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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조선족은 한국인인가 중국인인가? 본문

Guide Ear&Bird's Eye/중국 동북3성

그래서 조선족은 한국인인가 중국인인가?

CIA bear 허관(許灌) 2022. 2. 17. 14:02

지난 4일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 개막식에서 중국 조선족으로 등장한 여성이 한복을 입고있다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 개막식에 등장한 '한복'과 연이은 심판 판정 논란을 계기로 한국과 중국 간 감정 대립이 확산되고 있다.

경기도 수원시에 거주하는 40대 사업가 로 모씨는 "올림픽 개막식에 한복이 등장했을 때 경악을 금치 못했다"고 했다. 국제적 행사에서 중국을 대표한다며 한복이 등장했으니 기가 찼다는 것.

이후 인터넷을 통해 중국이 '소수민족 가운데 하나인 조선족을 소개한 것'이라는 설명을 들을 수 있었지만, 그는 여전히 중국의 행동은 "한국을 무시하는 행동으로밖에 여겨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특히 주한 중국대사관이 "전통문화(한복)는 한반도의 것이며 중국 조선족의 것"이라 표현하면서 한국 고유의 전통 의상인 한복을 중국 55개 소수민족 중 하나의 문화로 치부하면서 비난은 더욱 거세졌다.

이 같은 한중 갈등의 중심에는 중국 국적자이면서 한민족인 조선족이 있다. 그렇다면 '조선족은 한국인인가, 중국인인가?'라는 물음과 마주하게 된다.

조선족은 엄연한 중국인

"조선족은 중국에서 태어났고 중국 국적을 가진 중국인이다."

8년째 한국에서 생활하고 있는 조선족 파 모씨는 자신이 가장 많이 받는 질문 중 하나가 "중국인이냐? 한국인이냐?"라며 이같이 답했다. 그러면서 "중국인이지만 한민족이냐고 물으면 한민족이라고 대답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한국에서 조선족에 대한 인식이 나쁜 것에 대해 많이 안타깝다"면서도 자신이 "조선족인 것은 부끄럽지 않은 일"이라고 말했다.

5년째 한국생활을 하고 있는 조선족 유튜버 '양파유니'는 "조선족이 한복을 입는 것은 당연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지난 10일 개인 방송에서 "조선족은 중국의 국적을 가지고 있지만 한국인과 같은 조선족, 중국계 조선인"이라면서 "때문에 당연히 조선족도 한복을 입을 수 있는 권한이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어릴 적부터 할머니 생신, 부모님 생신, 아이들 돌잔치, 결혼식에도 입었던 한복인데, 한복을 안 입으면 무엇을 입겠나"라고 반문했다.

이어 동계올림픽에 조선족이 한복을 입고 나온 것에 대해 "한국 네티즌들과 뉴스 매체에서 안 좋게 이야기하는 것에 대해 이해가 가지 않는다"라고 덧붙였다.

중국인 밀집 지역인 서울 영등포구 대림동 차이나타운

한국계 중국인

'조선족'은 중국에서 쓰이는 공식 용어다. 한국에서의 공식 용어는 '한국계 중국인이다.

조선족은 중국에 살고 있는 중국 국적 한민족을 일컫는다. 1860년대 한반도에서 만주로 이주하는 조선인이 크게 늘어났고, 이들은연변 지역을 중심으로 공동체를 이뤘다. 특히 일제 강점기와 6.25 전쟁 등 동북아시아 정세가 격변할 때마다 대규모 이주가 이뤄졌는데, 이후 중화인민공화국 설립과 함께 '조선족'이라는 명칭이 공식화됐다.

이에 따라 조선족은 중국인이라는 국가 정체성과 한민족이라는 문화 정체성, 즉 이중 정체성을 갖게 된 것이다. 중국 공산당 교육체계에서 교육을 받은 조선족은 6.25 전쟁을 항미원조전쟁으로 보는 중국식 사고를 하고 있는 경우가 많으며, 중국의 동북공정에 따라 고구려 역사가 중국 역사라고 생각하는 조선족도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2014년 서울 여의도 공원에서 열린 '제1회 중국동포 민속문화 대축제'에서 한복을 입은 참가자들이 춤을 추고 있다

한국 거주 조선족 70만 명… 옌볜보다 많아

한국에 거주하는 조선족 인구는 중국 옌볜에 거주하는 조선족 인구보다 더 많다.

중국 정부가 지난해 발표한 '2020년 중국 인구 총조사 결과'에 따르면 조선족 인구는 55개 소수민족 중 15번째로 약 170만 명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22년 전인 2000년에 비해 약 22만여 명 줄어들은 수치다. 중국 내 조선족 인구 감소의 가장 큰 원인 중 하나로는 1992년 한중 수교 이후 한국으로 일자리를 찾아 떠난 조선족의 대규모 이주가 꼽힌다.

지린성 옌볜 조선족자치주의 조선족 인구는 59만 7000여 명에 그쳐 옌볜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30.8%까지 떨어졌다. 옌볜 조선족자치주 성립 초기인 1953년에는 그 비율이 70.5%에 달했다.

반면 한중 수교 이후 국내 체류 조선족은 지속적으로 증가해 2020년 1월 기준 70만 8000명에 달한다. 한국 내 외국인 236만여 명 중 약 3분의 1이 조선족이다.

지난 2018년 서울 영등포구 대림중앙시장 한우리문화센터에서 투표체험하는 조선족

투표권 가진 조선족?

한국에서는 2006년부터 영주권을 획득하고 3년 이상 한국에 거주한 외국인에게는 지방선거에 대한 투표권이 주어진다. 지방선거는 해당 지역 '주민'으로서의 권리를 행사하는 것으로, 중국 국적자인 조선족을 포함한 외국인에게도 투표를 허용한 것이다.

하지만 이들은 '국민'의 지위가 필요한 대통령, 국회의원 선거 투표권은 없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지난해 서울시 등록 외국인의 절반 이상이 중국 국적자이고, 그 가운데 70% 가까이가 조선족인 것으로 나타났다.

그래서 조선족은 한국인인가 중국인인가? - BBC News 코리아

 

그래서 조선족은 한국인인가 중국인인가? - BBC News 코리아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 개막 공연의 '한복' 등장과 연이은 심판 판정 논란을 계기로 한국과 중국 간 감정 대립이 확산되고 있다.

www.bbc.com

 

주한중국대사관 "한복은 중국 조선족과 한반도는 공통의 전통문화..'문화공정'은 억측"

베이징 동계올림픽 개회식의 ‘한복 논란’과 관련해 중국 측이 중국 조선족과 한반도는 공통의 전통문화를 가지고 있다며 중국이 ‘문화공정’을 하고 있다는 지적은 억측이라고 밝혔습니다.

주한 중국대사관 대변인은 오늘(8일) 한국 언론에 배포한 입장에서 “최근 한국의 여론이 중국 조선족 대표가 민족 의상을 입고 베이징 동계올림픽 개막식에 참석한 일에 대해 주목하고 있고, 이로 인해 일부 언론에서 중국이 ‘문화공정’과 ‘문화약탈’을 하고 있다며 억측과 비난을 내놓고 있는 데 대해 주의를 기울이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대변인은 “중국 조선족과 한반도 남북 양측은 같은 혈통을 가졌으며 복식을 포함한 공통의 전통 문화를 가지고 있다”면서 “이러한 전통 문화는 한반도의 것이며 또한 중국 조선족의 것으로, 이른바 ‘문화공정’, ‘문화약탈’이라는 말은 전혀 성립될 수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이어 “중국 측은 한국의 역사·문화 전통을 존중하며, 한국 측도 조선족을 포함한 중국 각 민족 인민들의 감정을 존중해주기를 바란다”고 밝혔습니다.

대사관 대변인은 “중국은 56개 민족으로 이루어진 다민족 국가”라며 “민족 의상을 입고 베이징 동계올림픽이라는 국제 스포츠 대회와 국가 중대 행사에 참석하는 것은 그들의 바람이자 권리”라고도 밝혔습니다.

지난 4일 열린 베이징 동계올림픽 개회식에는 한복을 입은 여성이 중국 오성홍기를 전달하는 중국 내 56개 민족 대표 가운데 한 명으로 등장했습니다.

이를 두고 국내에서는 ‘중국이 한복을 자신들의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라는 비판이 일었습니다.

중국 측은 한국 측에 외교 경로로 “개막식 공연 내용은 이른바 문화 원류 문제와는 전혀 무관하다”는 입장을 밝힌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올림픽] 베이징 동계올림픽 개막식 개최, 중화인민공화국 국기 입장

4일 저녁 제24회 베이징 동계올림픽 개막식이 국가체육장에서 개최됐다.

베이징 동계올림픽 개막식에서 중국 각 분야의 대표와 국가공로자, 56개 민족 대표가 손에서 손으로 국기를 전했다.

장이머우(張藝謀·장예모) 감독은 인민일보 인터뷰를 통해 “국기를 전달하는 사람은 인민 전체를 대표하는 것이다. 이 순간이 가장 마음에 와 닿는다”고 밝혔다.

 

-중국의 사회는 신해혁명 이후 매우 근대화되었다. 신해혁명 이전에 중국인의 80% 이상은 성씨를 가지고 있지 않은 백성들이였다. 만주족, 한족 등 족보 명칭은 소수 귀족 또는 강등된 귀족만 쓸 수 있었다. 하지만 신해혁명 이후에 쑨원은 서양열강들처럼 근대화에선 농노비 해방의 중요성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였고 일부 족보 귀족들만 사용할 수 있었던 성씨를 백성들도 사용할 수 있게 하여 대대적 민적법을 실행하였다. 인구 다수 였던 농노들을 해방시켜 산업활동을 할 수 있게 하였다. 신해혁명 이후 민적법에서 백성들이 한족(漢族)으로 등록되었으며 현재 중화인민공화국에서 한족은 중국 전체 인구의 92%를 차지하고 있으며 그 외 55개의 소수 민족들이 8%를 차지하고 있다.

 

중국에서는 56개의 소수민족들이 살고 있으나 98%는 중국인 한족(漢族)으로 소수민족의 인구는 매우 적다. 한족(漢族)의 비율이 98%가 되기 때문에 중국은 한족(漢族) 단일 민족으로 봐도 무관하나 신분증 표기에 소수민족과 한족(漢族)의 구분이 되게 표기되어 있으며 중국은 사실상 외국인의 귀화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외국인들은 소수민족이 될 수 없으며 원래 살고 있던 매우 적은 인구의 소수민족들이 신분증에 표기되어 있다. 소수민족은 대부분 각 민족 언어와 표준 중국어를 병용한다. 소수 민족 언어로는 좡어, 티베트어, 위구르어 등이 널리 쓰인다. 그중에는 극 소수의 인구인 나시족(納西族)의 동파 문자(東巴文)와 같은 표의 문자도 있다.

 

표준 중국어와 함께 1990년대 말에 반환된 홍콩에서는 광둥어와 영어를, 마카오에서는 포르투갈어를 공용어로 사용된다.

 

길림성 연변 조선족 자치주 설립 65주년 노래와 춤으로 축하 공연

 

 

 

2017년 9월 3일, 무용공연 "자치주 설립"에 출연한 배우. 이 날 길림성 연변 조선족 자치주 설립 65주년 축하 파티 ·제 1회 연변(延辺,延邊)조선족 문화 관광 축제 개막식이 연변 체육관에서 열렸다.

길림성 연변 조선족 자치주

 

 

 

길림성 연변 조선족 자치주

 중화인민공화국 동북부 지역 지린성(吉林省)의 자치주. 중국 내 조선족들이 가장 많이 거주하고 있는 지역이다. 자치주 전체 인구의 38%를 조선족이 차지하고 있다. 연변지역은 조선시대 후기부터 조선족이 이주하여 개척한 곳으로 일제시대에는 독립운동의 근거지이기도 했다.

1945년 8월 20일 소련군과 동북항일연군은 간도 임시정부를 수립했으나, 그해 11월 중국공산당은 간도 임시정부를 해산시키고 '연변행정독찰 전원공사'를 설치했고, 1948년 3월 연변전구를 창립했다. 그후 1952년 9월 3일 연변전구가 철폐되고 '연변조선족자치구'가 설립되었으며, 1955년 12월 연변조선족자치구를 '연변조선족자치주'로 승격되었다. 당시 자치주는 1개시와 5개현을 관할했다.

1958년 10월 지린 시(吉林市)에서 관할했던 둔화 현(敦化縣)을 연변에 귀속시켰다. 1965년 5월 옌지 현 투먼 진(圖門鎭)과 왕칭 현(汪淸縣), 스셴 진(石峴鎭)을 합하여 투먼(圖門市)를 설립했다. 1985년 5월 둔화 현을 둔화시로 고쳤고, 1988년 7월 훈춘(琿春)·룽징(龍井) 2개현이 시로 승격되었다. 1992년 8월 한중 국교수립 이후 한국과의 교류가 활발해져 결혼이나 이민 등을 통해 한국으로 귀화하는 조선족 인구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연변조선족자치주는 옌지(延吉, 연길)·투먼(图门, 도문)·둔화(敦化, 돈화)·룽징(龙井, 용정)·훈춘(珲春, 훈춘)·허룽(和龙, 화룡) 등의 6개시와 안투(安图, 안도)·왕칭(汪清, 왕청) 2개현을 관할하고 있다. 자치주의 소재지는 옌지이다.

 

1.경제

연변조선족자치주는 풍부한 천연자원을 보유하고 있으며 지리적으로 러시아·한반도가 인접해 있어 대외무역에 유리한 경제적 특징을 가지고 있다.자치주에는 29가지 공업 분야의 각종 업종에 1,390여 개소의 공업 기업소가 있으며 풍부한 삼림·광물·수력 자원을 이용한 임산·야금·제지·석탄 공업이 주로 발전했으나, 1987년 이후부터는 연변전자공업공사가 설립되는 등 기계·전자 분야의 발전이 두드러지고 있다.

농업분야에서는 수확고가 평균 60만~70만t에 달하며 주요농작물로는 잎담배의 연간 생산량이 2만 5,000t, 원삼(元蔘)은 1,000여t, 과일은 15만t 정도를 생산하고 있다. 이는 아시아 최대 규모의 과수원을 보유하고 있는 연변의 특색 가운데 하나이다. 상업은 국영상업(8개 업종에 342개의 독립 채산단위 및 538개의 영업소가 있음)과, 농산품의 유통을 담당하는 합작 상업조직으로 '공급판매합작사'가 있으며, 생산물의 유통은 최근 확대되고 있는 도시와 농촌의 시장을 통하여 이루어지고 있다.

연변은 변경지역이라는 지리적 특색으로 인하여 대외무역이 비교적 활발하다. 무역교역국은 1991년 현재 20여 개국에 달하고 연간 외화수입은 1,500만 달러 정도이다. 해산물·쌀·목재·고무·강재·화학·공업 원료 등을 포함해서 140여 가지 정도를 수입하고, 수출품목은 기름과 식료품이 31.6%, 축산물과 지방 특산물이 15.8%, 경공업과 방직업이 35.1%, 화학공업·기계전기제품 17% 등이다.

 

2.문화

연변 조선족자치주의 문화적 특징은 중국의 소수 민족으로서 조선족의 문화적 전통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의식주 생활과 관혼상제의 의식에서 고유한 조선족의 문화적 풍습이 그대로 남아 있다.

자치주는 1991년 현재 문화(예술)관 9개소, 문화분관 8개소, 문화소 115개소 등의 대중문화공간을 확보하고 있다. 1956년 이후 자치주 내의 각 시·현에는 전문 문공단이 설립되었고, 1991년 현재 13개의 전문 예술공연단체가 있다. 이들의 공연활동은 각종 경연대회를 열기도 하지만 예술 공연, 미술·사진 전람회도 개최하고 있다

문화단체는 1953년 7월 결성된 연변 문화예술계연합회(연변 문련)를 비롯하여 연변작가협회·연변음악가협회·연변희극가협회·연변미술가협회 등이 있고, 문화유산을 보호·관리 및 발굴하는 업무를 관장하는 문화유물관리위원회가 있다.

이밖에 연변박물관, 연변조선족민속박물관, 룽징 시 민속박물관, 그리고 둔화·훈춘·허룽·룽징 등의 시와 현 문화유물관리소가 있다.

연변박물관은 고대 역사유물 5,400여 점, 민속문물 2,000여 점, 혁명유물 3,000여 점 등이 있다. 특히 1973년 허룽 현 팔가자북대(八家子北大)의 발해 옛 무덤군에서 발굴된 구리거울, 유약이 칠해진 손잡이 달린 단지, 금으로 도금된 물고기 모양의 장식품, 도기와 벼루 등은 국가의 1급품에 속한다. 또한 연변박물관에서 자체로 발굴한 발해국 정혜공주 묘에 있는 발해 벽화는 귀중한 유물로 평가받고 있다.

(1)역사

이 곳은 고대에는 부여와 북옥저, 고구려, 발해의 영역이었다. 지금의 둔화 시에 있던 동모산(東牟山)은 발해 건국의 출발지였다. 이 지역은 발해의 중심지였던 만큼 현재도 발해 관련 유적들이 많은데, 대표적인 유적으로는 1949년에 발견된 정혜공주묘(둔화 시 육정산(六頂山) 고분군 제1구역 2호분)와 1980년에 정효공주묘가 발견된 허룽 시(和龍市)의 룽터우 산 고분군(龍頭山古墳群) 등이 있다.

19세기 중반부터 조선의 함경도 사람들이 두만강을 건너 이 곳으로 이주하기 시작했다. 1881년, 옌볜(延邊, 연변)지역의 조선인은 약 1만명이었다. 1907년에는 옌지(延吉, 연길)에만 조선인 가구수가 5만호(戶)에 이르렀는데 한족(漢族)은 조선인의 4분의 1도 되지 않았고, 3·1 운동 전인 1916년에 연변의 조선인은 이 지역 총인구 26만5천명 중 약 20만명이었다. 1930년에는 옌지 현, 허룽 현, 훈춘 현, 왕칭 현 등 4개 현의 조선인은 39만명으로 해당 지역 총인구의 76.4%를 차지했다.

중화인민공화국이 수립된 이후 1952년에 9월 3일에 조선민족 자치구(自治區, 중국어 간체: 自治区)가 설치되었는데, 자치구 성립 직후였던 1954년에 이 지역의 총인구 85만4천명 중 조선인은 53만명으로서 전체의 62%였다. 1955년에 조선족 비율이 2%에 불과한 둔화 현이 편입됨과 동시에 자치주(自治州)로 격하되었다. 조선족 자치주가 성립된 9월 3일을 기념하여 자치주 차원의 공휴일로 지정하였으며, 매년 구삼절(9.3절) 행사를 성대하게 치르고 있다. 2012년 9월 3일 연변조선족자치주 성립 60주년을 맞아 중화인민공화국 정부 주요 인사들과 한국(남한), 북한, 일본 등 세계 각국의 주요 인사들을 초청하여, 옌지 시 체육관에서 약 3만 명이 참여하는 기념행사를 개최하였다.

(2)민족

조선족 36.7% : 약 80만명으로, 이 중 84%가 연길, 용정, 화룡, 도문, 훈춘에 거주한다.

옌지 시(延吉) - 58%

룽징 시(龙井) - 67%

허룽 시(和龙) - 60%

투먼 시(图门) - 58%

훈춘 시(珲春) - 45%

왕칭 현(汪清) - 30%

안투 현(安图) - 25%

둔화 시(敦化) - 2%

한족(汉族) 60.4%

만주족(满族) 2.4%

후이족 (回族)0.3%

기타(몽골족 등) 0.1%

연변에 거주하는 조선족들 가운데 가장 많은 성은 김(金)씨이다.

 

3.언론과 출판

1991년 현재 연변에서 발행되는 신문의 총수는 35종이며, 매기당 총발행부수는 36만여 부이다. 이들 중 〈연변일보〉는 자치주에서 가장 먼저 창간되었다. 자치주 내의 출판사는 4개사, 잡지사는 7개사, 인쇄공장은 모두 120개사로 이 가운데 연변 신화인쇄공장은 1984년 제판과 인쇄 및 제본에 자동화를 실현했다.

1988년 1년간 자치주 내에서 발행된 도서의 양은 1,394만 권이다.

연변의 라디오 방송은 '연길신화방송국'으로 출발했다. 1948년 '연변인민방송국'으로 개칭되었고, 1956년부터 중국어 지방 프로그램을 제작하고 조선말 방송과 동일한 주파수로 나누어 방송했다. 이외에 1991년 현재 자치주에는 4개의 무선방송국과 8개의 무선중계방송소가 있다. 텔레비전 방송은 1973년부터 시작되었고, 텔레비전 수상기 보급 수량은 1991년 현재 약 30만 대에 이르고, 연변 텔레비전 방송국에서는 매일 3시간 30분씩 방송하고 있다.

 

4.교육

초기의 교육상황은 주로 전통적인 서당교육을 통하여 초등수준의 교육을 실시했으나, 점차 근대적인 성격의 학교가 설립되었다. 1905년 을사조약으로 조선이 사실상 일본의 통치권에 들어가자, 1906년 이상설이 룽징에 서전서숙을 세웠으며, 이후 독립운동의 일환으로 반일 민족교육기관이 계속 설립되었다. 또한 1932년에는 항일유격정부인 노동민주정부가 '소학교의무교육법'을 발표하여, 일제의 황국신민화정책에 저항하기도 했다

1952년 9월 3일 연변조선족자치주가 공식적으로 인정되면서, 1950년대에는 초·중등교육의 확대보급, 단일민족학교 설립, 교원양성과 교과서편찬사업을 중심으로 하는 교육정책이 실시되었다. 그 결과 1965년 소학교는 1,274개교, 중학교 278개교, 중등전문학교 5개교, 대학 3개교로 확대되었다.

1966년 이후 10년에 걸친 문화혁명은 연변지역의 교육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쳐 각종의 민족학교들이 해산되어 조선인의 취학률이 80%에서 30%로 감소했으며 조선어교육을 폐지하고, 연변 지역에 제공되던 교육재정보조가 취소되는 등 교육여건이 급속도로 악화 되었다.

문화혁명이 끝난 후 1982년 9월 자치주 교육국에서 '연변교육 30년'을 발표하여 민족 교육을 재건하려는 방침을 제시했다. 초등교육 부문에서는 조선인만을 대상으로 하는 단일민족학교 운영을 재개하면서, 조선어교육을 강화했고, 초등교육확대정책이 실시되었다. 중등교육 부문에서는 사범교육이 확대되었고, 위생학교·경찰학교·예술학교 등 다양한 중등교육기관이 설립되었다.

고등교육 부문에서는 학교 규모의 확대와 전공학과를 증설하는 조치가 취해졌고, 본과생 중심의 교육에서 연구생·본과생·전과생의 3단계 교육으로 변화되었다. 또한 성인고등교육기관·과학연구기관 등의 부속기관이 설치되었고, 1989년에는 연변만이 아니라 중국 최초의 사립대학인 연변과학기술대학의 건설공사가 착공되어 진행중이다. 이 대학은 한국 민간단체의 지원을 받은 학교로 1993년 9월에 개교할 예정이다

1991년 현재 소학교는 1,302개교(학생 27만 580명, 교원 1만 3,300명), 중학교는 241개교(학생 19만 1,330명, 교원 1만 3,980명), 중등전문학교 9개교(학생 3,998명, 교원 776명), 대학 5개교(학생 5,959명, 교원 2,316명) 등이 있다.

 

중국 길림성 조선족 연변자치주와 장백 자치현

동북 3성 요녕성(리오닝성), 길림성(지린성), 흑룡성(헤이룽장성)
길림성(지린성) 조선족 연변자치주
장백 자치현

두만강과 압록강 맞은 편에는 중국 길림성 조선족 연변자치주와 장백 자치현이 있다

남한(대한민국)과 북한(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중국 길림 연변조선족 자치정부(길림성 조선족 연변자치주와 장백 자치현)등 한민족(조선족) 3개 정부가 존속하고 있다

 

1.길림성 조선족 연변자치주

연변조선족자치주 현급구역

옌볜 조선족 자치주(연변조선족자치주, 延邊朝鮮族自治州)는 중화인민공화국 동북 지역 지린 성(吉林省)의 자치주이다. 중심지는 연길(延吉)이다. 자치주의 면적은 43,474 km2, 2009년 인구는 2179천명이다.

 

이 곳은 80만명의 재중동포가 거주하는 중국 최대의 조선족 거주 지역이다. 자치주 전체 인구 가운데 조선족 인구 비율은 36.7%이며, 조선족이 전체인구의 2%에 불과한 둔화 시를 제외한 연변 지역의 조선족 인구비율은 46.5%이다

민족분포: 조선족 32%, 한족64%, 만주족2.4% 

(1)지리

남쪽은 북한 함경북도와 량강도, 동쪽은 러시아 프리모르스키 지방, 북쪽은 헤이룽장 성 무단장, 서쪽은 지린 성 바이산에 접해 있다. 백두산은 이 지역의 남서쪽 끝에 있으며 해란강(海蘭江)과 가야하(嘎呀河) 등 주요 하천이 남쪽으로 흘러 두만강에 합류한다. 수계는 쑹화 강(송화강) 수계와 무단 강(목단강) 수계, 두만강 수계가 주이며 라즈돌나야 강(쑤이펀허) 수계도 존재한다.

(2)역사

이 곳은 고대에는 부여와 북옥저, 고구려, 발해의 영역이었다. 지금의 둔화 시에 있던 동모산(東牟山)은 발해 건국의 출발지였다. 이 지역은 발해의 중심지였던 만큼 현재도 발해 관련 유적들이 많은데, 대표적인 유적으로는 1949년에 발견된 정혜공주묘(둔화 시 육정산(六頂山) 고분군 제1구역 2호분) 1980년에 정효공주묘가 발견된 허룽 시(和龍市)의 룽터우 산 고분군(龍頭山古墳群) 등이 있다.

 

19세기 중반부터 조선의 함경도 사람들이 두만강을 건너 이 곳으로 이주하기 시작했다. 1881, 옌볜(延邊, 연변)지역의 조선인은 약 1만명이었다. 1907년에는 옌지(延吉, 연길)에만 조선인 가구수가 5만호()에 이르렀는데 한족(漢族)은 조선인의 4분의 1도 되지 않았고, 3·1 운동 전인 1916년에 연변의 조선인은 이 지역 총인구 265천명 중 약 20만명이었다. 1930년에는 옌지 현, 허룽 현, 훈춘 현, 왕칭 현 등 4개 현의 조선인은 39만명으로 해당 지역 총인구의 76.4%를 차지했다.

 

중화인민공화국이 수립된 이후 1952년에 9 3일에 조선민족 자치구(自治區)가 설치되었는데, 자치구 성립 직후였던 1954년에 이 지역의 총인구 854천명 중 조선인은 53만명으로서 전체의 62%였다. 1955년에 조선족 비율이 2%에 불과한 둔화 현이 편입됨과 동시에 자치주(自治州)로 격하되었다. 조선족 자치주가 성립된 9 3일을 기념하여 자치주 차원의 공휴일로 지정하였으며, 매년 9.3절 행사를 성대하게 치르고 있다. 2012 9 3일 연변조선족자치주 성립 60주년을 맞아 중화인민공화국 정부 주요 인사들과 대한민국,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일본 등 세계 각국의 주요 인사들을 초청하여, 연길 시 체육관에서 약 3만 명이 참여하는 기념행사를 개최하였다.

(3)경제

연길은 목재 생산지로 광물 자원이 풍부한 곳으로도 알려져 있다. 러시아 및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국경과 가까운 훈춘은 변경 개방 도시로 지정되어 있다.

 

연길시에 연길 공항이 있다. 이 공항에서는 중국 국내선 및 인천국제공항과의 국제선 정기편이 운영되고 있다. 자치주라는 특성 때문에 정기편 이외에도 김해국제공항이나 제주국제공항과 같은 한국 노선의 부정기편이나 전세편 취항이 잦은 편이다.

(4)민족 구성

조선족 36.7% :  80만명으로, 이 중 84%가 연길, 용정, 화룡, 도문, 훈춘에 거주한다.

연길 시(延吉) - 58%

용정 시(龍井) - 67%

화룡 시(和龍) - 60%

도문 시(圖門) - 58%

훈춘 시(琿春) - 45%

왕청 현(汪淸) - 30%

안투 현(安圖) - 25%

돈화 시(敦化) - 2%

한족(漢族) 60.4%

기타(몽골족 등) 0.1%

연변에 가장 많은 성씨는 김()씨이다

 

2.길림성 장백 자치현

길림성 장백 자치현

장백은 백산시에 속한 현으로 중국 길림성 조선족 자치현이다

장백자치현은 상류로 올라 오면서 큰 개울 수준이 된 압록강을 사이로 북한의 양강도 혜산시(惠山市)와 마주보고 있다

창바이 조선족 자치현(長白朝鮮族自治縣, 장백 조선족 자치현)은 중화인민공화국 지린 성 바이산 시에 위치한 자치현으로 중국에서 유일한 조선족 자치현이다. "장백 현"으로 불리기도 한다. 면적은 2,497.6 km², 총인구 85천여 명 중 한민족은 14천여 명이다.

 

지린 성 남부 압록강 상류로, 백두산의 서남쪽에 인접해 있다. ()의 남쪽은 압록강을 경계로 북한 양강도 혜산시 · 삼지연시 · 보천군 · 삼수군 · 신파군 · 후창군과 접하며, 북쪽은 린장 시 · 푸쑹 현과 접해 있다. 국경선의 길이가 260.5Km로 지린 성에서 국경선의 길이가 제일 긴 현이다.

1677: 청나라가 이곳을 봉금지로 설정하고, 주민을 퇴거시켰다.

1875: 청나라 정부가 봉금령을 해제하고, 개발정책을 시행했다.

1908: 창바이 부치가 설치됨.

1949: 창바이 현이 퉁화 전서에 편입됨.

1958 9 15: 창바이(長白) 조선족 자치현이 성립, 지린 성 퉁화행서에 속했다.

1964: 지린 성 퉁화 전구에 편입됨.

1985 4: 현이 독립함.

 

-길림성 조선족을 이용하여 역사적 알려진 전투는 일제 식민지 시대 동북항일연군의 보천보 전투와 한국전쟁 때 북중연합군의 장진호전투이다

한민족(조선족)의 3개 정부

남한(대한민국)과 북한(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중국 길림 연변조선족 자치정부 등 한민족(조선족)의 3개 정부입니다. 중국에 한국어(조선어)를 사용하는 조선족이 약192만명에서 약 200만명이 거주하고 있습니다

중국은 한족, 만주족(동북3성), 몽골족(내몽골), 위구르족(후이족=회족, 신장), 티베트족(티벳) 등 5개 큰 민족과 50개 소수민족으로 건국한 연합국가입니다 

만국(만주국)은 한족, 만주족, 조선족, 몽골족, 일족(일본족, 야마토민족) 등 5개 종족 연합국이었습니다

만주국의 국기에는 노란색(만주족) 바탕 왼쪽 상단에 네 가지 색[빨간색(일본 민족), 파란색(한족), 하얀색(몽골족), 검정색(조선인)]의 가로 줄무늬가 그려져 있는데 이는 오족협화의 이념을 뜻합니다

조선족이 만주국에서도 조선족 자치정부로 참여하여 상류층으로 생활했습니다

 

 

동북3성 다수민족 한족,만주족과 소수민족 조선족, 거란족, 몽골족자치정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