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톈안먼 사태 최장 정치범, 27년만 10월 석방 본문
중국에서 지난 1989년 6월 발생한 텐안문(天安門) 민주화 시위 사태에 참여했다가 투옥된 정치범 가운데 마지막으로 복역 중인 먀오더순(苗德順 53)이 27년여 만인 오는 10월 감옥에서 풀려난다.
홍콩 뉴스 사이트 동망(東網)은 4일 미국에 있는 반중 인권단체 '대화기금회'를 인용, 사태 당시 방화죄로 2년 집행유예부 사형을 선고받은 먀오더순이 여러 차례 감형을 거쳐 마침내 올가을 출옥하게 됐다고 전했다.
사이트에 따르면 먀오더순은 다른 4명과 함께 베이징 시내로 진입한 인민해방군 탱크에 불을 지른 혐의로 붙잡혀 극형을 언도받았다.
먀오더순은 1992년 일단 무기형으로 감형됐으며 행형 성적이 좋아 수 차례 형기가 줄어들었다가 올초 재차 형기가 11개월 단축되면서 6개월 안으로 석방을 앞두게 됐다고 사이트는 전했다.
1990년대 먀오와 함께 수감생활을 했던 정치범은 그가 줄곧 자신의 죄를 인정하지 않으면서 독방에 장시간 갇혀 건강상태가 극히 나빴고 정신이상 증세까지 앓고 있다고 밝혔다.
대화기금회는 2013년 장야췬(姜亞群)이라는 73세 정치범이 풀려났다고 밝힌 바 있다. 장야췬은 반혁명죄로 20여년간 복역했다고 한다.
톈안먼 시위에 참가했다가 반혁명죄 등으로 유죄 판결을 받은 사람은 1602명으로 이중 먀오를 제외하곤 모두 풀려나거나 옥중에서 숨졌다.
민주화 시위 때 덩샤오핑(鄧小平) 지도부 강경 진압으로 1000명 이상의 학생과 시민 등이 목숨을 잃은 것으로 알려졌다.
천안문사건 기념관이 홍콩에서 문 열어
25년 전 중국 북경에서 민주화운동이 무력진압돼 다수의 사상사가 발생한 '천안문사건'의 자료를 모은 기념관이 26일 홍콩에서 문을 열었습니다.
26일 열린 개관축하행사에서는 사건당시 천안문광장 인근에 있었다는 활동가가 인사말에 나서 "사건으로 희생된 학생들은 진실을 전하길 원했다"며 이러한 기념관이 북경에도 설치돼야 한다고 강조해, 중국 정부 측에 천안문사건을 일부 학생에 의한 '폭동'이라는 해석을 재검토하도록 요구했습니다.
중국 본토에서는 천안문사건과 관련된 정보가 엄격히 통제돼 있으나 26일에는 중국 본토의 관광객 등도 견학을 위해 방문해 당시의 사진 등을 유심히 살펴봤습니다.
중국 호북성에서 방문했다는 한 여성은 "중국에서는 무엇이 일어났는지 잘 몰랐는데, 가족과 친구들도 기념관에 오면 좋겠다"고 말했습니다.
한편 기념관이 들어서 있는 건물 밖에서는 중국정부를 지지하는 20여명의 사람들이 모여, 당시의 무력진압은 정당했다고 항의하자 기념관 관람객들과 논쟁이 벌어져 경찰이 출동하는 소동이 벌이지기도 했습니다.
Tiananmen Square protest museum opens in Hong Kong
In the spring of 1989, more than one million Chinese students and workers occupied Beijing's Tiananmen Square and began the largest political protest in communist China's history. Six weeks of protests ended with the Beijing massacre of 3-4 June
*톈안먼 사건 [天安門事件, T'ienan Men Incident, 천안문사건]
중국의 민주화 시위를 중국 정부가 무력진압하면서 빚어진 대규모 유혈참사사건(1989. 6. 3~4)
1.개요
이 사건은 중국뿐만 아니라 동북 아시아 및 세계질서에 일대 충격을 몰고온 사건이었다
2.사건의 배경
톈안먼(천안문) 사건은 민주화 시위에 대한 군의 무력진압으로 빚어진 사건이지만 중국의 개혁개방정책 시행 이후 누적되어온 문제점이 폭발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1978년 12월 중국공산당 제11기 제3차 중앙위원회 전체회의(3중전회)에서 덩샤오핑[鄧小平]의 개혁개방노선이 확립된 이래 중국은 서구의 시장경제를 부분적으로 도입하고 경제적 자유와 개방의 폭을 과감히 넓혀왔다. 그러나 정치개혁은 상대적으로 부진을 면하지 못했다. 정치권력의 집중화 현상 아래서 경제개혁정책은 필연적으로 부정부패를 수반했다. 지난 10년 동안 개혁개방정책으로 생활은 나아졌지만, 대신 특권층의 부패가 만연하여 인민들의 불만의 대상이 되어왔다. 더욱이 경제 과열로 인한 인플레와 소득격차에서 오는 불만감 등이 상승효과를 내어 급기야는 정치개혁을 요구하는 민주화 시위로 발전했다.
3.사건의 발단 및 전개
중국의 민주화 시위는 1989년 4월 15일 급진개혁주의자로 학생들의 추앙을 받던 후야오방[胡耀邦] 전 당총서기가 심장마비로 죽으면서 불이 붙었다. 그의 사망소식이 전해지자 베이징대학교[北京大學校] 학생들은 그를 찬양하고 보수파를 비난하는 대자보를 붙이기 시작하여, 4월 17일에 베이징·상하이[上海]에서 학생들의 가두시위가 벌어졌다. 이를 기폭제로 베이징대학교의 학생 수천 명은 톈안먼(천안문) 광장에 집결하여 후야오방의 재평가를 요구하며 연좌시위에 들어갔다. 4월 22일 후야오방의 장례식에 수십만 명의 학생과 시민들이 참석하면서 본격적인 민주화 시위가 시작되었다. 5월 13일부터 2,000여 명의 학생이 톈안먼 광장에서 단식농성에 들어갔고, 5월 18일 시민·학생 100여 만 명이 단식농성 지지시위를 벌였다. 이에 당국은 19일 밤에 전격적으로 베이징에 군을 투입하기 시작했고, 5월 20일 베이징 일대에 계엄령을 선포했다. 이를 계기로 당내 보수파는 개혁파를 누르고 승리를 거두었다. 개혁파를 대표하는 자오쯔양[趙紫陽] 당총서기와 정치국 상무위원 후치리[胡啓立]가 축출되고 강경파인 리펑[李鵬] 총리가 정권을 장악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베이징의 시위는 중국 전역으로 번졌다. 상하이는 물론 선양[瀋陽]·창춘[長春]·창사[長沙] 등에서 전국적인 시위가 잇달았고, 결국 6월 4일 '피의 일요일'로 불리는 군의 대학살로 이어졌다. 중국군은 시위대를 무차별 살해함으로써 민주화 시위를 종식시켰다. 혼란이 계속되는 동안 모습을 나타내지 않아 사망설까지 나돌던 덩샤오핑이 6월 9일 공석에 모습을 나타냈다. 그는 이날 베이징 일대에 출동한 군지휘관들을 접견하여 '반(反)혁명 폭동'이 진압되었다고 선언함으로써 세계를 경악하게 했던 중국사태는 강경보수파의 승리로 끝났다
4.사건 이후 중국 정부의 동향
이후 중국 당국은 세계여론의 빗발치는 비난과 경제제재 조치에도 불구하고, 반대자들에 대한 체포와 숙청을 단행했다. 중국공산당은 6월 23일부터 2일간 제13기 4중전회를 열고 자오쯔양 지지세력을 제거하는 권력개편을 단행했다. 정치국원 겸 상하이 시 당서기 장쩌민[江澤民]이 자오쯔양의 뒤를 이어 신임 총서기에 선출됨으로써 리펑·장쩌민 체제가 정식으로 출범했다.
통일중국과 한중일 삼국 국가연합구성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중국도 자본주의민주주의 혁명 후 자유주의와 사회주의 공존 열린사회 선진국 자유민주정부로 나아가야 합니다 공산정부나 일당 독재 병정분리주의 군사대국 국가사회주의 국가체제로는 선진국이 될 수 없었으며 중국 민족끼리 분열과 반목으로 동북아 평화와 안정에 저해 될 것입니다
한족(漢族)이외 소수민족이 선진국 모델 자유화 민주화 정부를 구성할때는 한족(漢族)권력이 붕괴될 가능성도 있습니다
베이징대 학생들은 '민주살롱(Democracy Salon)'이라는 동아리를 조직하고 중국민주의 앞날에 대해 열렬한 토론을 벌리곤 했다. 6.4민주운동의 주역 왕단(王丹)이 이날 모임에서 발언하고 있다
1989년 4월 15일 후야오방(胡耀邦) 총서기 서거
Students on Tiananmen Square 23 years ago were dispersed with tanks and bullets
Hong Kong's Tiananmen vigil
Some of Hong Kong's busiest streets were closed to handle the large crowds attending the candlelight vigi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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