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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점령에 저항하는 우크라이나의 그림자 군대 본문
우크라이나 정부군이 남부 헤르손 지역을 탈환하기 위해 공세를 강화하고 있는 가운데, 이들과 함께 러시아에 맞서 싸우는 또 다른 세력이 있다. 적진 뒤에서 활동하는 정보원과 요원들로 이뤄진 우크라이나의 그림자 군대다.
우리는 이들 저항 세력을 만나기 위해 푸른 하늘 아래 펼쳐진 노란 해바라기 꽃밭을 지나 미콜라이우로 향했다.
이곳 미콜라이우는 헤르손 서쪽 지역 중 우크라이나군이 지배하는 첫 주요 도시로, 남부 전선 내 저항 세력의 본부가 됐다.
군 검문소를 지날 때 얼굴이 없고 후드 모자를 눌러쓴 한 사람의 모습과 함께 '헤르손: 게릴라 저항군은 모든 걸 보고 있다'는 경고문구가 적힌 거대한 전광판을 지나쳤다.
이 지역 러시아 점령군을 불안하게 만들고 이들 치하에 있는 주민들의 사기를 북돋우기 위해 설치된 전광판이다.
앞에 서 있던 한 남성은 "어느 한 집단이 저항하는 게 아니라 모두의 저항이다"고 주장했다.
그 남성은 목부터 끌어올린 검은 마스크로 얼굴을 가려 목소리가 또렷하게 들리진 않았다. 그래서 화면에도 제대로 그의 얼굴을 담을 수 없었다.
앞으로 이 남성을 '사샤'라고 부르겠다.
한편 전쟁 발발 직전 우크라이나 정부는 저항 운동을 구축 및 관리하기 위한 특수 부대를 지원했다.
심지어 점령군의 타이어를 망가뜨리거나, 휘발유 탱크에 설탕을 넣거나, 직장에서 명령에 따르지 않는 등 어떻게 하면 훌륭한 게릴라군이 될 수 있는지 등의 지침을 담은 PDF 책자도 배포했다. 이 중엔 "심술궂게 굴어라"라는 제안도 담겨 있다.
그러나 사샤의 정보원 팀은 헤르손 내부에서 러시아군의 움직임을 추적하는 등 보다 적극적인 역할을 맡고 있다.
사샤는 "어제 우리가 새로운 목표물을 포착했다고 가정한다면 그 정보를 군에 전송하고, 하루 이틀 안에 목표물이 사라진다"고 설명했다.
사샤는 우리에게 주변 지역에서 매일 찍은 여러 영상을 보여줬다. 어떤 남성이 군사 기지를 운전해 지나치며 러시아 군용차량을 촬영한 영상도 있었고, 거대한 Z 표시가 그려진 러시아 군용 트럭이 지나가는 모습이 담긴 CCTV 영상 자료도 있었다.
사샤는 자신의 "요원"들은 "승리와 조국 자유의 희망을 놓지 않은" 우크라이나 국민이라고 묘사했다.
그러면서 "물론 요원들도 두려워한다. 그러나 조국을 위한 봉사를 더 중요히 여긴다"고 말했다.
사샤와 함께 일하는 팀은 헤르손으로 드론을 날려 우크라이나 군을 위한 목표물을 찾는다.
군인이 아닌 민간인들로 이뤄진 이들은 모두 자원해 모였으며 필요한 값비싼 장비들을 마련하기 위해 SNS상에서 모금으로 자금을 충당한다.
이 팀을 이끄는 '세르히이'라는 이름의 남성은 전쟁 전 장식용 식물 재배업자였으나, 러시아 점령 기간 부차 지역에서 처형된 민간인 시신을 보고 남부 지역의 해방을 위해 전쟁터에 뛰어들었다고 말했다.
세르히이는 "그 모습을 보니 그냥 집에 있을 수 없었다"면서 "이 전쟁이 계속되는 동안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혹은 무엇을 생각할 수 있을지 그땐 몰랐다"고 말했다.
그랬던 세르히이는 극도로 위험한 일을 택했다. 4명으로 구성된 세르히이의 팀이 바깥으로 나갈 때마다 러시아군의 포격이 쏟아지지만, 아무도 죽지 않았다.
세르히이는 어깨를 으쓱하며 "어느 정도는 운이 좋았다는 것을 안다"면서 살짝 웃어 보였다.
"그래도 목숨을 잃는다 해도 최소한 대의를 위한 것이니까요."
한편 이들 저항 세력은 러시아가 영구적으로 헤르손을 장악하기 위해 계획하는 듯한, 러시아 합병 여부를 묻는 국민 투표 시행을 저지하기 위한 싸움을 계속하고 있다.
러시아는 이미 헤르손에 러시아 루블화와 자체 휴대전화 통신망을 들여왔으며, 국영 TV 채널을 통해 우크라이나 가전에 선전을 이어가고 있다.
이 지역 기자들은 탈출하거나 몸을 피했다.
현재 미콜라이우로 탈출해 모래주머니로 막은 작은 사무실에 머무는 드미트로 부트리 헤르손 주지사 대행은 러시아 가입 여부를 묻는 투표는 엉터리이며, 그 어떤 "문명화된" 정부도 인정하지 않을 "완전한 거짓"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러시아는 별로 이런 비난을 신경 쓰지 않는 모양새다.
러시아에 헤르손은 전략적 요충지다. 지난 2014년 불법으로 합병한 크림반도의 수원이기도 하며, '대 러시아' 영토와 크림반도를 잇는 '육교'의 마지막 부분이기 지역이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러시아 편으로 돌아선 지역 주민도 있다.
그래서 사샤의 팀은 내부 정보를 이용해 이러한 소위 "협력자들"에 대한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고 있다. 사샤는 "나중에 이들이 자신은 저항군 편이었다고 주장할 수 없도록 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협박의 목적도 있다. 저항군은 협력자들의 문에 이들의 얼굴이나 관이 그려져 있거나, 이들의 죽음에 큰 상금을 건다는 "지명 수배지" 형식의 협박성 포스터를 붙인다.
그 이후 포스터를 붙인 모습을 촬영해 사샤에게 전송한다.
사샤는 헤르손에 대한 최신 보고를 설명하며 "그래피티도 많다. 포스터를 붙일 뿐만 아니라 '국민투표 따위' 등의 문구를 적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많은 사람들이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걸 보여 줍니다. 곳곳에 러시아군이 순찰하는 도시에서 전단과 풀을 들고 돌아다니며 붙일 준비가 돼 있는 것이죠. 언제든 검문당해 정말 최악의 상황으로 흘러갈 수도 있는데 말입니다."
러시아에 합류한 사람들을 겨냥한 암살 시도도 잇따르고 있다. 한 블로거가 총에 맞았으며, 러시아 정부가 설치한 친러 헤르손 정부의 관계자도 사망했으며, 차량 폭탄 공격으로 부상당한 관계자들도 있다.
러시아 편으로 돌아선 유명 인사들은 필수적으로 방탄복을 입는다.
우리가 만난 저항 세력 모두 그러한 공격과 아무 상관이 없다면서도, 이들에게 동정심을 느끼진 않는다고 했다.
사샤는 어깨를 으쓱하며 "'반역자', '쓰레기' 단어 말고는 달리 이들을 표현할 길이 없다"고 말하며 "그들은 우리의 적"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여전히 이번 우크라이나 침공은 "해방" 작전이라고 주장하지만, 러시아군은 헤르손에서 무력과 공포 통치를 일삼고 있다.
지난 3월 러시아군 점령 이후 헤르손에선 수백 명이 구금됐으며, 이들 중 상당수는 고문도 당했다. 몇 주 동안 소식이 들리지 않은 채 사라진 사람들도 있다.
시신으로 발견되거나, 러시아 측이 시체 운반용 자루에 담아 가족들에게 돌려준 이들도 있다.
헤르손 내부 소식통에 따르면 군인들이 거리를 순찰하며 수시로 버스를 무작위로 멈춰 세워 시민들을 검문하고 있다고 한다. 이때 휴대전화의 메시지나 사진처럼 우크라이나를 지지하는 약간의 흔적이라도 발견되면 체포될 수 있다.
한편 '올레'라는 이름의 남성은 거울을 바라보며 웃을 때마다 사라진 치아 자리를 바라본다. 러시아 심문관에게 구타당한 흔적이다.
올레는 러시아군이 갈비뼈 7개도 부러뜨렸으며, 이 중 3개는 아직 다 낫지도 않았다고 했다. 사실 '올레'라는 이름은 본명이 아니며, 신원을 공개하지 말아 달라고 요청했다.
저항 세력의 일원이었던 올레는 러시아 구치소에서 고문 현장을 목격했다. 희생자의 이름은 데니스 미르노프(43)로, 후에 구치소에서 사망했다.
올레는 지난 3월 27일 자신과 미르노프가 거리에서 납치된 이후 일어난 일에 대해 소름 끼치도록 자세한 설명을 들려줬다.
처음 몇 시간 동안은 질식 및 전기 고문을 받으며 죽이겠다는 협박과 함께 계속 구타당했다고 한다. 올레는 그 심문관들이 러시아 연방보안국(FSB) 요원이라고 확신했다.
이어지는 고문에 올레는 정신이 피폐해져 삶을 끝낼까 고심했다. 간수를 공격해 죽음을 재촉하기도 했다.
그에게서 어떤 정보를 원해 납치했는지 묻자 올레는 "러시아 측은 나치를 찾고 있었다. 내가 대머리라는 이유로 날 구타했다"고 대답했다.
"옷을 벗겼을 때 '심슨 가족' 캐릭터가 그려진 속옷을 입고 있었다는 이유로 제가 미국 측 요원이라면서 괴롭혔습니다."
한달 전 러시아군이 처음 우크라이나를 침공했을 때, 올레와 미르노프는 의용군으로 이뤄진 영토방위군에 입대했다.
그러나 첫 포격과 함께 대부분 사라졌으며, 헤르손의 잔여 병력도 빠르게 제압됐다. 그래서 이들은 내부에서 러시아에 저항하는 게릴라 세력이 됐다.
올레는 "우리는 어디에 러시아군이 근거지를 두고 있는지, 어디로 이동하고 있는지 등의 정보를 얻어 군대에 전달했다"고 설명하면서 말할 순 없지만 이보다 훨씬 더 많은 작전에 참여했다고 덧붙였다.
우리가 만나 또 다른 게릴라 저항군도 우크라이나군이 포위됐을 때 드니프로 강 건너 배로 탈출하는 과정을 돕기도 하고 러시아군의 무기를 훔쳐냈다고 했다. 더 많은 이야기를 해달라는 우리에게 그 남성은 웃으며 "우리가 이기면 나머지도 말해주겠다"고 답했다.
한편 올레와 함께 붙잡혔던 미르노프는 아내와 함께 아들 하나를 키우던 아버지로, 전쟁 전 과일 및 채소 사업을 했다.
미르노프는 헤르손 주변에서 빵을 실은 트럭을 몰았다. 빵을 나눠주며 정보를 찾으러 다닌 것이다. 미르노프와 올레는 몰래 무기도 모았다. 우크라이나군이 반격을 시작하는 즉시 전쟁에 뛰어들어 헤르손을 해방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결국 이 둘은 구금돼 고문당했다.
우리는 러시아 FSB 측에 올레와 미르노프를 포함한 사람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설명해달라고 부탁했으나,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올레가 미르노프를 다시 만난 건 붙잡힌 첫날 한밤중이었다. 미르노프는 이미 거의 제대로 걷지도 못하고 숨조차 쉬기 힘들어하던 상태였다. 그래도 경비원들은 미르노프를 향한 구타를 멈추지 않았다.
올레는 "그들은 미르노프의 사타구니와 얼굴을 때렸다. 경찰봉을 든 남성 두명이 와 미르노프의 바지를 벗기고 신장 근처를 가격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러시아군이 올레의 머리에 뒤집어씌운 자루를 붙들고 있던 테이프가 느슨해져 이 모든 장면을 목격할 수 있었다고 한다.
이어 "미르노프의 폐에 구멍이 났고 정말 심하게 다친 게 분명했다"면서 "그러나 제때 도움받았더라면 죽음만은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 끔찍하다"고 덧붙였다.
4월 18일 미르노프와 올레는 크림반도의 한 시설로 이송됐다가, 다음날 미르노프는 군 병원으로 이송됐다.
올레는 거기서 미르노프가 회복할 수 있으리라 확신했다.
그러나 약 한달 후 미르노프가 시신 교환의 일환으로 우크라이나로 돌아오면서 유가족은 사망 소식을 처음 접했다.
한편 러시아군이 장악한 직후 수많은 주민이 안전을 우려해 헤르손을 떠났다.
우크라이나 정부 또한 최근 헤르손 탈환을 위한 군사 작전이 임박했다고 경고하며 남아있는 이들에게 탈출을 촉구했다.
하지만 탈출은 쉽지 않은 일이다.
러시아는 전선을 통과하는 차량의 수를 제한하고 있으며, 우크라이나 통제 지역으로 향하는 길은 북쪽의 자포리자로 향하는 도로 하나만 허용하고 있다.
그 길에도 군 검문소가 여러 개 설치돼 있어 전투 연령의 우크라이나 남성은 통행이 금지된다.
여성과 어린이들조차 무료 대피 버스에 자리가 날 때까지 몇 주간 기다리거나, 터무니없이 비싼 값을 내고 자가용 차량을 이용해야 한다.
그런데도 매일 수백 명이 버스나 자가용 차량을 통해 탈출하고 있었다. 이들이 모이면서 어느 슈퍼마켓의 주차장은 2배로 커졌다.
피곤해 보이는 어른들 틈으로 아이들은 안전하지 아직 잘 모르겠다는 듯 소심하게 웃고 있으며, 러시아산 자동차인 푸른 '라다' 차량의 앞부분 후드 밑에선 금방이라도 터질듯한 연기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보안 검사 후 자원봉사자들은 먹을 것과 옷을 나눠주고, 기다리고 있던 친지들과 눈물겹게 상봉하는 이들도 있다.
비록 지금은 러시아군의 점령지이기에 헤르손까지 들어갈 수 없지만, 시민들의 분위기에서 그곳에서의 삶이 어땠는지 읽을 수 있었다.
시민들은 우크라이나군 영역에 와서도 말을 꺼내기 조심스러워하는 모습이었다.
우리가 음성을 녹음하거나 영상을 촬영하기 전 몇몇은 "혹시 러시아에서도 이를 볼 수 있는지" 묻기도 했다. 다가가니 고개를 내젓거나 들고 있는 마이크를 외면하는 이들도 있었다.
'알렉산드라'라는 이름의 한 여성은 주차된 차량 뒷자석에서 어린 딸 '나스티야'를 무릎 위에 앉혀서 달래가며 "그곳에서의 삶은 힘들었다. 어디에나 러시아군이 있다"고 말했다.
구호 텐트 안에는 어느 나이 든 여성이 캐리어 2개를 들고 외롭고 길 잃은 듯한 모습으로 서 있었다.
'스베틀라나'라는 이름의 이 여성은 연신 눈물을 훔치며 자신은 신경이 너무 쇠약해져 헤르손을 떠났지만, 남편은 함께 떠나길 거부했다고 한다. 남편은 "우크라이나군이 와서 우릴 해방해줄 때까지 기다리겠다고 했다"고 한다.
밤이 더욱 깊어지면서 더 많은 차량이 도착했다. 그러던 와중 한 남성은 자신의 가족은 비단 미사일만을 피해 도망치는 건 아니라고 말했다.
이름을 밝히지 않은 그 남성은 우리에게 "사람들이 실종되고 있다. 사실이다"면서 "헤르손에선 저녁 시간에 밖에 나가지 않는다"고 말했다.
한편 남부 전선에선 최근 며칠 동안 양쪽 모두 포격 위험이 증가하고 있다.
미콜라이우에선 보통 새벽 4시에 터지는 포격과 함께 하루가 시작된다. 도시 남쪽에 있는 러시아군의 발사장이 너무 가까워 첫 번째 미사일이 발사된 후에야 경고 사이렌이 울릴 정도다.
어느 날 아침 호텔 지하실에 숨어 있었는데, 세어보니 시내에서 적어도 20차례 포격이 이어졌다. 어떤 미사일은 너무 가까이 떨어져 우리가 있던 건물이 흔들릴 정도였다.
이후 폭격으로 인한 통행금지 조치가 해제된 후 나가보니 근처 학교 건물이 폐허로 변해있었다. 운동장의 그네는 근처에서 무너진 체육관 건물의 잔해로 인해 온통 회색 먼지로 뒤덮여 있었다.
그러나 우크라이나의 공격도 횟수와 영향력 면에서 모두 증가했다. 서방이 제공한 더욱 강력한 무기를 사용하며 변화를 일으키고 있기 때문이다.
헤르손의 주민들은 러시아의 탄약고가 여러 차례 공격당했다고 말했다. 안토니브스키 다리 등 드니프로 강을 가로지르는 교량도 여러 차례 공격받아 러시아군은 보급에 차질을 빚고 있다.
헤르손 탈환 시도가 다가오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사샤는 헤르손에 남아 있는 많은 사람들이 싸울 준비가 됐다고 믿고 있다. 실제로 우리가 만나본 이들 모두 러시아의 지지를 지지하는 세력은 미미하며, 최근 몇 달간 수색, 구금, 구타 등의 행위가 훨씬 크게 줄어들었다고 했다.
사샤는 "우크라이나 군이 밀고 들어오면 시민들은 도울 준비가 돼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러시아 구치소에서 잔혹한 일을 겪었음에도 올레는 게릴라 저항군과 함께 자신의 고향을 지키기 위해 남부 전선으로 돌아왔다.
올레는 "저들은 땅을 차지할 순 있겠지만, 사람들을 차지할 순 없다"고 표현했다.
"러시아 군인들은 헤르손에서 결코 안전하지 못할 것입니다. 시민들이 이들을 원치 않기 때문이죠. 우리는 저들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저들을 받아들이지 않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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