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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남아의 ‘대마초 원더랜드’가 된 태국 본문

Guide Ear&Bird's Eye/태국(타이)

동남아의 ‘대마초 원더랜드’가 된 태국

CIA bear 허관(許灌) 2023. 5. 2. 06:43

태국 방콕에선 대마초가 그려진 간판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태국 수도 방콕에서도 가장 국제적인 지역인 수쿰빗 거리를 밝히는 어지러운 네온사인 사이를 비집고 새로운 간판이 등장했다.

바로 5갈래로 갈라진 뾰족한 대마초잎이다. 현란한 녹색으로 빛나는 대마초 간판을 보며 지난해 6월 대마초가 합법화 된 이후 태국 내 관련 산업이 얼마나 크게 번창하고 있는지 느낄 수 있다.

BBC 방콕 오피스에서 동쪽으로 2km 정도 걷다 보면 마리화나 꽃봉오리와 대마초 흡연에 필요한 각종 도구를 파는 상점 40여 곳 이상을 지나치게 된다.

방콕 시내에서 전 세계 배낭여행자들의 집합소로 유명한 카오산 로드 반대 방향으로 향하다 보면 아예 대마초를 테마로 한 쇼핑몰 ‘플랜토피아’가 나온다. 이곳에 입점한 상점들은 제품을 시험해보는 고객들이 뿜어낸 연기에 반쯤 가려져 있다.

‘태국의 대마초’라는 웹사이트에 등록된, 전국적으로 대마초 및 관련 상품을 판매하는 업체만 해도 4000여 개 이상이다.

이곳 태국은 지난 6월 전까지만 해도 대마초 소지죄로 5년, 대마초 제조죄로 최대 징역 15년형이 선고되던 나라였다. 그리고 현재까지도 다른 마약 관련 범죄자들에겐 사형이 내려진다.

변화의 속도에 숨 막힐 정도다.

이에 대해 키티 초파카는 “어수선하긴 하지만 이게 바로 태국”이라면서 “갑작스러운 자유화(합법화)가 아니었다면 애초에 불가능했던 일”이라고 설명했다.

초파카는 대마초 업계를 돕고, 의회에서 새로운 관련 법 통과를 위해 노력하는 위원회에 활동하는 기업인 ‘엘베이티드 에스테이트’의 창립자다.

하지만 초파카와 같이 오랫동안 합법화를 외쳐왔던 운동가들은 지금의 모습은 자신들이 꿈꾸던 모습이 아니라고 말한다.

초파카는 “규제가 필요하다. 무엇이 가능하고 무엇이 불법인지 규정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렇지 않은 탓에) 큰 혼란이 조장됐으며, 많은 이들이 지켜야 할 선을 모르고 있습니다.”

초파카는 대마초 업계를 위해서라도 더 정밀한 규제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물론 태국에서도 관련 규정이 있으나, 대마초 산업은 거의 무질서로 굴러가고 있다. 면허 없이 대마초를 팔거나, 판매하는 대마초의 모든 출처와 고객 개인 정보를 꼼꼼히 기록해야 한다는 법을 임의로 지키지 않는 상점들도 있다.

또한 태국 법에 따르면 가공되지 않은 대마초 꽃을 제외한 어떤 제품도 테트라히드로칸나비놀(THC, 대마초의 성분 중 향정신성 화학작용을 일으키는 주성분) 함량 비율이 0.2%를 초과해서는 안 되며, 온라인 판매도 불법이다.

그러나 조금만 온라인을 뒤지다 보면 THC 함량이 이보다 더 높은 대마초 브라우니와 젤리를 판다는 업체를 찾을 수 있다. 게다가 주문 후 1시간 이내에 집 앞까지 배달도 해준다.

아울러 20세 미만에겐 대마초를 판매할 수 없으나, 오토바이로 배달되는데 누구에게 가는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일부 식당에선 대마초를 넣은 음식을 팔고 있으며, 대마초 차나 아이스크림도 구할 수 있다. 심지어 편의점에선 대마초가 함유된 식수를 판다.

현지 경찰 또한 어디까지가 합법이고 불법인지 그 선이 확실하지 않기에 관련 규정이 거의 적용되지 않고 있다고 인정했다.

사실 대마초 합법화를 논할 때 태국 정치가 빠질 수 없다. 현재 태국의 거대 정당 중 하나의 대표이기도 한 아누틴 차른비라쿨은 2019년 선거 당시 대마초 비범죄화를 선거 공약으로 내세웠다.

대마초가 가난한 농촌 지역의 수익성 증가에 도움이 된다는, 검증되지 않은 이러한 주장은 국민들의 마음을 흔들었다.

그렇게 아누틴은 새 정부의 보건부 장관이 돼 선거 공약을 하루빨리 이행하고자 대마초 비범죄화를 우선순위로 두고 움직였다.

그러나 각종 이익 단체가 뒤섞인 태국 의회의 움직임은 더뎠다. 관련 사업 규제안이 미처 작성되기도 전에 대마초는 비범죄화된 것이다. 그리고 새롭게 작성된 각종 규제는 정당 간 대립으로 인해 교착상태에 빠졌다.

그리고 이번 달 또 다른 선거가 예정된 상황에서 관련 규제가 올해 안에 의회를 통과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이미 야당은 규제 없는 대마초의 위험성에 대해 목소리를 높이면서, 정권 교체에 성공할 경우 다시 범죄로 규정하겠다고 위협하고 있다.

태국 내 대마초 산업의 빠른 성장 속도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는 이들이 많다

이렇게 제멋대로 흘러가는 듯한 대마초 산업의 미래는 불확실하다.

대학생인 툭타(21)는 방콩 클롱 토이 지역에서 대마초 및 커피를 파는 ‘더 허브 클럽’에 100만바트(약 3900만원) 이상을 투자하며 지난해 대마초 산업에 뛰어들었다.

이곳에서 16가지 등급의 말린 대마초를 1그램당 10~80달러(1만3000원~10만7000원)에 팔고 있는 툭타는 앞으로 규제가 변하는 것에 걱정한다고 했다.

근처 다른 상점과의 경쟁도 너무 치열한 탓에 사업이 힘든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잘되는 것도 아니라는 설명이다.

이에 대해 초파카 또한 “대마초가 넘쳐나면서 가격이 하락하고 있다”고 말했다.

“불법 수입품이 많습니다. 저희는 외국에서 들여온 품종을 키우는데, 이를 제대로 키우기 위해선 에어컨과 조명이 필요합니다. 비용을 낮추기 위해 (태국의) 기후에 맞는 품종 개발을 생각해 봐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유산, 우리 고유의 문화로 돌아가야 합니다. 실제로 대마초와 태국인, 태국은 서로 얽힌 존재입니다.”

한편 모든 마약을 위험한 사회악으로 간주하는 국가 분위기에서 자랐기에 많은 태국인들은 지난해 비범죄화 조치 이후 급격히 성장하는 대마초 산업에 당혹스러워 한다.

그러나 실제로 태국 내 마약 무관용 정책은 비교적 그 역사가 짧다.

197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태국 북부 언덕에 살던 부족민들은 대마초를 널리 재배했다. 바로 전 세계 아편의 주요 공급원이었던 ‘골든 트라이앵글’로 알려진 국경 지역이다. 또한 대마초는 태국 북동부에서 향신료 및 요리 재료로도 널리 쓰였다.

그러던 1960년대 베트남 전쟁에서 잠시 벗어나 “휴식과 휴양”을 취하고자 태국에 들어온 미군들은 마치 두꺼운 시가처럼 대나무 막대기를 잎으로 감싼 말린 대마초 꽃봉오리인 ‘타이 스틱’을 접하게 됐다.

그리고 미군에 의해 태국산 대마초는 미국으로 대량 수출되기 시작했고, 골든 트라이앵글 지역의 헤로인과 함께 미국으로 유입되는 마약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게 된다

잘 알려진 ‘타이 스틱’을 포함해 다양한 형태로 길거리에서 판매되고 있는 대마초

이후 베트남 전쟁이 끝나자 미국은 태국에 마약 생산을 억제하도록 압력을 가했다. 그렇게 1979년 태국 정부는 마약 사용 및 판매 시 최고 사형까지 선고할 수 있는 엄중 처벌을 의무화하는 마약금지법을 통과시켰다.

그리고 같은 시기 때마침 ‘히피 도로’를 따라 동쪽으로 여행하며 대마초를 피우는 배낭 여행객들에 대한 반발 및 마약과 섹스에 관대한 1960년대 사회 분위기에 저항하는 보수적인 움직임이 동남아시아 전반을 휩쓸면서 태국,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등은 히피들의 입국을 막고 나선다.

일례로 싱가포르 공항에선 머리가 긴 이들에게 이발소에 가 머리를 자르거나 다시 귀국하도록 조치했으며, 말레이시아에선 히피로 의심되는 특성이 있는 이들의 여권에 ‘SHIT(환승 중인 히피로 의심되는 자)’라는 도장을 찍었다.

태국 정부는 특히 1976년 10월 방콕의 탐마삿 대학에서 일어난 좌파 학생 운동을 탄압해 수십 명을 살해한 이후부터 더욱 경계를 강화했다. 보수주의자들은 라오스, 캄보디아, 베트남 등 인근 국가에서 그랬던 것처럼 태국에서도 청년들이 공산주의 정권을 지지할지도 모른다고 우려했다.

한편 태국 왕실 또한 일종의 농작물 대체 프로젝트를 통해 지역 부족들에 아편과 대마초 대신 커피나 마카다미아 등을 재배하도록 설득했다.

그러다 1990년대 들어 미얀마 내 전쟁으로 폐허가 된 지역에서 값싼 필로폰이 태국으로 대량 유입되게 된다. 그렇게 마약 중독이 사회에 미치는 파괴적 영향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지면서 태국 사회는 더욱 마약을 경계하게 됐으며, 2003년엔 마약 의심 사용자와 유통업자 최소 1400명이 총살되는 등 잔혹한 마약 금지 캠페인이 전개되기도 했다.

한편 태국 내 교도소의 4분의 3이 마약 범죄자로 가득 차게 됐는데, 경범죄자가 대부분이었다. 이에 당국은 마약 무관용 정책을 재고하게 된다.

게다가 의학 및 치료 목적의 대마초 사용이 관광산업과 더불어 국가 경제 발전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인식 또한 늘어나게 됐다.

이런 상황에서 태국 사회가 오락용 대마초 분야의 잠재력에도 눈을 돌리는 데까진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마약 비범죄화에 기여하며 태국의 ‘미스터 대마초’로도 알려진 톰 크루소폰

한편 마약 비범죄화에 기여한 덕에 태국의 ‘미스터 대마초’로도 알려진 기업가 톰 크루소폰은 막 비행기에서 내린 뒤 펼쳐진 광경에 넋이 나간 독일 관광객들에게 “암스테르담보다 더한 곳에 온 것을 환영한다”고 말한다.

크루소폰은 미국의 대마초 가게인 ‘쿠키스’의 방콕 지점을 열어 현지에서 재배한 다양한 종류의 대마초를 판매한다. 게다가 대마초를 모티브로 한 속옷, 슬리퍼, 티셔츠도 들여놨다.

수십 년간 태국에 수감됐다는 어느 불행한 서양 관광객들에 대한 드라마 ‘방콕 힐튼’ 속 유명한 에피소드 때문이라도 관광객들은 멈칫할 수도 있다.

그러나 크루소폰은 자신의 가게에선 대마초를 피울 수 없으나, 이제 태국에선 그 어떠한 대마초를 피우거나 샀다는 이유로 체포될 수 없다며 이들을 안심시켰다.

크루소폰은 “수십억달러 가치를 지닌 회사가 생겨날 것이다. 장담한다”면서 대마초 사업이 계속 성장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추가 규제가 필요하다는 점 또한 인정했다. “그렇지 않으면 황금알을 낳는 거위를 죽이는 셈”이라는 설명이다.

한편 놀랍게도, 의회 밖에선 대마초에 대한 공개 토론이 그리 활발하지 않다.

거리에서 물건을 팔고 있던 32세 청년은 “괜찮지 않다. 아직도 (대마초는) 마약이라고 느껴진다”고 말했다. 그러나 더 나이가 있는 오토바이 택시 운전사는 대마초 합법화는 자신에게 도움이 되지도, 해를 끼치지도 않았다고 말했다.

“대마초를 피우지 않기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있습니다. 별로 우리에게 중요한 게 아닌 거죠.”

물론 대마초 중독의 위험성에 대해 경고하는 의료진도 있으나, 태국인들에게 이는 과거 오랫동안 이어진 필로폰 사태와는 거리가 멀다.

방콕 중심가에 있는 대마초 상점 주인들도 대부분 고객이 태국 현지인이 아닌 외국인 관광객이라고 했다.

한편 태국에도 이미 대마초를 피우던 이들이 있다.

자택에서 대마초를 기르는 아만다는 이제 경찰의 방문을 두려워하지 않아도 돼서 안심이라고 말했다

자칭 ‘스토너(대마초 흡연자)’인 아만다도 이들 중 하나다. 아만다는 집에서 대마초를 기르고 있기에 경찰이 어느 날 집에 찾아오진 않을까 두려움에 떨지 않아도 돼서 좋다고 했다.

아만다의 작은 아파트는 마치 대마초 사원으로 탈바꿈했다. 침실에 딸린 발코니에 빛 반사 텐트와 강력한 조명을 설치해 대마초 7그루를 키우고 있다. 아만다의 반려묘도 침실 출입이 금지됐다.

“처음엔 어려웠습니다. 배울 게 많았죠. 처음엔 온도를 제대로 맞추지 못했습니다. 24시간 에어컨과 가습기를 틀어야 하죠. 하지만 태국에서 (합법적인 대마초 재배가) 일어났다는 사실이 정말 멋집니다. 현재 전국적으로 관련 농장과 상점 수천 개가 운영 중이며, 많은 이들이 대마초 산업에 관심을 보이고 있습니다.

한편 태국 정계에선 대마초를 다시 불법으로 규정하거나, 적어도 오락용이 아닌 의료목적의 사용만 허용하자는 논의가 벌어지고 있으나, 업계 관계자들은 그 목적을 구분하긴 거의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지난 9개월간 미친 듯이 쏟아져 나온 탓에 다시 코르크 마개를 막아봤자 해결될 것 같진 않은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