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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센카쿠 열도 주변 해역에 명칭 부여 본문
중국 정부는 오키나와현 센카쿠 열도 주변으로 보이는 동중국해 해저 지형 50곳에 명칭을 붙였다고 발표했습니다.
중국은 오키나와현 이시가키시의회가 센카쿠 열도의 주소에 ‘센카쿠’ 표기를 추가하는 의안을 가결한 데 반발하고 있어 일본 측에 대항하는 조치에 나설 가능성도 있습니다.
중국 자연자원부는 23일, “중국의 동중국해 일부 해저 지형에 명칭을 붙였다”며 오키나와현 센카쿠 열도 주변으로 보이는 동중국해 해저 지형 50곳에 명칭을 붙였다고 발표했습니다.
센카쿠 열도에 대해 현재 중국이 사용 중인 명칭인 ‘댜오위다오’의 일부를 사용한 ‘댜오위 와지’와 ‘댜오위 해저협곡군’ 등도 포함돼 있습니다.
중국 측은 “지명의 호칭이 더욱 기준에 적합하도록 실체적이고 표준적인 명칭을 붙였다”고 설명했습니다.
한편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22일, 오키나와현 이시가키시의회가 센카쿠 열도의 주소에 ‘센카쿠’ 표기를 추가하는 의안을 찬성 다수로 가결한 데 대해 “중국 영토의 주권에 대한 중대한 도발로 위법하고 무효하다”며 일본 측에 항의했습니다.
중국은 센카쿠 열도를 자국 고유의 영토라고 주장하고 있으며, 이번에 명칭을 붙인 만큼 일본 측에 대항하는 조치에 나설 가능성도 있습니다.
일본 관방장관, 중국이 센카쿠 해저지형 명칭 부여한데 강력 항의
중국정부가 오키나와현의 센카쿠 제도 주변으로 보이는 동중국해 해저지형에 명칭을 부여했다고 발표한데 대해, 스가 일본 관방장관은 기자회견에서, 센카쿠 제도는 일본 고유의 영토라며 외교경로를 통해서 중국 측에 강력히 항의했다고 밝혔습니다.
중국정부는 23일, 오키나와현 센카쿠 제도 주변으로 보이는 동중국해의 총 50곳의 해저지형에 명칭을 부여했다고 발표했습니다.
이에 대해 스가 관방장관은 25일 기자회견에서, "센카쿠 제도는 역사적으로도 국제법상으로도 분명한 우리나라 고유의 영토이므로 주변 해저지형에 명칭을 부여한다고 해도 달라질 것은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명칭 중에 센카쿠 제도와 관련한 중국 측의 독자적인 주장에 따른 것이 포함돼 있는 점을 종합적으로 감안해 외교 경로를 통해 중국 측에 강력히 항의했다고 밝혔습니다.
스가 관방장관은 또, 지난달 센카쿠 제도 근해에서 중국 해경국 선박이 일본 어선을 추적하는 모습을 해상보안청이 촬영한 영상의 공개에 대해, "제반 사정을 고려해 종합적으로 신중하게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동중국해 남부에 위치한 다섯 개의 무인도와 세 개의 암초를 말한다. 일본 오키나와[沖繩]의 나하(那覇)로부터 남서쪽으로 약 400㎞ 떨어져 있고, 중국 본토에서는 350㎞, 타이완의 지룽[基隆]으로부터는 약 175㎞ 떨어져 있다. 중국에서는 댜오위다오 열도[釣魚島列島], 댜오위타이 군도[釣漁臺群島]라고 부른다. 센카쿠 열도라는 이름은 일본이 1884년 영국 해군이 붙인 '피너클 아일랜드'(Pinnacle Islands, 뾰족한 섬)에서 본뜬 것이다.
명나라 초기 푸젠성[福建省]과 타이완성[臺灣省] 어민들이 고기를 잡거나 약초를 캐어 오면서 열도의 존재가 알려져서 중국의 판도에 들어갔다. 영락(永樂) 연간(1403~1424년)에 출판된 〈순풍상송 順風相送〉이란 책에 '조어서'(釣魚嶼)란 이름으로 역사에 처음 등장한다. 이는 1984년 오키나와에 살던 고가 다쓰시로[古賀辰四郞]가 발견해 1895년 오키나와 현 영토에 정식 편입했다고 주장한 것보다 400년이나 앞섰다. 1863년 청나라가 제작한 지도에는 푸젠성에 소속된 댜오위타이 군도란 이름으로 표기되어 있다.
청일전쟁에서 패배한 청나라 정부는 1895년 4월 '시모노세키 조약'[下關條約]을 통해 타이완 섬과 그에 부속된 도서 및 펑후[彭湖] 열도를 일본에 할양했다. 이후 일본은 새로 제작하는 지도에 중국 이름인 댜오위다오 열도 대신 센카쿠 열도라고 표기하였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일본은 미국과 체결한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에서 타이완과 펑후 열도에 대한 모든 권리를 포기한다고 했으나, 댜오위다오 열도 등 도서는 미국이 위임통치하는 오키나와의 관할 안에 두는 것으로 했다. 당시 저우언라이[周恩來] 중화인민공화국 총리는 성명을 통해 "중국 정부는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을 결코 인정하지 않겠다"고 밝혔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1969년 유엔의 아시아극동경제위원회에서 센카쿠 열도 부근 해역에 천연가스와 석유가 대규모로 매장되어 있다고 발표하면서 일대의 영해는 일약 황금지대로 변모해 분쟁 지역으로 급부상했다. 1972년 미군이 오키나와를 일본에 반환하자 일본은 댜오위다오 열도 등 도서를 자국의 영토로 편입한 후 주위에 해양순시선을 배치해 감시하는 등 실효적 지배를 해오고 있으나, 중국과 타이완도 함께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어서 분쟁이 끊이지 않는 지역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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