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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김형욱 전(前)중앙정보부장과 김형욱 전(前)중앙정보부장 실종사건 자료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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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김형욱 전(前)중앙정보부장과 김형욱 전(前)중앙정보부장 실종사건 자료

CIA bear 허관(許灌) 2005. 5. 26. 12:01
1.김형욱 전(前) 중앙정보부장
(1)성명: 김형욱(金炯旭)
(2)생년월일: 1925년 1월 16일(양력, 쥐띠)
(3)출생지: 황해도 신천
(4)학력
ㄱ.육사 졸업
ㄴ.육군대 졸업
ㄷ.경희대학교 정치외교학과 졸업
ㄹ.경희대학교 대학원 석사
(5)경력
ㄱ.5.16군사쿠데타 최고회의 최고위원
ㄴ.1963년 7월----1969년 10월 제4대 중앙정보부 부장 역임
ㄷ.1971년 4월----1972년 10월 제8대 국회의원(공화당 전국구)
ㄹ.1973년 4월 미국 망명
ㅁ.1979년 10월 프랑스 파리에서 실종
(6)가족관계
배우자 ---- 신영순(申英順, 1932년생)
2.국정원 과거사 진실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이하-진실위) 김형욱 실종사건 중간조사 발표내용
조사결과에 따르면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은 1979년 9월말 이전 중정의 프랑스 거점장이던 이상열 주프랑스 공사에게 김형욱 실해를 지시했으며 이에 따라 이상열 공사가 적임자로 선정한 중정 연수생 신현진(가명)이 살인청부를 받은 제3국인 2명과 함께 1979년 10월 7일 승용차로 납치, 파리 근교로 끌고가 제3국인이 권총으로 살해했다
이들은 당시 김형욱 전부장의 시신을 낙엽으로 덮어놓은 채 현장에서 빠져나온 것으로 파악됐으나 신현진이 기억이 나지 않는다며 사체유기 장소를 진술하지 않아 추가조사가 필요하다고 진실위는 설명했다
-이상열 공사가 김형욱 전중앙정보부장으로부터 돈을 빌려달라는 요청을 받고 전주를 소개시켜주겠다며 1979년 10월 7일 샹젤리제 거리에서 만나기로 한 뒤 신현진이 제3국인 2명과 함께 이상열공사의 차량을 이용해 납치한 것으로 조사됐다
-제3국인 2명은 김형욱 전중앙정보부장을 살해한 뒤 신현진과 함께 사건에 연수행인 이만수(가명)로부터 미화 10달러가 든 돈을 받은 것으로 파악됐다
-이상열공사는 관저에서 신현진으로부터 결과를 보고받고 김형욱 전중앙정보부장의 여권과 지갑은 자신이 갖고 나머지 소지품은 철저히 인멸한 뒤 귀국할 것을 지시했고 신현진은 귀국 후인 1979년 10월 13일께 김재규 부장에게 결과를 보고했다고 진실위는 설명했다
김재규 부장은 당시 신현진의 보고를 받고 격려한 뒤 그를 중정부장 직속기관인 정책연구실로 발령하고 300만원과 2만원이 든 봉투 두개씩을 지급 이만수와 나눠갖도록 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와함께 김형욱 전중앙정보부장을 파리로 유인하는 과정에 관련된 것으로 의혹이 제기됐던 연예인 최모, 정모씨등 여성 3명을 면담한 결과, 개입정황을 발견하지 못했다고 진실위는 덧붙였다
-진실위는 당시 중정 주프랑스 거점 요원 및 연수생8명과 박정희전대통령 시해사건 수사총책전두환 전대통령을 포함해 관련인물 33명에 대한 면담을 실시했으며 이상열공사에 대해 3차례 면담조사를 했으나 사건 개입 사실은 부인하지 않으면서도 관련내용에 대해서는 진술을 거부했다


3.신문보도 내용 자료
(1)김형욱 전(前) 중앙정보부장 실종사건 개요와 쟁점(연합뉴스 자료)
김형욱 전 중앙정보부장 실종사건은 김대중 납치사건이나 정인숙 피살사건과 함께 박정희 정권의 3대 미스터리 사건으로 꼽힌다
김형욱 사건은 폭력집단이나 북한 또는 국가권력등 납치실체에 대한 의문점 못지 않게 국가권력이 자행한 것이라면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이 배후인가 아니면 그와 충성경쟁을 벌이던 차기철 경호실장의 소행인지 여부도 관심을 끄는 대목이다
김형욱 전 중앙정보부장은 10.26사건 3주 전인 1979년 10월 7일 오후 7시 프랑스 파리 <르 그랑 세르클> 카지노를 나선 이후 (당시 54세) 실종됐다
역대 중앙장보부장 중 최장수인 6년 3개월간 막강한 자리를 지키다 전격 경질된 김형욱은 1973년 미국 망명길에 올랐다 이후 박동선 로비 사건을 조사 중인이던 미국 의회의 프레이저 청문회 등에 나가 입을 열기 시작하면서 박정희 정권의 표적이 됐다
그는 실종 전 항공편으로 뉴욕에서 파리에 도착 특급호텔인 리츠호텔에 머물다 2류호텔인 웨스트앤드 호텔로 옮긴 뒤 카지노에 들렀다가 행방불명 됐다
박정희 정권은 김형욱이 3공화국이나 유신정권의 비리를 폭로하는 회고록을 출간하려 한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1977년-1979년 윤일균 당시 중정차장(해외담당), 이용운 전(前) 해군제독(작고)등 친분이 있는 인사들을 밀사로 미국에 보내 1백 50만 달러 제공, 여권보장 등 구체적인 조건을 놓고 막후 협상을 벌인 것으로 알려졌다
김형욱 사건은 4반 세기를 지난 지금도 파리에서 중앙정보부 요원에게 살해되어 무거운 추에 매달려 센느강에 던졌다느니 비밀리에 청와대로 압송돼 청와대 지하실에서 사살당했다 등의 구구한 억측만 자아낼 뿐 미스터리로 남아 있다
김형욱씨는 1991년 서울가정법원에서 <1984년 10월 8일 사망한 것으로 간주한다>는 실종선고 판결을 받은 뒤인 1996년 특별조치법에 대한 위헌결정 후 형사재판에서 무죄가 선고됐다
김형욱 실종사건의 핵심은 국가권력의 개입여부, 마피아등 조직범죄 집단이나 북한의 개입 가능성 등 배후세력의 실체에 모아진다
범행 주체를 둘러싼 논란에서 카지노와 관련된 폭력집단이 금품을 노리고 범행을 했거나 북한이 관련됐을 가능성은 낮은 것으로 보이며 당시 여러자기 정황을 고려할때 국가권력의 개입 가능성이 가장 높다
ㄱ.김형욱 실종사건 관련 일지
-1973년 미국 망명
-1979년 9월 김경재(金景梓)전(前)의원의 <박사월> 필명으로 김형욱 회고록 <권력과 음모> 출간 <권력과 음모> 상.중. 하 3권
-1977년 6월 22일 김형욱, 미국의회 프레이저 청문회 출석 증언
-1982년 3월 궐석재판에서 <반국가행위 처벌에 관한 특별조치법> 위반혐의로 징역 7년, 자격정지 7년형 선고 그리고 전재산 몰수
-1991년 서울가정법원 <1984년 10월 8일 사망으로 간주>한다는 실종선고 판결
-1996년 특별조치법에 대한 위헌결정 이후 형사재판에서 무죄선고
-1998년 부인 신영순씨, 법정투쟁 3백억원으로 추정되는 재산 되찾음
ㄴ.김형욱 실종 사건 배후세력 실체
(ㄱ) 한국정부--국가권력 개입여부
(ㄴ) 마피아등 범죄조직 소행설
(ㄷ) 북한정부와 연계된 남한 반체제인사들의 소행설
김형욱 중앙정보부장 재직때 각종 인권침해와 간첩사건이 일어남
ㄷ. 김형욱 살해 사체---암매장설과 센느강 유기등 제기되고 있음
(2)"김형욱 실종" 기관개입 확인때 유신정권 도덕성 치명타
http://www.donga.com/fbin/output?f=todaynews&code=a_&n=200502040301&main=1#
ㄱ.김재규 전(前) 중앙졍보부장 말
사형 전(前) 강신옥 변호사에게 한 말---나와는 관계없다
김형욱 부장의 납치사건 직접 지시자로 일각에서 지목
ㄴ.이종찬 전 국정원장 말씀(김형욱 납치사건 당시 중정 총무국장 재직함)
나는 모른다 김형욱은 갱단에 의해 죽었을 것이다 박종규씨가 워낙 도깨비 같은 사람이라서 국정원에서 관련 기록을 본 적도 없다
ㄷ.김경재 전(前) 민주당 의원 말(1980년대 김형욱 회고록 출간)
경호실장이나 박종규 전 경호실장이 개입했을 가능성이 높다
ㄹ.윤일균 국제항공연맹 명예회장 말(당시 중정 해외담당 차장 재직)
정상적인 지시계통으로 (김형욱 납치)지시를 받은 일이 없다 김재규가 당시 어떤 목적인지 몰라도 자기 일에 별도 조직을 만들었다 차기철이 해외공작을 하긴 힘들었을 거다
ㅁ.이상열 전(前) 이란대사 말(당시 중정소속의 프랑스공사 재직)
나는 이 사건과 무관하다
ㅂ.송진섭 안산시장의 말(1979년 서대문구치소에서 투옥 중 옆방에 투옥된 박선호 전 중앙정보부 의전과장의 말)
대통령 경호실 간부들이 김형욱을 살해했다--박선호 중앙정보부 전(前) 의전과장의 말
*박선호--중정 의전과장
-예비역 해병대 대령 출신
-해병간부후보생학교 해병대학 수석 졸업
-해병간부후보 동기생 중 긴급이 가장 빨랐던 만큼 성실하고 충직했다
ㅅ.김형욱 중정 청부 받은 파리 조폭에 살해
http://www.donga.com/fbin/output?f=todaynews&code=a_&n=200502180101&main=1#
김형욱 전 중앙정보부장은 프랑스 유학생으로 위장한 중정요원과 한 여성 연예인에 의해 파리로 유인돼 1979년 10월 7일 파리에서 현지 조직폭력배에게 살해됐다고 한 시사월간지가 보도했다
월간조선 3월호는 중정 고위간부 출신인사들과 김형욱 회고록을 대필한 김경재 전(前) 민주당 의원등의 증언을 인용해, 파리 조폭은 김형욱을 살해한 뒤 사체를 처리했으며 유학생으로 위장한 중정요원은 이를 확인한 뒤 돈을 지불했다고 보도했다
당시 미국 뉴저지에 머물고 있던 김형욱을 파리로 유인하는 데는 여성 연예인이 동원됐고 유학생으로 위장한 중정요원은 김형욱을 파리조폭에게 넘겼다
김경재 전 의원은 <김형욱씨가 실종 직전 한 연예인이 자신에게 보내준 러브레터성 편지를 보여줬다>면서 <김형욱은 한국출신 연예인을 만나 즐기기 위해 파리로 간 것>이라고 말했다
중정간부 출신 인사들은 <유학생으로 위장한 중정요원은 김형욱을 유인 살해한 이틀 뒤에 파리를 떠나 한국으로 돌아왔고 당시 프랑스의 정보기관들이 의혹만 가졌을 뿐 적극적으로 수사할 수 없없다>며 <김대중 납치사건의 실패를 교훈 삼아 김형욱을 살해 제가하는 작업에 중정이 직접개입하지 않고 현지 조폭을 이용했다>고 말했다
ㅇ.재미 언론인 문명자씨의 쓴 책 "내가 본 박정희와 김대중> 내용
-김형욱의 부인 신정순씨의 말
"(유럽으로 떠나는 김형욱에게) 파리에 혼자 가느냐"고 물었더 "이상열 공사가 다 알아서 해줄 것"이라고 대답한 것으로 나온다 하지만 이상열씨는 "나도 모르는 일"이라고 말하고 있다
-정일권 전 총리가 파리에서 믿을 만한 사람에게 "김형욱이 경복궁에서 청와대로 이어지는 지하벙커를 통해 박정희 앞에 끌려갔습니다 <잘못했습니다 죽여 주십시오>라고 빌었으나 서울근교 폐차장 압착기 아래에서 최후를 맞았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ㅈ.김형욱은 내가 죽었다(중앙정보부 비선조직-- 박종규. 차기철등 대통령 비서실 중앙정보부 비선조직 가능성)
http://ucc.media.daum.net/uccmix/zine/mega/sisapress/200504/11/sisapress/v8807826.html?u_b1.svcid=02y&u_b1.objid1=16602&u_b1.targetcate=4&u_b1.targetkey1=20184&u_b1.targetkey2=8807826
우리는 김형욱 전(前) 중앙정보부장을 1979년 10월 7일 밤 파리 시내의 한 카지노 근처 레스토랑에서 납치했다 김형욱이 한국 여배우 000씨와 만나기로 약속한 시간에 레스토랑 입구를 지키고 있다가 그 여배우가 보낸 안내자 행세를 하며 납치하는데 성공했다 캐딜락승용차 안에서 김형욱을 마취시킨 다음 밤 11시께 파리시 서북 방향 외곽 4km 떨어진 외딴 양계장으로 가서 분쇄기에 그를 집어 넣어 닭모이로 처리했다
-이종찬 전 국정원장은 박종규 아니면 차기철 비선을 의심하던데 그쪽 소속 아니었는가? 누구의 비선도 아니었다
-파리로 가기 전 언제 어디서 누구와 박 대통령을 만났는가?
1979년 초 밤에 불려갔는데 청와대 별관으로 알고 있다 경호하는 분들이 옆에 있었지만 나는 대통령 말씀을 듣느라 긴장돼 누구인지는 알 수 없었다 술을 따라 주셨다 그것 뿐이었다
-박대통령이 술을 따라며 김형욱을 제거하라고 하던가?
"나쁜 놈이로구나 내가 믿었던 김형욱 이놈이 나쁜놈이로구나"말했다
--->김형욱 실종사건이 이란혁명, 박대통령 살해와 관련여부는 프랑스 정부에서 밝혀야 할 부분이다

4.김형욱 전(前) 중앙정보부장에 관한 각종 자료
(1)세계경찰 사상 정확한 탐문과 수사를 자랑하는 프랑스 국립경찰도 <We don't know>가 김형욱 파리 실종사건에 대한 공식 최후 발표문
http://user.chol.com/~songwoo/today012.htm
(2)신동앙(동아닷컴)
http://www.donga.com/docs/magazine/shin/2003/12/26/200312260500041/200312260500041_1.html
1969년 12월 19일 서울, 윌리엄 포터 당시 주한 미국대사와 김형욱 전(前) 중앙정보부장이 마주 앉았다 "이제 한국도 북한과 대화에 나설때가 되지 않았습니까 군사와 산업 모든 측면ㅇ에서 북한보다 우위에 선 한국이 독일이나 베트남처럼 적극적으로 남북접촉에 응하지 않는 이유가 무엇인지 우방국들은 궁금해 하고 있습니다 한국 지도층은 이에 대해 어떤 의견을 갖고 있는지 알고 싶습니다" 김형욱의 얼굴이 일순 굳어졌다
(3)1999년 11월 28일(일) MBC 특별기획 제 10회 <이제는 말할 수 있다>
20년의 침묵--김형욱 실종사건
http://www.imbc.com/broad/tv/culture/cantell/1252751_1590.html
(4)나는 왜 황태성 사건을 미국에 고발했나?
-중앙정보부 창립멤버 조웅목사의 현대사 X 파일 3탄-
http://www.khistory.or.kr/exhume/read.asp?num=9&page=1
"김형욱이 나에게 귀뜸해 준 정보에 따르면 황태성의 존재에 대해서 박정희나 김종필 측근 중에서 누가 폭로할까봐 그들 속에서 서로 이중삼중으로 감시했다는 겁니다 김형욱에 따르면 미국측에서 황의 존재를 알고 신병인도를 강력하게 요청하는 바람에 자기가 박정희와 미국 사이에 끼어서 샌드위치가 되어 죽겠다고 했습니다 미국측이 자꾸 황을 넘기라고 하니까 박정희가 피우던 담배를 던지고 고함을 치면서 절대로 넘겨줄 수 없다고 했다는 겁니다 김형욱이 황을 넘겨주고 다른 방법으로 한미간의 유대를 강화하는 것이 낫겠다는 얘기를 수차 건의했는데 번번이 묵살당했다는 얘기를 직접 들었습니다 박정희와 김종필이 황태성과 비밀회담을 통해 통일문제를 논의했던 사실과 민주공화당 창당 관련 20만불 조달문제등이 탄로나면 국민들이 가만두지 않을 것을 두려워해서 미국에 넘기지 않으려고 했다고 봅니다"
(5)김형욱이 도박한 Las Vegas "씨저스 팔래스 호텔"
http://blog.chosun.com/blog.log.view.screen?blogld=10117&logld=261057
미국 CIA는 걱정했다
김형욱이 저렇게 오만방자하게 놀다간 한국 중앙정보부 요원에 의해 암살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그래서 CIA요원을 붙인다 미국에서는 절대 암살 같은 일은 일어날 수 없도록 조치한다 그래서 그런지 김형욱은 미국의 뉴저지주 거대한 저택에 살며 라스베가스를 제집 같이 드나들기 시작한다(당시 한인들에게는 거대한 주택이없음) 와중 프랑스 파리도 이따금 갔다 프랑스는 미국정보부의 힘이 미국과 같이 미치니 않는 곳이다
그러니 그를 쥐도새로 모르게 처치하려면 미국보다 프랑스가 더 나은 장소로 떠오르는 것
(6)인터넷 신문 경향뉴스 윈
http://www.newsone.co.kr/New/index_org4.php?id=157042&code=61&pa=c
박정희 정권 시절에는 김형욱 중앙정보부장이 3선 개헌을 주도했다 3선 개헌에 반대했던 이만섭 전(前)국회의장은 "당시 김형욱 부장이 지휘하는 정보부가 김영삼씨가 타고 가던 자동차에 초산을 뿌렸을 정도였다"고 말했다
(7)국민복지회사건(國民복祉會事件)
http://preview.britannica.co.kr/bol/topic.asp?article_id=b02g2530a
1968년 김종필계의 민주공화당 의원들이 중심이 되어 당시 당 의장인 김종필을 1971년의 선거에 민주공화당 대통령 후보로 출마시키려다 박정희 대통령에 의해 발각된 사건
-김용태가 회장인 국민복지회는 친선단체로 가장하여 정계. 금융계. 경제계. 언론계등의 엘리트들을 총망라하여 구성되었다 이러한 사실은 당시 박정희 대통령의 비서관인 유승원의 부관이 국민복지회에 가담함으로써 알려졌다
그러나 사건의 진상은 당시 중앙정보부장이었던 김형욱이 1968년 5월 18일 박정희의 명령에 따라 김용태의 동태를 살피는 과정에서 밝혀졌다 애초에 중앙정보부가 김종필에 의해 만들어졌던 만큼 중앙정보부내에는 김종필 및 김용태와 친화력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많았다
이에 따라 김형욱은 검찰실장인 방준모를 중심으로 특수조를 편성하여 김용태에 관한 조사를 진행시켜 나갔다 당황한 김용태가 국민복지회와 관련된 중요서류들을 굴뚝 속에 감추었으나..
(8)움직이는 세계-한겨레 21
http://h21.hani.co.kr/section-021019000/2000/021019000200009270327062.html
1960년대 3선 개헌 과정에서 야당의원 포섭공작에 나섰던 당시 김형욱 중앙정보부장이 야당의원의 약점을 잡느라 <몰래 카메라>를 활용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9)창경이의 미스터리-악마의 섬, 실미도
http://popcom_1.hihome.com/mi/mi.html
실미도 특수부대는 당시 권력실세였던 김형욱 중앙정보부장, 대북 공작책 제1국장 이철희에 의해 만들어졌고 부대관리와 훈련은 공군이 맡았다
(10)2백자 원고지 5천 7백매에 달하는 방대한 자료 <김형욱 회고록> 전 3권을 집필한 김경재 전(前)의원
http://kiss.breaknews.com/sub_read.html?uid=124§ion=section9
(11) 김형욱 회고록 저자 "김경재 전의원" 이제는 그들이 입을 열 때이다
사건에 근접했던 3인 지목
http://zine.media.daum.net/mega/newsmaker/200502/18/newsmaker/v8401977.html
김형욱 실종사건과 관련 김경재 전의원이 입을 열기를 기대하는 사람은 3인이다
첫째는 당시 프랑스대사관의 정보담당자인 이상열 공사 그리고 소환당해 귀국한 이상열씨를 곧바로 중앙정보부로 데려가 심문을 담당했던 이종찬 전국정원장 그리고 김형욱씨에게 <여행을 하자>며 편지를 보낸 여성 연예인이 그들이다
-김형욱 미스터리는 그 동안 3가지 설이 있다
첫째 회고록을 출판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중앙정보부로부터 150만달러를 밤기로한 김형욱이 50만달러를 미리 받고 남은 돈을 파리에서 받으로 갔다가 살해됐다는 것
둘째는 과격한 성격의 차지철이 <박대통령에게 과잉 충성>을 하기 위해 납치해 서울로 데려와 모처에서 박정희 대통령이 직접 사살했다는 것 그리고 마지막은 카지노에서 단순강도가 돈을노려 살해했다는 설이다

(12)김형욱 살해. 중정이 미파아 통해 청부한 듯
http://www.hani.co.kr/section-005000000/2005/02/005000000200502181546001.html
-김대중정부 시절 국정원 고위간부를 지낸 J씨
김형욱부장은 김재규의 지시를 받은 유학생(중정 직원)이 유인해 죽였다
김대중 정부때 국정원 고위직을 지낸 한 관계자는 2005년 2월 18일 <김형욱 전 중정 부장은 당시 중정이 청부를 줘 미피아가 살해한 것으로 들었다>며 <당시 공작에 참여한 중정 요원들이 8명 정도이며 이를 모두 생존해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애초 중정내의 관련자가 3명 정도로 알려졌으나 사실은 모두 8명이며 팀장급은 현재 81살쯤 됐을 것>이고 말했다 그리고 이 관계자는 <김형욱의 주검이 프랑스에 암장됐을 가능성이 높을 만큼 국정원 과거사위에서 진상을 밝히기 위해서는 프랑스 현지조사를 통해 이를 발굴하고 DAN검사를 하는 방안도 검토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중정이 마피아를 통해 청부살해한 후 프랑스 암매장했다는 입장
http://www.hani.co.kr/section-001001000/2005/02/001001000200502181728232.html
-당시 중앙정보부 간부 출신 A씨
김형욱(당시 55세) 전 중앙정보부 부장은 김재규 중정 부장의 지시에 의해 살해됐습니다

(13)재미 언론인 문명자씨가 쓴 책 <내가 본 박정희와 김대중> 내용 자료
http://www.hani.co.kr/section-005000000/2005/02/005000000200502141737082.html
-김형욱의 부인 신정순씨의 말
(유럽으로 떠나는 김형욱에게) "파리에 혼자 가느냐"고 물었더니 "이상열 공사가 다 알아서 해줄 것"이라고 대답한 것으로 나온다 하지만 이상열씨는 "나는 모르는 일"이라고 말하고 있다
-문명자씨의 책자 <내가 본 박정희와 김대중>에서 김형욱이 서울 근교 폐차장에서 살해됐다는 주장을 폈다
정일권 전(前) 국총리가 파리에서 믿을 만한 사람에게 <김형욱이 경복궁에서 청와대로 이어지는 지하 벙커를 통해 박정희 앞에 끌려갔고 "잘못했습니다 죽여 주십시오"라고 빌었으나 폐차장 압착기 아래에서 최후를 맞았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강신옥 변호사의 말
중정보다는 청와대 경호실과 관련이 있을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10.26사건 당시 김재규를 변호했던 강신옥변호사는 <나도 개인적으로 금금해서 김재규부장에게 여러 차례 "김형욱실종은 어떻게 된 것이냐"는 질문을 했지만 "정말 모른다"는 답변만 반복해 들었다>며 사형으로 죽어가는 김재규 말< 박정희에 대한 맹목적 충성심에 불타던 차기철 경호실장 쪽일 가능성이 크지 않갰냐>고 말했다
일반적으로 김형욱씨가 국내에서 죽었다면 경호실팀에 의해 살해되었다고 보며 프랑스에서 살해되었다면 중정팀에 의해 살해되었다고 본다 그리고 부마사태와 10.26사태와 깊은 연관관계가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김형욱의 책자 내용에서 잘 드러나고 있다

(14)김형욱 서울서 피살설 제기( 김형욱씨 맏며느리 공개)
김형욱씨가 서울에서 살해됐다는 주장은 현재 미국 뉴저지에 살고 있는 맏며느리 48살 김모씨가 제기했다 김형욱씨 실종사건과 관련해 직계 가족이 진술을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김씨는 오늘 YTN 뉴욕리포터와의 전화통화에서 시아버지는 프랑스 파리에서 살해된 것으로 아니며 중정요원들에 의해 한국으로 와 서울에서 살해됐다고 주장했다
김씨는 또는 시아버지 살해는 당시 프랑스에 파견된 전 중정요원 이모씨가 주도했다고 밝혔다 김씨는 가족들이 인사이드 인포메이션 즉 중앙정보부 내부로부터 이 같은 내용을 입수했다고 말했다
구체적인 피살장소를 아느냐는 질문에는 대답을 얼버무렸다
-김형욱씨 맏 며느리 김모씨 인터뷰 내용
(질문) 사망장소가 한국입니까?
(답변)예!
(질문)청와대입니까?
(답변)예.. 어딘지는 관심이 없어가지고..
(질문)프랑스에서 실종됐는데 돌아가신 장소는 한국입니까?
예..이상열이 책임이 있다고 시어머님.. 온 가족이 확실히 말하고 있다고 알고 있거든요
(질문)가족들이 모두 밝히기 꺼려했을텐데 며느리인 김씨가 언론에 내용을 공개한 배경이 있습니까?
(답변)김씨는 남편이 오랜 지병으로 숨진 뒤 2년여 동안 자녀 3명을 데리고 혼자 살아왔으며 시아버지와 이 문제에 대해 발설하지 안기로 합의를 하기도 했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최근 재산 문제들으로 시어머지와 갈등을 빚었고 이 과정에서 이 같은 사실을 알게 됐다고 김씨는 말했습니다
김씨는 최근 가족들과의 갈등 문제를 포함해 시아버지와 관련돼 잘못 알려진 내용은 오는 2005년 3월18일 기자회견에서 밝히겠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김씨는 시아버지가 실종된지 1년 뒤인 지난 80년 김형욱씨 큰 아들과 결혼했습니다

(15)김형욱, 청와대 지하실서 차기철 손에 죽었다?
http://www.donga.com/fbin/output?f=todaynews&code=a_&n=200503110347&main=1#
"박정희 전대통령이 청와대 지하실에 끌려 온 김형욱 전 중앙정보부장을 <배신자>라고 부르며 총을 겨눠 사살하려고 했다 김형욱은 <나는 당신을 배신했을지언정 국민을 배신하지는 않았다>고 반박했다 박전대통령은 대노했다 옆에 있던 차기철 경호실장이 <각하, 손을 더럽히지 마시오. 제가 해치우겠습니다>라는 말과 함께 박 전대통령의 손에서 총을 낚아채 김형욱을 사살했다"

김형욱 회고록의 저자인 김경재 전 민주당 의원이 민주화 동지를 통해 들었다며 2005년 3월 11일 KBS라디오 <라디오 정보센터 박에스더입니다>에 출연해 밝힌 김형욱 <국내 피살설>의 핵심이다
미국에 거주하는 김형욱 전 부장의 맏며느리가 최근 <시아버지는 파리가 아닌 서울에서 피살됐다>라고 주장해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가운데 김경재 전의원은 <김형욱전부장이 한국에 끌려와서 처형되었다는 얘기를 민주화 동지인 송진섭 안산시장에게 들었다>며 이같이 밝혔다
김경재 전의원은 <송시장이 서대문 형무소에 구속되어 있을 당시 함께 수감 되어 있던 박선호 전 중정의전과장을 통해서 그 얘기를 듣고 내게 전해 주었다>고 말했다

(16)김형욱 파리서 안 죽었다
http://imnews.imbc.com/imnews/politic/1234537_512.html
프랑스 파리에서 실종돼 양계장에서 살해된 것으로 전해진 김형욱(당시 54세) 전 중앙정보부장이 최소한 파리에서는 살해되지 않았다는 근거 자료가 미국에서 나왔습니다 뉴욕한국일보는 오늘 실종 시기도 지금까지 알려진 1979년 10월 7일(이하 파리시간)이 아니라 이보다 이틀 뒤인 10월 9일이라는 사실이 담긴 미국 국무부 비밀해제 문서를 입수해 공개했습니다
미국 국무부는 1980년 2월 29일 주한 미국대사관에 보낸 <주간 동향 보고서 한국판(Weekly Status Report-korea)>에서 "김(전 중앙종보부장)은 한인 남성 한명과 10월 9일 파리를 떠나 스위스 취리히를 경유해 사우디아라비아 다란으로 간 것이 확실합니다 그러나 거기서부터 행적이 묘연하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이 보고서는 김 전부장이 파리 외곽 양계장 분쇄기에 살해됐다는 최근 보도와 1979년 10월 20일께 박정희 전대통령이 보낸 자객에 의해 파리 자동차 폐차장에서 압사당했다는 설등을 부인하는 것입니다
현재 국정원이 진행 중인 <김형욱 실종사건> 과거사 진상규명에도 중요 참고자료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
보고서는 또 <일본정부가 파리경찰을 상대로 김전부장 실종사건을 끈질기게 요구해 얻어낸 결과를 외싱턴 주일대사관이 우리(국무부)에게 전해왔다>며 <김은 한인 남성 한명과 함께 10월 9일 파리를 떠나 취리히를 경유해 다란으로 간 것이 확실하다>고 기록했습니다 보고서는 일본정부가 왜 김 전부장 실종사건에 관심을 가졌는지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보고서는 <프랑스 경찰은 어쩔 수 없이 수사를 종결했다>고 덧붙여 프랑스 경찰이 당시 김 전부장의 실종사건을 철저히 조사했음을 암시했습니다
한편 이 보고서는 4천여 쪽에 달하는 국무부 한국관련 비밀해제 문서 중 김전부장이 거론된 유일한 것으로 1993년 비밀해제됐습니다





출처 : 아시아연방론
글쓴이 : CIA bear 허관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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