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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기술: 아시아 시위에서 ‘양날의 검’이 되다 본문

Guide Ear&Bird's Eye/영국 BBC

디지털 기술: 아시아 시위에서 ‘양날의 검’이 되다

CIA Bear 허관(許灌) 2023. 3. 28. 10:07

홍콩 시위대는 암호화된 메신저 앱을 통해 플래시몹 방식의 시위를 조직했다

간단한 외침이 그 시작이었다. 와서 죽은 이들을 위해 애도를 표하자는 외침이었다.

지난해 11월 27일, 많은 중국인들이 인명 피해로 이어진 어느 아파트 화재 소식에 크게 동요했다.

엄격한 ‘제로 코로나’ 정책에 따른 봉쇄 조치가 거의 3년간 이어지고 있을 당시, 해당 사건은 중국인들 사이에서 깊고 커다란 분노를 일으켰다.

이에 중국의 SNS와 메신저 앱에선 촛불집회를 열자는 목소리가 자연스럽게 확산하기 시작했고, 수천 명이 이에 응답했다.

사람들은 아무것도 적히지 않은 백지를 들고 나타나 지도층을 비난하는 구호를 외치며 촛불시위는 대규모 시위로 변화했다.

그런데 중국의 이러한 ‘백지 시위’는 아시아 지역에서 그리 독특한 현상이 아니다.

스리랑카부터 태국에 이르기까지 아시아에선 최근 몇 년간 갑작스럽게 터져 나온 듯한 시위가 연이어 발생하고 있다.

그중에는 힘을 잃으면서 유명무실해진 시위도 있고, 일부는 신속한 조치로 침묵당하기도 했다. 미얀마에선 내전으로 혼란한 상황에서도 일부 세력은 저항을 계속해나가고 있다.

이는 우연이 아니다. 학자들은 전 세계적인 현상이라고 지적한다.

대규모 시위가 점점 더 흔해지면서, 실패할 가능성도 더 커지고 있다.

게다가 시민들의 이러한 시위에 힘을 실어주던 결정적 도구였던 기술의 발전 마저 오히려 이젠 이들을 가로막고 있다.

미 싱크탱크 ‘카네기 국제 평화 재단’에 따르면 전 세계에서 발생하는 반정부 시위는 2017년부터 꾸준히 늘어나면서 지난해 정점을 기록했다.

그러나 카네기 재단은 지난해를 시위가 가장 성공하지 못한 해로 평가했다. 시위의 결과로 신속한 정책 혹은 지도부의 변화가 이어진 비율이 가장 낮았다는 설명이다.

한편 미 하버드대 전문가들은 더 범위를 넓혀 1900년부터 시작된 시위와 시민 저항 운동을 추적했다. 대신 시위 성공에 대한 정의를 훨씬 보수적으로 세웠다.

정부를 무너뜨리거나, 군사 점령을 몰아내거나, 분리 독립을 요구하며 일어난 비폭력적 “맥시멀리스트(타협을 배제하고 최대한을 요구하는 세력)”의 발생 횟수를 조사한 결과 지난 20년간 매우 증가했으나, 동시에 성공률도 하락했다는 점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현상의 이유로 SNS와 메신저 앱 사용의 증가를 꼽는 이들도 있다.

과거엔 수년간의 활동을 통해 다져져 근절하기 어려워진 네트워크를 통해 시위가 조직됐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그러나 SNS와 메신저 앱을 통해 사람 간 연결성이 전례 없이 높아지면서 자발적으로 사람들을 동원하는 것도 쉬워졌지만, 또 동시에 이들을 추적하는 것도 쉬워졌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정치경제 및 시위 전문가이기도 한 호-펑 헝 미 존스홉킨스 대학 교수는 “양날의 검”이라고 비유했다.

“사람들은 이제 자신이 품은 불만이 사실 개인적으로 혼자 느끼는 게 아니라는 걸 압니다. 타인과 감정을 공유하며 공동체 의식이 생기죠. 그래서 사람들을 동원합니다.”

“그런데 SNS에 너무 지나치게 의존해 사람들을 동원해 (시위를) 조직하다 보면 권위주의 정권이 오히려 SNS를 검열 및 감시의 도구로 사용할 수도 있습니다. (SNS와 메신저 앱을 통해) 이 모든 상황을 신속히 정리해버릴 수 있게 된 거죠.”

지난해 스리랑카에서 벌어진 시위엔 몇 달간 수천 명이 정기적으로 참여했다

앞서 언급한 하버드대 연구에 참여했던 학자인 에리카 체노워스 교수는 전 세계 정부가 단순한 감시를 넘어선 “디지털 권위주의” 형태에 더욱 의존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일례로 2021년 군사 쿠데타에 반대하는 시위대를 진압하는 과정에서 군 당국은 시위대의 소통을 차단하고자 아예 인터넷 연결을 끊어버렸다.

홍콩과 중국 본토에선 경찰들이 휴대전화 추적 및 암호화된 메신저 앱을 통해 시위 참가자를 추적하고자 했다.

중국 시민 운동가들은 최근 기자를 사칭한 거짓 SNS 계정으로부터 연락을 받기도 했다면서 이런 식으로도 당국이 자신들에 대한 정보를 수집할 수 있다며 두려워했다.

한편 디지털 기술을 이용한 또 다른 시위 탄압 전략도 있다. 바로 시위대의 신뢰성과 시위 정당성을 훼손하는 방식이다.

잘 조직된 트롤링(괴롭히는 행위)이나 중상모략을 통해 SNS에서 빠르게 시위나 시위대에 대한 거짓 정보를 퍼뜨리게 된다.

일례로 시위대가 “외국 세력”에 의해 선동당했다고 비난하는 전략이 있다. 지난 2020년 농민들이 시위를 일으켰을 때 인도 당국이 이러한 방식을 사용했으며, 중국에서는 애국주의 블로거들이나 국영 매체 등에서 흔히 사용하는 방식이다.

물론 디지털 권위주의는 각국이 시위를 탄압하면서 더 잘하게 된 여러 방법 중 하나일 뿐이라는 의견도 있다.

그 외에 기득권에 대해 불만족스러운 이들이 시위대에 합류하는 것을 방지하고자(시위가 성공하기 위한 핵심 요소) 내부에서 은밀히 물밑 작업을 시작하거나, 코로나19를 틈타 주어진 비상 권한을 이용해 반대파를 탄압하는 선제적인 방식도 있다.

특히 아시아에선 전반적으로 민주주의가 뒷걸음질하면서 권위주의적 정부들은 국제 사회의 비난에도 교묘히 모면하고 있다.

헝 교수는 “이제 권위주의 및 독재 정권이 서로 연대하고 있다”면서 “서로를 지원하고 있다… (반대 세력을) 더 강하게 탄압하고 이에 국제 사회가 제재를 가하면 서로를 돕고 있다”고 지적했다.

중국 국영 매체는 ‘백지 시위’를 시위대를 선동하는 “외국 세력”의 탓으로 돌렸다

시위 레거시

하지만 디지털 기술은 시위의 성공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진 못했을까?

이에 대해 다이애나 푸 캐나다 토론토대학 정치학 부교수는 특히 많은 시민들이 정치적으로 소외된 권위주의 국가에서 수많은 이들이 거리로 몰려나왔다는 것만 해도 이미 성과라고 평가했다.

예를 들어 중국의 백지 시위의 경우 “많은 중국인들이 생전 처음으로 감히 정부에 맞서 ‘아니다’를 외칠 정도로” 정치적으로 각성하는 계기였다는 설명이다.

푸 교수는 특히 해당 시위가 “특히 체재를 준수하던 중국의 청년 세대가 반체제로 전환되는 시점”이었다면서 이에 중국 당국은 코로나19 관련 엄격한 규제를 철회하게 됐다고 덧붙였다.

일부 중국 내 시민 운동가들도 결국 탄압됐으나, 이러한 이유로 해당 시위는 성공적이었다고 평가한다.

시민운동 단체인 ‘시티즌스데일리CN’의 대변인은 “그 누구도 오늘날 중국 사회에서 그러한 종류의 저항 운동이 일어나리라 예상하지 못했다”면서 “이번 시위로 ‘깊고 은밀하게’ 저항하는 사람들은 자신이 혼자 걷고 있는 게 아니라, 곁에 많은 이들이 함께한다는 점을 깨닫게 됐다. 이 점이 가장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또한 대변인은 백지 시위 이후 중국에서 촉발된 다른 시위를 언급하며 “백지 시위가 없었다면 일어나지 못했을 것…”이라면서 “그 정도로 관심을 끌진 못했을 것”이라고 언급했다.

한편 시위의 성공 여부는 즉각적인 목표 달성이 아니라 장기적인 영향으로도 평가돼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즉각적인 변화를 끌어내지 못해 소위 ‘실패한 시위’로 불리는 사건이라 할지라도 미래에 벌어진 시민운동에 토대가 될 수 있으며, 시민들의 힘으로 변화를 끌어낼 수 있다는 생각을 심고, 또 더 크고 성공적인 시위를 위한 연습 무대가 될 수도 있다는 설명이다.

제프 와서스트롬 미 어바인대학 역사학 교수는 이에 대해 “함께 합주해본 음악가들끼린 다음에 함께 모이면 더 좋은 연주를 하게 된다”고 비유했다.

와서스트롬 교수는 역사적으로 대부분 사회 운동은 “기껏해야 작은 양보를 얻어내고” 흐지부지 사라진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사람들에게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 심지어 실패한 사회 운동이라 할지라도 시위의 형태와 방식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레거시를 남겼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아시아 전역의 민주화 시위자들의 비교적 느슨한 연합체인 ‘밀크티 동맹’ 또한 이러한 예시 중 하나다.

태국과 스리랑카 시위대는 과거 2019년 홍콩 시위대가 사용한 수신호, 플래시몹(사전에 서로 미리 약속을 해놓은 사람들끼리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장소에서 정해진 행동을 하는 것), 최루 가스에 맞서기 위한 우산 및 원뿔형 표지판 사용 등의 시위 전술을 그대로 따라 했다.

이는 권위주의 정권끼리 서로 동맹을 구축하면서 이들에 저항하는 시위대들도 서로 공고히 연대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최루가스를 중화하고자 홍콩 시위대가 사용한 방법은 2021년 태국의 반정부 시위에서도 그대로 사용됐다

중국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브리지 맨’의 반정부·반시진핑 구호가 몇 주 뒤 백서 시위에서 다시 등장했다.

와서스트롬 교수는 이러한 구호가 당국의 검열로부터 자유로운 해외 거주 중국인들에 의해 온라인과 해외 시위에서 계속 “살아남았다”고 설명했다.

시티즌스데일리CN 또한 중요한 역할을 했다. SNS를 활용해 시위와 관련한 세부적인 사항과 정치적 풍자 요소를 담은 밈을 퍼뜨려 정보 허브 역할을 자처한 것이다. 이에 중국 내 온라인 반정부 세력의 핵심이 됐다.

익명을 요구한 시티즌스데일리CN의 대표는 “백지 운동은 끝났으나, 저항은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

“국내에서 저항을 주도하는 목소리가 계속 이어지는 가운데 해외에서 연대하며 그 열기를 유지하는 게 가장 이상적인 시위 상황입니다.”

“그러나 현 단계에선 다음번을 기다릴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저는 다음 기회가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다음 반정부 운동은 브리지맨이나 백지 시위 외에 다른 이름이 붙을 수도 있지만, 새로운 상징과 함께 일어날 것입니다.”

촉진하거나 방해하거나 … 디지털 기술, 아시아 시위에서 ‘양날의 검’이 되다 - BBC News 코리아

 

촉진하거나 방해하거나 … 디지털 기술, 아시아 시위에서 ‘양날의 검’이 되다 - BBC News 코리아

홍콩, 태국, 스리랑카, 중국 등 아시아 지역에서 시위 조직 등에 도움이 됐던 디지털 기술이 시위대의 발목을 잡는 양날의 검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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