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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 북인권결의안 초안, 한국 납북자 송환 촉구 내용 명시 본문

Guide Ear&Bird's Eye/납북자와 월북자 자료

유엔 북인권결의안 초안, 한국 납북자 송환 촉구 내용 명시

CIA bear 허관(許灌) 2020. 6. 19. 23:32

북한억류자석방촉구시민단체협의회 소속 단체 회원들이 지난해 2월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6·25 납북자의 생사확인과 유해 송환, 북한 억류자의 송환을 촉구하고 있다.

앵커: 제43차 유엔 인권이사회에 제출된 북한인권결의안 초안에 한국인 납북 피해자의 송환을 촉구하는 내용이 명시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서울에서 목용재 기자가 보도합니다.

코로나19, 즉 신형 코로나바이러스(비루스)로 인해 연기된 제43차 유엔 인권이사회에서 조만간 북한인권결의안 채택 여부가 결정됩니다.

이번에 유럽연합(EU)이 유엔 인권이사회에 제출한 결의안 초안에는 북한 당국이 납치한 한국인 피해자들의 송환을 촉구하는 내용이 포함됐습니다.

한국 납북 피해자들의 송환을 촉구하는 내용은 앞서 지난해 12월 유엔 총회에서 채택된 북한인권결의안에 처음으로 명시된 바 있습니다. 유엔 총회에 이어 유엔 인권이사회에서도 이 같은 내용이 포함된 북한인권결의안이 통과될지 주목됩니다.

지난해 말 유엔 총회에서 채택된 북한인권결의안 이전까지는 일본인 납북 피해자들의 송환 문제만 명시돼 있었을 뿐 한국인 납북 피해자들에 대한 언급은 없었습니다.

이에 한국 내에서는 한국인 납북 피해자 문제에 대해 국제사회의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신희석 전환기정의워킹그룹 법률분석관: 지난해 이전까지는 일본인 납치 피해자들의 송환 문제만 언급됐습니다. 이번에 한국인 납북자의 송환이 명시된 것은 (유엔 인권이사회 차원의 결의안으로서는) 처음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습니다. 북한의 납치 행위 중 가장 피해가 큰 국가는 한국입니다. 뒤늦게라도 국제사회에서 해당 문제를 공론화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습니다.

이어 신 분석관은 이를 계기로 한국 정부가 납북된 한국 국민의 송환을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한다고 덧붙였습니다.

신 분석관은 “어떤 국가든 납치된 자국민을 구출하는 것을 어떤 외교 정책보다도 우선해야 한다”며 “한국의 역대 정권 모두가 이 문제에 대해 무게를 두지 않는 상황에서 한국의 피해 가족들과 시민단체, 국제 시민단체들이 납북자 문제를 지속적으로 거론함에 따라 비로소 유엔이 한국인 납북자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번에 EU가 유엔 인권이사회에 제출한 북한인권결의안 초안에는 북한 주민들에게 신형 코로나 사태와 관련한 의료, 약품 지원 등을 위해 이들에 대한 국제사회의 접근권을 북한 당국이 보장해야 한다는 내용도 포함돼 있는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특히 북한인권결의안 초안에는 지난해 북한의 유엔 인권이사회 보편적정례인권검토(UPR)의 문제점을 지적한 내용도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북한 내 비정부기구(NGO), 즉 시민단체가 조사한 북한 인권 상황에 대한 보고서는 제출되지 않았다는 지적입니다.

유엔 인권이사회가 조만간 북한인권결의안 채택을 결정할 예정인 가운데 한국 정부는 여전히 북한인권결의안 공동제안국에 참여할지 여부를 검토중인 상황입니다.

한국 외교부 관계자는 19일 자유아시아방송과의 통화에서 “EU가 상정한 북한인권결의안이 조만간 채택될 것으로 전망된다”며 “한국 정부가 공동제안국에 참여할지 여부에 대해서는 현재 입장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습니다[자유아시아방송]

납북자 현황 자료

휴전 이후 북한정부에 의하여 피랍 남한인 486명 명단과 미국 하원 북한의 한국인,일본인 납치 억류 규탄 결의안 통과 내용

 

1.휴전이후 피랍 한국인 486명 명단

북한정부는 휴전이후 남한 어부와 선원, 항공기 승객, 학생, 교사, 목사들을 비롯해 총 486명의 한국인들이 여전히 북한에 생존해 있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A.피랍 선원 436명(어부. 어업인)

(1)1955년 5월 28일 대성호 선원 10명

김장현(44세, 황해 옹진). 황득식(42세, 황해 옹진). 정태현(41세, 황해 해주). 유외택(42세, 황해 해주). 이산음(41세, 황해 해주). 유장화(41세, 황해 옹진). 윤성우(41세, 황해 해주). 박표만(41세, 황해 해주). 김순귀(47세, 황해 옹진). 조종일(40세, 황해 해주)등

(2)1957년 11월 9일 해룡호 선원 1명  김성주(48세, 경남 통영)

(3)1957년 11월 9일 덕길호 선원 1명  마승섭(44세, 강원 고성)

(4)1958년 4월 28일 명규호 선원 2명

박동근(33세, 전북 남원). 홍복동(20세, 황해 옹진)

(5)1958년 4월 29일 평화호 선원 2명

김영복(20세, 경기 부천). 박영근(32세, 강원 고성)

(6)1958년 4월 30일 다복호 선원 2명

김창현(32세, 평북 철산). 김명선(47세, 경기 연백)

(7)1958년 4월 30일 풍영호 선원 1명  한진룡(24세, 경기 부천)  

(8)1958년 4월 30일 신흥호 선원 1명  박세운(19세, 경기 강화)

(9)1958년 5월 14일 신복2호 선원 1명 장순종(18세, 경남 삼천포)

(10)1958년 11월 7일 신명호 선원 3명

송성락(52세, 강원 고성), 신광필(37세, 함남), 송상인(49세, 함남)

(11)1958년 11월 7일 금구호 선원 3명

박동준(49세, 함남). 허준(45세, 함남). 이용택(46세, 함남)

(12)1958년 12월 6일 어성호 선원 2명

김범주(18세,강원 고성). 김여훈(18세, 강원 고성)

(13)1958년 12월 6일 하영호 선원 3명

김명은(46세, 경북 울릉). 엄광섭(46세, 경북 울릉). 김윤택(34세, 강원 고성)

(14)1958년 12월 6일 금능호 선원 2명

윤승범(42세, 강원 홍천). 김개락(28세 함남)

(15)1958년 12월 6일 광영호 선원 1명  김원로(53세, 강원 고성)

(16)1964년 3월 1일 보승2호 선원 11명

고오동(35세, 전남 고흥). 곽형주(33세, 전남 고흥). 곽문길(24세, 전남 고흥). 곽종효(37세, 전남 고흥). 박태길(31세, 전남 고흥). 송은석(48세, 미상). 임귀복(38세, 전남 고흥). 이종윤(34세, 전남 고흥). 최석용(44세, 전남 고흥). 최준수(40세, 전남 고흥). 최동길(17세, 전남 고흥)등

(17)1964년 7월 19일 강화호 선원 2명

박기정(26세, 경기 강화). 한상준(28세, 경기 강화)등

(18)1964년 7월 29일 부영호 선원 1명  문성천(38세, 황해 장연)

(19)1964년 10월 16일 신성2호 선원 2명

유한복(20세, 경기 평택). 김광호(23세, 경남 밀양)등

(20)1965년 5월 8일 광명호 선원 1명   최동기(41세, 경북)

(21)1965년 5월 31일 대영호 선원 1명  이정웅(22세, 경기 웅진)

(22)1965년 10월 29일 승리호 선원 2명

나용렬(29세, 인천동구). 현근화(45세, 함남)등

(23)1965년 10월 29일 용복호 선원 2명

문정숙(25세, 경기 강화). 김분임(61세, 경기 강화)등

(24)1965년 10월 29일 용미호 선원 1명  정영남(38세, 경기 강화)

(25)1965년 11월 15일 춘곡호 선원 2명

정창규(36세, 경남 통영). 천태옥(35세, 경북 영덕)등

(26)1965년 11월 20일 명덕호 선원 9명

주인복(46세, 강원 고성). 최영중(17세, 강원 고성). 김성만(32세, 강원 양양). 이병기(16세, 강원 고성). 이창영(18세, 강원 명주). 김경수(18세, 강원 주문진). 김장원(16세, 강원 속초). 김정구(19세, 경북 영덕). 한동순(26세, 경북 영덕)등

(27)1965년 11월 20일 덕삼호 선원 1명     서봉래(43세, 강원 고성)

(28)1965년 11월 26일 대양 79호 선원 1명  김태윤(50세, 미상)

(29)1965년 11월 30일 행영호 선원 2명

서석민(18세, 경남 거제). 김종옥(28세, 강원 양양)등

(30)1966년 1월 26일 영농호 선원 1명   황창섭(54세, 미상)

(31)1966년 6월 24일 대성호 선원 1명   박팔만(18세, 전남 해남)

(32)1967년 4월 12일 천대11호 선원 14명

최명환(35세, 전남 완도). 정학명(37세, 미상). 장영식(33세, 미상). 진정팔. 최종등(26세, 경남 거제). 최효길(29세, 미상). 남복이(36세, 경북 영덕). 장길룡(28세, 미상). 김상수(30세, 미상). 김영일(23세, 경남 삼천포). 김홍일(26세, 경남 산청). 이정식(34세, 미상). 김장훈(31세, 경북 경주). 김대곤(28세,경북 경주) 등

(33)1967년 5월 23일 창성호 선원 2명

윤경구(18세, 충남 서산). 홍순표(17세, 총남 태안)등

(34)1967년 5월 28일 승용호 선원 1명   이선일<이성일>(17세, 전북 옥구)

(35)1967년 5월 29일 태영호 선원 2명

최창의(20세, 충남 태안). 김옥준(26세, 충남 서산등

(36)1967년 6월 5일 풍복호 선원 2명

최원모(57세, 전북 군산). 문경식(16세, 전북 군산)등

(37)1967년 6월 15일 부성3호 선원 1명   김봉수(27세, 서울 용산)

(38)1967년 7월 22일 정진호 선원 1명    이기출(18세, 경북 칠곡)

(39)1967년 11월 3일 어성호 선원 1명   오원섭(41세, 강원 고성)

(40)1967년 11월 3일 거성호 선원 1명   이진영(25세, 강원 고성) 

(41)1967년 11월 3일 금윤호 선원 6명

김자준(38세, 강원 고성). 박규채(37세, 경남 남해). 박낙선(28세, 강원 고성). 이태수(32세, 강원 명주). 장재천(27세, 강원 고성). 이창식(29세, 강원 고성)등

(42)1967년 11월 3일 해양호 선원 5명

김성재(39세, 강원 삼척). 박능출(26세, 경남 거제). 홍순권(37세, 강원 명주). 마기덕(26세, 경남 창원). 김상준(23세, 강원 고성)등

(43)1967년 12월 20일 청진호 선원 6명

김남현(27세, 강원 고성). 이정해(48세, 강원 속초). 김성호(29세, 강원 고성). 이춘식(30세, 강원 고성). 오명복(29세, 강원 명주). 가양덕(29세, 강원 고성)등

(44)1967년 12월 25일 광명호 선원 1명   한해진(40세, 강원 고성)

(45)1968년 1월 6일 경호 선원 1명     김주철(30세, 강원 동해)

(46)1968년 1월 6일 홍익호 선원 1명   양상을(41세, 강원 명주)

(47)1968년 1월 11일 행덕호 선원 1명  박복택(41세, 경남 충무)

(48)1968년 3월 10일 기성호 선원 1명   서수중(28세, 강원 속초)

(49)1968년 4월 17일 창영호 선원 7명

김학래(26세, 강원 양양). 이태용(49세, 강원 양양). 김흥록(17세, 강원 고성). 이옥진(43세, 전남 여수). 강명보(18세, 경남 통영). 이영석(19세, 경남 남해). 정장백(20세, 경남 고성)등

(50)1968년 4월 27일 종진호 선원 4명

임규철(26세, 강원 강릉). 정연태(27세, 강원 삼척). 김룡봉(18세, 강원 고성). 윤무출(39세, 강원 고성)등

(51)1968년 5월 9일 신진호 선원 2명

김정일(32세, 강원 명주). 오성재(37세, 서울 성동)등

(52)1968년 5월 23일 대성호 선원 3명

김홍균(25세, 강원 명주). 임병혁(40세, 강원 양양). 한귀돌(15세, 강원 명주)등

(53)1968년 5월 29일 춘덕3호 선원 1명   김재구(21세, 전남 목포)

(54)1968년 5월 29일 성운호 선원 5명

박만복(43세, 강원 명주). 김명학(47세, 경북 울진). 이상원(42세, 강원 명주). 장창수(36세, 강원 강릉). 김수근(32세, 경북 영일)등

(55)1968년 6월 1일 순덕호 선원 1명   공문익(37세, 경기 강화)

(56)1968년 6월 6일 부길호 선원 4명

김일오(26세, 전남 여천). 김경두(34세, 전남 여천). 박명옥(16세, 전남 여천). 김길오(32세, 전남 완도)등

(57)1968년 6월 6일 영신호 선원 4명

고주봉(30세, 전남 영암). 오판철(34세, 전북 장수). 김이배(31세, 전남 진도). 최동진(20세, 충남 보령)등

(58)1968년 6월 6일 덕산호 선원 5명

이선주(26세, 충남 당진). 이일남(27세, 경기 부천). 고종현(21세, 경기 부천). 김용길(18세, 전남 해남). 서종술(37세 경기 부천)등

(59)1968년 6월 8일 풍년호 선원 11명

전인만(16세, 강원 고성). 최동일(27세, 전남 완도). 김병호(18세, 경남 김해). 김영욱(14세, 강원 고성). 신성욱(26세, 강원 삼척). 주재근(25세, 강원 고성). 고준수(26세, 강원 고성). 조문호(32세, 강원 고성). 김용기(20세, 경북 예천). 박형중(15세, 전남 고흥). 이운길(14세, 강원 고성)등

(60)1968년 6월 12일 영신호 선원 2명

서용식(28세, 전남 영광). 김도경(23세, 전남 목포)등

(61)1968년 6월 16일 해양호 선원 1명   김광운(36세, 경기 부천)

(62)1968년 7월 17일 취영호 선원 3명

손은주(22세, 경기 부천). 손철순(20세, 황해 옹진). 김광근(25세, 황해 옹진등

(63)1968년 6월 17일 복성6호 선원 3명

홍상표(11세, 경기 강화). 김영구(21세, 경기 강화). 유병춘(31세, 인천 동구)등

(64)1968년 6월 21일 성북2호 2명 선원

심광식(28세, 전북 군산). 김창현(45세, 인천 중구)등

(65)1968년 6월 23일 경흥호 선원 4명

김진경(38세, 황해 옹진). 이일환(41세, 인천 중구). 오남문(30세, 서울). 이기준(28세, 황해 옹진)등

(66)1968년 6월 29일 경북호 선원 3명

차종석(28세, 전남 신안). 김태만(25세, 전남 광주). 이상은(22세, 경기 강화)등

(67)1968년 7월 2일 금융호 선원 9명

김용수(15세, 강원 고성). 윤두찬(40세, 전북 완주). 김남호(19세, 강원 양양). 함태천(29세, 강원 고성). 윤능산(18세, 북제주). 고종환(17세, 북제주). 김명회. 주영삼(17세, 강원 속초). 이은권(42세, 경남 울산). 김명회(13세, 경기 가평)등

(68)1968년 7월 2일 신양호 선원 5명

황두호(19세, 전북 남원). 장면(14세, 강원 고성). 곽도상(13세, 충북 영동). 김응권(19세, 경남 통영). 박성문(46세, 강원 고성)등

(69)1968년 7월 2일 창명호 선원 6명

선우석(52세, 서울 성동). 이춘만(31세, 서울 명동). 정강열(32세, 강원 고성). 조규명(13세, 강원 고성). 김철규(14세, 강원 고성). 이종범(47세, 강원 고성)등

(70)1968년 7월 4일 백구17호 선원 2명

이영철(28세, 전남 신안). 윤귀남(21세, 전남 진도)등

(71)1968년 7월 10일 태양호 선원 2명

조석원(15세, 전북 김제). 김진영(45세, 경남 울주) 

(72)1968년 7월 10일 만복호 선원 5명

장진구(13세,강원 고성). 최원수(17세, 경북 영일). 강붕운(64세, 강원 고성). 최승복(14세, 강원 고성). 박흥식(17세, 경북 영덕)등

(73)1968년 7월 10일 가덕호 선원 4명

전석구(45세,강원 인제). 이해준(35세, 충북 부여). 박종업(55세, 강원 고성). 김상윤(36세,충북 보은)등

(74)1968년 7월 12일 덕성호 선원 3명

김남국(20세, 전남 진도). 이양진(23세, 전남 신안). 김춘식(26세, 전남 신안). 여인억(47세, 인천 중구)등

(75)1968년 8월 6일 대복 1호 선원 3명

김재욱(47세, 강원 고성). 황명삼(25세, 경북 울릉). 한택선(35세, 강원 고성)등

(76)1968년 8월 7일 덕수2호 선원 6명

장을선(50세,충북 청주). 정한수(38세, 경남 진양). 김광수(25세, 경남 남해). 김명환(25세, 경남 김해). 김인철(17세, 경남 충무). 엄기만(13세, 강원 속초)등

(77)1968년 10월 30일 용명호 선원 1명   함기남(21세, 강원 고성)

(78)1968년10월 30일 해진호 선원 1명    김종우(27세, 경북 월성)

(79)1968년 10월 30일 영창호 선원 3명

임재동(24세, 경남 거제). 진기봉(29세, 강원 강릉). 김이득(22세, 경북 영일)등

(80)1968년 10월 30일 어재호 선원 1명  전만수(강원 고성)

(81)1968년 11월 7일 양진호 선원 2명

이영기(22세, 강원 명주). 고철순(29세, 강원 명주)등

(82)1968년 11월 7일 동일호 선원 1명   이태운(25세, 경북 영덕)

(83)1968년 11월 7일 해승호 선원 1명   김동주(22세, 강원 명주)

(84)1968년 11월 7일 준호 선원 1명      문원표(46세, 강원 명주)

(85)1968년 11월 7일 원일호 선원 1명   이기석(26세, 강원 명주)

(86)1968년 11월 8일 영덕호 선원 1명   안수선(21세, 경북 영덕)

(87)1968년 11월 8일 수진호 선원 2명

정연배(42세, 경남 진주). 전도민(17세, 강원 양양)등

(88)1968년 11월 8일 풍성호 선원 1명    김종순(42세, 강원 고성)

(89)1969년 5월 1일 신흥2호 선원 1명    한종남(20세, 전남 진도)

(90)1969년 5월 5일 홍덕호 선원 1명     이광원(18세, 전남 신안)

(91)1969년 6월 10일 순호 선원 3명

임판길(31세, 전북 옥구). 이동우(27세, 충남 홍성). 정홍해(29세, 충남 보령)등

(92)1969년 6월 10일 신성호 선원 4명

이덕표(37세,충남 서천). 최두수(35세, 경남 남해). 정오석(31세, 전북 옥구). 천문석(39세, 전북 부안)등

(93)1970년 4월 29일 봉산 21호 선원 5명

엄승영(26세,경남 울주). 김태랑(27세, 전남 완도). 강병일(21세, 충남 당진). 최종률(19세, 전남 강진). 정영철(16세, 전남 진도)등

(94)1970년 4월 29일 봉산 22호 선원 2명

박휘만(23세, 경북 포항). 홍석균(31세, 충남 태안).이재근(2000년 남한 귀환)등

(95)1970년 6월 22일 금강산호 선원 4명

권혁근(33세, 강원 속초). 오관수(19세, 광주 광산). 김홍동(15세, 강원 정선). 이순봉(19세, 경북 울진)등   

(96)1970년 6월 30일 남일7호 선원 1명  김일영(36세, 경남 마산)

(97)1970년 7월 8일 만복 1호  선원 1명 사명남(33세, 황해 옹진)

(98)1970년 7월 8일 만복 2호 선원 1명  최상일(36세, 황해 옹진)

(99)1970년 7월 8일 무진호 선원 3명

민경신(33세, 황해 옹진). 변호신(33세, 황해 옹진). 장춘빈(47세, 황해 옹진)등

(100)1971년 1월 6일 휘영 37호 선원 12명

박천향(43세, 경남 남해). 정세률(49세, 경남 거제). 박정구(35세, 전북 군산). 김인천(22세, 황해 옹진). 황영식(51세, 경남 거제). 김상대(29세, 경남 거제).박동순(39세,경남 남해). 송옥천(30세,경남 남해).정목사리(29세, 경남 남해).김창덕(20세, 경남 거제). 정완상(20세, 경남 거제). 박길윤(24세, 경남 남해)등

(101)1971년 5월 14일 창동호 선원 1명 김재수(27세,강원 양양)

(102)1971년 12월 25일 해행1호 선원 3명

김봉식(32세,경남 통영). 강흥기(39세,전남 여천). 황영천(26세,경기 가평)등

(103)1972년 1월 10일 동진호 선원 1명  김정옥(27세,전남 여천)

(104)1972년 2월 4일 안영 35호 선원 26명

김계흥(58세,전남 완도).이평일(44세,전남 여천). 위춘환(31세,전남 완도). 김철주(40세,경남 남해). 김소웅(29세,부산 영도). 이상록(20세,경북 영풍). 정봉갑(33세,경남 남해). 정동배(19세,서울 종로). 박달모(23세,경남 남해). 전승칠(23세,부산 서대신). 박장현(21세,전남 여천). 신태용(28세,전남 보성). 최부영(20세,경남 남해). 김달영(36세,전남 완도). 이흥섭(32세,경남 남해). 박복만(41세,경남 통영). 공순경(42세,경남 남해). 김임권(31세,경남 남해). 김일봉(22세,경남 남해). 김석만(26세,전남 보성). 동병순(19세,경남 남해). 김동식(37세,경북 칠곡). 배현효(30세,경남 남해).김휘남(24세,전남 완도).박상국(27세,경남 통영). 김두선(34세,경남 남해)등

(105)1972년 5월 3일 금해 11호 선원 1명 강여진(26세, 황해 옹진) 

(106)1972년 5월 12일 해영 2호 선원 1명 김순식(16세, 경남 김해)

(107)1972년 6월 9일 유풍호 선원 9명

배민호(49세,경남 진해). 김길정(31세,강원 명주). 이수석(31세,강원 속초). 방승도(37세,경남 창원). 남무수(32세,강원 평창). 남정렬(39세,강원 속초). 최성현(44세,경북 경주). 임창규(19세,강원 명주). 이원재(33세,전남 해남)등

(108)1972년 8월 14일 금성3호 선원 2명

송래규(21세,경남 남해). 김영식(19세,강원 고성)등

(109)1972년 8월 21일 일진6호 선원 2명

김대봉(35세,경북 영일). 이석용(31세,경북 영일)등

(110)1972년 12월 28일 오대양 61호 선원 16명

박두남(38세, 경남 거제). 박영석(34세, 경남 거제). 박용갑(32세, 경남 남해). 이공희(20세, 서울 영등포). 김종원(47세, 경남 거제). 이재명(34세, 경남 거제). 박영종(22세, 경남 거제). 최영근(49세 ,경남 장승포). 김의준(25세,경남 거제). 김일만(17세, 경남 거제). 박양수(14세, 경남 거제). 김용철(45세 경기 수원). 김천구(39세, 경남 거제). 김옥률(17세, 경남 거제). 김태준(17세, 경남 거제). 서석기(32세, 경남 거제)등

(111)1972년 12월 28일 오대양 62호 선원 8명

유경춘(45세, 경남 거제). 서영구(38세 부산 영도). 강소동(29세, 경남 거제). 정형래(20세, 경남 거제). 박두현(35세, 경남 거제). 정도평(26세, 경남 거제). 정건목(26세, 경남 남해).안수영(37세, 전북 전주)등

(112)1973년 7월 27일 신진1호 선원 6명

나기용(53세, 황해 옹진). 조순래(22세, 황해 옹진). 조인우(18세, 황해 옹진). 김영희(47세, 미상). 김순남(25세, 황해 옹진). 서득수(38세, 경북 상주)등

(113)1974년 2월 15일 수원 32호 선원 14명

김생림(50세,전남 진도). 송민경(54세, 경남 남해). 김근식(20세, 전남 진도). 김용기(35세, 전남 진도). 김용길(19세, 전남 완도). 김월근(27세, 전남 광주).김종관(24세, 전남 해남). 박경원(32세, 전남 진도). 안병진(29세, 경북 성주). 유용석(23세, 전북 완주). 이대홍(21세, 경남 남해). 이성룡(29세, 전남 영암). 이천석(29세, 경북 영덕). 정유석(31세, 전남 고흥)등

(114)1974년 2월 15일 수언33호 선원 14명

박종주(45세, 인천 남구). 임태환(45세, 부산 영도). 김재봉(22세, 전남 진도). 김중식(27세,전남 진도). 김현남(25세,전남 진도). 박남주(36세, 전남 진도).백홍선(28세, 전남 장흥). 장영환(27세, 경기 김포). 장종윤(35세, 전남 진도). 최복렬(33세, 전남 진도). 최영철(19세, 충남 청양). 고광희(35세, 인천 북성). 기노석(19세, 전남 무안). 김용건(27세, 경북 군위등

(115)1975년 8월 8일 천왕호 선원 30명

김두익(45세, 강원 원주). 최욱일(35세, 강원 강릉). 박상원(37세, 강원 강릉). 이해운(20세, 강원 당릉). 우재학(37세, 강원 강릉). 박정출(38세, 강원 강릉). 우재선(34세, 강원 강릉). 최종덕(61세, 강원 강릉). 고명섭(21세, 강원 강릉). 김구영(46세, 강원 강릉). 박시동(32세, 강원 강릉). 박해영(51세, 경남 충무). 임창웅(27세, 강원 강릉). 김찬우(37세, 강원 강릉). 이구석(50세, 경북 영덕). 윤정숙(33세, 충남 서천군). 민기식(64세, 강원 동해). 이상운(31세, 강원 강릉). 이기하(51세, 강원 강릉). 박종선(57세 강원 원주). 고남수(28세, 강원 원주). 권종덕(25세, 경남 의령). 윤종수(33세, 충남 서천군).이복우(24세, 경북 용천). 전극표(53세, 경북 울진). 권용만(40세, 대구 수성구). 유지용(57세, 전북 순창). 허용호(26세, 전북 김제). 허정수(22세, 전북 김제). 이한석(27세, 서울 성북). 황규오(37세, 경기 안성)등

(116)1977년 5월 10일 통영호 선원 1명

최장근(36세, 경남 충무)

(117)1980년 1월 26일 해왕7호 선원 1명

김환용(43세, 전남 완도)

(118)1987년 동진 27호 선원 12명

김순근(45세, 전남 여수). 김상섭(36세, 전남 고흥). 강희근(36세, 경기 강화). 추영수(56세, 인천 동구). 진영오(27세, 경남 합천). 노성호(26세,충북 청원). 박광현(38세, 경남 함양). 양용식(28세, 전남 담양). 임국재(33세, 경북 안동). 김영현(23세, 부산 진구). 정일남(31세,전남 고흥). 최종석(41세 부산 사하구)등

 

  

B.1969년 12월 11일 대한항공 여객기(YS-11) 피랍 12명 명단

기장 유병하,부기장 최석만, 여직원 승무원 성경희. 정경숙등 4명의 대한항공기 직원과 승객 47명 전체 인원 51명이 탄 대한항공 여객기(YS-11기)가 1969년 12월 11일 낮 12시 25분 강릉을 떠나 서울로 향하던 중 대관령 상공에서 승객으로 가장 맨 앞좌석에 앉아있던 북한 고정간첩 조창희(당시 나이 42세, 경기 용인)가 기장실로 들어가 권총으로 기장 유병하씨등을 협박에 의해 납치돼 이날 오후 1시 18분 원산 근처 선덕 비행기장에 착륙했다

납치사건 다음날 북한 김일성정부는 유병하 기장과 최석만 부기장등 두 조종사의 기자회견을 통해 <두 조종사에 의한 자진 입북>이라고 공식 발표했다 북한 김일정부는 사건 발생 65일만이 1970년 2월 14일 납북 민간인 중 39명(남자 32명, 여자 7명)만을 판문점을 통해 돌려보냈고 기장 유�하. 부기장 최석만. 여승무원 성경희. 정경숙등 그리고 승객 황원. 채헌덕. 김봉주. 장기영. 임철수. 이동기. 최정웅. 조창희(고정간첩)등 12명은 북에 남았다

  

유병하(38세, 서울 용산. 조종사). 최석만(37세, 서울 성북. 부조종사). 성경희(23세, 서울 성북. 스튜어디스). 장영숙(24세, 서울 영등포구. 스튜어디스). 김봉주(27세, 강원 강릉. 기자). 이동기(47세, 경남 밀양. 합동인쇄소). 임철수(49세, 강원 양구. 회사원). 장기영(40세, 경기 의정부. 요식업). 채헌덕(37세, 강원 강릉. 병원장). 조창희(42세, 경기 평택-고정간첩). 최정웅(28세, 강원 원주. 한국 슬레이트). 황원(32세, 강원 강릉. 아나운서)

 

C.1970년 6월 5일 군인(1-2정) 피랍 20명 명단

1970년 6월 5일 북한 함정은 우리 영토인 연평도(延坪島) 부근 공해상에서 우리 함정을 기습공격하여 납치해 갔다 소위 해군방송선피랍사건이다

방송선이라고 보도됐지만 어선단을 보호하는 임무를 띠고 있는 어엿한 현역 해군 함정 "120톤급 포함(砲艦)"이었는데 15분간 교전을 한 후 남한 해군 승무원 중 대부분이 사상된 채 납치 당했다 

 

권덕찬(23세, 전남 광주). 김기강(28세, 강원 원주). 김태종(23세, 경기 평택). 도종무(23세, 경북청도). 맹길수(25세, 전남 해남). 문석영(24세, 제주도 제주). 박재수(24세, 경남 초동). 서금성(22세, 인천 동구). 신영훈(25세, 서울 중구 충무로). 이덕주(30세, 경남 진양).이재영(23세, 전북정읍). 임성우(37세, 경북 의성). 전해렬(21세, 경북 청도). 정광모(23세, 서울 중구). 정수일(41세, 서울 중구). 정원석(24세, 부산 서구). 조진오(24세, 부산 해운대). 조태봉(36세, 경기 연백). 함영주(24세, 서울 중구). 최웅호(26세, 인천 중구)등

http://reunion.unikorea.go.kr/dataroom5.asp?stage=list&sql_table_name=T_kidnap_5

 

D.학생 피랍 6명 명단  

(1)1977년 8월 12일 전라남도 신안군 흑산면 홍도리에 속한 섬 홍도(紅島) 2명 피랍 

이민교(18세, 인천). 최승민(16세, 경기 평택)등

(2)1978년 8월 5일 전라북도 군산시 옥도면 선유도리에 속한 섬 선유도(仙遊島) 1명 피랍

김영남(17세, 전북 군산시)

(3)1978년 8월 10일 전라남도 신안군 흑산면 홍도리에 속한 섬 홍도(紅島) 2명 피랍

이명우(17세, 충남 천안시). 홍진표(17세, 경기도 안성군)등

(4)1987년 7월 20일(호주를 여행하다 납치된 미국 MIT대학원 학생)

이재환(25세, 경남 마산)

 

E.종교인 피랍 2명 명단

안승운(1995년 7월 24일, 50세. 경북 안동시). 김동식(2000년 1월 16일, 53세. 경남 진해시)등

 

F.교사 피랍 1명 명단(노르웨이에서 납치된 한국인 교사)

고상문(1978년 4월 13일 노르웨이, 30세. 서울 성동)

 

G.해경(863함) 피랍 1명 명단

신명선(1974년 6월 28일, 21세. 강원 횡성)

 

H.가족 피랍 7명 명단

(1)1971년 4월 5일 독일(유성근. 정순섭 가족)

유성근(38세, 공무원. 충남 연기). 정순섭(36세, 부인. 충남 연기). 유경희(7세, 자녀. 충남 연기).유진희(1세, 자녀. 충남 연기)등

(2)1985년 12월 독일(신숙자 가족)

신숙자(43세, 경북 의성군). 오혜원(21세, 경북 의성군). 오규원(18세, 경북 의성군)등 

 

I.상업 (중국)

장세철(1999년 9월 17일 중국, 51세. 전남 순천시) 

 

2.미국 하원, 북한정부의 한국인과 일본인 납치 억류 규탄 결의안 내용

미국 국회 하원 국제관계위원회가 2005년 6월 30일 북한의 한국인과 일본인 납치, 억류행위를 규탄하는 결의안을 통과 시켰습니다

헨리 하이드 국제 관계 위원장이 제출한 북한의 납치 억류행위 규탄 결의안은 북한의 납치와 지속적인 억류를 테러행위이자 중대한 인권유린 행위로 규탄한다는 강경한 어조로 시작되고 있습니다

http://www.voanews.com/korean/2005-07-01-voa11.cfm

A.결의안 내용

북한정권은 납치 행위를 즉각 중단하고 북한에 생존해 있는 모든 납치희생자들과 전쟁 포로들을 석방하며 다른 모든 피랍자들에 대한 검증 가능하고 전면적인 해명을 제공하라고 촉구합니다

또한 북한의 핵 문제 해결의 중요성을 인정하고 미국정부 관리들은 앞으로 북한정부와 벌이게 될 모든 협상에서 납치사건을 비롯해 다른 중대한 인권 우려 사항을 제기하지 않아서는 안된다고 봅니다

북한이 국가가 지원하는 납치행위를 포기하고 모든 납치 사건을 완전히 해명하기 전에 북한을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제외해서는 안된다고 촉구했습니다

중국 정부는 한국국군 포로 한만택씨의 강제북송을 막지 않고 중국 영토내에서 자유롭게 활동하고 있는 북한 공작원들을 규제하는 주권행사를 하지 않았다고 경고했습니다

   

B.한국 결의안 납치 사례

-한국 남부 지방에 있는 총 주민 자 210명의 거제도는 지난 1971년과 72년에 3척의 선박이 북한에 나포되면서 210명의 주민들이 14명의 아들과 남편, 아버지를 잃었다면서 북한의 나포, 납치행위로 한국 어촌이 피폐되고 있다고 기술했습니다(오대양 어선 납북)

강원 강릉, 전남 고흥, 전남 진도. 해남등지의 어부들이 집단적으로 피랍 되었습니다

-한국 통일부 자료를 근거하여 어부와 선원, 해군.군인, 항공기 승객, 학생. 교사. 목사들을 비롯해서 총 486명의 피랍자 한국인들이 여전히 북한에 생존해 있다고 밝혔습니다

 

C. 일본인 결의안 납치 사례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2002년 9월 17일에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에게 1970년대와 1980년대에 일본인 13명을 납치한 사실을 시인하고 재발 방지를 다짐했음에도 불구하고 가장 최근에까지 납치행위를 계속하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결의안은 일본인 타다키 하라씨의 사례를 구체적으로 들면서 피랍자들이 간첩으로 활용하거나 북한 공작원들의 언어와 억양, 문화를 훈련시키고 있다고 밝히고 타구치 아예코씨는 지난 1987년 115명이 사망한 대한항공 858편 폭파범 김현희씨의 일본어 강사로 이용됐다고 기술했습니다

또한 북한이 납치 행위를 계속함으로써 국젝사회를 기만하고 일본인 피랍자들에 관한 허위정보를 제공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그 예로 1978년 8월 12일 납치된 일본인들 가운데 수영을 싫어하는 이치카와 수이치씨가 바다에서 익사했으며 건강했던 마수모토 루미코씨는 심장 발작으로 사망했다는 신뢰할수 없는 해명을 제공했다고 기술하고 있습니다

또한 북한이 마츠키 카오루씨와 요코타 메구미 것이라고 주장하며 제공했던 유해들이 본인들의 것이 아닌 것으로 판명됐다고 지적했습니다

 

D.북한정부의 국제적 납치 사례-국제적으로 우려

호주를 여행하다 납치된 미국 MIT대학원 학생 이재환씨, 노르웨이에서 납치된 한국인 교사 고상문씨등 많은 피랍자들이 해외에서 납치됐다는 것은 국제적으로 중대한 우려 사안

한국인과 일본인 이외도 중국인이나 유럽, 중동인들도 납치했다는 의혹 제기(중국인들이 대량으로 북한정부에 피랍되어 해외정보조사부나 대외연락부등으로 활동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E. 한국 국군 포로 문제

지난 2005년 2월의 한국 국회 청문에 따르면 한국 국방부는 542명의 한국군이 여전히 북한에 생존해 있는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북한이 6.25전쟁에 참전했던 한국 군인들을 50년이 넘도록 계속 억류하고 있다면서 이는 1953년 7월 27일 서명된 6.25전쟁 정전 협정 3항에 대한 분명한 위반행위하고 지적했습니다

 

*한국전쟁 납북사건 자료원, 최초의 6.25 전쟁 납북자 실태분석(미국의 소리2006년 8월 14일)

VOA : 6.25 전쟁 중에 납북된 사람 9만 6천 13명. 그러니까 이번 연구가 남한 정부의 자료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는 것이지요?

서울: 그렇습니다. (사) 6.25전쟁납북인사가족협의회 산하에 한국전쟁납북사건자료원- 한국전쟁 중 납북된 사람들에 대한 사료를 발굴하고 보관하는 별도의 기관-이 있는데요. 이 기관에서 국회도서관에서 발굴한 전쟁 당시 한국정부가 만든 자료들을 바탕으로 연구한 결과가 나온 것입니다. 강릉대학교 김명호 교수는 납북자 단체의 지속적인 구명운동에도 불구하고 납북되었다는 객관적 자료가 불충분하다는 이유를 들어 미온적인 태도를 보인다는 보도를 접하고 객관적인 바탕자료를 제시해 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 연구를 주도하게 되었다고 하는데요. 이번 연구는 그동안 가족의 납북사실을 심정적으로 주장할 수 밖에 없었던 625 전쟁 납북자 가족들에게 큰 힘이 되었다고 합니다. 615 전쟁 납북인사가족협의회 이미일 이사장입니다.

" (이미일, 625 전쟁 납북인사 가족 협의회)그동안에 구체적인 결과 논문. 이런 것이 없이 의도적으로 계획적으로 잡아갔다 이렇게 해 왔는데 그것이 논문자료로... 데이터로 나오니까 훨씬 더 설득력이 있지요."

 VOA: 그러니까 납북당시 정황을 통계화한 것이 ‘6.25전쟁 납북자 실태의 실증적 분석에 관한 연구’ 에 담긴 것이군요?

서울: 연구대상이 된 납북자 9만 6천 13명. 1950년 당시 남한의 공보처 통계국이 작성한 ‘서울특별시 피해자 명부’와 역시 1952년 남한 정부가 작성한 ‘6·25사변 피랍치자 명부’, 1954년 내무부 치안국이 작성한 ‘피랍치자 명부’ 등 5개의 명단을 대조해서 명단을 추려냈는데요. 이 같은 자료 역시 통일부 관계자로부터 자료 출처인 정부 문서의 신뢰성을 인정해 이 연구의 객관성에 대한 신뢰는 높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자료의 방대함만큼 만만치 않은 작업이었다고 합니다. 한국정부가 직접 작성한 자료를 모아 중복자를 배제하고 데이터베이스화하는데도40명의 통계관련 학생이 한달반정도가 걸려서야 만들어 질 정도로 어려운 작업이었다고 합니다.

"(김명호, 강릉대학교 경영학과 교수) 그 명부는 한문으로 되어 있습니다. 1952년에 작성되어 있디 때문에요. 주소, 직업, 직급... 그것을 다 우리 한글로 바꿔서 엑셀(컴퓨터D/B프로그램)로 옮기는 작업이 만만치 않았습니다."

 VOA: 전쟁 과정에서 납북된 남한 사람들.. 전쟁 일어난 뒤 3개월 동안 집중적으로 납북되었다는 내용이 주목되는데요. 대부분이 집이나 집 근처에서 납북된 것으로 나타났다구요?

서울: 그렇습니다. 북한의 조직적인. 계획적인 납치 행위임을 드러나는 결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연구에 따르면 전체 납북자 9만6천13명의 88.2%인 8만4천659명이 전쟁 직후인 1950년 7~9월에 납치됐고, 이들의 80% 가까이가 자신의 집(72.1%)이나 집 근처(8.2%)에서 납치된 것으로 나타나 조직적인 납치 행위로 분석하고 있습니다.

"(김명호, 강릉대학교 경영학과 교수) 북한군들이 납북자들의 개인별 인적 사항을 사전에 직접 알고 찾아와서 납치한 경우가 대부분이었습니다. 납치장소가 납북자들의 자택이 72.1%, 자택 근처가 82%, 그래서 약 80.3%가 납북자들이 자택이나 자택근처에서 납북되었기 때문에 이것은 북한의 의도적인 납치에 의해서 강제로 납북되었음을 짐작 할 수 있다고 하겠습니다."

VOA: 그러니까 누구를 납치할 것이라는 대상을 정하고 이루어진 것이다~ 라는 이야기가 되는군요?

서울: 그렇습니다. 이러한 내용은 납치된 사람들의 직업적 분류를 통해서도 알 수 가 있는데요. 납북자 가운데는 젊은 농촌지도자를 중심으로 한 농업 종사자가 61%인 5만8천373명으로 가장 많았구요. 인텔리에 속하는 공무원과 기술자, 교수와 교사 등의 순으로 나타났습니다.

"(김명호, 강릉대학교 경영학과 교수) 국회의원이 63명, 판.검사 90명, 변호사 100명, 경찰 1613명, 행정공무원 2919명 ,군인 및 군속이 879명, 교수 및 교원이 863명, 의사 및 약사가 526명, 소위 ‘인텔리’라고 할 수 있는 그런 직업군들이 많이 납치가 되었습니다. "

VOA: 납북자들의 연령대 분류를 보면 20, 30대 전문직 종사자와 기술자가 집중되어 있는 데요. 특히 서울과 경기 등 수도권에서 집중적인 납치가 이루어진 것으로 나타났네요.

서울: 그렇습니다. 전체 납북자 가운데 서울에서 납치된 인사는 4명 중 1명꼴인 2만2348명(23.3%)이나 됩니다. 통계청이 발표한 1949년 인구를 감안하면 서울의 납북자는 전체 인구의 1.5%였구요. 상대적으로 전라도(0.2%)와 경상도(0.15%)를 크게 차이가 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김명호 교수는 . “전쟁 초기 한강 다리가 끊어진 이유도 있지만 정치 사회 문화 중심지인 서울 한강 이북 지역에 남한사회의 인텔리들이 많이 살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납북자들은 10대부터 고령까지 또 여성과 남성 아이들을 가리지 않았는데요. 여성의 경우 납북당시 어린 영아들을 업고 납치되는 상황이었던 것으로 조사되었습니다.

"(김명호, 강릉대학교 경영학과 교수)연령층은 10대가 22.6%로 가장 많았구요. 20대가 53.6%, 30대가 15.4 %입니다. 그리고 10살 이하의 영아 및 어린아이 그 인원이 348명 특이 영아들은 어머니의 등에 업혀서 어머니와 함께 이북으로 납북된 것으로 판단되구요. 60대 이상의 고령자로 742명이 납북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VOA: 북한이 일정한 시기에 대대적으로 남한의 인텔리 계층을 납치한 이유도 분석하고 있지요?

서울: 그렇습니다. 북한 사회를 재건하기 위한 ‘활용가능성’이 높은 사람들을 선택했던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625 전쟁 납북자가족협의회 이미일 이사장은 당시 북한은 개인 재산을 전부 몰수한 데다 지주계급과 종교계 인사를 비롯해 전문직 인텔리 계층의 상당수를 숙청했기 때문에 북한에 거주하던 지식인 상당수가 남한으로 피신했고 북한 사회에는 인텔리 계층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다면서 당시 북한 입장에선 대학을 세우고 법을 만들어야 하는데 교수를 할 사람도 법을 전공한 사람도 찾기가 쉽지 않아 전쟁 뒤 북한 사회를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남한의 인텔리가 반드시 필요했다고 강조했습니다. 625 전쟁 납북인사가족협의회관계자는 이번 연구 결과가 납북자에 대해 월북일 것이라는 주장을 하는 사회일각에 대한 인식에 변화를 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고 김명호 교수는 정부의 정책에도 변화가 있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 (김명호, 강릉대학교 경영학과 교수) 이제 남한 정부는 과거사 청산 작업의 일환으로 그동안 실시되었던 납북자들의 명예를 복원시키고 유가족들의 바람인 납북자들의 생사확인 앞장서서 밝혀줘야 할 것입니다. 또한 정부는 그동안 미진했던 납북자 문제를 보다 적극적이고 성의있는 태도로 접근해야 할 것입니다. "

서울: 한편 강릉대 김명호 교수는 1840명의 여성의 납치에 대한 연구분석은 보완되어야 할 부분이라고 지적하고 당시 여성 인력의 납북에 대한 정밀분석을 덧붙여 전체 6.25 전쟁당시 납북자들에 대한 자료를 완성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1969년 12월 11일날 고정간첩 조창희에 의하여 대한항공 여객기(YS-11) 납치 사건 때 납북됐던 북한 생존자들 "유병하. 최석만. 성경희. 정경숙등"

1.1969년 12월 11일날 고정간첩 조창희에 의하여 납북된 대한항공 여객기(YS-11)납치 사건

기장 유병하, 부기장 최석만, 여직원 성경희. 정경숙등 4명의 대한항공기 직원과 승객 47명 전체 인원 51명이 탄 대한항공 여객기(YS-11)가 1969년 12월 11일 낮 12시 25분 강릉을 떠나 서울로 향하던 중 대관령 상공에서 승객으로 가장 맨 앞좌석에 앉아있던 북한 고정간첩 조창희(당시 나이 42세)가 기장실로 들어가 권총으로 기장 유병하씨등을 협박에 의해 납치되돼 이날 오후 1시 18분 원산 근처 선덕 비행장에 착륙했다

납치사건 다응날 북한 김일성 정부는 유병하 기장과 최석만 부기장등 두 조종사의 기자회견을 통해 <두 조종사에 의한 자진 입북>이라고 공식 발표했다 북한 김일성정부는 사건 발생 65일만인 1970년 2월 14일 납북 민간인 중 39명(남자 32명. 여자 7명)만을 판문점을 통해 돌려보냈고 기장 유병하, 부기장 최석만, 여승무원 성경희. 정경숙등 그리고 승객 황원. 채헌덕.김봉주.장기영. 임철수. 이동기. 최정웅. 조창희(고정간첩)등 12명은 북에 남았다

2001년 2월 26일 제3차 이산가족 남측 방문단의 일원으로 방북한 이후덕(여, 당시 나이 77세 성경희의 어머니)씨는 26일 당시 대한항공 승무원으로 납북된 딸 성경희(여, 당시 나이 55세)씨를 만난 자리에서 항공기 기장이었던 유병하씨와 부기장 최석만씨가 현재 북한 공군에서 근무하고 있으며 부기장 최석만씨는 1남 1녀의 자녀를 두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또 성경희씨와 함께 납북된 여승무원 정경숙씨도 평양에서 성경희씨의 인근에 살면서 자매처럼 지내고 있다고 성경희씨가 전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당시 북한에서 돌아오지 않은 승객 7명의 생사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2.대한항공 여객기(YS-11) 납북사건 북한에 생존자들 자료
(1)1970년 2월 14일 남북 교환 당시 북한정부에 의하여 강제로 남아야 했던 사람들 명단
유병하(기장). 최석만(부기장). 성경희(여승무원). 정경숙(여승무원). 황원(승객). 채헌덕(승객). 김봉주(승객). 장기영(승객). 임철수(승객). 이동기(승객). 최정웅(승객). 조창희(승객-고정간첩)등 총 12명

(2)생존자 명단 자료
ㄱ.유병하(유병화)---납치 당시 대한항공 여객기 기장(조종사), 현(現) 북한공군 근무
(ㄱ)당시 38세. 서울용산. 조종사
(ㄴ)한국 기독교와 역사 "11호"를 내면서
당시 일행 중에 유병하 공군소령, 복현묵 공군소령이 참가했다
유병하 소령은 수년 후 KAL기로 옮겨 대한항공여객기 YS-11의 기장이 되어 1969년 12월 11일 강릉에서 서울로 돌아오던 중 무장괴한에 납북되어 생사가 궁금하다가 지난해 말 이산가족방문단에 끼여 평양을 찾아간 여승무원 어머니에 의해 생사 확인 되었다

ㄴ.최석만---납치 당시 대한항공 여객기 부기장(부조종사), 현(現) 북한공군 근무
당시 37세, 서울 성북, 부조종사
-북한에서 1남 1녀 자녀를 두고 있음

ㄷ.성경희
당시 23세 승무원, 서울 성북, 스튜어디스
-(서울)창덕여고 졸업
-이화여대 사회생활학과 졸업
-1968년 대한항공기 여승무원 입사
-1969년 12월 11일 고정간첩 조창희에 의하여 대한항공여객기(YS-11) 납치와 납북
성경희씨는 사건 당일 비번이었으나 창덕여고 동창생인 정경숙씨가 "강릉에 같이 가자"고 제의해 탑승했다가 돌아오지 못했다
-대남공작부 통일전선부 한국민족민주전선(통일혁명당 後身) 구구전선 "구국의 소리" 방송국 "신서연" 가명으로 방송요원으로 활동함
-1992년 8월 성경희씨는 평양방송에 출연해 "의거입북용사"라며 결혼해 슬하에 1남 1녀를 두고 있다 소개함
-3차 이산가족 교환 방문때 평양에서 어머니 이후덕씨와 상봉

ㄹ.장경숙
당시 24세 승무원, 서울 영등포구, 스튜어디스
-(서울) 창덕여고 졸업
-연세대 도서관학과 졸업
-1969년 대한항공사 입사
-1969년 12월 11일 고정간첩 조창희에 의하여 대한항공여객기(YS-11) 납치와 납북


(3)미확인 생존자 명단
ㄱ.김봉주 당시 27세 승객, 강원 강릉. 기자 출신
ㄴ.이동기 당시 47세 승객, 경남 밀양. 합동연쇄소
ㄷ.임철수 당시 49세 승객, 강원 양구. 회사원
ㄹ.장기영 당시 40세 승객, 경기 의정부. 요식업
ㅁ.채헌덕 당시 37세 승객, 강원 강릉. 병원장
ㅂ.조창희(조욱희) 당시 42세 승객, 경기 평택---당시 발표 때 고정간첩으로 함
ㅅ.최정웅 당시 28세 승객, 강원 원주. 한국슬레이트
ㅇ.황원 당시 32세 승객,강원 강릉. 아나운서 출신

*자료제공-----납북자 가족모임 http://www.comebackhome.co.kr/index.php

 

*1970년 6월 5일 남북간의 해상전과 남한 방송선 피랍 사건 그리고 당시 피랍 군인 20명 명단

1.남북간 해상전과 방송선 피랍사건
"1970년 6월 5일 연평도 근해에서 어로보호 임무 수행 중인 해군 방송선이 북한 해군의 고속포함의 기습 공격으로 20명 군인과 함께 피랍되었다"


1970년 6월 22일 국군묘지 현충문 폭발사건(북한에 의한 두번째의 박정희전대통령 암살기도 사건)이 일어나기 약 반달 전인 1970년 6월 5일 북한 함정은 우리 영토인 연평도(延坪島) 부근 공해상에서 우리 함정을 기습 공격하여 납치해 갔다 소위 [해군 방송선 피랍사건]이다
방송선이라고 보도됐지만 어선단을 보호하는 임무를 띠고 있는 어엿한 현역 해군함정 "120톤급 포함(砲艦)"이었는데 15분간 교전을 한 후 승무원 20명 중 대부분이 사상된 채 납치 당했다

당시의 해설을 보면 다음과 같다
[해군방송선은 120톤급으로 최대 시속은 12노트 정도, 40mm와 20mm 기관포 각 1문으로 무장하였으며 레이더도 갖고 있으나 매우 노후하여 기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북한 고속포함은 북한 해군의 연안경비용 함정으로 250톤급이다 최대 속력은 25노트, 무장은 75mm 포 1문과 기관포, 레이더을 갖고 있었다 북한 이런 함정을 당시 수십 척 보유하고 있었다]

즉 우리 함정의 속도는 12노트인데 북한에서 건조한 함정은 25노트로서 우리 함정보다 2배나 빨랐다는 이야기이다 우리 함정이 당할 수 밖에 없는 처지였다 그 당시 우리 해군력은 북한에 뒤쳐져 있었던 것이다

서해교전은 우리 군과 정보단위가 북한군과 북한대남공작부 통일전선부 한국민족민주전선 동향을 정확히 파악하여 아군 피랍이나 교전으로 아군 사망자가 많이 발생하지 않았다

2.남북간 해상전과 방송선 피랍 군인(무기:1-2정) 20명 명단
권덕찬(23세, 전남 광주). 김기강(28세, 강원 원주). 김태종(23세, 경기 평택). 도종무(23세, 경북 청도). 맹길수(25세, 전남 해남). 문석영(24세, 제주도 제주). 박재수(24세, 경남 초동). 서금성(22세, 인천 동구). 신영훈(25세, 서울 중구 충무로). 이덕주(30세, 경남 진양). 이재영(23세, 전북 정읍). 임성우(37세, 경북 의성). 전해렬(21세, 경북 청도). 정광모(23세, 서울 중구). 정수일(41세, 서울 중구). 정원석(24세, 부산 서구). 조진오(24세, 부산 해운대). 조태봉(36세, 경기 연백). 함영주(24세, 서울 중구). 최웅호(26세, 인천 중구)등

http://reunion.unikorea.go.kr/dataroom5.asp?stage=list&sql_table_name=T_kidnap_5



1970년 6월 5일 남북간 해상전과 방송선 피랍 당시 군인 20명이 아직도 북한에 생존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일반적 의견이다
정부와 미국정부 그리고 유엔의 노력으로 이 분들의 빠른 시일내 생사확인을 해야 하며 북한에 생존이 확인될때는 가족들의 상봉과 인도적으로 남한으로 귀환을 추진해야 한다고 본다

*북한정부 간첩에 의하여 피랍된 남한 학생 6명 명단과 주요 자료

1.북한정부 간첩에 의하여 피랍된 남한 학생 6명 명단
(1)1977년 8월 전라남도 신안군 흑산면 홍도리에 속한 섬 홍도(紅島) 2명 피랍
이민교(18세, 인천). 최승민(16세, 경기 평택)등
(2)1978년 8월 5일 전라북도 군산시 옥도면 선유도리에 속한 섬 선유도(仙遊島) 1명 피랍
김영남(17세, 전북 군산시)
(3)1978년 8월 10일 전라남도 신안군 흑산면 홍도리에 속한 섬 홍도(紅島) 2명 피랍
이명우(17세, 충남 천안시). 홍진표(17세, 경기도 안성시)등
(4)1987년 7월 20일 호주를 여행하다가 납치된 미국 MIT대학원 학생
이재환(25세, 경남 마산)

http://reunion.unikorea.go.kr/dataroom5.asp?stage=list&sql_table_name=T_kidnap_5


2.북한정부 간첩에 의하여 피랍된 남한 학생 주요 자료
(1)1970년대말 실종된 것으로 알았던 김영남. 이명우. 홍진표. 최승민. 이민교등의 고교생이 최근 납북 억류자로 확인됨으로써 충격을 주었다
납북된 사람들 중에는 <김일성정치군사대학>등에 배치되어 대남공작원을 훈련시키는 교원으로 활동하는 사람도 상당수 있는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2)북한의 대남공작원들에 의해 국내에 거주하며 생업 또는 학업에 종사하고 있는 이들이 납치되는 경우가 있다 대표적인 예로 1977년 8월 전남 홍도에서 납치된 이민교.최승민등 그리고 1978년 8월 10일 역시 홍도에서 납치된 이명우. 홍진표등, 1978년 8월 5일 군산 선유도에서 납치된 김영남등의 고교생 납치 사례를 꼽을 수 있다
북한은 납북자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고수해 왔으며 명백히 확인된 일부 납북자에 대해서는 "자진 월북한 것이다"라는 입장을 보여왔다
북한은 그 동안 납북자들을 대남선전도구 대남공작원 양성교원, 대남사업분야 분석임무, 주민들에 대한 사상교육도구등으로 활용해왔다

3.홍도와 선유도
(1)홍도(紅島)
전남 신안군 흑산면 홍도리에 속한 섬 
http://www.hongdo.co.kr
(2)선유도(仙遊島)
전북 군산시 옥도면 선유도리에 속한 섬 
http://www.seonyudo.co.kr

-북한에 생존해 있는 납북 고교생 5명이외에도 1968년 수산고등학교 김인철학생 납북자도 북한생존 확인

북한, 68년에도 남자 고교생 한명 납북(자유아시아방송 자료)

지난 1977년부터 78년 사이 납북돼 북한에 생존해 있는 것으로 알려진 5명의 고교생 외에도 1968년 동해안에서 고등학교학생 한명이 납북되어 현재 북한에 살고 있다고 납북자가족모임의 최성용대표가 자유아시아방송과 회견에서 밝혔습니다

지난 1968년에 수산고등학교 학생이 납북되어 지금도 북한에 생존해 있다고 하는데 어떻게 납북이 됐습니까?

최성용: 정부에서 발표한 납북자가 489명인데 김인철씨가 명단에 포함이 돼 있습니다. 김인철씨는 어민이 아니고 강원도 주문진수산고등학교 3학년 재학 중 여름방학 때 어촌봉사의 일원으로 바다에 나가 일을 돕기 위해 오징어 배를 타고 항해 중 납치된 고등학생입니다.

당시 북한에 납북된 뒤 송환되지 않은 사람은 몇 명이나 됐습니까?

최성용: 배가 끌려가서 선원 31명 가운데 25명은 귀환했고 김인철군하고 나머지 선원들 6명 북한에서 억류를 시켰지요. 당시 김인철씨는 학생이기 때문에 북한에서 달리 이용을 한 것 같습니다.

김인철씨는 북한에서 어떤 일을 하고 있습니까?

최성용: 제가 전해들은 그대로 전하기는 곤란하고 정확하게 이야기 할 수 있는 입장은 아니고... 북한에서 현재 생활에 열심히 살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북한 소식통이 온다고 해서 전부 정확한 것은 아니거든요.

지금까지 알려진 납북고교생들은 다 살아 있습니까?

최성용: 한 사람만 불투명한데 다 살아 있는 걸로 들었습니다.

납북 고교생들을 포함해서 납북자들을 정부차원에서는 어떻게 해결하기를 원합니까?

최성용: 이산가족 상봉에 포함시켜서 80여 가족이 확인을 했는데 확인 불가능이 51명입니다. 나머지는 사망이 있고 이번에 김영남씨처럼 13가족이 살아있다고 북한에서 알려왔기 때문에 (이런 식 보다는) 별도로 하자 납북자만 따로 하자! 또 남한에는 현재 납북자처럼 아픈 추억을 가진 국군포로가 있습니다.

이 사람들 하고는 같이 해도 좋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산가족 상봉으로 하지 말고 (그렇게 함으로서 확인 불가능이 나오고 그러지 않아요)따로 좀 하자 북한도 이제는 생사확인도 해주고 죽은 사람을 죽은 사람대로 정리를 하고 했으면 하는 게 저의 소망이지요.

김영남씨 가족들은 재상봉과 관련해서는 어떤 반응입니까?

최성용: 영남군이 8월중 가족들을 초대한 것 같습니다. 가족들은 어떤 방식으로든 가족들은 만나보고 싶어 하고 이번에 처음으로 이뤄진 것 같아서 가족을 대변하는 입장에서 그 가족은 그렇게 원하고. 간다하더라도 평양축제에 참여하는 것에는 반대를 했어요.

영남이가 불러서 자기 사는 것 보여주고 하는 것들은 좋지만 축제에 참여해 시켜 가지고 정치적인 행사하는 것은 금지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또 남한 고향에 와서 고향이 어떻게 변했는지 보고 북한에서 고위직에 있으니까? 잘 알겠지요. 고향방문도 하고 납북자문제가 더 알려지면서 이런 아픔도 있구나. 어차피 다 알고 있지 않습니까?

이런 식으로 풀었으면 하는 게 제 바램 인데 가족들이 원하면 정부 측에 요구를 해보겠고 북한측에는 제가 요구해봐야 되지는 않지만 그렇게 해서 만나면 풀어지고 또 만난사람들도 소식도 듣게끔 북한도 해 줘야지요.

 

*남한 납북자 가족모임 시민단체 "남한 특수요원 포함된 북한 내부 명단 입수" 공개

남한 시민단체 <납북자 가족모임>은 북한에 침투했던 남한의 특수공작원이 북한에 생존해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이 단체는 최근 북한내부로부터 입수한 명단에서 이 같은 사실을 확인했다고 밝혔습니다

납북자 가족모임의 최성용(53세:충남 서천) 회장은 "지난 1969년 개성방송국 폭파 임무를 받고 북한에 침투했던 남한 특수공작원 신형생씨가 북한에서 체포된 뒤 현재 신의주에 생존해 있는 것으로 확인했다"고 2005년 5월 31일 밝혔습니다

최성용 회장은 최근 북한 협조자를 통해 신의주시 당위원회에서 입수한 남조선 출신자 명단을 통해 신형생씨의 생존사실을 확인하게 됐다고 이 같이 밝혔습니다

<최성용: 제가 북한에서 관리하고 있는 남한 사람들 명단을 입수하려고 노력하는 중에 신의주 것만 입수를 했습니다>

또 최성용회장이 이날 공개한 명단에는 신형생씨 이외에도 납북된 남한 어부와 국군 포로 11명의 이름이 포함돼 있습니다 명단에 들어 있는 사람은 1969년 5월 복순호 어부로 납북된 임판길(67세)씨와 1972년 2월 납북된 안영36호 어부 배현효(63세)씨 그리고 1966년 1월 납치된 길용호의 선원 정이도씨등 납북 어부 4명과 그리고 이정욱(1927년생 전북 전주). 김홍각(1929년생 충북 영동). 장진구(1934년생 경북경주). 강덕수(1927년생 서울 영동포)씨등 국군포로 5명등입니다

최성용회장은 이 같은 명단을 현재 남한 관련 부처에 전달했으며 사실관계 파악을 하는 중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현재 그러나 남한 국방부는 북파 공작원 자료에서 신형생씨의 이름을 확인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자유아시아방송 자료)

-통일백서(2005년)에 따르면 북한에 생존해 있는 국군포로는 500여명으로 추정된다 지난해 말까지 북한을 탈출해 남한에 돌아온 국군포로는 48명이다

-북파 공작원 신형생(65세)
1.공작임무
1969년 개성 방송국 폭파 임무를 부여 받고 북한에 침투했던 남한측 특수요원
2.북한정부 귀순
개성방송국 폭파범으로 체포된 뒤 전향
3.본적과 거주지
(1)본적---강원도 정선군 여탑리 출생
(2)거주지---신의주
4.확인과정
(1)납북자가족모임 최성용 회장
-최근 북한내 협조자로부터 건네 받은 12명의 납북자. 국군포로 명단에 올라 있는 신형생(65세:강원도 정선군 여탑리 출생)씨가 개성방송국 폭파범으로 체포됐다가 전향, 현재 신의주에서 특별관리를 받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남한정부 국방부에 국군포로 명단을 확인한 결과 다른 사람들은 국군포로임을 확인됐지만 신형생씨는 군적이 없다는 통보를 받았다 북파공작원인지 정보부에서 보낸 요원이지 모르겠다
(2)한국군 관계자 말
북파공작원 존안자료를 확인한 결과 그런 이름을 찾지 못했다
(3)신형생씨의 출생지 기록된 강원도 정선읍 사무소측
호적부 및 제적부를 모두 확인한 결과 신형생씨와 같은 이름을 찾을 수 없었다

 

*월북자 유형과 인적 자료
1.월북자란
대한민국을 부정하거나 거부하고 조선민주인민공화국을 인정하여 북쪽으로 의거 월북한 자를 뜻한다
유엔입장에서 본다면 월북자는 조선민주인민공화국 주민으로 취급하며 정치적 망명자로 취급한다
그러나 한민족이 단일국가이며 남과 북이 하나됨 민족으로 대한민국 입장에서 본다면 월북자는 고정간첩이나 간첩에 준하는 범죄자로 취급한다(월북자를 체포할 때도 간첩생포와 비슷한 포상금을 지급하고 있다)
월북자는 남한 주민이 북한으로 자진 입북한 자를 �하며 납북자는 북한정부가 강제로 남한 주민을 입북시킨자를 뜻한다
월북자는 국제법상 정치범이나 사상범, 망명인사로 취급하지만 납북자는 납치에 의한 범죄행위이다

2.북한정부의 월북자 대우
(1)1992년 6월 30일 발표한 월북자에 대한 대우
북한은 지난 1992년 6월 30일 발표한 개별적 또는 집체적으로는 의거하여 오는 적(敵)군대 복무자들을 대우함에 관한 군사위원회 결정에 따라 월북자에 대한 처우를 정하고 있다
이 결정은 1953년 1월 노동당 군사위원회에서 10개항으로 처음 제정된 월북자 대우 규정과 1982년 10월 추가로 삽입한 상금부분을 보완한 것인데 노동당 군사위원회의 이름으로 발표된 것은 국군을 주요 월북 선동대상으로 잡았기 때문이다
이 군사위원회 결정에 따르면 월북자에게는 생활보전을 위해 생활보장금과 함께 주택등을 제공하고 있다.
군사기밀이나 전투기재등 가지고 월북했을때에는 별도의 표상금이 주어지고 군복무를 희망한다면 공로에 따라 승급시켜 조선인민군 해당 군종, 병종부대에 편입시킨다고 이 결정은 규정하고 있다.
이 결정은 또 월북자들의 희망에 따라 직업과 직장을 알선해 주며 본인이원할 경우에는 대학 및 외국 유학도 주선해 주도록 명시하고 있다

(2)월북자들의 주요 활동
ㄱ.반미투쟁과 남한정부 비난등 집회나 각종 방송국 활동
북한에서는 월북자를 의거 입북자로 부르고 있는데 최근 평양의 방송에 자주 등장하는 월북자는 10여명 정도이다
일본유학생 출신으로 1991년 8월 월북한 김용규씨와 전(前) 민주화운동 유가족 협회 감사등으로 활동 하면서 1998년 12월 월북한 윤성식씨등이 지난 5일과 6일 평양방송에 잇달아 출연, 신년공동사설 관철에 앞정 설 것을 다짐하는 한편 핵문제에 대한 미국의 정책을 강력하게 비난했다

ㄴ.한국민족민주전선 단체등에 가입하거나 활동을 하고 있다.
한국민족민주전선은 서울대표부와 평양대표부, 해외대표부를 두고 있다.

3.월북자들이 가입하는 단체
(1)조국평화통일위원회
ㄱ.오익제--1997년 8월 15일 월북한 후 조국평화통일위원회 부위원장
(ㄱ)남한정부때 주요 활동
천도교 교령. 국민회의 창달 발기인 및 고문 그리고 종교특위위원등
(ㄴ)천도교내 주체사상파 태양절(日新敎) 신앙자 중심의 친북조직
ㄴ.강태무--1949년 국군 소령으로 월북.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위원
ㄷ.월북자 대부분이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조국평화통일위원회가 한국민족민주전선 평양대표부로 알려져 있다.
(2)재북평화통일촉진협의회
ㄱ.월북자 모임
ㄴ.서기국장--강태무(49년 월북, 前 국군소령)
ㄷ.상무위원---최태규(6.25동란 당시 월북. 前 제헌의회 의원)
ㄹ.1998년 12월 월북한 윤성식 前 민주화운동 유가족 협의회 감사(4.19혁명연구소 대표)등도 활동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ㅁ.재북평화통일촉진협의회는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산하(하부) 조직으로 알려지고 있으며 한국민족민주전선 평양대표부로 활동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3)조국통일범민족연합(범민련)
ㄱ.안경호(안경수)
범민련 북측본부 의장(강원도 출신).조국평화통일위원회 부위원장
ㄴ.강태무
범민련 북측본부 부의장( 49년 국군소령으로 월북).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위원
ㄷ.여원구
범민련 북측본부 부의장.서울 출신으로 1946년 7월 월북. 여운형선생의 딸
ㄹ.유미명
범민련 북측본부 중앙위원. 서울출신으로 1986년 4월 미국에서 북한으로 월북
ㅁ.조국통일범민족연합(범민련)은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산하조직으로 알려져 있다 조국통일범민족연합(범민련)산하에는 조국통일범민족청년학생연합(범청학련)을 결성하고 있다.
ㅂ.밀입북 사건 개요
(ㄱ)1996년(제7차 범민족대회)---한총련산하 조국통일투쟁위원회 소속 대표 유새홍과 도종화등 밀입북과 판문점 대회 참여
(ㄴ)1998년(제8차 범민족대회)---한총련산하 조국통일투쟁위원회 소속 대표 김대원과 황선등 밀입북 참가

4.월북자 유형과 월북자 인적자료
월북자는 600명 안팎으로 군인이 60%를 차지하고 있다
북한 평양방송은 89년부터 98년까지 월북한 사람이 민간인과 군인등을 합쳐 93명이라고 밝혔다
95년 보안사령관 출신 강창성의원은 국방부 국감에서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월북 군인 수는 53년--69년 391명, 70년--79년 42명, 80년--89년 17명, 90년--95년 3명으로 총 453명으로 밝혔다
(1)월북자 유형
ㄱ.한국민족민주전선 그룹
한민전은 평양대표부와 서울대표부, 해외대표부를 두고 있다.
한민전은 주체사상파 모임 결사체이며 김일성 김정일주의자 모임 단체이다 한민전 조직원들 김일성 김정일 주체사상파로 대한민국을 부정하고 조선민주인민공화국을 인정하는 사람들로 남한정부를 버리고 북한정부로 대거 월북하는 경우가 자주 있었다.
(ㄱ)한국전쟁 전후 남로당 계열
(ㄴ)1970년대 전후 통일혁명당 계열
(ㄷ)1990년대 전후 반미청년회(민족민주혁명당) 계열 
http://ndfsk.dyndns.org
(한민전 사이트)
한민전은 평양대표부(재북평화통일촉진협의회)와 서울대표부(반미청년회), 해외대표부(각국 주체사상연구소)으로 구성되어 있다
ㄴ.북한 공작원에게 포섭되는 경우
돈이나 여자 그리고 마약등으로
ㄷ.남한정부 반정부 인사 중 평양정부로 귀순하는 경우
(ㄱ)오익제--천도교내 태양절(日新敎) 그룹
(ㄴ)최덕신 등
(2)월북자 인적 자료
ㄱ.핵무기 개발 과학자
(ㄱ)전남 담양 출신 서울대 공대학장 출신 이승기 화공학 박사
(ㄴ)경성대 연세대 교수 출신 한인석 교수
(ㄷ)춘천농과대 내폭형 플루토늄탄등의 개발에 기여한 경원하 박사
ㄴ.대학교수 출신
(ㄱ)88년 군산전문대학(현재 서해대학) 리우갑 교수
(ㄴ)83년 부산대 윤노빈 교수
ㄷ.고위인사
(ㄱ)86년 외무부장관 최덕신
(ㄴ)49년 국군소령 강태무
(ㄷ)한국전쟁 전후 제헌의회 의원 최태규
(ㄹ)80년 정보기관 국장급 1명
(ㅁ)김영삼정부때 대통령 비밀보좌관 월북 대대적 선전(미확인)
(ㅅ)국민회의 종교특위원장 오익제
ㄹ.군인 출신
(ㄱ)67년 7월 국군장교 출신 남부성
(ㄴ)81년 석정현 육군 1사단 중대장
(ㄷ)83년 9월 국군사병 출신 김영환
ㅁ.민가협 출신
민주화운동유가족협의회 감사 윤성식
ㅂ.기타---일본유학생이나 유럽등 학생
(ㄱ)89년 11월 정규진
(ㄴ)91년 8월 일본유학생 김용규
ㅅ.김대중정부 출범이후 월북하다가 북한정부에게 추방당한 경우
(ㄱ)금강산 관광 도중 북한으로 월북했다가 추방 됨--2명의 금강산관광객
(ㄴ)2002년 9월 26일 카드 빚으로 월북했다가 북한정부가 남한정부에게 넘겨 줌(41세 박모씨 경우)

5.납북자란
납북자와 월북자를 구별하는데 많은 노력과 인내가 필요하며 납북자는 북한정부가 정치적 목적이나 이용하기 위하여 남한 주민들을 강제로 납치하는 범죄행위를 뜻한다
북한은 휴전이후 지금까지 해상, 공중, 해외등지에서 모두 4백 70여건에 걸쳐 3천 7백 38명에 이르는 한국인을 납치하여 대부분은 인도적 입장이나 사상 세뇌교육과 간첩 교육을 시킨 후 돌려 보냈으나 아직도 442명을 억류하고 있는 세계적인 납치왕국이다
(1)동해상이나 서해상으로 납치가 대부분이다
북한정부는 동해상이나 서해상 어민이나 해군등 귀순이나 의거 선전용으로 불법 납치를 자행하고 있다 지금은 한국 해군이 증강되고 선진화 되어 이런 일이 잘 발생되지 않고 있다.
북한은 서해나 동해의 휴전선 부근에서 어업 작업 중이던 어부 3,662명과 해군 20명등 총 3,682명을 납치했는데 87년 1월 백령도 부근에서 조업 중 북한 무장경비정에 의해 납치 되었으며 선장 김순근씨와 어로장 최종석씨등 선원 12명은 지금도 억류되어 있다.
(2)고정 간첩 조창희 주도로 1967년 12월 대한항공 소속 YS-11기 공중 납북사건
북한은 당시 고정간첩 조창희(당시 42세)를 시켜 대관령 상공에서 승객과 승무원등 총 51명을 태운 대한항공을 공중 납치 했다 이들 중 여승무원 정경숙, 성경희등 12명은 아직도 북한정부에 억류되어 있는 상태이다
(3)육로상 납치는 전두환정부의 3중 철책선 구축으로 종언 되었다.

자본주의 반대 공산주의!! 민주주의 반대 독재주의!!
자본주의민주주의 혁명 후 사회주의와 자유주의 공존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