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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 코로나19 사태 중에도 센카쿠 일본영해 침범 본문
중국에서 발원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가 전 세계로 퍼져 기승을 부리는 속에서도 중국 해경선이 일본과 영유권 분쟁을 벌리는 동중국해 센카쿠 열도(댜오위다오) 주변의 일본 영해에 침입하는 도발을 감행했다.
NHK 등에 따르면 중국 해경선 4척이 20일 오후 센카쿠 열도 우오쓰리시마(魚釣島) 부근 일본 영해에 차례로 진입했다.
이들 해경선은 오후 4시부터 약 2시간에 걸쳐 일본 영해를 항행하고서 오후 6시께 밖으로 나갔다.
중국 해경선들은 오후 6시10분께 이래 미나미코지마(南小島) 남남동쪽 24~28km 떨어진 수역을 지났으며 일본 제11관구 해상보안본부 순시선이 재차 일본 영해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경고하고 감시를 계속하고 있다.
센카쿠 열도 부근 일본 영해에 중국 해경선이 침입한 것은 지난달 13일 이래로 올해 들어선 5번째이다.
중국은 코로나19가 확산일로에 있던 시기에는 센카쿠 열도 일대에서 도발을 자제하다가 자국에서 일단 진정 기미를 보이자 재개한 셈이다.
앞서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일본 관방장관은 중국 해경선이 영해 침입과 접속수역 항행을 계속하는 것에 "심각히 우려하고 있다"며 긴장감을 갖고 경계감시에 만전을 기하는 한편 중국 측에 의연한 자세로 대응할 방침을 밝혔다.
스가 관방장관은 "센카쿠 열도가 일본의 고유영토라는 사실은 역사적으로도 국제법상으로도 의심할 여지가 없으며 실제로 유효 지배하고 있어 해결할 영유권 문제는 애초 존재하지 않는다"며 "영토, 영해, 영공을 단호히 지키겠다"고 언명했다.
중국, 센카쿠 열도 상공 포함된 방공식별권 설정
중국 국방부는 23일, 오키나와현 센카쿠 열도 상공이 포함된 동중국해의 넓은 범위에 방공식별권을 설정했다고 발표해, 센카쿠 열도와 관련해 일본에 대한 압력을 더욱 강화하려는 의도가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함께 발표된 공고에는 방공식별권을 비행하는 항공기는 중국 외교부와 항공당국에 비행계획을 통보할 것과, 방공식별권을 관리하는 중국 국방부의 지시에 따를 것 등이 명기돼, 따르지 않을 경우는 무력으로 긴급조치를 취한다고 규정돼 있습니다.
이번에 중국이 밝힌 방공식별권은 일본의 방공식별권과 겹치는 외에도 가장 동쪽이 규슈에서 약 130km 거리에 설정돼 있습니다.
이에 대해 중국 국방부 대변인은 "어떤 나라의 방공식별권도 중국대륙에서 가장 가까운 곳이 130km"라고 말해 일본에 대한 대항조치라는 점을 시사했습니다.
또, 방공식별권 설정의 목적에 대해 중국 국방부 대변인은 "국가의 주권과 영토, 영공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서"라고 강조해, 센카쿠 열도를 둘러싸고 일본과 대립이 계속되는 가운데, 영토문제의 존재를 인정시키기 위해 일본에 대한 압력을 더욱 강화하려는 의도가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일본 외무성, 중국의 센카쿠 상공 방공식별권 설정 항의
일본정부 관계자는 중국 국방부에서 북경의 일본 대사관에 대해 같은 내용의 통보가 있었다고 밝혔습니다.
이에 따라 외무성의 이하라 아시아대양주 국장은 23일 저녁, 중국의 한지강 주일 공사에게 "센카쿠 열도는 일본의 영토이므로 중국측이 방공식별권을 설정하는 것은 유감"이라고 전화로 항의했습니다.
정부 관계자는 일본과 중국의 방공식별권이 겹치면 서로 전투기를 긴급 발진시켜 예측불허의 사태가 발생할 수 있으므로, 일본의 영토인 센카쿠 열도 주변에서 중국측이 긴급 발진시키는 사태는 용인할 수 없다고 밝혀, 일본정부는 중국측의 대응을 주시하고 있습니다
중국 방공식별권, 일본 항공기에 대한 영향
중국이 발표한 방공식별권에 대해, 일본 국토교통성은 방공식별권은 국적 불명기를 대상으로 한 것으로, 각 항공사의 국제선은 국적과 목적지를 플라이트플랜으로 불리는 비행계획서에 명기해 제출하고 비행하므로 일반적으로 중국기의 긴급발진을 받는 일은 없다고 말했습니다.
또한 일본항공과 전일공에 따르면 중국 등과의 사이를 연결하는 국제선과 오키나와를 발착하는 국내선은 통상대로 운항하고 있습니다.
중국, 방공식별구역 첫 순시비행 실시
중국이 23일 오키나와 현 센카쿠열도 상공 등 동중국해의 넓은 범위를 방공식별구역으로 설정한데 대해, 중국 국영언론은 23일 군 정찰기 등이 방공식별구역 설정 후 첫 순시비행을 실시했다고 전했습니다.
중국 국방부는 23일 오키나와 현 센카쿠열도 상공 등 동중국해의 넓은 범위를 방공식별구역으로 설정하고, 이 구역을 통과하는 항공기에 대해 중국 당국에 비행계획을 통보할 것과 중국 국방부 지시에 따를 것 등을 의무화하고 이를 어길 경우 무력에 의한 긴급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발표했습니다.
국영 중국중앙TV은 23일 밤 중국 공군의 정찰기와 조기경보기 그리고 전투기가 방공식별구역 설정 후 첫 순시비행을 실시했다고 전했습니다.
순시비행의 구체적인 장소는 밝혀지지 않았으나, 중국군이 방공식별구역을 운용하는 능력이 있음을 국내외에 알리려는 목적이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중국의 방공식별구역은 일본이 이미 설정한 방공식별구역과 겹치고 있으나 중국 국방부는 "국가 주권과 영토영공의 안전을 지키기 위함"이라고 강조해, 센카쿠열도와 관련해 대립중인 일본 측에 영토문제의 존재를 인정하도록 더욱 압력을 가할 자세를 보였습니다
일본 방위상, 중국의 방공식별구역 설정에 따라 경계 강화하기로
일본의 오노데라 방위상은 중국 국방부가 오키나와 현 센카쿠열도의 상공을 포함한 동중국해의 광범위한 범위에 방공식별구역을 설정한 것과 관련해 23일 밤, 방위성과 자위대의 간부를 소집해 대응을 협의하고 경계 감시를 강화하는 한편, 이 구역에서의 긴급발진 등 자위대 항공기의 운용은 종전대로 유지하기로 확인했습니다.
오노데라 방위상은 협의를 마친 후 기자단에게 방공식별구역의 일방적인 지정은 매우 위험한 행위라며 방공식별구역에는 센카쿠열도의 상공도 포함돼 있어 경계감시활동을 이전보다 늘려 철저하게 대응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습니다.
오노데라 방위상은 또, 이 구역은 민간항공기도 비행하기 때문에 정부 전체가 협력해 대응하겠다고 강조했습니다.
미국 정부, 중국 방공식별구역 설정에 강한 우려
중국 국방부가 오키나와 현 센카쿠열도 상공을 방공식별구역으로 설정한데 대해 미 백악관의 국가안보회의 대변인은 23일 "지역의 긴장을 고조시키고 미국과 동맹국들의 국익에 영향을 미치는 이 조치는 대단히 우려된다"는 성명을 발표했습니다.
이에 맞춰 케리 미 국무장관도 성명을 발표하고 "중국의 일방적인 조치는 지금의 상황을 바꾸려는 시도이며 지역의 긴장을 고조시키고 충돌위험을 만드는 것"이라고 비판하고 "중국에 주의와 자제를 요구했다"고 말했습니다.
또한 헤이글 미 국방장관도 성명을 발표하고 "중국 측 발표는 이 지역 내 미군의 작전수행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하고 "미국은 일미안전보장조약이 센카쿠열도에 적용됨을 거듭 확인한다"고 밝혔습니다.
중국의 이번 조치에 대해 미국 정부가 강한 우려감을 나타낸 성명을 일제히 발표한 것은 센카쿠열도 주변에서 예측불허의 사태가 발생할 가능성이 커진데 대한 위기감을 나타낸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중국 군용기가 센카쿠열도에 접근, 영공침범은 없어
23일 중국의 군용기 두 대가 동중국해를 비행하고 이 가운데 한 대가 센카쿠열도에서 북쪽으로 약 60킬로미터 떨어진 지점까지 접근했지만 영공침범은 없었습니다.
일본 방위성에 따르면 23일 낮, 중국 군용기 두 대가 잇따라 동중국해를 동쪽으로 향해 비행하고 있는 것을 자위대가 레이더로 확인하고 긴급발진했습니다.
접근한 군용기는 Y8정보수집기와 TU154정보수집기로 이 가운데 Y8정보수집기는 일본의 영공에는 접근하지 않고 중국 쪽으로 돌아갔지만 TU154정보수집기는 남서쪽을 향해 계속 비행하면서 한때 센카쿠열도에서 북쪽으로 약 60킬로미터 떨어진 지점까지 접근했습니다.
그 후 TU154정보수집기는 서쪽으로 진로를 바꾼 후, 저녁무렵에 중국 쪽으로 돌아가 영공침범은 없었습니다.
방위성은 비행 목적 등에 대해 분석하고 있습니다.
읿본 학자 "조어도(釣魚島)는 중국의 고유한 땅"
"센카쿠열도(尖閣列島) 또는 댜오위다오 및 부속 도서(钓鱼岛及其附属岛屿)는 중일 분쟁지역이지만 실효지배는 일본 영토이다"
1996년 10월 18일 일본의 역사학자인 이노우에 키요시(井上淸)가 중국과 일본 간의 영유권 분쟁 지역인 조어도(釣魚島) 및 그 부속도서를 중국의 고유한 영토라고 주장했다.
이노우에 키요시는 그의 저서 ‘일본의 역사’가 우리나라에서도 번역 소개된 바가 있는 일본의 저명한 역사학자이다.
그는 24년만에 다시 출간한 『센카쿠(尖閣)열도... 조어도(釣魚島)의 역사해석』이라는 책의 서문에서 일본의 우익단체들이 중국과 대만의 영유권 주장에 맞서 조어도의 한 섬에 등대를 설치한 행동을 언급하고 “이는 다시 부활한 일본의 군국주의가 중국에 대해 도발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이 책에서 오키나와와의 역사적 자료와 문헌, 그리고 영국해군의 대만 및 오키나와 지역 해도와 관련 항해기록을 검토한 결과, 적어도 16세기 이래 조어도 및 그 부속도서는 중국의 영토였으며 무인도가 아니었다는 결론을 내리게 됐다고 밝혔다.
그는 특히 1785년 일본에서 출판된 『삼국통람도설(三國通覽圖說) 』과 그 부속 지도 상에서 일본 영토와는 다른 빛깔로 조어도와 그 부속도서를 채색함으로써 중국 영토의 일부임을 밝혀 놓았다고 말했다.
조어도(釣魚島)
조어도(釣魚島)는 중국과 일본 그리고 대만이 각각 영유권을 주장하는 동중국해의 조그마한 도서군(島嶼群)으로 명칭도 각각 다르다. 즉 중국은 댜오위다오(釣魚島: Diao-yu Dao), 대만은 댜오위타이(釣魚臺 : Tiaoytai), 일본은 센카쿠(尖閣)제도(Senkaku Islands)로 부른다.
지리적 위치는 중국 본토인 푸저우(福州)로부터 동쪽으로 420㎞, 대만 북부 지룽(基隆)으로부터 북동쪽으로 175㎞, 일본 오키나와 나하(那霞)로부터 남서쪽으로 420㎞에 위치한 동중국해의 가운데(북위 25° 42′, 동경 123° 30′)에 있는 7개의 조그마한 섬과 암초로 구성되어 있다.
주도(主島)인 조어도 만이 약 4.3㎢의 섬이며, 기타 6개의 섬과 암초들은 1㎢도 되지 않는다. 또한 조어도에는 특별한 자원도 없으며, 단지 소규모 고등어 어장과 정어리 어장이 형성되어 있을 뿐이다. 그러나 1970년대 이후 조어도 부근의 해저에서 석유가 매장되어 있을 가능성이 제기되면서부터 관심이 집중된 것이다.
1969년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조어도 인근에는 석유를 포함한 막대한 천연자원이 대량으로 매장되어 있을 가능성이 매우 높은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특히 100억∼1,000억 배럴의 원유가 매장되어 있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러므로 조어도 영유권 분쟁은 막대한 석유자원을 확보하기 위한 자원 쟁탈전이라고도 할 수 있다.
중국과 일본의 조어도 영유권 분쟁은 1971년 미국이 제2차 세계대전 종결 이후 점령해왔던 오키나와와 함께 조어도를 일본에 반환한 것이 계기가 되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중국은 이후 일본이 줄곧 실효 지배한 이 섬들은 역사적으로 중국 영토라는 주장을 펴 오고 있다.
중국이 본 댜오위다오(釣魚島)문제
다음은 《중국청년보》에 게재된 댜오위다오(釣魚島)에 대한 개요이다. 댜오위다오 문제는 여러 측면에 독도 문제와 유사하다. 결정적 차이라면 독도와는 달리 댜오위다오는 일본이 실효지배하고 있다는 점이다.
댜오위다오(釣魚島 : 일본명 센카쿠尖閣제도)는 중국 동해(東海 : 동중국해) 대륙붕에 에 접해 있으며 지질구조상 대만의 대륙성 도서이다.
댜오위다오 열도는 대만 동북 쪽으로 120해리(222km) 부근에 위치하고 있으며 중국 대륙과 일본 오키나와(沖繩)로부터 각기 동, 서쪽으로 200해리 떨어져 있다. 부근의 수심은 100~150m이며 오키나와 군도와는 수심 2,000m의 해구(海溝)로 격리되어 있다.
댜오위다오는 오래 전부터 대만, 푸젠(福建)성의 어민들이 고기를 잡거나 약초를 캐어 오면서 그 존재를 알고 있었으며 명(明)나라 초기부터 중국의 판도에 들어갔다.
영락(永樂)연간(1403~1424년)에 출판된 『순풍상송(順風相送)』이란 책에 댜오위다오 열도에 대한 기록이 나온다.
이는 유구(琉球 : 오키나와의 옛 명칭)의 일본인 고가신시로(古賀辰四郞)가 발견했다고 주장해온 1884년 보다 400년이나 앞섰다. 명조 이래 중국의 수많은 역사적 문건에서 이 도서에 대한 기록이 보이고 있다.
일본에서 1783년부터 1785년 사이 출판된 유구왕국의 영역을 밝힌 지도에서는 댜오위다오를 중국에 속한 것으로 밝히고 있다.
19세기 말 갑오(甲午)전쟁(청일전쟁 : 1894년) 이전에 일본은 중국의 댜오위다오에 대한 주권에 관해 이의를 제기한 바가 없다.
1895년 4월 청(淸)정부는 굴욕적인 ‘시모노세키(下關) 조약’을 통해 대만 섬과 그에 부속된 도서 및 펑후(彭湖)열도를 일본에 할양했다.
이 이후에 이른바 댜오위다오를 지칭하는 '센카쿠(尖閣)군도(群島)’라는 표현이 나왔다. 이 이전의 일본의 지도는 중국 명칭인 ‘댜오위다오 열도’를 사용했다.
2차대전후 패전국 일본은 전승국인 중국을 무시한 미국과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을 불법적으로 체결했다. 조약은 제 2조에서 일본이 대만과 펑후 열도에 대한 모든 권리를 포기한다고 되어 있다.
하지만 3조에서 일본이 절취한 댜오위다오 등 도서는 미국이 위임통치하는 유구(琉球) 관할 안에 두는 것으로 했다. 이는 잘못된 것이다.
당시 저우언라이(周恩來) 중국 총리는 성명을 통해 중국 정부는 ‘샌프란시스코 조약’을 결코 인정하지 않겠다고 밝힌 바 있다.
1958년 영해성명에서도 일본이 반환해야 하는 절취한 중국 영토에 관한 규정은 “대만과 그 주위 도서를 포함한 중화인민공화국 일체의 영토에 적용된다”라고 명기했다.
센카쿠 열도
센카쿠열도(尖閣列島) 또는 댜오위다오 및 부속 도서(钓鱼岛及其附属岛屿)는 동중국해 남서부에 위치한 다섯 개의 무인도와 세 개의 암초로 구성된 군도로, 타이완과 류큐제도 사이에 있다. 중화인민공화국과 중화민국, 일본이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으며, 현재 일본이 실효지배하고 있다.
일본에서는 이 군도를 센카쿠제도(일본어: 尖閣諸島) 또는 센카쿠열도(일본어: 尖閣列島)라고 지칭하며, 중화인민공화국에서는 댜오위다오 및 부속 도서(중국어 간체자: 钓鱼岛及其附属岛屿, 병음: Diàoyúdǎo jí qí fù →댜오위 섬 및 부속 도서)라고 부르며, 중화민국에서는 댜오위타이 열서(중국어 정체자: 釣魚臺列嶼, 병음: Diàoyútái lièyǔ) 또는 댜오위타이 군도(중국어 정체자: 釣魚臺群島, 병음: Diàoyútái Qúndǎo)라고 부른다.
영어권에서는 1884년 영국 해군이 명명한 피너클제도(Pinnacle Islands →뾰족한 섬들)라고 부르는데, 센카쿠(尖閣 →첨각)라는 명칭은 여기서 유래하였다.
이 군도는 북위 25°58' ~ 25°41'45", 동경 123°27'45" ~ 124°41'30" 부근에 위치해 있다. 전체 면적은 7km²로, 모두 무인도이다.
일본의 행정 구역상 이 군도는 오키나와현 이시가키 시(일본어: 石垣市, いしがきし)에 속하며 중화인민공화국의 행정 구역상 타이완 성에, 중화민국의 행정 구역상 타이완 성 이란 현에 속한다.
가장 큰 섬은 우오쓰리 섬(魚釣島, 어조도)(중국명 댜오위 섬[釣魚島, 조어도])으로, 동서 약 3.5km, 남북 약 2km에 이르는 섬이다. 이 섬의 최고점은 해발 362m이다. 이 군도의 주요 섬과 암초는 다음과 같다.
우오쓰리 섬(魚釣島) 댜오위 섬(釣魚島) 4.32km² 362m
구바 섬(久場島) 황웨이 섬(黄尾嶼) 1.08km² 117m
다이쇼 섬(大正島) 츠웨이 섬(赤尾嶼) 0.0609km² 75m
미나미코 섬(南小島) 난샤오 섬(南小島) 0.4592km² 149m
기타코 섬(北小島) 베이샤오 섬(北小島) 0.3267km² 135m
오키노키타 암(沖北岩) 베이옌(北岩) 0.0183km² -
오키노미나미 암(沖南岩) 난옌(南岩) 0.0048km² -
도비세(飛瀬) 페이자오옌(飛礁岩) 0.0008km² -
주변 섬에 대한 센카쿠 열도의 상대 위치는 다음과 같다.
중화민국 펑자섬으로부터 140 km (76 해리) 동쪽
일본 이시가키 섬으로부터 (92 해리) 북쪽
중화민국 지룽시로부터 186 km (100 해리) 북동쪽
일본 오키나와섬으로부터 410 km (220 해리) 서쪽
1. 역사
명나라 초기 영락(永樂) 원년(1403년)에 출판된 〈순풍상송(順風相送)〉이란 책에 '조어서'(釣魚嶼)란 이름으로 역사에 처음 등장하였고, 1863년에 작성된 세계지도(중국어 정체자: 皇朝一统舆地全图)에는 이 군도가 푸젠 성(福建省)에 부속한 댜오위타이 군도(釣魚台群島)로 표시되어 있다.
1895년 청일 전쟁 와중에 일본 제국은 이 군도를 무주지(無主地)라며 일방적으로 자국 영토로 편입시켰다.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나고 미국은 이 군도를 자국이 위임통치하는 오키나와의 관할 안에 두었고, 1972년 오키나와의 반환 이후 일본이 실효지배하고 있다. 그러나, 중화인민공화국과 중화민국도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어서 분쟁이 끊이지 않고 있다.
특히, 1969년 유엔의 아시아극동경제위원회에서 이 군도 부근 해역에 천연가스와 석유가 대규모로 매장되어 있다고 발표하면서 분쟁 지역으로 급부상했다. 1996년 일본의 우익 단체가 우오쓰리 섬에 등대를 세웠으며, 2005년부터 일본 정부는 이 등대를 지도에 실어 관리하고 있다. 2012년 7월, 일본이 이 군도를 국유화할 방침을 세우자 중국과 타이완이 반발하고 있다.[2]
(1)일본측 주장
이 군도는 1885년 오키나와에 살던 후쿠오카 현 출신 사업가 고가 다쓰시로(古賀辰四郞)가 발견한 뒤 일본 정부가 무주지(無主地)임을 확인하고 1895년 1월 14일 오키나와현에 정식 편입했다.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으로 일본 정부가 타이완과 펑후제도(澎湖諸島)를 포기하였음에도 이 군도를 미국이 오키나와의 관할 안에 두고 통치한 것은 이 군도가 타이완이 아닌 류큐제도의 부속 도서이기 때문이다.
1972년 오키나와현이 미국으로부터 반환될 때 이 섬들도 류큐제도와 같이 반환되었으므로, 이 군도는 일본 영토이다.
(2)중국측 주장
1863년에 작성된 지도(皇朝一统舆地全图)에 이미 이 군도는 중국 푸젠 성(福建省)에 부속한 댜오위타이 군도(釣魚台群島)로 표시되어 있던 중국 영토이다.
중국 영토였던 이 군도를 1895년 청일 전쟁 와중에 일본 제국이 무주지(無主地)라며 자국 영토로 강제편입시킨 것은 불법이며, 당연 무효다.
이 군도는 과거 푸젠 성에 속했던 타이완 성의 부속도서이다. 타이완 섬 반환 이후에도 미국이 이 군도를 중국측에 반환하지 않고 오키나와의 관할 안에 두고 통치한 것은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 회의에 중화민국과 중화인민공화국이 모두 초청받지 않은 상황에서 벌어진 일로, 중국측은 이 섬들에 대한 미국과 일본의 점거를 승인한 적이 없다.
일본이 이 군도를 첨각열도(尖閣列島, 센카쿠열도)라고 표기하기 시작한 것은 청일 전쟁이 종결된 이후이며, 그 이름 역시 1884년 영국 해군이 붙인 '피너클 아일랜드'에서 본뜬 것이다. 군도 중 가장 큰 섬의 이름을 어조도(魚釣島)로 한 것도 중국명 조어도(釣魚島)의 앞뒤만 바꾼 것에 불과하다.
2. 석유
이 군도의 분쟁은 막대한 석유가 매장되어 있다는 시라카바 가스전과 관련되어 있다. 이 지역 동중국해에는 흑해 유전만큼 석유가 매장되어 있다고 알려져 있으며 중국과 일본 양국이 다투고 있는 시라카바 가스전과 대한민국과 일본 양국이 다투고 있는 7광구가 모두 여기에 있다. 일본이 실효 지배 중인 이 군도의 앞바다에는 중국이 실효 지배 중인 시라카바 가스전이 위치해 있으며, 그 북쪽에는 대한민국과 일본이 다투는 7광구가 위치해 있다. 모두 단일한 유전으로 알려져 있어서 각국의 분쟁 대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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