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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일본인 납치 "김정일 총비서가 직접지시" 신광수가 진술 본문
日本人납치「金正日총비서가 直接指示」신광수가 진술
요미우리 2006. 2. 4. 10:23
【서울=中村勇一郎】1980년의 原敕晁(타다아키)씨(당시43세)납치사건으로 국제 수배되어 있는 北朝鮮工作員, 辛光洙容疑者(76)가, 85年에 한국에서 체포되었을 때, 조선노동당서기릐 지위에 있던 金正日총비서를 지명해서,「日本人을 납치해서(本人이)행세하도록 直接 指示받았다」고 진술한 것이, 한국의 당시의 정보기관「국가안전기획부」(現・국가정보원)의 자료에서 밝혀졌다.
原씨 납치사건에 성공한 辛용의자가 2년후, 金총비서를 면회했을 때는,「납치는 국제문제가 되기 때문에 비밀을 고수하라」고 명을 받았다고 한다.
辛용의자는 85년 2월, 原씨 명의의 여권으로 한국으로 들어갔을 때 체포되었다.
안전기획부가 同年6月, 이 때의 供述을 간추린 자료에 의하면, 辛용의자는 73年7月, 工作船으로 石川현의 해안으로 밀입국하여 在日朝鮮人들을 협력자로 끌어들이는 활동을 계속, 76年 8月, 富山縣의 해안에서 공작선으로 북한으로 귀국했다.
그 때, 평양시내에서 工作員교육을 받고 있던 辛용의자는 80年 2月,「3호청사」로 불리는 조선노동당 청사에서, 당서기로서 金日成의 후계지명을 받은 金正日을 면회하면서,「독신의 日本人을 납치하고 대신 행세를 하면서, 日本에서 대남공작을 수행하라」고 지시를 받았다고 한다.
辛용의자는 同年4月, 공작선으로 宮崎현의 해안으로 밀입국하여, 同6月, 오사카 시내의 음식점점원이었던 原씨를 동현내의 해안에서 공작선으로 납치하여, 북한의 남포항에서 공작원에게 인도했다. 또한 原씨의 개인정보를 암기하고 다시 공작선으로 日本으로 들어가, 原씨행세를 했었다.
原씨 명의의 여권을 취득한 것은 81年9月로, 82年3月에는 이 여권을 사용하여 모스코바경유로 북한으로 귀국했다. 익4月에는 金日成의 70주년생일축하행사에 참석하여, 그 자리에서 당시의 金비서로부터, 〈1〉東南아시아에 거점을 구축〈2〉日本人납치가 밝혀지면 국제문제가 되기 때문에 비말을 고수하라―는 등의 지령을 받았다고 한다.
同5月에는 같은 여권으로 日本으로 돌아와, 한국으로 건너간 在日한국인들과 접촉, 韓美합동군사연습 정보 등을 수집하는 외에, 84년에, 북한 工作기관의 課長과 副課長이 무역대표단으로 위장하는 등하여 방일했을 때는, 활동결과도 보고했다.
辛용의자가 金총비서로부터 직접 납치지를 받은 것에 대하여, 안전기획부의 자료는 「다른 스파이와는 틀리는 특이한 점으로서, 중요한 사명을 받은 간부 스파이」라고 강조했다.
辛요의자는 85年 11月, 서울 地裁에서 死刑판결을 받았으나, 99年 12月에 특사로 석방. 2000年 9月에 북한으로 송환된 후, 行事에서「영웅」으로서 등장하는 모습이 보도되었다.
요미우리 2006. 2. 4. 10:23
【서울=中村勇一郎】1980년의 原敕晁(타다아키)씨(당시43세)납치사건으로 국제 수배되어 있는 北朝鮮工作員, 辛光洙容疑者(76)가, 85年에 한국에서 체포되었을 때, 조선노동당서기릐 지위에 있던 金正日총비서를 지명해서,「日本人을 납치해서(本人이)행세하도록 直接 指示받았다」고 진술한 것이, 한국의 당시의 정보기관「국가안전기획부」(現・국가정보원)의 자료에서 밝혀졌다.
原씨 납치사건에 성공한 辛용의자가 2년후, 金총비서를 면회했을 때는,「납치는 국제문제가 되기 때문에 비밀을 고수하라」고 명을 받았다고 한다.
辛용의자는 85년 2월, 原씨 명의의 여권으로 한국으로 들어갔을 때 체포되었다.
안전기획부가 同年6月, 이 때의 供述을 간추린 자료에 의하면, 辛용의자는 73年7月, 工作船으로 石川현의 해안으로 밀입국하여 在日朝鮮人들을 협력자로 끌어들이는 활동을 계속, 76年 8月, 富山縣의 해안에서 공작선으로 북한으로 귀국했다.
그 때, 평양시내에서 工作員교육을 받고 있던 辛용의자는 80年 2月,「3호청사」로 불리는 조선노동당 청사에서, 당서기로서 金日成의 후계지명을 받은 金正日을 면회하면서,「독신의 日本人을 납치하고 대신 행세를 하면서, 日本에서 대남공작을 수행하라」고 지시를 받았다고 한다.
辛용의자는 同年4月, 공작선으로 宮崎현의 해안으로 밀입국하여, 同6月, 오사카 시내의 음식점점원이었던 原씨를 동현내의 해안에서 공작선으로 납치하여, 북한의 남포항에서 공작원에게 인도했다. 또한 原씨의 개인정보를 암기하고 다시 공작선으로 日本으로 들어가, 原씨행세를 했었다.
原씨 명의의 여권을 취득한 것은 81年9月로, 82年3月에는 이 여권을 사용하여 모스코바경유로 북한으로 귀국했다. 익4月에는 金日成의 70주년생일축하행사에 참석하여, 그 자리에서 당시의 金비서로부터, 〈1〉東南아시아에 거점을 구축〈2〉日本人납치가 밝혀지면 국제문제가 되기 때문에 비말을 고수하라―는 등의 지령을 받았다고 한다.
同5月에는 같은 여권으로 日本으로 돌아와, 한국으로 건너간 在日한국인들과 접촉, 韓美합동군사연습 정보 등을 수집하는 외에, 84년에, 북한 工作기관의 課長과 副課長이 무역대표단으로 위장하는 등하여 방일했을 때는, 활동결과도 보고했다.
辛용의자가 金총비서로부터 직접 납치지를 받은 것에 대하여, 안전기획부의 자료는 「다른 스파이와는 틀리는 특이한 점으로서, 중요한 사명을 받은 간부 스파이」라고 강조했다.
辛요의자는 85年 11月, 서울 地裁에서 死刑판결을 받았으나, 99年 12月에 특사로 석방. 2000年 9月에 북한으로 송환된 후, 行事에서「영웅」으로서 등장하는 모습이 보도되었다.
출처 : 아시아연방론
글쓴이 : CIA bear 허관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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