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추위가 본격적으로 기승을 부리는데, 새해에 들어오자마자 조미(북미)간의 정보전, 여론전이 열기를 달군다. 먼저 미국 정찰위성이 조선(북한)의 핵실험장소에서 심상치 않은 움직임을 발견했노라고 떠들더니, 뒤이어 조선에서 미국이 장거리 폭격연습을 했다고 질책했다. 중국신문들에서도 연일 대서특필하면서 여러 모로 분석했다. 생각되는 바가 많았다.
미국의 정찰위성 사진, 나중에 어디로 갈까?
미국이 이라크의 대량살상무기와 테러관련혐의 같은데서 개꼴망신을 하였지만 미국만능을 믿고 싶어하는 사람은 얼마든지 있다. 골수지지자와 흔들리기 쉬운 동맹자들에게 신심을 북돋아주기 위해서라도 미국은 위험개소를 전부 파악하고 있다는 자세를 보여줄 필요가 있는 것이다. 이번 제2차 핵실험준비의혹을 미국정부 측에서 부인했다 하지만 미국언론이 전혀 근거 없는 소리를 할 가능성은 적다. 오히려 미국 정부나 정보계가 예상이 빗나갈 경우에 대비해 일부러 언론에 정보를 흘렸을 수도 있다. 아무튼 이번 보도는 미국 측의 어떤 사람들이 의도적으로 조선에 강한 메시지를 보내려는 행위로 보인다. 말하자면 우리는 당신들의 움직임을 속속들이 알고 있다고.
전에 중국에 위성이 없을 때, 미국에서 심심찮게 중국핵시설 공중촬영사진을 공개해 중국에 압력을 가하려 들었다. 중국은 거기에 흔들리지 않았고, 또 후에 중국에서도 위성을 공중에 올려보낸 뒤 미국과 관계가 개선되니 그런 시시한 장난이 사라지고 말았다. 수십 년 지나 비밀해제가 된 다음 중국에서 옛날 미국의 간첩비행기와 간첩위성이 찍은 사진들을 사다가 보관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몇 십년 전의 중국은 공중촬영능력이 약했으니 그런 사진들이야 말로 귀중한 역사자료였던 것이다. 이처럼 길게 시간을 잡아 역사의 흐름을 훑어보면 미국 정찰위성의 신화와 기능만큼 웃기는 것도 드물겠다. 수십 년 세월이 흐른 뒤, 정보가치가 사라진 위성사진이 어디로 갈까 짐작해보는 것도 재미있는 일이 아닐까?
조선의 재빠른 반격이 눈길 끌어
조선의 반격은 예상외로 재빨리 그리고 명확하게 진행되었다. 재작년까지만 해도 각종 악성 루머에 대한 해명이 상당히 늦다는 느낌을 주곤 했다. 조선의 나쁜 이미지를 만들어내려는 적대세력의 언행이 어느 정도 효과를 본 다음 그 허구성을 밝히더라도 상대방은 어느 정도 목적을 달성하였다고 생각된다. 그런데 필자의 인상에는 작년부터 반응속도가 훨씬 빨라졌다. 이번 경우 조선에서는 마치 적수의 공격을 기다렸다는 듯이 즉각 상대보다 더 큰 정보를 내놓았다. 최고지도자의 허락이 없이는 그 정도 보도를 상상하기 어렵다. 몇 걸음 물러서더라도 적어도 정치국에서 선전을 맡은 위원의 비준을 받아야 할 것이다.
중국신문 <환구시보>는 8일 <조선에서 곧 제2차 핵폭발을 할 것인가?>라는 보도에 이어 9일 <미국 전투기가 조선폭격연습을 했다고 한다>는 보도를 실었다. 두 편 다 여러 나라에 주재하는 특파, 특약기자들의 연합기사였다. 9일 보도에는 “조선 매스컴에서 제일 먼저 보도하고, 미국과 한국 정부 측에서는 모두 태도를 표시하지 않아”라는 부제를 달았는데, 첫 부분의 두 마디가 흥미롭다.
“조선중앙통신사는 줄곧 그 독특한 입장으로 세계 여러 대형 매스컴에 깊은 인상을 남겨주었다. 이번에 정보색깔을 어느 정도 띤 보도는 대번에 사람들의 눈길을 조선에서 괌도 지역으로 끌어갔다.”
중국 전문가들은 핵실험가능성에 대해 회의적인 태도를 보여주었고 또 미국의 폭격연습보도는 여론을 조선에 유리한 방향으로 몰아가기 위해서라고 분석했다. 물론 맞는 말이다. 단 그 정도 이야기로는 필자의 의문을 풀지 못하니 불만스러울 수밖에 없다.
위성정보로 진짜 “빅 뉴스”나 만들어야겠는데
미국 정보의 내력은 분명하다. 기술을 좋아하는 미국인답게 최첨단과학성과인 위성을 이용. 미국에는 정보계에 몸을 담은 사람이 십만을 헤아린다고 하는데, 조선을 대할 때 쓸만한 잠복간첩이나 고용간첩이 없다고 울분을 터뜨리지 않을까? 그까짓 위성촬영이야 사실 힘을 내지 못한다. 이번에 발견했다는 케이블도 조선에서 감추려고 마음먹었다면 얼마든지 감출 수 있으니까, 결국에는 조선에서 보여주려고 한 것을 보았을 뿐이지 그 의도는 공상으로 추측할 수밖에 없다.
서방의 매스컴에서는 늘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일만에 공개활동을 시작했다는 보도를 하는데, 대체로 조선중앙통신사가 보도한 군부대 시찰에 흥미를 가지고(공장이나 농촌을 돌아보았다는 보도보다는 뉴스가치가 있으니까) 옮기면서 대개 이런 말을 첨부한다.
“실제 어느 날인지는 밝히지 않았다.”
조선의 보도에 익숙해진 사람들은 아마 보도 전날쯤의 일이겠다 짐작하겠지만, 사실 조선의 보도는 육하원칙에 어긋나는 내용들이 수없이 많다. 흔히 몇 해 지나서야 아무 달 아무 날에 어느 부대를 찾았다는 식으로 구체적인 날짜를 알리곤 한다. 미국의 간첩위성이 그 무슨 풍계리 같은 꿩 구워먹은 자리 위에 머물러 쓸데없는 케이블이나 찍기 보다는, 김정일 위원장의 **부대 시찰이 정확히 어느 날이었노라고 밝힌다면 그야말로 이른바 “빅 뉴스”요, 상대방에게 충격을 줄 만한 정보가 아닐까?
핵실험 성공 이후 김정일 위원장이 관련 과학자와 기술자, 공로자들을 접견했으리라고 짐작되는데, 현 상황에서 그런 보도가 공개될 리는 만무하다. 미국이나 한국의 정보계에서 그런 건이나 하나 확실히 잡으면 정형근씨가 가끔 누구의 건강상태가 어떻다더라고 입이나 아플 소리를 하기보다 낫겠다 싶다.
과학자 접견이야 실내에서 이루어져 간첩이 없이는 접근과 촬영이 불가능하다고 치자. 그런데 김정일 위원장의 군부대 시찰은 항상 야외에서의 기념촬영으로 끝을 맺는다. 신문의 표제까지 또렷이 찍을 수 있다는 미국 정찰위성이 그런 기념촬영장면이라도 하나 찍으면 얼마나 자랑거리겠는가? 헌데 비밀을 지키기 위해서인지는 모르겠다만 지금껏 보지 못했다.
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기 전이라고 기억되는데, 어느 기자가 독일의 군사움직임을 너무나도 정확히 보도해 독일정계와 군부에서 크게 화가 났다고 한다. 비밀리에 조사해본 결과, 그 기자는 전혀 비밀수법을 쓰지 않고 전부 공개보도에 근거해 정보를 파악했다 한다. 어느 장교가 승진했다거나 자리를 옮겼다는 보도 같은데 근거해 그 소속부대의 움직임을 알아내는 등등.
조선의 공개보도를 보면 군부대는 거의 전부 숫자 번호나 대호를 쓰지만 정보계라면 그런 번호의 내막쯤이야 알아내기 어렵지 않아야겠다. 또 작년 말처럼 김정일 위원장이 황해북도 일대의 발전소와 농장을 시찰한 보도에 이어 어느어느 군부대를 시찰했다는 내용이 나왔으니 대체로 어느 부대가 어느 지역에 있으리라는 것도 짐작이 되겠다. 아무리 김정일 위원장이 동에 번쩍 서에 번쩍 하고, 조선에서 의도적으로 보도 순서를 실제 시찰순서와 바꾸어 공개하더라도, 일단 무슨 보도가 나온 뒤 정찰위성이 황해북도 상공으로 옮겨가 죽어라고 감시하면 뒷북을 치지는 않을 텐데? 여태껏 정말 볼만한 위성정보가 나오지 않으니 필자는 실망할 지경이다.
조선의 정보는 어디에서?
최근에 <환구시보>는 일본에 있는 미군 레이더에 대해 보도했다. 고이즈미 내각이 국내 반대를 무릅쓰면서 땅을 내주어 미국이 레이더를 설치했는데, 조선 미사일을 낱낱이 감시할 수 있다고 불어댄 그 고성능레이더가 작년 7월 미사일 실험 때 전혀 감지하지 못했다던가? 분석결과 설치한 지대의 해발고가 너무 높아 고공으로 올라가는 대륙간 미사일 같은 장거리 미사일은 감지하더라도 저공에서 움직이는 중단거리 미사일은 발견할 수 없었다 한다. 그래서 미군은 저지대에 별도로 레이더를 설치하려고 하는데 아베 내각에 어려운 문제를 안겨주었다는 것이다.
투명도를 곧잘 자랑하는 미국은 이처럼 허실이 뒤섞인 정보를 흘리곤 하니까 정보수집방범과 한계(?)도 어느 정도 알 수 있게 해준다. 참으로 친절한 조치이다. 반대로 조선에서는 절대 자신의 정보수집방법을 알리지 않고 결론만 공포하니 정말 무뚝뚝하다. 군사애호가들의 불만을 자아내기 싶상이다.
달마다 “미제가 공중정찰 ***회를 감행했다”는 보도를 볼 때에는 이해가 된다. 레이더로 감시하면 공중비행은 파악할 수 있으니까. 헌데 전날 조선의 소설에서 총참모부에서 미군 비행기가 괌도에서 이륙해 어디로 날아온다고 보고하는 식의 내용을 보고는 머리를 갸웃하곤 했다. 더욱이 이번에는 허구가 허용되는 소설도 아니고 엄숙한 중앙통신사의 보도이니 그 진실성을 믿어야 하지 않겠는가? 미군이 철통 같이 방비하는 괌도에 조선간첩이 잠복했다고는 보기 어렵겠고, 설사 간첩이 있어서 전투기의 이륙을 발견하더라도 그놈의 전투기들이 어디로 날아가는지 알게 뭔가? 반도 부근에 들어온 다음에는 레이더 감시가 가능하겠지만 그놈의 비행기들이 어디에서 날아왔는지 알게 뭔가? B-52가 괌도에 상주한다고 하더라도 그 사이 일본이나 어디로 날아가 쉬다가 반도로 날아들었는지 어떻게 아는가?
그런데 조선에서는 괌도에서 떠난 비행기가 공중급유를 한 다음 반도 상공에 들어와 폭격연습을 했노라고 제법 상세하게 보도했다. 미군은 이에 대해 평론하지 않았지만, 조선 보도의 어느 한 세부라도 사실과 다르면 속으로 코웃음 칠 테고, 만약 사실과 꼭 같다면 적잖은 충격을 받았을 것이다. 미국의 정찰위성이 “난 너를 보았노라”는 수준에 그쳤다면 조선은 “난 네가 무엇을 하려는지 알고 있노라”고 선포했으니 분명 몇 수 위이다. 만약 공중급유 장소, 그 경도와 위도까지 조선에서 낱낱이 밝혔더라면 미군 비행사들의 목이 자라목이 되고 말겠다. 물론 조선에서 그렇게까지 말할 필요는 없다. 그러면 정보수집방법이 드러날 위험이 있으니까.
아무튼 필자로서는 조선의 정보수집수단이 수수께끼이다. 혹시 태평양에 떠있는 조선의 배에서 감시를 하는지 아니면 조선 잠수함이 원양에 나가 감시를 하는지(지금까지 알려진 조선 잠수함은 원양항행능력이 없는 듯 한데) 아니면......
사실 러시아나 중국에서는 그 정도 정보수집이 가능하다. 우선 태공에 위성을 띄워놓았고 바다 위에도 첨단장비를 갖춘 배들이 있으니까. 그런데 조선에 독자적인 위성이 없다는 것은 세상 사람들이 다 아는 바이다. 저번 핵실험 뒤에 러시아에서는 제꺽 자기네하고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혐의를 벗기에 급급해났다. 이번에는 미국 정부나 군부에서 러시아에 의심의 눈초리를 던지지 않아서인지 별 소리를 하지 않았다. 사실 중국이나 러시아가 조선과 군사위성정보를 공유하는 가능성은 0이라고 해야겠다. 이번의 조선 보도가 100% 사실이라고 할 때, 러시아나 중국의 군부 고위층에서는 고개를 끄덕이며 조선의 능력을 인정해주기 십상이겠다.
만에 하나 조선의 정보가 위성을 통해 얻은 것이라고 할 때, 조선에서 남의 위성을 이용해 정보를 수집하는 능력을 갖췄다고 추측하면 너무 황당할까? 수많은 수수께끼가 풀리려면 만능에 가까운 세월에 맡길 수밖에 없다. 비밀이 해제되고 진실이 드러날 때까지 건강하게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새삼스레 떠오른다. (2007년 1월1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