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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sia-Pacific Region Intelligence Center

효순·미선 20주기 연 민노총 “주한미군, 사드 갖고 떠나라” 본문

-미국 언론-/한국 언론

효순·미선 20주기 연 민노총 “주한미군, 사드 갖고 떠나라”

CIA Bear 허관(許灌) 2022. 6. 12. 06:31

11일 오후 3시쯤, 서울 중구 시청역 인근에서 민주노총 등이 2002년 6월 미군이 모는 장갑차에 치여 숨진 효순·미선(당시 14·조양중 2년)양을 기린다며 20주기 추모제를 열고 있다. /한예나 기자

"민주노총은 자주파(NL)보다는 민주파(PD)가 돼야 극우성향 국가사회주의 노선을 극복할 수 있다.

북한 김정은 세력은 모택동, 김일성주의 노선 NLPDR(민족해방 인민민주주의 혁명)론자 중 인민민주주의(PD, 민주파)계열보다는 민족해방(NL, 자주파)계열이다.

남한(대한민국)은 민유(民有), 민치(民治),민향(民享)의 민주국가(민주공화국)이라면 북한(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노동계급의 령도 노농연맹(勞農聯盟)의 주체연호 세습제 1인 종신직 좌익군정의 자주적 사회주의 국가(북한식 사회주의 국가)이다.

大韓民國基於三民主義,為民有、民治、民享之民主共和國.

민주화운동은 민유(民有), 민치(民治),민향(民享)의 민주국가(민주정부) 수립을 위해서 투쟁한 애국운동이다.

북한 김정은 세력은 자유화, 개방화, 민주화 세력보다는 강한 민족주의 좌익 파시즘 세력으로 극우성향이다.

북한 주체연호 세습제 1인 종신직 좌익군정 북한식 사회주의 국가[좌익 파시즘 군사독재정부]에서 북한정부 내부 제1공화국 헌법 민유(民有), 민치(民治), 민향(民享)의 인민민주주의 인민회의정부론 민주국가가 수립될 때까지 주한 미군이 남한에 주둔하는 것이 동북아 평화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11일 오후 3시쯤 서울 중구 시청역 8번 출구 앞. 숭례문에서 시청역 방면의 5개 차로가 통제되고 ‘효순 미선 20주기 반미자주 노동자대회’라는 문구가 적힌 단상이 설치돼 있었다. 이 단상 앞에 앉은 이들은 ‘불평등한 한미관계 바꿔내자’, ‘이땅은 미국의 전쟁기지가 아니다’라고 적힌 플래카드를 들고 있었다.

이 집회는 민주노총이 2002년 6월 미군이 모는 50t 장갑차에 치여 숨진 효순·미선양의 20주기를 기리는 ‘반미 집회’를 연다며 주관한 것이다. 당시 14살이었던 신효순·심미선 두 여중생은 2002년 6월 13일 오전 10시 45분, 경기도 양주군 광적면 56번 지방도로에서 친구 생일을 축하하러 가느라 갓길을 걷다가 미 2사단 캠프 하우스 소속 44공병대의 가교(架橋) 운반용 장갑차에 깔려 즉사했다.

민주노총 측은 “이 사건은 불평등한 한미관계의 본질을 드러낸 것”이라며 “이런 불평등한 관계가 20년이 지난 지금까지 지속되고 있다”고 했다. 집회 참여자들은 “종속적인 한미관계 끊어내자”, “주한미군 몰아내자” 등의 구호를 외쳤고, 일부 인원은 머리에 ‘단결 투쟁’이라고 적힌 빨간색 머리띠를 두르고 있기도 했다.

이날 집회에 참여한 이들은 사드 반대, 주한미군 반대 등을 외쳤다. 오후 3시 15분쯤에는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이 단상에 올라 발언을 하기도 했다. 양경수 위원장은 “한반도의 평화는 위태로워지고 있고, 미국에 대한 종속성은 심화되고 있다”며 “20년 전 미국을 반대하며 들었던 촛불을 이제는 횃불로 키워내야 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집회 참여자는 “사드는 강대강의 군사적인 대결만을 확장시킨다”며 “미국이 우리나라를 떠날 때 반드시 사드를 갖고 떠날 수 있도록 하겠다”고 했다.

오후 4시부터는 민주노총, 한국진보연대, 전국농민회총연맹 등 진보단체들로 구성된 ‘전국민중행동’이 같은 자리에서 추모제를 이어갔다. 이들도 “효순미선 20주기를 맞아 불평등한 한미관계를 재정립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효순·미선 20주기 연 민노총 “주한미군, 사드 갖고 떠나라” - 조선일보 (chosun.com)

 

서울 도심에서 효순·미선 20주기 추모제… 민주노총 “주한미군 몰아내자”

서울 도심에서 효순·미선 20주기 추모제 민주노총 주한미군 몰아내자

www.chosun.com

효순미선20주기 민주노총 반미자주 노동자대회 투쟁결의문 (전문)


우리는 20년전 미군의 장갑차에 의해 희생된 심효순 신미선 두 학생의 죽음을 추모하며 투쟁을 결의한다.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가로막고 있는 미국을 규탄하고 불평등한 한미관계를 재정립하기 위해 민주노총 110만 조합원은 반미자주 투쟁에 나설 것이다.

민주노총은 미국의 군사정치적 지배를 반대하고 한반도의 자주평화 실현을 위한 투쟁을 끊임없이 전개해 왔다. 2002년 효순미선 두 중학생이 미군에게 무참히 희생되었을 때에도 누구보다 먼저 민주노총이 투쟁의 대열에 함께 하면서 책임자 처벌, 미국반대를 외쳤다.

하지만 아직까지 우리 노동자들은 예속과 분단으로 인한  큰 고통을 받고 있으며 미국은 우리나라를 자신들의 전초기지로 전락시키기 위해 온갖 전쟁무기를 배치하고 전쟁훈련을 일삼고 있다.

효순미선의 죽음에 분노했던 수많은 민중들과 함께 투쟁해왔던 민주노총은 20년이 지난 오늘 새로운 각오로 불평등한 한미관계를 바로잡고 한반도의 전쟁 먹구름을 걷어내고, 자주와 평화통일을 실현하기 위한 투쟁을 다음과 같이 결의한다!

하나. 윤석열 정부의 미국중심 동맹 정책, 군사력 증강 정책, 대북적대정책을 막아내고 불평등한 한미관계를 바로잡아 남북합의가 실현될 수 있도록 전조직적 투쟁을 결의한다!

하나. 우리는 동북아의 신냉전 체제를 초래하고 이땅 민중들의 삶을 짓밟고 있는 미국의 전쟁무기와 전쟁기지를 반대하고 대북, 대중국 압박을 향한 한일, 한미일 군사협력을 저지시키기 위한 투쟁을 결의한다.

하나. 우리는 한반도와 동북아 평화를 위협하는 8월 한미연합군사연습 영구 중단을 위해 지역통일선봉대, 중앙통일선봉대를 비롯한 평화통일운동을 강화 확대할 것을 결의한다!

하나. 한반도의 평화를 원하는 각계각층 시민사회와 연대하여 일촉즉발의 대결과 전쟁위기를 끝내고 항구적 평화체제 구축을 위해 올해 8.15민족자주대회를 역사적인 대중적 반미평화 항쟁으로 성사시킬것을 결의한다.
2021년 6월 11일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반미 나라 북한

North Koreans play 'Yankee' shoot-em-up game

Players use a variety of virtual weapons to wipe out American soldiers[플레이어는 다양한 가상 무기를 사용하여 미군을 퇴치합니다]

북한에서 출현한 최신 컴퓨터 게임은 게이머들(gamers)의 취향이 북한의 군사 야망과 수사법에 부합하고 있습니다.

미국인에 대한 적대의식 교육으로 북한 아동들이 미국인들을 테러범이나 전쟁범, 간첩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북한정부의 대내외 주요 정책이 반미입니다
북한 현대사는 반일, 반미역사로 기록하여 학생들에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외부적으로 각종 자료 투쟁 구호는 반일보다는 반미입니다
북한의 아동들은 반미인사를 애국자로 교육 받고 있으며 우상화 하고 있습니다  미국정부의 북한 여행 자유화 조치는 한번 쯤 생각해보아야 할 정책입니다 . 북한정부의 반미정책 포기와 함께 북한 여행의 자유화를 해야 한다고 봅니다
국가사회주의 반미정책은 미국인에게 대한 적대의식과 북한 아동들 조차도 미국인의 간첩 신고대상으로 생각하고 있을 것입니다

 

 

 

 

 

북한은 반미국가로 초등학교 운동회나 중학교 야유회등 각종 놀이에서도 미군 죽이기 놀이 게임을 실시해오고 있으며 각종 교과서에서도 반미사상 교육이 대부분입니다

 미국인에 대한 적대의식 교육으로 북한 아동들이 미국인들을 테러범이나 전쟁범, 간첩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북한  정보기관은 귀(耳, Guide Ear=지도자의 교시)

 "김일성 교시 민족해방 인민민주주의 혁명(NLPDR)노선 말 따라 움직이면서 무장투쟁을 하는 사람들, 반미구국전선

1단계 반미전선

민족해방(NL, 반미투쟁)=좌우익연합전선 구축(우파 민족주의 세력과 연합)

반미전선은 친미, 친서방세력 제거

2단계 인민민주주의 혁명(인민회의정부론)

인민민주주의 혁명은 좌파연합전선 구축으로 우파세력 제거

3단계 김일성주의 유일사상(세습제 좌익군정)

김일성 직계 선군정치노선으로 반김일성 세력 제거"

-김일성 책자를 배우고 학습해라

-유엔,미국이나 유럽 등 각종 자료나 책자를 버려라 그들은 자본주의 세력(친미세력)이다

-눈(目, Bird's Eye=자유)이 아닌 귀(耳, Guide Ear=지도자의 교시)가 되어라

-중국 공산당 지도자를 버려야 종파분자가 되지 않는다 김일성 유일사상으로 무장하라

-국제적 반미투쟁가와 연대를 하라 그래야 반미전선을 구축할 수 있다 중국정부 내 친미인사를 제거하라 일본정부나 한국정부 내부 반미인사를 포섭하라

 

북한정부가 가장 두려워 하는 구호는 공산주의 반대 자본주의!! 민주주의 반대 독재주의(전체주의)!!

"민주주의 반대는 공산주의가 아닌 독재주의(전체주의)고 자본주의 반대가 공산주의입니다. 자본주의민주주의 혁명 이후 자유주의(자유권)와 사회주의(사회권=생존권) 공존(존중) 자유사회(민주화 사회)입니다"

*자본주의 3대 원칙[경제]:사유재산, 이윤추구, 자유시장경쟁 등[공산주의는 자본주의 3대 원칙을 부정함으로 자영업을 할 수 없다]

*민주주의 3대 원칙[정치]:국민의(民有), 국민에 의한(民治), 국민을 위한(民享) 정부

1단계 자본주의 민주주의 혁명 추진(경제 기반으로 정치)

2단계 자유주의(자유권)와 사회주의(사회권) 기반 구축

From Guide Ear(Language, Intelligence) to Bird's Eye(Reading,Investigation)

북미수교는 중국 등소평,강택민정부나 남한 노태우정부처럼  북한정부도 북한 언어차원(한글맞춤법) 개편과 함께 구시대 출판물과 극렬 반미, 반일성향 자료를 폐기해야 합니다[북한 아동 교과서 개편]

반미 이념으로 양육되는 북한 어린이

 

 

 

 

 

 

"6.1 국제아동절"을 맞아 만경대유희장에서 개최한 '어린이 체육 유희오락경기'에서 한 어린이가 'USA'라고 적힌 미군 모형을 향해 활쏘기를 하는 장면.

"북한정부의 아동교육은 반미구국전선 교육입니다. 북한의 아동들은 반미인사를 애국자로 교육 받고 있으며 우상화 하고 있습니다 "

 북한 큰 운동회 중에는 ‘미국놈 때려 부수기’ ‘수류탄 던지기’ 이런 놀이가 포함되었는데요. / 미제 놈들이 불벼락을 맞는 거에요. 뛰어와서 사탕하나 받아라. 주는 것 받아먹어요 / 어릴 적 버릇이 오래간다는 사람의 습관에 착안해서 어린이를 집단주의 원리에 따라 공산당이 바라는 방향으로 키우려는 것입니다

 

 

 

 

 

 

 

 

 

 

북한은 반미국가로 초등학교 운동회나 중학교 야유회등 각종 놀이에서도 미군 죽이기 놀이 게임을 실시해오고 있으며 각종 교과서에서도 반미사상 교육이 대부분입니다

 미국인에 대한 적대의식 교육으로 북한 아동들이 미국인들을 테러범이나 전쟁범, 간첩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북한정부 대남강경파 남침세력 NLPDR노선 김일성주의자 반미무장투쟁 포스터

북한정부의 김일성주의 NLPDR(민족해방 인민민주주의 혁명) 노선 "반미투쟁-극단적 민족주의(국가사회주의) 노선"

 

남한내부 북한정부 대남 강경파 남침세력(북한 인민군-국방위원회) NLPDR노선 김일성주의자 모임은 대부분 극단적 민족주의 세력 반미단체입니다

 

북한 김정은 세습제 좌익군정은 남침도 정의의 전쟁으로 묘사하고 있다

북한이 주장하는 반미 인민전쟁이란? NLPDR(민족해방 인민민주주의 혁명)

1단계 민족해방전선 구축(반미전선 구축)=좌우익연합정부 구성

(1)우파 민족주의 세력과 연합

(2)친미, 친서방 세력 제거

(3)반미전선 구축=반미정부 수립

2단계 인민민주주의 혁명(인민 회의정부와 인민위원회 구성)=사회주의(공산주의) 정부 구성

(1)우파 민족주의 세력 제거와 좌파정부 구성

(2)자유주의나 민주주의 세력 제거와 사회주의 정부 구성

(3)사회주의자와 공산주의자 연합정부

3단계 김일성주의와 세습제 좌익군정 수립(김일성주의 이외 모든 주의나 세력 숙청)=김정은 세습제 좌익군정 구성

(1)김일성주의 이외 기타 노선이나 세력 숙청(김일성 유일사상)

모택동주의자나 마스-레닌주의자 그리고 친중국이나 친러시아 세력  제거(숙청)

김일성 추종세력(김일성주의) 이외 사회주의자나 공산주의자 숙청이나 제거

(2)북한 인민군이 모든 권력 장악-김일성 직계 세습제 좌익군정 실시

남한 내부 좌익계열 제거나 숙청

북한 군부내 김일성주의 이외 종파주의 제거

(3)남한내부 김일성주의 단체

ㄱ.최초-통일혁명당(1960년대 후반)

ㄴ.1990년 1월 -민족민주혁명당(한국민족민주전선 서울대표부, 반미청년회)

반제동맹-반미청년회-한국민족민주전선

ㄷ.북한정부 대남정책은 남한내부 김일성주의 이외 모든 좌익군정 주의나 세력 제거를 추진해오고 있음

북한정부는 김일성주의 체제 유지를 하기 위하여 박헌영등 남로당과 조봉암 진보당등 해체나 제거에 남한정부에게 각종 정보를 넘겨주고 있다

ㄹ.북한 김정은 세습제 좌익군사정부(김일성 북한 권력장악 이후)는 독재정부로 민주주의 세력을 적으로 규정해오고 있다

북한정부에서는 김일성 유일사상 이외는 모든 세력이 적이다

ㅁ.한국정부 간첩이나 미국 정부 간첩은 김일성(김정은) 세습제 좌익군정 세력이다

NLPDR 세력 내부 김일성노선 추종세력이다[김일성주의 단체]

김정은 추종세력은 대부분 민주세력이 아닌 독재세력으로 국가사회주의 좌익군정 세력(극렬 민족주의 좌파세력)이다

 

 

 

 

 

 

 

 

 

 

 

 

 

 

 

 

 

 

북한정부의 대내외 주요 정책이 반미입니다
북한 현대사는 반일, 반미역사로 기록하여 학생들에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외부적으로 각종 자료 투쟁 구호는 반일보다는 반미입니다
북한의 아동들은 반미인사를 애국자로 교육 받고 있으며 우상화 하고 있습니다  미국정부의 북한 여행 자유화 조치는 한번 쯤 생각해보아야 할 정책입니다 . 북한정부의 반미정책 포기와 함께 북한 여행의 자유화를 해야 한다고 봅니다
국가사회주의 반미정책은 미국인에게 대한 적대의식과 북한 아동들 조차도 미국인의 간첩 신고대상으로 생각하고 있을 것입니다

 

 

 

"From Guide Ear(Language, Intelligence) to Bird's Eye(Reading,Investigation)"

 

*남한 정보기관은 눈(目, Bird's Eye=자유)

"독일정부 통일정책:자본주의 반대 공산주의! 민주주의 반대 독재주의(전체주의)! 반공반독재구국전선으로
민주주의 반대는 공산주의가 아닌 전체주의(독재주의), 자본주의 반대는 공산주의이다.
자본주의민주주의 혁명 이후 자유주의(자유권)와 사회주의(사회권=생존권) 공존(존중) 민주공화국(자유사회 선진국)이다
1단계-자유화, 개방화정책(자본주의=반공산주의)
자본주의 3대원칙-사유재산, 영리추구, 시장경쟁원리등[경제학 학습:미시와 거시경제학, 국제수지]
2단계-민주화 정책(민주주의=반국가사회주의)
민주연합 정부는 자유민주주의자와 사회민주주의자 공동정부 수립(통일정부)"[정치학 학습: 민주주의 공부]

-유엔,미국이나 유럽 등 선진국 각종 자료나 서적을 탐독하고 각종 자료를 판단할 수 있는 능력

-서독정부를 옹호하고 동독정부를 부정할 수 있을 만큼 지적능력

-역대 중국정부 지도자 자료를 보고 실용주의적 민주주의 입장에서 잘 파악하라

-대한민국 역대 대통령 생애 자료를 보고 나쁜 점과 좋은 점을 파악해라

-북한 상류층 말보다 평민층 말을 잘 파악하여 북한 사회를 정확하게 볼 수 있도록 노력해라 북한 상류층 말은 거짓말이 대부분이다

 

*북한  정보기관은 귀(耳, Guide Ear=지도자의 교시)

"김일성 교시 민족해방 인민민주주의 혁명(NLPDR)노선 말 따라 움직이면서 무장투쟁을 하는 사람들, 반미구국전선

1단계 반미전선

민족해방(NL, 반미투쟁)=좌우익연합전선 구축(우파 민족주의 세력과 연합)

반미전선은 친미, 친서방세력 제거

2단계 인민민주주의 혁명(인민회의정부론)

인민민주주의 혁명은 좌파연합전선 구축으로 우파세력 제거

3단계 김일성주의 유일사상(세습제 좌익군정)

김일성 직계 선군정치노선으로 반김일성 세력 제거"

-김일성 책자를 배우고 학습해라

-유엔,미국이나 유럽 등 각종 자료나 책자를 버려라 그들은 자본주의 세력(친미세력)이다

-눈(目, Bird's Eye=자유)이 아닌 귀(耳, Guide Ear=지도자의 교시)가 되어라

-중국 공산당 지도자를 버려야 종파분자가 되지 않는다 김일성 유일사상으로 무장하라

-국제적 반미투쟁가와 연대를 하라 그래야 반미전선을 구축할 수 있다 중국정부 내 친미인사를 제거하라 일본정부나 한국정부 내부 반미인사를 포섭하라

 

 

북한 조국통일민주주의 전선 소속단체이며 대남공작단체는 재중총련, 재일총련, 재한총련(반제민족민주전선 중앙위원회)

반제민족민주전선 중앙위원회, 서울)이란

한국 내부 북한 주체연호 세습제 1인 종신직 좌익군정의 사회주의 국가(김일성 김정일주의)를 지지하는 동포들이 결성한 단체가  반제민전 중앙위원회(재한총련)이다. 반제민족민주전선 중앙위원회(재한총련) 는 지하조직으로 실질적 친북단체이며 명목상(의례적) 친북 합법조직은 범민련(범청학련)이나 민중당 내부 NLPDR계열 단체들이다.

반제민족민주전선 중앙위원회(재한총련)는 주체연호 세습제 1인 종신직 좌익군정의 북한식 사회주의 국가(김일성 김정일 김정은주의)를 지지하고 북한 조국통일민주주전선 소속단체이며 대남공작기구[ 통일전선부 산하기관인 제225부(구 대외연락부)]이다. 대표적인 단체는 통일혁명당과 민족민주혁명당(민혁당)이다

재한총련(반제민족민주전선 중앙위원회, 서울)도 재중총련 조직처럼 범민련 조직으로 파악할 수 있으며 재일총련처럼 남한정부 대표부(북한 통일전선부 대화창구) 성격으로 파악할 수도 있다

북한 조국통일민주주의 전선 소속단체이며 대남공작단체는 재중총련, 재일총련, 재한총련(반제민족민주전선 중앙위원회) (daum.net)

 

북한 조국통일민주주의 전선 소속단체이며 대남공작단체는 재중총련, 재일총련, 재한총련(반제

북한 조국통일민주주의 전선 소속단체이며 대남공작기구[ 통일전선부 산하기관인 제225부(구 대외연락부)]는 재중총련, 재일총련, 재한총련(반제민족민주전선) 등이다 이들 단체는 북한정부의

blog.daum.net

 

오늘날 국가정보는 Guide Ear(Intelligence)보다는 Bird's Eye(Investigation)입니다

모사드

오늘날 국가정보는 Guide Ear(Intelligence)보다는 Bird's Eye(Investigation)입니다.

Guide Ear(Language, Intelligence)는 개인의 인권침해(정보왜곡), 이상주의자나 거짓말이 될 수 있으며 Bird's Eye(Reading,Investigation)은 개인의 뇌 검증(정보자료 획득), 현실주의자나 정보 자료가 될 수 있습니다.

머리소리함 Guide Ear는 각국 정부 역대 권력자의 국내외정책에 따라서 움직이기 때문에 역대 정부의 정책 집행자들이라면 머리소리함 Bird’s Eye는 요원들의 뇌 수준에 따라 판단 기준이 다릅니다.

 

머리소리함(텔레파시) Guide Ear팀 요원은 "From Bird's Eye(Reading,Investigation) to Guide Ear(Language, Intelligence)"원칙으로 생활화해야 하며 20년이상 경력자는 "From Guide Ear(Language, Intelligence) to Bird's Eye(Reading,Investigation)"로 생활해도 됩니다.

머리소리함 Headquarters는 "From Guide Ear(Language, Intelligence) to Bird's Eye(Reading,Investigation)"입니다.

 

머리소리함(텔레파시) Guide Ear팀은 극초단파 기술로 태어날 때부터 생존 당시까지 뇌 기억 검증을 한 사람으로 구성되고 있습니다. 특히 대북은 사상검증이 돼야 하고 대한민국 입장에서 대북정책을 추진할 수 있을 만큼 의식 수준이 돼야 합니다.

 

대남 간첩이나 탈북민, 친북 주사파 그룹이 머리소리함( 텔레파시) Guide Ear 요원이 되기 위해서는 태어날때부터 생존 당시까지 뇌 기억 검증이 돼야 하며 자본주의민주주의 혁명 후 자유주의(자유권)와 사회주의(사회권=생존권) 공존(존중) 자유사회(민주국가) 입장에서 각종 자료를 수집, 조사, 분석, 판단할 수 있을 만큼 능력 된 자입니다.

 

-극초단파 기술로 태어날때부터 생존 당시까지 뇌 기억이 검증된 후  29년간 머리소리함( 텔레파시) Guide Ear로 활동하고 있는 Asia-Pacific Region Intelligence Center 허관[許灌]-

From Guide Ear(Language, Intelligence) to Bird's Eye(Reading,Investigation)

 

-우파 인민공화국(민주국가)과 좌파 사회주의공화국(사회주의 국가)-

북한 제1공화국은 민유(民有), 민치(民治), 민향(民享)의 인민민주주의 인민회의정부론 우파정부 민주주의 인민공화국라면 북한 제2공화국은 노동계급이 령도하는 로농동맹에 기초한 전체 인민의 리익을 대표하는 자주적 사회주의 국가 좌파정부 사회주의 공화국이다.

북한 제3공화국은 주체연호 세습제 1인 종신직 좌익군정 사회주의 국가 김일성 가계 왕조적 독재국가이다.

 

주체연호 세습제 1인 종신직 좌익군정 사회주의 국가 김일성 가계 왕조적 독재국가체제 북한 김정은정부가 자유화, 개방화, 민주화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민유(民有), 민치(民治), 민향(民享)의 인민민주주의 인민회의정부론 우파정부 민주주의 인민공화국으로 탈바꿈이 돼야 가능하다.

좌파노선 사회주의 공화국이론은 군국주의, 국가사회주의 극우성향으로 좌익 파시즘 체제이다.

북한 김정은정부와 북한 제3공화국 헌법의 약점은 북한 제1공화국 헌법이다.

북한 제1공화국 헌법은 민유(民有), 민치(民治), 민향(民享)의 인민민주주의 인민회의정부론 우파정부 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이다 북한 제1공화국 헌법이 북한 주민들의 개인 권리와 자유, 민주적 권리를 존중하고 있다면 제3공화국 헌법은 주체연호 세습제 1인 종신직 좌익군정 사회주의 국가와 김일성 가계 왕조적 독재국가체제이다.

 

남한(대한민국)은 민유(民有), 민치(民治),민향(民享)의 민주국가(민주공화국)이라면 북한(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노동계급의 령도 노농연맹(勞農聯盟)의 주체연호 세습제 1인 종신직 좌익군정의 북한식 사회주의 국가이다

 

 

1.북한 국정(國政): 주체연호 세습제 1인 종신직 좌익군정 북한식 사회주의 국가[좌익 파시즘 군사독재정부]

-북한 국정의 약점은 민주화 정책이다

 

2.북한 사회구성체:국영자본체제(국가가 운영하는 자본주의 체제)

-북한 사회구성체의 약점은 자유화, 개방화 정책(개혁개방정책)과 민영자본체제이다

 

3.남한 내부 친북 김정은세력은 어떤 인물입니까?

재한조선인총련합회[반제민족민주전선 중앙위원회 서울, 재한총련]이란

한국 내부 북한 주체연호 세습제 1인 종신직 좌익군정의 사회주의 국가(김일성, 김정일, 김정은주의)를 지지하는 동포들이 결성한 단체가  반제민전 중앙위원회(재한총련)이다. 반제민족민주전선 중앙위원회(재한총련) 는 지하조직으로 실질적 친북단체이며 명목상(의례적) 친북 합법조직은 범민련(범청학련)이나 친북조직 내부 NLPDR계열 단체들이다.

반제민족민주전선 중앙위원회(재한총련)는 주체연호 세습제 1인 종신직 좌익군정의 북한식 사회주의 국가(김일성 김정일 김정은주의)를 지지하고 북한 조국통일민주주전선 소속단체이며 대남공작기구[ 통일전선부 산하기관인 제225부(구 대외연락부)]이다. 대표적인 단체는 통일혁명당과 민족민주혁명당(민혁당)이다

재한총련(반제민족민주전선 중앙위원회, 서울)도 재중총련 조직처럼 범민련 조직으로 파악할 수 있으며 재일총련처럼 남한정부 대표부(북한 통일전선부 대화창구) 성격으로 파악할 수도 있다.

북한정부 내부 제1공화국 헌법 민유(民有), 민치(民治), 민향(民享)의 인민민주주의 인민회의정부론을 옹호하는 세력이나 김일성 가계 세습제를 반대하는 세력들은 반김정은세력이다. 

북한 김정은 세력은 자유화, 개방화, 민주화 세력보다는 강한 민족주의 좌익 파시즘 세력으로 극우성향이다

북한 김정은 세력은 모택동, 김일성주의 노선 NLPDR(민족해방 인민민주주의 혁명)론자 중 인민민주주의(PD, 민주파)계열보다는 민족해방(NL, 자주파)계열이다.

 

좌파와 우파 그리고 진보와 보수

좌파는 노동자계급이 령도하고 노농연맹을 기초로 하는 인민민주 전제정치( 인민민주주의독재)의 사회주의국가(사회정부) 수립을 목표로 하는 세력이라면 우파는 민유(民有), 민치(民治),민향(民享)의 민주국가(민주정부) 수립을 목표로 하는 세력입니다

 

진보는 민유(民有), 민치(民治),민향(民享)의 민주국가(민주정부) 입장에서 자본주의민주주의 혁명 후 사회민주주의(생존권과 국영자본체제, 보호무역 존중) 세력을 지칭하고 있으며 보수는 민유(民有), 민치(民治),민향(民享)의 민주국가(민주정부) 입장에서 자본주의민주주의 혁명 이후 자유민주주의(자유권과 민영자본체제, 자유무역 존중) 세력을 지칭하고 있습니다

민주주의 반대는 공산주의가 아닌 독재주의(전체주의)고, 자본주의 반대는 공산주의입니다

자본주의민주주의 혁명 이후 자유주의(자유권)와 사회주의(사회권=생존권) 공존(존중) 민주국가(자유사회)입니다

민주국가의 경제 토대는 자본주의이며 정치 토대는 민주주의입니다

민주국가는 자본주의민주주의 혁명 후 자유민주주의 세력과 사회민주주의 세력의 연합정부입니다

 

노동자계급이 영도하고 노농연맹을 기초로 하는 인민민주 전제정치( 인민민주주의독재)의 사회주의국가 노선 좌파는 입헌군주제를 부정하고 공화국이론(사회주의 공화국)이라면   민유(民有), 민치(民治),민향(民享)의 민주국가 노선 우파는 입헌군주제를 인정하는 민주국가이론(민주공화국이나 입헌군주국)입니다

 

오늘날 대부분 나라는 좌파 세력 사회주의 국가이론이 몰락하고 우파세력 민주국가이론에서  자본주의민주주의 혁명 이후 자유민주주의 세력과 사회민주주의 세력  공존(연합)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남한사회에서 좌파세력이라면 민혁당 등 친북세력이나 사회주의자동맹(사로맹) 추종세력 등입니다

조봉암선생이 창당한 진보당도 무산계급의 독재와 민주집중제를 반대하고 북한 노동당 일당독재를 거부한 우파세력입니다

 

대한민국은 민유(民有), 민치(民治),민향(民享)의 민주국가입니다

 

1.우파(민주국가론과 민영자본체제)와 좌파(사회주의 국가론과 국영자본체제)

(1) 우파 민주국가론(민주공화국이나 입헌군주국 이론)[民營資本體制]

世界潮流浩浩蕩蕩順之則昌, 逆之則亡.

民國基於三民主義為民有民治民享之民主共和國(立憲君主國,聯邦共和國)

-국정(國政, 民國)은 국민의 엄숙한 신탁에 의한 것으로서, 그 권위는 국민에 유래하고(民有), 그 권력은 국민의 대표자가 행사하고(民治), 그 복리는 국민이 향유한다(民享)는 민주주의(민주)국가이다

-중화민국은 삼민주의(三民主義)에 기초한, 민유(民有), 민치(民治), 민향(民享)의 민주공화국이다.

중화민국의 주권은 국민 전체에 있다.

-국정은 국민의 엄숙한 신탁에 의한 것으로서, 그 권위는 국민에 유래하고, 그 권력은 국민의 대표자가 행사하고, 그 복리는 국민이 향유한다. [일본국 헌법]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프랑스 국민은 1789년 인간과 시민의 권리선언에서 규정되고 1946년 헌법 전문에서 확인· 보완된 인권과 국민주권의 원리, 그리고 2004년 환경헌장에 규정된 권리와 의무를 준수할 것을 엄숙히 선언한다.

프랑스 공화국은 상기의 원리들과 각 국민들의 자유로운 결정에 따라, 공화국에 결합하기를 희망하는 해외영토들에게 자유· 평등· 박애의 보편적 이념에 입각하고 그들의 민주적 발전을 위한 새로운 제도들을 제공한다.

프랑스 공화국은 자유· 평등· 박애를 국시로 한다.

프랑스 공화국은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부를 원칙으로 한다

-개인의 권리와 자유는 최고의 가치를 갖는다. 개인과 시민의 권리와 자유를 인정하고 이를 준수하며 수호하는 것은 국가의 의무이다.

국민투표와 자유선거는 국민에 의한 최고의 직접적인 권력행사이다.

러시아연방에서는 이데올로기의 다양성이 허용된다.

어떠한 이데올로기도 국가이념이나 의무적 이념으로 규정될 수 없다.

러시아 연방에서는 정치적 다양성과 복수정당이 허용된다.

모든 사회단체들은 법앞에 평등하다. [러시아연방 헌법]

*미합중국 헌법[민주국가 헌법]

That this nation, under God, shall have a new birth of freedom -- and that government of the people, by the people, for the people, shall not perish from the earth.

http://blog.daum.net/007nis/15876066

*프랑스 제5공화국 헌법 전문

http://blog.daum.net/007nis/15871495

*군국주의 국가사회주의 성향 독일 바이마르 헌법(1919)과 군국주의 국가사회주의로부터 해방법률 독일연방공화국 기본법(독일 통일헌법)

http://blog.daum.net/007nis/15875048

*군국주의 대일본제국 헌법 전문과 평화주의 입헌군주제 일본국 헌법 전문[민주국가 헌법]

http://blog.daum.net/007nis/15874623

*러시아 연방 헌법[Конститу́ция Росси́йской Федера́ции](민주국가 헌법)

http://blog.daum.net/007nis/15876072

*中華民國 憲法(중화민국 헌법)

http://blog.daum.net/007nis/15857658

*대한민국 헌법(大韓民國 憲法)

http://blog.daum.net/007nis/15875575

*몽골헌법

http://blog.daum.net/007nis/15871736

*1987년 필리핀공화국 헌법

필리핀은 민주 공화국이다. 주권은 국민에게 있으며 모든 정부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1987년 필리핀공화국 헌법 (daum.net)

 ㄱ.우파는 민유(民有), 민치(民治),민향(民享)의 민주국가(민주정부) 수립을 목표로 하는 세력입니다

ㄴ.우파는 경제적 자유와 자유무역 등을 옹호하고 민영자본체제(민간자본주의)를 지지하고 있습니다

민주주의 반대는 공산주의가 아닌 독재주의(전체주의)고, 자본주의 반대는 공산주의입니다

자본주의민주주의 혁명 이후 자유주의(자유권)와 사회주의(사회권=생존권) 공존(존중) 민주국가(자유사회)입니다

민주국가의 경제 토대는 자본주의이며 정치 토대는 민주주의입니다

민주국가는 자본주의민주주의 혁명 후 자유민주주의 세력과 사회민주주의 세력의 연합정부입니다

ㄷ.우파는 입헌군주제를 인정하는 민주국가이론입니다

국정(國政, 民國)은 국민의 엄숙한 신탁에 의한 것으로서, 그 권위는 국민에 유래하고(民有), 그 권력은 국민의 대표자가 행사하고(民治), 그 복리는 국민이 향유한다(民享)는 민주주의(민주)국가이다[일본헌법]

ㄹ.우파는 군정통합주의(병정통합주의) 군사정책을 지지하고 있습니다

병정통합주의(兵政統合主義)란 군정통합주의는 군정기관과 군령기관을 모두 행정부에 소속시켜 군령 또는 군정과 같이 국가행정의 일부로서 정부의 책임과 의회의 통제 아래서 수행하도록 하는 주의로써 오늘날 대부분의 국가에서 채택하고 있다 군정통합주의는 통수권의 독립이 허용되지 않으며 문관에 대한 무관의 지배가 불가능함으로 군국주의(군부통치)의 대두를 방지하는 장점이 있다 군정통합주의는 미국이나 영국, 한국, 러시아, 일본, 프랑스, 독일, 캐나다 등 대부분 국가에서 채택하고 있다

국가원수가 군 통수권자이다. 문관(의회와 내각)에 대한 무관(인민군과 국방위원회)의 지배가 불가능함으로 군국주의나 침략주의 군대가 될 수 없다

 

(2) 좌파 사회주의 국가(사회주의 공화국) 이론[國營資本體制]

1991년 소련 해체와 동구권의 공산주의 국가(사회주의 국가) 몰락을 계기로 프롤레타리아 독제체제(노농동맹 인민민주주의 독재체제) 사회주의는 급격히 몰락했고 레닌의 '국가와 혁명'이 나온지 102주년이 되는 2019년 현재는 레닌의 논지(마스-레닌주의)를 명목적으로나마 유지하는 공산주의 국가는 북한, 중국, 베트남, 라오스 그리고 쿠바 등 5개국에 불과하다.[노동계급의 노농동맹(공산당) 령도(領導, 지도) 인민의회정부론 인민민주주의 독재체제(프롤레타리아 독재) 사회주의 국가](많은 분들은 노동자 국가를 지향하고 있는 이탈리아 파시즘이나 독일 나찌즘을 극우라고 표현하지만 좌익 파시즘으로 표현하고도 있다)

-소비에트국가는 프롤레타리아독재를 위한 사명을 완수함으로써 전인민의 국가가 되었다

-중화인민공화국은 노동자계급이 영도하고 노농연맹을 기초로 하는 인민민주 전제정치( 인민민주주의독재)의 사회주의국가이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전체 조선인민의 리익을 대표하는 자주적인 사회주의국가이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위대한 김일성-김정일주의를 국가건설과 활동의 유일한 지도적지침으로 삼는다

*스탈린 헌법과 소비에트사회주의공화국연방헌법[1990 3 14일에 개정된 소연방의 신헌법]

http://blog.daum.net/007nis/15876069

*실용주의 노선 중화인민공화국 등소평 헌법과 공산당 령도 중화인민공화국 습근평 헌법

http://blog.daum.net/007nis/15873485

*베트남 헌법(2013년 개정)[민주공화국 형태 사회주의 헌법]

-베트남 사회주의 공화국 국가는 인민에 의한(民治), 인민을 위한(民享) 인민의(民有) 사회주의 법치국가이다-

http://blog.daum.net/007nis/15876070

*북한헌법

-인민민주주의 인민공화국(1공화국 헌법)과 주체사상 자주적 사회주의 국가(2공화국 헌법), 주체연호 세습제 1인 종신직 좌익군정 사회주의 국가(3공화국 헌법)-

http://blog.daum.net/007nis/15875476

 

1957년 10월 15일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중공중앙)이 ‘우파분자 분류 표준에 관한 통지’를 발표하였다.[모택동주의 노선 중국 공산당이 분류한 자본주의민주주의 세력(수정주의자) 우파와 극우세력 동향]
이에 따른 우파는 다음과 같다.
1) 사회주의 제도를 반대하는 자 .
2) 무산계급의 독재와 민주집중제를 반대하는 자 .
3) 공산당의 국가 정치생활 중의 영도적 지위를 반대하는 자 .
4) 사회주의와 공산당을 반대함으로써 인민의 단결을 분열시키려는 자 .
5) 사회주의를 반대하고 공산당을 반대하는 소집단을 조직하고 이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자 일부 분야 혹은 일부 계층 단위에서의 공산당의 영도를 뒤엎으려는 자 공산당과 인민정부를 반대하는 소란을 선동하는 자.
6) 앞에서 규정한 우파분자의 범죄활동을 지지하고, 관계를 맺으며 또 통신하여 혁명조직의 기밀을 보고하는 자.

통지는 또한 다음과 같은 사람들을 극우분자로 분류했다.
1) 우파활동 중의 야심가, 지도분자, 주모분자와 핵심 분자.
2) 공산당과 사회주의를 반대하는 강령성 의견을 제출하고 이 같은 의견을 적극적으로 고취한 자.
3) 사회주의 반대활동에 특별히 악랄하고 적극적으로 활동한 분자.
4) 역사적으로 일관되게 반공산당, 반 인민 활동을 전개해 왔으며 최근의 우파활동 전개 시에 적극적으로 반동활동을 한 자.

 

중공중앙의 이 통지는 반우파 투쟁을 체계화하는 것이었다.
중국 공산당은 1949년 건국 후사회주의 개조과정에서 후펑(胡風본명은 장광런張光人) 비판 등의 부르주아사상 비판 캠페인으로 위축되어 있었던 지식인의 활동을 적극화시키기 위해 '백화제방 백가쟁명(百花齊放 百家爭鳴)' 운동을 제창했다.
중국문화가 꽃핀 춘추전국시대 제자백가의 자유로운 언론활동을 상기시키기 위하여 마오쩌둥(毛澤東)이 명명했고, 1956년 5월 중국공산당 선전부장 루딩이(陸定一)가 '백화제방·백가쟁명'이라는 제목으로 강연, 지식인의 자유로운 발언을 호소했다.
당초 지식인의 반응은 매우 소극적이었으나 1957년 5월 '언자무죄(言者無罪 : 무엇을 말해도 죄가 되지 않는다)'라는 방침에 고무, 일제히 발언하기 시작, 중국공산당에 대한 비판이 속출했다.
마오의 생각은 이 운동을 통해 이왕의 사회주의 건설을 정당화하고 강화하자는 것이었으나 순식간에 체제를 부정하는 단계로까지 치닫자 자신이 고무한 이들의 발언을 "'우파' 분자에 의한 반당·반사회주의적 '독초'"라고 매도하고, 같은 해 6월 '반우파투쟁'을 전개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공산당의 모순을 비판했던 공산당원들 다수가 반우파 분자로 몰려 숙청되었는데 대표적인 인물이 주룽지(朱鎔基) 전 총리였다. 29세이던 1957년 당적박탈과 강등 조치를 당한 주룽지는 문화대혁명 기간에는 이 ‘우파분자’라는 꼬리표 때문에 5년 동안 노동개조를 받기도 했다. 그는 마오쩌둥이 사망한 2년 뒤인 1978년 당적을 회복하고 사회과학원 공업경제연구실 주임에 임명되면서 ‘개혁 총리’로서의 미래를 예비했다. 당시 그의 나이는 50세였다

 

오늘날 마스-레닌주의(공산주의)는 수정주의 노선으로 나아가야 선거에서 승리할 수 있다

수정주의 노선은 국영자본체제와 노농조합(지역 지방 의회) 도입 그리고 노동계급이 령도하고 노농연맹을 기초로 하는 인민민주 전제정치(인민민주주의 독재체제, 프롤레타리아독재체제)와 국가주석이나 대통령의 임기제한 등이다

국영기업이나 농장이 노농조합(지역 의회)에 의한 운영과 함께 개인의 사유재산, 이윤추구, 시장경쟁원리의 자본주의 3원칙을 인정하고 상업적 공농(工農) 생산품을 생산하여 판매하여 그 수익으로 세금과 경영 비용, 노동자나 농민들에게 임금으로  분배하는 것이다

국영기업이나 농장의 부패와 관료주의를 제거하기 위해서는 노농조합(지역의회)애 의한 책임자 선출과 임기제한 그리고 사업 의결권을 주어야 한다

 그리고 인민 의회정부론(인민 회의정부론)이 의회보다 지도자론(영도론)으로 나아갈 때 군국주의 국가사회주의 국가(1인 전체주의 정부)가 될 수 있기 때문에 국가주석이나 대통령(최고지도자)의 임기제한을 해야 인민회의정부(인민의회정부)가 될 수 있다. 중국 등소평헌법이나 쿠바 신헌법은 국가주석 임기를 제한하고 있다. 베트남도 형식상 국가주석 4년 중임제이다

당이나 노농조합(지역의회) 독재나 우위는 인정하지만 국가주석이나 대통령, 농장 책임자나 국영기업 책임자 개인의 독재는 인정하지 않는다

노농조합이나 지역의회 그리고 연방의회(중앙의회)에서 선출된 국영기업(농장) 책임자나 국가주석(대통령)의 임기는 제한이 돼야 세습화나 부패를 척결할 수 있다

ㄱ.좌파는 노동자계급이 영도하고 노농연맹을 기초로 하는 인민민주 전제정치( 인민민주주의독재)의 사회주의국가(사회정부) 수립을 목표로 하는 세력입니다.

ㄴ.인민의회 정부론(인민 회의제 정부론)

PDR(인민 민주주의 혁명)은 회의제 정부론(의회 정부제) 이론이다

순수내각책임제 형태 정부이론으로 의회가 가장 우월한 정부형태(권력주체)로 의회는 정부를 불신임 할 수 있지만 내각은 의회를 불신임할 수 없다

(ㄱ)민선의회에 권력이 집중

(ㄴ).집행부(내각, 행정부)는 의회에 예속 종속됨

의회는 내각을 불신임하지만 내각은 의회를 불신임하지 못한다

권력이 의회에 집중 돼 있고 내각은 의회에 예속, 종속돼 있다. 공산주의 국가나 자국 사회주의 헌법 국가들은 공산당이나 노동당, 사회당의 1당 독재 국가체제로 당 총서기나 당 총비서가 내각 수상이나 국가주석이다

인민의회 정부론에서 국가수반(국가대표)은 주석이나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위원장(대통령)이다. 국가주석이나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위원장이 의례적 상징적 인물이고 실질적 권한은 수상이 해오고 있다

중국은 국가주석이 국가수반(국가대표)이고 군사위원장이 군 통수권자이며 총리(수상)는 행정부 수반이다. 등소평 헌법은 국가주석은 공산당 대표(중국 공산당 총서기)가 아닌 중국 전체 인민의 대표자(국가대표자)로서 국가주석 임기는 5년 중임제이고 총리는 의원 임기와 동일하다 군사위원장 임기는 제한이 없는 것이 특징이다

인민 민주주의 독재형태를 의회독재로 이해하고 있다

등소평 헌법은 형식상 국가를 대표하는 주석 밑에 국가권력이 유지하는 형태로 국가주석 임기를 제한했다

습근평 헌법은 공산당의 일당 독재정부로 수평적으로 국가주석이나 군사위원장, 수상의 임기제한을 하지 않았다

실용주의 중국 등소평헌법은 공산당 국가가 아닌 중국 전체 인민의 정부이다

인민해방군은 공산당 당군으로 공산당 총서기가 군사위원장이 돼야 한다는 이론이 습근평 이론이며 인민해방군은 중국 전체 인민의 군대로 공산당 총서기가 아닌 다른 분이 될 수 있다는 것이 등소평 이론이다 그리고 1982년 등소평 헌법은 권력이 집중한 마오(모택동) 시대의 반성에서 국가주석 3선 금지를 했다 그래야 민주주의 원칙과 인민 전체 경제환경이 나아질 수 있다는 입장이다

등소평 헌법은 실용주의 노선 수정주의자라면 습근평 헌법은 공산주의 교조주의자이다

ㄷ.좌파는 경제적 사회와 보호무역 등을 옹호하고 국영자본체제(국가자본주의)를 지지하고 있습니다

공산주의는 자본주의를 부정하지만 사회주의는 자본주의를 인정합니다 자본주의 3대 원칙(경제)은 사유재산, 이윤추구, 자유시장경쟁 등입니다

공산주의는 자본주의 3대 원칙을 부정함으로 자영업(자작농)을 할 수 없습니다. 공산주의는 자본주의를 부정하기 때문에 국가사회주의(자국 사회주의) 국영자본체제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국영자본체제는 국가가 운영하는 자본주의(국영기업, 국영농장)를 의미합니다

ㄹ.좌파는 입헌군주제를 부정하는 사회주의 국가이론입니다

사회주의 국가이론은 불평등을 해소하고 노농동맹(무상계급)에 의하여 운영 되어지는 프롤레타리아독재 체제입니다

그러므로 좌파 사회주의 국가이론은 사회주의 공화국 이론으로 왕이 없다는 공화국만을 인정함으로 군주제를 부정합니다

 - 소비에트국가는 프롤레타리아독재를 위한 사명을 완수함으로써 전인민의 국가가 되었다

-중화인민공화국은 노동자계급이 영도하고 노농연맹을 기초로 하는 인민민주 전제정치( 인민민주주의독재)의 사회주의국가이다.

ㅁ.좌파는 군정분리주의(병정분리주의) 군사정책을 지지하고 있습니다

군정분리주의는 군정과 군령을 분리된 국가제도이다 군정분리주의는 군정기관과 군령기관의 역할을 내각과 국방위원회(군사위원회, 군사평의회)로 분리함으로써 군정은 정부의 책임과 의회의 통제 아래에 두지만 군령은 정부나 의회보다 우월한 군령권을 국방위원회(군사위원회, 군사평의회)에 두고 있다 그러므로 군 통수권에 정치적 판단(의회통제)이 개입할 여지가 없고 오로지 최고 지도자에게만 모든 군 인사권이 주어지고 있다

군정분리주의는 문관(의회와 내각)에 대한 무관(인민군과 국방위원회)의 지배가 가능함으로 군국주의가 대두 되고 NLPDR(민족해방 인민민주주의 혁명) 단체들이 군을 장악하는 형태이다 그러므로 용병작전(用兵作戰)에서 정치적 이익(의회)관계가 개입될 우려가 없고 오로지 지도자에 대한 충실한 충성 군대만 있었므로 강군(强軍)을 유지할 수 있는 침략주의 국가사회주의 군대 모델이다

군정분리주의 군사정책은 군 실권자가 최고 권력자로 언제든지 군사쿠데타나 반란이 일어날 가능성도 있으며 내전 위기때 군벌끼리 권력투쟁이 일어날 가능성도 있다

병정분리주의(군정분리주의) 국가는 중국이나 북한, 이란, 리비아 카다피, 시리아등 좌익군사정부 국가사회주의 체제 국가들이다

병정분리주의(군정분리주의) 군사정책은 당군이론으로 국방위원회(군사위원회)와 인민군(인민해방군)이 노동당(공산당)과 내각, 의회를 사실상 장악하여 현역군인 중심으로 북한이나 중국정부의 권력을 장악해오고 있다. 중국은 등소평 헌법에서 국가주석과 부주석 임기제한 그리고 군사정책도 군정통합주의로 개혁을 추진해오고 있다. 군은 당군이 아닌 국민의 군대, 국군이 돼야 한다

ㅂ.일본 공산당 "2단계 민주연합정부론과 미래에 사회주의적 변혁을 목표"

http://blog.daum.net/007nis/15875883

 

일본 공산당 "2단계 민주연합정부론과 미래에 사회주의적 변혁을 목표"

일본 공산당 깃발은 박애, 우애, 동무의 상징 빨강색(공산주의 상징 붉은 색) 바탕에 하나로 합쳐진 민주주의 혁명, 민주 통일전선 ,  국제 통일 전선, 일본 공산당 건설을 각각 나타내는 4 개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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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공산당은 과학적 사회주의를 당의 기본 방침으로 한다

일본 공산당은 2단계 혁명이론 NLPDR노선으로 우선 대미 종속과 대기업의 지배에 대한 민주주의 혁명을, 미래에 사회주의적 변혁을 목표로 한다

1단계로는 반미 민족해방과 인민민주주의 혁명이며 2단계로는 노동계급 령도 노농동맹 프롤레타리아 독재체제(인민 민주주의 독재체제) 사회주의 국가 수립이다

 

1단계 민주주의 혁명(民主主義革命)

2004 1월 제 2 차 당대회 개정 강령에서 일본 사회가 필요로 하는 변화는 사회주의 혁명(社會主義 革命)이 아니며 "민주주의 혁명(民主主義 革命)과 민주연합정부(民主聯合政府)'의 목표로 내세웠다

대기업 재계와 대미 종속 세력으로부터 일본 국민(日本 國民)의 이익을 대표하는 세력에 권력 이양을 민주주의 사회에서의 혁명이라고 평가 자본주의의 틀 안에서 가능한 민주적 개혁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대기업 재계와 대미 종속 세력에서 일본 국민의 이익을 대표하는 세력으로의 권력 이양을 민주주의 사회에서의 혁명으로 자리매김하고 자본주의의 틀 안에서 가능한 민주적 개혁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일본 공산당은 현재 일본 사회가 요구하는 변화는 사회주의 혁명이 아니라 다음의 민주주의 혁명이라고 하였다

 

(ㄱ)국가의 독립 · 안보 · 외교 분야(分野)

대미 종속을 타파하고 미일안전보장조약(日米安全保障条約)의 폐기(廃棄)와 비동맹(非同盟 중립(中立)의 일본을 실현한다. 미국과 대등 평등(対等平等)

의 우호 조약(友好条約)을 맺는다 등등

(ㄴ)헌법(憲法)과 민주주의(民主主義) 분야(分野)

a.헌법 전문을 포함한 모든 내용을 지키고, 특히 평화적 민주적 조항(平和的民主的諸条項)의 완전한 이행을 목표로 한다.

b.의회 민주주의의 체제 반대 당을 포함한 복수 정당제 선거에서 다수를 얻은 정당 또는 정당 연합이 집권하는 정권 교대(政権交代)는 당연히 견지한다.

c.18세 선거권을 실현한다.

d.일본 국민의 기본적 인권을 억압하는 모든 시도를 제거한다. 남녀평등(男女平等)의 권리(權利)를 모든 분야에서 옹호하고 지킨다. 종교의 자유를 옹호하고 정교분리(政敎分離)의 원칙에 철저를 도모한다. 등등

(ㄷ)경제적 민주주의(経済的民主主義)의 분야(分野)

a.장시간 노동과 일방적 해고 규제를 포함해 유럽 주요 자본주의 국가와 국제조약 등의 도달점도 근거로 '규칙 있는 경제사회'를 실현한다.

b.대기업(독점 자본)에 대한 다양한 민주적 규제(民主的規制)와 군축(軍縮), 불필요한 공공 사업의 중지, 대기업 · 재벌 우대 세제의 재검토를 재원으로 한 사회보장의 충실 등등.

 

이상(以上)의 민주주의 혁명(民主主義革命)에 의해 일본은 미국의 사실상의 종속국의 지위에서 벗어나 진정한 주권을 회복하고, 국내적으로도 국민이 처음으로 나라의 주인공이 된다. 또한 일본은 군사적 긴장의 근원임을 멈추고 평화의 견고한 초석으로 바뀐다.

 

이 민주주의 혁명(民主主義 革命)에 대한 입장 1961년 강령에서는 ""일본의 당면한 혁명은 미국 제국주의와 일본의 독점 자본의 지배, 두 적()에 반대하는 새로운 민주주의 혁명, 인민민주주의 혁명(人民 民主主義 革命)이다"라고 되어 있고, 1994년의 강령까지 거의 동일한 표현을 했다

2004년 강령 개정 당시에는 '다수자 혁명'이나 '의회의 다수를 얻어 혁명의 노선'이라는 설명이 이루어졌다

 

민주주의 혁명의 과정: 통일전선에 근거한 민주연합정부(民主連合政府) 구상(構想)

 

일본 공산당은 일본 공산당(日本共産党)과 통일전선(統一戦線)의 세력이 국민 다수의 지지를 얻어 국회에서 안정된 과반수를 차지한다면 통일전선(統一戰線)의 정부(政府) 즉 민주연합(民主聯合) 정부(政府)를 만들 수 있다는 입장으로 단독 정권(単独政権)이 아닌 통일전선(統一戦線)에 기반한 연합정권(連合政権)을 목표로 하고 있다

 

그러면서 "국회를 명실상부한 최고기관으로 하는 의회제 민주주의 체제(議会制民主主義 体制)

, 반대당(反対党)을 포함한 복수정당제, 선거에서 다수를 얻은 정당 또는 정당연합이 정권을 담당하는 정권교대제(政権交代制, 정권교체)는 당연히 견지한다.

 

 '통일전선(統一戦線)'은 역사적으로 1945년의 강령에서는 모든 민주주의 세력의 결집에 의한 인민전선(人民戰線)의 결성 올바른 실천적 목표 아래 협동할 수 있는 모든 단체 및 세력과 통일전선(統一戰線)의 결성한다고 되어 있다

1947년의 강령에서는 광범위한 민주전선으로 1961년부터 2004년까지 강령에서는 '민족 민주 통일전선(民族民主統一戦線, NLPDR)'으로 표현 되었다

 '민족민주통일전선 정부(民族民主統一戦線政府)' '혁명정부(革命政府)'로 전환한다고 하고 있었지만, 2004년 강령 개정에서는 이 규정은 삭제 되었다.

2단계 사회주의적 변혁(社会主義的変革)

일본 공산당은 즉각 민주주의 혁명 이후 사회주의를 지지하는 국민의 합의를 전제로 국회의 안정된 과반수를 얻어 사회주의를 위한 권력을 만들고 다음의 사회주의적 변혁(社会主義的変革, 사회주의 국가)을 목표로 하고 있다.

(ㄱ)자본주의를 극복 사회주의, 공산주의 사회(社會)로의 진전(進展)을 도모(圖謀)

(ㄴ)주요 생산 수단의 소유, 관리, 운영을 사회의 손에 옮기는 생산수단(生産手段)의 사회화(社会化)

(ㄷ)민주주의와 자유의 성과(成果), 자본주의 시대의 가치 있는 성과(成果)의 모든 것을 받아들여 발전시킨다

(ㄹ)사상 신앙의 자유, 반대 정당을 포함한 정치 활동의 자유를 엄격하게 지킨다.

사회주의, 공산주의 사회에서는 "다양한 사상 신조의 자유, 반대 정당을 포함한 정치 활동의 자유는 엄격하게 보장된다."며 일당 독재(一党独裁制)와 지도 정당제(指導政党制)는 채택하지 않는다고 하고 있다.

또한 소련형 사회주의(連型社会主義)의 관료주의·전제(専制)의 잘못은 반복하지 않는다고 강조하고 있다.

이들은 "자유와 민주주의의 선언"에 더 자세히 설명 되어 있다.

그러나 이들은 주로 이념적인 내용이며 사회주의 공산주의 사회에서 헌법(憲法), 정부(政府), 군비(軍備), 의회(議会), 사유 재산제(私有財産制)의 범위 등 구체적인 내용은 언급되어 있지 않다. 일본 공산당은 이러한 미래 세대가 창조적으로 해결 과제이며, 지금부터 고정적으로 결정하지 못하고 있다

사회주의 사회가 고도로 발전하면 착취와 억압을 모르는 미래 세대는 "원칙적으로 일체의 강제가 없는 국가 권력 자체가 불필요하게 되는 사회, 인간에 의한 인간의 착취도 없고 억압도 전쟁도 없는 진정한 평등 자유로운 인간 관계로 이루어진 공동 사회에 대한 전망이 열린다고 한다.

또한 이 사회주의적 변혁' 1961년 강령에서 사회주의 혁명이라는 표현이었다는 것으로, 1994년에 사회주의적 변혁이라는 표현으로 되었다. 또한 사회주의 사회는 공산주의 사회의 낮은 단계이다라고 하는 두 단계 발전론이 마르크스 레닌주의의 정설이었으나 마르크스, 엥겔스 자신은 그런 구별을 하지 않았다고 해서 두 단계 발전론을 그만두고 2004년 강령 개정에서 '사회주의·공산주의 사회'라는 표현으로 변경되었다 .

2.보수와 진보

오늘날 중도 진보냐 중도 보수냐는 정책개발에 달려 있습니다

평민층 지지하는 성향 정책은 진보이며 중산층 지지하는 성향 정책은 보수입니다.

자본주의민주주의 혁명 후 자유주의(자유권)와 사회주의(사회권, 생존권) 공존(존중) 자유사회(민주국가)는 우파세력으로 자본주의민주주의 혁명 후 자유주의(자유권, 자유무역)를 지향하는 세력을 보수세력으로 지칭하고 있으며 자본주의민주주의 혁명 후 사회주의(생존권, 보호무역)를 지향하는 세력을 진보세력으로 지칭하고 있습니다

중국 모택동 노선 마스-레닌주의(교조주의, 공산주의)는 공산주의 세력으로 사회주의 국가만을 인정하는 좌파세력이라면 등소평 실용주의 노선은 자본주의를 인정하는 수정주의 노선으로 자본주의 세력으로 자본주의민주주의 혁명 이후 사회민주주의 세력으로 지칭하고 있습니다  모택동을 좌파라면 등소평은 우파입니다, 중국 실용주의 우파정부(사회주의 국가 실용주의 우파정부) 내부에서  등소평은 자본주의민주주의 혁명 이후 자유주의 노선을 추구하는 진보파가 아닌 사회주의 노선을 추구하는 보수파입니다.

"민주주의 반대는 공산주의가 아닌 독재주의(전체주의)고, 자본주의 반대는 공산주의입니다

자본주의민주주의 혁명 이후 자유주의(자유권)와 사회주의(사회권=생존권) 공존(존중) 자유사회(민주국가)입니다

민주국가의 경제 토대는 자본주의이며 정치 토대는 민주주의입니다

민주국가는 자본주의민주주의 혁명 후 자유주의(자유민주주의 세력)와 사회주의(사회민주주의 세력) 연합정부입니다."

 

자본주의 3대 원칙(경제)은 사유재산, 이윤추구, 자유시장경쟁 등입니다

공산주의는 자본주의를 부정하지만 사회주의는 자본주의를 인정합니다 자본주의 3대 원칙(경제)은 사유재산, 이윤추구, 자유시장경쟁 등입니다

공산주의는 자본주의 3대 원칙을 부정함으로 자영업(자작농)을 할 수 없습니다. 공산주의는 자본주의를 부정하기 때문에 국가사회주의(자국 사회주의) 국영자본체제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경제는 '성장'과 '분배'의 양면이 필요합니다. '성장'을 위한 '대담한 위기 관리 투자 · 성장 투자 '와 함께 '분배'에 의해 소득을 늘리고, '소비 심리'를 개선합니다. 새로운 자본주의는 '성장과 분배의 호순환(好循環)'입니다]

 

민주주의 3대 원칙(정치)은 민유(民有), 민치(民治),민향(民享)의 민주정부입니다

[국정(國政, 民國)은 국민의 엄숙한 신탁에 의한 것으로서, 그 권위는 국민에 유래하고(民有), 그 권력은 국민의 대표자가 행사하고(民治), 그 복리는 국민이 향유한다(民享)는 민주주의(민주)국가이다]

민주국가는 대부분 국가사회주의(군국주의)와 투쟁한 2차대전 이후 공화국 대통령, 국가주석이나 입헌군주국 수상의 임기제한이 돼야 권력분리과 국민주권, 기본권보장, 법치주의, 사법부의 독립, 복수정당과 의회정치, 국제평화주의 등을 보장할 수 있었습니다

[미합중국 헌법 수정 제22조(대통령 임기를 2회로 제한)

*이 수정조항은 1947년 3월 24일에 발의되어 1951년 2월 27일에 비준됨

제1절 누구라고 2회 이상 대통령직에 선출될 수 없으며 누구라도 타인이 대통령으로 당선된 임기 중 2년이상 대통령직에 있었거나 대통령 직무를 대행한 자는 1회 이상 대통령직에 당선될 수 없다

다만, 본 조가 효력을 발생하개 될 때에 대통령직에 있거나 대통령 직무를 대행하고 있는 자가 잔여임기 중 대통령직에 있거나 대통령 직무를 대행하는 것을 방해하지 아니한다]

 

민주국가의 경제토대는 민영자본체제(민간 자본주의)이며 정치토대는 병정통합주의 노선 의회민주주의입니다

독재국가의 경제토대는 국영자본체제(국가자본주의) 이며 정치토대는 병정분리주의 노선 군국주의 국가사회주의입니다 민주국가의 경제 토대는 자본주의이며 정치 토대는 민주주의입니다

민주국가는 자본주의민주주의 혁명 후 자유민주주의 세력과 사회민주주의 세력의 연합정부입니다.

 

군국주의, 국가사회주의노선 1인 장기집권 독재정권과 투쟁하는 민주화 세력에게 제한전쟁 모델로 군사적 원조를 하는 것은 민주세력에게 큰 힘이 되어 왔습니다

자유화 ,개방화, 민주화 개혁개방정책 민영자본체제 민주국가 입장 수정주의(실용주의) 노선은 인민의(民有), 인민에 의한(民治), 인민을 위한(民享) 정부 민주정부 입장인 인민전쟁을 옹호하고 있습니다

인민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독재정권과 투쟁하는 민주화 세력 무장단체에게 군사작전(제한전쟁 모델)을 승인하는 것도 필요합니다

 

자유권과 사회권(생존권)은 물과 기름처럼 서로 융합하기 어렵지만 가정이나 사회 그리고 국가를 운영하는데에서는 서로 조화가 필요합니다

국가를 운영하는데서 극단적 자유권은 무정부주의로 나아갈 수 있으며 극단적 사회권(생존권)은 군국주의 국가사회주의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그리고 개인이 극단적 자유권을 추구할때는 마약복용이나 동성애 등 자유방임으로 나아갈 수 있으며 개인 극단적 사회권(생존권)을 추구할 때는 국영자본체제나 공동생산 공동분배 집단농장(국영농장이나 국영기업), 계급투쟁 등 공산주의 사회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자유권

국가로부터 간섭 받지 않고 자유롭게 행동할 수 있는 자유로서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보장된 국민의 기본권을 말한다. 즉 헌법 또는 국회의 의결을 거친 법률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국가권력에 의하여 자유를 침해받지 아니하는 권리이다. 자유권이 국가에 앞서고 국가를 초월하는 자연법상의 권리이냐, 또는 실정법에 의해 승인된 실정법상의 권리이냐에 관해서는 학설이 대립되고 있다. 또 자유권이 권리로서 성립한다면 그것은 포괄적인 권리인가 헌법이 규정하는 개개의 자유권만이 있는가가 문제된다.

이에 관해 헌법은 국민의 자유나 권리는 헌법에 열거하지 않은 이유로 경시되지 않는다(헌37①)고 밝히고 있으므로 자유권은 포괄적인 성질을 가지는 것이다. 그 위에 국민의 모든 자유와 권리는 국가안전보장, 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를 위해 필요한 경우에 한하여 법률로써 제한할 수 있으며, 제한하는 경우에도 자유와 권리의 본질적인 내용을 침해할 수 없다(헌37②). 자유권은 근대적 인권으로서 가장 먼저 발달되었던, 가장 근원적인 기본권으로서 국가가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지 않도록 요청하는, 소극적이고 방어적인 권리가 자유권인 것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자유권은 대국가적 방어권으로 지칭된다.

이러한 자유권의 의미는 특히 국민과 국가의 이해관계가 기본적으로 대립하는 군주국가에서 특별한 의미를 갖고 있었다. 그런데 현대의 민주국가에서도 국가에 의한 인권침해의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서 발전된 법의 지배(Rule of law) 그리고 그 영향 하에 미국에서 발전된 적법절차(due process of law)의 성격과 내용에서 나타났으며, 그것은 무엇보다 절차적인 보장을 중심으로 발전되었다. 따라서 영미의 인권보장은 영장제도, 법원조직의 정비, 배심제도 등을 통해 특징지어지며, 국가권력에 대항하여 국민이 자신의 자유를 확보한다는 의미를 갖고 있었다.

종교의 자유, 신체의 자유, 언론의 자유 등 각종 자유권의 보장은 국가에 의한 부당한 침해로부터의 보장을 의미하는 것으로 기본권에 대한 침해가 발생되었을 경우에 그에 대한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구제 수단의 마련이라는 측면에 초점을 맞춰서 발전되었다.

사회권

경제적, 사회적 및 문화적 권리, 국가로부터 인간다운 생활을 보장받을 수 있는 국민의 기본적 권리, 생활권이라고도 한다. 교육을 받을 권리(헌31), 근로의 권리(헌32), 근로자의 단결권(헌33), 혼인과 가족생활, 보건에 관하여 보호를 받을 권리(헌36), 사회보장을 받을 권리(헌34) 등이 있다. 그러나 이들 권리는 모두 국가의 사회 국가적인 책임을 규정하였을 뿐 반드시 국민 개인에게 구체적인 청구권을 인정한 것은 아니다. 사회권은 종래 정치적 민주주의의 모순을 극복하려는 20세기의 헌법(바이마르헌법이 시초)에서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오늘날 사회권의 보장은 자유국가의 중대과제가 되었다.

인권의 개념은 좁게는 개인이 타인이나 사회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면서 자유롭게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기본적인 권리이며, 넓은 의미의 인권은 최저생활을 보장하고 생활수준을 향상시킬 수 있도록 하기위한 제도와 여건을 조성해서 최소한의 요건을 충족시켜 주는 권리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사회적 연대를 지속하기 위해 사회구성원이 사회에 대해 가지는 권리를 사회권적 인권, 복지권으로서의 인권이라고 할 수 있다. 사회권은 국민의 생존 유지와 생활향상과 관련되는 권리로써 생존권이라고 불린다. 오늘날 사회권은 종종 복지권(welfare right)이라고도 불린다.

또한 국가의 의무의 이행이 재판에 의해서 강제될 수 없을지라도 국가가 사회적 기본권을 보장할 의무는 헌법에 의거한 법적 의무라고 보고 있다. 국가인권위 설립 초기부터 3년 정도는 자유권적 기본권에 대한 진정이 주를 이루었으나 점차 사회권적 기본권에 대한 진정이 늘어나는 추세다

 

자유권(인민)과 사회권(생존권, 국민)

a.인민(人民)-국민 개개인 의미(기본권 향유자)-개개인의 국민-기본권 향유자로서의 국민

권리장전 사람을 지칭할때는 인민으로 사용해야 정확하다(루소 사상:회의제 정부론)

기본권 중 자유권 등의 표현(세계 각국 인민의 권리, 자유권은 세계 어느 나라에도 똑 같이 적용됨)

-신체의 자유권:실체적 보장(법률주의)과 절차적 보장(신체자유의 절차법적 보장)- 강제노역의 금지, 연좌법의 금지(친족의 행위로 인한 불이익 처우금지), 고문을 받지 아니할 권리등

-사회,경제적 자유권:거주.이전의 자유, 직업선택의 자유,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 통신의 자유등

-정신적 자유권:양심의 자유, 종교의 자유(국교부정과 정교분리 원칙), 언론 출판의 자유, 집회결사의 자유, 학문의 자유(대학 자율성 보장)

-행복추구권과 생명권, 기본권의 초국가성과 포괄성 규정 보장(인격권, 수면권, 휴식권, 일조권, 애정자유권, 스포츠권, 건강권등 보장):축첩(일부다처)제도나 특수신분제도 귀족이나 노예제도등 부정

 -인간의 존엄성 보장:집단추방, 대량학살, 고문, 노예제도, 인신매매, 인간생체실험(뇌파로 뇌 세뇌로 각종 정치공작행위이나 테러행위, 무기확보를 위한 인간생체실험 등), 마약, 강제노동등 금지. 잔인하고 가혹한 형벌, 화학적 물리적 생체실험사용 금지, 인간을 최저한 생존까지 불가능하게 하는 조건에 빠뜨리는 행위 금지, 태아의 생명권과 낙태행위금지(사회적 합의에 의한 낙태동의)

 

b.국민(國民)-인민의 전체(나라 인민 전체 의미,선거권 향유자나 국가기관 대표자)-주권자로서의 국민--이념적 통일체로서 국민.

대한민국이나 중화민국, 미합중국  사람을 지칭할때는 국민로서 사용해야 한다(로크 사상: 국민 투표에 의한 대통령 선출)

기본권 중 사회권(생존권)이나 선거권 등의 표현(자국민, 사회권은 국가의 1인당 국민소득에 따라 차등 사회보장 정책 추진)

-인간다움 생활을 할 권리

-교육을 받을 권리(의무교육과 평생교육)

-근로의 권리(실업자 해소)

-근로자의 근로 삼권

-쾌적한 주거생활의 보호

-최저 임금제

-사회보장을 받을 권리

-환경권 및 주거생활에 관한 권리

-혼인과 가족생활에서의 양성평등과 보건, 모성에 관하여 국가의 보호를 받을 권리(결혼, 여성보호, 아동보호)

-상이군경 및 전몰군경 및 국가유공자의 유가족에 대한 우선 취업권 부여

-노인복지와 국가보호

-장애인 보호

-생활무능력자의 권리를 보장(생활보호법이나 의료보호법)

-군 복무 예비역 군인에 대한 복지(경력이나 국가보호)

-기본소득이란 정부나 지방자치단체가 모든 개인에게 조건 없이 정기적으로 지급하는 소득을 의미한다.

국가나 모든 사회 구성원에게 어떠한 조건 없이, 개별적으로 지급하는 현금 소득을 말한다. 재산이나 건강, 취업 여부 혹은 장차 일할 의사가 있는지 없는지 등, 일절 자격 심사를 하지 않고 일률적으로 모든 사회 구성원에게 일정한 돈을 주기적으로 평생 지급한다는 점에서 기존의 사회복지 프로그램들과 근본적으로 다르다. 모든 사람에게 기초적인 생활권을 보장해야 한다는 정신에서 나온 개념이다

자동화 등 노동시장 환경 변화로 인해 인류가 보다 창의적이고 안정적으로 혁신하기 위한 복지제도로 세계 각국에서 논의하고 있다.

c.권리(權利)--인민 법률상 투쟁의 힘[국가나 힘(세력)이 있는 제3자에 대한 투쟁의 힘--자유권이나 생존권 등]

d.의무(義務)--인민 법률상 구속의 힘[국가에 구속--노동.국방과 납세의 의무 등]

한국 정부는 우파와 좌파 대결구도 교조주의 입장보다는 민유(民有), 민치(民治),민향(民享)의 민주국가 입장 실용주의(수정주의입장에서 보수와 진보 그리고 자유권과 사회권(생존권존중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교조주의 노선은 전쟁세력으로 경제발전과 국민들의 삶 개선에 도움이 되지 않고 군국주의, 국가사회주의 극우정부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From Guide Ear(Language, Intelligence) to Bird's Eye(Reading,Investigation.”

 

북한이 인권 지적에 민감한 이유…'체제 전복 시도'로 인식

북한이 국제사회의 인권 지적에 대해 '최고 존엄 모독', '체제 전복 시도'로 받아들인다는 평가가 나온다.

북한 인권에 대한 국제사회의 지적이 잇따르면서 북한이 크게 반발하고 있다. 북한이 이를 '최고 존엄 모독', '체제 전복 시도'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라는 평가다.

북한 외무성은 19일 '북한의 종교 소수자에 대한 박해를 포함한 인권 상황' 결의를 채택한 유럽의회를 향해 '주제 넘는 사기 집단'이라고 비난했다.

외무성은 "종교 차별, 민족 배타주의, 어린이 권리 침해, 경찰 폭력 등 제 땅의 인권유린 실태도 바로잡지 못하는 유럽의회가 주제넘게 남의 인권 문제를 논한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허위 날조로 일관된 결의는 용납 못할 도발이자 적대 행위"라며 북한에서 인민의 요구에 부합되는 가장 참다운 인권이 향유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앞서 유럽연합(EU)의 입법부인 유럽의회는 지난 7일(현지시간) 북한을 세계에서 가장 억압적인 국가 중 하나로 지목하고 대북 결의를 채택했다. 이는 지난 2016년 핵실험 규탄 결의 이후 6년 만이다.

'김씨 일가가 이끄는 권위주의 국가'

미 국무부도 12일(현지시간) '2021 국가별 인권보고서'를 발표하고 북한 인권 상황에 대해 우려를 표명했다.

특히 "북한 정권이 조직적이고 심각한 인권 침해를 해왔지만 이를 처벌하지 않아 광범위한 문제가 되고 있다"며 "당국에 의한 불법적이거나 자의적인 살해, 강제적 실종, 고문 및 잔혹하고 비인간적이며 모멸적인 대우와 처벌 등 중대한 인권 유린이 자행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개인이 저지른 범죄에 대한 가족 구성원 처벌, 언론인에 대한 부당한 체포 및 검열, 인터넷 자유 및 종교 자유 제한, 국가 내 이동 및 거주의 자유 제한 등도 심각한 문제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인권 침해에 연관된 이들을 제재하고 북한 내 인권에 대한 존중을 증진하려 애쓰고 있다"면서 "언젠가는 정의가 북한 주민을 위해 실현될 수 있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바이든 정부가 대북 외교적 접근법을 지향하고 있지만 인권을 최우선 가치로 내세우고 있는 만큼 북한의 인권 유린 상황을 묵과하지 않겠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국무부는 이번 보고서에서 북한을 '1949년부터 김씨 일가가 이끄는 권위주의 국가'라고 칭해 눈길을 끌었다.

북한에서 감금된 이후 사망한 미국인 대학생 '오토 웜비어'의 부모가 미 의회에서 연설하고 있다.

아울러 이번 인권보고서는 전 세계 198개국을 대상으로 하며 미국은 인간의 존엄성과 자유를 위해 싸우는 전 세계 사람들을 계속 지원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북한이 국제사회의 인권 지적에 이토록 민감한 이유는 인권 문제를 '최고 존엄 모독' 또는 '체제 전복 시도'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라고 평가했다.

이규창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BBC 코리아에 "북한이 인권 언급을 할 때 국권, 즉 국가의 자주권과 연결시키는 이유가 바로 그것"라며 이같이 말했다.

정치범 수용소를 비롯해 공개 처형, 종교의 자유 등 국제사회가 지적하는 대다수가 북한 입장에서는 체제 유지를 위해 운영하는 것들이라는 설명이다.

이 선임연구위원은 "다행히 2014년 유엔 COI 보고서 발표 이후 북한이 조금씩 인권 문제에 대해 반응을 보이고 있다"며 "근본적인 변화를 힘들겠지만 북한이 의식을 하고 있는 만큼 국제사회가 계속해서 메시지를 보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신희석 전환기정의워킹그룹(TJWG) 법률분석관은 "인권은 보편적 가치"라며 "북한이 미워서가 아니라, 객관적으로 인권 침해 상황이 심각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또 "북한이 유엔 회원국이자 국제사회의 일원인 만큼 인권 보장에 대한 책임을 다할 의무가 있다"면서 "특히 자유권 규약, 아동권리 협약, 인종차별 협약 등 대다수의 국제법상 위반이 명백하기 때문에 국제사회가 지속해서 문제 제기를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군 노동력 착취 심각∙뇌물 일상화

한편 한국에서는 '김정은 집권기 북한 군인권 실태에 관한 특별보고서'가 공개됐다.

북한인권정보센터(NKDB)는 14일 김정은 시기 북한군 복무 경험이 있는 10명을 심층 인터뷰한 내용을 토대로 한 해당 보고서를 발표하고 "북한군 내에서 뇌물 제공과 착취가 일상적이고 군의 위상이 예전만 못하다"고 평가했다.

판문점에서의 북한 군인들

또 외출과 면회, 전화 사용은 물론 조기 제대를 위해서도 상관에게 뇌물을 주는 것이 당연시되고 있다며 구타 등 가혹행위 역시 여전하다고 밝혔다.

보고서는 특히 "김정은 집권기 또 하나의 심각한 문제는 사회 각 부문에 군 노동력을 투입하는 비중이 크게 늘었다는 점"이라며 "국가가 주도하는 건설에 군 인력이 대규모, 장시간 투입되면서 노동착취가 발생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 증언자는 "구타 행위를 없애라는 김정은의 방침이 떨어지면서 예전에는 주3회 맞았다면 이후 1~2회 맞았다"면서 하지만 "언어폭력이나 성폭력에 대해서는 개선 방침이 하달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아울러 북한군이 사상 교육을 하루 평균 5시간, 최대 12시간까지 할 정도로 정신통제와 충성 강요에 힘을 쏟고 있다고 전했다.

이승주 NKDB 연구위원은 BBC 코리아에 "북한 내 만연한 부패와 권력남용 등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인권은 구조적 문제로, 처우가 가장 열악하고 관심분야도 아닌 만큼 구조적인 개선이 이뤄지지 않으면 해결될 수 없다는 설명이다.

따라서 "김정은 정권 들어서도 군대 내 열악한 식량 사정, 노동력 착취 등이 개선되지 못하는 상황에서 지속적인 관심을 통해 북한 당국에 관련 문제 제기를 해야 한다"고 이 연구위원은 덧붙였다.

북한헌법

-인민민주주의 인민공화국(1공화국 헌법)과 주체사상 자주적 사회주의 국가(2공화국 헌법), 주체연호 세습제 1인 종신직 좌익군정 사회주의 국가(3공화국 헌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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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헌법

-인민민주주의 인민공화국(제1공화국 헌법)과 주체사상 자주적 사회주의 국가(제2공화국 헌법), 주체연호 세습제 1인 종신직 좌익군정 사회주의 국가(제3공화국 헌법)- Ⅰ.북한 제1공화국 헌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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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조 우리 나라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다.

2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주권은 인민에게 있다.

주권은 인민이 최고 주권기관인 최고인민회의와 지방주권기관인 인민위원회를 근거로 하여 행사한다.[인민 회의제 정부(의회정부제)와 인민 회의정부론(인민민주주의)]

북한 제1공화국 헌법은 인민회의제(인민민주주의) 헌법으로 최고인민민회의 상임위원장이 국가수반이고 내각은 의회에 예속, 종속돼 있은 권력형태었다 북한 노동당이 북한 의회를 장악 하였기 때문에 노동당 당수가 내각수반(행정부 수반) 수상이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전체 조선인민의 리익을 대표하는 자주적인 사회주의국가이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위대한 김일성-김정일주의를 국가건설과 활동의 유일한 지도적지침으로 삼는다[북한 제3공화국 헌법]

북한의 제2공화국과 제3공화국 헌법은 주체사상이다

북한 제3공화국은 주체연호 세습제 1인 종신직 좌익군정 자주적 사회주의 국가이다

주체사상이 띄고 있는 강한 민족주의적 성향은 히틀러의 독일 노동자의 당 국가사회주의 헌법이나 1940년대 일본 군국주의 대본영 제도를 모방하고 있다

 

북한 지역에서 개혁개방과 자유화, 민주화를 요구하는 세력을 민주파라고 부르고 있으며 반미 반일투쟁이나 국영자본체제, 주체사상과 선군정치를 주장하는  세력을 자주파라고 부르고 있다

 

한국정부의 대남 대북정책에서 자주파(북한 제2,3공화국 헌법) 입장보다도 민주파(북한 제1공화국 헌법) 입장이 돼야 남북대화와 남북통일이 될 수 있다. 그리고 남북한 국민들의 지지를 받을 수 있다

 

북한 김일성, 김정일정부는 지도자의 권력이 집중한 1인 장기집권 모택동 시대의 반성에서 국가주석 3선 금지를 표방한 개혁개방정책과 민주화 입장 실용주의(수정주의) 노선 등소평헌법을 싫어했다

 한중 수교 다음 해인 1993년 북한은 2000년 올림픽 유치 경쟁에서 중국이 아닌 호주를 지지했고, 1997년 덩샤오핑(鄧小平) 사망 때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중국대사관에 조전을 보내지 않았다는 것이다.

세계 11개국 모택동(마오쩌둥)주의자 모습

모택동(마오쩌둥)주의는 NLPDR(민족해방인민민주주의 혁명)노선 중 신민주주의 혁명이론(인민 민주주의 노선)에 기반을 두고 세력을 확장해왔다 모택동(마오쩌둥) 노선이 신민주주의 혁명이론(인민 민주주의 노선)보다 NLPDR(민족해방인민민주주의 혁명)노선이나 NL(민족해방) 노선이 될 때 인민보다 민족우월이나 해방전쟁으로  국가사회주의, 군국주의 노선 지역 패권 전쟁이론이 돼 오고 있다[북한이나 기타 제3 세계 좌파민족주의 이론]

모택동(마오쩌둥)의 주도하에, 중화인민공화국은 개발도상국들 특히 동남아시아에 공산주의 혁명을 수출하였는데, 그러한 노선에 입각해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의 국제 공산주의운동, 민족민주운동에 중대한 영향을 끼쳤다. 마오는 공산정권 수립 후 개발도상국에 미국에 우호적인 정부가 들어서지 못하도록 미얀마, 말레이시아, 태국, 필리핀 등지에 공산주의노선을 지지하고 무기, 경제, 기술, 식량 지원 등을 하였다. 문화대혁명 때는 《모주석어록》이 대량으로 영어나 스페인어 등으로까지 번역, 유통되어 외국에서 마오식 투쟁노선의 지도서가 되던 때도 있었다

붉은 군대에 가이드(안내)로 모택동(마오쩌둥) 사상은 모택동(마오)주의자들이 권력을 장악하기 위해 폭력적인 수단(무장활동 수단), 보통 무장 단체를 조직하는 투쟁의 주요 방법으로 도시 주변 농촌 지역에, 행동 지침으로 모택동(마오쩌둥) 사상에 두고 있다.

 그러나 아랍인 모택동(마오) 무장 단체는 광신적인 믿음이 있다, 그들은 일반적으로 잘 조직하고 신속하게 행동하는 것이 다른 지역 모택동(마오)주의자들과 다르다. 네팔과 인도의 모택동(마오쩌둥) 조직뿐만 아니라 모택동(마오쩌둥) 조직이 무장 이전에는 영적인 연결,하지만 나중에 인해 모택동(마오쩌둥) 거점에, 일부 아시아 국가, 모택동(마오쩌둥) 사상에서 출발하고 NLPDR 독립 투쟁의 길에 착수했다.

콜롬비아의 마오(모택동)주의 무장 혁명군[인민군] 마오(모택동)주의자 이탈리아 붉은 여단[이탈리아의 극좌파 비밀 테러 조직], 네팔 마오쩌둥(모택동)의 공산당과 무장단체, 아프가니스탄 마오(모택동)주의 청년공산주의 단체, 인도 마오(모택동)주의[마오주의공산주의센터(MCG)와 인민전쟁파(PWG)],필리핀 마오(모택동)주의[공산반군], 칼리만탄섬 공산당 마오(모택동)주의자,  태국 마오(모택동)주의자[태국 공산당], 미얀마 마오(모택동)주의자[북부 미얀마 공산반군], 페루 마오(모택동)주의자 "빛나는 길",  일본 마오(모택동)주의자 적군(赤軍, 붉은군) 등 세계 11개국 모택동(마오쩌둥)주의자 신봉단체..

 

일본 모택동(마오쩌둥)주의자 모습(사진)

                                                                         

세계의 모택동(마오쩌둥) 조직은 여전히 세계의 분산 돼, 11개국에 존재 한다. 그것은 일본 적군 마오(모택동) 조직, 조직의 지도자 시게노부가 2001 년 일본에 의해 체포 된 것을 언급 할 가치가 있다. 조직의 운영 목표는 동아시아 국가에 대해 한 번 제국주의 봉쇄를 중단하는 것이다, 충성의 비밀을 하지 않았다.


 

1.콜롬비아의 마오(모택동)주의 무장군

콜롬비아의 마오(모택동)주의 무장 혁명군 모습

                                                       

콜롬비아 무장혁명군-인민군(약칭 FARC 또는 FARC-EP)는 콜롬비아 공산주의 혁명·게릴라 조직이다. 1964년부터 1966년까지 콜롬비아 공산당 산하 무장 단체로 남아 있었으며 지방 정부와 민간의 사회 기반 시설들을 주요 목표로 삼았기 때문에 콜롬비아 정부와 미국, 유럽 연합 등으로부터 테러 조직으로 지정되었다. 중남미에서 규모가 큰 공산주의 게릴라 단체로 40여 년 동안 콜롬비아 정부에 대항해 왔으며 잠깐 동안 국제적인 지원을 받은 적이 있었다.

냉전 시대(1980년대) 이후에는 마약 코카인 재배와 정계 요인 납치 등의 범죄를 일삼았으므로 대중들에게 나쁜 인식을 주었다. 콜롬비아 혁명군은 콜롬비아 공산당에서 분리된 단체로, 독립된 정치 기구로 여겨진다. 2013년 통계에 따르면 회원 수는 7,000-10,000명으로 추산되며 콜롬비아에서 일어난 테러 사건 가운데 25~30%는 콜롬비아 혁명군의 소행으로 추정된다. 주로 콜롬비아 정글 남동부와 안데스 산맥 평원 지대에서 활약하며 최근에는 대중들의 나쁜 인식을 개선시키기 위해 인질의 몸값을 제시, 석방하고 있다.

-원래 좌파 FARC 코스타리카 사회적 불평등에 대한 투쟁상징 게릴라이지만 마약 밀매나 밀수 무역과 몸값의 연속 납치 사건을 포함하기 때문에, 명성은 더 심각되고 있다. 콜롬비아 무장 혁명군 (FARC)는 원래 독립적인 조직이 될 공산당에서, 때문에 마약 거래에서 지난 세기의 팔십에, 콜롬비아 공산당 군사 기관에 속한, 1964 년에 설립되었다. 그것은 가장 완벽하게 갖춘 최대 규모의 조직 콜롬비아 영토뿐만 아니라, 최고의 전투 게릴라이다

-콜롬비아 내전은 현재까지 40년째 진행중이다.

이 내전은 좌우익의 이념대립, 빈부격차, 불평 등에 기인하였고, 우익을 표방한 정부 및 극우 단체와 이에 대항하는 좌익게릴라와의 싸움으로 번졌다.

 내전을 주도한 3대 게릴라 단체는 다음과 같다.

1. 민족해방군 (ELN) : 마르크스-레닌주의를 이념으로 하여 1964년에 결성.

2. 콜롬비아 혁명군 (FARC) : 1966년에 결성된 좌파 혁명군.

3. M-19 : 1973년 결성된 자생적 사회주의 무장단체.


FARC는 1964년 콜롬비아 공산당 산하 무력부로 설립된 남미 최대의 좌익 반군조직으로 한때 콜롬비아 영토의 절반을 장악하고  노동자,농민의 해방 반미주의를 표방해 왔다.


이들은 콜롬비아가 미국의 영향권에서 벗어나야 하며, 천연자원(석유, 커피, 에메랄드광산 등) 사유화 반대, 다국적기업들의 농민 착취 금지, 공권력의 민중 학살 금지 등을 내세워 집권을 위한 무장혁명을 외치며 총을 잡아 오늘에 이르고 있다.

FARC 반군 약 2만여명이 여전히 콜롬비아 산지와 정글에서 활동 중이라고 밝혔다.


게릴라들이 순순히 투항하거나 미국의 군사지원으로 전면전 양상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면 단기간에 내란이 종식되기는 어렵다고 본다. 미국에서  콜롬비아에 대한 군사지원을 하고 있기는 하지만 제2의 베트남전을 피하려는 목소리도 만만치 않아 전면전으로까지 확대될 것으로 보는 견해는 많지 않다.


미국의 군사적 지원없이<엄청난 지원중 이지만 서방시각> 콜롬비아 정부군만으로 반군단체와 마약조직을 소탕하기에는 역부족이다. 


향후 전쟁세 신설 및 자체  군사력증강, 직업군인 양성 등으로 게릴라들의 투항을 유도하거나 전면전에서의 승리를 <결론은 사회적 불평등을 해소하는것이 중요> 끌어 내기 전까지는 현 상태에서 내란사태에 마침표를 찍는 것은 요원하다고  본다.

 

사진은 FARC-EP 반군 조직이 아닌 ELN 소속 반정부군들.어깨패치와 복면에 ELN마크가 붙어 있습니다.ELN 반정부군은 2,500명이나 되는 조직 으로 콜롬비아 반군 조직 중에 두번째로 큰 규모입니다.이외 800명 규모의 EPL,EGP,ERP,CAP 반정부군 조직이 있습니다.소총은 FN-FAL,AK-47소총 입니다.전술 조끼는 LBT사제로 보입니다.(5천명으로 추산)

 

ELN반정부군입니다.완장을 보면 eln은 위에는 적색과 밑에는 검은색으로 되어 있으며, eln문자가 붙어 있습니다.AUC도 ELN이나 FARC로 위장하기 위해서 ELN,FARC완장을 차는 모습이 목격 되어 습니다.ELN은 대다수가 복면을 쓰는 경우가 많으나 FARC는 복면을 쓰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2.마오(모택동)주의자 이탈리아 붉은 여단[이탈리아의 극좌파 비밀 테러 조직]

 

마오(모택동)주의자 이탈리아 붉은 여단 모습

                                                                         

1970년대초 납치·살인·사보타주 등으로 악명을 떨쳤다. 그들의 목적은 이탈리아란 국가를 서서히 소멸시키고 혁명적 프롤레타리아들이 주도하는 마르크스적 대혁명으로의 길을 예비하는 데 있다고 주장했다.

붉은 여단의 창설자는 명성이 자자한 레나토 쿠르치오로서, 그는 1967년 트렌토대학교에서 처음으로 좌파사상단체를 만들어 카를 마르크스, 마오쩌둥[毛澤東], 체 게바라와 같은 인물들의 사상을 연구했다. 1969년 동료 마르게리타 카골과 결혼한 뒤, 밀라노로 이사하여 열성적인 동료들을 모았다. 그들은 밀라노에 있는 공장과 상점에 폭탄을 투척함으로써 1970년 11월 붉은 여단의 존재를 세상에 알렸다. 1971년의 납치를 시작으로 1974년 토리노의 반(反)테러대 총지휘관 및 대원들을 살해하기 시작했으며, 1978년 이탈리아의 전(前) 총리 알도 모로를 납치하여 살해했다. 이탈리아 당국은 이탈리아 전역에서 열성 테러리스트들을 체포하고 투옥했지만, 예측할 수 없는 살인행위는 계속되었다. 붉은 여단의 총책임자인 쿠르치오는 1974년 체포되었다가 1975년 탈출, 1976년 재생포되었다. 1981년 12월에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소속 미군 장교인 제임스 도지어 준장이 붉은 여단에 납치되어 42일 동안 감금되는 사태도 벌어졌으나, 후에 그는 파도바의 붉은 여단 은신처를 급습한 이탈리아 경찰에 의해 무사히 구출되었다.

붉은 여단이 최전성기를 누리던 1970년대에는 정회원이 400~500명에 이르렀고, 그밖에 1,000여 명의 회원이 이들을 정기적으로 도와주었으며, 수천 명의 후원자들이 자금과 정보전달의 수단 및 은신처를 제공했다. 조심스럽고 체계적인 경찰의 검거작전에 의해 1970년대 중반부터 붉은 여단의 지도자들과 평회원들이 체포·감금되기 시작했으며 1980년대말에 이르러서는 그 조직이 대단히 약화되었다

-1970년 10월 28일는 이탈리아의 테러 조직 '붉은 여단은 "설립되었다.

실업 더 전쟁, 신속하게 이탈리아 경제의 회복과 성장뿐만 아니라, 발생하는 많은 어려움, 후. 많은 사람들은 사회에 의해 버려진 느낌, 위협으로부터 고통과 경제에 맞았다. 사회 불만 "좌파"조직의 현실을 설정 사람들은, 테러 활동에 종사하는 도로에 착수, "레드 투어"고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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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 가을"파업을 설정 1969 년 가을, 높은 임금, 더 나은 작업 조건에 대한 이탈리아 노동자. 이 경우, "레드 투어"설립 양조 시작했다. 설립자 및 Siemens 공장 노동자 밀라노의 공업 도시의 초기 멤버 중 일부, 트 렌토 대학의 사회학 토리노학과의 도시에서 일부 학생.

하나는 사회학 학생들의 창시자 레나토  트 렌토 대학학과이다. 점차 도시 게릴라 조직의 아이디어를 생산하면서 이 사람들은, 대중 시위의 시간에 참여하는 것을 계속한다. 그들은 남미 게바라의 게릴라 모드에서 다음 영향력 있는 도시에서 영감과 격려를 얻을 경험은 이탈리아 공산당의 전통적인 혁신적인 아이디어에서 얻었다.

1969 년 말에, "레드 투어"가 설립되었다. 그것의 상징은 원으로 둘러싸인 다섯개 별이다. 그것은 Kuqiao,이 알베르토 프란시스 체이스 기니 이외의 사람들을 구축하는 기획이다. 우리가 Kuqiao "레드 투어"이념적 토대를 마련하는 것을 말한다면, 다음, 사회 학자 조지 빌리지 알 메리아는 조직의 원리를 설립되었다. 붉은 여단 조직이 대부분의 기본 단위 기, 5 개 이상의 구성원 수, 상급자와 하나만 접촉가요 매우 타이트하다. 여섯 팀 "핵심"로 구성된 각 여단의 조성 주변의 "핵심"에 의해 다음의 주요 도시에 지점을 설정했다. 따라서 피라미드 시스템과 같은 조직을 형성한다. 통상적 인 활동은 그룹으로, 체포의 그룹의 구성원은 다른 팀에 연결되지 않을 것이다.이탈리아 관리는 붉은 여단 조직이 지렁이 여러 섹션으로 잘라처럼, 각 섹션 어색해 수 보인다고 설명했다.

 

3.네팔 마오쩌둥(모택동)의 공산당과 무장단체

 

네팔 마오쩌둥(모택동)의 공산당과 무장단체 모습

                                                                                  

네팔공산당 (마오이스트) 1994년 만들어져 중화인민공화국의 첫 국가주석 마오쩌둥의 이념을 추종하는 네팔 공산주의 정당을 말한다. 반군(反軍) 활동을 통해 네팔의 왕실을 폐지하여 네팔을 민주화시켰다. 네팔공산당 (마오이스트)의 의장은 프라찬다가 맡고 있다.

1996년 이후 프라찬다의 지도 아래 마오쩌둥의 노선을 따라 농촌에서 해방구를 만들고, 인민전쟁을 펼쳤으며, 산악지형을 이용해 게릴라전을 펼쳤다. 2001년 채택된 프라찬다 노선에 따라 모택동주의 민주사회주의의 조화를 목표로 하고 있다.

2008년 4월, 왕정제를 폐지하고 공화제로 전환하기 위한 제헌선거에서 네팔공산당 (마오이스트)가 제 1당이 되었고, 8월 15일 실시된 제헌의원 투표에서 프라찬다 네팔공산당 (마오이스트) 의장이 총리로 선출되었다

-가난 해결 못해 민심 등돌려[네팔공산당 5년 만에 실각]
10년간의 인민전쟁을 승리로 이끌면서 왕정을 무너뜨리는 데 성공한 마오주의 네팔공산당이 지난 19일 치러진 선거에서 참패를 했다. 국민들의 압도적인 지지를 등에 업고 화려하게 의회에 입성한 지 불과 5년 만의 일이다.

현지 언론 네팔타임스는 두 번째 제헌의회 구성을 위한 선거의 개표 결과 25일 현재 네팔공산당이 부르주아 정당인 네팔의회당과 온건네팔공산당에 큰 격차로 뒤진 세 번째 당으로 밀려났다고 보도했다. 인민전쟁의 영웅 프라찬다 역시 불과 몇 표 차이로 의석을 지키는 수모를 면치 못했다.

1996년 두 자루의 구식 소총으로 시작한 마오주의 반군은 토지개혁 및 카스트 제도 철폐 등을 요구하며 지구상 마지막 힌두왕조와 전쟁을 벌였다. 농촌을 거점으로 시작한 게릴라 투쟁은 2005년 전 국토의 80%를 해방구로 만들었지만 이들은 수도 카트만두로 진격하는 대신 총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2006년 왕정폐지가 결정되자 과도의회 구성에 합의했다. ‘프라찬다의 길’로 불리는 네팔공산당의 독특한 행보였다. 혁명의 완성을 눈앞에 둔 공산당이 헌법에 따라 의회에서 다른 정당과 평등하게 경쟁하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그리고 이들은 2008년 치러진 첫 제헌의회 선거에서 가장 많은 표를 얻어 제1당이 됐다

하지만 불과 5년 후인 현재 네팔공산당에 지지를 보내던 민심은 차갑게 돌아섰다. 기첸드라 마호타는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대가로 인민전쟁에서 승리를 거뒀지만 우리는 여전히 가난하고 아무것도 변한 게 없다”고 가디언에 말했다.

패닉에 빠진 일부 강경 마오주의자들은 “선거 결과를 무효화하기 위해 다시 총을 들어야 한다”며 프라찬다를 압박하고 있다. 네팔 정치평론가 크리슈나 카날 교수는 “지금은 마오주의자들이 자신들이 선택했던 다당제의 경쟁원리(프라찬다의 길)에 대한 믿음이 얼마나 확고한지에 대해 대답해 줘야 할 때”라고 BBC에 말했다.
-1996년 2월, 네팔의 왕정을 전복하기 위해 기본적인 정치적 신념 네팔의 모택동(마오)주의 공산당, 모택동(마오쩌둥) 사상을 주장하는 반군이 산으로 결정했다. 따라서, 10 년 내전으로 네팔. 모택동(마오)이스트 게릴라의 개발 과정에서 큰 장착 네팔의 영토의 70 % 이상을 점유. "차별이 없다, 더 착취, 그것은 새로운 네팔하지 않을 것이다!"

1996년 2월, 네팔 공산당 (마오 쩌둥)는 "사람들의 전쟁"을 시작, 첫 번째 총알을 발사 그들이라고 했다 "모택동(마오)주의자를." 그들은 네팔 인민 해방군 무장했다. 그들은 마지막으로 자신의 미래를 원, 힘든 투쟁을 통해 그들에게 "사람들의 전쟁 '의 10 년, 정글 전투기이다.

CPN (마오가) 정부와 포괄적 인 평화 협정을 체결 한 후,이 신비한 힘이 다른 캠프에 넣고, UN 감시 받고있다. 오늘날, 그들은 여전히 정글의 가장 어려운, 그들은 다른 네팔 기대, 사람이 결정된다.

 

4. 아프가니스탄 마오(모택동)주의자

 

아프간 공산당 - 마오주의[Communist (Maoist) Party of Afghanistan]

                                                           

 

아프가니스탄 마오(모택동)주의자 Sholaye Jawid 모습

                                                                                 

아프가니스탄 공산당을 이해하기 위해 (마오 쩌둥 역사는 우리가 아프가니스탄에서 공산주의 운동은 간단한 검토. 첫 번째 공산주의 단체, 청소년 단체 진행 (Progessive 청소년기구, PYO)가 1965 세계 혁명 시대 .60 년에 설립 되었다고 한다. 운동 서징, 라틴 아메리카에 중국, 미국 유대인과 흑인 사회에서, 노동 대중은 사회를 더 나은 공정 투쟁을 해야 한다.

청소년 협회(청년 공산주의 단체)는 아직 진행 지하 활성 상태이다. 진보적인 지도자의 청소년 협회는 Sholaye Jawid의 제목의 게시를 발표했다. Sholaye Jawid는 민주적이고 진보적인 출판물의 새로운 종류의 주장, 널리 노골적으로 순환하고 있다.11의 출시 후, SHolaye Jawid 폐쇄했고 정부의 문제를 금지했다.

그러나, 아프가니스탄이 11 기 정치적 상황은 큰 영향을 발생했다. 자신의 정치적 견해에 의해 하늘에 수천명의 사람들이 아프가니스탄의 역사 나라를 휩쓸고 대규모 전례없는 대중 운동에 영향을 미친다. 정부는 손상이 분명했다 억제하려 하지만 실패했다. 정부는 또한 Sholaye Jawid 추종자에 대해 정통 무슬림을 사용한다.

80년대 후반은, 우익 마오 쩌둥 그룹 중 하나는 독립적인 아프간 공산주의 혁명가 코어 (아프가니스탄, RCCA의 혁명 공산주의 세포)를 파괴했다. 그것은 다른 조직은 1991 년에 아프가니스탄의 공산당 이름을 변경, 아프간 공산주의 혁명 동맹을 형성했다.

아프간 공산주의는 상속과 발전의 전통적인 마오 청소년 단체를 이월 표시, Sholaye Jawid을 재발행. 사실, 첫 번째 할부 Sholaye Jawid의의 재 릴리스는 분명히 그들이 아크람 야리는 혁신적인 길을 개척 청소년 협회와 지도자에 의해 진행 지속될 것으로 했다.

미국과 아프가니스탄에서 동맹국의 후속 직업에서 함께 통합 마오 파티에 설립 된 모든 마오주의 공산당 조직에 호출한다. 이를 위해, 아프가니스탄의 공산주의자들과 또 다른 4 마오 쩌둥 조직 아프가니스탄 맑스 - 레닌주의, 마오 쩌둥 사상, 운동의 공동위원회. 논쟁 3 년 이념적, 정치적 관점 후, 공산주의 운동의 공동위원회는 공동 회의를 개최했다. 총회는 2004년 5월 1일 아프가 니 스탄 공산당 (마오 쩌둥)가 설립되었다 종료. 아프간 공산당 (마오 쩌둥)의 지하 여전히. 그들의 목표는 외국 점령군에 대한 전국적인 사람들의 전쟁, 새로운 민주 국가의 설립과 아프가니스탄에서의 사회주의의 실현을 시작하는 것이다.

-1년6개월 전인 1978년 4월27일 아프간에서 일어난 유혈 쿠데타다. 아프간 공산당인 아프가니스탄인민민주당의 지도를 받는 사회주의 성향의 일부 육군 및 공군 장교들은 이날 봉기해, 무하마드 다우드 칸 총리를 리셉션에서 암살하고 정부를 전복했다. 3일 만인 4월30일 누르 모하마드 타라키 아프간인민민주당 수반이 지도하는 혁명위원회에 권력이 이양됐고, 타라키는 곧 혁명칙령 1호에 서명했다. 아프가니스탄민주공화국이 선포됐다. 이슬람권에서 최초로 소비에트 스타일을 지향하는 사회주의 정부가 탄생한 것이었다. 소련이 20년간 공들인 대아프간 공작과 지원의 결실이었지만, 소련에 최대 재앙으로 변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타라키 정권은 출범과 함께 내분에 휩싸이며, 통치력이 전무함을 보여줬다.

아프간인민민주당 내에서 타라키가 이끄는 칼크(대중)파와 경쟁자인 바브라크 카르말의 파르참(깃발)파는 정권 출범과 함께 반목과 대립을 보였다. 타라키가 1965년 창당을 주도한 아프간인민민주당은 2년 뒤부터 두 파벌로 나뉘어 반목해왔다. 칼크파는 즉각적이고 폭력적인 정부 타도와 소비에트 스타일의 공산정권 수립을 내걸었다. 반면 파르참파는 아프간이 진정한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수행할 정도로 산업화되지 않았다며 사회주의로의 점진적 이행을 주장했다.

아프간 공산당 내 두 파벌의 노선과 투쟁은 옳고 그름을 따질 수 없었다. 양쪽 모두 교과서로만 배운 얼치기 교조적 사회주의자들이었다. 쿠데타가 일어난 지 반년이 안 돼 두 파벌의 대립은 폭력 사태로 치달았다. 이 와중에 더 큰 사태가 시작됐다. 부족 세력과 이슬람주의 세력의 반란이 일어났다.

타라키 정권은 안으로 내분에 휩싸이자, 밖으로 교조적 공산개혁을 더욱 밀어붙였다. 여성문맹타파운동, 징병제, 부족장 토지 몰수, 이슬람식 대부제도 폐지, 신부 지참금 금지, 혼인의 자유 선포 등 많은 개혁은 오히려 기득권을 침해당한 부족 세력과 이슬람주의 세력의 반발만을 불렀다. 타라키 정부는 반대 세력을 제어하기 위해 공포정치를 펼쳤다. 1979년에 접어들면서, 카불의 공산주의 정부는 종교 지도자 등 약 1만2천 명의 정치범을 수감했다. 조직적인 처형이 수용소의 벽 뒤에서 시작됐다.


1978년 10월, 동부 산악지대의 파슈툰 부족 세력들이 총을 잡고 궐기했다. 군나르주, 힌두쿠시 산맥, 바다흐샨주 등 동부의 몇몇 지역은 반정부 거점으로 변했다. 정부군 내에서도 수천 명의 병사가 탈영했다. 1979년 1월 이란에서 이슬람 혁명이 성공하고, 접경한 서쪽 국경지대에서 이슬람 혁명의 여파가 밀려들었다. 2월 수도 카불에서는 아돌프 덥스 미국 대사가 이슬람주의자들에게 납치돼 결국 피살됐다. 3월 들어 이란과 접경한 헤라트에서 격렬한 반정부 시위가 벌어졌다. 진압을 명령받은 아프간 정부군 육군 17사단 내에서 오히려 반정부 봉기가 일어났다. 봉기한 병사들은 소련 고문단과 그 가족의 주검을 막대기에 꽂아서 거리에 전시했다.

타라키 정부는 소련에서 훈련받은 조종사들이 모는 전투기를 출동시켰다. 무자비한 공습으로 헤라트에서만 2만 명이 죽었다. 이 반란을 접하면서 소련은 아프간에서의 상황이 심각하게 잘못돼가고 있고, 아프간에서의 공산혁명을 위협하는 새로운 세력이 등장했다는 평가를 내리게 된다.

헤라트에서 봉기가 들불처럼 번지던 1979년 3월17일, 소련 공산당 정치국은 비밀 비상회동을 했다. 3년 뒤 소련의 최고지도자로 등극하는 유리 안드로포프 당시 KGB 의장이 주도한 이날 회의에서 정치국원들은 아프간 정부의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심각한 문제투성이임을 직감하게 됐다. 다음날 정치국 정례회의에서 소련 지도부 내의 보수파인 디미트리 우스티노프 국방장관도 “문제는 아프간 지도부가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의 역할을 충분히 평가하지 못한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알렉세이 코시긴 전 총리가 타라키와 통화했다. 타라키는 우즈베키스탄·타지키스탄 등 소련 내 중앙아시아 자치공화국 출신 소련군 병사들을 민간인으로 위장해 파병해달라고 애걸했다. 기가 막힌 코시긴은 타라키의 제안을 일축했다. 그는 “당신은 지금 문제를 너무 단순화하고 있다. 아프간의 점증하는 이슬람 봉기는 복잡한 정치적·국제적 문제다”라고 경고했다. 소련 지도부의 인식은 정확했으나 대책은 없었다.

소련 지도부가 상식에 기초한 개혁과 국정 운영을 조언했지만, 타라키는 당내의 같은 파벌인 칼크파 소속 하피줄라 아민 외무장관 겸 혁명위 부의장과도 반목했다. 9월이 되자, 타라키는 소련의 호출로 모스크바로 갔다. 그의 부재 중에 아민의 타라키 축출이 계획됐다. 타라키는 귀국 뒤 체포돼, 몇 주 뒤 카불의 한 병영에서 집중 사격을 받고 최후를 맞는다.

아민의 집권은 소련에는 더 큰 재앙이었다. 소련 KGB의 돈을 받는 관리 대상이던 그는 집권 뒤 거만해졌다. 아민은 아프간 정부의 해외 은행 계좌에 있던 4억달러나 되는 돈을 인출하는 권한을 가지려 했다. 격노한 KGB는 그의 신뢰를 깎아내리려 했다. 미국 컬럼비아대 유학 경력이 있는 아민이 미국 중앙정보국(CIA) 요원이라는 허위 정보를 퍼뜨렸다. 이 허위 정보는 돌고 돌아 KGB 본부와 소련 내에도 흘러들었다. 정보 계통에서 ‘블로백’이라 불리는 현상이 발생한 것이다. 허위 정보를 퍼뜨린 당사국조차 나중에 그 정보에 현혹되는 현상이다.

아민은 집권 뒤 아프간 주재 미국대사관의 대리대사인 브루스 암스튜츠를 5번이나 개인적으로 만났다. KGB는 미국의 의도를 평가하려고 했으나 별 소득이 없었다. 아민과 암스튜츠의 대화 내용도 알 수 없었다. 아민이 뉴욕에서 유학할 때 CIA와 연관된 아시아재단과 관련이 있다는 문건도 인도에서 나왔다. KGB 요원들은 갑자기 자신들이 퍼뜨린 허위 정보가 사실일지 모른다고 우려했다. KGB 관리들은 CIA가 아민과 협력해 카불의 친소 정부를 조종하기 시작했다고 결론 냈다. KGB는 11월 들어 최고지도자 레오니트 브레즈네프에게 서한을 보내 아민에 대한 단호한 조처가 필요하다고 경고했다.

안드로포프 KGB 의장은 브레즈네프 공산당 서기장에게 보낸 보고서에서 CIA의 아민 포섭은 “소련 남부의 공화국들을 포함한 ‘뉴 그레이트 오토만제국’을 만들려는” CIA의 거대한 음모의 일환이라는 상상력까지 동원했다. 이런 상상력이 나올 만도 했다. 만약 아프간이 미국의 손에 떨어진다면, 당시 미국이 유럽에 배치 중이던 중거리 퍼싱미사일도 아프간에 배치할 수 있게 된다. 소련으로서는 아프간 공산정부 수립을 지원하지 않으니만 못한 최악의 결과가 어른거리는 상황이었다. 소련 지도부는 아민을 암살하고 아프간에 대한 군사 침공을 개시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소련이 가장 우려하던 미국의 개입은 아민을 통해서가 아니라 자신들의 전면적 침공이 있고 나서야 본격화된다. 12월 들어 소련의 움직임은 시작됐다. 12월7일, 권력투쟁에 밀려 망명한 아프간인민민주당 지도자 중 하나였던 카르말이 비밀리에 카불 인근 바그람 공군기지에 도착했다. 아민의 뒤를 잇기로 낙점된 그는 KGB 요원과 소련군 특전부대 병력과 함께 입국했다.

12월10일 우스티노프 국방장관은 소련군 참모총장에게 1개 공정사단과 수송항공대 5개 부대의 배치를 시작하라는 구두 명령을 내렸다. 니콜라이 오가르코프 참모총장은 무모하다고 반발했지만 주사위는 던져졌다. 12월 중순이 되자, 대규모 소련군이 아프간 접경지대로 전개되기 시작했고, 미국 CIA도 12월19일 소련이 72시간 내에 침공을 의도하고 있다는 것에 의심의 여지가 없다는 보고를 했다. CIA가 예측한 시간보다 48시간이 더 지나서 소련군의 전면적인 침공이 시작됐다. 크리스마스이브인 12월24일이었다.

이틀 뒤 카터 행정부 내의 가장 강경한 냉전전사인 즈비그뉴 브레진스키 당시 미국 국가안보보좌관이 카터 대통령에게 비밀 정책보고서 ‘아프가니스탄에서의 소련 개입에 대한 대책’을 보냈다. “아프간에서의 저항을 지속시키는 것이 필수적이다. …이를 가능하게 하려면, 우리는 파키스탄을 설득해서 반군을 지원하도록 고무해야 한다. 이는 파키스탄에 대한 우리의 정책 재고를 요구하며… 파키스탄에 대한 우리의 안보정책이 핵비확산 정책에 좌우되지 않을 것임을 확신시켜야 한다. 우리는 중국이 반군을 지원하도록 고무해야 한다. 반군을 지원하는 선전 활동과 비밀 공작에서도 이슬람 국가들과 협력해야 한다.”

파키스탄의 핵개발도 용인해야 한다는 제안까지 했다. 이는 파키스탄의 핵무장을 이끌었다. 파키스탄의 핵개발은 그 뒤 북한과 이란의 핵개발 등 냉전 이후 미국의 최대 안보 현안이던 핵확산 문제를 야기한 모델이었다. 따지고 보면, 현재 25년 가까이 계속되는 북한 핵개발 위기도 그 근원의 하나는 아프간 사태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브레진스키는 단호한 어조로 “우리의 궁극적 목적은 아프가니스탄에서 소련의 철수다. 설사 이것이 달성 불가능할지라도, 우리는 소련이 가능한 한 최대의 비용을 치르게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1979년 12월25일. 기독교 문명 세계의 최대 성일인 크리스마스 새벽에 아프가니스탄 북서부 소련 접경 지역인 테르메스 인근의 아무다리야강에는 성탄의 고요함에 어울리지 않는 굉음이 울렸다. 소련군 40군이 강에 부교를 설치하고 탱크를 앞세워 국경을 넘어 전면적 침공을 개시했다. 소련군 40군은 2차 세계대전의 승패를 가른 스탈린그라드 전투에 참전한 부대다. 파시즘의 위협에서 세계를 구한 ‘위대한 붉은 군대’의 주력군 중 하나인 40군이 주변 약소국의 침략군으로 나섰다. 하루 전 크리스마브이브, 어둠이 깔리는 아프간 수도 카불의 국제공항에는 소련 안토노프 수송기가 속속 착륙해 공정부대 병력을 풀어놓았다. 이미 아프간 땅에 발을 디뎠던 소련 정보기관 국가보안위원회(KGB)의 전투요원 700여 명은 아프간 정부군복으로 위장하고 대통령궁으로 향했다. 대통령궁에서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고, 아프간 사회주의 정권의 수반 하피줄라 아민 총리는 사살됐다.

 

5.인도 마오(모택동)주의자

 

인도 마오(모택동)주의자 모습

                                                                                                      

인도공산당(CPI,Communism Party of India), 인도 마르크스 공산당(CPI-M,Communism Party of India Marx), 인도 마오주의 공산당(CPI-M,Communism Party of India Maoism, 낙살라이트Naxalite)은 인디아 사회주의 정당들이다. 1925년 12월 북인도의 신흥공업도시 칸푸르에서 결성되었다. 마르크스-레닌주의를 이념으로 따르고 있으며, 야당이기는 하지만 국민회의당과 함께 연립정권(UPA)을 구성하고 있다. 1967년 있었던 소작인 봉기 사건을 계기로 마르크스파(CPI-M)와 막스-레닌주의 인도공산당(CPI-ML,1969년 결성)로 분열되었다. 그외 인디아의 공산당으로는 인도 마오주의 공산당(CPM)이 있으며 마오주의자들과 연계된 반군 낙살라이트가 있다

-인도, 마오주의자 무장투쟁에 몸살

세계 최대 인구의 민주국가 인도가 극좌파 무장 세력인 마오주의자(Maoist)의 공격에 몸살을 앓고 있다.

서구 기업들이 인도에 대거 진출함에 따라 농지를 잃은 농민들이 합류하면서 중국 마오쩌둥의 사상과 노선을 따르는 인도 마오주의 운동이 더욱 힘을 얻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인도 안보의 최대 위협=만모한 싱 총리는 최근 마오주의자들은 국가 안보의 가장 큰 위협이다. 이들의 공격이 일어나지 않는 날이 하루도 없다고 토로했다.

인도 정부의 집계에 따르면 마오주의자의 공격이 본격화된 2004년 10월 이후 현재까지 598명의 군인과 경찰, 1894명의 민간인이 살해됐다.

지난달 15일 500여 명의 마오주의자가 인도 중부 오리사 주 나야가르의 경찰서 5곳을 동시에 습격해 14명의 경찰관을 살해하고 무기 1000여 점을 탈취한 사건이 일어났다고 일간 타임스 오브 인디아 등이 보도했다.

지난해 3월에는 마오주의자들이 차티스가르 주 라니보들리의 경찰서를 공격해 경찰관 55명이 목숨을 잃었다. 2006년 7월에는 정부가 운영하는 차티스가르 주 단테와다의 구호소를 덮쳐 29명이 숨졌다.

현재 마오주의자들은 인도 동부의 서벵골 주와 서부의 마하라슈트라 주, 북부 우타르프라데시 주, 남부 안드라프라데시 주 등 전국에 세력을 뻗치고 있다.


일간 인디언 프레스는 마오주의 무장 단체인 인도마오주의공산당(CPI-M)이 인도 28개 주 중 17개 주에 지부를 두고 활동 중이며, 지난해와 올해 2년간 예산이 6억 루피(약 141억 원)에 이른다고 전했다.

인도 싱크탱크 국방분석연구소(IDSA)는 CPI-M이 AK소총과 로켓포, 대인지뢰 등으로 무장한 최대 1만5000명의 대원을 두고 있다고 추정했다.


세계화와 빈곤이 원인=마오주의는 노동자와 농민이 계급동맹을 맺어 농촌을 근거지로 장기간의 유격전을 통해 혁명을 완성하자는 주장을 핵심으로 한다.


인도의 마오주의 운동은 1967년 5월 서벵골 주 낙살바리에서 일어난 농민 봉기인 낙살라이트(Naxalite)에서 비롯됐다. 이 때문에 인도 마오주의자들은 낙살(Naxal)이라고도 불린다.


이후 인도 마오주의는 마오주의공산주의센터(MCG)와 인민전쟁파(PWG)가 이끌어 왔다. 두 단체는 2004년 9월 CPI-M으로 통합되면서 조직을 정비했고, 본격적으로 관공서 등에 대한 공격에 나섰다.

 

★*&hellip;&nbsp; 인도 공산당 운동가들이 8일 콜카타에서 열린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방문을 반대하며 시위를 벌이고 있다.

인도 정부는 지난달 23일 CPI-M의 핵심 간부인 소멘(본명 히마드리 센 로이)을 검거하는 등 단속을 강화하고 있다. 하지만 인디언 익스프레스는 약 1만5000명의 경찰과 군 병력이 마오주의자를 전담하고 있지만 이들만으로는 역부족이라고 지적했다.

블룸버그통신은 인도에서 이른바 특별경제구역(SEZ)이 확대되면서 다국적 기업에 땅을 내주고 쫓겨난 농민들이 CPI-M에 합류하고 있다는 안드라프라데시 주민의 말을 보도했다. 세계화가 인도에서 마오주의자들이 창궐하게 된 가장 주요한 요인이라는 지적이다.

인도 사회발전연구센터(CSDS) 벨라 바티아 박사는 달리트(인도의 최하층 신분)와 빈민들은 마오주의에 동조해서가 아니라 사회적 억압 때문에 마오주의자들을 지지하는 것이라며 정부의 대책을 촉구했다.

인도의 케랄라주에선 세계 최초로 자유선거에 의해 공산당이 집권했다. 또 호치민을 영웅으로 대접하며, 레닌의 동상이 아직까지 남아 있는 곳 또한 인도다. 모든 다양성을 인정하고 그 속에서 조화를 추구하는 것, 그것이 바로 인도를 지배하는 정신이다.

 

-인도의 모택동(마오쩌둥)의 혁명은 정말 1967 년, 웨스트 벵갈 사르 베리에서의 반란, 이것은 인도의 사람들이 전쟁의 전환점으로 간주되었다 봉기의 시작했다. 봉기 후, 중국 "인민 일보" 사설은 "봄의 천둥(a peal of spring thunder)"으로 표현 발표했다.

1969 년, 인도 (마르크스 - 레닌주의)의 수단을 위한 투쟁에서 무장 봉기가 설립 되었으며,  2년 분열로보 정당이 분리 되었다. 사무 총장 메리 숨어 문다 위치가 도전을 받았다.

1972 년, 그는 감옥에서 죽었다. 1970 년대 전반에 걸쳐, 인도 모택동(마오)주의자 조각난, ,하지만 여전히 그들이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계급 투쟁과 국민의 전쟁 모택동(마오)의 이론을 주장했다.

1971 방글라데시 전쟁은 또한 모택동(마오) 주의자에 큰 타격이다. 때문에 중국과 파키스탄 사이의 좋은 관계의 따라서, 파키스탄 전쟁 파티에 서있는 사람들의 인도 모택동(마오)주의자, 이러한 움직임은 감정적으로 인도에있는 사람들에 의해 인정하기 어려운,하지만 더 모택동(마오)주의자의 힘을 약화되었다
흥미롭게도, 전체 부서의 과정에서, 메리 숨어 문다 마오 주의자는 임표(린뱌오)와 반대 세력에 70 년대 시대의 분할을 지원하는 프로.

지도자가 믿는 인도 마오 주의자, 마르크스 - 레닌주의와 마오 쩌둥 사상의 발전, 그리고 그들의 이론은 더 이상 변경하지 않는 전쟁을 이기기 위해 모든 힘 플레이를 지출하지만, 자신의 베이스, 마오를 통합하면서, 공격 전술을 복용하는 동안 자신의 게릴라 전쟁 깊은 생각에 미치는 영향이었다

짧은 시간, 인도의 동부에 네팔 국경에서 빨간색 복도는 이미 모양을 이루고있다. 이 빨간색 복도에서 같은 비하르, 인도에서 가장 가난한 곳, 가파른 산, 정글 언덕, 여러 곳에서 게릴라로 모여 인도 주민 35 %, 인도 경찰 및 이전 버전으로 직원의 부족에 직면하고 있다. 무기.

많은 지역에서, 마오 쩌둥 게릴라 관리 및 생존을 유지하기 위해 세금에 의존하는 지방 정부에 의해 대체 되었다. 예를 들어, 풍부한 차 티스 가르 정글 대나무, 마오주의자 대나무 사업가 부과 세금의 정글의 갈망, 그리고 지역 도로 건설 회사도이 작업을 수행 할 필요하다. 정부가 마오 주의자를 억제하기 위해 군대를 이끌고 산에 왔을 때, 그들은 항상 지역 농민에 의해 보호. 인도 마오 주의자의 성공은 군대와 그들이 어떤 조치를 취할 경찰 어려운 지역 상황에 익숙하게 꽉 지하 조직을 구축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힘은 인도의 경제 발전과 함께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같은 극단적 인 마오 쩌둥 조직을 받아 들일 수 없다, 농촌 지역에 국한, 인도 (마르크스 주의자)의 공산당이 아니라, 시민의 자신의 효율적 지원에 의존 할 수있다 웨스트 벵갈, 케 랄라, 포함을 포함하여, 지방 자치 권한을 얻을 수 있다.

 

6.필리핀 마오(모택동)주의자

 

필리핀 마오(모택동)주의자 모습

                                                                                               

공산계 반군인 신인민군(NPA, New People's Army)은 1968년 12월 설립된 비합법 정당인 필리핀공산당(CPP)과 관련이 있다.

 구 공산당(PKP)에서 추방당한 시손(Jose M. Sison) 등이 창설한 CPP는 '농촌으로부터 도시를 포위'한 중국공산당을 모델로 삼아 마르코스 정부에 대항하여 게릴라 활동을 전개하였다.

 NPA는 CPP의 군사조직으로 출발하였으나 1969년 3월 분리 결성되었다.

 필리핀 공산당(Communist Party of the Philippines)의 군사조직으로 노동자 및 농민 혁명을 통해 집권정부를 전복한다는 정치적 목적을 가지고 있으며, 이를 위해 게릴라전의 전단계로 테러리즘을 활용하고 있다.

 특히 무자비한 테러리즘을 통해 정부의 과도한 대응정책을 유발시키고, 정부의 무능을 증폭시켜 보다 폭넓은 대중적 기반을 다진다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노동자 및 농민을 끌어들이기 위해 NPA는 농촌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이들 지역에서는 상당한 영향력을 확보하고 있다. 특히 초기에는 마르코스 대통령의 부정과 부패가 농민과 노동자들의 NPA 지원을 촉진시켰다고 할 수 있다. 창설초기에 NPA의 대원 수는 2,000여명 이였으나 현재는 약 20,000여명으로 추산되고 있다.

점차 세력이 성장하자 NPA는 공산당 활동에 대해 비판적이거나 비우호적인 태도를 보이는 지방정부 지도자들에 대한 암살시도는 물론 보안군, 경찰간부, NPA 정보를 제공하는 자들에 대한 살해 및 협박 등을 통해 도시지역으로까지 영향력을 확대하게 되었다.
지난 30여년간 NPA는 점령지역을 중심으로 폭동·테러 및 게릴라전을 지속하였는데, 정부군과의 교전으로 희생된 양측 및 민간인 사망자는 3만명이 넘는 것으로 추정된다.

 NPA의 활동이 지속적으로 확대되어 온 것은 필리핀의 열악한 경제여건과 관련이 깊다.

전반적인 경제적 낙후 상황에서 지방간 소득격차가 심화된 것이 NPA의 투쟁 공간을 확장시키는 요인이 되었다.

 

특히 마르코스 정부 당시의 계엄통치 기간(1972-1981) 동안 각종 사회적 비리를 틈타 세력을 확장하였다.

1986년 2월에 출범한 아키노 정부는 그 동안 구금되었던 시손 전 CPP의장과 전 NPA사령관을 비롯한 정치범을 석방하는 등 NPA와의 휴전을 모색하였으나  2달 동안의 임시휴전 이후 정부군과 NPA간의 전투가 재개되었다.

 

1992년 7월 라모스 정부의 출범을 전후한 시기부터 반군세력이 약화되었는데, 이는 냉전 종식 이래 국제공산주의의 쇠퇴와 중국 등 공산권의 지원 감소 등이 주요 원인이었다.
-필리핀 남부서 공산 반군·지역 부족 충돌…18명 사망

필리핀의 공산 반군이 남부 지역의 한 부족을 공격, 반군 12명을 포함해 모두 18명이 사망했다.

필리핀 언론과 외신은 15일 정부군 소식통을 인용, 신인민군(NPA)이 이날 새벽(현지시간) 남부 아구산 델수르 주의 마노보 부족을 습격, 양측간에 교전이 벌어졌다고 보도했다.

NPA 반군의 공세로 불과 하루 만에 이처럼 많은 인명이 희생된 것은 극히 이례적이다.

군 소식통은 이날 2시간가량 벌어진 교전으로 NPA 반군 12명과 마노보 부족 4명이 각각 숨졌다고 밝혔다.

이어 정부군이 교전 현장에 출동, NPA 측과 충돌하면서 양측에서 각각 1명이 추가 사망했다.

반군은 무장 헬기의 엄호 아래 작전을 개시한 정부군의 공세에 밀려 인근 산악지대로 퇴각했다.

마노보 족의 인명피해가 상대적으로 적은 것은 NPA의 움직임을 사전 파악한 정부군이 관련 정보를 알려줘 미리 대응할 수 있었기 때문으로 알려졌다.

지난 1969년 무장투쟁에 나선 NPA는 최근 정부군의 잇따른 소탕작전으로 세력이 급속히 약화하자 병력을 확충하기 위해 마노보 부족을 기습한 것으로 파악됐다.


-대결 후 1969년 중국 - 소련 충성 모택동(마오) 진영이 공식적으로 현대 신(新) 인민군 설립, 필리핀 색의 최대한의 혁명 운동에서 CPP 전에 차 세계 대전에서 유래 "새 인민군"(NPA), 항일 전쟁의 상승이다 프로토 타입은, 독립적인 무장 세력이 된다.신(新) 인민군의 대통령 가르침을 따라, 반동 싸우는 필리핀 정부군과 무장 투쟁 아직 포기하지 않았다.필리핀 정부도 미국의 강력한 지원 아래, 그들을 파괴되지 않았다.
외국 원조 끈기 싸움 하드 상황의 부재 필리핀 신인민군은 그 자체가 기적 40년 동안 지속. 그것은 필리핀의 인민군도 적극적으로 국제 공산주의의 정신을 이월 것을 말한다 사람들, 수천, 위원은 지난 세기에! 인도 마오 주의자에게 무장 투쟁을 안내하는 신인민군을 보낸 상태가 좋지 않지만 지금, 거의 30,000 군인과 8.90 년이었다 여전히. 필리핀은 보수적인 인민군, 동성 결혼의 구성원 허용!이 미국인보다 더 "인간의 본성."

 

7. 칼리만탄섬 공산당 마오(모택동)주의자

칼리만탄섬 공산당 마오(모택동)주의자 모습

                                                                                          

말레이시아 사라왁 비밀정당의 칼리만탄섬 공산당. 사라왁에서 1971년 9월 19일는 사바 브루나이 조직은 공산당을 형성하기 위해 합병했다. 회장 웬 밍 권한.이반 (어 자크) 사람들이 중국과 몇 회원. 지지자들은 무장 투쟁을 통해 독립을 달성했다.군대는 칼리만탄 인민군과 1969년 7월 13일 칼리만탄섬 게릴라의 설립을 확립  1965년 10월 26일을 주도했다. 원자바오 명나라 권리는 막내 마오 쩌둥 지도자, 종종 비밀 방문했다. 1978년 4월 3일 칼리만탄 공산당 비서 웬 밍 전원 선 4인 Dazhai 여단을 방문했다.

 

8. 태국 마오(모택동)주의자

               

태국 마오(모택동)주의자 모습

                                                                              

타이 공산당(타이어: พรรคคอมมิวนิสต์แห่งประเทศไทย 팍코미우닛 행 쁘라텟타이, พคท.(PKT), -公産黨, Communist Party of Thailand, CPT)은 마르크스-레닌주의 이념을 표방하는 타이 공산주의 비합법 정당이었다. 타이에서 공산주의 활동은 1927년 이래로 이어져 왔으나 이 당이 공식적으로 창당된 것은 1942년 12월이었다. 애초의 명칭은 시암 공산당이었다. 정부의 반공 정책에 의하여 비합법화되었고, 대부분의 활동기 동안 선거에 참여할 수는 없었다.

이 당이 본격적으로 세를 불린 것은 1960년대부터였으며, 1970년 초 무렵에는 베트남 공산당에 이어 인도차이나 반도에서 두 번째로 큰 공산주의 정당이 되었다. 어느 정도 내부 분열을 겪기는 하였으나, 활동의 절정기에는 사실상의 국가 내 국가로 활동하였다. 이 당의 지지 기반은 농민들이었는데, 실제로 농민 지지자는 적어도 4백만 명에 달했던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산하의 사병 조직은 1만에서 1만 4천 명 가량의 무장대원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이 당의 영향력은 타이 동북부의 낙후된 이산 지방에 집중되어 있었다.

1990년대 들어 이 당은 타이의 정치 무대에서 영향력을 잃게 되었는데, 주된 이유는 냉전의 종식이었다. 이 밖에도 내부 불화와 국제 공산주의 운동 상황의 변화, 정부의 성공적인 반폭동 정책 등이 원인이 되었다.

타이 공산당의 당기(黨旗). 중국 공산당 당기와 동일하다

-2 년 전, 태국 사람들은 혁명 무장 투쟁의 첫 번째 샷을 발사, 화재의 혁명적 잠재력은 열려있는 모든 방향으로 빠르게 확산한다. 오늘날, 국립 일흔한 후추는 불길 스물 아홉 하우스에게 혁명 무장 투쟁을 점화했다. 태국 사람들이 점점 더 자주 무장 이니셔티브, 거의 팔백 시대의 총의 일반적인 적을 싸우고 2 년 이상은 거의 이천명 적을 파괴.

태국의 공산당의 지도력하에 태국 사람들의 무장 투쟁은 승리이다. 파키스탄 - 혁신적인 여행에 태국 사람들이 아무리 만남 어려움과 좌절 심각한, 단지 높은 맑스 - 레닌주의를 개최하지, 마오 쩌둥 사상, 붉은 물결, 장기화 사람들의 전쟁에 종사, 우리는 미제와 그 하수인 Inthanon에서 패배 할 수있을 것이다고 보는 반역 그룹. 최종 승리로 인해 1983년에 개최 총 과학적 사회주의 진영의 타이어 캠프 (무장 투쟁 파의 분파)에, 그러나! 싸우는 영웅 태국 사람들을 준수 속할 "5대"는 민주주의 투쟁 노선이 달려 무장 투쟁을 발표 "다음, 멸망하지 않지만, 총을 잃었지만,하지 부드러운 끓어 오르기 직전의 상태를, 및 붙여 넣기를 요리."총을 정권에 "전혀 틀림이 없는 것이다.

 

9. 미얀마 마오(모택동)주의자 

미얀마 마오(모택동)주의자&nbsp;모습

                                                                                                 

원래 미얀마 북부의 마오주의자 공산당 반군을 지원하던 중국은 1990년대 들어 방침을 바꿔 미얀마 정부와 손을 잡았다. 유엔에서 미얀마 제재안이 나올 때 등 사사건건 미얀마 정부의 편을 들어줬다. 2008년에만 공식집계로 2억3250만달러, 비공식적으로는 수십억달러에 이르는 돈을 차관 및 투자로 집행했다.

-소위 마오 주의자, 기사와 모택동, 마오의 이상주의, 애국심, 국가의 독립과 그 깊고 진지한 감정의 사람들의 기본 정신의 회장의 생각을 작성하는 것이다.

 

10.페루 마오(모택동)주의자 "빛나는 길"

페루 마오(모택동)주의자 "빛나는 길" 모습

                                                                                 

마오쩌둥[毛澤東] 사상을 바탕으로 유격전과 테러 활동을 전개해왔다. 페루 공산당이 여러 분파로 분열된 1970년 조직되었으며 명칭은 페루 공산당의 창설자 호세 카를로스 마리아테기가 입버릇처럼 말해왔던 "마르크스-레닌주의는 혁명의 빛나는 길을 열 것이다"에서 유래했다.

빛나는 길의 창설자이자 지도자는 아비마엘 구스만 레이노소였다. '곤살로 동지'로도 알려졌던 그는 1934년 아레키파 근처 몰렌도에서 태어나 오랫동안 공산주의 운동에 헌신했고, 안데스 산맥의 고산도시 아야쿠초의 우아망가대학교에서 철학교수로 재직하기도 했다(1962~78). '센데리스타스'라고 불렸던 그와 추종세력은 소련·쿠바·중국에서의 '수정주의'가 순수 마오쩌둥 사상을 변질시켜왔다고 생각하고 그 복원을 모색했다. 스탈린 치하의 소련, 중국의 문화혁명, 캄보디아의 크메르루주 정권을 본보기로 삼았던 센데리스타스는 농민층에 기반을 두고, 장기간의 군사공세를 통하여 도시지역과 그밖의 부르주아 의회민주주의적 경향들을 분쇄함으로써 혁명을 달성하고자 했다. 최초의 무력행동은 1980년 5월 17일 아야쿠초 근처에서 일어났다. 초기에는 주로 안데스 산맥의 외곽지역에서 작전을 수행했으나 집중적인 폭격을 받게 되자 리마와 칼라오를 포함한 도시 중심지역에서 다양한 테러 활동을 벌였다

-페루의 공산 반군 '빛나는 길'의 지도자 3명이 뉴욕 법정에서 테러와 마약 및 무기류 밀거래 혐의로 기소되었다고 미 관리들이 말했다.
이 기소 사실은 2일(현지시간) 맨해튼의 연방법원에서 궐석 재판 후 공지되었다.
미 검찰에 따르면 이들은 플로린도 플로레스-하라, 빅토르 키스페 팔로미노, 호르헤 키스페 말로미노 세 사람으로 반군 지원 자금 마련을 위해 국제 마약밀매 조직과 공조한 혐의, 외국의 테러 조직에 물질적인 도움을 제공한 혐의를 받고 있다.
플로레스-하라는 현재 페루 사법기관에 구금되어 있고 다른 두 명은 잡히지 않았다.
'빛나는 길' 운동은 라틴 아메리카에서도 가장 격렬한 반군 집단의 저항을 기록했으며 총수 아비마엘 구스만이 체포된 1992년 이후로는 대부분 소탕되었다.
-문화 혁명 기간 동안 1967년에서 1968년까지 동안, 페루에서 공산주의 반군 설립자 구즈 베이징에서 훈련을 "경로가 빛나는"가장 존경 마오와 그의 아이디어. 위로 페루 페루 공산당 후, 구즈을 분할 마오 쩌둥 사상의지도와 "Sendero Luminoso"파벌의 지도자가 되었다.

 

11.일본 마오(모택동)주의자 적군(赤軍, 붉은군)

 

일본 마오(모택동)주의자 적군(赤軍, 붉은군) 모습

                                                                                     

일본 적군(日本赤軍,영어: Japanese Red Army, JRA)은 일본의 제국주의에 반대하여 1969년 조직된 일본 공산주의 무장단체였다.

1969년 일본 정부를 상대로 선전포고를 한 일본적군은 경찰에 의해 대부분의 멤버들이 검거되었으며, 설립자인 시노미 다카야 1970년 검거되었다. 적군파는 200명의 조직원을 잃었으며, 극소수는 1971년 7월 마오쩌둥 중화인민공화국 초대 주석의 사상을 표방하며 연합 적군을 결성하였다

 

적군은 1972년 겨울 아사마 산장 사건으로 유명해졌는데, 사건 당시 수백 명의 경찰이 일주일간 포위하였다. 사건이 해결된 후 경찰에 의해 아사마 산장 사건 시 대치상황 가운데 사상단결을 목적으로 29명의 적군파 대원중 14명의 적군파 대원을 잔혹하게 살인한 것이 드러나면서 일본 내의 광범위하게 걸쳐있었던 적군파 일원들은 회의감에 사로잡혀 대부분 전향하거나 적군파 관련 작업을 그만 두었으며 일본 적군파가 해산된 제일 큰 원인이 되었다. 그 후 시게노부 후사코가 열성적인 멤버들만을 데리고 일본을 떠났다. 그녀는 40여 명의 지도부와 로드 공항 공격을 감행하였는데, 이는 세계적인 과격 좌파 집단의 무장중 하나로 가장 유명하다. 1971년부터 일본 적군파는 팔레스타인 자유 민중 전선과 긴밀한 유대를 가졌으며, 연합 적군은 1972년 사라졌다. 시게노부 그룹은 팔레스타인 전선( Popular Front for the Liberation of Palestine)의 지원을 받았다.

 

일본적군파의 공산주의 이념은 각 대원에 따라 달랐지만, 기본적으로 마르크스-레닌주의를 따랐으며, 자본주의 체제의 입헌군주제인 일본 정부를 전복시키고 사회주의 체제의 공화제 정부를 세운다는 세계적인 혁명을 실천하는 목표를 가지고 있었다. 반제국 국제 동맹, 성전 동맹, 반전쟁 민주 전선 으로도 알려져있다. 2001년 4월, 시게노부는 검거 상태에서 적군파의 해산을 선언함으로 이슈화되었었다

 

-일본은 빨간색 1960 년대 일본, 중국은 파도가 아시아, 일본 청소년의 시간이 좌회전 선택해  아프리카 독립 운동, 베트남에 군사 행동에 미국에 없는 외국인에 급증, 적조의 라운드를 출발했다.

의식의 일본 마스터 스트림 - 오에 겐자부로 많은 소설, 다음 일본어 좌파 운동 설명의 전면과 측면이 있다. 그들이 수집 할 때 손을 어깨에 손을 옆 어깨, 사람, 그리고 흥분 도쿄, 교토, 오사카, 오키나와 거리에서 걷고, 반미 구호를 외치는 모습.

그 당시 텔레비전, 라디오, 자주 중국으로 중국의 문화 혁명 운동에 보고 된 신문, 이 보고서는 반복적으로 혁명적 열정 일본 청소년의 그 20 년 된 충동과 열정, 그리고 자기 희생을 자극했다. 일본의 공산당 "모택동(마오)" 많은 수의 "최상위"과 문화 혁명의 다른 문학, 촉매이 열정을 인쇄 할 수있는 기회를 했다, 중국이 젊은 사람들의 흥분은 일본에서 그 꿈을 스포츠로 복사된다. 물론, 또한 일본 당국이 또 다시 충돌을 생성한다. 청소년의 불만은 점차 힌트를 구입하는 미래에, 충돌시 더 과감한 행동을 증가했다. 붉은 군대는 그 시대에 태어났다.

1960 년대의 학생 운동이 점차 퇴조로 이동 한 후, 1960 년대 후반과 1970 년대 초반은 일본 적군은 역사의 무대를 시작했다. 붉은 군대의 구성원은 학생 운동의 가장 급진적인 회원이었다. 억압 당국, 그리고 나중에 어떤 사람들은 무장 극단의 길을 갔다하기 때문에, 적군 파 조직과 태어났다 "항일 무장 동쪽 전면을."

  후자의 일본 기획 폭발, "興亞觀音像"(일본군에 의한 난징 대학살 난징 명령 사령관 마쓰이가 내장 점유하는 경우) 및 "7 명 순교 기념비"를 포함하여 일련의 폭발에 구현 (동부 도조 등 A 급 전범 영적인 편안함 기념물), MHI 폭탄 테러의 구현 (그들은 큰 사업 군인의 선발대의 제국 주의적 약탈의 구현 생각), 쇼와 천황 열차 폭발 (실패)의 암살을 계획. 붉은 군대는 국내 억압의 경우, 해외에 의존 된 세계에서 혁명 기본 영역을 설정하는 것이다. 그들 중 일부는 북한에 1970 년에 납치되어, 1971 년 어떤 사람들은 지역의 게릴라 전투와 함께, 중동에 갔다.

마르크스-레닌-마오쩌둥주의[MLM, 중국 공산당 내부 교조주의 노선(모택동 계열)]

마르크스-레닌-마오주의(MarxismLeninismMaoism, MLM)는 마르크스-레닌주의와 마오쩌둥 사상을 결합한 정치 사상이다. 마르크스-레닌주의의 2세대 노선이라고 할 수 있으며, 2000년대 후반부터 정통 공산주의자들의 새로운 이념으로 주목받고 있다.  

(1)개요

마르크스-레닌-마오주의는 1993년에 마르크스-레닌주의보다 더욱 더 프롤레타리아 혁명적인 노선으로서 창시되었으며 현재에는 국제혁명운동이라는 대표적 마오쩌둥 사상 단체가 이를 추구하고 있다. 인도에서는 인도 공산당이 이 이념을 추종하고 있다. 여기에 프라찬다 노선과는 구별된다.

*인도 공산당 (마오쩌둥주의)(Communist Party of India (Maoist), 힌디어: भारत की कम्युनिस्ट पार्टी (माओवादी))는 인도의 비공식 정당이자, 준군사 조직으로, 인도 정부에서 반국가단체로 지정된 집단이다.

인도 공산당 마오파는 인도 공산당 ML파에서 형성된 급진파이다. 이들은 인도 사회를 반봉건반식민자본주의(半封建半植民資本主義)로 규정하며, 인민민주주의 혁명을 통하여 인도에 프롤레타리아 독재로 나아가기 위한 인민민주국가를 수립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인도 공산당 마오파는 이 노선을 마오쩌둥 사상에 근거해서 신민주주의(新民主主義) 노선이라고 명명했으며, 바로 프롤레타리아 독재로 나아가야 한다는 계파와 다르게, 반제애국적 소상인 및 소농·영세농과의 통일전선을 추구하고 있다. 이들은 인도 서북 지역에 적지 않은 규모의 게릴라 전선을 구축하였는데, 인도 정부는 이들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공공 기관을 쳐부수고, 수많은 공산당원을 잔인하게 고문하고 대량학살하는 만행을 저지르고 있다. 마오쩌둥주의를 따르는 네팔 공산당과는 협력 관계에 있다.

마오쩌둥주의 인도 공산당의 준군사 조직을 낙살라이트라고 하는데 인도정부는 낙살라이트에 대한 백색테러를 하는 작전명을 'Green Hunt'(녹색 사냥 작전)이라고 한다. 이 작전으로 인해 공산당원 8000명과 무고한 민간인 2147만명이 대량학살당했다.

 

[낙살라이트(Naxalite)는 인도 공산당 (마오쩌둥주의)의 준군사 조직이며, 반정부 집단이다. 인도 정부에서는 테러 집단으로 본다.

낙살라이트는 인도 서뱅골 주의 낙살바리라는 마을의 이름에서 유래하였고, 낙살라이트 봉기는 1967년 낙살바리에서 자룸 마줌다르와 카누 샨얄이 주도한 농민반란으로부터 기원되었다. 낙살라이트가 본격적으로 무장공격을 감행하기 시작한 것은 인도 공산당과 당 산하 인민자유게릴라군(PLGA)이 등장한 2000년대 초반이다.

인도의 600여 지구 가운데 180여개 지구가 낙살라이트의 영향을 받고 있으며, 차티스가르 주에서의 활동이 제일 활발하다]

 

*마르크스-레닌-마오-프라찬다주의 노선, 줄여서 프라찬다 노선(네팔어: मालेमावाद र प्रचण्डपथ 말레마바드 라 프라찬다파흐)은 네팔 통일공산당(UCPN(M))의 이념이다. 마르크스-레닌-마오쩌둥주의의 발전형이며 UCPN(M) 당수인 푸샤파 카말 다할의 별명인 프라찬다를 붙였다. 프라찬다 노선은 2001년 천명되었으며, 자신들의 이념을 "마르크스-레닌-마오-곤잘로 사상"이라고 칭하는 페루 공산당과 유사하다.

 

a.군중노선

기존 마르크스-레닌주의는 당 중앙위원회 '사회주의 국가에서 '간부회'의 역할을 했던 모든 종류의 중앙 집행 기관'의 활동을 중점으로 사회주의 건설, 그리고 사회주의에서 공산주의에로의 투쟁을 서술하였지만, MLM 노선은 사회주의 혁명과 공산주의 혁명 과정에서 당과 인민 사이의 강력한 연대, 대규모 군중 직접 행동이 불가피하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노선은 혁명당  흔히 '공산당'이라 불리는  이 사회주의 사회에서도 강력한 전위력을 갖춘 전위당의 역할을 급진적으로 고수해야 한다는 입장과 이어진다. 이러한 군중 노선으로 당은 인민의 의지를 투쟁 과정에 적절히 반영할 수 있으며, 인민은 당의 영도권에서 이반하지 않을 수 있다.

 

b.신민주주의

MLM 노선은 기존 마르크스-레닌주의의 반제국주의 노선을 강화하여 반제 투쟁의 한 예외적 계급인 '민족부르주아'(national-bourgeois)의 역할과 통제에 대해 심도있게 논하고 있다. 민족부르주아는 제국주의 국가의 식민지화에 저항할 수 있으며, 통일전선에서 주요한 역할을 해낼 수 있는 계급이지만, 본질적으로 이들은 부르주아 계급이므로 생산 관계의 모순을 청산하려고 하지 않는다. 따라서 현대 사회에서 통일전선을 꾀할 때 이들에 대한 공산주의자들의 통제는 상당히 중요한 것이며, 이는 혁명의 성공과 실패를 가르는 중요한 기준이 될 수 있다. 오늘날 공산주의 진영이 쇠퇴한 시점에서 공산주의자들은 이들(넓게는 자유주의자들)과 언제든지 협력하고, 협력한 상태에서 다변화된 전략을 구상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MLM 노선이 시사하는 바이다.

 

역사적으론 중국 국민당과 연합을 했던 중국 공산당의 예를 들 수 있으며, 블라디미르 레닌이 잠시 도입했던 신경제정책을 예로 들 수 있다. 또한,  2차 세계 대전 시기 유럽에서 광범위하게 성립된 인민전선도 통일전선의 한 예로 들 수 있다. 전자의 경우 천두슈 주도의 중국 공산당은 민족부르주아 세력인 중국 국민당을 제대로 통제하지 못했으며, 이에 대한 무지는 상하이 쿠데타에서 공산주의자들이 무참히 학살된 것과 관련이 크다. 마오쩌둥은 제2차 국공합작에서 이 민족부르주아들을 통제하고 자신들의 혁명 전략에 맞게 이용할 수 있는 다양한 지식을 갖춘 상태였으며 결과적으로 그는 혁명에 성공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것은 민족부르주아와의 부분적인 타협이 없었다면 이룰 수 없는 것이었다. MLM 노선은 현대 공산주의 운동이 퇴조한 시점에서 수많은 개발도상국(왜냐하면 선진자본주의 정체에선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정의하는 '민족부르주아'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의 혁명을 지도하는 이념으로, 새로운 통일노선의 역할을 강조하고 있다.

 

c.문화대혁명

1990년대 중반에 구체화된 MLM 노선은 과거 존재하던 현실사회주의권의 붕괴 현상에 대해 분석해야 했다. 이들에게 공통적으로 나타난 것은 당의 수정주의화, 관료주의였다. 그들은 이러한 것의 원인을 대규모 대중 운동을 배제하고 중앙위원회에 모든 것을 맡기는 기존의 현실사회주의의 특유의 제도 때문이었다고 보고 있으며, 당의 수정주의화를 막기 위해 일정한 기간마다 전체적인 문화대혁명을 일으켜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것은 군중 노선에 근거해야 한다. 기존의 마르크스-레닌주의자들은 공산주의로의 투쟁 과정에 있는 사회주의 국가 내부의 반동 공작 문제보단 외부적 문제에 모든 것을 쏟았다면, MLM 노선은 내부와 외부를 동시에 통제하는 것을 주장하고 있으며, 하부 구조의 변형에서 그치는 것이 아닌, 상부 구조 변형을 급진적으로 진행해야 함을 명시하고 있다. 이를 '계속혁명론'(繼續革命論)이라고 부른다.

 

d.적대적 모순/비적대적 모순

마오쩌둥 사상은 기본적으로 이오시프 스탈린의 변증법적 유물론에 기반하며, 스탈린의 공산주의 정립을 정설로 받아들인다.

그러나 마오쩌둥 사상은 중국 현실에 맞는 발전된 마르크스-레닌주의라는 가치를 내세우고 있기에 일부 이론에서 스탈린의 이론과 차이점이 존재한다. 특히, 모순론(생산관계로 인해 발생하는 변증법적 모순에 대한 이론) 1920년대 데보린 학파에 의해 전개된 유물변증법과 더불어 이오시프 스탈린이 레닌주의의 기초와 레닌주의의 제문제에서 밝힌 모순론과 비교되는 입장을 갖고 있다. 이오시프 스탈린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나타나는 모순과 사회주의 사회에서 그 모순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등장하는 모순의 본질은 제반경제투쟁에서 발생하는 모순과 일치하며, 그것은 어떻게 하든 현실에서 계급 투쟁(프롤레타리아와 부르주아 사이의)의 형태로 발생한다고 보았다. 따라서 프롤레타리아 계급에 의해 지도되는 사회주의 정체는 모순이 있을 수 없다.

 

반면, 마오쩌둥은 모순을 적대적 모순(敵對的矛盾, Antagonistic contradiction)과 비적대적 모순(非敵對的矛盾)으로 나눈 다음, 전자의 모순은 처음부터 끝의 과정까지 모순의 과정을 관통하며, 비폭력적으로 해결할 수 없는 모순, 즉 본질적 모순에 해당하고, 후자는 비폭력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모순이라고 하였다. 마오쩌둥의 모순론에 따르면, 전자의 경우는 계급 전쟁에서 최일선에 해당하는 모순인 프롤레타리아와 부르주아 사이의 모순이므로, 서로의 계급 전쟁에서 나름대로의 전략을 구사하는 과정에서 상당히 추상적이고 관념적이며 또한, 갖가지 양태를 갖고 있는 모순으로 변화하게 된다.

예를 들면, 그것은 백인과 유색인종 사이의 싸움이 될 수 있으며, 제국주의자와 반제국주의자, 남성 권위주의자들과 여성 사이의 투쟁, 심지어 노동자와 농민 및 빈곤노동자 사이의 투쟁으로도 양태화될 수 있다. 마오쩌둥은 이것들이 본질적인 모순에 해당하는지, 그렇지 않는지 구분하기 위해서는 결국 매개 모순의 특수성, , 모순의 진행도를 인식하고 그것을 정합(整合)하여 판단해야 한다고 본 것이다. 그리고 모순의 진행도가 제각각인 것은 프리드리히 엥겔스가 자연변증법(Dialektik der Natur)에서 논한 자연물 사이에서의 모순을 포함하여 모든 본질적인 모순이 가진 보편적인 것(보편성)이라고 주장하였다.

 

또한, 주요 모순은 상황에 따라 변할 수도 있다. 마오쩌둥의 모순론에 따르면, 주요 모순은 모순성의 특수성을 정합성에 따라 인식한 후에 판단될 수 있지만, 동시에 그것은 상황에 따라 또 유동적으로 변한다. 이러한 입장은 혁명에 현실성을 부여한 입장이라고 할 수 있다. 당시 이오시프 스탈린의 정식을 받아들인 기존의 공산주의자들은 다른 양태를 갖고 있는 모든 본질적 문제를 단적인 경제 관계 내에서 발생하는 투쟁으로 환원시키고 그것들의 속성을 근시안적으로 바라보는 경험주의적 단견을 갖고 있었다. 때문에 수많은 본질적 분쟁인 사건을 비본질적 분쟁으로 취급하는 결정적 오류를 범했다. 실제로 마오쩌둥의 비판 대상인 교조적인 공산주의자들은 농민은 소부르주아이기에 본질적인 혁명 동력이 없다고 봤으며, 사회 곳곳에서 나타나는 양분적 대립 등을 비본질적 모순으로 보아 그것들의 중요성을 무시했다.

마오쩌둥은 이러한 기조가 본래의 마르크스-레닌주의의 취지에 어긋나며, 교조주의자들의 입장을 '혁명에서의 소극주의 경향'으로 규정하고 단죄하였다. 그는 프롤레타리아와 부르주아 사이의 계급 투쟁 관계를 단순히 무산자-임금노동자와 유산자-사업가의 싸움으로 표시되는 것으로 보지 않았으며, 그것의 본질은 사실 무산자와 유산자 사이라는 간극보다는 혁명으로 나아가는 하나의 세력과, 반동으로 나가는 세력 사이의 간극이라고 본 것이다.

마오쩌둥이 혁명의 시기인 1920년대에서 1940년대 사이에 농촌에 기반한 농민운동에 중점을 둔 것도 바로 위와 같은 철학적 지론에서 나온 것이다.

 

MLM 노선은 기존의 교조적 계급론으로 모든 사회 현상을 쉽게 설명하기 힘들며, 대중에게도 와닿지 않으며,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 방해가 될 수 있다고 주장하며, 마오쩌둥의 모순론을 새로운 혁명론적 모순관으로 채택하였다. 이 새로운 형태의 변증법적 견해에 따르면, 공산주의 운동은 반식민주의 투쟁·반인종주의 투쟁·여성해방투쟁에 보다 유연하게 동행할 수 있을 것이다.

 

e.반수정주의

기본적으로 MLM 노선은 반수정주의를 지향한다. 이들은 공산주의 운동 쇠퇴의 원인을 수정주의로 보고 있다. 비록, 스탈린의 DIAMAT 원리에 마오쩌둥의 모순론을 첨가하여 새로운 마르크스-레닌주의를 주장하고 있으나, 본질적으로는 혁명 노선에 있어서 볼셰비키당의 유산을 간직해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때문에 MLM 노선을 지지하는 당 또는 단체는 국제공산주의운동에서 강력한 반수정주의 세력으로 자리잡고 있다. 트로츠키주의와 흐루쇼프 이후의 수정주의에 대한 비판도 정통 마르크스-레닌주의자들의 그것과 유사하다.

 

(2)마오쩌둥주의와의 차이

MLM 노선은 마오쩌둥주의에 크게 영향받았으나, 기본적으로 공업 사회에 적용하기 위해 형성된 혁명 사상인 마르크스-레닌주의의 전통을 따르고 있으며, MLM 노선 자체도 마오쩌둥주의의 특수성보단 마르크스-레닌주의의 보편성을 추구하고 있다. , 마오쩌둥주의는 혁명 전의 중국 상황과 유사한 국가들에서 '특수적'으로 쓰이고 있다는 것이 그 차이점이라고 할 수 있다. MLM 노선을 지지하는 공산주의자들은 이 노선이 공업 사회, 농업 사회에서도 적용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마스 레닌주의 노선[교조주의]

스탈린주의, 마오쩌둥 사상, 호치민 사상, 티토주의, 주체사상, 호자주의, 게바라주의, 카스트로주의, 마르크스-레닌-마오쩌둥주의

1.영향

국가자본주의, 극단주의, 급진주의, 레닌주의, 반수정주의, 사회제국주의, 전체주의, 좌익 독재, 프롤레타리아 독재

2.단체

공산당 계열, 코민테른, 공산당-노동자당 국제회의, 공산주의 국가[사회주의 국가], 극좌

-흐루시초프나 등소평, 고르바초프, 옐친 등은 수정주의 노선이다

 

*모택동주의[교조주의]

민중주의, 마르크스-레닌주의, 반사회제국주의, 반수정주의, 신민주주의, 탈서구중심주의, 농촌혁명론, 모순론, 실천론, 지구전론, 3세계론, 군중노선, 문화대혁명, 인민민주독재

1.영향

공산주의, 스탈린주의, 낙살라이트, 전체주의, 법가, 주관주의, 황금방패

-금순공정(金盾工程) 혹은 황금방패(黃金防牌)1998년부터 시작된 중화인민공화국의 디지털 공안 체제로 중국 공안부에서 운영한다. 또다른 별칭들로는 만리장성에 빗대어 방화장성(防火長城) 또는 만리방벽(萬里防壁, Great Firewall)이라고도 불린다

2.단체

마르크스-레닌주의자당 연맹, 혁명적 국제주의자 운동, 아프가니스탄 해방전선, 아르헨티나 혁명공산당, 볼리비아 인민혁명전선, 부탄 공산당, 캐나다 혁명공산당, 중국 공산당(1969 ~ 1976), 콜롬비아 혁명공산당, 에콰도르 공산당, 인도 공산당(마오쩌둥주의), 이란 공산당 ,이탈리아 마오쩌둥주의자당(붉은 여단), 네팔 공산당 (마오쩌둥주의), 노르웨이 노동자당, 필리핀 공산당, 포르투갈 노동자공산당, 터키 공산당, 미국 혁명공산당, 흑표당, 중국 공산당 홍위병, 일본 적군파(일본 공산당 내부 2단계 혁명론 NLPDR계열), 극좌[콜롬비아의 마오(모택동)주의 무장 혁명군[인민군] 마오(모택동)주의자 이탈리아 붉은 여단[이탈리아의 극좌파 비밀 테러 조직], 네팔 마오쩌둥(모택동)의 공산당과 무장단체, 아프가니스탄 마오(모택동)주의 청년공산주의 단체, 인도 마오(모택동)주의[마오주의공산주의센터(MCG)와 인민전쟁파(PWG)],필리핀 마오(모택동)주의[공산반군], 칼리만탄섬 공산당 마오(모택동)주의자,  태국 마오(모택동)주의자[태국 공산당], 미얀마 마오(모택동)주의자[북부 미얀마 공산반군], 페루 마오(모택동)주의자 "빛나는 길",  일본 마오(모택동)주의자 적군(赤軍, 붉은군) 등 세계 11개국 모택동(마오쩌둥)주의자 신봉단체]

3.인물

마오쩌둥(毛澤東), 아크람 아이노, 천보다(陳伯達), 애비마엘 구즈만, 이브라힘 카이파카야, 린뱌오(林彪), 짜루 마줌다르, 시라지 시크데르, 피에르 물렐레, 휴이 뉴턴, 프라찬다, 장칭(江靑), 호세 마리아 시손 야오원위안, 장춘차오(張春橋), 사미르 아민, 리민치(李民騏), 쯔엉찐, 폴포트, 샤를 베틀랭, 알랭 바디우, 

 

 

오늘날 마스-레닌주의(공산주의)는 수정주의 노선으로 나아가야 선거에서 승리할 수 있다

수정주의 노선은 국영자본체제와 노농조합(지역 지방 의회) 도입 그리고 노동계급이 령도하고 노농연맹을 기초로 하는 인민민주 전제정치(인민민주주의 독재체제, 프롤레타리아독재체제)와 국가주석이나 대통령의 임기제한 등이다

국영기업이나 농장이 노농조합(지역 의회)에 의한 운영과 함께 개인의 사유재산, 이윤추구, 시장경쟁원리의 자본주의 3원칙을 인정하고 상업적 공농(工農) 생산품을 생산하여 판매하여 그 수익으로 세금과 경영 비용, 노동자나 농민들에게 임금으로  분배하는 것이다

국영기업이나 농장의 부패와 관료주의를 제거하기 위해서는 노농조합(지역의회)애 의한 책임자 선출과 임기제한 그리고 사업 의결권을 주어야 한다

 그리고 인민 의회정부론(인민 회의정부론)이 의회보다 지도자론(영도론)으로 나아갈 때 군국주의 국가사회주의 국가(1인 전체주의 정부)가 될 수 있기 때문에 국가주석이나 대통령(최고지도자)의 임기제한을 해야 인민회의정부(인민의회정부)가 될 수 있다. 중국 등소평헌법이나 쿠바 신헌법은 국가주석 임기를 제한하고 있다. 베트남도 형식상 국가주석 4년 중임제이다

당이나 노농조합(지역의회) 독재나 우위는 인정하지만 국가주석이나 대통령, 농장 책임자나 국영기업 책임자 개인의 독재는 인정하지 않는다

노농조합이나 지역의회 그리고 연방의회(중앙의회)에서 선출된 국영기업(농장) 책임자나 국가주석(대통령)의 임기는 제한이 돼야 세습화나 부패를 척결할 수 있다

*미군 협방 타이완 사령부

미군 협방 타이완 사령부(영어: United States Taiwan Defense Command (USTDC), 중국어: 美軍協防台灣司令部)는 타이완에 있었던 미국의 통합전투사령부였다.

1955 4 26일 타이완 연락센터(Formosa Liaison Center, 台灣聯絡中心)가 설치되었다. 1954 9월에 발발한 제1차 타이완 해협 위기로 미국과 타이완 간에 맺어진 중미상호방위조약(또는 중미공동방어조약)에 따라 미군 타이완 연락센터는 1955 11 1일 미군 협방 타이완 사령부로 개명되었다.[2] 처음에는 극동 사령부, 1957 7 1일부터는 태평양 사령부의 예하 사령부가 되었다.

1979 4 26일 사령부가 해체, 12 31일에 중미공동방어조약이 해지되었다.

반환된 사령부의 부지는 1983 8 8일에 타이베이 시립미술관이 되었다.

활동 기간:1955 4 ~ 1979 4

국가:미국

소속:미국 국방부

명령 체계:태평양 사령부

본부:타이완 타이베이시(현 타이베이 시립미술관)

주타이완 미군과 미군 협방 타이완 사령부는 전쟁과 공산주의 혁명 운동 노선 교조주의자 스탈린 추종세력 모택동 사망과  개혁개방정책 국제적으로 공산주의 혁명 운동 포기, 평화입장 민주개혁 실용주의자 등소평 정부 등장으로 주타이완 미군 철수와 미군 협방 타이완 사령부 해체가 되었다 

 

1970년대 이전, 국제사회가 공산주의 혁명과 전쟁의 시대에 놓여있다고 인식하고 전쟁이 필연적이라고 생각했던 마오쩌둥 중심의 대외정책이 그런 상황에서 우방인 소련과의 전쟁을 막기위한 동맹정책이었다면, 마오쩌둥 사망부터 1991년 소련 붕괴 전 덩샤오핑와 장쩌민 중심의 대외정책은 국제사회가 평화의 발전 단계에 놓여있으며 전쟁은 피할 수 있다는 인식에서 독립자주 비동맹정책을 고수하는 대신 분쟁의 평화적 해결과 국가이익을 중시하는 양상으로 나타난다. 소련 붕괴 이후 기존의 군사적 위협보다 정치, 경제, 사회적 위협이 증가하자 장쩌민은 전통적 안보위협요인에만 주목하는 기존의 안보관이 아닌 신안보관을 주요 안보정책의 기조로 활용하게 되었다.

 

-중화민국(대만정부)와 중화인민공화국(북경정부)의 전면전은 소비가 투자라는 경제원칙이 적용되는 고도소비사회에서는 불가능한 전쟁이다

대만이 독자적으로 독립을 할 때는 국지전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다

전쟁은 군사력도 중요하지만 민유(民有), 민치(民治), 민향(民享)의 국민(인민)들의 지지(民主自治能力)도 중요하다.

독재국가는 전쟁비용 군사비보다도 내전 치안비용이 더 많이 사용되기 때문에 제한전쟁에서는 승리할 수 있지만 전면전에서는 패배 해왔다.

민주파는 인민의(民有), 인민에 의한(民治), 인민을 위한(民享) 정부 민주정부 입장에서 인민전쟁을 옹호하고 있으며 자주파는 1인 장기집권 독재체재 입장에서 군국주의, 국가사회주의 히틀러 전쟁모델 군사력에 의존하는 전쟁모델이다

북경정부는 대만이 독립을 할때 하나의 중국을 지지하는 대만 내부 통일세력과 연합으로 제한전쟁을 추진하여 승리할 수 있을 것이지만  아무런 명목도 없이 1인 장기집권을 추진하기 위해서 중화민국(대만정부)을 공격할때 전면전에서 패배할 것으로 본다

  중화민국(대만정부)와 중화인민공화국(북경정부) 전쟁을 할때 인민전쟁 입장에서 볼때 중화민국(대만정부) 가 승리할 가능성이 있다.  중화인민공화국(북경정부)는  시진핑(습근평) 국가주석 개인의 1인 장기집권으로 반정부 세력 확대와 경제적 불안 그리고 정치불안으로 인민전쟁보다는 히틀러 전쟁모델 군사력에 의존하는 전쟁모델을 추진할 것으로 본다 

1인 장기집권의 시진핑정부는 반정부 세력 확대로 군사활동 비용보다도 치안활동 비용이 더 많이 증가하고 있다는 것이 약점이다

민주파는 국민의(民有), 국민에 의한(民治), 국민을 위한(民享) 정부 민주정부 입장에서 인민전쟁을 옹호하고 있으며 자주파는 1인 장기집권 독재체재 입장에서 군국주의 국가사회주의 히틀러 전쟁모델 군사력에 의존하는 전쟁모델이다.

시진핑(습근평)정부가 지도자의 권력이 집중한 1인 장기집권 모택동 시대의 반성에서 3선 금지를 표방한 개혁개방정책과 민주화 입장 등소평 헌법으로 복귀하여 개혁개방정책과 평화통일노선으로 나아갈 때는 중회민국(대만정부) 내부 통일세력과 연합으로 새로운 중국으로 등장할 것으로 본다

 

-대만은... 지금은 가만히 있다가...중국의 침략이 눈앞으로 다가왔다고 판단되면...중국이 대만을 침략한다면...대만이 갖고있는 미사일등등의 모든 전투력을 중국의 싼샤댐에 퍼붓겠다고발표하면 될것으로 보인다...중국이 아무리 모든 방어력을 동원해도... 한번에 수백발의 미사일을 막을수는 없는거고...싼샤댐이 무너지면... 상하이까지는 양자강이 그냥 쓸어버릴테니...중국정권이 붕괴되기 싫으면... 대만침공 하지 말라는 경고로는 최고일듯...물론 한국도... 북한의 만일의 사태에... 중공군이 북한땅으로 넘어오려고 하면...똑같이 싼샤댐을 날려버리겠다고 경고하는게 필요할듯(독자 댓글)

 

"양안관계와 중미관계 개선 그리고 서방국가들과 협력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지도자의 권력이 집중한 1인 장기집권 모택동 시대의 반성에서 국가주석 3선 금지를 표방한 개혁개방정책과 민주화 입장 등소평 헌법으로 복귀가 돼야 한다

등소평 헌법은 형식상 국가를 대표하는 주석 밑에 국가권력이 유지하는 형태로  국가주석 임기를 제한했다 등소평 헌법은 하나의 중국으로 나아갈 수 있게 하는 실용주의(수정주의) 헌법이다

주타이완 미군과 미군 협방 타이완 사령부는 전쟁과 공산주의 혁명 운동 노선 교조주의자 스탈린 추종세력 모택동 사망과  개혁개방정책 국제적으로 공산주의 혁명 운동 포기, 평화입장 민주개혁 실용주의자 등소평 정부 등장으로 주타이완 미군 철수와 미군 협방 타이완 사령부 해체가 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