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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밤의 긴급작전 : 박근혜 포스터 200장을 붙여라 본문

-미국 언론-/아시아뉴스

간밤의 긴급작전 : 박근혜 포스터 200장을 붙여라

CIA Bear 허관(許灌) 2012. 6. 29. 16:16

 

 

6월 28일 오전 부산 동구 부산진역 인근 버스정류장에 새누리당 박근혜 전 비대위원장을 풍자하는 포스터 대거 나붙었다. 가로 60cm, 세로 1m 크기의 이 포스터에는 박 전 비대위원장이 백설공주 복장을 한 채 아버지 고 박정희 전 대통령의 얼굴이 그려진 사과를 들고 앉아 있는 모습이 담겨있다. 또 그림의 배경에는 청와대도 있다. 부산진경찰서는 박 전 비대위원장의 풍자 포스터 200여 장을 부산진역 인근 건물과 버스정류장 등에 붙인 이씨를 공직선거법과 경범죄처벌법 위반 등의 혐의로 조사할 예정이다(사진)

박근혜 풍자포스터 붙이던 날
동트기 전 종료하라, 매순간 경찰을 조심하라
 드디어 작전 개시다.

 

 지난 28일 새벽, 부산 중구 남포동 자갈치역 10번 출구 앞. 시계는 1시35분을 가리켰다. 한여름을 망각한 차가운 밤바람에 온몸이 후덜덜 떨려왔다. ‘빈 차’ 표시등을 켠 택시들이 인적 끊긴 거리를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그 거리에 3명의 남자를 태운 승용차가 멈춰섰다. 팝 아티스트 이하(본명 이병하·44)씨가 포스터 꾸러미를 들고 버스 승강장 유리벽에 붙이기 시작했다. 반절로 접혀 있던 가로 73㎝, 세로 100㎝의 대형 포스터가 펼쳐지자 ‘백설공주’로 그려진 박근혜 전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의 웃는 얼굴이 나타났다. 박 전 위원장의 한 손엔 사과가, 그 사과 속에는 박 전 위원장의 아버지 고 박정희 전 대통령의 얼굴이 담겨 있었다. 나비가 날아다니는 뒤쪽으로 청와대가 보인다.

 

 

자갈치시장서 부산일보까지
3시간가량에 걸친 대작전
길따라 200장 쓱싹쓱싹
앗, 여긴 경찰서 앞인데…
그래도 한 장은 붙이고 갑시다
 

 

 

“이야~완전 전시장이 따로 없는데요?” 버스정거장을 보더니 차를 운전해 온 동료 작가가 우스갯소리를 했다. 사방을 널찍한 유리벽으로 만든 버스정거장은 그렇잖아도 이씨에게 맞춤한 전시장처럼 보였다. 그는 “부자들의 취향에 맞춰 돈 되는 그림들만 전시되는 갤러리가 아니라 대중과 직접 거리에서 소통하고 싶다”고 했으니 말이다. 그와 동시에 부산광역시 관리자 이름의 경고문이 눈에 들어왔다. ‘본 시설물은 공공시설물로서 불법 광고물 부착 시 옥외광고물 관리법에 의거 500만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되며 훼손 시 손해배상청구 및 형사고발합니다.’ 과연 정치인을 담은 이씨의 ‘예술작품’은 공공시설물에 게시돼선 안 될 불법 광고물일까.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권력에 맞서는” 시험대로도 정거장은 딱이었다.

 

 이씨의 이날 목표는 자갈치시장에서 서면까지 부산 중앙로를 따라 박 전 위원장을 그린 포스터 200장을 붙이는 일이다. “그림을 통해 대중들이 박 전 위원장에 대해 갖고 있는 이미지에 대해 얘기해보고 싶어서”란다. 그 길 위에는 정수장학회 소유의 부산일보도 있다. 중부·동부경찰서 등도 있다. “혹시 경찰을 만나거든 괜히 싸우지 말고 그냥 곱게 협조하면 돼요.” 이씨가 처음 거리 퍼포먼스에 따라나선 동료들에게 당부의 말을 전했다.

 

 본격적인 ‘퍼포먼스’가 시작됐다. 컴퓨터로 작업한 디지털 이미지를 포스터로 만들어, 거리에 붙이고, 시민들과 반응을 나누는 전 작업이 그에게는 완결된 하나의 퍼포먼스다. 차에서 내린 이씨는 포스터 뒤쪽에 미리 붙여온 양면테이프를 떼어낸 뒤 유리창에 대고 쓱쓱 문질렀다. 프린트 잉크가 묻어나와 금세 손이 까매졌다. 그 모습을 다큐멘터리 작가 신준영(40)씨가 카메라를 들고 따라가며 찍었다.

 

 손님을 기다리다 지루했는지, 택시기사 2명이 차에서 내려 다가와 이씨가 하는 일을 물끄러미 지켜봤다. 그들은 바람에 날려 떨어진 포스터를 주워 이씨에게 건네주기도 했다. 그러고는 이내 주거니 받거니 작품 ‘분석’에 들어갔다. “아니, 왜 백설공주래?” “아, 이 사람아. 박근혜가 공주 아닌가, 유신공주.” “그럼 사과는?” “아, 사과 하면 대구잖아. 그 안에 박 전 대통령이 있고, 저 뒤에 보이는 게 청와대 아닌가. 음…그러면, 이거 박근혜 대통령 되라는 얘긴가?” “아니, 근데 백설공주 사과는 독사과잖아?” 두 사람은 정답을 알려달라는 표정으로 이씨를 돌아봤다. 이씨가 멋쩍게 웃었다.

 

 

아니 왜 백설공주래?
이 사람아, 유신공주 아닌가
그럼 대통령 되라는 소린가?
근데 독사과잖아!
행인들의 ‘품평’이 날아든다

 

 

 거리에 전시된 이씨의 작품은 그야말로 ‘열린 텍스트’였다. 작가가 무엇을 의도했든, 작가의 품을 떠난 작품은 보는 사람에 따라 다른 작품으로 태어났다. 연안여객터미널 앞에서 만난 70대 노인은 “여당 홍보하는 선거 (홍보) 포스터냐”며 “참 잘 그렸다”고 했다. 부산진역 부근에서 만난 한 대리기사는 “(박 전 위원장에 반대하는) 내 뜻과는 정반대지만 재밌다”며 껄껄 웃었다. 반면 한 50대 여성은 굳은 얼굴로 “도대체 이런 그림은 왜 그리는 거냐”고 따져 물었다. “독사과는 나쁜 뜻일 테고, 게다가 (박근혜를) 너무 안돼 보이게 그려서 마음에 안 든다”고 했다. “(박 전 위원장에 대해 사람들이 갖고 있는 이미지) 그걸 갖고 얘길 나누는 것, 그게 중요한 거죠.” 이씨가 말했다.

 

 이씨는 버스·택시정거장에 각각 적게는 4장, 많게는 8장까지 포스터를 붙였다. 부산에는 유난히 정거장이 많아 차는 가다 서다를 자주 반복했다. 중부경찰서 건너편 버스정거장에 차가 멈춰섰을 때 이씨가 말했다. “경찰서 앞인데 그냥 패스할까요?” 차 안에서 웃음이 터져나왔다. “에이, 그럴 수야 있나요. 기분인데 한 장은 붙이고 가야죠.” 차에서 내린 이씨가 포스터를 붙이고 경찰서를 배경으로 기념촬영까지 마쳤다. “서울에서 전두환 전 대통령을 그린 포스터를 붙일 땐 한 70장쯤 붙였을 때 경찰이 출동하던데 그래도 오늘은 경찰이 쫓아오진 않네요.” 이씨가 포스터를 붙이는 길 옆으로 간혹 순찰차들이 지나갔지만, 그를 못 봤는지 스쳐 지나갔다.

 

 저 멀리서 동이 터오기 시작했다. 준비한 포스터를 다 붙이지도 못했는데, 버스정거장에 있던 센서등이 새벽 4시48분께 자동으로 꺼졌다. 첫차가 다닐 무렵, 차는 부산일보 앞에 도착했다. 부산일보 입구는 셔터로 굳게 닫혀 있었다. 신문사 근처 버스정거장 두곳에 포스터를 붙이던 이씨가 성큼성큼 계단을 올라가기 시작했다. 정문 중앙 벽에 1장, 좌우 벽에 2장씩 모두 5장을 붙인 뒤에야 이씨는 계단을 내려왔다. 4시간가량 계속된 ‘작전’은 그 계단 끝에서 마침표를 찍었다.

 

부산/이정애 기자 hongbyul@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