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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 미국이 남한 보수세력 집권 부추긴다" 본문
목표는 `남조선 혁명을 통한 사회주의
통일` ㄱ.대외연락부
2.祖國平和統一委員會(조국평화통일위원회) 1961년 5월 13일 발족한 북한의 주요한 통일관련 사회단체. 약칭은 '조평통'이라 한다. 조평통은 조선노동당의 통제 아래 북한의 사회주의 역량과 남한 각계각층의 애국적 민주주의 역량을 결합하여 국가의
자주적 통일의 실현을 위해 정당·사회단체들과 각계각층의 인사들을 망라하여 조직된 사회단체이다. 1961년 5월 9일 김일성을 발기인으로,
33명의 준비위원과 홍명희를 위원장으로 하여 조직되었으며, 같은 해 5월 13일에 정식 발족되었다. 1명의 위원장과 6명의 부위원장, 23명의
상무위원회 위원, 77명의 중앙위원회 위원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기관지로 〈조국통일〉이라는 신문을 주 2회 발행하고 있다.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통일전선부 소속이 바로 조국평화통일위원회이다 조국평화통일위원회는 반미전선입장에서 남한 각종 반미단체나 친북단체를 총 망라하여 통일전선연합구축을 유도하여 반미 반제 공산주의 투쟁을
부추기고 있다 조국평화통일위원회 핵심조직이 바로 한국민족민주전선(반제민족민주전선-통일혁명당)이고 반제민족민주전선 조직원에 의하여 친북활동단체를 배후에서
조종하고 지시 통제 감독하고 있다 3.대남정치학원----강동정치학원과 금강정치학원
(1)남로당과 강동정치학원(江東政治學院) ㄴ.강동정치학원 목적---반미인민전쟁론과 인민민주주의 혁명론(NLPDR)--박헌영계열
(평양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왕길환 기자 = 북한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는 30일 미국이 남한의
지방자치제 선거를 앞두고 보수세력을 밀어주면서 친미보수 정권을 부활시키려고 책동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조평통은 이날 대변인 담화를 통해 "지난 2월과 3월 미국은 한나라당의 대통령 후보를
미국에 불러
춰주고 내세워주면서 친미보수세력을 규합하도록 부추겼으며 현 남한 정권을 친북좌파정권으로 몰면서 보수세력이 다음 기(期)
정권탈취에 나서도록 사촉했다"고 주장했다.
조평통은 이어 "미국이 이러한 책동을 벌이고
있는 것은 남한에서 대세로 되고 있는 민주정치, 진보정치의 출현을 가로막고 남한을 계속 저들의 식민지로 깔고 앉으며 6.15시대에
좋게 발전하는 북.남관계를 과거의 대결시대로 되돌려 세워 제2의 한국전쟁의 불 집을 일으키려는 데 목적이 있다"고
지적했다.
조평통은 "미국이 남한 정치에 개입해 감 놓아라, 배 놓아라
하면서 마음대로 주무르던 '주종관계의 시대'는 이미 지나갔다"며 "친미정권 부활 망상은 남한 주민들의 더 큰 반미항거에
부닥치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조평통은 "남한 각계층 주민들은 반미자주화와 반보수대연합의
기치를 높이 들고 친미보수세력들의 정권탈취 음모를 단호히 짓 부셔 버리기 위한 거족적인 투쟁에 한결같이 떨쳐나서야 할 것"이라고
촉구했다.
ghwang@yna.co.kr
(끝)
북한이 남한혁명을 위해 비밀리에 행하는 활동을 대남공작이라 한다. 즉 간첩남파 및 공조세력 포섭, 대남
정보수집, 대남심리전, 군사정찰, 납치테러, 국내 반정부세력지원 등 다양한 형태의 활동을 포함하며 북한의 모든 대남공작은 1974년부터 김정일의
직접지시를 받고 있다.
현재 북한이 운영하고 있는 대남전문공작부서로는 당 중앙위원회 산하 크게 ‘통일전선부’(통전부),
‘대외연락부’, ‘작전부’, ‘35호실’등 4개의 공작부서와 인민군 총참모부 산하 ‘정찰국’, ‘국가안전보위부’ 등이 있다. 현재 이들 대남
공작부는 각자 독립성을 유지한 채 독자적인 대남사업을 수행하고 있으며, 중요 공작사안에 대해서는 각 부서에서 특급 공작요원을 차출하여 특별팀을
구성한다.
북한 공작기관의 목표는 ‘남조선 혁명’을 통해 사회주의 통일을 완수하는 것 이다. 일례로 북한의 통전부는 “북조선은
1945년 공산화와 더불어 식민지배와 모순된 자본주의의 질곡에서 일거에 벗어났으나, 남조선은 미군이 주둔함으로써 이러한 목표를 이루지 못했다.
따라서 미군을 축출하고 남조선 해방과 혁명 그리고 북한식 사회주의 통일을 동시에 이루는 길”이라고 밝히고 있다.
(1)통일전선부(통전부)
조선로동당 4개 대남부서
가운데 ‘수석’은 통전부로서 북한이 추진하는 대남공작의 기본 골격을 만드는 곳이다. 통전부는 1977년 김일성의 직접교시에 따라 신설됐다.
통전부는 선전, 대남방송, 삐라배포, 해외교포들의 포섭 및 남한 내 친북조직 관리 등 공개적인 선전*선동공작을 펼친다. 이 부서는 직할부서로
직접침투과, 남북회담과, 해외담당과, 대남심리전 및 정보자료를 분석하는 조국통일연구원 등이 있으며 다른 공작부서와 구별되는 가장 큰 특징은
공개적으로 활동한다는 점이다.
외곽단체로는 최근 4*15 총선과 관련해 `反 한나라당 투쟁 지침`을 내려 국내친북세력을 지도하고
있는 한국민족민주전선(한민전)을 비롯해 8*15대회를 주도하는 범민련과 범청학련,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 해외동포원호위원회,
재북평화통일촉진협의회(통협), 민족경제협력연합회(민경련), 민족화해협의회(민화협),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아태평화위)등은 모두 통전부의 지시를
받아 움직인다.
한편 대부분의 통전부 소속 대남공작 요원들은 공개적인 행사나 회담 때 주로 가명(假名)과 가직위(假職位)를 쓴다.
남북대화나 교류 등으로 낯익은 전금진(본명 전금철), 안병수(본명 안경호), 이종혁, 94년 3월 남북실무접촉에서 서울불바다 발언으로 유명해진
박영수(사망) 등 대남전위기구 간부들의 실제 소속직책과 직급도 통전부의 부부장 급이다.
현재 통전부의 최고 책임자는
임동옥(林東玉) 제1부부장이며 전임자는 노동당 대남당담 비서인 김용순(金容淳)이였다. 김용순은 지난해 10월 26일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2)대외연락부(구 사회문화부)
통전부가 북한의
통일방안을 만드는 ‘두뇌’라면 대외연락부는 통전부가 만드는 통일방안을 실행하는 ‘수족’이다. 특히 대외연락부는 남한 내 친북 조직을
유지*확대하고 정당이나 사회단체에 침투하는 간첩을 관리하는데 중점을 두고 있다.
김일성 사망 후 김정일이 대남사업을 관장한 후
대외연락부는 남한지역을 관장하던 10개 지역 담당과를 4개 지역과로 통폐합하고 그 대신에 4개의 남조선 지도층 고위윈사 포섭당담과를 신설했다.
대표적인 이 부서 공작원으로는 남한출신으로 노동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후보위원으로 오른 거물간첩 정경희를 비롯하여, 92년까지
지하당인 남조선로동당을 만들어 김낙중(현 민족통일학회 고문)등과 관리하다 북한으로 도주해 지난 2000년 사망한 이선실, 95년 10월 24일
부여에서 총격전을 벌이다 검거된 ‘부여간첩’ 김동식, 15대 대선직전 적발 체포된 ‘울산부부간첩’ 최정남*강연정(자살), 98년 12월까지
반국가단체인 민혁당을 지도하다 여수앞바다에서 반잠수정을 타고 북한으로 돌아가다 해군 광명함의 포격을 받아 반잠수정이 격침됨으로써 사망한
대외연락부 5과장윤택림등이 모두 사회문화부 소속 공작원이었다.
현재 대외연락부는 전 통전부 제1부부장이었던 김일성의 외오촌 조카
강주일(姜周一*본명 강관주康寬周)이 총괄하고 있다. 강주일은 김정일의 ‘수족’으로 불릴 정도로 김정일과 밀착관계이며 조총련과 평양을 연결하는
채널이자, 조총련에서 김정일에게 전달되는 성금을 관리하고 있다.
대외연락부는 대남공작부서 중 하나이다 대외연락부 강주일(강관주) 부장이 취임한 이후 과거의 사회문화부를 확대 개편하여 대남전술공작의
주요부서이다
대외연락부 주요임무는 간첩(공작원)남파, 공작원 밀봉교육, 한국내 고정간첩 관리, 한국내 지하당 구축, 한국내
불온사상 및 민심교란등 다양하다 특히 대외연락부는 통일전선부 주축으로 형성된 통일전선조직과 연락을 하는 것이 주 목적이다 대외연락부는 남한내
노동당조직을 유지, 확대하고 정당이나 사회단체에 침투하는 간첩을 관리하는데 중점을 두고 있다
대남공작부서는 대남사업 당담 비서 산하에
통일전선부(통일전선구축),대외정보조사부(35호실,통일전선 구축 조직 조사와 자료. 수집.분석. 판단등),대외연락부(35호실 분석자료 바탕으로
간첩선 구축 즉 연락선이나 점조직망 구축),작전부(대외연락부 파견과 복귀등 안내원)등으로 구성돼 있다.
김일성 시기에는 대외연락부 산하에
서울, 경기, 강원, 충남북, 전남북, 경남북, 제주등 10개지역 담당과를 설치하고 대남공작을 전개했으며 김정일이 대남 사업을 관장한 후
10개지역 담당과를 4개지역과로 축소통폐합하고 그 대신에 4개의 남조선 지도층 고위인사 포섭담당과를 신설했다.
아울러 1976년 3월
15일 대남공작전술을 강화하기 위한 연구기관으로서 315연구소를 산하에 신설했다.
ㄴ.대외연락부 주요 책임자
(ㄱ)정경희(
1987년까지 대외연락부 부장 출신)
남한출신으로 노동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후보 위원까지 올랐다가 은퇴한 거물 여간첩 정경희가 부장으로
있던 부서도 대외연락부였다
a.이름--정경희(사망)
b.출생일과 출생지---1928년생이며 남한출신
c.직책--전 당
중앙위 연락부장
d.학력--금강정치학원과 당 중앙당 학교, 송도정치경제대학 수료
--이선실과 정경희등은 대남공작원 교육원
금강정치학원 출신--
e.경력
1960년 함남도당 선전부 지도원. 도당 교육부 부부장
1967년 당 중앙위 연락부 과장
1970년 11월 당 중앙위 연락부장
1973년 당 중앙위 문화부 부부장
1975년 5월 당 중앙위 연락부장
1980년 10월 당 중앙위 위원과 당 중앙위 정치국 후보위원
1982년 2월 최고인민회의 제7-8기 대의원
1996년
6월 사망
(ㄴ)강관주(강주일,현직 대외연락부 부장)
전(前) 통일전선부 제1부부장 강주일(본명 강관주)이 대외연락부장으로
발탁되면서 통일전선부가 관할하던 재일 조총련 관리 업무도 대외연락부에서 인수하여 운영하고 있다
강주일은 사회문화부를 개편 확대하여
대외연락부로 개편했으며 대남공작부서 대외 연락 업무등을 취급하고 있다.
a.이름--강주일(본명 강관주)
b.출생일와
출생지--1930년 7월 5일생이며 남한 출신
c.학력--김일성종합대학교 졸업
d.주요 경력
1975년 5월 대외문화연락
위원회 국장
1990년 4월 최고인민회의 제9--10기 대의원
1990년 8월 조국평화통일위원회 부위원장 역임
1994년
7월 당 통일전선부 제1부 부장
1997년 1월 당 대외연락부 부장
1998년 7월 최고인민회의 제 10기 대의원
1999년 12월 조국평화통일위원회 부위원장
2001년 3월 당 비서국 통일전선부 제1부 부장
e.주요동정
강주일(본명 강관주) 대외연락부장은 대일교섭이나 활동 그리고 조국평화통일위원회 활동등이 뚜렷하다 일본통으로 알려지고 있다
1977년 5월 최고인민회의 대표 단원 자격으로 일본 방문
1983년 3월 평양 학생 소년 예술단 고문 자격으로 일본방문
1990년 9월 평양예술단 일본 공연시 동행
1991년 9월 보천보 경음악단 단장으로 일본 방문
1992년 5월 만성간염
치료차 방일, 도리노몽 병원 입원
1997년 7월 조총련 업무지도차 일본 요코하마 방문
ㄷ.대외연락부 주요 대남공작 활동
대외연락부(사회문화부) 소속 공작원으로는 1992년 10월 제14대 대통령 선거를 2개월 앞 두고 터져나온 남한 조선노동당 사건의 주역인
여간첩 이선실, 신세대 공작원으로 불리는 무장간첩 김동식(95년 10월, 충남 부여서 체포), 15대 대선직전 적발 체포된 부부 간첩 최정남,
강연정등이 있다
(ㄱ)한국민족민주전선과 대외연락부 관계
한국민족민주전선은 통일전선부 지하조직이며 북한정부 대외정책을 추진하는 정찰
요원이다 대외연락부는 통일전선 조직 한국민족민주전선을 각 단위별로 연락으로 장악하고 있다
통일전선부가 남한정부의 통일부라면 대외연락부는
반미통일구국전선을 배후에서 총지휘하는 단체이다
a.이선실과 중부노동당(한민전 서울대표부내 중부지역당)
b.김동식과 삼민투위 관련자
조직사업(한민전 서울대표부내 반제그룹조직화)
c.최정남과 영남위(한민전 서울대표부내 영남지역 주체사상파 조직화)
d.민혁당
사건---반미청년회와 북한노동당 연합 추진(김영환씨 입북과 김일성과 면담)
결론적으로 말한다면 남한재야세력 중 친북세력(주체사상파나
반미인민전쟁론자) 구심체가 한국민족민주전선 서울대표부로 표현하며 그 세력들을 북한노동당과 연락선이 바로 대외연락부 소속 공작원이라는 뜻이다
통일전선부는 대외적으로 통일전선 구축으로 오픈화(합법화)하고 있다 친북 통일관련 단체들이 바로 통일전선부 산하 남북 외곽단체들이다
(ㄴ)대외연락부 활동 요원들의 주요 경력 특징
a.정경희나 이선실 모두 남한 출신이라는데 특징적이다
b.금강학원 출신
대부분이다(이선실이나 정경희 모두 금강학원 출신이다)
c.대외연락부 공작원들은 남한 친북세력과 연계 도중에 체포나 검거 되었다
d.통일혁명당이나 민혁당 모두 대외연락부 공작원 활동 주 무대로 알려져왔다(대외연락부 공작원을 남로당 정치고문단으로 표현하는 것이
올바른다)
ㄹ.대외연락부 산하 315연구소
315연구소는 대남공작전술등 강화하기
위한 연구전담기구로서 1976년 3월 15일 당 중앙위원회 대외연락부 산하에 설립됐다
315연구소에는 (1)공작전술연구조
(2)공작경험연구조 (3)공작기술연구조 (4)풍습연구조등 두고 침투 후 합법 신분획득과 대상자 포섭방법, 대공수사관의 수사망으로부터 도피 및
신분위장방법, 한국내의 각종 파벌 형성과정의 실태(정치공작조),국군와해 공작전술과 쿠데타. 파벌 싸움 유도 공작 연구개발 그리고 각국의 쿠데타
사례연구 개발등의 과제로 연구하고 있다.
315연구소에서는 위장자수, 위장귀순, 위장망명등의 사유와 남한 도착 후 정부
환영행사때의 강연문안 작성, 기자회견 및 기타 신문사항에 대한 답변문등을 연구 개발하여 예행연습과 검열등을 실시하기도 한다
대한민국의 정부수사기관에서 북한에 관한 신문을 받을때 수사관의 부당한 대우에 대하여 책상을 뒤집어 엎거나 수사관을 폭행하거나 또는
신소 제의등의 항의 투쟁을 전개하도록 교육 훈련을 실시하고 있기도 한다
(3)작전부
전 인민군 참모장 오극렬(吳克烈)이 지휘하는
작전부는평양의 모란봉구역 전승동 노동당 3호청사에 위치하고 있으며, 대남 및 대외공작부서로서 남한과 제3국에 비합법적으로 침투하는 공작요원을
일정한 장소까지 안내하는 임무와 요인암살 및 납치, 군사정찰 폭파 등의 임무를 수행한다. 특히 북한 간첩들을 두 가지로 분류할 때 전투원과
공작원으로 나누는데 이중 전투원은 바로 노동당 작전부 요원을 지칭한다.
작전부는 간첩을 비무장지대(DMZ)나 해안선을 통해
우리나라도 직접 침투시키는 임무를 맡고 있기 때문에 북한의 여러 공작기구 중에서도 가장 위험한 임무를 맡고 있다고 할수 있다.
지난 97년 작전부 소속의 두 명의 북한 공작원은 김정일의 처조카인 귀순자 이한영(李韓永)씨를 피살했다. 특히 지난 98년 6월
속초 앞바다에서 발견된 북한 잠수정, 그리고 같은 해 7월 12일 동해시 해안에서 숨진 채 발견된 북한 공작원은 모두 작전부 소속인 것으로
밝혀졌다.
평양의 3호청사 근처에 있는 414연락소는 노동당 작전부의 실무적인 지휘본부이다. 이 414 연락소에는 국외에 있는
북한 간첩에게 지령을 보내는 통신시설을 비롯하여 각종 독극물의 제조소 등 간첩활동에 대한 지원시설도 있다고 알려져 있다. 이 414 연락소에는
지원임무를 맡은 약 1000명의 인원이 소속되어 있다.
(4)35호실(구
대외정보조사부)
평양시 창광거리에 위치하고 있는 35호실은 과거 대외정보조사부의 후신으로서 각종 테러 및
대남·해외정보를 수집하고 해외인사를 포섭·매수해 한국 내 투입시키는 등 대남우회침투활동을 주로 한다. 해외간첩공작, 국제·대남테러공작 등도 이
부서의 주요 임무로서 홍콩, 싱가포르 등 아시아 지역과 베를린, 파리 등 주요도시에도 공작거점을 두고 있다.
35호실은 주로
제3국을 경유해 침투하는 간첩을 관리하고 있다. 87년 대한항공기 858기 공중폭파사건, 최은희*신상옥 부부 납치사건 등이 대표적인 35호실
작품이었으며 교수간첩 무함마드 깐수(본명 정수일*전 단국대 사학과 교수)도 35호실 소속이었다. 특히 잠비아주재 대사관 소속 정보원으로 활동하다
귀순한 차성근씨도 35호실로 소속의 공작원이었다.
전 모스크바주재 대사관 출신으로 대외정보조사부 시절 부장이었던 권희경(權熙京)이
물러난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현재 35호실의 책임자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ㄱ.강동정치학원 형성과정
(ㄱ)강동정치학원이란
강동정치학원은 남로당
군사정치학교로서 1947년 9월 평남 강동군에 월북한 남로당 간부들을 집결시켜 설치한 대남공작원 및 유격전문요원 양성소이다
북한 노동당은
1947년 8월 미군정이 공산당 활동을 불법화하자 남로당의 지하당을 제건과 지하활동에로 주력하고 대거 월북한 남로당원들을 강동정치학원에 수용하여
대남공작원훈련과 유격전위주의 군사훈련 후 남파시켜 남로당의 유격투쟁을 지원하였다 1949년 기지를 신안주로 이전하였다가 1950년
6.25전쟁발발과 동시에 폐쇄되었다
대표적인 강동정치학원 출신으로는 남한 빨치산 남부군 총사령관 이현상(본명:이상현)이 있다 1953년
9월 지리산 산청군 생비량 빗점골에서 사살된 남한 빨치산 총책임자 이현상(본명:이상현)은 1928년 조선공산당에 입당, 1948년 남로당
군사정치학교인 강동정치학원에서 3개월간 교육을 받은 뒤 지리산으로 들어가 빨치산 투쟁을 지도하다가 1951년 5월 남한 5도 도당위원장회의를
주재 남한 빨치산 총책임자가 된 후 1953년 9월 지리산 빗점골에서 토벌대의 야간 매복조에 의하여 사살되었다
이외 서양철학자 1세대에
속하는 박치우도 강동정치학원의 정치부원장이 되었다가 뒤에 빨치산 부대의 정치위원으로 활동하였다
강동정치학원 출신들은 한국전쟁 때는
빨치산으로 한국전쟁 이후에는 박헌영.이승엽등의 김일성 타도 군사혁명 모의등에 참여하여 실패한 후 대부분이 처형되었다
a.박헌영 계열이며
남한 출신 공산주의자나 사회주의자들이다
b.강동정치학원은 남파공작원 교육원이다
c.강동정치학원은 1960년이전 남로당 박헌영계열
숙청이전 대남공작원 교육기관이다
d.강동정치학원은 유격활동 기관이다
e.강동정치학원은 조국전선 모체이다
(ㄴ)강동정치학원
주요 인물
a.남부군 총사령관--이상현(가명:이현상)
b.강동정치학원 주도로 김일성 제거 군사혁명 주동자---이승엽
강동정치학원은 소련 극동사령부 김일성부대가
아닌 남한출신 조산공산당 계열로 박헌영계열이며 그들의 이론도 김일성노선처럼 민족해방인민민주주의 혁명(NLPDR)이론이었다 한국전쟁때 지리산이나
태백산맥등지에서 반미 민족해방 투쟁과 인민민민주주의 혁명 공산주의 운동을 주도했다
한국전쟁 이후 김일성과 박헌영 헤게모니 투쟁에서
박헌영을 지지함으로 소련군 지원을 받고 있는 김일성부대에게 제거되었다 북한정부에서는 한국전쟁 패배 책임과 미국의 스파이로 몰아 강동정치학원 출신
대부분을 공개적으로 처형했다 강동정치학원 출신 대부분은 남한에서는 공산주의 빨치산 투쟁가로 북한에서는 한국전쟁 패배 책임과 미국 스파이로
지칭되어 남북에서 재야로 남아 있다
ㄷ.한국전쟁 이후 강동정치학원 동향
(ㄱ)박헌영과 이승엽등의 주도로 군사혁명 모의
그리고 미국 스파이로 처형
--북한 현대사 남로당 박헌영 미국스파이로 재판과정과 처형과정 서술(참고)--
(ㄴ)박헌영등
남로당 출신 제거된 후 강동정치학원 폐쇄
(2)칠보산연락사무소와 금강정치학원(今剛政治學院)
ㄱ.금강정치학원 형성과정
(ㄱ)금강정치학원이란
금강정치학원은 남조선노동당(남로당)출신들로 운영된 노동당 대남교육기관이다 금강정치학원이 바로 칠보산연락
사무소로 보면 올바른다
대남군사교육원이며 대남 교육원 강동정치학원이 폐쇄된 이후 등장한 교육원이 바로 금강정치학원이다
a.금강정치학원은 김일성계열이며 남한출신이다
b.1960년 4.19혁명 전후 칭립된 정치학원이다
c.금강정치학원은
대남공작원 교육원이다
d.금강정치학원이 유격활동이나 반정부 투쟁 기관이다
e.금강정치학원이 한국민족민주전선(반미청년회) 모체이다
(ㄴ)칠보산연락사무소와 금강정치학원
칠보산연락사무소 정치교육원이 바로 금강정치학원이다
칠보산연락사무소는 평양시
흥부동에 소재하고 있으며 대남 흑색방송인 구국의 소리방송과 민중의 메아리 방송(1989년 6월 중단)을 주관하고 있다
칠보산연락사무소
산하에 3개국을 두고 150-200명이 근무하고 있는데 1국은 조직국으로 음악부, 편집부등이 있으며 평양에 있는 <윤이상
음악연구소>를 지원하고 편집부는 기관신문 <구국전선:한국민족민주전선 기관지>과 기관잡지 <청맥:통일혁명당 기관지>을
발행한다
칠보산연락 사무소는 한때 1986년 당시 당 중앙위원회 비서 김중린이 소장을 맡은 바 있으며 실권자는 1972년부터 1985년의
남북적십자회담이나 고향방문단 상호방문 때 6차례에 걸쳐 수행기자로 위장하여 서울을 방문했던 김동수로 밝혀졌다
a.통일혁명당(통련당
사건:청맥 기관지)--김종태 간첩
통일혁명당 검거 열쇠--청맥 잡지
통일혁명당(統一革命黨)사건은 다음과 같다
김종태(金鍾泰)는 북한정부 대남사업총국장 허봉학으로부터 직접 지령과 공작금(미화 7만 달러와 한화 2,250만원)을 받고 남파 된
거물간첩이었다 그는 운수업으로 위장하여 통일혁명당(북한노동당의 남한지하당)을 조직하고 전(前)남로당원이나 혁신적 지식인. 학생. 청년등을 대량
포섭하였다 그리고 결정적인 시기가 오면 무장봉기하여 수도권을 장악하고 요인암살. 정부전복을 기도하려 하다가 일망타진 되었다
이 사건에
관련되어 검거된 자는 158명이었으며 그 중에는 문화인. 종교인. 학생등이 다수 포함되어 있었다 이들 중 73명이 송치(23명은
불구속)되었는데, 김종태는 1969년 7월 10일 사형이 집행되고 이문규(李文奎)등 4명은 9월 23일 대법원에서 사형이 확정되었다 그리고 이들
일당을 검거하면서 무장공작선 1척, 고무보트 1척, 무전기 7대, 기관단총 12정, 수류탄 7개, 무반동총 1정 및 실탄 140발, 12.7mm
고사총(高射銃) 1정, 레이더 1대와 라디오 수신기 6대, 미화 3만여달러와 한화 73만원등을 압수하였다 통일혁명당 미화소설로는 애국시대
상.중.하 3권의 소설책이 있다(통일혁명당은 남한 최초의 김일성주의 정당으로 알려져 있다)
b.한국민족민주전선(민혁당 사건:
구국전선 기관지)--이선실 여간첩
민혁당 검거 열쇠---구국전선 기관지(강철서신-->구국의
소리-->새세대-->여명-->아리랑-->백두산)
민혁당 사건은 반미청년회(강철서신과 구국의 소리)와
한국민족민주전선(구국의 소리와 새세대. 여명등) 조직원 검거 전체를 하나로 규정하여 사건화 한 것이다 민혁당 지도부 김영환씨 자수와 검거로
일단락 되어지만 아직도 한민전 잔당 지하조직원들의 활동을 하고 있다
민혁당 지도부 검거 과정에 중부노동당 사건과 영남위 그리고 김동식 .
최정남 간첩 검거, 강릉.여수잠수함 격침 검거등을 성과도 있었지만 한민전 부위원장이며 북한 노동당 중앙위 이선실 여간첩을 체포하지 못한 아쉬움도
있다
민혁당 검거로 한총련 친북 월북조도 사실상 와해 되었다
민혁당은 통일혁명당을 모델로 조직화한 남한 김일성 주체형 정당이다
ㄴ.금강정치학원 목적--민족해방인민민주주의 혁명(NLPDR)--김일성계열
김일성은 대남정책팀이며 군사기관인 박헌영의
강동정치학원이 남로당 숙청으로 제거되고 남한내 친북세력이 일거에 제거되자 이런 공백으 메우기 위하여 등장한 기구가 김일성 친위세력으로 조직한
금강정치학원이다
금강정치학원이 박헌영처럼 남한내 친북세력 중심세력이 되었고 그들의 이론도 과거 남로당처럼 민족해방인민민주주의
혁명(NLPDR)이론이 주목적이었다
ㄷ.민혁당 제거 이후 금강정치학원 동향
(ㄱ)민혁당 제거이후 한민전 조직 와해 위기
(ㄴ)자본주의민주주의 혁명 위원회 등장으로 대남세력 위축과 대북세력 급성장.
(ㄷ)중립적 우경화 푸틴정부 등장으로 공산주의 김정일
정부 위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