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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sia-Pacific Region Intelligence Center

수단 다르푸르 분쟁원인과 해결방안 본문

북아프리카 지역/수단

수단 다르푸르 분쟁원인과 해결방안

CIA bear 허관(許灌) 2007. 6. 25. 13:28

 

다르푸르(Darfur)를 아랍어로 '푸르족의 집'이라는 뜻

빌라드앗수단(Bild as-Sdn:'흑인들의 땅')에 있는 역사적 지역.

대체로 지금의 수단 공화국 서쪽 끝부분에 해당한다. 서쪽으로는 코르도판, 동쪽으로는 와다이가 있으며, 남쪽으로는 바르알가잘 강, 북쪽으로는 리비아 사막과 닿아 있다.

선사시대의 북부 다르푸르 주민들은 이집트 왕조가 생겨나기 전에 나일 강 유역에 살았던 종족과 혈연관계가 있었다. 아스완에서 남쪽으로 장사를 하러 다녔던 이집트 대상(隊商)들은 BC 2500년경부터 다르푸르에서도 활동한 듯하다. 전설에 나오는 다르푸르의 초기 다주(다구)족 통치자들은 고대 이집트와 관계를 가졌을 가능성이 있고, 다르푸르 사람들은 신왕국시대 (BC 1570~715)의 이집트, 그리고 쿠시 왕국(지금의 수단 북부)의 도시인 나파타와 메로에와도 교역을 했다. 다주족이 다르푸르를 다스린 뒤에는 툰주르(툰구르)족이 다스렸다.

다르푸르에서는 900~1200년에 그리스도교를 믿었으나 서쪽에서 이슬람교를 믿던 카넴보르누 제국(차드 호를 중심으로 한 왕국)이 동쪽으로 진출함에 따라 그 영향을 받게 되었다. 1240년경에는 카넴의 왕이 이집트에서 사이(Sai)까지 동쪽으로 뻗어 있는 교역로에 대한 지배권을 주장했는데, 이무렵부터 카넴과 보르누가 다르푸르에 영향을 미친 듯하다. 다르푸르는 카넴이나 보르누가 한창 강성할 때 두 나라 중 한 왕국에 편입되었을 가능성도 있다.

1640년경부터 1916년까지는 케이라족이 다르푸르를 다스렸다. 푸르라는 이름이 역사적으로 처음 언급된 것은 1664년이었다. 케이라족은 이슬람교를 믿었으며 케이라 왕조의 왕들은 이슬람교와 케이라족의 지배를 받아들인 흑인 주민들을 '푸르'라고 불렀다. 그러나 케이라족과 흑인의 혼혈이 차츰 늘어나자 케이라족이 '푸르'로 알려졌다. 다르푸르 사람들은 케이라 왕조 때 완전히 이슬람화했으며 다르푸르의 술탄들은 와다이 왕국과 때때로 싸웠고, 다르푸르에서 거의 독립을 유지하고 있던 아랍 부족들을 정복하려고 했다. 1870년대에 다르푸르는 이집트에 편입되었고 여러 번 반란을 일으켰지만 진압당했으며 1881년에는 루돌프 카를 슬라틴이 다르푸르 총독이 되었다. 그는 종교개혁가이자 수단의 정치지도자인 알 마디와 맞서서 영토를 지켰지만, 1883년 12월에는 결국 굴복했다. 그뒤 다르푸르는 알 마디의 영토에 합쳐졌다. 알 마디의 뒤를 이은 아브드 알라가 1898년 권좌에서 쫓겨난 뒤, 수단에 새로 들어선 정부(이집트를 다스리던 영국인들이 세웠음)는 알리 디나르를 다르푸르 술탄으로 인정했다(1899). 1915년에 알리 디나르는 반란을 일으켰으나 영국군 원정부대에게 죽음을 당했다(1916.11). 그뒤 다르푸르는 수단의 한 지방이 되었고, 나중에는 2개의 주(州)로 나뉘었다.

지리상 다르푸르는 약 44만㎢의 거대한 평원으로 평원 가운데에는 마라 산맥의 화산지대가 우뚝 솟아 있다. 마라 산맥의 평균높이는 2,200m이며, 최고봉인 마라 산의 높이는 3,088m에 이른다. 사람이 거의 살지 않는 다르푸르 평원은 황량하고 비교적 지형이 단조로운데, 특히 리비아 사막과 맞닿아 있는 북부지방은 더욱 메마르고 밋밋한 풍경을 보여준다. 돌이나 모래가 많이 섞인 토양에는 열대성 식물과 함께 계절에 따라 약간의 풀, 키 작은 가시덤불만이 자란다. 마라 고원에는 다르푸르의 다른 지역보다 많은 비가 내리기 때문에 산속에 수많은 와디(비가 내릴 때만 물이 흐르는 강)가 생겨나 평원을 가로질러 남쪽으로 흐른다.

다르푸르 북쪽의 주민 대다수는 아랍인이지만 남쪽에는 아랍인과 푸르족이 섞여서 살고 있으며 그밖에도 베자족·자가와족·누비아족·다주족이 있다. 마라 고원에는 비가 많이 내리기 때문에 쌀을 비롯한 곡식과 과일을 집약적으로 재배할 수 있다. 다르푸르 남부에서는 수수·기장·깨·땅콩(낙화생)·근채류(根菜類)·채소 등을 재배하고 건조한 북부지역에서는 낙타·양·염소를 키운다. 전통적인 수공예품으로 양탄자·가죽제품·목각제품이 있다. 주요도시는 니알라와 알파시르이다.

 다르푸르 분쟁2003년 2월부터 수단다르푸르지역에서 발생하여 계속되고 있는 인종과 종족간에 종교 문제 및 경제 문제가 얽혀 발생한 분쟁으로 지난 2004년에는 CNNAP통신 등 주요 외국 언론들이 '2004년 10대 뉴스’로 선정하기도 했다. 2006년 5월 현재 당사자들 사이에서 평화협정이 진행 중에 있다.

지난 4월 29일은 ‘다르푸르의 날’이었다. 이집트 아래쪽 아프리카 최대 국가 수단, 그 서부지역 다르푸르에서 벌어지고 있는 대학살 4주년을 맞아 세계 35개국에서 ‘피의 모래시계’ 시위가 벌어졌다. 시위대는 모래 대신 피가 담긴 모래시계를 들고 “더 이상 시간이 없다. 다르푸르 곳곳에서 피가 물처럼 흐르고 있다”고 외쳤다. 2003년 수단 정부가 아랍계 민병대 ‘잔자위드’를 투입해 시작한 학살로 지금까지 40만명이 죽고 난민 200만명이 발생했다.

 

1.수단 다르푸르(Darfur) 분쟁원인

이 분쟁은 아프리카 흑인계 반군과 잔자위드 ("말등에 탄 악마" devil on horseback 를 의미)라 불리는 북부 아랍이슬람 민병대간의 무력 분쟁이다.

수단이 1956년 영국에게 독립을 되찾은 후 부터, 정부는 거의 아랍인들로 구성되 있었고, 잔자위드에게 현대식 무기를 재공해주고 있는 걸로 알려져 있다. 이 분쟁 전에도 아프리카계 흑인이 살고있는 남부지역과 아랍 무슬림이 있는 북부의 관계는 순탄하지 않았고 1983년 내전의 원인이 되었다. 그 해, 수단의 정부는 샤리아를 수단의 법으로 만들었다. 이 법은 종교에 상관없이 모든 수단인들에게 적용되었다. 서부의 다르푸르인들은 남부의 흑인 아프리카인과 다르게 거의 무슬림이고 기독교인은 드물며, 수단의 정부에게 반란을 일으킨 적은 없다. 아랍 이슬람계 민병대는 흑인들을 대상으로 인종 청소를 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르푸르인들은 정부가 고의적으로 다르푸르를 등한시하고, 차별해왔다고 주장한다.

 (1)수단 다르푸르 분쟁이 지구 온난화가 원인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수단 다르푸르 참사의 근본 원인은 지구온난화 라는 색다른 분석을 제시했다. 반 총장은 16일(현지시간) 원싱턴포트에 실은 기고문을 통해 "기후 변화와 수단 사태는 다른 일로 보이겠지만 실은 깊이 관련돼 있다"고 지적했다.

 

 다르푸르 분쟁은 기후변화에 의한 생태학적 위기에서 비롯됐다는 것이다. AP.AFP 통신 등 세계 주요 언론도 반 총장의 기고문 내용을 보도하며 관심을 보였다. 다음은 기고문 요지.


1980년대부터 시작된 기후 변화로 수단 남부에서는 심각한 가뭄이 발생했다. 이로 인해 북부 아랍계와 남부 기독교계 흑인 사이에 분쟁이 촉발됐다. 그 과정은 이렇다. 인류가 만들어 낸 온실가스로 지구가 더워지면서 인도양 상공에서 만들어지던 계절성 열대 몬순이 사라졌다.


유엔 통계에 따르면 열대 몬순의 실종으로 지난 20년간 수단 남부의 강수량은 40% 이상 줄었다.

이 같은 현상은 심각한 생태 변화와 함께 정치.경제적 상황도 바꿨다.

 

과거 수단에서는 목축에 종사하던 북부 아랍계와 농사를 짓던 남부 흑인들이 평화롭게 살았다.

당시에는 식수와 식량이 넉넉해 남부 농민들은 북부 목동들이 가축을 몰고 와 물과 풀을 먹이는 일을 너그럽게 봐줬다.


그러나 가뭄이 심해지면서 사정이 달라졌다. 남부 농민들은 북부 아랍계가 식수와 곡물을 축낸다고 비난하면서 양측 간 대립이 시작됐던 것이다. 이런 반목이 점차 거세져 2003년부터 본격적인 내전이 벌어졌다.


사하라 이남의 가뭄은 인류가 책임져야 할 지구온난화에서 비롯됐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수단 사태의 원인도 여기서 찾아야 한다. 가뭄에 잘 견디는 곡물 개발과 관개 기술을 전파하는 일이 필요한 것이다. (중앙일보 남정호)

-수단에서는 목축에 종사하던 북부 아랍계와 농사를 짓던 남부 흑인들이 평화롭게 살았다.  그때도 온실가스는 더 많이 발생 했었다

그리고 강우량이 줄어들고 가뭄으로 물 부족과 식량 감소를 가져왔다(다르푸르 남부지방)


 (2)
다르푸르 북쪽의 주민 대다수는 아랍인이지만 남쪽에는 아랍인과 푸르족이 섞여서 살고 있으며 그밖에도 베자족·자가와족·누비아족·다주족이 있다. 마라 고원에는 비가 많이 내리기 때문에 쌀을 비롯한 곡식과 과일을 집약적으로 재배할 수 있다. 다르푸르 남부에서는 수수·기장·깨·땅콩(낙화생)·근채류(根菜類)·채소 등을 재배하고 건조한 북부지역에서는 낙타·양·염소를 키운다. 전통적인 수공예품으로 양탄자·가죽제품·목각제품이 있다.

 

(3)수단, 다르푸르사태는 석유 이권 싸움

수단은 지난 23년간 극심한 내전을 벌이다가 휴전된지가 불과 얼마 되지 않는다.  이 내전은 수단 전체를 이슬람 제국으로 만들려는 아랍계 정부에 대해 기독교인들과 토속신앙을 따르는 남부 흑인계 주민들이 반발하면서 발생한 것이다.  이 내전은 휴전으로 일단락되었지만 수단은 지금 또 다른 아픔이 현재진행형으로 계속되고 있다.  그것은 다르푸르사태이다.  앞서 언급한 내전이 그렇듯이 이 사태 역시 종교적 분쟁과 종족적 분쟁의 요소가 혼재되어 있다.  다르푸르사태는 외형상 친정부 이슬람 무장세력인 잔자위드가 기독교계 주민들을 공격하고 있고, 기독교계 주민들 역시 이에 반발하여 무장조직을 결성하여 대항하고 있다.

이 사태는 분명히 아랍계 이슬람 무장세력인 잔자위드와 그 배후의 정부군이 흑인 기독교도들과 벌이는 유혈참극이다.  그러나 또 다른 이면에는 석유 이권을 놓고 벌이는 기득권 싸움의 요소가 있다.  수단은 최근 유가 급등의 바람을 타고 유전개발이 한창이다.  수단에는 약 30억 배럴의 석유가 매장되어 있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수단정부 입장에서 이 유전지대를 흑인지역 안에 두고 싶어하지 않을 것이다.  서방의 여러 나라 지도자들은 수단정부와 이슬람 민병대가 흑인들을 상대로 내전을 벌이면서 인권탄압을 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 주장은 틀린 주장은 아니다.  노예사냥과 강간, 납치, 대규모 집단 학살 등이 분명히 있었다.  그러나 서구 여러 나라들이 이 문제를 거론하는데는 순수한 인도주의적인 동기 이외에도 인권탄압에 대한 국제적인 제재 등을 명분 삼아 수단 사태에 개입하면서 석유 이권을 챙기려는 계산이 있다고 보는 시각이 분명히 있다.
2.수단 다르푸르(Darfur) 분쟁 피해

그림:Darfur IDPs 1 camp.jpg

국제 연합은 2003년에서 현재까지 최소 40만여명이 숨지고 250여만명이 난민생활을 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난민들의 대다수는 차드로 피난을 했고 중앙아프리카 공화국로 피난을 한 사람들도 있다. 수단의 정부는 9000명만이 숨졌다고 주장하지만 사실이 아닌걸로 보인다.

그림:Darfur report - Page 7 Image 1.jpg

 

3.수단 다르푸르 평화협정

수단 정부와 최대 반군조직인 수단해방운동(SLM)의 미니 미나위단나이지리아 수도 아부자에서 아프리카연합(AU)이 주선한 평화협정에 서명했다. 그러나 SLM의 또 다른 계파인 압델 와히드 누르 그룹과 SLM의 경쟁 단체인 정의평등운동(JEM)은 일부 조건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며 평화협정을 거부했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수단 다르푸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오마르 알 바시르 수단대통령을 설득하는데 성과를 거둠으로써 국제분쟁 해결사로서의 면모를 과시했다.
유엔에 따르면 반 총장은 28일밤(현지시간) 아랍연맹 정상회의가 열리고 있는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에서 바시르 대통령과 압둘라 사우디 국왕, 알파 오우마 코나르 아프리카연합(AU)의장, 아무르 무사 아랍연맹 사무총장과 2시간동안 회의를 갖고 다르푸르의 분쟁과 인도주의적 고통을 조기에 종식시키기로 합의했다.
반 총장 등은 이런 인식에 따라 다르푸르 사태와 관련된 모든 정파들이 조만간 정치적 합의를 이루기로 했으며 AU와 유엔 공동의 평화유지군을 조식히 파견할 필요가 있다는데 인식을 같이했다.
반 총장은 회담후 기자들과 만나 “앞으로 10일안에 기술적 대표단을 아프리카에 보내 평화유지군 파견을 포함한 사항을 논의키로 했다”며 “다르푸르 사태를 해결하기 위한 돌파구를 마련했다”고 밝혔다.
유엔 관계자들은 유엔 평화유지군의 역할은 재정적 병참적 기술적 지원에 한정돼야 한다는 바시르 대통령의 요구를 일정부분 받아들여 AU 평화유지군을 중심으로한 평화유지군 숫자를 2만명으로 늘리는 방안이 집중적으로 논의됐다고 설명했다.
이날 오전 열린 아랍정상회의 개막식에서 반 총장은 “수단이 유엔 평화유지군 2만명을 받아들이도록 아랍연맹 회원국이 노력해달라”고 호소한 반면 바시르 대통령은 “유엔 평화유지군의 역할은 AU 평화유지군을 돕는데 한정돼야 한다”는 기존 입장을 고수했다.
그러나 장시간의 다자 회의끝에 진전된 합의를 이끌어 냄으로써 국제분쟁 해결사로서의 반 총장 위상은 한층 강화됐다. 더욱이 이날 유엔과 수단이 다르푸르지역 난민들을 돕기위한 국제구호단의 출입을 허용키로 합의한 상태라 다르푸르 사태도 해결기미를 보이게 됐다.
유엔은 작년 8월 평화유지군 2만명을 파견키로 결의했으나 수단이 아프리카연합 평화유지군만 받아들일수 있다며 이를 거부했었다.

 

-수단 다르푸르사태 해법으로 '석유식량교환프로그램'제안
수단의 다르푸르사태는 세계 외교가에서도 가장 풀기 힘든 난제에 속한다.  다르푸르사태는 2003년부터 수단 정부의 비호를 받는 아랍계 이슬람민병대가 흑인계 기독교 토착민들을 학살한 사건이고 이 학살은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다.  현재까지 학살에 희생된 사람은 20만 명이 넘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미국 등 일각에서는 수단에 대한 강경제재를 주장하고 있지만, 반기문 UN사무총장은 강경제재가 자칫 사태를 더욱 악화시킬 수도 있다고 보고 제재를 보류하자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게다가 수단은 비중동권에서는 매우 큰 규모의 유전이 존재하는 신흥산유국에 속하기 때문에 수단에 대한 경제제재는 결국 국제유가 상승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이처럼 난제 중의 난제인 다르푸르 문제를 풀기 위해 일각에서 이른바 '석유-식량 교환프로그램'을 해법으로 제시하고 있다.  이 프로그램은 과거 사담 후세인이 집권하던 시절 이라크를 상대로 시행했던 방식이다.  1991년 걸프전이 끝난 후 후세인 정권을 압박하기 위해 이라크에 대한 대대적인 금수조치가 UN의 주도에 의해 시행되었다.  그러나 이는 결국 이라크 내의 극심한 식량과 생필품 부족을 불러와 이라크 내의 대다수의 양민들이 극단적인 삶의 고통을 겪어야 했다.  그러자 새로운 대안으로 도입된 것이 바로 '석유-식량 교환 프로그램'이다.  즉 이라크 석유의 수출을 전면금지시켰던 방침을 완화하여 이라크의 양민들을 위한 식량과 생필품을 수입하는데 필요한 만큼만의 석유 수출을 허용하자는
방식이다.
만성 최빈국이었던 수단은 최근 몇 년 사이의 고유가 바람을 타고 전에 없는 경제 대호황을 누리고 있다.  이런 나라에 대해 '석유-식량 교환프로그램'에 의한 제재를 시행한다면 경제성장에 큰 타격을 주어 수단정부를 압박하면서도 제재로 인해 수단 국민들의 대규모 아사 등의 사태가 발생하는 것을 막고 최소한의 생활수준을 유지해 줄 수 있다는 발상이다.
그러나 말처럼 쉽지는 않다.  이라크의 경우도 이 프로그램이 실시되자 석유 판매고가 사실상 제재 수준 이전으로 복원되는 등 제재의 실효성이 의심스럽다.  반면 다르푸르에서 활동하는 구호기구들은 이 프로그램이 가동되면 어린이와 여성 등 사회적 약자들의 피해가 극심할 것이라며 반대하고 있다.  또 하나의 문제는 어떤 제재를 하든 국제사회의 의견 일치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원리주의적 기독교 정권이라는 별명까지 붙어 있는 미국 부시 행정부의 수단 정부에 대한 혐오는 굉장하다.  반면 수단의 원유 채굴권을 가지고 있는 중국은 수단 유전의 주고객인 동시에 수단 정부의 최대의 비호자이다.

 

-부시 대통령이 그제 다르푸르 학살을 중단시키기 위한 경제 제재를 내놓았다. 수단 국영기업들과 학살에 관여한 수단 정부 관계자들의 미국 기업·은행 거래를 금지하는 조치다. 미국은 유엔 안보리 제재를 주장하지만 중국은 반대한다. 중국은 석유 수입의 10%를 수단에 의지하는 데다 유전개발에 수십억달러를 투자하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은 제재보다 투자로 경제를 살리는 게 해결책이라고 맞선다

중국 호금도 사회정부나 미국 부시 자유민주정부 입장에서  볼때 아프리카나 수단 모두 자본주의민주주의 혁명 후 자유주의와 사회주의 공존 열린사회 자유민주정부로 나아가야 하고 아프리카 지역이 식량증산과 함께 공업화, 산업화 지역으로 변모돼야 할 것이다 국가사회주의 정부는 세계 모든 주민들의 적이고 21세기에서는 유엔(유엔군)이나 강대국(다국적군)에 의하여 청산돼야 할 국가체제이다

귀소리팀이 수단 다르푸르에 투입하여 수단 지도자들의 뇌를 개조하는 것도 올바른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