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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용기 있는 매체들의 잇단 등장으로 중국 언론통제 어려워져

CIA Bear 허관(許灌) 2006. 3. 5. 13:48
용기 있는 매체들의 잇단 등장으로 언론 통제 어려워져
차이나포커스(www.chinascope.co.kr) 2006. 2



-최근 베이징의 신생언론 신경보(新京報)의 인사이동이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신경보는 중공 중앙선전부 소속의 광명일보(光明日報)와 광둥 남방언론그룹이 합작해서 설립한 회사이다. 신경보와 남방언론그룹 산하의 남방주말보(南方周末報), 남방인물주간(南方人物周刊)등 간행물은 중국에서 수준 높은 글로 이름이 높다.-

용기 있는 매체의 잇단 등장으로 중공 통제 어려워져
2005년 12월 말, 용기 있는 보도로 유명한 와 잡지가 중공 당국으로부터 동시에 정비를 당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편집인은 내부에서는 이미 원래 당국이 교체하려 한 부편집장 쑨쉐둥(孫雪冬), 리둬위(李多鈺)의 직위를 보류하고, 총편집장 양빈은 교체될 것이라는 소문이 있었으나 아직까지는 정식 통지를 받지 못했다고 밝혔다. 정비를 당한 편집 업무는 이미 중공을 대변하는데서 전면적으로 관할하고 있다.

잡지의 황 편집장은 얼마 전 ‘상부,로 부터 잡지의 표지와 칼럼, 품격 및 내용을 바꿀 것을 요구받았으며, 아직까지 인사 변동은 없다고 밝혔다. 그는 동시에 잡지가 독자의 기대를 버리지 않을 것이며, 계속해서 원래의 창간 방향과 취지를 고수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최근 사회의 어두운면과 중공의 흑막을 용감하고 솔직하게 보도하는 매체들이 각기 다른 정도의 제제를 중국 당국으로부터 받고 있다. 잡지 등에 이르기까지 용기 있는 보도를 하는 매체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으나, 당국에 의해 중공의 입장만을 대변하는 보도 노선으로 강제로 끌려가거나 발행이 중단되고 있으며 혹은 기자와 편집인들이 사임하는 사건이 끊임없이 나타나고 있다.

인터넷 작가 류이밍(劉逸明)은 의 몰락은 양심적인 중국 매체 운명의 축소판이라고 하였다. 사회의 불공평과 일반 시민들의 위태로운 처지에 대해, 과 같은 일부 매체들이 양심을 찾아 마침내 자신의 진실한 소리를 냈고, 일부 민감한 사건과 약자 집단에 대해 적극적인 여론의 관심을 보냈다. 냉혹한 사회 현실 앞에서, 중국 매체들이 직면한 것은 양심을 따를 것인가 아니면 악을 묵인하고 따를 것인가 하는 것은 쉽지 않은 선택이다.

다른 관련인사들은 비록 끊임없이 탄압을 받고 있지만, 많은 대륙 매체와 신문업계 종사자들이 이미 당국의 명령에 복종하기를 원치 않으며, 이것은 이미 내우외환에 빠진 중공 고위층으로 하여금 통제를 더욱 어렵게 하고 있고 인터넷의 보급으로 인해 이러한 통제도 더욱 어렵게 되었다고 지적한다. 탄압받는 매체들이 많아질수록, 이는 노예 역할을 원치 않은 매체와 언론인들이 많아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며, 게다가 하나의 흐름으로 형성되어 중공이 통제하고 있는 미디어 기업들도 시장 경쟁이 날로 치열해지는 상황에서 대중들에게 당국이 격노할 뉴스들을 제공하게 될 것이다.

잡지 편집장: 앞으로도 계속 창간 방향과 취지를 고수할 것
외부 소식통에 따르면, 대륙 매체들 중에서 성망이 높은 잡지가 12월 29일 폐쇄 조치 당했다. 사건의 내막을 알고 있는 사람들은 해당 잡지의 글이 공산당 고위 지도자들의 불만을 샀기 때문이라고 한다. 어떤 사람들은 잡지에 게재된 허베이지저(河北鷄澤), 허베이 싱타이(河北刑台), 허난타이캉(河南太康) 등 일련의 중대 기사들을 게재하여, 중공 관원들의 미움을 샀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독자들에 따르면, 올해 제1호 잡지의 표지에 갑자기 이전의 ‘변혁 중인 중국의 기록’이라는 구호가 삭제되었고 유명 칼럼인 ‘조사’, ‘관찰’ 등도 자취를 감췄고, 백성 잡지 인터넷 사이트는 접속할 수 없었다. 한 소식통에 따르면 이 인터넷 사이트는 대륙 경찰에 의해 폐쇄 조치를 당했다고 말했다.

백성 잡지 편집장은 얼마 전 ‘상부’의 지시가 있어, 잡지의 표지, 칼럼, 풍격 및 내용을 바꾸라는 요구를 받았다며 대기원에 밝혔다. 현재 웹 사이트는 복구 중이다.

기자가 신경보의 상황과 유사한지를 묻자 그는 “신경보는 인사이동이고 우리는 표지, 칼럼의 변동으로 아직까지 인사이동은 없습니다.”라고 말했다.
백성 잡지가 예전과 다름없이 압력을 두려워하지 않을 것인지 묻자 그는 “압력은 언제든지 항상 있어왔습니다. 우리는 독자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을 것이며, 계속해서 우리의 원래 창간 방향과 취지를 고수해 나가겠습니다.”라고 밝혔다.

직원 항의 국제적인 관심사로
의 익명을 요구한 한 편집인은 내부에서는 이미 당국에서 원래 해임하려 했던 부편집장 쑨쉐둥, 리둬위는 직위를 보류 당했고, 총 편집장 양빈은 해직 당할 것이라는 소문이 돌고 있는데 아직 정식 통지를 받지는 않았다고 밝혔다. 정비를 당한 후의 편집부는 이미 중국 공산당의 대변자인 에서 전면적으로 인수하여 관리하고 있다.

신경보는 2003년 연말에 창간되었고, 주요 편집과 취재 인력은 ‘용기 있는 보도’로 이름난 광둥 남방미디어그룹 출신들이다. 풍격이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관계로 베이징 지식인층과 화이트 컬러 계층에서 확고한 시장과 명성을 확보하고 있다.

중앙사의 보도에 따르면, 총 편집장과 부 편집장의 파면에 항의하기 위해 파업을 일으킨 베이징 ‘신경보’ 기자단들은 현재 이미 업무에 복귀하였으나 엄밀한 감시를 받고 있고 신경보 사무실은 공포 분위기에 휩싸여 있다고 보도했다.

이번 사건이 일으킨 광범위한 국제사회의 관심은, 중국내 인터넷상에서도 강렬한 반향을 일으켰다. 대부분의 네티즌들은 의 이번 인사 변동과 이 신문이 2005년 6월 허베이 딩저우(河北定州) 당국이 대규모 농민시위를 진압하는 과정에서 6명이 사망한 소식을 보도한 것과 관련이 있다고 여긴다. 이외에도 쑹화강(松花江) 오염이 하얼빈(벗랑깝) 단수 사건을 초래한 것과 관련하여 당국의 사실 은폐를 가 가장 앞장서 비판한 것과도 관련이 있다고 한다.

다시 ‘지뢰를 밟다’
싱가폴 연합조보(聯合早報)의 최근 보도에 따르면, 총편집장 양빈이 갑자기 교체된 데 이어 자매지인 광저우 에서도 부편집장 샤이타오(夏逸陶)가 해직되었다고 한다. 샤이타오가 해직된 이유는 해당 신문에서 최근 헤드라인에 광둥성 부성장 유주펑(游?豊)이 중앙 정부 행정에 중대한 과실을 기록에 남긴 것을 부각시켜 보도하고, 9월에 판위(番?) 타이스촌(太石村) 촌민들이 집단으로 관리의 파면을 요구한 소식을 보도한 것과 관련이 있다.

산하의 남방일보신문그룹 내부 소식통은 이것은 광둥성 위원회 선전부가 샤이타오의 두 가지 죄를 함께 처벌한 결과라고 알려주었다.

소식에 따르면, 남방일보 신문그룹은 중국 공산당 광둥성위원회 선전부가 직접 이끈다고 한다. 2003년, 광명일보(光明日報)와 남방일 가 합자하여, 지식인들과 화이트계층을 주요 대상으로 하는 를 창립했다.

보도에서는 소식통들이 와 의 책임 편집인들이 거의 동시에 해임된 것은 아마도 분명한 내재적 연관이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고 한다. 는 당국의 심기를 너무 많이 건드렸고, 는 광둥성위원회 선전부의 여러 차례 경고에도 불구하고, 쑨즈강(孫志剛) 사건부터 시작해서 계속 지뢰를 밟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광동성위원회 선전부는 분명 중공 중앙 선전부의 경고를 받아 인사 정비를 진행한 것이다.

2004년 6월, 의 원래 부편집장 겸 사장이었던 위화펑(喩華峰), 총편집장 이었던 청이중(程益中) 및 남방일보 회사위원회 위원 리민잉(李民英)은 광둥 당국에 의해 횡령, 뇌물 수수 혐의로 고발되었다. 당국은 나중에 청이중을 불기소 결정했고, 위, 뤼는 각각 광저우시 법원에서 징역 8년과 6년을 판결 받았다.

일반적으로 외부에서는 위화펑, 청이중 등이 보도내용 때문에 처벌받았다고 보고 있다. 왜냐하면 는 2003년 먼저 쑨즈강 사건을 폭로하고, 광저우에 다시 사스 유사질병이 나타나고 있다는 보도를 독점 보도했기 때문에 광둥성의 일부 관료들로부터 보복을 당한 것이라는 것이다.

고위층에 배척당해
대만 중앙사의 최근 보도에 따르면, 베이징 중국청년보는 최근 2년 동안 ‘보도하지 말아야 할 것을 보도’ 한 신문으로 배척을 당했다. 중국청년보는 공청단 계통의 신문으로 1951년에 창간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중국 공산당 산하의 다른 간행물과는 달리 중국청년보는 발행 초기부터 비교적 용기 있게 보도하여 이러한 전통이 지금까지 이르고 있다.

2004년 전후, 중국청년보는 계속 쓰촨(四川) 완위엔(萬源) 민관대치, 우한(武漢) 현지 대학생 매춘 및 여성 유명 스타가 특권을 이용해 고가로 콘서트 입장표를 판매한 것 등의 사건들을 폭로했다. 이러한 ‘보도하지 말아야 할 것을 보도한 신문’은 중국 공산당 관련 부문을 매우 불쾌하게 만들었고 중국청년보의 관련 기자와 편집인들은 가벼운 처벌을 받았으며, 2005년 중순, 중국청년보는 또 다시 대만 작가 롱잉타이(龍應台)의 대만 관련 글을 게재하여 다시 비판당했다.

2005년 8월, 내부 심사 표준이 유발한 격렬한 논쟁이 한층 더 확대되면서 이 신문의 베테랑 기자 리다퉁(李大同)이 총편집장에게 보낸 서신이 폭로된 데 이어, 청년화제면 편집장 리팡(李方)이 글을 발표하여 정식 사퇴를 밝혔다. 그는 글에서 내부의 구체적인 사람과 일을 언급하기를 원하진 않았으나, 어떤 사람도 자유롭게 표현할 권리가 있다는 것을 강조하며 어떤 관점 나아가 신앙의 강요나 위협을 받아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중국 당국은 이미 공산당 대변지 ‘인민일보’ 관리 직원을 파견하여 중국청년보에 상주하게 했다. 그러나 신문의 이념이 너무 차이가 커서 새로 임명된 간부들이 중국청년보에서 무언의 배척을 당하고 있다고 밝혔다.

일부 기자와 편집인 집단 사임
작년 8월, 깊이 있는 평론으로 유명한 베이징 의 일부 기자와 편집인들이 집단 사임하였다. 사임한 사람들 중에는 쉬즈위안(許知遠), 위웨이(于威), 스옌(史彦), 사오잉보(邵穎波), 황지신(뼝?劤), 장판덩(張帆等) 등 대다수가 평론팀원들이다. 그 중, 쉬즈위안은 의 편집장이자 주필이다.

쉬즈위안은 사임하기 전에 자신의 블로그에 올린 칼럼에서 ‘Let's try something new’라는 제목의 글을 발표했다. 문장의 일부를 인용하면, “나는 지금의 신문사들이 도대체 어떤가에는 관심이 없다. 아마도 그것은 줄곧 이러한 유전자가 있었고,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중국의 거의 모든 조직들이 유사한 잘못을 저질렀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지난 4년은 괜찮은 세월이었다. 나와 함께 일한 친구들에게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만약 우리들의 정서와 이상이 이렇게 쉽게 어리석고 속된 사람들에게 무너진다면 우리들의 이상은 시련을 면치 못할 것이다.”

“내가 떠나는 주된 원인은 이 기구의 정의감이 철저히 소실되었기 때문이다. 비록 그것은 나에게 직접적인 영향은 없지만, 나는 어떤 때 항상 일부 기본 입장들은 수호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현재의 경제관찰보가 혐오스럽다. 마치 당파투쟁을 하는 것처럼, 얼마나 많은 정치적 정확성과 불투명성이 있는가? 우리가 성공한 것은 우리의 방식이 간단하기 때문이지 복잡하기 때문이 아니다.”

발행 중단은‘상부의 뜻’
용감한 보도로 유명하며 중국내에서 어느 정도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가 2005년 11월 15일 갑자기 발행이 중단 되었다. 당국은 이 신문의 장기적인 적자 상황을 전환할 수 없었던 것이 발행 중단의 주요 원인이라고 지적하지만, 웹 사이트에서 5일 발표한 휴간 공고에서는 ‘신문업계 구조조정 필요’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소식통들은 잇달아 발표한 글에서 각종 내막을 폭로하여 관계 당국의 불만을 산 것이 휴간된 중요 원인이라고 밝혔다.

기자가 전화로 내부 상황을 문의했을 때, 한 여사는 이 신문이 휴간된 것은 사실 오랫동안 토의된 것으로, ‘상부’의 뜻이라고 애매하게 밝혔다. 기자가 ‘상부’가 누구를 가리키는지 묻자 그녀는 잠시 주저하다가 선전시 신문그룹과 직접 언급하기 어려운 더 높은 ‘상부’가 있을 거라고 말했다.

탄광 사고 비리를 폭로한 정간 당해
하남성의 한 지방 신문인는 탄광사고 후의 ‘입막음 비용’ 스캔들을 보도하여 지방당국에 의해 1개월간 정간 당했다.

AP 통신의 작년 9월 28일 보도에 따르면, 의 한 직원이 탄광사고 처리 과정에서 많은 취재기자들이 광산 업자로부터 입을 다무는 대가로 돈을 받았다는 뉴스를 보도하여, 당국에 의해 정간 명령을 받았으며 정간 기간은 9월 17일부터 10월 16일까지였다.
작년 7월 31일에 발생한 탄광이 물에 잠긴 이 사고는 아직까지 정식으로 결과가 밝혀지지 않고 있다. 그러나 는 보도에서 정확한 수는 모르지만 광부들이 물에 빠져 죽거나 부상을 당했다고 밝혔다.

판우펑은 를 통해 스캔들을 폭로하고 여론을 불러일으켜 전국적으로 많은 동종업자들의 지지를 받아왔다. 그러나 판우펑의 현장 녹음 자료는 몰수당했고 신문사 취재와 편집책임자들이 사임 당했으며 판 기자 본인도 이 때문에 하남을 떠나야 했다. 중국 매체에서는 상부의 금지령으로 인해 뇌물 스캔들 보도를 계속 엄금하고 있다.




출처 : 아시아연방론
글쓴이 : CIA bear 허관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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