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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 수상 다큐멘터리 '나발니'가 포착한 나발니의 생애 본문
"만약 당신이 살해당한다면, 만약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러시아 국민들에게 어떤 메시지를 남기고 싶으신가요?"
이 질문은 2022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상을 받은 다큐멘터리 ‘나발니’에서 캐나다 출신 다니엘 로허 감독이 알렉세이 나발니에게 던진 첫 질문이었다.
러시아의 가장 대표적인 야당 지도자로 손꼽히던 나발니는 웃으며 “ 왜 그래요, 다니엘. 아니에요”라고 했다.
"말도 안 돼요, 다니엘은 마치 내가 죽었을 때를 대비해 영화를 만드는 것 같네요."
최근 러시아의 정치운동가 나발니가 47세의 일기로 북극권의 어느 교도소에서 사망했다는 소식을 곱씹으며 들으니 새삼 통렬히 다가오는 발언이다.
러시아 교정 당국은 산책 후 나발니의 건강이 나빠졌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나발니 측은 러시아 당국이 “흔적을 은폐”하고자 그의 시신을 의도적으로 넘겨주지 않고 있다고 주장한다.
물론 나발니가 러시아에서 위험에 빠져 있는 건 사실이었지만, 로허 감독은 BBC와의 인터뷰에서 친구의 사망 소식을 들었을 때 여전히 큰 충격에 휩싸였다고 털어놨다.
로허 감독은 “슬픔과 비통함의 구름에 휩싸인 지금 이 순간이 너무 충격적”이라고 말했다.
“이 다큐멘터리를 봤던 사람이라면 새삼스럽지 않을 소식이어야겠지만, 여전히 전 부고를 접했을 때 충격받았습니다.”
그러면서 로허 감독은 영화 제작 기간 나발니와 어떤 우정을 쌓아갔는지 들려줬다.
“우리는 서로를 존중했다. 아마도 유머 감각이 비슷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는 로허 감독은 “나발니는 매우 재미있는 사람으로, 웃음을 좋아했다. 만난 지 10초 만에 내게 장난을 치고, 나를 놀리며 농담을 던졌다. 사실 웃음과 장난은 내가 사람들과 가까워지는 방식이기에 나도 바로 농담을 하며 반응했다”고 회상했다.
이 영화는 나발니와 그의 팀이 치명적인 신경작용제 ‘노비촉’으로 나발니가 거의 독살될 뻔 했던 음모를 밝히는 과정을 따라간다.
2020년 8월, 나발니는 시베리아 상공을 지나던 비행기 안에서 쓰러졌다. 비행기는 곧장 비상 착륙을 시도했고, 나발니는 러시아 중남부 옴스크의 한 병원으로 급히 이송돼 목숨을 건졌다.
이후 일련의 과정 끝에 러시아 당국은 치료를 위해 독일 베를린으로 갈 수 있도록 허가했다.
독일 정부는 군이 실시한 검사에서 “화학 신경작용제 ‘노비촉’의 분명한 흔적”이 발견됐다고 밝혔다.
러시아 크렘린궁은 노비촉이 발견됐다는 주장을 부정하며, 어떠한 관련도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나발니를 포함한 많은 이들이 이를 믿지 않았다. 결국 나발니는 언론인들로 이뤄진 팀을 꾸려 자체 조사에 나서게 된다.
이 다큐멘터리엔 나발니가 러시아 연방보안국(FSB) 요원에게 전화로 이 화학무기가 나발니의 속옷에 뿌려졌다는 사실을 인정하도록 속이는 장면이 나온다.
콘스탄틴 쿠드라브체프 FSB 요원은 타고 있던 비행기가 비상 착륙하지 않았다면 나발니는 죽은 목숨이었을 것이라고 털어놓는다. 해당 발언 이후 쿠드라브체프 요원이 어떻게 됐는지는 알려진 바 없다.
다큐멘터리의 프로듀서를 맡은 셰인 보리스는 “우리 모두가 정말 충격받았다”고 회상했다.
“팀이 이 인터뷰를 시작했을 때만 해도, 그 누구도 이 전화가 이러한 결과로 이어지리라고 생각하지 못했을 겁니다.
이 영화는 나발니가 중독에서 회복해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모습을 담았다. 그리고 러시아에 돌아가자마자 체포되는 과정도 담겼다.
그렇게 러시아로 돌아간 나발니는 영원히 다시 자유의 몸이 되지 못했다.
로허 감독은 2달간 촬영하며 나발니와 가까워졌지만, 영화가 담는 주제 특성상 순조롭게 이어지기만 한 건 아니었다고 고백했다.
로허 감독은 “꽤 긴장감이 높았던 순간도 있었다. 불편한 질문을 던져야 할 때였다”면서 “심지어 영화 속 첫 질문도 … 매우 불편한 상황이었지만, 무엇보다도 난 이 영화를 만들고자 현장에 있던 거였다”고 말했다.
아울러 로허 감독은 나발니가 러시아로 귀국해 수감된 이후에도 그와 서신을 주고받았다면서 “지금까지도 그 편지들을 갖고 있어 매우 기쁘다. 사무실에서 보관하고 있으며, 영원히 소중히 간직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언젠가 나발니가 사망할 수도 있다는 생각은 이 영화 전반을 가로지르는 주제다.
한 장면에서 나발니의 팀원 중 한 명이 인터뷰 도중 그에게 과거에 대한 질문을 받으면 짜증이 나지 않냐고 물었다.
이에 나발니는 그렇지 않다고 답하면서도 "그저 감독은 만약 내가 쓰러지면 개봉할 영화를 위해 이 모든 걸 촬영하고 있음을 깨달았을 뿐"이라고 답했다.
실제로 그가 사망하기 전 개봉한 이 다큐멘터리는 전 세계적으로 큰 호평을 받았다. 영국 ‘가디언’지는 “당신이 목격한 것 중 가장 입이 떡 벌어지는 놀라운 영화”라고 평했으며, ‘타임즈’는 “단연 올해 개봉한 영화 중 가장 스릴 넘치는 다큐멘터리 중 하나”라고 평가했다.
그리고 그의 사망 소식이 전해진 지금, 많은 이들이 이 영화를 새로운 시각으로 다시 바라보고 있다.
마지막 장면에서 로허 감독은 “나발니, 만약 당신이 체포돼 수감되거나, 상상할 수 없는 어떤 일이 발생해 살해당한다면, 러시아 국민들에게 어떤 메시지를 남기고 싶은지” 물었다.
나발니는 영어로 짧게 몇 마디 답한 뒤 모국어인 러시아어로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그렇게 그는 “우리는 우리가 실제로 얼마나 강한지 깨닫지 못한다. 악의 승리를 위해 필요한 건 선한 자들이 아무것도 하지 않는 일”이라는 답을 러시아어로 마무리했다.
이내 그는 무언가를 아는 듯한 미소를 지어 보이더니 “그러니 아무것도 하지 않는 상태로 있지 말라”고 덧붙였다.
한편 로허는 이 다큐멘터리 영화 제작이 자신의 삶도 바꿔놓았다고 말했다.
로허 감독은 “이 영화는 인간으로서 내게 깊은 영향을 줬다”고 했다.
“나발니의 삶은 제게 우리가 살면서 어떤 상황에 던져지든 … 계속 웃고, 아내에게 늘 밸런타인데이 메시지를 보내는 등 긍정적인 태도와 유머를 잃지 않는다면 모든 게 나아질 것이라는 점을 늘 상기시킵니다.”
“모두가 알고 있듯, 나발니의 삶에선 모든 게 다 괜찮아진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그의 삶은 우리에게 용기와 회복탄력성, 어둠 속의 빛을 보여주는 마스터클래스 그 자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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