로 지목된 오사마 빈 라덴의 가정과 여자들
"4명의 아내를 둔 이슬람 근본주의자로 3억 달러 재산 가진 갑부" 지난 9월11일 미국에서 벌어진 대규모 자살테러사건의 주범으로 지목받고 있는 테러리스트 오사마 빈 라덴. 그는 어떤 인물인가? 국내는 물론 세계적으로도 거의 알려진 것이 없는 그의 출생과 가정환경, 그리고 여자들까지 다각도로 취재했다.
지난 9월11일, 영화에서나 있을 법한 기상천외한 동시다발 자살테러사건이 미국에서 있었다. 수십 명에서부터 수백명이 탄 여객기가 미국 경제의 상징인 세계무역센터를 들이박고, 이어서 미국 군사력의 상징인 국방성까지 공격하는 등 사상 초유의 동시다발 자폭테러가 일어나 전세계인을 경악시켰다.
세계인들의 관심은 누가 이처럼 엄청난 테러를 일으켰냐는 데 모아지고 있다. 미국 부시 대통령은 사건 발생후 즉각, 사우디아라비아 출신인 테러리스트 오사마 빈 라덴을 범인으로 지목하고, 그를 상대로 전쟁선언까지 했다.
이에 따라 세계의 이목이 라덴에게 향했지만 그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테러리스트들의 모든 행적이 그렇듯 그도 지하에 숨어 잠수하는 생활을 하기 때문. 민간인이든 기자든 그를 직접 만나거나 인터뷰를 한 사람은 거의 없다. 라덴에 대해서 책을 쓴 피터 베르겐이라는 전기작가만이 겨우 한두번 만났을 뿐이다.
빈 라덴은 193cm(외신에는 2m가 넘는다는 보도도 있다)의 큰 키에 72.6kg의 몸무게, 과거 이란의 호메니옹을 연상케 하는 긴 수염을 하고 하얀 터번을 두른 전형적인 아랍인의 모습을 하고 있다. 하지만 그는 미국이 5백만 달러(약 60억원)의 현상금을 걸 만큼 악명 높은 테러리스트계의 최고 거물이다.
라덴이 태어난 곳은 사우디아라비아의 리야드. 우리에게는 국내 건설기업이 수로공사를 한 곳으로 낯익은 도시다. 그는 57년 사우디아라비아에서 가장 큰 건설업(총자산 50억 달러)을 하는 아버지 무하마드 빈 라덴의 일곱번째 아들로 태어났다. 어머니는 지금도 이스라엘과 영토싸움을 하고 있는 팔레스타인 사람으로 키가 2m가 넘는 장신으로 알려져 있다. 그의 아버지도 사실은 사우디아라비아인이 아닌 예멘인이다. 예멘에서 사우디아라비아로 이주, 건설업을 하면서 거부가 되었던 것이다.
거부의 아들로 태어난 빈 라덴의 어린 시절은 그리 행복하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아버지의 부인이 10명이 넘었으며, 배다른 형제만도 52명이나 되었기 때문이다. 특히 그를 견딜 수 없게 만든 것은 자신은 늘 ‘외톨이’라고 생각했던 점이다. 그것은 아버지가 자신의 동생(이복동생이 아닌)을 만들기도 전에 자가용 비행기 사고로 세상을 일찍 떴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때 그의 나이 겨우 열살이었다.
그는 이복형제들이 특별히 무시를 하거나 차별을 하지 않았는데도 외아들이라는 인식 때문에 늘 외로워했다. 그래서 몰두한 것이 당시 사우디아라비아에 불어닥친 ‘이슬람원리운동’이었다. 그는 학교에 다니면서도 늘 이슬람교 문헌을 몸에 지니고 다니면서 탐독했다.
“가족중 누군가의 장례식이 있었을 때, 방에 어른들을 가득 모아놓고 열변을 토하는 열아홉살 라덴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때 형제들은 그가 결코 평범하지 않음을 느꼈다고 합니다.”
일본 중동정보센터 소장인 나카시마씨는 라덴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그는 다른 형제들보다 자기주관이 뚜렷했다고 한다. 한 예로 다른 형제들이 미국 등 선진국으로 모두 유학을 떠난 것에 비해 그는 자기 의지로 국내에 남아 교육을 받았다. 형제들이 함께 유학갈 것을 권했지만 단호하게 거절했다고 한다. 이유는 이슬람의 성지인 모국에서 좀더 이슬람적인 교육을 받기 위해서라는 것.
그는 킹 아브돌 아지스대학에서 토목공학을 전공했고, 대학원에서는 경영학을 공부했다. 그러면서도 이슬람신학 공부를 게을리하지 않았다.
네번째 부인은 열아홉살로 라덴과는 스물여섯살 차이 그러는 사이 결혼을 했다. 그가 정확히 몇살에 결혼을 했는지는 외신마다 다르다. 분명한 것은 20대 초반에 결혼을 했다는 것. 어쨌든 라덴은 첫번째 부인으로 시리아인을 맞았다. 그후 두명의 사우디아라비아 여인과 또 결혼했다. 일부다처제의 이슬람 교리 때문에 여러 부인을 거느릴 수가 있는 것.
외신에 의하면 네번째 부인은 현재 19세라고 한다. 45세인 라덴과는 무려 스물여섯살 차이가 난다. 그는 나이 어린 네번째 부인을 늘 대동하고 다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 네명의 부인에게서 낳은 자식들은 모두 15명. 일부 언론에는 25명이라는 설도 있으나 외신들을 종합해 보면 15명이 근사치에 가깝다. 25명은 아마도 손자들을 합한 숫자일 가능성이 높다. 왜냐하면 라덴의 아들중 결혼한 이가 몇명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거부의 아들로 태어나 풍요로운 생활을 하는 그가 국제적인 테러리스트가 된 것은 어떤 연유에서일까?
그것은 79년 12월말 당시 구 소련군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이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당시 22세인 라덴은 불도저와 덤프트럭을 가지고 아프가니스탄을 지원했다. 자신이 직접 불도저를 몰고 지하 벙커를 파는가하면, 산 속에 터널을 뚫어 적극적으로 아프가니스탄을 도왔던 것.
당시 소련의 적대국이었던 미국으로부터 최신식 무기를 지원받기까지 한 라덴은 아프가니스탄으로부터 소련군을 몰아내는데 일정부분 기여를 했다. 이때부터 그의 주위에는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그를 모르는 사람들조차 그에 대한 입소문을 전해 듣고 찾아왔다.
전쟁의 와중에서도 라덴은 뛰어난 비즈니스 감각을 보여 상당한 재력을 구축했다고 한다. 대학에서 토목을 전공한 공학도답게 토목공사로 많은 돈을 벌었다는 것. 현재 알려진 그의 재산은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유산을 포함하여 약 3억 달러(3천6백억원) 정도. 그는 주식투자에도 일가견이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때문에 그가 재테크의 일환으로 금융업이 몰려있는 세계무역센터를 테러한 것이 아닌가 하는 추측도 있다.
그런데 구 소련군의 아프가니스탄 침공 때는 미국과 밀월관계였던 그가 왜 갑자기 미국을 증오하기 시작했을까? 일부 사람들이 이번 미국의 테러사건을 “미국이 뿌린 씨앗대로 거둔 자업자득의 결과”라고 지적하는 것처럼 91년 걸프전쟁 때 보인 미국의 태도 때문이라고 한다. 세계 어디서든 안하무인으로 일관하는 미국의 태도에 약소민족들이 분노를 느끼듯 그도 마찬가지였다는 것이다.
걸프전쟁 때 사우디아라비아정부는 미국에 협력하기 위한 한 방법으로 미군들을 사우디에 주둔시켰다. 이때 라덴은 처음부터 미군의 사우디 주둔을 반대했다. 이유는 이슬람의 성지 메카인 사우디에 어디 감히 외국군이 들어올 수 있냐는 것이었다. 더욱이 많은 미군이 주둔한 뒤 기독교계가 사사건건 이슬람교도들과 마찰을 일으키자 라덴은 공공연하게 사우디정부를 비난하고 미군은 즉각 철수하라고 외치기 시작했다고 한다.
또한 라덴이 이처럼 강경하게 미국을 비난하게 된 저변에는, 근래 들어 이슬람교의 위신이 눈에 띄게 추락하고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는 이 모든 원인이 다 미국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라덴의 이같은 주장은 사우디아라비아 국민들로부터 상당한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그래서 라덴의 발언에 힘이 점점 실리자 그의 형제들과 정부는 93년, 라덴을 사우디 국적을 박탈하고 해외로 추방한다는 결정을 내렸다. 이를테면 가문과 나라로부터 내쫓김을 당한 것이다. 그럴수록 그를 따르는 추종자들은 늘어만 갔다.
그는 근거지를 수단으로 옮겼다. 물론 그의 부인과 자식들도 함께였다. 그리고는 자신의 추종자들을 중심으로 이미 88년에 결성한 과격 무장단체 ‘아르카이더’를 통해 본격적인 테러에 나서기 시작했다. 93년에 일어난 세계무역센터 폭발사건도 바로 이 직후에 나온 것이다.
그러자 미국과 사우디아라비아가 수단에 압력을 가하기 시작했고, 결국 96년 수단으로부터도 추방명령이 내려졌다. 그래서 옮긴 곳이 바로 현재 탈레반정권의 아프가니스탄. 이곳에서 그는 ‘성지를 점령하고 있는 미국인에 대해 선전포고’를 하고 탈레반정권의 비호아래 세계에 흩어져 있는 이슬람교도를 불러모아 테러훈련을 시키기 시작했다.
그의 테러훈련은 매우 혹독하다고 정평이 나있다. 특수부대보다도 더 지독할 만큼 육해공에 걸쳐 강도 높은 훈련을 시킨다는 것. 특히 영어 회화 훈련은 기본이라고 한다. 이렇게 일정기간 강도 높은 훈련을 받고 난 뒤에는 각자 고향, 혹은 자국에 돌아가 일반인으로서 평범하게 지내다가 이메일이나 팩스를 통해 테러지시가 내려지면 행동에 옮긴다고 한다.
97년에는 세계의 전 이슬람교도들에 대해 ‘가능한 한 미국인과 대결하여 싸워라, 그리고 죽여라’라는 과격한 메시지를 보내기도 했다. 미국이 그를 없애려고 조여오면 올수록, 그를 따르는 사람이나 지원한 나라에 대해 미국이 공격을 퍼부으면 퍼부을수록 미국에 대한 그의 증오심도 깊어만 갔다.
“아랍인이 그를 따르는 것은 돈이 아니라 청렴한 신앙 때문” 미국에 대한 그의 증오심이 어느 정도인가 하면 98년 라덴을 인터뷰한 미국의 ABC기자에 의하면 “우리들은 군복을 입은 자와 민간인을 구분하지 않는다. 모두가 우리들의 표적이다. 반드시 미합중국의 종말을 맞이하도록 그렇게 만들 것이다. 그때 자식들의 시체들을 모아서 되돌려 보내겠다”는 극언을 서슴지 않았다고 한다.
이같은 악순환이 계속되면서 정작 피해를 입는 것은 아무 죄도 없는 수단 국민들과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이다. 왜냐하면 라덴을 지원한 나라들에 대해 미국이 늘 보복을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문제의 장본인인 라덴은 지하로 잠수하고 애꿎은 국민들만 희생당하는 악순환이 되풀이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를 따르는 추종자가 많은 것은, 그의 이슬람교도로서의 강한 신념과 청렴한 생활태도 때문이라고 중동전문가들은 입을 모았다.
“수단에 있을 때입니다. 몸에 화상을 입을 정도로 뜨거운 날씨인데도 그는 단 한번도 에어컨을 켜지 않았다고 합니다. 또한 도피생활을 할 때는 쥐가 우글우글한 동굴 안에서 빵 몇 조각으로 지내는 것은 보통이고요. 그러면서도 기도와 운동을 단 하루도 빼 먹은 적이 없다고 합니다. 따라서 일반적으로 알려진 것처럼 그가 거부이기 때문에 그 재력으로 테러를 지원하고 있다는 것은 큰 오산입니다. 그는 자신의 재산 외에도 그를 지원하는 이슬람교도로부터 막대한 지원을 받습니다.”
아프가니스탄 수도인 카불 주재 국제난민고등법무관 사무소에서 일하고 있는 야마모토씨의 이야기다.
팔레스타인이 사는 이스라엘의 자치구역과 파키스탄에서는 신문에 그의 사진만 들어가도 불티나게 팔린다. 또한 그의 얼굴이 들어간 티셔츠나 포스터, 달력, 연설 테이프는 없어서 못팔 정도로 폭발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심지어 신생아에게 그의 이름을 붙여주는가 하면, <오사마약국> <오사마병원>이라고 이름 붙인 곳도 많다고 한다. 이처럼 이슬람교도들에게 열광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것은 그의 강한 카리스마 때문이기도 하지만 좀처럼 대중 앞에 나타나지 않는 신비감도 한몫 하고 있다.
그는 현재 아프가니스탄 북부의 산 속에 숨어 있다고 외신은 전하고 있다. 그곳에는 핵폭탄이 터져도 끄떡없을 만큼 깊은 지하요새가 있으며, 6개월간 수천여명이 먹을 식량과 무기가 준비돼 있다고 한다.
외신에 의하면 이미 그의 부인들과 자식들은 안전지대로 피해 있으며 당분간 잠수생활을 계속할 것이라고 한다. ‘결정적인 구체적 증거가 나타나면 라덴을 미국에 인도하겠다’는 탈레반정권의 발표가 있긴 하지만 그렇게 쉽사리 라덴의 아지트를 알려줄 수 없을 것이라는 게 중동국가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한편 라덴의 무장 테러단체에는 마스미라는 일본여성이 포함돼 있다고 한다. 현재 일본당국이 그녀의 행방을 쫓고 있는데 그녀의 남편이 라덴과 관계가 깊은 알제리 출신의 하미드 아이크라는 것. 하미드는 LA공항 미수폭발사건의 범인으로 지명수배된 사람이다. 그래서 일본인들은 행여 미국 테러사건의 불똥이 일본에게로 튈까 전전긍긍이다. 이미 고이즈미 수상은 전쟁이 터질 경우 자위대를 파견하겠다고 공식적으로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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