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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진입한 북한 탱크, 백기 든 인민군... 6·25 미공개 사진들 본문

-平和大忍, 信望愛./韓中日 동북아역사(한자언어문화권)

대전 진입한 북한 탱크, 백기 든 인민군... 6·25 미공개 사진들

CIA bear 허관(許灌) 2020. 6. 24. 23:58

어린 소녀의 처량한 울음소리가 귓가에 생생히 들릴 것 같다. 전쟁이 끝난 1950년대, 갓난아이를 업은 채 아무 것도 없는 시골 들판에서 울고 있는 북한의 어린이. 단발머리에 저고리와 치마를 입고 일 나간 부모 대신 어린 동생을 업은 소녀는 당시 남북한 어디에서나 쉽게 볼 수 있었고, 화가 박수근의 그림에도 여러 차례 등장했다. 이 사진은 전쟁 직후 북한을 방문했던 프랑스의 사진가 겸 영화감독 크리스 마커의 작품이다. /눈빛출판사 
1950년 7월 대전 시가에 진입한 북한군 탱크부대. 소련제 신무기를 앞세운 전쟁 초기의 북한군은 자못 으스대는 모습이었고, 길가의 시민들은 불안한 눈빛으로 그들을 보고 있다. 북한군은 전쟁 발발 25일 만인 7월 20일 대전을 점령했는데, 전쟁 3일 만에 서울을 점령한 뒤 '전국에서 좌파 봉기가 일어날 것'이라는 잘못된 기대 때문에 타이밍을 놓쳤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이다. /눈빛출판사
1950년 8월 낙동강변 참호에서 영국군 장교와 국군이 적정을 살피고 있다. 영국의 픽처 포스트지가 파견한 종군 사진가 버트 하디의 작품이다. 1950년 8~9월의 낙동강 방어선 전투는 국군이 북한 공산군의 남침을 막아낸 최후의 교두보로, 결국 반격의 대전환을 이루고 전세를 역전시킬 수 있었다. /눈빛출판사 
1950년 9월 15일 인천상륙작전 때 상륙정을 타고 월미도로 진격하는 미 해병. 인천상륙작전의 제1단계가 월미도 점령이었고 2단계는 인천 해안의 교두보 확보였다. 더글러스 맥아더 유엔군 사령관이 주도한 인천상륙작전은 6.25의 전세를 단번에 역전시킨 작전이었다. /눈빛출판사 
1950년 9월 15일 월미도를 수비하던 인민군이 백기를 들고 투항하고 있다. 인천상륙작전의 지상군 총 병력은 유엔군과 국군 합쳐 7만여 명이었고, 인천에 주둔한 인민군은 월미도의 400명을 포함해 2000명을 넘지 않았다. 그야말로 허를 찌른 작전이었다는 것을 백기 든 인민군의 황망한 표정이 말해주고 있다. /눈빛출판사 
1950년 10월 1일 38선을 돌파하는 국군 3사단 23연대 장병들이 강원도 양양에서 유엔군과 함께 '당신은 지금 38선을 넘어서고 있다'고 쓴 기념 표지판을 둘러싸고 있다. 국군과 유엔군은 9월 28일 수도 서울을 탈환했고, 참모총장 정일권 소장은 미8군 워커 사령관의 인가를 받아 10월 1일 국군 부대에 38선 돌파 북진을 명령했다. 이날이 바로 '국군의 날'이 됐다. /눈빛출판사 
1950년 10월 평양에서 풀려난 미군 포로와 평양 시민들이 어깨동무를 한 채 국군과 유엔군을 환영하고 있다. 평양을 먼저 점령한 것은 국군이었는데, 고향이 평양인 사단장 백선엽이 자동차를 타고 진군하는 미 1기병사단과 경쟁을 벌인 끝에 '발이 차를 이겼다'고 한다. /눈빛출판사 
1950년 10월 20일 평남 숙천 주민들이 태극기를 흔들며 미 187공정대원을 환영하고 있다. 미군은 평양 수복 다음날인 이날 퇴각하는 북한군 주력부대를 차단하기 위해 대규모 공수부대 투하 작전을 실시했다. 미군의 낙하 작전 소식에 당황한 인근 순천 북쪽의 북한군이 미군 포로들을 학살하는 일도 있었다. /눈빛출판사
1950년 12월 혹한 속에 철수하던 미 해군부대가 장진호 부근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다. 11월 말 압록강을 건너온 중공군과 맞닥뜨린 미군은 '중공군'과 '추위'라는 전혀 새로운 2개의 적과 싸워야 했다. /눈빛출판사 
1950년 12월 장진호 부근에서 행군 중 눈을 맞으며 쉬고 있는 미 해병. 영하 30도를 오르내리는 강추위가 해발 1000m 이상 고지대인 개마고원에 휘몰아졌고, 중공군 9개 사단에 포위된 미 해병 1사단은 초인적인 인내심과 투지로 포위를 돌파했다. /눈빛출판사 
1950년 12월 19일 피란민들이 어선을 타고 흥남항을 떠나고 있다. 이들은 미국 수송선에 타지 못한 채 작은 배에 의지해 피란길을 떠나야 했던 사람들이었다. 수송선을 타고 남하한 피란민은 약 11만 명이었고, 상선 매러디스 빅토리호와 크고 작은 어선으로 남하한 피란민, 그리고 배에 오르지 못한 채 부둣가에서 울부짖어야 했던 피란민도 많았다. /눈빛출판사 
모든 전쟁은 소년을 실제 나이보다 훨씬 더 성숙시킨다. 1951년 3월 경기 수원에서 한 소년이 부서진 집터에 망연히 앉아 있다.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린 폐허에 주저앉은 저 까까머리 소년의 표정과 자세에서 그래도 이 참혹한 현실을 딛고 인생을 살아가야겠다는 결연함이 읽힌다. /눈빛출판사 
부모를 잃고 벌거벗은 채 길 한복판에 앉아 우는 아이는 그 전쟁의 비극을 겪었던 모든 사람들의 자화상과도 같을 것이다. 1950년 8월 8일 검게 그을린 어린이가 길가에 앉아 먼 포성을 들으며 울고 있다. /눈빛출판사

전쟁이 끝난 뒤 빈 들판에서 갓난아기를 등에 업은 여자아이가 슬프게 울고 있다. 박수근 그림에서 튀어나온 듯한 이 아이의 사진은 궁핍한 전후(戰後), 부모 없이 어린 동생을 돌봐야 했던 어린 누이들의 신산함을 그대로 전해주고 있다. 황량한 시골에서 벌거벗고 검게 그을린 채 울고 있는 어린이의 사진도 있다. 전쟁이 일어난 지 두 달 뒤, 피란길에 홀로 버려진 듯 안타까운 광경이다.

6·25 전쟁 70주년을 맞아 미공개 사진 300여 장을 수록한 사진집 ‘끝나지 않은 전쟁 6·25’(눈빛)가 출간됐다. 미 국립문서기록관리청(NARA) 사진과 영국·중국·러시아·북한 등 출판사가 아카이브를 구축해 수집한 사진들로 엮었다.

전쟁 발발 직후 남한으로 진격한 북한 탱크, 긴박한 낙동강 전선, 인천상륙작전 때 함정을 타고 월미도로 상륙하는 미 해병, 흥남에서 피란하는 대규모 피란민…. 때론 기록이 미처 다 설명하지 못하는 역사의 편린들이 그 속에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편집을 맡은 이규상 눈빛출판사·눈빛아카이브 대표는 “전쟁사진은 전쟁을 찍지만 역설적으로 전쟁을 반대하는 사진”이라고 말했다.

중공군 14개 사단이 압록강을 도하하고 있는 모습

1950년 10월 19일 중국 인민해방군이 압록강 도하를 시작했다. 이날 이후 중공군 18개 사단이 압록강을 통해 한반도로 진입, 한국전에 개입했다.
이 날은 38선을 돌파한 유엔군이 평양에 입성한 날이다(백선엽 장군이지휘하는 국군 1사단은 이보다 4일 전인 10월 15일 평양에 진입했다).

미국이 한국전 발발 이틀 뒤인 6월 27일 해군과 공군을 한국에 파병하고 제7함대를 대만 해협에 출동시키자 저우언라이(周恩來) 중국 총리는 중국 정부를 대표하여 미국이 대만을 침략한 것이라고 비난, 중국의 한국전 개입을 예고했었다.

중국은 한국전 개입을 ‘항미원조(抗美援朝)’로 부르고 있으며 ‘집과 국가를 보호하고 지키기 위한 것(保家衛國)’으로 규정하고 있다.

 

서울을 점령한 북중(朝中)연합군

1950년 12월 북중(朝中)연합군 창설과 중국 인민해방군 한국전쟁 개입[김일성과 팽덕회 모습]

1951년 1월 4일 북중(朝中)연합군[중공군]이 서울을 점령했습니다

 

 

 

 

 

 

 

 

 

 

북중(朝中)연합군[중공군]이 38도선 이남과 서울 그리고 한강이북을 점령한 후 축배를 즐기는 모습과 한강 이남을 점령하기 위하여 정찰하는 모습

모택동은 38도선 이남 월경과 서울 점령을 승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