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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자흐스탄에서 러시아 주도 군사동맹 부대 철수 시작 본문
중앙아시아의 카자흐스탄에서 확산됐던 혼란으로 현지에 파견됐던 러시아 주도의 군사동맹부대가 질서가 회복됐다며 철수를 시작했습니다.
카자흐스탄에서 이달에 전국으로 확산된 반정부 항의시위에 대해, 정부는 “외국 무장세력이 포함된 테러행위”라며 러시아가 주도하는 군사동맹인 CSTO, 집단안보조약기구에 지원을 요청해, 약 2000여 명 규모의 부대가 파견됐습니다.
지원을 받은 정부는 총 약 1만 명을 구속하는 등 항위시위를 철저히 진압해, 토카예프 대통령이 “질서가 회복됐다”고 표명함에 따라 CSTO는 13일 부대철수를 시작했습니다.
CSTO가 회원국에 군부대를 파견한 것은 처음으로, 토카예프 대통령은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의 전화회담에서 “신뢰할 수 있는 국제조직으로서의 타당성과 유효성을 발휘했다”고 말해, 파견요청의 정당성을 거듭 강조했습니다.
푸틴 대통령은 러시아의 쇼이구 국방장관으로부터 부대철수가 19일에 완료된다는 보고를 받은 뒤, “가장 가까운 파트너인 카자흐스탄 정부는 이로써 안심하고 사회와 정치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카자흐스탄에서 러시아 주도 군사동맹 부대 철수 시작 | NHK WORLD-JAPAN News
카자흐스탄 정세와 국제 관계
“카자흐스탄은 어떤 나라”
카자흐스탄은 중앙아시아와 동유럽에 걸쳐 있는 나라입니다. 러시아가 북쪽을 크게 둘러싸고 있고 동쪽으로는 중국이 붙어 있습니다.
카자흐스탄은 국토 면적이 전 세계 순위에서 9위를 차지할 만큼 큰 나라입니다. 전체 면적이 280만 ㎢인데요. 이는 남북한을 다 합친 한반도 전체 면적(22만㎢)보다 열 배 이상 넓은 겁니다.
반면 인구는 매우 적어서 세계은행 기준, 2020년 카자흐스탄의 인구는 약 1천900만 명에 불과했습니다. 남한의 인구가 약 5천200만 명, 북한의 인구가 약 2천600만 명인 걸 감안하면 이 나라의 인구 밀도가 얼마나 낮은지 짐작할 수 있을 듯합니다.
수도는 북쪽에 있는 ‘누르술탄’입니다. 누르술탄 나자르바예프 전 대통령의 이름을 딴 건데요. 지난 2019년 나자르바예프 전 대통령이 퇴임하고, 그의 후임자였던 카심-조마르트 토카예프 현 대통령의 제안으로 카자흐스탄 의회에서 통과되면서 개칭됐습니다. 하지만 아직까지 현지에서는 원래 수도 이름이었던 ‘아스타나’로 더 많이 불립니다.
카자흐스탄의 최대 도시는 이번에 소요사태의 중심지였던 알마티입니다. 상업, 교육, 문화의 중심지인 알마티는 지난 2011년에는 중앙아시아에서는 최초로, 당시 수도였던 아스타나와 함께 동계아시안게임을 개최한 적도 있습니다.
“중앙아시아의 자원 부국”
카자흐스탄은 잘 알려지진 않았지만 엄청난 자원 부국입니다. 특히 우라늄 수출은 전 세계 1위입니다.
전 세계 우라늄 생산량의 40%를 차지하고 있고, 철광석, 동, 아연 등 다른 광물성 자원도 풍부합니다.
그뿐만 아니라 카자흐스탄은 전 세계에서 가장 큰 내륙호수인 ‘카스피해’를 끼고 있는데요. 이 카스피해 해저에는 엄청난 양의 원유와 천연가스가 매장돼 있어, 앞으로 더 많은 부를 축적할 거라는 전망입니다.
특히 우즈베키스탄이나 키르기스스탄 등 주변 이웃 국가들과 비교하면 월등히 잘 사는 나라입니다. 카자흐스탄의 국내 총생산(GDP) 규모는 세계은행 기준, 2020년 1천690억 달러에 달했습니다. 반면 우즈베키스탄의 2020년 GDP는 570억 달러에 그쳤습니다.
카자흐스탄은 2008년경부터 급성장해 한때는 1인당 국민소득이 1만4천 달러에 달한 적도 있었는데요. 하지만 지난 2020년에는 약 9천 달러로 집계됐습니다.
“누적된 불만과 소요 사태”
지난 2일, 수많은 사람이 액화석유가스(LPG) 인상에 항의하며 거리로 쏟아져 나왔습니다.
카자흐스탄은 대부분 LPG를 자동차 연료로 사용합니다. 카자흐스탄 정부는 그동안 에너지 가격 상한제를 도입해 가격 인상을 통제해왔는데요. 하지만 국제 에너지 가격이 급등하자 이를 반영해 폐지하기로 한 겁니다.
가뜩이나 지난해 물가 상승률이 9%에 달해 어려움을 겪었던 시민들은 새해부터 LPG 가격이 두 배 이상 폭등하자 분노를 표출하며 시위에 나섰는데요. 시민들은 천연자원이 풍부한 카자흐스탄이 에너지 문제를 겪는 것은 카자흐스탄의 오랜 불평등과 정치적 부패 때문이라고 비판했습니다.
카자흐스탄은 1991년 소련이 붕괴하면서 독립한 후 지난 2019년까지 30여 년간을 나자르바예프 전 대통령이 통치했습니다.
카자흐스탄은 독립 후 대통령 직선제를 채택했는데요. 하지만 나자르바예프 전 대통령은 헌법 개정을 통해 임기를 계속 연장하며 막강한 권력을 휘둘렀습니다.
특히 전체 국부의 절반 이상을 나자르바예프 전 대통령과 그의 측근들, 친정부 기업인 등 단 162명이 독점하고 있다는 보고도 있습니다. 반면 빈부 격차는 심각해 카자흐스탄의 빈곤율은 5%에 달합니다.
이런 가운데 정부가 LPG 가격을 인상하자 그동안 누적됐던 정치적 불만까지 폭발했다는 분석인데요. 카자흐스탄 정부는 사태 초기, 가격 상한선을 반년 더 유지하고, 내각이 사태에 책임을 지고 총사퇴하기로 했다고 발표했습니다.
하지만 민심을 달래기에는 역부족이었고요. 시위가 점점 더 확산하자 외국 무장세력이 개입한 쿠데타 시도라고 주장하며 강경 유혈 진압을 단행하고 외국의 병력 지원을 요청했습니다.
“카자흐스탄과 국제 관계”
카자흐스탄은 러시아가 주도하는 ‘집단안보조약기구(CSTO)’ 회원국입니다. CSTO는 소련 해체 이듬해인 1992년 구소련 6개국이 결성한 군사안보동맹체로, 종종 유럽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와 견주기도 합니다.
카심-조마르트 토카예프 카자흐스탄 대통령은 시위 발생 사흘 만인 5일, CSTO 에 병력 지원을 요청했고, 러시아가 주도하는 CSTO는 바로 다음 날(6일), 약 2천 명의 병력과 군사 장비를 투입했습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동맹국 카자흐스탄의 공식 요청으로 평화와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목적으로 병력을 파견했다고 강조했는데요. 우크라이나 접경 지역에서 군사적 긴장이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러시아가 또 다른 구소련 국가 카자흐스탄에 신속히 병력을 파견하자, 국제 사회의 시선이 집중됐습니다.
일각에서는 구소련 국가들이 여전히 자국의 영향력 아래 있음을 과시하려는 의도라는 관측도 나오고 있습니다.
카자흐스탄은 그동안 미국과도 우호적인 관계를 맺어왔습니다.
특히 액손모빌과 셰브론 등 미국 기업이 카스피해 유전 개발 협력 사업을 하고 있는데요. 지난 2018년에는 나자르바예프 전 대통령이 백악관을 방문해 도널드 트럼프 당시 미국 대통령과 양국 관계 발전과 협력 방안을 논의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가운데 이번 사태에 러시아가 깊숙이 개입하자 카자흐스탄이 미국과 러시아 사이에서 지켜온 균형 외교의 축이 기우는 게 아니냐는 분석도 나오고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카자흐스탄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중국도 이번 사태에 큰 관심을 보였습니다. 카자흐스탄은 중국이 주도하는 ‘상하이협력기구(SCO)’회원국이기도 한데요. 중국은 카자흐스탄의 요청이 있다면 언제든 개입할 준비가 돼 있다고 말하면서 카자흐스탄이 또 하나의 지정학적 갈등 지역으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카심-조마르트 토카예프 카자흐스탄 대통령
카심-조마르트 토카예프 대통령은 1991년 카자흐스탄이 소련에서 독립한 후 두 번째 대통령입니다.
1953년생으로 올해 68세인 그는 카자흐스탄의 최대 도시 알마티에서 태어났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카자흐스탄의 탐정 문학 장르를 개척한 유명한 작가였고, 어머니는 외국어 강사였습니다.
토카예프 대통령은 전문 외교관 출신입니다. 1975년 모스크바국립국제관계대학교(MGIMO)를 졸업한 후, 당시 소련 외무부에 들어가 싱가포르 주재 소련 대사관, 중국 주재 소련 대사관 등에서 근무했습니다.
1992년 카자흐스탄의 외무차관으로 임명된 후 1993년 제1 외무차관, 1994년 외무장관으로 고속 승진했습니다.
그리고 1999년 총리로 임명됐습니다.
이후에도 국무장관, 외무장관, 상원의장, 유엔 제네바 사무국 카자흐스탄 대사 등 요직을 두루 거쳤습니다.
2019년 누르술탄 나자르바예프 대통령이 고령을 이유로 사임을 발표한 후 대통령 권한 대행을 지냈습니다. 그리고 6월 치러진 조기 선거에서 약 71%의 득표율로 카자흐스탄의 2대 대통령에 당선됐습니다.
카자흐스탄 독립 후 최초의 평화적인 정권 교체였지만 실질적인 권력은 여전히 나자르바예프 전 대통령이 가지고 있다는 관측이 지배적이었습니다.
실제로 나자르바예프 전 대통령은 퇴임한 후에도 대통령이 의장을 맡는 ‘카자흐스탄 안보회의(Security Council of Kazakhstan)’ 의장직을 유지했는데요. 하지만 이번 사태로 자리에서 물러났습니다.
토카예프 대통령은 이번 사태의 배후로 나자르바예프 전 대통령의 최측근인 카림 막시모프 국가안보위원회(NSC) 위원장을 체포했는데요. 일각에서는 이번 사태를 두고 토카예프 현 대통령과 나자르바예프 전 대통령 간의 권력 다툼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관측을 내놓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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