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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언론-/아시아뉴스

빨간색 좌익보다는 파란색 우익이 좋다

CIA bear 허관(許灌) 2022. 2. 16. 21:14

빨간물 좌익보다는 파란물 우익이 좋습니다.

더불어 민주당은 노동자계급이 령도하고 노농연맹을 기초로 하는 인민민주 전제정치( 인민민주주의독재, 프롤레타리아독재)의 사회주의국가 노선 좌파, 입헌군주제를 부정하고 공화국 이론(사회주의 공화국)이 아닌 민유(民有), 민치(民治),민향(民享)의 민주국가 노선 우파, 입헌군주제를 인정하는 민주국가 이론(민주공화국이나 입헌군주국)입니다.

많은 분들은 노동자 국가를 지향하고 있는 이탈리아 파시즘이나 독일 나찌즘을 극우라고 표현하지만 좌익 파시즘으로 표현하고도 있습니다.

나치가 운영한 '죽음의 수용소' 아우슈비츠 철문에 '노동이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Arbeit Macht Frei) 문구가 적혀있습니다.

 

파란색은 순수나 깨끗함 자유를 상징하는 색으로 맑은 하늘이나 바닷물처럼 밝고 선명한 푸른색입니다

파란색은 보수나 진보진영에서 민유(民有), 민치(民治), 민향(民享)의 민주국가(民主國家)를 의미합니다

파란색은 한국의 정당 자유화, 개방화, 민주화 상징하는 민주파 계열 정당에서 사용하여 왔고 민주당, 한나라당의 과거 상징 색이었습니다. 이는 옛 민주정의당(민정당)과 민주자유당(민자당), 신한국당에도 사용되었고, 더불어민주당의 상징색이며 평화를 사랑하는 한국의 민족성을 나타내기 위해 태극기를 형상화한 가운데의 태극문양중 음양의 색상인 태극 파란색()으로 불립니다.

한국 독립군은 붉은 태양(일본 깃발)보다는 청명(淸明) 물(중화민국 깃발)을 섬김으로 흰색이나 파란색을 옹호했습니다 

 

빨간색은 피의 빛과 같이 붉은 색깔으로 피와 결부되어 폭력과 잔인의 상징으로 쓰이기도 하는 반면에 마찬가지로 피나 심장과 결부되어 생명, 정열, 사랑을 상징으로 쓰입니다

빨간색은 공산주의와 사회주의, 진보주의, 혁명, 좌파의 상징으로 쓰이기도 하는 색으로 혁명이나 전쟁을 옹호하는 극우(좌익 파시즘)나 극좌세력이 옹호하고 있습니다

우파정당 중 빨간색을 상징으로 하는 미국 공화당은 민주공화국 입장에서 입헌군주국을 인정하는 민주파보다는 입헌군주국을 부정하는 자주파 입장입니다  

대한민국의 정당인 자유한국당과 국민의힘의 상징색은 빨간입니다.

 

우애(게르만 민족), 동무(사회주의) 혁명 상징하는 赤色(붉은 색) 바탕에  평등 상징 白色(흰색) 원 속에 정의(파시즘)를 상징하는 黑色(검정색) 갈고리 십자기인 하켄크로이츠(Hakenkreuz)가 있는데, 이는 불교에서 만자가 "아름답고 행복한 상징"을 뜻합니다[민족 사회주의국가이론이나 국가사회주의 이론(국영자본체제)]

히틀러 나찌즘은 사회주의 입장에서는 스탈린 일국사회주의(자국사회주의) 이론과 비슷하지만 민족사회주의(게르만 사회주의)를 내걸고 있는 독일 노동자당(나찌즘)은 노동계급 령도 노농연맹 인민민주주의 독재(프롤레타리아 독재)체제를 인정하는 공산주의와 다릅니다

국가사회주의 독일 노동자당(나찌즘) 깃발은 赤色(붉은색)  동무나 우애등 평민층 민족사회주의를 내걸고  白色(흰색) 평등, 黑色(검정색) 정의를 내세우고 있지만 자유의 상징 靑色(파란색)이 없는 것이 특징입니다

 나치즘은 다른 인종에 대한 아리아인(게르만인)의 우수 혈통을 주장하였다. 아리아인이 다른 모든 인종의 주인이라는 우위를 지지 하였습니다. 나치는 세계 인류의 진보는 아리아 인종의 순수 혈통과 타고난 재능을 다른 인종으로부터 보호해야한다고 하였습니다.

국가사회주의 독일 노동자당(나찌즘)과 히틀러 대내외 정책 선전문구들입니다 

 "오직 <독일 국가사회주의 노동자당>만이 빵과 일자리를 줄 수 있다  따뜻한 집과 귀여운 아이들 그리고 가족들이 편안하고 배부르게 먹으며 살 수 있는 <천년제국> 건설은 오늘날 독일에 사고 있는 게르만의 소망이며 지상명령이다  프랑스 놈들의 엉덩이를 걷어차고 러시아의 백정놈을 모조리 몰아낸 다음 <선민 게르만=하늘의 자손>이 살아갈 터전을 확장해야 한다 (자주노선과 나찌즘 이론)

국가사회주의 독일 노동자당(나찌즘) 깃발

 

 

"민주주의 반대는 공산주의가 아닌 독재주의(전체주의)고, 자본주의 반대는 공산주의입니다.
자본주의민주주의 혁명 이후 자유주의(자유권)와 사회주의(사회권=생존권) 공존(존중) 자유사회(민주국가)입니다.
민주국가의 경제 토대는 자본주의이며 정치 토대는 민주주의입니다.
민주국가는 자본주의민주주의 혁명 후 자유민주주의 세력과 사회민주주의 세력의 연합정부입니다."

자본주의 3대 원칙(경제)은 사유재산, 이윤추구, 자유시장경쟁 등입니다.
공산주의는 자본주의를 부정하지만 사회주의는 자본주의를 인정합니다. 자본주의 3대 원칙(경제)은 사유재산, 이윤추구, 자유시장경쟁 등입니다.
공산주의는 자본주의 3대 원칙을 부정함으로 자영업(자작농)을 할 수 없습니다. 공산주의는 자본주의를 부정하기 때문에 국가사회주의(자국 사회주의) 국영자본체제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경제는 '성장'과 '분배'의 양면이 필요합니다. '성장'을 위한 '대담한 위기 관리 투자 · 성장 투자 '와 함께 '분배'에 의해 소득을 늘리고, '소비 심리'를 개선합니다. 새로운 자본주의는 '성장과 분배의 호순환(好循環)'입니다]

민주주의 3대 원칙(정치)은 민유(民有), 민치(民治),민향(民享)의 민주정부입니다
[국정(國政, 民國)은 국민의 엄숙한 신탁에 의한 것으로서, 그 권위는 국민에 유래하고(民有), 그 권력은 국민의 대표자가 행사하고(民治), 그 복리는 국민이 향유한다(民享)는 민주주의(민주)국가이다]
민주국가는 대부분 국가사회주의(군국주의)와 투쟁한 2차대전 이후 공화국 대통령, 국가주석이나 입헌군주국 수상의 임기제한이 돼야 권력분리과 국민주권, 기본권보장, 법치주의, 사법부의 독립, 복수정당과 의회정치, 국제평화주의 등을 보장할 수 있었습니다
[미합중국 헌법 수정 제22조(대통령 임기를 2회로 제한)
*이 수정조항은 1947년 3월 24일에 발의되어 1951년 2월 27일에 비준됨
제1절 누구라고 2회 이상 대통령직에 선출될 수 없으며 누구라도 타인이 대통령으로 당선된 임기 중 2년이상 대통령직에 있었거나 대통령 직무를 대행한 자는 1회 이상 대통령직에 당선될 수 없다
다만, 본 조가 효력을 발생하개 될 때에 대통령직에 있거나 대통령 직무를 대행하고 있는 자가 잔여임기 중 대통령직에 있거나 대통령 직무를 대행하는 것을 방해하지 아니한다]

-자본주의민주주의 운동 연합-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는 노무현 전대통령이나 문재인 대통령처럼 평민층 소년 노동자 출신에서 제5공화국 때 사법고시로 합격하여 인권변호사, 성남시장, 경기도 지사를 역임한 한국정부 내부 민족주의 성향 자주파보다는 민주주의 성향 민주파로 알려진 실용주의자입니다

국가독점 자본가 이외 기업인이나 노동자, 농민들은 국영자본체제 자주파보다는 민영자본체제 민주파를 선호하고 있습니다. 

 

이재명(李在明, 1963 12 8~)은 대한민국의 변호사 출신 정치인으로, 더불어민주당 제20대 대통령 선거 후보이다. 정계 입문 이전 인권 변호사 겸 사회 운동가로 활동하였고 정계 입문 이후 제19·20대 성남시장, 35대 경기도지사를 역임하였다. 본관은 경주이며 경상북도 안동 출생이다.

 

1.출생과 성장기

1963, 경상북도 안동군에서 7남매 중 넷째로 태어났다. 이재명 본인이 직접 공개한 초등학교 1학년 생활기록부에 따르면 고집이 세고 성적은 미미했지만 동무들과 잘 놀며 씩씩했다고 한다. 또한 학교가 집에서 5km 정도 되는 거리에 떨어져 있어 비 많이 오면 징검다리 넘친다고, 눈 많이 오면 미끄럽다고, 덥다고, 춥다고 땡땡이치느라 학교에 잘 못 갔다고 한다.

 

5학년 때 남들이 다 가는 수학여행에 돈이 없어 못 가겠다고 하자, 선생님이 찾아와 몇 시간이나 설득해 데리고 갔다. 당시 교장 선생님이 배려한 덕분이었다. 유년 시절 친구들과 개울가에서 했던 낚시는, 현재 이재명의 가장 좋아하는 취미가 됐다. 가정 형편이 어려워 도화지나 크레파스를 손에 쥔 적이 없어, 친구들이 사생대회를 하러 밖에 나가면, 대신 화장실 청소를 했다. 학교에서 여름이면 보리 한 되, 겨울이면 나락 한 되를 가져오라고 했지만, 어머니 고생을 알았던 소년 이재명은 대신 혼나는 것으로 때웠다고 한다.

 

1977 2, 초등학교 졸업과 동시에 경기도 성남시로 이주했다. 가정형편이 어려웠던 다른 빈민가구의 아이들처럼 소년 이재명도 중학교 대신 가내수공업 목걸이 공장으로 향했다. 하지만 회사에 문제가 생겨 몇 천 원 정도의 월급을 떼이고 난 뒤, 사업자등록이 되어 있는 '동마고무'라는 곳으로 옮겼다. 법적으로 노동을 할 수 있는 나이가 아니어서, 여러 가명으로 공장을 전전하기도 했다. 동마고무에서 손가락을 다치는 첫 산업 재해를 당했다.

 

소년공 이재명은 동마고무를 나와 다음 직장인 '대양 실업'으로 들어간다. 여기서 프레스에 손목이 눌려 관절이 으스러지는 두 번째 산업 재해를 당했다. 당시 공장은 사고가 빈번해서 주변 사람들은 다들 "이 정도면 다행"이라고 다독였다. 그 말에 병원도 찾지 않고 아픈 팔로 계속 일을 했다. 하지만 열 여섯살 무렵 키가 15cm 자라면서, 손목과 팔의 뼈도 자라면서 문제가 심각해졌다. 부러진 뼈가 다른 뼈의 성장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면서 팔이 비틀어졌고, 관절이 으스러진 부분의 성장판이 깨지고 만 것이다. 결국 이후 장애인 6급 판정을 받아 병역 면제 판정을 받게 되었다.

 

대양실업에 다니던 중 교복을 입고 등교하는 여자아이들 무리와 마주친 이후 '공부하고 싶다'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후 검정고시 학원에 등록했다. 이 과정에서 검정고시 학원 선생님의 배려를 받았다. 이재명이 돈이 없어 더 이상 학원에 나오지 못한다고 말하자 선생님이 무료로 단과반에 들게 해준 것이다. 이후 1978년 고입 검정고시에 합격해 중졸 자격을 얻었다.

 

대양실업에서 당한 산업 재해로, 팔의 통증은 계속 심해졌다. 더불어 교복을 입고 등교하는 동네 친구들을 볼 때마다 부모님에 대한 반항심도 생겼다. 방황 끝에 1980 2번의 자살을 시도하지만, 실패로 돌아가면서 마음을 다잡았고 어떻게든 공부를 해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이후 1980 4월 대입 검정고시에 합격해 고졸 자격을 얻었다.

 

1981년 대입 제도가 개편되면서 학력고사 성적만으로 대학에 입학할 수 있게 되었다. 대학생 과외가 전면 금지되는 대신 장학생 제도가 확대됐다. 정규 학교 교육을 받지 못한 사람도, 시험만 잘 보면 장학금을 받고 다닐 기회가 열린 것이다. 1981 7월 공장까지 그만두고 공부에만 전념했다. 결국 학비 지원에 생활비 20만원을 받는 중앙대학교 법학과 82학번 장학생으로 입학했다.

 

1986, 대학 졸업과 동시에 사법시험에 합격한 후 사법연수원에 입학했다. 사법연수원 재학 당시 훗날 대한민국 대통령이 되는 노무현 변호사의 강연을 들었다. 노무현 변호사의 강연을 듣기 전에는 연수원 수료 이후 전관예우의 혜택을 누릴 수 있는 판사와 또는 검사를 선택하려고 하였으나 노무현의 말에 감명을 받아 인권변호사의 길을 선택했다.

 

1989, 사법연수원 18기 수료 후 변호사가 되었다. 같은 18기 출신으로는 김재형 대법관, 민유숙 대법관, 문형배 헌법재판관, 문무일 전 검찰총장, 이석수 전 국가정보원 기획조정실장, 김진태 전 미래통합당 의원, 정성호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이 있다.

 

2.인권변호사 활동

본인만의 변호사 사무소를 개업하고 나서는 인천시와 광주시의 노동상담소장과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활동을 하며 주로 노동과 인권 변론을 맡게 됐다. 1995년에는 성남시민모임 창립 구성원으로 시민운동도 시작했다. 이후 '분당 백궁·정자지구 용도 변경' 특혜 의혹을 제기하고, '분당 파크뷰 특혜분양 사건'을 파헤치며 변호사 겸 사회운동가로 이름을 날렸다.

 

그러던 중, 성남 시가지에 있던 종합병원 두 곳이 폐업했다. 이에 이재명은 성남시립병원설립추진위원회 공동대표로 활동하며 성남시민들과 함께 성남 시립병원 설립 운동을 시작했다. 하지만 당시 한나라당이 장악한 시의회는 최초의 주민발의 조례를 단 47초 만에 날치기로 부결해 버렸다. 이에 이재명은 방청하던 시민들과 함께 항의하다가 특수공무집행방해 죄로 수배됐다. 이후 이재명은 사회운동만으로는 세상을 바꿀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정치에 입문하기로 마음먹었다.

 

3.정치 활동

2005 8 23일 열린우리당에 입당함과 동시에 성남시장 출마 의사를 밝혔다. 2006년 지방선거에서 공천을 받아 성남시장에 출마했으나, 당시 참여정부 심판론이 불거지면서 23.75%의 득표율로 낙선했다.

 

2007년 대통령 선거에서는 정동영 대통합민주신당 대통령 후보 비서실 수석부실장으로 활동했다. 2008년 총선에서는 경기도 성남시 중원구 선거구에 공천을 신청했지만 당내 경선에서 조성준 후보에 밀려 공천 탈락하고, 성남시 분당구갑에 전략 공천되었다. 그러나 분당은 보수정당의 전통적 텃밭 지역인데다 이명박 정부 출범 직후 치뤄진 선거였다는 점 등 여러모로 불리한 상황에서 33.23%의 득표율을 기록하며 또 다시 낙선의 고배를 마셨다.

 

낙선 후에는 정세균 민주당 대표의 부름을 받아 민주당 부대변인을 지냈다.

 

(1)제19·20대 성남시장

2010년 지방선거에서 출마하여 역대 선거 결과에서 진보 진영이 우세했던 수정구, 중원구에서 각각 58.9%, 57.9%의 높은 지지를 얻고 이전 선거에서 보수 진영이 지속적으로 승리해왔던 분당구에서 44.6%로 약진하며 종합 51.2%를 얻어 43.1%를 얻은 한나라당 황준기 후보를 제치고 성남시장에 당선되었다.

 

19대 성남시장 취임사에서 "새로운 성남을 향한 발걸음이 쉽지만은 않을 것이다. 힘들면 쉬었다 가더라도 서로의 어깨를 보듬고 한 걸음 한 걸음 웃으며 나아가자. 우리는 할 수 있다. 시민이 주인되는 성남, 시민이 행복한 시정, 기회가 균등한 성남을 함께 만들자"고 강조한 그는 '호화' 논란을 빚던 전직 시장의 집무실을 북카페로 내놓은 후, 한층 좁은 공간으로 시장실을 옮기는 데서부터 출발했다.

 

시장 취임 후 첫 기자회견에서는 '모라토리엄'을 선언했다. 이재명은 재정난으로 LH·국토부 등에 내야 할 판교신도시 조성사업비 5200억원을 단기간에 갚을 수 없다고 주장했고 이는 국토부와의 진실공방으로 이어지면서 취임 직후부터 전국적 화제를 모았다. 이후에도 그는 여느 단체장과는 차별되는 행보로 눈길을 끌었다. 트위터, 페이스북 등 SNS 소통에 적극적으로 나서며 거리낌 없이 현안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밝혔고, 시장실에는 "돈 봉투를 들고 오는 사람들이 많다"는 이유로 CCTV마저 설치했다. 특히 각종 복지정책에 중점을 뒀다. 취임 직후부터 성남시립의료원 강화에 나섰고, 무상교복 정책을 2011년부터 추진했다. 시행이 가로막히면 시의회·정부와 각을 세우거나 소송도 불사하기도 하였다.

 

2014년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는 새정치민주연합 후보로 출마하여 강세 지역인 수정구, 중원구에서 각각 56.4%, 56.7%를 얻을뿐만 아니라 분당구에서도 이전 선거보다 지지율이 10% 가량 상승한 53.8%를 기록하여 종합 55.1% 44.0%의 새누리당 신영수 후보를 상대로 승리하여 연임에 성공했다.

 

세월호 참사 이후 이재명은 정부를 비판하며 진상 규명을 강력히 요구했고, 2016, 박근혜 정부가 성남 등 불교부단체에 큰 피해가 예상되는 지방재정개편안을 추진하자 11일간 단식농성을 벌이기도 했다.

 

8년 동안 성남시장으로 재임하며 중·고등학교 신입생 무상교복지원사업, 청년배당정책이나 성남시의료원 건설 등을 포함해[3]  287개의 공약 중 270개를 실행하였고 94.1%의 공약이행률을 보였다.

 

한편, 이 시기에 성남 FC의 구단주를 겸임하며 수원 FC와의 깃발 더비를 탄생시키기도 하였다.

 

(2)19대 대선 경선 후보

2016년 말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터지며 전국에서 일어난 촛불집회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이미 대통령이 아니다"라는 '사이다 발언'으로 전국민적 관심을 모으며 각종 여론조사에서 문재인에 이은 차기 대선 후보 2위에 등극하였다. 민주당 지도부 관계자는 "충성도 높은 민주당 지지층의 지지세가 이재명에게 몰리고 있어 최대 20%까지도 지지율이 오를 수 있다고 본다" "과거 노무현 전 대통령이 대선 과정에서 연출했던 극적인 지지율 반전 드라마를 쓸 수도 있다는 기대도 있다"고 전했다.

 

그러나 2016 11~12월에 한창이였던 촛불집회가 국회의 탄핵안 가결 및 헌법재판소의 본격적인 탄핵안 심판 시작과 함께 소강상태에 접어듦에 따라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 대한 사이다 발언으로 인기를 끌었던 이재명의 지지율도 하락하였다. 그리고 그 지지율은 박근혜 이후 대한민국을 이끌 안정적인 리더를 원하는 사람들의 심리와 맞물려 민주당 내 유력 대권 주자였던 문재인으로 이동하게 되었다. 결국 이재명의 첫 번째 대선 도전은 당내 경선에서 347,647표를 득표하며 936,419표를 얻은 문재인, 353,631표를 얻은 안희정에 밀려 3위로 마감하게 되었다.

 

(3)제35대 경기도지사

7회 지방 선거 경기도지사 후보 각종 여론조사에서 1위를 차지하였다. 2018 3 15, 경기도지사 예비후보로 등록하기 위해 성남시장직을 사임하였으며, 3 27일 국회 정론관에서 경기도지사 출마를 공식 선언하였다. 당내 경선에서 60.0%의 득표율을 얻어 전해철, 양기대 후보를 누르고 더불어민주당 경기도지사 후보로 선출되었다. 본선에서는 56.40%의 득표율을 얻어 35.51%의 득표율을 얻은 남경필 자유한국당 후보를 제치고 임창열 이후 20년 만에 당선된 민주당계 정당 출신 경기도지사가 되었다.

 

 약속을 지키는 도지사가 되겠습니다. 지위보다는 해야 할 일에, 권한보다는 책임에 더 집중하겠습니다. 저에게 주권자와의 약속은 계약 그 이상입니다. 화려한 말보다 책임지는 행동과 실천으로 선거기간 약속했던 것들을 하나하나 꼼꼼히 챙기겠습니다.

 

경청하고 소통하는 도지사가 되겠습니다. 주권자의 위임을 받은 대리인으로서의 역할과 책임을 다하기 위해 잘 듣고 끊임없이 소통하겠습니다. 도민 위에 군림하는 도지사가 아니라 도민들 옆에서 함께 하는 도지사가 되겠습니다.

 

강자의 횡포를 누르고 약자를 돕는 도지사가 되겠습니다. 저는 정치의 역할이 소수 강자의 횡포를 억제하고 다수 약자를 도와서 함께 어우러져 살게 하는 것이라고 믿습니다. 기득권의 편이 아니라 평범한 도민의 편에서 억강부약(抑强扶弱)’을 실천하는 도지사가 되겠습니다. ” -35대 경기도지사 취임사-

 

경기도지사 재임중에는 불법 계곡 설치물에 본격적으로 칼을 빼들어 경기도내 25개 시· 234곳의 계곡·하천에서 총 1,601개 불법시설을 적발하였고 1,576개를 철거하였다.[19] 이를 두고 "공권력을 앞세운 단속 위주의 행정"이라는 비판도 나왔으나 불법 시설물과 자릿세, 바가지 요금이 사라진 청정 계곡을 되찾은 시민들은 대체로 환영한다는 반응을 보였다.

 

2019 6 18, ‘닥터헬기가 경기도 내 공공청사, 학교운동장, 공원 등에서 자유롭게 이·착륙할 수 있도록 할 수 있는 협약을 체결했다. 이번 협약으로 닥터헬기는 기존에 이용했던 소방헬기 착륙장 588곳 외에도 경기도 공공청사 77곳와 학교 운동장 1,755곳에서 이착륙할 수 있다. 이번 협약으로 경기도 내 닥터헬기 이착륙장소는 588곳에서 1,832곳이 추가돼 총 2,420곳으로 늘었다.

 

이재명은 응급구조를 담당하는 일은 현행법상 긴급재난에 해당되는 만큼 목숨이 위태로운 긴급상황에는 주거침입이나 재물손괴 등의 행위가 허용된다. 예를 들어 헬기를 내릴만한 회사운동장이 잠겨있을 경우 과감하게 헬기를 내려도 된다 오늘 협약된 공공기관, 학교를 기본적으로 활용하되 소방재난본부 지침 등을 만들어 비상상황에는 긴급재난 형태로 착륙이 이뤄질 수 있도록 조치해 달라고 지시했다.

 

닥터헬기 이착륙 문제를 꾸준히 지적해 온 아주대병원 이국종 교수(경기남부권역외상센터장)는 이번 조치가 전국으로 확산되길 바란다며 환영했다. 이 교수는 런던에서 비행할 때 제일 많이 이용했던 착륙장이 바로 학교운동장이었다. 교사들이 수업하다 말고 운동장으로 나와 출동 현장을 학생들에게 보여주곤 했는데, 교사들이 생명존중사상을 뿌리 깊게 인식시키는 그 어떤 교육보다 중요한 현장교육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을 보면서 한국에서 어떻게든 실현해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하지만 현실은 쉽지 않았다. 선진국형 모델 도입을 통해 대한민국이 선진화될 수 있도록 노력해 준 이 지사에게 감사를 전한다 경기도를 넘어 대한민국에서 이러한 모델이 구축되길 간절히 바란다고 감회를 밝혔다.

 

코로나19 유행 초기였던 2020 2 25일 경기도 과천시 별양상가2로 제일쇼핑 4층에 있는 신천지 총회본부에 이재명이 직접 방문해 신천지 총회본부 쪽에 신도 명단 제출을 요구했다. 경기도는 이미 이날 오전 10 30분께 경찰과 함께 역학조사관 2, 경기도 특별사법경찰단의 디지털포렌식 전문가 2명 등 관계 공무원 40여명을 보내 신도 명단 확보를 위한 강제 역학조사에 나섰다. 하지만, 신천지 총회본부 쪽이 3시간이 지나도록 명단 제출을 하지 않고 버티는 바람에 조사가 이뤄지지 않은 상태였다.

 

이처럼 양쪽의 실랑이가 벌어지는 사이 이재명이 현장을 방문해 강경한 태도로 맞섰고, 신천지 쪽은 태도를 바꿨다. 신천지 쪽은 이날 오후 3시께 컴퓨터에 저장된 신도 명단을 넘겨줬고, 경기도는 이 명단을 확보했다. 이날 경기도가 확보한 신도 명단은 33,562명이며 지난 16일 예배에 참석한 신자 9,930명의 명단도 확보했다. 이에 경기도는 예배 참석자가 신도 명단과 상당 부분 겹칠 것으로 추정했다.

 

코로나19 장기화 속에 재난지원금 지급 카드를 꺼내 전국으로 확산시킨 건 경기도지사 재임 중 가장 손꼽히는 성과다. '부자 퍼주기'라는 일각의 비판에도 경기도는 2020 4월과 2021 2월 전 도민 1인당 10만 원과 20만 원씩 재난기본소득을 지급했다. 여권 내부와 중앙정부의 우려도 있었지만, 뚝심 있게 밀어붙여 '이재명표 복지'의 상징이 됐다.

 

2021 8월부터 지급되기 시작한 제5차 재난지원금 상위 88% 지급안에 반대하였다. 이에 이재명은 본인의 관할 구역인 경기도에 한해서 든 경기도민에게 1인당 25만원씩의 재난기본소득을 지급하겠다고 밝혔다. 이재명은 관련 사실을 브리핑 하며 "코로나19 피해는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모든 국민이 겪고 있다. K-방역 역시 모든 국민의 적극적 협조와 희생으로 이루어냈다. 함께 고통받으면서 정부의 방역조치에 적극 협력하고 무거운 짐을 나누었던 모든 국민들이 고루 보상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4)20대 대선 후보

2021 7 1 국민을 가르치는 지도자가 아닌 주권자를 대리하는 일꾼으로서 저 높은 곳이 아니라 국민 곁에 있겠다며 대선 도전을 공식 선언했다. 이재명은 영상을 통해 출마 선언을 하며 자랑스러운 김대중, 노무현, 문재인 정부의 토대 위에 필요한 것은 더하고, 부족한 것은 채우며, 잘못은 고쳐 더 유능한 4기 민주당 정권, 더 새로운 이재명 정부로 국민 앞에 서겠다고 밝혔다. “위기의 원인은 불공정과 양극화에 있다 공정성 확보, 불평등과 양극화 완화, 복지확충에 더해 경제적 기본권이 보장돼 모두가 최소한의 경제적 풍요를 누리는 사회여야 지속적 성장과 국민의 더 나은 삶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는 헌법 1조를 읽으면서 시작한 출마 선언에는 공정이 7, 불공정이 6, 성장이 11번 언급됐다. 2017년 출마선언에서 언급 횟수가 4번에 그쳤던 성장의 비중이 이번엔 더욱 커진 셈이다.

 

2021 10 10 719,905표를 득표하며 누적 50.29%을 기록해 39.14%를 얻은 이낙연을 누르고 더불어민주당 제20대 대통령 선거 후보로 확정되었다

https://youtu.be/th1ve11j8Ug

더불어 민주당은 한국정당 중 군국주의, 국가사회주의 국영자본체를 옹호하는 자주파보다는 자유화 ,개방화, 민주화 개혁개방 민영자본체제를 옹호하는 민주파로 혁명이나 전쟁을 옹호하는 자나 국가독점 자본가 이외 많은 기업인이나 자영업인, 노동자, 농민, 학생, 지식인, 문화인들이 옹호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