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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 부산 버스 승객들이 종점까지 내리지 못하는 이유 본문

Guide Ear&Bird's Eye/영국 BBC

크리스마스: 부산 버스 승객들이 종점까지 내리지 못하는 이유

CIA Bear 허관(許灌) 2021. 12. 24. 09:05

눈송이로 가득 찬 공간에 크리스마스 캐럴이 흘러나온다. 곳곳에는 귀여운 인형들이 매달려 있고 빨간 옷을 입은 산타클로스가 사람들을 반긴다.

그런데 산타는 루돌프 썰매가 아니라 버스를 몬다. 바로 부산 도심을 누비고 있는 '산타 버스' 이야기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와 경제 침체로 연말 분위기가 나지 않지만, 이 버스 승객들의 입가에는 함박웃음이 떠나지 않는다.

"마스크 쓰고 산타복을 입고 있으면 조금 답답하기도 하지만, 승객분들이 웃으시니까 힘든 걸 잊게 돼요."

129-1번(대진여객)을 운전하는 안종성 기사는 올해로 산타버스를 몬 지 10년이 됐다.

올해로 10년째 산타로 변신하고 있는 안종성 기사

승객들에게 조금이라도 기쁨과 웃음을 주기 위해 열었던 이벤트가 산타버스의 시작이었다. 사비를 털어 산타복을 사고 사탕을 나눠줬다.

맨 처음 시작할 때는 수염을 늘어뜨린 산타가 버스를 몰고 있으니 놀라는 사람들도 많았다. 하지만 지금은 일부러 버스를 기다렸다가 타는 사람도 있을 만큼 인기가 좋아졌다. 회사에서도 적극 지원해준다고 한다.

안 씨도 처음에는 쑥스러웠지만 지금은 산타 기사 역할이 능숙해졌다.

"맨 처음 산타 복장을 하고 운행을 끝내니 옷이 땀으로 축축하게 젖어있을 정도로 떨렸어요. 손님들이 어떻게 반응할지 몰랐으니까요. 부끄러워서 손도 못 흔들어줬는데 요즘은 사진 찍는다고 하면 손도 흔들어주고 그럽니다."

부산에서 볼 수 있는 산타 버스 내부

이제 같은 회사 동료 기사 두 명도 안 씨의 '산타 변신'에 동참했다.

같은 산타버스여도 내부 장식은 조금씩 다르게 꾸민다. 버스를 타는 승객 층의 연령대를 고려했다.

안 씨가 운행하는 버스 노선은 동래시장에서 부전시장 등 재래시장을 많이 다닌다. 짐을 많이 든 어르신들의 안전을 생각해 손잡이에는 장식하지 않고 창가와 버스 천장을 위주로 꾸민다.

버스 승객들 가운데는 아이처럼 좋아하는 어른 승객도 많다. 산타버스에 빠져서 내려야 할 정류소도 지나친 이도 꽤 된다.

그는 "캐럴에 옛날 추억을 떠올리시다가 '아이고 기사님 내려야 됩니다'하면서 황급히 내린 그런 분도 있다"고 웃었다

주형민 기사가 운전하는 189번 산타버스는 인기가 많다. 그는 늘 활짝 웃는 얼굴 마스크를 착용하고 사람들에게 인사를 한다

동료 주형민 기사가 운전하는 189번 산타버스는 인기가 많다. 아이들이나 학생들도 많이 타는 노선이다 보니 화려하면서도 아기자기한 장식이 많다. 올해 컨셉은 '겨울 왕국'이다. 운전석 뒤에는 대형 눈사람 인형이 사람들에게 인사를 건넨다.

산타기사 5년 차인 주 씨는 일 년 가까이 산타 버스를 구상할 정도로 준비에 심혈을 쏟았다고 한다.

그는 "멀리 사시는 분들이 소문을 듣고 아이들과 이제 시간을 맞춰서 오시는 분들이 매우 많다"며 "목적지 없이 버스 안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 위해 오시는 분들이 대부분"이라고 설명했다.

그동안 승객들에게 감사 쪽지나 편지를 많이 받았다. 감동에 젖어 눈물을 흘리는 할머니도 있었다.

그래서 올해는 특별히 내부에 메모판을 만들었다. 벌써 승객들의 탑승 소감이 가득 쌓였다. 그는 승객들에게 '크리스마스 종이 안경'이나 '팔찌' 선물을 하기도 한다. 아이 승객들의 반응은 폭발적이다.

"어떤 아이는 엄마와 같이 와서 첫 정거장에서 종점까지 타고 가기도 해요. 산타 기사와 사진을 찍고 싶어서 기다리는 경우도 있죠."

아이와 함께 사진을 찍어주는 산타기사. 사진을 찍고 싶어서 종점에서 기다리는 승객도 있다

주 씨는 올해 산타버스 장식 준비에만 여러 날을 보냈다. 일을 다 마치고 해야 했기에 밤을 꼴딱 새우는 날도 많았다. 하지만 기쁜 마음에 피곤한 줄도 몰랐다고 한다.

"준비할 때는 너무 설레고 승객들이 좋아할 모습을 상상하니까 잠이 안 오는 거예요. 산타 버스를 모는 요즘은 출근할 때 마음이 설렙니다. 오늘은 어떤 분들이 타서 또 즐거워하실까 궁금해하면서요. 하루가 너무 순식간에 지나가요."

코로나 시국이라 혹시나 사람들이 몰릴까 봐 배차 간격도 조정했다. 앞차와 배차 간격을 줄여서 승객 수를 줄이는 등의 방법을 쓰고 있다.

이런 열정적인 산타기사들 덕에 감동을 받은 승객들도 많다.

자신의 블로그에 산타버스 체험기를 남기고 있는 현이 씨는 2019년 12월 초에 산타 버스를 처음 알게 됐다고 했다.

그는 BBC 코리아에 "버스정류장에서 189번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타보니 산타버스였다"라며 "당시 깊은 절망 가운데 있었는데, 아름다운 산타 버스를 보고 큰 위로를 얻었고 그때의 기억이 너무 강렬해 잊히지 않았다"라고 했다.

산타버스를 애용하는 현이 씨는 버스 내에 붙은 메모들이 인상적이었다고 했다. 그는 "적혀있는 종이 한 장, 한 장에 우리네들의 살아가는 이야기와 아픔, 기쁨, 슬픔, 즐거움이 모두 녹아 있었다. 병원에 다녀가는 길인데 이 버스를 타서 너무 위로가 되었다는 어르신의 이야기부터 수능 시험 잘 보게 해달라는 학생의 귀여운 메시지도 봤다"고 전했다

특히 '하차벨' 밑에 적혀 있는 예쁜 손글씨들이 인상적이었다고 한다. '밥은 꼭 챙겨 드세요', '이 또한 지나갈 거예요' 등의 메시지가 깊은 울림이 됐다.

승객들에게 진심 어린 마음으로 대하는 기사들을 보면서 현이 씨는 산타버스의 팬이 됐다.

"평소에 버스를 타면 기사님들이 무뚝뚝하신 경우가 많은데요. 부산 남자들의 특징이기도 해요. 하지만 산타 기사님은 손을 흔들어주시기도 하고 어린아이들이 탑승하면 선물을 챙겨주시기도 했어요. 차고지에 도착하거나 회차 지점에 정차했을 때 승객들과 기념촬영을 해주시기도 했고요. 진심 어린 마음으로 따뜻하게 대해주셔서 많은 감동을 받았어요." 

버스 종점. 산타버스 마을이 세워졌다. 다만 차고지 등은 버스가 계속 오가기 때문에 기사의 인솔하에 안전을 유의해야 한다

기사들은 앞으로도 계속 승객들의 '산타클로스'가 되고 싶다는 뜻을 전했다.

안 씨는 "코로나 때문에 마스크를 다들 쓰고 있으니 예전에 비해 승객분들과 대화를 많이 하지 못해 아쉽다"라면서 "승객이 한 분이 있으시더라도 그분이 행복하다면 계속 산타 버스를 하고 싶다"고 했다.

 

루돌프 대신 '버스' 몰고 나타난 산타의 정체는? - BBC News 코리아

'깊은 절망 가운데 있었는데 '산타 버스'를 보고 큰 위로를 얻었다.'

www.bbc.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