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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군인 출신 탈북자, 성폭력과 마약 밀매 증언 본문
▲북한군인 출신 탈북자들이 증언하고 있다(사진)
이 좌담회는 미국의 인권단체와 한국에서 활동하는 탈북자 단체가 3일 워싱턴에서 개최한 것으로, 북한에서 군인이었던 남녀 3명의 탈북자가 증언했습니다.
이 가운데 2016년에 탈북한 여성인 최유진 씨는 김정은 지도부를 경호하는 부서에서 간호사가 된 후 군 간부로부터 성폭행을 당하고 동료인 여군은 폭행으로 정신병에 걸리는 등 군 내부에서 여성에 대한 폭력이 일상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또 2011년에 탈북한 조연화 씨는 중국과의 접경지역에서 탈북자를 단속하는 임무를 맡았었는데 상관의 명령으로 북한제 마약을 중국에 밀매했고, 그 수익은 최고지도부의 사적 자금으로 사용된 것으로 들었다고 증언했습니다.
북한 군대 내 인권 증언… “가혹행위에 성접대”
▲미국 의회 내 초당적 기구인 톰 랜토스 인권위원회 주관으로 ‘북한 군대 내 인권 유린’ 토론회가 3일 진행됐다
제16회 북한자유주간 6일째인 3일(현지시간), 미 하원의원 회관인 레이번 빌딩에서 미 의회 내 초당적 기구인 톰 랜토스 인권위원회 주관으로 '북한 군대 내 인권 유린' 토론회가 진행됐다.
이날 오전 10시부터 열린 토론에서는 여군이었던 탈북자를 비롯 총 3명의 북한군인 출신들의 생생한 증언이 쏟아졌다.
탈북 군인들의 증언에 따르면 북한 부대 내에는 익히 알려진 혹독한 노동과 구타 문제 외에도 간부들을 위한 의례적인 성접대와 마약 밀매가 공공연하게 행해진다.
군인들은 또 먹을 것을 구해오라는 간부들의 명령에 도둑질을 위해 인근 마을로 내몰리기도 했고 굶주림을 참다 못해 도둑질을 하다가 총에 맞아 사망하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했다.
이들에 따르면 여군은 특히 군대 내에서 성적으로 억압을 받아야 했다. 여군은 연애를 해서는 안되며 입대 시에 처녀성까지 검사를 받는다고. 신체검사에 얼굴비율 등을 따지는 항목도 있다고 한다. 또한 군대 내에 공공연한 성접대로 인해 고통받는 여군들이 많았다고.
남자들의 경우 북한군대 내에서는 구타와 가혹행위가 끊이지 않았다고 한다. 이유 없는 구타로 인한 부상은 흔한 일이며, 체벌로 섭씨 영하 30도의 온도에 그냥 밖에 서 있게 해 동상으로 손발가락을 다 잘라야 하는 일도 일어나고 있다고 했다.
북한 호위총국 간호장교 출신인 탈북자 최유진 씨는 "어느 날 친구가 입원해 매일을 울었다. 이유를 물어보니 1년에 한 번 올까 말까 한 김정은을 기다리기 위해 매일을 청소하고 간부들이 올 때마다 성접대를 해야 했다고 한다. 결국 그녀는 원장에게 뇌물을 주고 나서야 의가사 제대로 나올 수 있었다"고 증언했다.
최 씨는 또 "한 번은 출혈이 심한 환자가 왔는데 4개월 된 아이를 유산한 상태였다. 노동당에 입당하기 위해 성접대를 했던 그녀는 임신임을 알았지만 입당 준비 기간을 놓칠 수 없어 배를 졸라매고 훈련을 받다가 변을 당했다. '입당도 못하고 이 지경만 됐다'는 그녀는 내 손을 잡고 한 없이 울었다"고 말했다.
북한 군인들의 기아에 대해 고발한 북한군 소위 출신 탈북자 강리혁 씨는 "영양실조에 걸린 군인들이 많다. 어느 날 부대 내에 병이 돌았는데 90%가 사망하는 병이었다. 부대에서는 남한에서 사회주의를 무너뜨리기 위해 쥐를 풀어 퍼뜨린 병이라고 했지만 나중에 알고 보니 그런 쥐는 있지도 않았고 배고픈 군인들이 오래 된 음식을 먹다가 생긴 병이었다"고 말했다.
군인들의 굶주림과 관련, "배고픈 군인들은 추수철 옥수수 이삭 줍기를 했다. 옥수수 한 이삭을 줍고 세상을 다 가진 듯한 표정을 짓던 그들의 얼굴이 아직도 생생하다"면서 "또 군 부대에서는 민가에 가서 소를 훔치게 했다"고 밝혔다.
북한 보위사령부 출신 탈북자 조영화 씨는 북한 군 내에서 자행되고 있는 마약 밀매에 대해 고발했다. 조 씨는 "대북 제재가 심해지면서 본격적인 마약 밀매가 시작됐다. 중앙당 39호실에서 나와 국경을 두 시간 정도 비워달라는 명령서를 내밀고 50kg 상자 50개 분량의 밀매가 이뤄졌다"면서 "중앙당 뿐 아니라 군인들도 살기 위해 자체적으로 마약을 만들어 판다. 김정은은 제재 속에서도 핵무기를 만들기 위해 마약을 만들어 유통하고 군인을 비롯한 청년들을 자신의 노예로 전락시켰다"고 울분을 토했다.
북한 군대 내에서의 인권 문제는 이번 북한자유주간에서 처음 조명된 주제로, 북한자유주간에 참여한 탈북자 단체 대표단은 이번 기간 중 미국 국무부와 재무부를 비롯해 상원, NSC를 방문해 이번 북한자유주간 기간 동안 발표된 내용을 생생히 증언했다.
北 군대 인권 증언 “동상에 손발가락 잘라야 했던 군인”
제16회 북한자유주간 6일째인 3일(현지시간), 미 하원의원 회관인 레이번 빌딩에서 미 의회 내 초당적 기구인 톰 랜토스 인권위원회 주관으로 '북한 군대 내 인권 유린' 토론회가 진행됐다. 이날 북한 군인 출신 탈북자들의 증언을 아래 요약했다.
▲탈북자 최유진 씨는 끔찍했던 북한 군대에서 탈출해 오갈데 없는 신세가 되었고 이에 탈북했지만 장기매매단에 잡히게 됐다고 한다. 그 때 태어나서 처음으로 자신을 태어나게 한 부모님을 원망했다고 했다. 눈물겨운 사연에 토론에 참석한 많은 이들이 함께 눈물을 흘렸다
북한 호위총국 간호장교 탈북자 최유진 씨
학교를 졸업하고 간호 전문대에서 간호 교육을 받았다. 말로는 나라에서 지원한다 했지만 필수용품은 다 내 돈으로 구입해야 했다. 교육받는 이 대부분은 빽이 있는 사람들이었다. 빽이 없는 나는 많이 힘들었다. 그들과 견줄 수 있는 건 실력뿐이었고 기를 쓰고 공부해 높은 점수로 졸업했다.
입대 당시 연애를 하지 말 것을 강요 받았고 처녀성 검사도 이뤄졌다. 손가락 4개를 붙여 이마 끝에서 눈썹까지, 또 눈썹에서 코 끝까지, 코 끝에서 턱까지 비율을 쟀고 그것이 일정할 때 점수가 더 붙었다.
이후 특수과로 가게 되었는데 경호처 부대 시설이라 그런지 다른 병원들과는 다르게 장비들이 다 미국산이었다. 가자마자 비밀보장에 대한 철저히 교육 받고 서약서를 작성했다. 환자들의 이름을 비롯한 개인적은 것들은 절대 물을 수 없었고 진단서에도 가명이나 계급만을 적을 수 있었다.
어느 날 이곳에 친구가 입원했다. 친구는 매일을 울었다. 이유를 물어보니 1년에 한 번 올까 말까 한 김정은을 기다리기 위해 매일을 청소하고 간부들이 올 때마다 성접대를 해야 했다고 고백했다. 자꾸 집으로 가고 싶다고 해 집에 연락을 할 수 있도록 도와줬다. 친구의 부모님이 와서 원장에게 뇌물을 줬고 1년 후 의가사 제대를 하는 것을 보았다.
이 친구를 보며 불안한 시간을 보내다가 더 한 사건을 보게 됐다. 추운 겨울, 바지가 피범벅이 되어 실려온 여군이 있었다. 살펴보니 4개월 된 아이를 유산 한 것이었다. 출혈이 심해 수술을 할 수 없었고 지혈제를 2배로 놓았다.
그녀를 데려온 군인들을 나무라던 원장에게 전화가 왔다. 정중하게 전화를 받은 원장은 "그래도 높은 데서 전화가 왔다"고 말했다. 나중에야 사정을 알게 됐다. 북한에서 여군이든 남군이든 조선노동당에 입당을 하는 것이 굉장히 힘들다. 그녀는 입당을 하고 싶었지만 빽도 없고 돈도 없었다. 동기 중 제일 뒤처지는 것 같자 당 관계자에게 성접대를 하다가 임신을 하게 된 것이었다. 임신을 했지만 입당 준비 기간을 놓칠 수 없어 복대로 배를 가리고 훈련을 받다가 변을 당한 것이다. 그녀는 "입당도 못하고 이 지경만 됐다"며 내 손을 잡고 울었고 끝내 떠나갔다.
불안감을 느낀 나는 매해 바치는 충성 선물로 꿀을 준비하겠다는 핑계를 대고 집으로 왔다. 부모님은 뭐든 팔아 이것을 마련해 주겠다고 했지만 그럴만한 형편이 아니었다. 전에는 아버지가 회사를 운영해 집이 잘 살았다. 하지만 회사가 부도났고 집을 넘기면 빚을 갚아주고 새 집을 주겠다는 약속을 받고 공장 경비실에서 살고 계셨다.
이 광경을 본 난 부대에 가기 싫다고 떼를 썼다. 아버지는 나를 친척집으로 빼돌려 주셨다. 하지만 생활이 힘들고 스트레스가 심했는지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얼마 후 우리가 받기로 했던 새 집에는 이미 다른 사람이 살고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어머니와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길은 동반자살 밖에 없었다. 그런데 내가 먼저 쓰러지는 걸 본 어머니가 이웃들에게 딸을 살려달라고 했다. 병원에서 나는 보름 만에, 어머니는 일주일 만에 깨어났다. 눈 떠 보니 그나마 살던 집도 없어진 상황이었다. 그 자리에서 손목을 그었다. 목을 매어 3번 더 자살시도를 했다. 하지만 모두 실패했다. 죽을 운명이 아니구나 싶어 탈북을 했다.
혼자서 중국에 와보니 어머니를 두고 온 것이 실수였다. 어머니께 어떻게든 오라고 했다. 하지만 어머니는 "나이 든 내가 너에게 짐이 된다. 죽어도 아빠 곁에, 고향에 묻히고 싶다"고 하셨다.
한국으로 오던 길에 사채업자들에게 잡혔다. 2층에 감금되었는데 내가 도망칠까봐 스타킹에 슬리퍼만 신겨 놨다. 전화를 엿들었는데 "건강한 사람이 있는데 신장이 얼마이다"라는 것이다. 눈 앞이 캄캄했고 난생 처음으로 나를 낳으신 부모님을 탓했다. 그 때는 그런 비극적인 상황에 아무 생각도 안 났고 오직 '왜 태어나게 하셨나' 그 생각이 들어 부모님 원망이 들게 됐었다. 그래도 살겠다는 생각으로 2층에서 뛰어내렸고 그 추운 3월 옥수수 더미에서 바지에 볼일을 다 보면서까지 버티고 버텨 3일을 숨어있었다.
이후 교회를 찾아갔다. 그곳에서는 저를 위해 금식까지 하며 목적지까지 인도해 줬다. 그 사랑으로 저는 무사히 한국에 들어올 수 있었고 지금은 행복하게 살고 있다.
▲북한군 소위 출신 탈북자 강리혁 씨
북한군 소위 출신 탈북자 강리혁 씨
병교육대로 배치 받았을 때 저녁 밥은 뭐가 나올까 기대했다. 식사 시간,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전날 한 옥수수 밥을 불려 세 숟가락 정도 줬다. 국도 맹물이었다. 목구멍에 넘어가지 않았지만 배가 너무 고파 먹었다. 그 날 밤 배가 너무 고파 잠이 오지 않았다.
신병 교육이 끝나고 본부대로 갔지만 사정은 다르지 않았다. 영양실조에 걸린 군인들이 많았다. 어느 날 부대 내에 병이 돌았는데 90%가 사망하는 병이었다. 부대에서는 남한에서 사회주의를 무너뜨리기 위해 쥐를 풀어 퍼뜨린 병이라고 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그런 쥐는 있지도 않았다. 배고픈 군인들이 오래 된 음식을 먹다가 생긴 병이었다.
배고픈 군인들은 추수철 옥수수 이삭 줍기를 했다. 옥수수 한 이삭을 줍고 세상을 다 가진 듯한 표정을 짓던 그들의 얼굴이 아직도 생생하다.
구타도 끊이지 않았다. 한 번은 두 시간 근무를 마치고 인계를 하기 위해 선임을 깨웠다. 하지만 선임은 나가 있으라고 했다. 30분이 지나도 나오지 않자 다시 들어가 깨웠다. 이내 나온 선임은 자신을 깨웠다며 때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자신의 근무를 더 서라고 하며 들어갔다. 억울했지만 이야기 할 곳이 없었다.
이런 일은 여러 곳에서 있었다. 부소대장이 불러 식당 문을 여는 순간 얼굴에 밥과 뜨거운 국 그릇이 날아들었다. 비명을 지르며 주저 앉았다. 부소대장은 얼굴에는 관심도 없었다. 밥이 왜 거기 있냐며 일주일간 2배의 근무를 서라고 했다.
한 초급병사는 근무시간에 졸았다는 이유로 구타를 당했다. 그는 억울함을 참지 못하고 근무시간에 사관들에게 총을 겨눴다. 기세등등 하던 사관들은 살려달라며 애걸했고 소대장은 부모님을 생각하라며 그를 말렸다. 부모님을 생각하라는 말에 그는 주저앉아 울기 시작했다.
이후 독립병사가 되었지만 비극은 끊이지 않았다. 참모장의 아내는 어느 날 소를 훔쳐오라고 했다. 북한에서 소는 금 값이다. 때문에 소를 훔치다가 걸리면 총살을 면할 수 없다. 내가 너무 위험해 할 수 없다고 하자 참모장의 아내는 내 후임에게 그 일을 시켰다. 소를 훔치면 그를 내 자리에 앉히겠다고 꼬신 것이다. 그리고 그는 결국 소를 훔쳤다.
지휘관 양성 학교로 갔지만 상황은 다르지 않았다. 간부들은 매일 같이 술, 담배 심부름을 시켰고 뇌물을 주지 않으면 성적이 올라가지 않았다.
졸업 후 배치받은 부대의 현실은 열악했다. 사격 훈련을 나간 곳에서 배고픔을 이기지 못한 군인이 개구리를 먹고 쓰러진 사건이 있었다. 그는 병원에 실려 갔지만 2시간 만에 사망했다. 그 부모들의 하소연을 잊을 수가 없다. 우리는 건강한 아들을 보냈는데 지휘관들은 무엇을 했느냐며, 내 아들을 살려내라는 부모 앞에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이 뿐 아니다. 도둑질을 하다가 총에 맞아 죽는 군인들이 허다하다. 개성지역에는 인삼이 있다. 이 인삼은 김정은의 비자금을 위해 사용된다. 이 인삼에 손댄다는 것은 전에는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하지만 돈을 벌어야만 살 수 있게 되자 인삼밭에 손을 대기 시작한 것이다. 군인 뿐 아니라 주민들까지 여기에 손을 댄 것을 안 김정은은 모두를 사살하라고 명령했다. 하지만 배고픈 군인들은 이에 굴하지 않고 계속해서 훔친다. 목숨을 먹을 것과 바꾸는 것이다.
이후 출신성분을 문제로 정치범으로 몰렸고 두 살 된 딸을 두고 탈북했다. 아직까지 딸의 소식을 모르고 이모부는 잡혀가 매 맞아 죽기도 했다. 그래서 나는 김정은이 밉다. 그는 사람이 아닌 악마다. 어떻게 이런 악마와 협상 테이블에 앉을 수 있나. 김정은 정권이 무너지는 날까지 싸울 것이다. 여러분의 응원이 필요하다. 힘과 용기를 북돋아 달라.
▲북한 보위사령부 출신 탈북자 조영화 씨
북한 보위사령부 출신 탈북자 조영화 씨
군에 입대할 당시 김일성, 김정일을 지키는 것이 부모님을 지키는 것보다 중요하다 생각했다. 군복무는 고난의 연속이었다. 함경북도에 배치됐는데 건물도 없는 야산이었다. 김정일이 국경 강화를 지시했고 모자라는 병력은 신입들로 보충하라고 명령한 것이다. 병영 막사를 지으러 매일 같이 나무를 해야 했다.
힘겨운 생활을 이어가던 중 신입병사 한 명이 배고픔과 노동, 훈련을 견디지 못하고 중국으로 도망갔다. 밥을 훔쳐먹던 그는 중국인에게 잡혀 매 맞아 죽었다.
먹을 것이 부족하니 부대별로 도둑질을 보냈다. 야간에 마대 자루를 하나씩 들고 주변 개인 창고로 도둑질을 하러 갔다. 한 번은 도둑질을 하던 군인 한 명이 잡혔고 소대장이 사과하고 데려왔다. 사관들은 그에게 동작이 굼떠 잡혔다며 영하 30도 눈밭에 세워놨다. 그는 동상으로 손가락과 발가락을 다 잘라야 했다. 이렇게 잘못된 명령으로 한 사람의 인생이 바뀌는 일이 지금도 비일비재하다.
이후 두만강 인근에 배치되었다. 부대는 두만강을 통한 밀수를 했다. 국가기관에서 만든 유령회사들을 통해 불법 밀매를 했다. 2000년대 초반에는 일본에서 불법으로 중고차를 들여와 중국에 팔았다. 하지만 제재가 심해지자 마약 밀매가 시작됐다. 비자금 조성을 위해 불법 마약을 밀매하는 것이다.
2010년에는 중앙당 39호실에서 손님이 찾아왔다. 국경을 두 시간 비워달라며 명령서를 내밀었다. 현장에 도착하니 소형트럭 2대에 50kg 상자 50개가 있었다. 이를 넘기고 검은색 트럭 5대를 넘겨 받았다. 매년 이런 일이 두 차례씩 있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군인들도 자체적으로 마약을 만들어 팔았고 그 대가로 발전기, 자전거, 쌀 등을 받았다. 또 밀수하는 국경 주민들로부터 돈을 받기도 했다. 김정은은 제재 속에서도 핵무기를 만들기 위해 마약을 만들어 유통하고 군인을 비롯한 청년들을 자신의 노예로 전락시켰다.
이후 나는 조부모가 남한 사람이란 이유로 강제 전역 당했다. 절대 보위장교가 될 수 없었다. 남한 드라마와 영화, 라디오를 통해 북한의 실상을 알고 탈북하게 됐고 지금은 자유북한방송 기자로 활동하고 있다. 김정은 정권이 무너지는 날까지 대북방송을 이어나갈 것이다.
*북한정부의 인권개선을 하기 위해서는
여자 징병제를 폐지해야 한다 그리고 북한 인민군 내부 성희롱 주범 인민군 여군 예술단도 폐지돼야 한다
북한은 남녀징병제 국가로 남자 10년간, 여자 7년간 군 복무를 하고 있다
공식적은 북한 군은 120만명이다. 실질적으로 군복무를 하고 있는 수는 한국과 비교했을 때 절반 이상인 70만명이 많다. 북한의 나머지 군인들은 민간 업무에 종사하고 있다.
이 민간 업무란 양돈, 어획, 광산, 공장 등에서 일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무임급으로 일을 시키는 것이다
북한 무상교육 중학교 졸업생 중 30%이내 학생들이 개인의 능력과 유상교육기관 대학에 진학한다
중국은 직업군인 지원 모병제이지만 북한은 남녀 징병제국가로 중학교 졸업 후 남자는 10년간, 여자는 7년간 현역군인이나 다른 군복무형태 직장 등지에서 군복무를 해야 한다
통계에 따르면, 2012년 북한 인민군 병사의 수는 120만 명으로 이 중 여성 군인은 15% 약 17만명에 달했다. 북한의 인구는 약 2400만명으로 1000명에 7명이 여성 군인, 인민군 군인 100명에 15명이 여성 군인 셈이다
북한정부는 북한 아동들의 영양부족으로 인민군 입대 신체 조건을 "키 138cm이상, 몸무게 43Kg 이상"으로 실행하고 있다
14세때 징병명부 등록, 15세때 신체검사, 16세부터 인민군 입대를 하고 있다
병역 근무 자리 비리가 북한 군부내 가장 큰 비리로 알려지고 있다
매관행위는 인민군을 감시하는 총정치국 정치 지도원이라는 유리한 자리에는 5 천 ~ 2 만 달러 (약 50 만 ~ 200 만 원), 지방 관리는 약 5 천 중국 위엔화 (약 8 만원)에 직위를 사고 파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소식통은 "공직에 붙으면 뇌물을 받을 처지에 놓이게 1주일에 의거을 회수 할 수 있다고 된다"고 말했다
현역군인이나 군(軍) 경력이 없으면 원칙적 북한 노동당 당원이 될 수 없다
북한 노동당 당원은 군인이다[先軍정치와 국방위원회]
북한은 14세가 되는 해 징병대상자로 등록된 후, 16세 때 징병검사를 받는다. 이듬해 17세에 정식으로 입대한다. 복무기간은 남성 보병부대 10년 특수부대 13년, 여성 보병부대 5년 특수부대 7년. 복무 중 의무적으로 경제활동에 투입되므로, 북한 인민군은 농업, 공업과 공공기업체 기능도 겸하고 있다. 이들은 제일 거대한 생산집단이며, 동시에 소비집단이다. 전역 후 계급에 상관없이 60세까지 예비역으로 복무한다. 2000년대 들어 병무행정이 원활히 시행되지 못하고 있다. 단, 대학입시를 통해 대학에 들어가거나 예술가, 운동 선수, 징병검사를 통한 심신 상태나 자질 문제가 있는 사람은 징병되지 않는다. 징병되지 않는다고 다 같은 대우를 받는 것이 아니다. 예술가와 운동선수는 장교에 준한 대우를 받는 반면 심신 또는 자질에 문제가 있어서 징병되지 않은 사람은 적대계층으로 분류되어 평생 차별을 당한다
탈북자 증가의 원인은 북한 김정일, 김정은정부가 국영자본체제 국가사회주의(군부통치) 체제이기 때문이다
중국으로 남성보다 10대나 20대 여성 탈북자가 많은 것도 북한의 남녀 징병제로 여성들이 군 복무나 대체 군 복무를 해야 하기 때문에 탈북하는 경우가 많으며 북중 국경선 지역에 여성 군인들이 경비병으로 근무하기 때문이다[북한 인민군 남자군인들은 남북 국경선에 배치되어 있으며 여자군인들은 북중 국경선에 배치 돼 있다 (북한 국경 경비병 동향)]
미국 국무부가 27일 발표한 ‘2017 인신매매 실태 보고서’는 2만 명에서 3만 명의 아동이 중국에 살고 있는 북한 여성에게서 태어난 것으로 추산된다며, 이들 중 일부는 출생신고를 할 수 없어 무국적자가 되고, 착취 가능성에 취약하게 된다고 우려했다
북한 여자군인, 소총을 메고 하이힐(high heeled shoes,굽이 높은 여자용 구두) 차림으로 순찰하는 모습이다 6월 23일 북중 국경 마을 · 신의주 인근 압록강 연안 지역에서 순찰하는 북한의 여자 군인. 건너편은 중국 요녕성 단동 도시이다
북한 여성 병사(여군)들이 압록강 유역에서 빨래하는 모습
Some North Korean women say that sexual harassment is rife in the military [일부 북한 여성들은 성희롱이 군대에서 만연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북한 젊은 여성들은 대부분 여군이다
세습제 좌익군정 북한은 남녀 징병제 국가로 북한 여자는 중학교 졸업 후 17세때부터 7년간 현역이나 다른 직업으로 군 복무를 해야 한다. 통계에 따르면, 2012년 북한 인민군 병사의 수는 120만 명으로 이 중 여성 군인은 15% 약 17만명에 달한다. 북한의 인구는 약 2400만명으로 1000명에 7명이 여성 군인, 인민군 군인 100명에 15명이 여성 군인 셈이다
북한 인민군의 '여성 오락(예술단)' 대대에는 약 2,000 명의 소녀들이 세 그룹으로 나뉘어져 있다.
첫 번째 그룹은 고위급 군인을 위한 마사지, 두 번째 그룹은 노래와 춤, 성 대접(위안소)을 위한 또 다른 그룹이다.
북한정부는 여자 징병제를 폐지해야 한다 그리고 인민군 여군 예술단도 폐지돼야 한다
Female trader giving a bribe to a market supervisor in an alley near the market. Female traders have described offering bribes in order to avoid potential harassment.
북한 국내에서 정부 당국자에 의한 여성 성폭력이 만연해 있다는 보고서를 국제적인 인권단체가 공개했습니다.
국제 NGO '휴먼라이츠워치'는, 2011년 이후에 북한에서 한국으로 탈출한 여성 등 약 60명에 대해, 정부 당국자에 의한 여성 성폭력 등에 관해 조사했습니다.
보고서는, 북한에서 탈출에 실패한 여성이 수용된 시설 등에서 수사관이나 간수에게 성폭력을 당했으며, 길가에서 물건을 팔고 있던 여성도 경찰이나 관리에게 빈집으로 끌려가 여러 번 성폭행을 당했다고 전했습니다.
또한 보고서는 경찰과 정부 고위관리마저도 가해자였다며 "성폭력이 국내에 만연해 있다"고 비난했습니다.
그리고 북한에 대해, 적절한 수사를 해 가해자가 처벌을 받도록 해야 한다고 지적하고, 피해자가 심적 치유 등의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대책을 촉구했습니다.
'휴먼라이츠워치'의 도이 가나에 도쿄사무소 대표는, "최근 남북정상회담 등에서는 인권 문제가 도외시되고 있는데, 일본을 비롯해 국제사회는 현실태를 직시하고 해결을 위해 움직여 달라"고 말했습니다.
Woman being questioned by a secret police investigator. Former detainees say that secret police investigators can easily harass female detainees during questioning.
Illustrations, drawn by former North Korean propaganda artist Choi Seong Guk, are inspired by the artist’s experience in North Korea and the testimonies of survivors included in this report. Any resemblance to actual persons living or dead is coincidental; these are not intended as portraits of actual people or events but of typical scenarios.
Male government officials and female traders sitting in a railway carriage, while a railroad officer checks a female trader’s ticket. In railway carriages, women often face harassment by male government officials and railroad officers.
Police officer checking to see if a trader has hidden “anti-socialist” material in her belongings. Police officers conduct searches in female traders’ belongings, which can be a prelude to a body search
Women the sitting position in a pre-trial detention facility run by the police. Detainees are commonly forced to assume this position in pre-trial detention and temporary holding facilities.
최성국(Choi Seong Guk) 씨가 그린 그림은 북한에서 자신의 경험과 휴먼라이츠워치 보고서에 있는 피해자의 증언에서 영감을 받고 있습니다. 생존 또는 이미 사망한 개인을 닮은 수 있어도 그것은 우연 실제 사람 또는 실제 사건을 그린 것이 아니라 전형적인 장면을 재현했습니다
탈북만화가 최성국 씨가 지난 15일부터 소설 ‘고발’을 인터넷 만화로 연재하기 시작했습니다. ‘고발’은 북한에 있는 ‘반디’라는 필명의 작가가 체제를 비판한 소설로 한국을 비롯해 해외에서 큰 호응을 얻고 있습니다. 최성국 작가는 “만화를 통해 북한의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고 싶었다”고 밝혔습니다
A North Korean prison policewoman stands guard behind fences at a jail on the banks of Yalu River near the Chongsong county of North Korea, opposite the Chinese border city of Dandong on May 8, 2011.
북한 여성 병사(여군)들이 압록강 유역에서 빨래하는 모습
Female soldier to the lookout(여군의 교도소 경비)
The secret of North Korea's female prison emerge.
North Korea's Women's Prison is underdeveloped model
[북한의 여성 교도소의 비밀이 드러나다.
북한의 여자교도소는 후진국 모델이다]
중국 관광객 상대로 외화벌이에 나선 북한 아동들 모습
북한 인민군 여군 예술단 모습 사진입니다 북한 여성들은 의무교육 중학교 졸업 후 17세때 군 입대하여 7년간 군복무를 합니다 군 복무는 현역군인부터 교통경찰, 보안경찰, 인민군 예술단 단원, 간호원, 산림원, 공장이나 협동농장 근로자, 해외 파견 근로자등 다양한 직종으로 생활하고 있습니다
북한 인민군의 '여성 오락(예술단)' 대대에는 약 2,000 명의 소녀들이 세 그룹으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첫 번째 그룹은 고위급 군인을 위한 마사지, 두 번째 그룹은 노래와 춤, 성 대접(위안소)을 위한 또 다른 그룹입니다.
성관계를 가진 소녀는 아버지와 이야기 할 수 없으며 친척은 딸의 행방을 밝히지 않습니다.
김정은 국무위원회 위원장(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은 아버지가 사망하기 6개월 전에 북한 연예계 여성들을 찾기 시작했다고 한국 신문이 전했습니다[아랍권 자료]
사진 여성은 북한 정치범 수용소 경비병
사진은 정치범 수용소 포로 모습이다. 그들의 사형 집행이 정치범수용소 경비원 접근이 가능하게 했다
사진은 정치범 수용소 수감자를 처벌 할 수있는 몇 가지 방법을 보여준다
사진은 정치범 수용소 수감자들이 굶주림으로 쥐, 뱀과 개미등을 잡아 먹고 생활하고 있다
시체보관실에 시체를 쥐들이 먹고 살아간다
‘캠프14’로도 불리는 개천 정치범 수용소(제14호 관리소)는 1959년 만들어졌고 평양에서 북쪽으로 40마일 정도 떨어진 평안남도에 위치하고 있는데 수용된 정치범은 약 1만5천 명입니다.
또 ‘캠프25’로도 불리는 청진 수용소(제25호 관리소)는 함경북도에 위치해 있고 약 5천명의 수감자가 수용돼 있습니다. 2012년 회령 수용소가 폐쇄될 때 일부 수감자가 청진 수용소로 이감됐다는 민간단체의 보고가 있다는 사실도 적시돼 있습니다.
이어 화성 수용소(제16호 관리소)는 함경북도 화성군에 위치해 있는데 한국 국가인권위원회 측 추정에 따르면 약 2만 명의 정치범이 수감돼 있습니다. 또 일부 확인되지 않은 보고서에 따르면 이 수용소 정치범들이 풍계리 핵실험 시설 공사에 동원됐다는 지적도 소개돼 있습니다.
이 자료는 또 지난 2012년 폐쇄된 것으로 알려진 회령 수용소(제22호 관리소)에 대해서도 설명하고 있습니다. 지난 1990년대 가장 많은 정치범이 수감됐을 때 약 5만 명의 수감자가 있었지만 2012년 중반 이 수용소가 폐쇄됐다는 북한 내부 소식통의 보고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어 ‘캠프18’로도 불리는 북창 수용소(제18호 관리소)도 소개하고 있습니다. 평안남도 개천 수용소의 대동강 건너편에 위치하고 있고 최대 3만 명 정도의 정치범을 수용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소개된 요덕 수용소(제15호 관리소)는 함경남도 요덕군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국제사회의 인권유린 지적을 피하기 위해 자유세계의 이른바 ‘감옥’ 형태로 2014년 개조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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