멕시코·이라크 등 곳곳 지하9층 깊이에 철로까지 대형 폭탄도 파괴 못해
미국과 멕시코 사이 국경선은 약 3200㎞. 2001년 이후 이곳엔 100개 이상의 땅굴이 생겼다. 미국의 무기가 멕시코의 폭력조직에 공급되고, 멕시코의 마약이 미국으로 넘어가는 지하경제 네트워크의 핵심 루트다. 매년 250억달러(약 32조원) 상당으로 추정되는 양국 간 마약·무기 밀매에서 땅굴의 역할은 상당하다.2006년 6월, 땅굴에서 솟아오르듯이 순식간에 나타난 팔레스타인 무장조직원들이 이스라엘군 검문소를 공격해 스무살의 길라드 샬리트(Shalit) 상병을 납치해 땅굴 속으로 사라졌다. 팔레스타인 자치지역인 가자(Gaza) 지구의 무장조직은 3년째 샬리트를 협상 카드로 쓰며, 이스라엘 교도소에 갇힌 팔레스타인의 무장대원 450명의 석방을 요구한다. 땅굴은 가자 지구와 이집트 국경 사이의 '필라델피 회랑'에도 한때 3000여 개 존재했다. 작년 12월 말부터 올해 1월까지 있었던 이스라엘군의 가자 대공세 전까지, 매년 6억5000만달러(약 8300억원)어치의 무기와 생필품이 땅굴을 통해 오갔던 것으로 추정된다.
중동에서 멕시코까지, 다양한 땅굴들이 세계를 위협한다고 시사 주간지 타임 최신호(2일자)가 보도했다. 지하의 은밀한 거래로 땅 위의 세상을 지배하려는 '어둠의 네트워크'다.
- ▲ 중무장한 미 국경 보안당국 관계자가 멕시코의 국경도시 멕시칼리와 미국 캘리포니아주 칼렉시코를 잇는 마약 밀수 땅굴을 수색하고 있다. 이 땅굴은 멕시코의 마약조직‘티후아나 카르텔’이 만든 것으로 추정된다./타임
땅굴의 역사는 깊다. 베트남전쟁 때 사이공(현 호찌민) 시내에는 뉴욕 지하철에 버금가는 광범위하고 효율적인 땅굴 네트워크가 존재해 미군을 괴롭혔다.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 주둔하는 다국적군은 지금도 군 기지나 교도소 밑으로 파고드는 반군 세력의 땅굴에 골머리를 앓는다. 아프가니스탄의 무자헤딘은 1980년대 대소(對蘇) 항전 과정에서 대도시를 중심으로 다양한 땅굴 네트워크를 구축했다.
샬리트 상병을 삼킨 팔레스타인 가자 지구의 땅굴은 무기 밀매뿐 아니라, 이스라엘 봉쇄로 만성적인 생필품 부족을 겪는 가자지구 사람들에게 식품과 의약품을 공급하는 생명줄이기도 하다. 대개 20~30m 지하 깊숙이 파 내려가, 이라크전 당시 지하 벙커를 파괴하려고 제조된 무게 2t이 넘는 '벙커 버스터' 같은 대형 폭탄으로도 완전히 파괴하기가 어렵다. 이스라엘 국내 정보국인 '신벳(Shin Bet)'의 유발 디스킨(Diskin) 국장은 "이스라엘군의 대공세가 끝난 뒤 올 3월 말까지 약 70t 분량의 무기와 폭약이 땅굴을 통해 가자지구로 밀반입돼 하마스를 재무장시켰다"고 타임에 말했다.
- ▲ 지난달 27일 팔레스타인 가자 지구의 청년들이 이집트의 국경도시 라파로부터 연결된 땅굴을 통해 물자를 밀반입하고 있다./로이터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