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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바논 폭발 사고의 진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광범위한 부패 의혹 본문

Guide Ear&Bird's Eye/레바논

레바논 폭발 사고의 진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광범위한 부패 의혹

CIA bear 허관(許灌) 2021. 7. 7. 20:47

2020년 3월, '발트해(Baltic)'와 '화이트 트레이더(White Trader)'로 불리는 유조선 두 척이 시칠리아 앞바다에서 만났다. 두 배가 서로 나란히, 천천히 움직이고 있는 것이 무선응답기를 통해 확인됐다. 26시간 후, 이들은 각자의 길을 떠났다.

이들이 지중해에서 다시 만났을 때 관심을 두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러나 누군가의 제보를 받은 레바논 수사당국은 유조선의 행적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당국은 수사를 통해 자국의 엄청난 재산이 어떻게 석유 대금으로 몽땅 들어가게 됐는지 수수께끼를 풀 수 있길 기대하고 있다.

4개월 후, 유조선 '발트해' 이야기는 레바논을 뒤흔든 스캔들이 됐다. 지난해 7월 레바논 검찰은 사건 관련자들을 기소했고 현지 언론은 해당 스캔들을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하지만 한 달 후, 완전히 다른 비극이 일어났다.

그해 8월 4일, 베이루트 항구를 관통한 폭발 사고가 발생한 것이다. 200명이 목숨을 잃었고 30만 명이 살 곳을 잃었다. 사람들은 변화를 요구하며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베이루트항 폭발 사고는 레바논의 약하고 부패한 정부기관의 민낯을 그대로 드러냈다. 이러한 상황을 특히 잘 보여주는 건 레바논의 전기 산업이다.

베이루트 항구에서 발생한 대규모 폭발로 200명이 사망했다

전기 산업의 실패는 레바논에서 자국이 겪고 있는 문제의 '현상'이 아닌 '원인'으로 여겨진다. 세계은행은 레바논 국가 부채의 거의 절반인 약 400억달러(약 45조3400억원)가 재앙과도 같은 전기 산업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세계은행에 따르면 레바논의 국영전기회사 전력청(Electricité du Liban, EdL)을 운영하는데 연간 약 20억달러(약 1조5000억원)의 돈이 국고에서 충당되고 있지만 자국민은 여전히 하루 22시간에 달하는 정전 상황에 맞닥뜨리고 있다.

2017년 주크(Zouk)와 지예(Jiyeh) 지역에 독일 발전소 2기가 새로 들어서면서 상황에 일부 진전이 있긴 했다. 그러나 2년도 되지 않아 두 발전소는 모두 실패로 돌아갔다. 문제의 답은 결국 시칠리아 해안에서 벌어진 유조선 '발트해'의 조우를 설명할 미스터리와 제 구실을 하지 못하는 전기 산업을 파헤친 스캔들에 있다.

수상한 낌새를 가장 먼저 눈치챈 건 야히아 마라우드였다. 그는 새 발전소 운영을 담당하는 중동 전력의 최고 운영 책임자이다.

그는 2019년 7월 지예 지역에서 있었던 일을 이렇게 회상했다.

"엔진 중 하나가 매우 뜨거웠고 실린더 간에 온도 차가 있다는 걸 발견했어요. 그래서 첫 번째 실린더를 테스트해보라고 했습니다. '뜨거운 부식'이라고 부르는 현상이 발견됐고 곧바로 공장 폐쇄 조치를 내렸어요."

마라우드는 주크 지역의 다른 발전소에서도 같은 테스트를 진행했다. 이곳에서도 비슷한 징후가 나타났고 엔진 불량을 우려해 공장을 폐쇄했다. 두 발전소 모두 이제 가동을 멈췄다.

사실 황당한 일이었다. 이들 발전소는 지은 지 2년밖에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마라우드는 엔진을 제조한 독일 회사 만(MAN)의 기술자들을 불렀다.

그리고 자신이 의심하고 있던 점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엔진 실린더에 쓰인 연료가 오염돼 있었던 것이다. 테스트 결과, 연료에는 금지된 화학 물질과 화학 폐기물 및 독성 물질이 함유돼 있었다.

해당 석유는 레바논 정부에 의해 레바논전력청(EDL)이 공급하고 있었다. 마라우드는 전력청에 70번 이상 항의했다. 하지만 전력청은 석유에 문제가 없다며 사용을 고집했다.

그는 "그동안 연료 문제를 계속 호소해 왔다"면서 "하지만 돌아온 대답은 항상 '연료 교환은 안 된다'였다"고 회상했다.

혹시 의도적인 공작은 아닌지 두려웠다. 그는 "연료를 공급받던, 해외에서 온 누군가가 여러 종류의 기름을 섞고 있는 건 아닐까 의심한다"고 말했다.

해당 연료는 유조선 '시엘로 디 뉴욕(Cielo di New York)'에 실려 왔다. 레바논 정부가 알제리 국영석유회사 소나트랙(Sonatrach)의 자회사 소나트랙 BVI와 맺은 계약의 일환이었다.

소나트랙 BVI는 문제의 석유가 사양과 일치하며 레바논 정부와의 계약상 의무를 모두 충족했다고 주장했다.

그렇다면 연료에서 나온 화학 폐기물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이론적으로 일부 연료는 중간에 판매되고 화학 물질로 대체될 수 있다. '억제제'라고 불리는 일부 화학물질은 오염된 기름을 잠깐 동안 정상으로 보이게 할 수 있다. '시엘로 디 뉴욕' 유조선의 석유에서 이 억제제가 발견됐다.

국가 송전망이 고장 났을 때 레바논 사람들은 보통 민간 발전기에 의존하지만 그럴 여유가 없는 사람들도 많다

2019년 여름, 레바논에서 심각한 정전 사태가 발생했다. 집집마다 불이 꺼졌고 병원에선 수술도 할 수 없었다. 국가 송전망에 장애가 발생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설 발전기에 의존하지만 그럴 여유가 없는 사람들이 많았다.

천식을 앓고 있던 6세 소녀 세드라의 부모는 두려움에 휩싸였다. 호흡 곤란을 겪는 아이에겐 산소호흡기가 절실한데 전기가 끊겨 산소호흡기를 돌릴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한 번은 이웃 가게 주인이 아이를 구하는 일도 있었다.

가게 주인은 "아이가 거의 질식 상태로 가게에 도착했다"라고 당시 상황을 떠올렸다. 그는 "아버지가 겁에 질려 있었지만 선뜻 부탁하기 힘들어했다"면서 "기계에 전원 플러그를 꽂고 아이를 앉힌 후 마스크를 줬다"고 말했다.

가게 주인의 도움이 없었다면 세드라는 죽었을지도 모른다. 아이는 운이 좋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도 많았다.

천식을 앓고 있는 세드라는 산소호흡기를 써야할 때가 많다

BBC 아랍어 서비스는 '시엘로 디 뉴욕' 유조선의 석유를 대상으로 한 독일의 실험 결과를 베이루트 아메리칸 대학의 오염 물질 전문가인 나자트 살리바 박사에게 보여줬다.

"여기서 '화학 폐기물'이 무슨 뜻일까요? 다이옥신일 수도 있어요. 다이옥신은 주요 발암 물질 중 하나입니다."

"자료를 보면 석유 안에 바나듐과 크롬 같은 중금속이 있다고 나와 있어요. 발전소 주변에 검은 먼지가 날아다니는 것이 관찰된다면 인근 주민들의 안전이 매우 걱정됩니다."

조지 맨나의 가족은 주크 발전소에서 2㎞ 떨어진 곳에 살고 있다. 그의 딸 메리는 아파서 병원을 찾았는데 혈액 검사에서 이상한 점이 발견됐다.

조지는 "의사 선생님이 딸 아이가 암 초기라고 말했다"며 그날을 회상했다. 딸의 암 진단 소식은 청천벽력과도 같았다. 그는 "사람이 느낄 수 있는 가장 힘든 감정 중 하나였다"고 당시의 심경을 전했다.

베이루트 미국대학은 2년간의 연구를 통해 문제의 발전소 주변 대기에 베이루트보다 10배 더 많은 양의 발암 물질이 포함돼 있다는 것을 알아냈다. 메리의 주치의 피터 박사는 오염된 기름이 발암 원인이었다는 증거는 없지만 오염 상황에 대한 심각한 우려를 나타냈다.

"환경이 주요 발암 원인이라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들 발전소가 발암 물질을 만들어내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죠. 국제안전표준 같은 건 모든 면에서 철저히 무시됐습니다."

BBC는 레바논 에너지부처에 입장을 요청했지만 어떤 답변도 받지 못했다.

2010년 레바논 정부는 전기 발전 현대화를 위한 야심찬 계획을 발표했다.

무니르 예히아 박사는 정부의 경제 개발 제안서 작업을 도왔지만 계획은 결국 수포로 돌아갔다.

그는 레바논 정부가 왜 아직도 석유를 사용하는지를 알기 위해선 이를 통해 이익을 보는 게 누구인지를 살펴봐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석유 산업엔 돈이 넘친다"면서 "정치 세력은 이 산업을 완전히 자신들의 영향력 하에 두고 싶어한다"고 말했다.

2005년에 체결된 협정 덕분에 레바논에서 사용되는 연료는 거의 한 회사가 공급해오고 있었다. 사람들은 이 회사가 알제리 최대 국영석유회사 소나트랙이라고 들었다. 유조선 '발트해' 스캔들이 세상에 알려지기 전까지 계약 세부사항은 베일에 싸여있었지만, 사실이 알려지자 사람들의 공분을 샀다.

계약 당사자는 영국령 버진아일랜드 조세회피처에 등록된 알제리석유공사의 자회사 소나트랙 BVI인 것으로 밝혀졌다.

중동 전력의 최고 운영 책임자 마라우드는 "이 계약은 재앙이었다"라고 표현했다. 그는 "계약이 얼마나 어리석고 법적으로 엉성한지 무서울 정도였다"면서 "이건 레바논 국익이나 국민들의 이익을 전혀 보호하지 못한다"고 덧붙였다.

일부 석유 업계의 관행에 따라 계약서에는 석유 품질 테스트가 선적항에서 수행돼야 한다고 명시돼 있었다. 석유가 적재되자마자 레바논이 석유의 주인이 돼 대부분의 위험을 떠맡게 되는 것이다. 이후 무슨 일이 발생해도 수출 회사엔 책임이 없다. 알제리석유공사는 화물 사고와 분실에 대비한 보험에 가입했다고 밝혔지만, 화물이 배에 적재된 순간부터는 책임을 지지 않는다.

알제리석유공사와 레바논의 계약은 2005년 이후 모두 4차례 갱신됐다. 그 사이 7명의 서로 다른 에너지 부처 장관이 계약 내용을 계속 감독했다. 일부 장관은 불만족스러운 계약이 어째서 자꾸 갱신되는지 궁금해하기도 했다. 계약에 책임이 있는 장관들은 '타협'이었다고 말했다.

알제리석유공사는 레바논 정부가 합리적인 가격에 연료를 지속해서 공급받길 원했다고 주장했다. 또한 자신들은 800번의 선적을 통해 15년 넘게 3000만톤 이상의 석유를 공급해 왔다고 밝혔다.

2020년 3월, 유조선 '발트해'에 반입된 기름은 해상에서 나란히 항해했던 유조선 '화이트 트레이더'에서 나온 것이었다. '화이트 트레이더' 선주들은 필요한 사양을 충족시키기 위해 자신의 배 위에서 여러 기름을 혼합하는 작업을 한다고 말했다.

'화이트 트레이더'와의 접선 이후 '발트해'는 레바논으로 향했다.

실려온 기름은 레바논에 도착하자마자 정부의 석유 설비 시설에서 테스트를 받게 되는데, 결과는 사양을 만족하는, 즉 '허용 가능한 수준'으로 나왔다. 그러나 테스트 결과를 의심한 마라우드는 두바이의 한 독립 연구소에 다시 실험을 의뢰했다. 그 결과 해당 기름은 허용치보다 42배나 많은 침전물을 함유하고 있었다.

마라우드는 하선을 거부했고, 큰 혼란이 벌어졌다.

레바논의 반부패 활동가들은 정부 고위 관료들이 불량 석유 수입에 연루돼 있다며 해당 사실을 세상에 알렸다.

오랫동안 부패 척결에 실패했다는 비난을 받아온 레바논 정부는 이에 대응해야 했다.

부정부패 사건을 수사하는 알리 이브라힘 판사는 일주일 동안 사건 관련 문건을 작성했지만, 본격적인 조사엔 착수하지 않았다.

이브라힘 판사는 석유 산업 관계자 2명과 선적 대리인 한 명을 만났다. 알제리석유공사가 자사 비용으로 새로운 화물을 보내겠다는 제안이 받아들여졌다. 알제리석유공사는 판사가 '기술적'인 이유로 수사를 중단했다고 말했다. 이브라힘 판사는 수사가 '보류' 상태일 뿐이라며 이를 부인했다.

레바논의 또 다른 판사인 가다 아운도 '발트해' 스캔들을 파헤치기 시작했다. 그는 레바논 기독교 최대 정당인 자유애국운동(FPM)과 관련이 있다며 비판을 받은 인물이다.

FPM은 2009년부터 레바논 에너지부를 통제해 왔으며, 2006년부터 시아파 이슬람 정당이자 무장단체인 헤즈볼라와 동맹을 맺고 있다.

아운 판사는 돈세탁 혐의를 집중 수사할 예정이다. 이는 레바논 전기 산업을 둘러싼 가장 큰 부패 혐의 조사가 될 전망이다.

지난해 7월, 레바논 법원 1심 재판관 니콜라스 만수르는 석유 운송 테스트 결과를 조작하려는 음모를 꾸민 혐의로 20명을 기소했다. 기소장에는 불량 연료를 선적한 경우가 10차례 더 있었다는 주장이 담겼다. 해당 주장의 출처는 확인할 수 없었다.

기소장에 따르면 연료 검사 연구소와 선적 기관, 석유 회사, 해수부 관리들 간의 연결고리가 사실로 밝혀지면 모두 수백만 달러에 달하는 부패 스캔들이 될 수 있다.

알제리 소나트랙 BVI와의 계약 내용이 유출된 것은 바로 이 시기였다. 소나트랙이 무역회사 2곳을 통해 석유를 인수하고 공급하도록 주선한 것이 밝혀진 것이다.

해당 회사는 전화와 온라인을 통해 오픈 마켓에서 석유를 구입한다고 BBC 취재진에 설명했다. 석유의 내용물 구성이나 품질 테스트에는 관여하지 않는다고 했다.

연루된 두 무역회사는 초기에는 BB에너지(BB Energy)였고 나중에는 ZR에너지(ZR Energy)였다. 두 회사 모두 레바논의 유력 가문과 연결돼 있다.

유조선 '발트해'에 물자를 공급한 업체는 'ZR 에너지 DMCC(Dubai Multi Commodities Centre)'였다.

이 회사는 BBC에 해당 유조선 수송품에서 어떠한 결함도 인지하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자신들은 독립적이고 국제적으로 공인된 제3의 조사기관이 사양에 적합하다고 내린 결론에 의지했다고 말했다.

또 자사는 레바논 당국과 소나트랙이 결함 원인을 조사하는 일에 협조하고 있다고 전했다.

지난해 7월, 레바논 검찰은 ZR 에너지 DMCC를 뇌물, 사기 및 돈세탁 혐의로 기소했지만, 회사는 혐의를 강력히 부인하고 있다. 증거 불충분으로 사건을 기각해야 한다며 법원에 항소하기도 했다.

베이루트에 본사를 두고 있는 ZR 에너지 DMCC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 ZR 그룹 홀딩 역시 비슷한 혐의를 받았지만 부인했다. 회사 소유주는 테디(Teddy)와 레이몬드 다이나 자이나 라흐메(Raymond Zayna Rahmeh)라는 이름의 두 레바논 형제이며, 회사 이름은 소유주의 초성을 따서 지어졌다.

라흐메 형제는 두바이에 있는 ZR 에너지 DMCC의 실소유주는 자신들이 아니라며, ZR 브랜드 이름과 인프라, 은행 시설을 사용할 수 있는 권리를 넘겨 받은 이브라힘 자우크가 실소유주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기소장에는 ZR에너지 DMCC에서 근무하는 최고 비서의 말을 인용해 ZR 에너지 DMCC 실소유주를 라흐메 형제로 적시했다. 최고 비서는 회사 설립 초부터 이들에게 자금을 지원받았다면서 레바논 에너지부 직원들에게 보내는 선물 조율 업무도 자신이 담당했다고 밝혔다.

ZR그룹 최고 재무 책임자는 조사 과정에서 직원 7명이 두바이와 레바논 사무실 2곳 모두에서 일했다고 진술했다. 이러한 연결고리를 바탕으로 아운 판사는 라흐메 형제가 ZR 에너지 DMCC의 실소유주라고 판단했다.

라흐메 형제는 관련 혐의를 부인한다는 입장을 BBC에 전했다.

ZR그룹은 자신들을 둘러싼 각종 혐의에 정치적 동기가 깔려있다는 입장이다. 이들은 담당 판사가 레바논 최대 정당인 FPM당과 헤즈볼라와 연결됐다며 이 정당들이 통치 실패에 대한 주의를 돌리기 위해 소송을 시작했다고 주장했다.

검찰이 기소하고 나흘 뒤, 라흐메 형제는 항소했다. 새로 지정된 판사는 ZR 에너지 DMCC가 레바논에 있는 회사에서 법적으로 독립했다고 판단해 ZR 에너지 DMCC에 대한 대부분의 기소 내용을 취하했다.

당초 기소장에는 ZR 에너지 DMCC가 일종의 속임수를 쓰고 있다는 비난이 제기됐다. '노르딕 루스(Nordic Ruth)'라 불리는 유조선을 이용한 선적증거도 제시됐다.

2018년 3월에 녹음된 한 왓츠앱 메시지엔 이 회사의 CEO이자 등기 소유주인 이브라힘 자우크가 노르딕 루스에서 받은 석유 샘플에서 불량 연료가 감지되지 않도록 채취해달라고 요청하는 내용이 담긴 것으로 보인다.

ZR 에너지 DMCC는 해당 메시지에는 오해가 있다며 자우크가 우려하는 건 이전에 납품받은 기름의 샘플이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자신들에 대한 혐의는 헤즈볼라와 손을 잡은 FPM 구성원들의 정치적 동기에서 촉발된 것이며, 자사의 공정 경쟁을 막으려는 시도라고 주장하고 있다.

BBC 아랍어 서비스는 ZR그룹과 BB에너지 소유주들이 레바논 정치권과 광범위한 사업적 혹은 개인적 인맥을 맺고 있다는 점을 발견했다. 라흐메 형제는 레바논 국회의장의 사위인 아이만 조마아와 5개 회사를 공동으로 운영하고 있다.

테디 라흐메는 레바논 군당(Lebanese Forces party)의 기독교 지도자 사미르 기게아와 친분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레이몬드 라흐메는 마라다당(Marada party)의 기독교 지도자 술레이만 프랑게와 친구 사이다.

BB에너지 소유주인 바사트네 일가는 'COGICO'라고 불리는 시멘트 및 석유 회사의 지분도 다수 확보했다. COGICO의 공동 소유주는 진보 사회당 당수인 왈리드 점블랏이다.

BBC 아랍어 서비스는 또 BB에너지의 자매회사가 현 FPM 최고지도자 게브란 바실을 도운 걸로 추정되는 정황도 발견했다.

게브란 바실은 2010년 레바논에서 에너지 현대화 계획을 추진했던 에너지부 장관으로, 해당 계획은 결국 무산됐다.

미국 재무부는 지난해 11월 마그니츠키법(Magnitsky Act)에 따라 그를 제재 명단에 포함했다.

재무부는 "바실의 부패 활동으로 레바논 통치 체제가 약화됐고, 이는 레바논의 고질적인 부패 구조와 정치권의 후원 문화에도 영향을 미쳤다"고 언급했다.

바실은 미쉘 아운 현 레바논 대통령의 사위다. 아운 대통령은 가다 아운 판사와는 관계가 없지만 이들의 관계는 레바논의 정치권과 사법당국이 얼마나 치열한지를 보여준다.

아운 판사는 대통령과 FPM 정당과 가까운 사이라는 비난을 받아왔다. 그는 자신은 정치권과 어떤 유착 관계도 없다고 부인한다.

정치권과 사법 당국이 분리되지 못한 레바논의 체계는 이번 석유 스캔들과 사건 당사자 기소의 어려움을 여실히 보여줬다.

레바논의 모든 주요 종교단체들은 각자를 대표하는 정당있으며, 각 정당은 판사 할당권을 가지고 있다. 사법 당국이 종파주의를 대표하는 사람들로 구성될 때 이들의 부패 관련 수사엔 정치적 의도가 있는 것으로 간주되기도 한다.

아운 판사는 '발트해' 유조선 사건 수사 당시, 이브라힘 판사가 있는 특별조사위원회에 ZR에너지와 BB에너지에 대한 은행 정보를 제공해달라고 요청했다. 위원회는 은행 정보보호 문제를 들며 요청을 거듭 거부했다.

한 지역방송 TV와의 인터뷰에서 아운 판사는 이브라힘 판사가 비협조적이라고 비난했다. 그는 "특별조사위원회가 제 역할을 하지 않고 하고 싶어하지도 않는다"면서 "못 하는 게 아니라 안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BBC 아랍어 서비스는 이에 대한 이브라힘 판사의 의견을 물었다. 그러나 답변을 들을 순 없었다.

야히아 마라우드는 어떤 허황된 기대도 하지 않는다.

"사법부가 진실을 알아낼 수 있을지를 물었죠? 저는 레바논의 어떤 공공조직도 신뢰하지 않습니다."

문제의 석유가 레바논에 반입되는 걸 저지하려 했던 무니르 예히야 박사는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렸다.

"전기 사업 부문에서 일어난 일은 조직적 범죄 외엔 설명할 방법이 없습니다. 이 조직화된 범죄는 레바논 경제 붕괴 원인의 절반을 차지합니다."

그러나 마라우드는 굴하지 않고 계속 나아가기로 했다.

"제 의무를 다할 겁니다. 진실을 말하고 관련 서류를 법원에 제출할 겁니다. 언젠가는 레바논 국민들이 부패한 정치 계층을 바꿀 수 있기를 바라면서요."

오늘날 레바논 경제는 붕괴 직전에 있다. 초인플레이션의 여파로 광범위한 빈곤이 이어지고 있고, 의약품과 영아용 분유마저 부족하다. 정부는 연료를 살 형편도 되지 않고 급격한 전력 삭감까지 단행할 예정이다.

사람들은 '발트해' 사건이 레바논의 부패 문화를 개선할 강력한 계기가 될 것이라고 희망했다. 그러나 지금까지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BBC는 레바논 에너지부에 답변을 요청했으나 아직 답변을 받지 못했다.

ZR 에너지 DMCC는 공급 업체와의 계약 관계를 중단했다고 밝혔다.

레바논 대법원은 ZR 에너지 DMCC의 자금세탁과 국가 기만 행위에 대한 혐의를 취하했다. 남은 건 뇌물 수수 및 위조 혐의와 관련된 것인데, 당사자들은 혐의를 강력히 부인하고 있다. 혐의의 진위는 법정에서 밝혀질 것이다.

ZR 에너지 DMCC와 자우크는 자신들의 혐의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을 기다리고 있으며 조만간 혐의를 벗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전했다.

ZR그룹은 레바논 정부가 자신들의 과오에 대한 주의를 다른 곳으로 돌리기 위해 그룹에 혐의를 씌웠고, 이는 악의적인 캠페인의 일환이라고 주장했다.

BB에너지는 자사에 범죄로 기소된 직원은 단 한 사람도 없다고 밝혔다. 석유 테스트 연구소 직원에게 뇌물을 건넸다는 의혹도 전면 부인했고, 자신들은 엄격한 뇌물수수 금지와 부패 방지 기준이 있다고 항변했다.

알제리 국영 소나트랙은 BBC와 인터뷰에서 자사가 불법 행위에 연루됐거나 자사 제품이 기준에 적합하지 않는다는 어떠한 의혹도 모두 거짓이며 악의적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자사의 모든 사업 거래는 완전히 합법적이며 계약에 명시된 사양과 의무를 일관되게 충족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지난 15년간 레바논과 사업을 하면서 법적 소송이나 중재 요청까지 가본 적이 없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한 가지 변화는 있었다. 소나트랙 BVI와 레바논 에너지부는 계약을 갱신하지 않기로 했다.

레바논은 현재 국제시장에서 연료를 구입하고 있다. ZR 에너지 DMCC는 레바논에 연료 공급을 하는 업체 중 하나다.

레바논 폭발 사고의 진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광범위한 부패 의혹 - BBC News 코리아

 

레바논 폭발 사고의 진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광범위한 부패 의혹 - BBC News 코리아

심각한 정전을 겪는 레바논의 전기 사정 배후에는 권력자들의 유착 관계 의혹이 있다.

www.bbc.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