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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正日, 남한 좌파정권 再창출에 실패한 통일전선부 대대적 숙청 본문

Guide Ear&Bird's Eye/국가안보 위해사범(NLPDR) 자료

金正日, 남한 좌파정권 再창출에 실패한 통일전선부 대대적 숙청

CIA bear 허관(許灌) 2009. 2. 7. 13:18

「순천비날론공장」직장장 처형의 내막
 지난 1월1일 북한당국은 노동신문·인민군대·청년전위의 공동사설을 통해 「사회주의 건설을 완성하기 위해 인민경제 선행 부분인 석탄 금속공업, 전기 생산을 늘리자」라고 강조했다.
 
  북한당국은 주요 기관·기업소의 재건을 강력하게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내각총리로 金正日(김정일)의 신임을 받으면서 북한 경제 재건에 앞장섰던 朴鳳柱(박봉주) 내각총리가 2007년 중순 순천비날론공장 지배인으로 임명된 것은 상징적인 의미가 있다.
 
  「순천만 일어서면 모든 것이 다 해결된다」고 10여 년간 떠들었던 북한 경제의 상징인 「순천비날론연합기업소」가 사실상 마비상태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朴鳳柱 총리가 순천비날론공장으로 내려간 이후 벌인 행보를 보면 북한 경제의 구조적 모순은 구제불능 상태에 이르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작년 말 순천비날론연합기업소의 공장 직장장이 평남 순천시 주민 수만 명이 보는 앞에서 수십 발의 총탄에 맞아 공개처형당한 사건이 발생했다.
 
  내부 소식통에 따르면, 당시 처형당한 공장 직장장은 在日북송교포 출신으로 해외 무역 등에 관여하면서 공장 직원들의 식량문제를 해결하는 데 앞장선 능력 있는 사람이었다고 한다.
 
  순천비날론공장 지배인으로 내려간 朴鳳柱 총리를 살리기 위해 공장 간부들과 지역 국가보위부 등 권력기관이 그를 희생양으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최근 입국한 한 탈북자는 당시 상황을 이렇게 설명했다.
 
  『朴鳳柱 총리가 작년 중순 순천비날론연합기업소 지배인으로 부임돼 현장을 둘러보면서 거의 「쇼크」 상태에 이르렀다. 수억 달러를 투자해 비날론과 비료, 각종 화학제품들을 생산하기 위해 만들어진 강철 구조물들은 대부분 뜯겨져 중국 등에 팔려 나갔고, 공장 자체가 껍데기만 남았기 때문이다.
 
  수만 명의 공장 직원들에게 내줄 식량과 월급을 대기 위해 공장 간부들은 내부 설비를 고철로 중국에 내다 팔았다.
 
  이 일을 북송교포 출신인 직장장에게 맡겨 그가 모든 對外(대외)교역을 관장했다고 한다.
 
  朴鳳柱 지배인은 「공장을 정상화시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결론을 내렸다. 문제는 金正日 위원장에게 어떻게 설명하는지가 큰 문제였다. 金正日 위원장은 「순천을 계기로 전국의 주요 기업소를 정상화시키겠다」는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朴鳳柱 이하 공장 간부들과 공장 설비를 해외에 팔면서 외화를 뜯어먹은 보위부 요원들은 결국 자신들이 살기 위해 해외교역을 주도한 직장장에게 모든 죄를 뒤집어 씌우는 데 합의했고, 그를 「간첩」으로 몰아 세웠다』
 
  직장장은 처형당하고, 朴鳳柱 지배인과 간부들은 살아남았다.
 
 
  북한 엘리트들, 盧武鉉 정권 교체 원했다!
 
2007년 2월27일 평양 양강도호텔에서 열린 제20차 남북장관급회담 환영만찬에서 이재정 남측 수석대표, 박봉주 내각총리와 권호웅 북측 수석대표가 건배하고 있다(왼쪽부터).

  북한정권에 非우호적인 보수정권이 탄생하자, 북한 최고위층은 물론 북한 주민들이 조심스런 반응을 보이고 있다.
 
  金正日을 비롯한 집권세력은 左派세력의 再집권을 기대했지만, 엘리트들과 밑바닥 민심은 「金正日만 살찌우는 盧武鉉 정권이 바뀌어야 북한이 바뀐다」는 쪽이었다.
 
  최근 나진-선봉 지역에 다녀온 한 在中동포는 『북측 경제인들이 李明博씨가 대통령이 된 것을 다행스럽게 생각한다』고 전했다.
 
  그는 『북한 정권만 살찌우는 무조건적인 지원보다는 개혁·개방 압력을 통한 상호주의식 지원에 북한의 경제 일꾼들이 동감하고 있다』고 했다.
 
  지난 10년간 남한의 햇볕정책으로 전성기를 구가했던 노동당 통일전선부는 「부정부패」와 「對南사업 실패」라는 司正(사정)의 칼날에 떨고 있다.
 
  北韓 내부소식통에 따르면, 한국 大選에서 李明博 후보가 압도적인 표차로 승리를 거두자 金正日의 진노가 극에 달한 것이 통전부 監察(감찰)의 시발점이 됐다고 한다.
 
  통전부는 지난 大選 기간 동안 남한에서 左派정부 再집권을 위해 기획안을 냈다고 한다. 「제2차 남북 頂上회담을 열어 화해의 분위기를 조성하고, 6者회담 등에서 한국 정부의 입장이 유리해지도록 양보하는 모습을 보이면 햇볕정책의 성과가 부각돼 左派 정권의 再집권이 가능할 것」이라는 내용이었다고 한다.
 
  모든 것이 실패로 끝나자 통전부의 수난시대가 시작됐다.
 
 
  통전부 숙청은 새로운 對南정책 예고
 
對南정책을 총괄하는 북한의 김양건 통일전선부장이 2007년 11월30일 김만복 국정원장의 안내를 받으며 부산세관으로 들어가고 있다.

  통일전선부는 노동당의 對外선전기관으로 남한의 통일부와 국정원을 섞어놓은 기능을 담당하는 부서다. 金大中 정부 이전에는 얼굴 마담들만 가득한 실권 없는 對南공작 조직이었다.
 
  「조선기독교연맹」, 「불교도연맹」, 「천도교청우당」, 「조선민주당」 등의 종교조직과 정당 조직들의 연합체로 직원들은 물론, 사무실조차 변변한 것이 없었다.
 
  1998년 金大中 정부가 출범하자 통전부 산하의 위장조직들은 보강되고 바빠지기 시작했다.
 
  金日成종합대학에 종교학과가 신설됐고, 이 학과 졸업생들은 통전부 요원으로 각종 위장 종교단체의 명함을 들고 활동하고 있다. 통전부에 외교능력과 對南전문실력을 겸비한 실력자들이 포진하면서, 명실상부한 對南전략의 기획·실천부서로 탈바꿈했다.
 
  통전부가 인기를 끈 것은 막대한 對北지원 물자를 독점 관리했기 때문이다. 남북회담을 하면서 남측 대표단이나 인사들에게 노골적으로 달러를 받는 것은 공개된 비밀이고, 온갖 남북접촉 등을 통해 벌어들이는 외화가 통전부 요원들의 부수입이 됐다.
 
  남북경협이나 對北지원사업을 통전부가 주도하면서 일부 통전부 요원은 벼락부자가 됐다. 다른 對南공작부서들은 심각한 소외감에 빠지게 됐다.
 
  제2차 남북 頂上회담 때 金正日이 북측 대표로 통전부 부장 金養建(김양건)을 배석시킴으로써 통전부의 위세는 절정에 달했다. 北-日 정상회담 때는 姜錫柱(강석주) 외무성 제1부상이 배석했다.
 
  반면 35호실과 대외연락부, 작전부 등 전통적인 對南공작부서들은 外貨難(외화난)과 시대적 변화로 소외돼 왔다.
 
  對南공작부서 출신의 한 고위탈북자에 따르면, 해외파견 첩보활동을 전문으로 하는 35호실은 최정예 간첩집단이었지만, 對外 간첩망들이 드러나고 활동비가 줄어들어 파견된 간첩들이 잠적하는 등 운영실태가 열악해져 가고 있다고 했다. 작전부도 서해교전과 같은 對南도발이 줄어들어 사실상 주목받지 못했다.
 
  李明博 정부의 출범으로 통전부 시대가 막을 내리고, 그동안 소외돼 왔던 다른 對南공작부서들이 주도권 쟁탈전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통전부에 대한 본격 감찰은 작년 말 중국內 경협창구였던 통전부 산하 「민족경제협력연합회」(민경련) 각 지부장들과 요원들이 일시에 국내로 소환되면서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중국의 베이징(北京)·단둥(丹東)·옌지(延吉)에 설치됐던 통일전선부 산하 민경련 창구가 일시에 폐쇄되면서 담당자들이 평양으로 소환된 이후 복귀하지 못하고 있다.
 
  최근 남북한 간에 합의됐던 각종 회담들이 줄줄이 연기되거나 취소되는 것이 통전부의 내부 상황과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對南공작부서 출신의 한 탈북자는 『통전부 사정에도 불구하고 북한당국이 중국식 전면 개방조치를 하지 않는 한 남측의 지원이 절실히 필요하기 때문에 통전부의 역할을 갑자기 줄이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제2의 임꺽정 시대
 
  남한에서 보수정권이 집권하면서 국가안전보위부 등 북한의 권력집단은 주민들에 대한 유례없는 통제를 가하고 있다.
 
  보위부 등은 주민들에게 『盧武鉉 정권은 북한 편이기 때문에 남한으로 도주해 봐야 별볼일 없다』고 선전해 왔고, 脫北(탈북)을 억제하는 효과를 보아왔다. 북한주민들이 남한行에 대한 기대가 높아지자 大量(대량)탈북을 사전에 막기 위해 국경지역의 숙박검열(보위부-보안서 등 야간 합동 검열)을 내륙지방까지 확대하고 있다.
 
  2007년 말 39세 미만의 여성들에게 장마당에서 물건을 파는 행위를 금지하는 조치가 내려졌고, 하루 7~8시간 운영되던 장마당을 하루 2시간으로 단축했다.
 
  최근 국경을 넘은 한 탈북자는 『북한 전역에서 장마당에 나온 여성들과 그들을 단속하는 保安員(보안원·경찰)들 간의 싸움질로 난리가 난 것 같다』고 했다.
 
  상업에 종사하는 39세 미만 여성들에게 직장을 배정해 출근을 시키자 가족 부양을 담당한 여성들이 아우성을 치고 있다는 얘기다.
 
  북한의 민간경제는 대부분 파산 상태여서 제대로 가동되는 기관 기업소는 찾아보기 힘들다. 함흥 출신의 탈북자 김영남(가명)씨는 이렇게 전했다.
 
  『북한 사람들 사이에 「왜정시대에도 장사를 못 하게 하지 않았다. 지금은 일제시대보다 더 악독한 세상이며, 의적들이 창궐할 수밖에 없는 제2의 임꺽정 시대다」라는 말이 나돈다.
 
  「양반 놈과 한 하늘 이고 살 수 없었네」라는 내용의 가사가 나오는 노래가 한때 금지곡이 된 적이 있다. 「제2의 임꺽정 시대」에는 軍隊(군대)의 노략질이 너무 심각하다.
 
  원유 가격 상승과 흉년이 거듭되면서 시장까지 통제되자 민간에 붙어서 연명하던 군대들이 야밤에는 도적단으로 변해 民家(민가)를 약탈하는 행위가 최근 급증하고 있다. 정상배급이 중단되는 군부대가 많아 군인 약탈을 부추긴다.
 
  道(도) 경계를 잇는 주요 도로에는 군대 마적단이 출몰해 자동차들을 습격한다. 예전에는 휘발유와 차에 실은 물건에 주로 손을 댔는데, 이제는 타이어와 자동차 부속품까지 뜯어내는 판이라, 잘못 걸리면 자동차 자체가 없어진다는 말이 나온다』
 
 
  중국 물가상승으로 직격탄 맞은 북한
 
  올해 초 中國(중국)의 물가가 평균 10~15% 급상승하면서 공산품과 식량을 중국에 의존하는 북한은 물가상승 압력을 받고 있다. 쌀 1kg이 900원에서 1400원으로 급등했다.
 
  설상가상으로 중국당국은 북한으로 수출하는 식량에 대한 10~15% 관세를 적용했다. 예전에는 쌀만 통제했지만, 밀가루와 옥수수까지 중국당국의 통제품목에 포함됐다. 중국 丹東(단둥)에서 북한과 교역을 하는 화교 출신의 왕장명(가명)씨는 『보통 연초에 북한 무역회사들이 金父子 생일을 앞두고 중국에서 식량을 구입해 가지만 올해는 어느 회사도 식량구입에 선뜻 나서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설날보다 더 큰 민족 최대의 명절로 취급되는 金正日 생일(2월16일) 공급도 예년만 못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