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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SA 폭로' 스노든, 美 정부와 58억원 몰수 합의 본문

CIA.FBI(귀가 빙빙 도는 뇌 감청기)

'NSA 폭로' 스노든, 美 정부와 58억원 몰수 합의

CIA bear 허관(許灌) 2020. 9. 22. 21:40

에드워드 스노든 전 중앙정보국(CIA) 정보기술(IT) 보안 직원이 책과 강연비로 벌어들인 500만 달러(약 58억원)를 미국 정부가 몰수하는 데 동의했다.
스노든은 2013년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미 국가안전보장국(NSA)의 광범위한 정보수집 활동 '프리즘' 실태를 폭로해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인물이 됐다.

21일(현지시간) CNN은 법원 기록을 인용해 이처럼 보도했다.
스노든은 CIA·NSA와 맺은 근무 계약을 위반하고 지난해 정부 승인 없이 '영원한 기록'(Permanent Record)을 출간했다.
연방법원 판사는 스노든의 수익 배분을 금지해달라며 미국 정부가 제기한 소송에서 정부의 손을 들어줬다.
러시아로 망명한 스노든은 이달 기준으로 책 판매·로열티 등으로 420만 달러를 벌었다. 변호사는 400만 달러는 출판사로부터 받은 선금이라고 밝혔다.
미국에 있는 그의 변호사 및 법무부가 제출한 소송 문건에 따르면 그는 정부와의 기밀 유지 계약을 위반하는 폭로가 포함된 유료 강연을 56차례 했다.
그는 강연 대가로 103만 달러를 받았으며 회당 평균 강연료는 1만8000달러(약 2100만원)였다.
스노든과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합의에 따르면 이 돈은 신탁에 들어간다.
몰수 계획은 아직 판사의 최종 승인을 받지 못했다.
변호사는 법원에 이 같은 합의서가 제출됐다고 해서 미국 정부가 즉시 돈을 회수할 수 있는 건 아니라고 설명했다. 폭로에 책임이 있다는 법원 판결에 대한 항소를 고려하고 있어서다.

 

*에드워드 조지프 스노든

에드워드 조지프 스노든(영어: Edward Joseph Snowden, 1983621~ )은 미국 중앙정보국(CIA)과 미국 국가안보국(NSA)에서 일했던 미국의 컴퓨터 기술자다. 2013년 스노든은 가디언지를 통해 미국내 통화감찰 기록과 PRISM 감시 프로그램 등 NSA의 다양한 기밀문서를 공개했다. 스노든은 자신의 폭로가 대중의 이름으로 자행되고 대중의 반대편에 있는 일을 대중에게 알리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라고 말했다. 스노든에게서 NSA 기밀문서를 건네받아 가디언지에 보도한 글렌 그린월드 기자는 2014513더 이상 숨을 곳이 없다No Place to Hide라는 책을 펴냈다. 전 세계 24개 국가에 동시 출간된 이 책에는 첩보영화를 방불케하는 스노든과의 첫 만남에서부터 폭로과정, 그리고 국가 감시 및 주류 언론에 대한 비판이 담겨있다

 

스노든은 망명권을 행사하여 여러 나라에 망명을 신청했다. 위키리크스의 줄리언 어산지가 망명한 에콰도르에도 망명을 신청했다. 현재 어산지는 --런던 주재 에콰도르 대사관에 거주하고 있다.--2019412일 외교보호가 철회되며 체포되었다.

 

2013622일 영국 런던 주재 에콰도르 영사 피델 나르바예스가 스노든에게 에콰도르에 입국해 여행할 수 있는 서류를 발급했다. 나르바예스는 약 1년 전 줄리언 어산지의 에콰도르 망명 문제를 담당했던 영사다.

 

미국은 스노든의 여권을 정지시켰고, 스노든은 여행증명서가 없어서 러시아 모스크바 셰레메티예보 국제공항 환승 구역에 발이 묶였다고 보도되었으나, 런던 주재 에콰도르 영사가 발급한 서류 사본이 보도되면서,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당초 난민증명서가 발급되었다고 보도되었으나, 에콰도르 외무부는 난민증명서를 발급한 적은 없으며, 에콰도르 정부가 법적인 여행증명서를 발급한 적도 없고, 그냥 런던 주재 에콰도르 영사가 개인적으로 사실상 여행증명서를 발급한 것일 뿐이라고 말했다.

 

안전통행증이란 제목이 붙은 이 증명서에는 이 서류 소지자가 정치적 망명을 위해 에콰도르로 여행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발급한다면서 경유국 당국이 적절한 도움을 줄 것을 요청한다는 내용이 들어 있다.

 

2013623일 로버트 메넨데스 미국 상원 외교위원장은 성명을 통해 에콰도르 정부가 스노든의 망명을 받아들인다면 관세 혜택 폐지 등 경제 제재를 가하겠다고 경고했다.

 

보통 남미국가들은 모두가 반미국가들이라고 알려져 있는데, 에콰도르는 이러한 반미적 남미국가들 중에서도 선두에 서려는 정치외교적 정책노선을 취하고 있다.

 

201382,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스노든의 망명을 미국의 국익에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는 조건 하에 임시 망명(3)을 허용하였다.

 

에드워드 스노든 사건

미국 국가안보국(NSA) 직원이었던 에드워드 스노든은 NSA가 국내외를 가리지 않고, 테러 연루 여부와 관계없이, 공무원과 민간인 구분 없이 무차별적으로 인터넷과 통신 정보 등을 수집하고 있다는 사실을 2013년 6월 폭로했다. NSA가 구글, 페이스북 등 인터넷 업체들과 AT&T같은 통신 업체 등의 협조를 받아 개인 정보를 광범위하게 수집하고 있고 도청 등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세계를 뒤흔든 폭로에 나선 이유에 대해 미국 정부기관이 세계의 ‘빅브러더’가 되는 현실에서 계속 우리가 살아가야하는지 의문을 던지고 싶었다는 취지로 설명했다. 그 대가로 스노든은 미국에서 간첩 혐의 등으로 기소됐고, 2016년 10월 현재 러시아에서 망명 생활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1.머리말

2013년 6월 미국 중앙정보국(CIA)과 국방부 산하 정보기관인 국가안보국(NSA)에서 계약직 컴퓨터 엔지니어로 일했던 에드워드 조지프 스노든(Edward Joseph Snowden)은 미국정부가 프리즘(PRISM)이라는 비밀 정보수집 프로그램을 통해 구글, 페이스북 유튜브, 스카이프, 마이크로소프트, 애플, 버라이즌, AT&T 등 100여개 인터넷과 통신 업체들과 손잡고 전세계의 통화 기록과 인터넷 사용 정보를 수집해온 사실을 폭로했다.

NSA가 테러 용의자뿐 아니라 일반시민과 외국인들의 인터넷 사용기록과 통신기록까지 무차별적으로 하루 수백만건씩 수집해왔다는 것이다. 전 세계에서 NSA의 도청 대상에서 제외된 국가는 ‘파이브 아이즈’(Five eyes)로 알려진 미국의 정보공유동맹국들인 영국, 캐나다,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 등 네 개 나라뿐이었다. 스노든에 대해 ‘진실을 알린 내부고발자’라는 찬사와 ‘배신자’라는 비난이 교차하는 가운데 그의 폭로는 세계를 뒤흔들었다.

당시 미국 검찰은 스노든의 폭로 직후 스노든에 대해 간첩과 절도, 정부재산 무단 개조 등의 혐의로 미국 버지니아주 알렉산드리아 연방 지방법원에 기소했다.

폭로 장소였던 홍콩을 떠난 스노든은 러시아를 거쳐 남미로 가려했지만 미국이 그의 여권을 말소해 모스크바 국제공항 환승 구역에서 발이 묶였다가 같은 해 8월 러시아로부터 임시 망명 허가를 받았다. 2014년 8월 러시아 정부로부터 3년간의 거주허가를 얻었다. 스노든은 2016년 10월 현재 모스크바에서 여자 친구와 함께 은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2.에드워드 스노든은 누구?학창시절부터 컴퓨터에 관심

에드워드 스노든은 1983년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로니 스노든은 미국 해안경비대 장교였다. 스노든은 고등학교를 1년 반 동안 다녔다. 스노든은 질병과 가정불화 등의 이유로 고등학교 학업을 다 마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16살이었던 1999년 스노든은 앤 어런델 전문대학에 입학했다. 컴퓨터 수업을 들었고, 이후 고등학교 졸업장과 동등한 GED(고졸학력 인증서)를 취득했다. 이후 스노든은 메릴랜드주 NSA 인근에서 거주했다. 20대 초반 스노든의 관심사는 컴퓨터였다.

(1)이라크 전쟁 참전 위해 입대

2001년 9.11 테러 이후 스노든은 이전보다 훨씬 더 열렬한 ‘애국자’가 됐다. 2003년 이라크 전쟁이 일어났을 때 스노든은 “압제에 시달리는 사람들을 해방하는 일을 도와야할 의무” 라는 순수한 명분으로 2004년 5월 입대했다. 그는 조지아주 포트 베닝에 배속됐다. 훈련 중 스노든은 두 다리가 부러지는 사고를 당했다. 불가피하게 제대해야할 즈음 전쟁의 진짜 목적을 깨닫고 극도의 환멸을 느꼈다.

(2)NSA와 CIA에서 IT 기술 전문가로 근무

메릴랜드로 돌아온 스노든은 2005년 메릴랜드 대학교 고등언어연구센터에서 ‘보안 전문가’로 취직했다. 그는 메릴랜드 대학교 캠퍼스에 있는 비밀 NSA 시설에서 일했다. 연구센터는 고등언어교육을 제공하면서 미국 정보기관과 긴밀하게 협력했다. 스노든은 학위는 없었다. 하지만 뛰어난 지능과 기술적 재능을 겸비한 덕분에 같은 해 CIA에서 정보통신 기술 전문가가 되었다. 2006년 CIA 계약직에서 정식 직원으로 전환되면서 더 많은 기회가 열렸다. 2007년 24살 때, 스노든은 스위스로 발령났다. 2007년부터 2010년까지 3년간 제네바에서 외교관 신분으로 위장해서 활동했다. 그는 CIA 컴퓨터 네트워크 보안을 관리하고, 제네바 공관에 근무하는 미국 외교관들이 사용하는 컴퓨터 보안을 돌보는 작업을 했다. 2008년 루마니아에서 열린 나토 정상회담에서 대통령을 지원하는 임무를 맡기도 했다.
스노든의 정체가 밝혀진 이후 일부 언론에서는 어떤 머리 나쁘고 직급 낮은 IT기술자가 우연히 기밀정보를 발견한 것으로 묘사하려했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 CIA와 NSA에서 일하면서 스노든은 고급 사이버 요원, 즉 다른 나라의 군사와 민간 시스템을 해킹해서 들어가 정보를 훔치거나 흔적을 남기지 않은 채 공격할 수 있는 요원이 되는 훈련을 꾸준히 받아 고급 사이버 요원으로 공인받았다. 국방정보국 합동방첩교육아카데미는 스노든을 중국 방첩 과정에서 사이버 방첩 과정을 가르칠 교관으로 선발하기도 했다.

(3)‘내부고발자’ 되기로 결심

스노든은 CIA 비밀을 누설하면, 비밀요원과 정보제공자 등이 다칠 수 있지만, NSA의 비밀을 누설하면 힘을 남용하는 시스템만 손상된다는 이유로 NSA로 돌아갔다. 그래서 NSA와 계약을 맺은 ‘델’에서 일했다. 2010년에 일본 지사로 발령이 나 이전보다 훨씬 더 높은 등급의 감시 비밀에 접근할 수 있는 권한을 얻었다. 일본에서 근무하던 그는 “자료를 보고 정말 심란해지기 시작했다. 나는 무인기가 공격할 수도 있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감시하는 장면을 실시간으로 봤다. 마을 전체를 감시하면서 전체 주민들이 하는 행동을 확인할 수 있었다. NSA가 사람들이 자판을 두드리며 인터넷 활동을 하는 상황을 감시하는 것도 봤다. 미국의 감시 능력이 개인의 자유를 얼마나 심각하게 침해하는지 알게 됐다. 그런데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라고 말했다.
2011년 일본 파견근무가 끝난 후 스노든은 다시 ‘델’에서 일했다. 이번에는 메릴랜드에 있는 CIA 사무실에 배치됐다. 연봉은 약 20만 달러(약 2억원)였다. 그는 NSA가 민간 기술 산업과 손잡고 사람들의 통신에 전면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작업을 하는 걸 직접 목격했다고 했다.

 

(4)'폭로' 동기.."세계인의 프라이버시 제거..계속 이런 식으로 살아가야 하는지"‘폭로’에 이르기까지

2009년말 무렵, 정보기관의 행태에 환멸을 느낀 스노든은 CIA에서 떠날 준비가 됐다고 생각했다. 제네바에서 근무 기간이 끝나가던 이때 처음으로, 내부고발자가 되어 정부의 비리를 폭로하는 데 필요한 비밀을 누설할 마음을 먹기 시작했다. 스노든은 “그들이 구축하는 시스템의 목적이 전 세계인의 프라이버시를 제거하는 것이란 사실을 깨달았다. 모든 사람의 전자 통신을 NSA의 수집, 저장, 분석 활동의 대상으로 만드는 것”이라는 자각 때문에 스노든은 내부고발자가 되겠다는 결심을 굳혔다고 한다.

2012년에는 ‘델’의 메릴랜드 지사에서 하와이 지사로 자리를 옮겼다. 그리고 2012년 후반부터 반드시 공개돼야 한다고 판단한 문서를 다운로드하기 시작했다. 2013년 초, 그는 자신이 세상에 알리고 싶은 그림을 완성하려면 ‘델’에서는 접할 수 없는 문서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공식적으로 기반 체계 분석관이 되어서 NSA의 감시 자료 원본이 있는 저장소에 출입할 수 있는 권한을 갖고 있어야만 볼 수 있는 문서였다. 이런 목표를 염두에 두고, 스노든은 하와이 채용 공고를 낸 ‘부즈앨런해밀턴’에 지원했다. ‘부즈앨런해밀턴’은 미국에서 가장 규모가 크고 힘 있는 방위산업체 가운데 하나로, 전직 정부 관료들로 가득 찬 곳이다. 그는 이곳에서 미국 내 모든 통신사의 기반 체계에 대한 NSA의 비밀 감시 정보를 수집할 수 있었다. 2013년 중순 그는 2주간 휴가를 내고 NSA 문서가 가득 담긴 USB메모리와 노트북 네 대를 챙겨 홍콩으로 떠났다.

홍콩에서 스노든은 <가디언> 기자로 일하고 있던 탐사저널리스트이자 변호사인 글렌 그린월드와 다큐멘터리 영화감독 로라 포이트러스와 만나 관련 내용을 폭로했다.

'폭로' 결심을 굳힌 과정

스노든이 높은 연봉을 받는 ‘좋은 직장’을 내던지고, 중죄인이 될 수도 있는 길을 선택한 이유는 뭘까. 몇 년 동안 정부 기관에서 일하면서 철저하게 주입받은 기밀 유지와 국가에 대한 충성 서약을 깨뜨린 동기가 뭘까.

개인적으로는 승승장구했지만, 스노든은 ‘내부자’로서 관찰한 미국 정부의 행동에 대해서 회의가 느껴졌다고 한다. 그는 “기술 전문가들은 컴퓨터 시스템에 접속할 수 있기 때문에 비밀 자료를 많이 봤다. 정부가 전 세계에서 실제로 하는 일이 그동안 배운 것과는 전혀 다르다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했다. 그렇게 눈이 트이니까 세상을 보는 방식에 대해 다시 평가하게 되고, 더 많은 질문을 던지게 됐다”고 했다.

스노든은 세상 사람들이 자신의 프라이버시가 어떻게 침해되고 있는지 알 권리가 있다고 했다. 자신은 그런 범죄에 맞서야 한다는 윤리적 의무감을 느꼈다고 했다. 자신이 소중하게 생각하는 가치가 은밀하게 위협받고 있었고, 이런 사실에 대해 계속 침묵을 지키는 것은 양심상 용납할 수 없었다. 그는 “내 의도는 이런 시스템을 파괴하려는 게 아니라, 계속 이런 식으로 살아가야 하는지 사람들이 결정할 수 있도록 해주려는 것뿐”이라며 고난의 길을 택한 이유를 설명했다.

3.미국 국가안보국(NSA: National Security Agency)..세계의 ‘빅브러더’

미국 국가안보국 (NSA)

NSA는 정보수집기관으로 1952년 설립된 이래, 가공할 만한 기술과 수학전문 지식을 축적해왔다. 1970년대 상원의원 프랭크 처치가 ‘미국에서 완전한 전제정치를 펼칠’ 능력을 NSA가 지니고 있다고 경고했을 정도다. NSA 예산과 직원 정보는 국가기밀인데, 석사급 이상 학력을 가진 3만8000명의 요원들이 근무하고 있고 한 해 예산이 8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져있다.

NSA의 임무는 세계 도처에서 신호정보를 수집하는 일이다. 여기에는 인터넷 통신은 물론 무선, 극초단파, 위성 요격 등 모든 전자정보가 포함된다. 이런 은밀한 감시는 목표 대상이 모르는 사이에 진행된다. NSA는 미국 군사기지, 대사관을 비롯한 세계 곳곳에 도청기지를 갖고 있다.

NSA가 세계 인터넷 사용자들을 저인망식으로 감시하게 된 발단은 2001년 9.11 사태였다. 이후 10년 동안 미국과 영국 양국에서 개인 프라이버시 침해를 마다 않는 새로운 정치적 성향이 나타났다. 위키리크스 줄리안 어샌지의 말처럼 복잡한 인터넷망은 ‘역사상 최대 염탄 기계’가 됐다. 그러나 스노든이 등장하기 전까지 진실은 극히 일부만 드러나 있었다.

NSA는 영국 정보통신본부(GCHQ: Government Communications Headquarters)와 함께 전 세계를 연결하고 있는 해저 광섬유 케이블에 도청 장치를 부착했다. 이로써 미국과 영국은 지구상에 일어나고 있는 의사소통 내용 중 상당부분을 판독할 수 있게 됐다. 법원은 통신사들에 대해 데이터 제출을 강요하고 있었다. 한 술 더 떠서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페이스북, 애플에 이르기까지 상당수의 실리콘밸리 기업들이 NSA와 엮여 있다고 스노든이 폭로한 것이다.

그는 또 NSA가 대통령뿐 아니라 누구든지 도청할 수 있다고 했다. 원칙적으로 NSA는 외국 표적에 관한 정보, 즉 시진트(SIGINT)만을 수집해야 하지만 현실에서는 이 원칙이 완전히 무시된다고 했다. 전화기록, 이메일, 표제 정보, 제목을 승인 또는 동의 없이 수집했다. 이 정보를 이용하면 친구나 연인, 감정의 기쁨과 슬픔 등 한 개인의 삶 전체를 모두 들여다볼 수 있다고 한다.

4.폭로된 내용들

스노든은 대부분 ‘일급비밀’로 분류된 수만건에 달하는 문서를 확보하고 있다. 국외 정보수집이라는 원래 임무에서 탈선해 미국 내에서 수집한 정보와 해외에서 수집한 정보가 모두 포함된다. 보도된 대표적인 몇 가지 사례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35개국 정상 전화 도청

NSA는 2006년 미국의 우방국인 독일의 앙겔라 메르켈 총리의 휴대전화는 물론이고 세계 35개국 정상의 통신수단을 도청했다. 한국이 포함됐는지 여부는 확인되지 않았다. 특히 2006년에는 한-미 자유무역협상(FTA)과 전시작전통제권 전환, 북한 1차 핵실험 등 한-미 사이에 민감한 현안이 많았고 두 나라 사이에 이견도 큰 상황이었어서 미국의 정보수요가 많았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NSA의 외국 정상 도청 행위는 이후에도 계속된 것으로 보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2)이란 제재 때도 UN 안보리 회원국 도청

수전 라이스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유엔 대사를 역임했던 2010년 5월, UN 안전보장이사회의 이란 제재 결의안 논의과정에서 다른 이사국들의 입장을 파악하기 위해 NSA에 도청을 직접 요청한 사실도 드러났다. 2010년 5월은 이란의 핵개발 프로그램에 대한 추가제재 결의안 통과를 위해 막판 외교전을 벌이고 있을 때였는데 5개 상임이사국을 포함한 15개 이사국 가운데 상당수가 결의안에 대한 입장을 밝히지 않은 때였다. NSA 협조를 받은 뒤 안보리는 같은 해 6월9일 이란에 대한 4차 제재안을 통과시켰다. 라이스 보좌관은 “NSA의 정보를 바탕으로 중·영·프·러 등 상임이사국과 다른 이사국들의 입장도 확인해 협상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었다”며 NSA에 감사의 뜻을 표한 것이 스노든의 폭로를 통해 드러났다.

(3)미국 법원, NSA에 193개국 도청 허용

NSA가 미국 특별법원으로부터 한국을 포함한 193개국 정부기관들에 대한 도청 권한을 부여받고 있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또 해외 정부기관뿐 아니라 외국정보를 잘 알고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학자나 기자 등도 도청 대상에 포함됐다. NSA는 외국정보감시법정(FISC)으로부터 감시 대상 국가 리스트를 매년 승인받았는데, 여기에는 UN과 세계은행, 국제통화기금(IMF), 국제원자력기구(IAEA) 등 국제기구들도 포함돼 있었다. ‘외국정보감시법’(FISA)이 대테러 목적으로 만들어졌으나 실제로는 그 한계를 넘어서 남용·오용되고 있는 사실이 드러나게 된 것이다.

(4)NSA, 세계 23개 백신업체 해킹해 악성코드 신고 이메일 엿봐

NSA는 한국의 안랩과 하우리를 포함해 세계 23개 백신업체가 사용자 등에게 받은 악성코드 신고 이메일을 몰래 열람했다. 이를 통해 NSA는 백신업체들의 취약점을 미리 파악하고, 백신업체가 대비하기 전에 악성코드를 뿌려 백신을 무력화할 수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백신업체가 악성코드의 존재를 알아도 대비하는 데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Form Guide Ear(Language, Intelligence) to Bird's Eye(Reading,Investig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