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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sia-Pacific Region Intelligence Center

스파이: 영국 스파이 6명이 말하는 그들의 삶 본문

Guide Ear&Bird's Eye4/허관 머리소리함 이야기(뇌 감청기)

스파이: 영국 스파이 6명이 말하는 그들의 삶

CIA bear 허관(許灌) 2020. 7. 25. 16:04

스파이의 삶이 실제 '제임스 본드' 영화와 같을까

BBC가 영국의 3개 정보기관 (MI5, GCHQ, MI6)에서 일했던 6명의 스파이와 이야기를 나눴다.

이름은 모두 가명을 사용했다.

'제임스 본드' 같은 삶?

MI6에서 10년간 근무한 케이트는 단호하게 아니라고 말했다.

"많이들 그렇게 생각하시더라고요. 물론 나쁘지 않아요. 멋져 보이니까요."

"하지만 아니에요. 모두가 에스턴 마틴이나 쾌속정 같은 펑키한 걸 타고 이동하지는 않아요. 버스나 지하철에 있을 때가 훨씬 많죠."

MI6에서 15년을 근무한 존은 스파이에 대한 제임스 본드 영화 속 묘사는 대부분 과장됐지만, 단 한 가지만은 사실이라고 말한다.

"마티니를 마시고 총을 들고 다니는 장면들은 사실이 아니에요."

"하지만 개발 부서 소장 Q는 실제로 존재해요. Q는 실존 인물이에요."

영화 속 Q는 MI6의 무기 담당관으로, 그 유명한 본드카를 비롯한 수많은 스파이 무기를 제작한 사람이다.

"우리가 사용할 무기를 제공해주는 훌륭한 기술자가 있어요. 제임스 본드의 것보다 우리 것이 나아요."

스파이가 되기 어려울까?

그럴 수도, 아닐 수도 있다는 게 조의 대답이다.

MI5에서 채용 업무를 담당하는 조는 채용을 위한 신원 확인을 위해 보통 6개월에서 9개월 정도의 시간이 소요된다고 말했다.

또 그는 이 과정이 사적이기는 하지만 "숙련된 신원 확인 담당관들이 과정을 쉽게 만들어준다"고 덧붙였다.

아미샤는 2년 전에 MI5에 입사했다.

그는 신원 확인 담당관과 보낸 3~8시간의 인터뷰 시간이 오히려 도움이 많이 됐다고 말했다.

"당신의 잘못을 캐내려는 사람들이 아니에요."

마약 복용 전적이 스파이가 되는 데 영향을 미칠까?

GCHQ 본부

놀랍게도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다.

조는 모든 것이 사례별로 검토된다고 말한다.

"16살 때 파티에서 마약을 한번 복용했다고 해서 입사를 못 하는 건 아니에요. 하지만 입사하고 나면 마약은 복용할 수 없습니다."

BBC 인터뷰에 참여한 6명의 스파이는 모두 마약 검사를 받았다고 말했다.

정부의 정보 수집 및 사이버 보안 기관인 GCHQ에서 일하는 릴리는 마약 검사 과정에서 머리카락 샘플 채취를 위해 머리를 뽑았는데 자신의 전담 미용사가 뽑혀 나간 부분을 보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고 말했다.

"원래 엄청 수다스러운 사람인데 갑자기 나가더니 막 소리를 지르는 거예요."

"그래서 '아, 그 짧은 머리요? 괜찮아요. 거기 원래 그래요. 당신이 그런 거 아니에요'라고 말해줬죠."

아무한테도 내가 스파이라고 말하지 못한다?

배우 톰 히들스턴

할 수 있다. 다만 누구에게 말할지 아주 진지하게, 오랫동안 생각하고 말해야 한다.

조는 MI5에서는 일반적으로 "가까운 가족이나 절친한 친구에게 말할 수 있다"고 조언한다고 말했다.

존은 MI6 지원 사실을 그의 가족들에게 바로 털어놓았다.

"부모님에게 꽤 빨리 말했죠. 아버지가 위층에 올라가시더니 존 르카레의 소설 전집을 가지고 내려오시더니 말씀하시더군요. '인터뷰 전에 이거 다 읽어야 할걸.'"

"크게 도움은 안 됐어요."

"제 형제들에게는 꽤 오래 말하지 않았어요. 이 정보에 대한 부담을 공유하고 싶지 않았거든요."

"저를 보호해야 한다고 느끼지 않았으면 했어요."

이에 조도 거들어 자신이 지금은 자신의 아내가 된 당시 여자친구와 6개월간 연애 끝에 어렵게 사실을 털어놓았다고 말했다.

그는 대부분의 사람은 자신을 공무원으로 소개하거나 질문을 피한다고 덧붙였다.

조는 MI5에 지원하는 사람들이 했던 재밌는 질문들을 회상했다.

"누가 그랬어요. '여기서 일할 때는 사복을 입나요? 아니면 변장을 하나요?'"

"또 이런 사람도 있었죠. '여기서 일하려면 여자친구를 버려야 하나요? 그래야 한다면 그렇게 하겠습니다.'"

스파이는 자신을 스파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MI6 본사

스파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자신을 스파이라고 소개할 상황이 많지가 않다.

"우리가 하는 일이나 누구를 위해 일하는지에 대해 보통 말하지 않기 때문에 크게 소리 내서 말할 일이 전혀 없어요."

"크게 소리 내 말하는 게 오히려 이상하죠."

MI6의 존은 스파이라는 명칭에 만족한다고 말한다.

"저는 저 자신을 스파이라고 불러요. 우리가 하는 일이 그것이고 간첩 행위를 좋은 목적을 위해 하는 거잖아요. 나라를 안전하게 지키고 번영하도록 돕기 위해 노력하는 거죠. 저는 저 자신을 스파이라고 생각합니다."

케이트 역시 소수의 사람에게만 자신을 스파이라고 소개했다고 말했다.

"살면서 딱 5명에게 말했어요. 당신이 여섯 번째네요."

"우리는 비밀을 다루는 사람이고, 그게 자산이고 우리가 하는 일이니까요."

재미없는, 진지한 일이다

이들도 평범한 직장인처럼 가끔 공원에 나가 구워온 빵을 함께 먹기도 한다.

사내 장기자랑 행사도 있다.

존은 MI6에 '엄청나게 웃긴' 연례 팬터마임 행사가 있다고 말한다.

"서로 경쟁할 일은 많이 없으니까 이런 행사에 경쟁심이 불타오르죠. '누가 최고의 빵을 굽나?' 이런 거요."

GCHQ에서 10년간 근무한 다이아 역시 '사내 빵 굽기 행사'가 크게 열린다고 말한다.

여기에 MI5의 아미샤도 동의한다. "우리도 마찬가지예요."

옥스퍼드나 케임브리지 대학 출신의 '루퍼트'만 스파이가 될 수 있다?

옥스퍼드나 케임브리지 졸업생만 스파이가 되는 것은 아니다

아니다. 다이아는 첩보 기관이 네트워크로 형성된 집단이 아니라고 말한다.

"가장 큰 오해죠."

"저는 옥스퍼드나 케임브리지 대학에 가지 않았고, 공립대학이나 대학을 아예 가지 않은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그들이 기여할 수 없다는 뜻은 아니에요."

이들은 세 기관 모두 다양한 민족과 사회적 배경을 가진 사람들을 모집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세 기관은 올해 초 국회 청문회에서 다양성이 부족하다며 비판을 받았다.

조는 첩보 기관들이 이와 관련해 "진전을 이루고 있지만 앞으로 해야 할 일이 훨씬 더 많다"고 말했다.

"저희와 일할 수 있는 사람들의 '유형'은 정해져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누군가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야!' '그런 유형이 아니야'라고 말해도 저는 '그래도 지원해봐'라고 답합니다."

연락하기 어렵다

이것도 경우에 따라 다르다.

MI5 방문자들이 경비원에게 핸드폰을 반납해야 하는 것은 맞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연락이 닿지 않는 것은 아니다.

특히 릴리와 같이 아이들이 있는 부모의 경우는 언제나 연락을 받을 수 있다.

"뛰어난 기술력으로 아이들이 학교에서 제게 연락할 수 있도록 하고 있어요."

엄마인 조 또한 덧붙인다.

"아이가 상태가 좋지 않을 때 학교가 저희와 연락을 할 수 없는 상황에 부닥친 적은 없었어요. 아이가 아플 때 연락할 수 없다면 출근하지 않았을 거예요."

"휴대전화가 없는 것도 꽤 괜찮아요. 익숙해져요."

 

스파이는 '비현실적인' 스파이 드라마를 보는 것을 싫어한다?

아미샤는 BBC Three의 드라마 '킬링 이브'(Killing Eve)를 즐겨 봤다고 말했다

이것도 BBC가 인터뷰한 6명의 스파이들에 의하면 사실이 아니다.

아미샤는 BBC Three의 드라마 '킬링 이브'(Killing Eve)를 즐겨 봤다고 말했다.

그들 모두 BBC One의 스파이 드라마 보디가드를 본 적이 있다고 말했다.

케이트는 "너무 재밌었어요. 흥미로운 엔터테인먼트이기 때문에 인기가 있었던 거죠."

"잘 알려지지 않은 조직에 기반을 두고 있기 때문에 매력적이라고 생각해요. 실제와 다른 점을 하나하나 꼬집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여기서 하나하나 이야기하기 너무 많기도 하고요."

최근 또 다른 BBC Three 시리즈인 스파이 드라마 '킬링 이브' 역시 이들 사이에서 인기가 높았다.

아미샤는 이 시리즈 역시 진심으로 즐겼다며 연기가 훌륭했다고 덧붙였다.

"아 물론 화면을 부수고 말하고 싶을 때가 있죠. '아 그건 아니지!'"[BBC 뉴스 코리아]

 

정찰총국은 작전국과 정찰국, 해외정보국, 대화조정국(정책국), 기술국, 후방지원국 등 6개 부서로 이루어져 있다. 업무와 관련된 내용을 북한 무력 최고사령관 김정은에게 직접 보고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1(작전국): 과거 북한 노동당 작전부의 임무였던 간첩의 양성과 침투 등을 담당한다.

2(정찰국): 과거 북한 인민군 총참모부 정찰국의 임무였던 대남 간첩 남파와 암살, 납치 등을 담당한다.

3(해외정보국): 과거 북한 노동당 대외정보조사부의 임무였던 해외의 정보 수집과 국제 대남 테러 등을 담당한다.

5(대화조정국): 남북 대화와 관련한 업무를 담당한다.

6(기술국): 사이버 테러와 해커 양성, 관련 장비 개발 등을 담당한다.

110호 연구소(기술정찰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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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찰총국의 사이버 테러 인력들은 대부분 김일성종합대학, 김책공업종합대학에서 교육을 받았으며 실전 배치된 담당 인원은 3천여 명으로 알려져 있다.

정찰총국 산하에는 공작원의 침투를 위한 수 개의 연락소가 있으며, 외국에 무기를 수출하는 업체인 청송연합을 통제하고[20] 홍콩에 기반을 둔 회사인 션강무역투자회사 등을 배후에서 조종하고 있다는 의심을 받는다.

 

-간첩은 각국정부를 위해서 스파이활동을 하는 사람들을 지칭하고 있다

북한정부 간첩망은 북한 조국통일민주주의 전선 소속단체이면서 대남공작원으로 활동하는 재중총련, 재일총련, 재한총련등이다 이들은 정찰총국의 남북대화업무팀 정책국(대화조정국)이나 대외정보수집팀 해외정보국의 하부단체이다

북한정부는 대남 돈(자금 제공장소)을 원하고 있으며 친북 대남 재한총련(반제민족민주전선 중앙위원회, 서울) 합법화를 원하고 있다.  남북평화공존 때는 친북세력이 평화세력이 될 수 있지만 남북냉전시대 때는 친북세력이 무장투쟁 전쟁세력이 될 수 있다

북한 조국통일민주주의 전선 소속단체이며 대남공작단체는 재중총련, 재일총련, 재한총련(반제민족민주전선 중앙위원회)

북한 노동당의 구조

북한 조국통일민주주의 전선 소속단체이며 대남공작기구[ 통일전선부 산하기관인 제225부(구 대외연락부)]는  재중총련, 재일총련, 재한총련(반제민족민주전선) 등이다 이들 단체는 북한정부의 통일전선부 제225부(구대외연락부)가 직접 관리하는 조직이다

통일전선부(統一戰線部)는 북한의 정보 기관이다. 북한 노동당에서 북한(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적화통일을 추진하고 대남공작도 하는 부서이다.

2013년 이후 통일전선부 산하기관인 제225(구 대외연락부)가 일본의 재일본조선인총련합회, 중국의 재중조선일총련합회, 한국의 재한조선인총련합회(반제민족민주전선)를 지도하고 있다.

북한 조국통일민주주의 전선 소속단체이며 대남공작기구[통일전선부 산하기관인 제225부(구 대외연락부)]는  재중총련, 재일총련, 재한총련(반제민족민주전선) 등으로 주체연호 세습제 1인 종신직 좌익군정의 북한식 사회주의 국가(김일성 김정일주의)를 지지하는 중국, 일본, 한국등지 동포들이다 

 

김일성 주석 탄생 108돌, 재일총련, 재중총련,반제민전에서 축하 편지

김일성 주석 탄생 108돌을 맞은 15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총련) 중앙상임위원회가 축하 편지를 드렸다고 조선중앙통신이 보도했다.

 

조선중앙통신은 이날 편지 내용을 공개했다.

 

총련은 편지에서 “위대한 수령 김일성대원수님께서 탄생하신 주체1(1912)년 4월 15일은 우리 민족이 반만년역사에서 처음으로 위대한 인민의 태양을 맞이한 대통운의 날이며 인류자주위업의 새 기원이 열린 뜻깊은 역사의 날”이라고 밝혔다.

 

이어 “영생불멸의 주체사상으로 시대와 혁명의 앞길을 밝혀주시고 현대역사를 자주의 궤도 우에 올려세우신 걸출한 사상이론가, 위대한 실천가이시며 한세대에 두 제국주의를 타승하시여 조국과 민족을 구원하시고 조국땅우에 자력부강, 자력번영의 만년 토대를 마련하여주신 민족 재생의 은인, 사회주의 조선의 시조”라고 강조했다.

 

또 총련은 “위대한 수령 김일성 대원수님께서 시원을 열어놓으시고 위대한 영도자 김정일대원수님께서 세계해외교포 운동의 본보기로 이끌어주신 총련애국위업은 오늘 경애하는 최고영도자 김정은 원수님을 높이 모심으로써 새로운 발전단계에 들어서게 되었으며 위대한 대원수님들께서 재일 동포들과 맺어주신 뜨거운 정과 혈연의 역사는 변함없이 흐르고 있다”라고 말했다.

 

끝으로 총련은 전체 총련 일꾼들과 재일 동포들이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제7기 제5차전원회의의 기본사상, 기본정신을 총련애국위업에 철저히 구현하여 재일조선인운동의 전성기를 앞당기기 위한 투쟁에서 전진을 이룩해나갈 결의에 충만되어 있다”면서 “어머니 조국을 옹위하고 조국의 사회주의 강국건설에 특색있게 이바지하며 격변하는 정세의 요구에 맞게 조국통일운동과 일본 인민들과의 대외활동을 진공적으로 벌려나가겠다”라고 강조했다.

 

조선중앙통신은 재중조선인총연합회(재중총련)와 반제민족민주전선(반제민전) 중앙위원회도 축하 편지를 보내왔다면서 내용을 공개했다.

 

재중총련은 김일성 주석이 “10대의 어리신 나이에 혁명의 길에 나서시어 장장 20성상 피어린 항일대전의 만고풍상을 다 헤치시며 조국 해방의 역사적 대업을 이룩하시었다”라고 강조했다.

 

이어 “희세의 위인을 최고영도자로 높이 모신 사랑하는 내 조국을 충성 다해 받드는 길에 재중조선인총연합회와 전체 재중 동포들의 창창한 앞날과 승리가 있다는 것을 폐부로 절감하면서 위대한 김정은 시대에 사는 공화국의 해외공민된 더없는 긍지와 영예를 끝없이 빛내어갈 굳은 결의에 넘쳐있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재중총련은 “전체 일꾼들과 재중 동포들의 절절한 소망을 담아 태양 민족의 무궁한 번영과 주체의 사회주의 강국건설의 승리를 위하여, 조국의 자주적 통일을 위하여” 김정은 위원장의 안녕을 축원했다.

 

반제민전은 “역사적인 조국 해방 75돌이 되는 뜻깊은 올해에 조국통일위업 실현의 전환적 국면을 열어나가며 민족의 열망과 대세에 도전해 나서는 외세와 온갖 반역무리들을 청산하기 위한 투쟁에 총매진해나가겠다”면서 김정은 위원장의 건강을 축원했다.[김일성 주석 탄생 108돌, 재일총련, 재중총련,반제민전에서 축하 편지자료]

 

 

1,재중조선인총연합회[在中朝鮮人總聯合會, 재중총련]

재중조선인총연합회(在中朝鮮人總聯合會)는 중국의 북한 출신 교포들이 결성한 민간 조직이며 북한정부의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 소속단체이며 대남 공작기구이다. 재중총련은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 소속 단체로서 최고인민회의 대의원도 있다

 

일본의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계열 동포들과 달리 정식으로 북한 국적을 갖고 중국에서 거주하는 사람들의 조직이다. 중국에 거주하는 북한 국적자는 대략 7000명 정도로 집계된다.

 

약칭으로 조교(朝僑)라고 불린다. 2002년 보도에 따르면, 북중관계가 예민해지면서 조교들은 북한(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간첩으로 지목돼 중국 당국에서도 예의주시 중이었다. 중국에서는 조교에게 "거류증"을 주고, 북한은 "해외공민증"을 발급한다.

 

이 단체에서는 기관지로 백두-한나라는 월간잡지를 발행하고 있으며, 동명의 인터넷 사이트도 운영하고 있다.

 

재중조선인총연합회의 모체는 1990년에 범민련 산하에 결성된 재중조선인본부이다. 이듬해인 1991년에 재중조선공민총연합회라는 이름으로 출범하였다가 1998년에 재중조선인총연합회로 확대개편되었다

 

북한 조국통일민주주전선 소속단체이며 대남공작기구는  재중총련, 재일총련, 재한총련(반제민족민주전선 중앙위원회, 서울) 등이다

 

재중조선인총연합회(在中朝鮮人總聯合會)

북한 국적으로 중국에 합법적으로 거주하는 조선인의 민간조직.

(1)개설

재중조선인총연합회의 본부는 랴오닝성 선양에 있으며, 본부 현판에는 '조총련'으로 표기되어 있다. 산하협회는 요녕, 연변, 길림, 가목사, 목단강, 하얼빈, 중남 등 동북지구와 베이징을 중심으로 하고 있으며, 지구협회는 약 61개를 두고 있다. 관련된 계층별 조직으로는 재중조선경제인연합회, 재중조선청년연합회, 재중조선여성위원회 등이 있다. 상임 간부로 양영동 의장 포함 선양 본부에 7인이 활동하고 있고, 현재 본부 주소지는 심양시 황고구 삼강가 3-2이다. 소식지로는 월간 백두-한라를 발간하고 있다.

 

(2)연원 및 변천

중국에서는 1950년대부터 북한 공민을 위한 조직이 있어서, 조국(북한)의 소식을 중국의 동포들에게 전달했는데, 여기에는 56명의 북한 사람들이 포함되어 속칭 ‘56인 위원회라고도 하였다. 이 조직은 이후 비상설적인 공민조직으로 활동하였다.

 

재중조선인총연합회의 결성 배경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956, 조선로동당 외곽조직으로 대외문화연락위원회 설립

1990 8, 조국통일범민족련합(범민련) 재중조선인본부 결성

1991 3 3, 재중조선공민총연합로 재중조선인 운동단체 출범 (초대의장: 양영동, 월간소식지 백두-한라발간, 본부: 선양 서탑)

1992, 재중조선인총련합회로 개칭되여 상설기구로 활동

1998 8, 통일대축전을 전후한 시점에서 확대재편.

2001 3, 재중총련 결성 10주년 기념보고대회: ‘김정일 로동당 총비서의 영도아래 통일애국운동을 전개할 것을 다짐

2002, 선양시 황고우로 본부 이동

 

(3)기능과 역할

양영동 초대의장은 재중조선인총연합회[약칭 재중총련, 조교(朝僑)]의 활동목적에 대하여 공민들을 묶어 세워 조국통일과 조국의 강성대국 건설에 이바지하며 조중친선을 강화하는데 이바지 하는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현재 구성원의 대부분은 북한 식당이나 북중무역회사를 경영하는 실업가로 구성되어 있다. 재중총련은 일본의 재일조선인 총연합과 자주 비교되었으나 일본의 조총련과 같은 자금력과 동원력은 구비되어 있지 않다고 한다. 그러나 이들은 상당히 강한 결속력을 자랑하고 행동력과 정보수집력을 갖추고 있으며, 북경의 여러 대외우호조직과도 두터운 인맥을 자랑하고 있다. 하지만 문화대혁명 시기와 같이 북중관계가 악화되었을 때는 상당한 따돌림과 차별을 받았다고 한다. 그러나 그들은 중국에 귀화하지 않고, 일관되게 친북활동을 꾸준히 해왔기 때문에 중국 주재 북한 대사관과 좋은 파트너로 알려져 있다.

 

재중총련은 해외공민증(북한 발급), 외국인거류증(중국 발급)을 위해서 각 현()이나 시()별로 책임자를 두고 있다. 그리고 북한에 행사가 있을 때 이들의 집에 깃발을 내걸고, 1년에 한 번씩 김일성이 유년시절 다녔다는 길림 육문(毓文)중학교에 모여 대대적인 행사를 갖고 있다. 그리고 이 모임에서는 충성금 모금이나 북한의 우상화 출판물 배포 문제 등을 논의하기도 하고, 친목을 다지기도 한다.

 

재중총련에서는 1998년부터 모범지부쟁취운동을 하고 있다. 각 지부의 역할을 강화하기 위한 운동은  지부조직의 건설,  정규적인 학습,  다양한 행사운영 등을 주요 목표로 하고 있다. 이 운동은 연간 진행되고 있으며, 연말에 평가사업이 있다. 지금까지 5개 지부가 모범지부를 쟁취하였으며, 길림시, 연길시, 심양시는 2중모범지부를 쟁취하였다. 모범지부로 표창된 단위들에 대해서는 동포들이 집단적으로 조국을 방문할 기회가 생긴다고 한다. 또한 4 15일이나 2 16일을 비롯한 북한의 명절에는 중국각지의 공민들이 집결하여 216 경축 위대성연구토론회와 강연회 등 특색있는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4)현황

2008 1월 현재 중국의 영구거류증 및 북한의 해외공민증을 발급받은 북한 공민은 1만명 정도이고(한국추산 7000), 2011 12월 이후, 김정은의 후계승계 과정에서 선전선동활동을 전개하였다. 또한 2012 5월에는 월간지 백두-한나에 김정은의 노작 선군의 기치를 더 높이 추켜들고 최후승리를 향하여 힘차게 싸워나가자의 전문을 게재하였다.

 

(5)의의와 평가

재중총련은 북중 우호를 의한 민간활동을 전개하고 있으며, 일본의 조총련과 대비되어 설명되고 있으나, 재일 조총력 만큼의 조직력이나 자금력이 구비되어 있지 않다. 또한 김정은 체제 이후 김정은을 위한 선전선동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재중총련, 中 지린성 김일성 모교서 '태양절' 행사

지난 2월 주선양 북한총영사관이 주최한 광명성절 기념행사

중국 내 북한 출신 교포들의 민간단체인 재중조선인총연합회(재중총련)가 '태양절'(김일성 주석 생일)인 15일 중국 지린성의 김 주석 모교에서 축하행사를 열었다고 중국 료녕신문이 보도했다.

신문은 북한 측이 이날 지린성 지린(吉林)시의 김 주석 모교인 위원(毓文)중학교에서 관련 행사를 열었다고 보도했다.

이날 행사에는 북한 측에서 구영혁 주선양(瀋陽) 총영사와 북한 대표단, 해외 거주 북한인, 동북 3성 거주 북한인 등이, 중국 측에서 가이동핑(蓋東平) 지린시 부시장 등이 참석했다.

주선양 북한총영사관은 지난 12일 랴오닝성 선양 내 한 호텔에서도 축하행사를 연 바 있다. 이 자리에는 중국 동북 3성 정부뿐만 아니라 철도·과학·문화 등 여러 분야 관계자들이 참석했다.

당시 이 자리에서 구 총영사는 앞으로도 랴오닝성을 비롯한 중국 동북 3성과 적극적인 교류·협력 의사를 밝혔다고 료녕신문은 전했다.

가오커(高科) 랴오닝성 정치협상회의 부주석은 "랴오닝성은 북한과의 교류를 매우 중시해왔다"면서 "앞으로도 변함없이 북·중 친선을 발전시키고 지역 간, 특히 평안북도와의 교류협력을 계속 강화해나가겠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bscha@yna.co.kr

 

조선대 시위 강력비판…"세계에서 가장 추잡하고 더러운 인권유린"

북한 선전매체 메아리는 21일 "16일 재중조선인총연합회 대변인이 '일본의 무분별한 반공화국소동으로 얻을 것은 파멸 밖에 없다'라는 제목의 담화를 발표했다"고 보도했다.

재중총련 대변인 담화는 일본 도쿄도 고다이라시 조선대 앞에서 일본 우익들이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 산하 조선대를 비방하고 대학의 법인 인가 취소 등을 요구한 것에 대해 "우리 겨레가 커다란 격분으로 치를 떨고 있다"고 지적했다.

재중총련은 "일본 반동들이 우리 민족의 신성한 교단인 조선대학교까지 몰려가 용납 못할 깡패 난동을 부린 것은 우리 공화국에 대한 정면도전"이라며 "세계에서 가장 추잡하고 더러운 인권유린이라는 것을 만천하에 보여준 행위로 규탄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일본에서 끊임없이 벌어지고 있는 반공화국, 반총련 책동은 몇몇 깡패쓰레기들의 난동으로 볼 수 없다"며 "대조선 적대시를 국책으로 내세우고 사회 전반에 조선인 배타의식을 주입시키고 있는 일본 정부 당국에 의해 자행되고 있는 조직적, 국가적 범죄행위"라고 주장했다.

재중총련은 "우리 민족은 힘이 없어 식민지 노예로 살아야 했던 민족은 더는 아니다"라며 "일본 반동들은 역사의 무덤 속으로 들어가지 않으려면 총련을 비롯한 재일 조선인들에 대한 망동을 중지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1956년 설립된 조선대는 일본 내 조선학교 중 최고 교육기관으로 북한이 '민족의 자랑이며 동포들의 재부'라고 주장하는 곳이다. 북한은 지난 16일 '노골적인 민족배타행위는 용납 못 할 국가범죄다'라는 제목의 조선중앙통신 논평을 통해서도 일본 우익의 조선대 겨냥 시위를 비판했다.

통신은 "아베 당국은 대화 운운 전에 일본에서 총련이 우리 공화국의 존엄과 자주권을 대표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며 "총련의 애국 위업과 재일 조선청년의 애국심을 모해·압살하려고 날뛸수록 우리 인민의 대일 적개심은 더 높아질 것"이라고 밝혔다. 

<연합인터뷰> 양영동 재중총련 의장

중국 동포들을 이끌고 `6ㆍ15 공동선언 발표 4돌 기념 우리민족대회"에 참가중인 양영동 재중조선인총연합회(재중총련) 의장은 16일 "이번 대회를 통해 슬기롭고 지혜로운 민족으로서 외세에 의해 분열된 조국을 반드시 통일할 수 있다는 확신을 얻었다"고 소감을 밝혔다.

재중총련은 해방 이전 중국 산해관 이남에서 태어난 당시 조선 국적을 가진 동포들로 구성된 조직으로 중국 국적을 가진 조선족 동포들과 구별된다고 양 의장은소개했다.

그는 "해방 이후 남북이 갈라진 뒤에 학교를 다니거나 직장을 구하려 산해관 이북으로 올라간 동포과 중국에서 태어난 동포들은 모두 중국 국적을 갖게 돼 현재 재중총련 소속 동포들은 1만여명 남짓"이라고 밝혔다.

이번 대회에 참가한 재중총련 대표단 11명은 북한 여권을 갖고 입국한 것으로전해졌다.

해방 전인 7살 때 서울을 가본 후 남녘 땅은 처음이라는 그는 "60년만에 다시남쪽에 오게 돼 감개가 무량하다"며 "우리가 갖고 있는 통일에 대한 의지를 후배들도 알게 교양하고 꼭 이어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phillife@yna.co.kr

재중총련, 김일성 주석 탄생 108돌 경축행사 진행

김일성 주석 탄생 108돌을 맞아 재중조선인총연합회(재중총련)가 경축 행사를 진행했다고 조선중앙통신 19일 보도했다.

조선중앙통신은 “15일 길림육문중학교에 높이 모신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의 동상에 재중조선인총연합회와 중국항일혁명열사 장울화가족, 길림육문중학교 등의 명의로 된 꽃바구니들이 진정되었다”라고 전했다.

이어 통신은 “심양주재 우리나라 총령사관에 높이 모신 위대한 수령님들의 영상작품에 최수봉 제1부의장을 비롯한 재중조선인총연합회 본부일꾼들과 재중 동포들이 꽃바구니를 진정하고 인사를 드리었다”라고 말했다.

재중총련은 14일에 경축 모임과 회고 모임을 진행했다.

재중총련 회의실에서 진행된 경축 모임에서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에 보내는 축하편지가 채택되었으며, 최수봉 재중총련 제1부의장을 비롯한 본부일꾼들이 참가했다고 한다.

통신은 회고 모임에서 모임참가자들이 김일성 주석의 업적을 회고했으며, 재중총련을 선대 지도자와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해외동포운동사상을 충직하게 받들어나가는 애국조직으로 튼튼히 꾸려나갈 결의를 다졌다고 밝혔다.

한편 통신은 “재중조선인총연합회 산하 연변지구협회와 길림지구협회를 비롯한 여러 조직에서도 다채로운 경축행사들을 진행했다”라고 전했다.

중총련 "어떤 정세 변화에도 김정은 영도 받들 것"

 중국 내 북한 출신 교포들의 민간단체인 재중조선인총연합회(재중총련)가 '정세변화'에도 흔들리지 않고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을 따르겠다고 다짐했다.

19일 조선중앙통신에 따르면 재중총련은 김 위원장이 '공화국 원수' 칭호를 받은 5주년을 맞아 지난 17일 김정은 위원장에게 축하 편지를 보냈다.

중앙통신은 "편지는 재중조선인총연합회 일군들과 전체 재중 조선인들은 그 어떤 정세의 변화 속에서도 추호의 동요 없이 경애하는 원수님(김 위원장)의 영도만을 한마음 한뜻으로 받들어 나갈 것이라고 강조하였다"고 밝혔다.

편지는 북한의 최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급 '화성-14' 시험발사 성공이 "원수님의 애국 헌신과 철의 담력과 배짱이 안아온 승리의 뇌성"이라고 치켜세우기도 했다.

재중총련이 편지에 이런 내용을 담은 것은 북한의 최근 미사일 발사 등 핵 능력 고도화로 인한 중국의 대북제재 동참에도 재중 교포들은 흔들리지 않는다는 일종의 '충성맹세'로 해석된다.

중앙통신에 따르면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조선총련) 중앙상임위원회도 17일 김 위원장에게 축하 편지를 보내 "재일동포들의 애국 충정을 모아 조국의 사회주의 강국 건설에 특색있게 이바지하겠다"고 다짐했다.

kimhyoj@yna.co.kr

 

북한 김영남, 재중조선인총연합회 축하단 회동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위원장이 지난 18일 만수대의사당에서 리순남 부의장을 단장으로 하는 광명성절경축 재중조선인총련합회축하단을 만났다고 조선중앙통신이 19일 보도했다

중국에서 활동하는 '중국판 조총련' 조직: 在中(재중)조선인총연합회

2001년 조직 결성 10돌 기념보고대회에서 “재중 총련이 지난기간에 거둔 성과들을 김정일 총비서의 영도와 사랑의 결과”라고 밝혀.

북한 국적을 갖고 중국에 거주하는 ‘조교’(朝僑)들의 단체인 재중조선인총연합회(재중총련)는 1991년 중국 요령성 선양에서 500여명의 친북인사들을 주축으로 조직됐다.

현재 중국 길림성, 요령성, 흑룡강성 등 동북3성에 거주하는 조교는 대략 3000~4000여명 정도이며, 이들은 북한 노선을 적극 지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재중총련 양영동 의장은 2008 111일자 인터넷 <연변통신>과의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단체의 내력을 소개한 바 있다.

<비상설적인 기구로서 활동하고 있었던 공민조직은 1991 33, 조국통일범민족련합(범민련, 기자 주: 이적단체) 재중조선인본부의 결성을 계기로 재중동포들의 운동단체로서 새로운 출발을 하게 되였다. 이듬해에는 재중조선인총련합회로 개칭되여 상설기구로서의 활동을 벌리게 되였다.

재중총련은 심양에 본부가 있고 7개 지구(료녕, 연변, 길림, 가목사, 목단강, 할빈, 중남)에 산하 협회를 두고 있다. 그리고 지구협회아래에 61개 지부가 있다. 재중조선경제인련합회, 재중조선청년련합회, 재중조선녀성위원회 등의 계층별조직도 꾸려져있다. 현재 전임일군은 심양의 본부에서 사업하는 7명이다.

양영동 의장은 재중총련의 활동목적에 대하여 공민들을 묶어세워 조국통일과 조국의 강성대국건설에 이바지하며 조중친선을 강화하는데 이바지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재중총련에서는 1998년부터 모범지부쟁취운동을 벌리고 있다. 각 지부의 역할을 강화하기 위한 운동은 지부조직의 건설 정규적인 학습 다양한 행사운영 등을 주요목표로 상정하고 있다. 운동은 년간을 통해 진행되며 년말에 평가 사업이 있다. 지금까지 5개지부가 모범지부를 쟁취하였으며 길림시, 연길시, 심양시는 2중 모범지부를 쟁취하였다.

모범지부로 표창된 단위들에 대해서는 동포들이 집단적으로 조국을 방문할 기회가 차례지게 된다고 한다.  4 15일이나 2 16일을 비롯한 조국의 명절에는 중국각지의 공민들이 집결하여 특색 있는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한편 조국의 소식과 각지 지구협회, 지부의 활동을 편집한 뷸레찐 백두-한라도 매달 발간하고 있다>

재중총련의 양영동 의장은 2001년 조직 결성 10돌 기념보고대회에서 재중 총련이 지난기간에 거둔 성과들을 김정일 총비서의 영도와 사랑의 결과라며 앞으로도 장군님의 영도를 높이 받들고 통일애국 운동을 더욱 힘 있게 벌여 나갈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재중조선인총연합회 부의장인 최수봉 공동부위원장을 단장으로 하는 '조선반도의 평화와 자주통일을 위한 연석회의 중국지역준비위원회 통일자전거행진단'이 3일 북한 평양의 만수대 언덕에 헌화하고 있다

 

2.재일본조선인총련합회[在日本朝鮮人総聯合会, 재일총련]

재일본조선인총련합회 중앙본부

재일본조선인총련합회(在日本朝鮮人総聯合会)는 일본의 북한 출신 교포들이 결성한 민간조직이며 북한정부의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 소속단체이며 대남 공작기구이다. 재일총련은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 소속 단체로서 최고인민회의 대의원도 있다

 

약칭은 조선총련(朝鮮総聯), 총련(総聯)이며, 대한민국에서는 조총련(朝総聯)이라고 부른다. 재일본조선인련맹을 모태로 1955 5 25 ~ 5 26일 도쿄도 다이토구 아사쿠사 공회당에서 한덕수 의장의 발기에 의해 결성되었다.

 

일본 내의 사실상 북한(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대표부이다. 련합회는 총련의 강령과 규약을 승인하는 모든 재일 조선인에게 개방되어 있다. 중앙 본부는 일본 도쿄도 지요다구 후지미 2-14-15에 있다.

(1)역사

재일본조선인총련합회는 1955 5 25일에 결성되었고, 초대의장은 한덕수(韓德銖)이다. '재일본조선인상공인동맹' '재일본조선인노동자동맹', '재일본조선인민주여성동맹' 등의 각 소수의 계층을 대표하는 단체들과 '재일본조선인인권위원회' '재일본조선인평화통일위원회' 같은 시민단체들을 운영하고 있으며, 그 수가 수십여 개가 되고 있다. 그 중에서 학회는 고고학계의 전문학자들이 결성한 '고고학자동맹' '사회과학연구소' 등이 있는데, 이 단체들은 북한 단체들과 교류를 맺고 있다.

 

총련에서는 각 단체들을 운영하는 것 외에도 기관지인 조선신보를 발행하고 있다. 이 신문은 1945 10월에 창간되었는데, 처음에 이름은 우리신문이라고 불렸다. 그 후 1960년도에 민중신문과 해방신문으로 이름을 바뀌다가 1970년대에 들어서 조선신보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 조선신보는 월요일과 목요일을 제외하고 매일 발행되며, 영문판으로 The People's Korea(인민조선)을 발행하고 있다. 자매지는월간 조국(月刊 祖國)이다.

 

한편, 재일본조선인총련합회에서는 '조선학교'로 불리는 교육기관들을 운영하고 있는데, 초등교육기관인 '초급학교', 중고등교육기관인 '중급학교' '고급학교', 대학교육기관인 '대학교'를 갖추고 있다. 이 학교들은 거의 대부분 지방에 펼쳐져 있다. 대학교는 조선대학교가 있다.

 

2003년에 한덕수 재일본조선인총련합회 의장이 사망하자, 서만술(徐萬述)이 재일본조선인총련합회 의장이 되었다.

2012년에 현재 의장은 허종만이다

 

(2).개요

북한의 재일본공민단체라고 자칭하며, 북한 정부 및 북한 노동당 지도부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2013년 이후 북한 노동당 소속 정보 기관인 통일전선부 산하 제225(구 대외연락부)의 지도를 받고 있다. 설립 당시는 일본에 체류하고 있는 조선적 조선인을 대상으로 한 민족학교의 운영과 조선적 조선인 경영자를 대상으로 융자를 시행하는 등 일종의 상조회 조직으로 기능했으나 본국의 정치상황에 연동하여 그 실태는 변모해 갔다. 도쿄도에 중앙본부를 두고 일본 전역에 본부가 설치되어 있으며, 각지에 지부 조직이 있다. 중앙본부의 소재지는 도쿄도 지요다구 후지미 2-14-15이다.

 

북한 법률상으로 조선총련 구성원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북한) 공민이지만, 그중 북한 국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의 실제 수는 알지 못한다. 일본에서는 국가로서 승인되지 않은 북한의 국적은 인정되지 않고 있다. 조선총련의 구성원은 일본 법률상 조선적에 해당하는 사람이 많고, 또 대한민국 국적과 일본 국적을 가진 사람이 많으나, 거의 대부분은 지리적으로는 지금의 대한민국 출신으로 북한과 지연, 혈연이 없는 사람으로 구성되어 있다. 북한정부는 사실상 재일 자국민에 대해서는 이중국적을 인정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2018년 현재, 허종만 의장을 비롯해 5명의 간부가 최고인민회의 대의원(국회의원)으로 되어 있다. 조선총련 출신자 중에는 재일본대한민국민단의 단장이 된 예도 있으며, 재일한국  조선인사회에서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

 

발족 당시부터 공산주의를 지지했고, 그 후 냉전기 공산주의 진영을 지지하는 단체로서의 성격을 명확히 했다. 이것이 일본 정부와 경찰 등 치안기관과의 긴장감을 낳게 한 요인이 되었다.

a.공안조사청의 조사

불법활동의 혐의가 있어서 공안조사청의 감시를 받고 있다.

b.과세감면조치 철폐의 흐름

조선총련은 비자와 여권 발행 대리업무를 하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창구로서, ‘외교기관에 준하는 기관이라는 명목 하에 과세감면조치를 받고 있었으나, 2002 9월 고이즈미 준이치로 내각총리대신의 방북 시 납치문제에 관여하였음을 인정한 것을 계기로 한국 내의 북한 관련 조직과 시설에 대한 우대조치가 재검토되게 되었다. 도쿄도의 고정자산세 감면조치 철폐 발표 후, 조선총련 시설이 사적 시설이며, 대일·대남 공작기관이다라는 현상에 관심이 향해지게 되었다.

 

2009년 현재, 전국 130개 지자체 가운데 전액감면하고 있는 지자체는 홋카이도 쿠시로시 뿐이다. 또한 70% 이상의 지자체가 무감면조치를 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도쿄도의 조선총련 중앙본부의 부동산에 대한 고정자산세 등의 과세처분을 둘러싸고 등기상의 부동산 소유자인 합자회사 조선중앙회관관리회가 도쿄 도에 과세처분 취소 등을 요구하여 제소하였다. 1심과 2심은 청구를 기각하였다. 2009 8 12일 대법원도 상고를 기각하여 총련측의 패소가 확정되었다

 

c.일본 정당과의 관계

조선총련 창립 이전에 재일조선인이 일본공산당에서 활동하였던 적도 있어서 일본 공산당과의 관계가 깊었다가 1970년대 중반부터는 일본 사회당에도 접근하여 우호관계를 쌓았다. 일본사회당 좌파를 계승한 사회민주당과는 계속 우호관계에 있다. 사회당 출신의 민주당 의원에게 정치헌금을 했던 것도 판명되었다

 

d.지방 참정권

영주외국인에 대한 지방선거 참정권 부여 문제에 관하여는, 일본에서의 정치 참여가 재일동포의 민족의식을 희박하게 하여 일본사회로의 동화로 이어질 것이라는 반대주장을 펴면서, 참정권 획득 운동의 중심인 민단과 정면대립하고 있다. 참정권이 야기할 당파분열을 우려하는 목소리와는 결론이 일치하고 있지만, 일관되게 일본에서의 정치 참여에 반대하는 의견을 공식적으로 철회하지 않고 있다.

 

e.조선학교 수업료 무상화에 대한 공작활동

2010 6 12, 조선총련이 조선학교 학부모들에게 문부과학성에 조선학교의 고등학교수업료 무상화를 요청하는 전화공세를 걸도록 할당량을 부과하였던 것, 또한 동시에 여러 명의 일본인 행세를 하여 전화횟수를 늘리도록 지시하였던 것이 내부문서에서 밝혀졌다. 산케이 신문은 총련의 무상화운동이 도덕성을 크게 일탈하였으며, 북한처럼 통제된 조직동원의 형태로 전개되었다는 실태가 명백해졌다고 평가하고 있다

 

(3)북한과의 관계

북한에 대한 조은신용조합의 불법송금에 조선총련 관계자의 관여가 의심되고, 북한의 일본인 납치문제 추적이 진행되는 가운데, 납치사건을 비롯한 일본 국내에서의 북한의 불법활동(간첩, 불법송금, 마약, 권총판매 등)에도 많은 수의 조선총련 관계자가 깊이 관여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이와 같은 범죄행위에 대한 책임추궁에 대해 조선총련은 악성 유언비어라고 주장하고 있고, 조선총련 관계 시설에 대한 강제수사에 대해서도 재일 조선인의 권리를 침해한다.”며 항의를 반복하여 왔다. 또한, 비판기사를 쓴 보도기관 직원에게 많은 항의를 하거나, 북한에 비판적인 단체의 집회를 조직원들이 폭력적으로 방해하였던 적이 있고, 이에 반발하는 사람들은 재일조선인의 주권을 인정하면 역차별 등으로 이어진다라고 비판하고 있다.

 

1972년 당시 미노베 료키치 도쿄 도지사가 외교기관에 준하는 기관이라고 인정한 이래, 많은 지자체가 조선총련 시설을 사실상 외교 공관이나 공공시설에 준하는 것으로 간주하여 고정자산세와 부동산취득세의 감면조치를 하여왔다. 이는 일본과 북한(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양국이 국교를 정상화하게 되면 북한(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대사관으로서 사용될 수도 있다는 점을 인정하였기 때문이었다

 

2003년 도쿄도는 조선총련 관련시설에 대해 소유자 거의 대부분이 관련 기업(조선총련이 법인이 아닌 이유로)이거나, 외교와는 무관한 것으로 방침을 변경하여 일부에 대해 고정자산세를 부과하기로 하였다. 다른 지자체도 이에 따라 고정자산세 감면을 해제하려는 움직임이 있는 한편, 종래대로 계속하려는 지자체도 있다. 조선총련과 일부 법학자는 이러한 조치에 반발하여 행정소송에서 다투고 있다. 고정자산세 등의 감면조치를 둘러싸고 북한에 납치된 일본인을 구출하기 위한 구마모토 모임 加納良寛 회장이 구마모토 시장을 상대로 조선총련 시설 과세감면조치 무효확인 소송을 제기하였고, 2006 2 2일 후쿠오카 고등법원이 공익성이 없는 조선총련의 활동에 대해 조세를 감면하는 것은 위법하다라는 판결을 내렸다. 구마모토 시장이 이에 불복하여 상고하였기 때문에 최종적 결정은 대법원에 맡겨졌다.

 

또한 방위청(현 방위성)의 미사일 정보 유출에 관여했다는 의혹이 있다고 보도되었다. 조선총련 측은 이를 사실을 왜곡한 보도라고 주장하고 있다.

 

a.납치사건 관여

1973년 행방 불명된 사이타마현 가미후쿠오카시(현 후지미노시) 여자의 조선족 아동 2명이 납치(2명 아동납치사건)되었는데, 그 여성의 남편이 북한의 공작원이었고, 게다가 그 남편이 근무하였던 도쿄 무역회사 유니버스 트레이딩의 전직 여직원이 경찰당국의 조사에서 북한 본국의 판단을 요청했다 등으로 진술하였다 일본 정부는 조선총련의 개입을 분명한 것으로 알고 있다[6].

1978 6월 발생한 다구치 야에코(田口八重子) 납치사건에 관여한 것이 명백하다

1980 6월 발생한 신광수(辛光洙) 사건(하라 다다아키(原敕晁) 납치사건)에 관여한 것이 명백하다

2007 4 25일 경찰청 공안부는 가미후쿠오카시 사건에 관하여 국외이송목적 유괴 혐의로 사건에 관여하였던 혐의가 강한 공작원들이 한때 활동에 참가하였던 재일본조선류학생동맹 중앙본부’(류학동) 등 조선총련 산하단체와 관련단체 등 4개소를 가택수색하였다 수색시 재일 조선인 남성이 공무집행방해로 체로되어 도미사카(富坂)경찰서에 연행되었으나(당시 혐의사실 고지는 하지 않았음), 5월 말 불기소처분되어 석방되었다[8]. 이에 관하여 가택수색 당시 수사관이 진입하는 것을 방해한 사람이 몇 사람 있었으나 TV에는 보도되지 않았었다.

 

또한 공안부는 도쿄도내 무역회사에 다수의 공작원이 입사한 경위 등을 알고 있을 가능성이 있는 조선총련 서만술 의장, 허종만 책임부의장, 남승우 부의장을 참고인으로 조사하기 위해 같은 날 서면으로 출석을 요구하였으나 같은 해 4 26일 고덕우 부의장이 보도용 기자회견에서 거부하는 취지를 발표하였다

 

재일본조선인총련합회의 주장

1973년 재일조선인자제 실종사건에 대하여 일본 정부의 아베 신조 정권이 일련의 일본인납치사건에 결부시킨 정치적 민족 탄압이라고 주장하였다

 

b.()대한민국 공작 협력

조선총련은 북한의 한국에 대한 대남공작에 협력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74 8 15일 일본으로부터의 해방기념일인 광복절 축하행사가 서울 국립극장에서 개최되던 중, 당시 대한민국 대통령인 박정희의 처 육영수가 재일한국인 문세광에게 사살당했다(문세광 사건). 문세광은 박대통령을 암살하는 것이 목적이었으나, 한국 경찰의 수사에 의하면 조선총련의 관여가 명백하였다. 이것은 적화통일을 목표하였던 문세광이 조선총련의 지원을 받아 오사카부 오사카시 주오구 高津파출소에서 권총을 훔쳤고 한국 위조비자와 위조여권을 만들었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대한민국 측의 주장에 대하여 일본 정부는 조선총련의 관여를 부정하였기 때문에 대한민국 내에서는 반일감정이 높아져 한일 관계는 국교정상화 후 최악의 상황에 빠졌다. 일본이 이러한 태도를 취했던 것은 중화인민공화국과의 국교정상화를 맺은지 얼마 되지 않았던 터라 조선총련을 자극하지 않으려했던 것으로 추측되지만, 실제 이 시기의 중조관계는 문화대혁명의 영향과 김일성이 중소분쟁에서 소련측에 붙었던 까닭으로 냉각되고 있었기 때문에 진위는 불분명하다.

 

또한, 박정희의 딸인 박근혜가 북한을 방문하였을 때 김정일 총서기가 북한의 관여를 인정하고 사죄하였기 때문에 조선총련이 박정희 대통령 암살 공작에 관여하였다는 증거가 되었다.

 

c.북한우표에 등장

북한에서는 종종 기념우표에 등장하고 있다. 1965 4 27 총련결성 10주년 기념우표가 발행되었고 총련 건물을 배경으로 한일기본조약체결반대운동을 하는 군중이 그려지기도 하였다. 또한 북한 우정 당국은 1970, 1975, 1985, 2005년에도 총련 건물이 그려진 우표를 발행하였다.

 

d.북한 귀환 운동

1950년부터 1980년대에 걸쳐 조선총련은 북한을 지상낙원 등으로 선전하여 재일조선인과 그 가족을 영주귀국, 이주시켰다. 1959년에는 대한민국 공작원의 방해 폭파테러와 조선총련 간부에 대한 테러 미수사건이 발생하였다(일본 적십자사 폭파미수 사건). 이것이 원인이 되어 2000년대 들어 탈북자를 중심으로 잇따라 조선총련에 대한 소송이 제기되고 있다.

 

재일조선인의 북한 귀환운동에는 산하단체인 중외려행사(中外旅行社)가 일부 개입하였다는 의심을 받고 있다.

 

2008 6월에는 일본 거주 탈북여성이 조선총련에 대해 오사카 지방법원에 소송을 제기하였다. 소송을 제기한 여성은 북한은 지상낙원이다.’라는 조선총련의 거짓선전 때문에 북한으로 귀환하였지만, 실제로는 가혹한 노동, 고문, 차별을 강요당하였고, 죄수나 노예와 다름없는 생활을 강요당하였으며 ‘(조선총련은) 사람을 속여 조직적으로 유괴하였다. 인권과 자유를 무차별적으로 빼앗은 악마와 같은 단체이다.’, ‘나 혼자만의 문제가 아니다. 지금도 강제수용소 안에서 필사적으로 삶을 연명해가는 사람이 있다.’라고 호소하였다. 조선총련은 이러한 소송에 대해 동포사회와 북일관계를 해하는 것에 불과하다라고 주장하였다

 

e.영화 동해의 노래

귀환사업 50주년을 기념하는 북한과 총련이 공동제작한 영화 동해의 노래’(2부작) 2009 12월부터 북한에서 상영되었다. 영화는 주인공의 모델이 된 한덕수 의장을 비롯한 제1세대 재일조선인 활동가들이 이국땅에서 애국을 가슴에 담고 살아가는 계기가 된 김일성 노선 전환 방침(1952)과 총련 결성, 교육원조비와 장학금으로 인한 민족교육의 발전과 귀국 실현까지 1940~50년대 재일조선인운동의 주된 사건을 그렸다. 김일성의 총애를 받아왔던 한덕수 의장에 대해서 북한에서는 그다지 알려지지 않은 구체적 업적과 생애 및 재일조선인의 활동에 관한 홍보작품이기도 하다.

 

f.북한 간첩과의 관계

2008 8월 대한민국에서 탈북자로 위장한 여간첩이 체포되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대한민국 검찰의 기소장에 의하면, 이 여간첩은 대한민국 국군 장병과 성적관계를 맺고 기밀정보를 얻는 허니트랩을 하고 있었다.

 

또한, 일본에서도 정보수집활동을 하였던 사실이 밝혀졌는데, 2007 6월부터 2008 5월까지 3회에 걸쳐 일본을 방문하여 최장 2개월 이상 체류하였다. 기소장에는 일본 협력자로 조선총련 산하단체 간부와 같은 이름을 가진 인물과 사장 직함을 가진 오사카 거주 인물 등 2명의 실명이 기소장에 기재되었다.

 

기소장에 올려진 산하단체 간부는 조선총련 관계 단체 간부로서 같은 이름을 가진 사람은 자신밖에 없다.’라고 말하면서 피고와 만난 적도 없고, 들어본 적도 없다. 보위부에도 아는 사람이 없으며 전혀 관계가 없다. 멋대로 이름을 사용한 것이다라며 관련을 부정하였다

 

g.연평도 포격

조선총련은 2010년에 일어난 연평도 포격에 관해 북한의 입장을 지지하였다. 조선총련은 조직원 내부교양자료에서 연평도에서 숨진 민간인 2명은 연평도 주민이 아니라 해병대 시설 공사에 동원된 본토 사람이고, 숨진 장소도 군사시설 내부이므로 민간 희생자는 없었다고 발표하였다 그 이후로 일본 정부는 조총련계 조선학교에 대한 지원을 공식적으로 미루었다. 일본 사회의 연평도 포격 비판 여론으로 2010 12 26일 일본 16개 도·현의 고교 무상화 적용 대상에서 조선학교가 제외되었다.

 

(4)중앙본부 건물 매각 문제

중앙본부(도쿄도 지요다구 후지미) 토지와 건물은 미쓰이 다다오 전 부동산회사 사장의 중개로, 2007 5 31일 오가타 시게타케 전 공안조사청장관가 대표로 근무하는 하베스트 투자고문 주식회사에 매각된 것으로 밝혀졌다. 또한 중개자인 미쓰이 다다오는 조선총련으로부터 수수료 명목으로 4 9천만 엔이 전달되었다.

 

중앙본부 건물(지상 10, 지하 2층 철골철근콘크리트 구조. 연면적 1 1700평방미터)과 토지( 2390평방미터)는 약 40억 엔을 초과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매각대금은 35억 엔) 도쿄지검 특수부는 당초 조선총련이 정리회수기구로부터 제기된 소송에서 패할 경우 압류를 벗어나기 위해 탈법, 불법행위를 할 의도가 있다고 보고 전자적공정증서원본 부실기재 등 혐의로 수사하고 있었다.

 

수사 결과, 조선총련이 소유권 매각양도 후에도 임대물권으로 인정받아 사용할 수 있는 매각처를 알아보고 있었던 것이 밝혀졌기 때문에, 실제로는 조선총련측이 피해자였다면서 오가타 시게타케와 미쓰이 다다오는 자금조달 목표가 서지 않았음에도 토지, 건물 및 수수료를 편취하려 하였다라는 이유로 2007 6 28일 사기혐의로 체포되었다. 또한 수수료 명목으로 사취한 금전 중 절반밖에 반환되지 않았다고 보도되었다.

北, '절세위인들의 손길아래 빛나는 총련의 65년'

▲ 재일본조선인총련합회 제24차 전체대회 진행. 사진=조선중앙통신

 북 내각기관지 민주조선은 '절세위인들의 손길아래 빛나는 총련의 65년'이란 제목으로 재일본조선인총련합회(총련)결성 65돐을 맞이하게 되었다면서 "이 장구한 로정은 총련일군들과 재일동포들이 언제나 존엄높은 공화국의 해외공민이라는 크나큰 긍지, 주체적해외교포조직을 가지고있는 한없는 자부심을 간직하고 애국위업의 한길을 줄기차게 이어온 영광스럽고도 자랑높은 행로였다"고 보도했다.

 

다음은 민주조선이 보도한 기사 전문.

 

절세위인들의 손길아래 빛나는 총련의 65년

주체적해외교포운동의 시원을 열어주시여

 

올해 총련일군들과 재일동포들은 재일본조선인총련합회(총련)결성 65돐을 맞이하게 된다.

재일조선인운동사에 새겨진 총련의 65년.

이 장구한 로정은 총련일군들과 재일동포들이 언제나 존엄높은 공화국의 해외공민이라는 크나큰 긍지, 주체적해외교포조직을 가지고있는 한없는 자부심을 간직하고 애국위업의 한길을 줄기차게 이어온 영광스럽고도 자랑높은 행로였다.

하기에 총련일군들과 재일동포들은 절세위인들의 따뜻한 보살피심속에 해외교포운동의 본보기로 자랑떨쳐온 총련의 수십년력사를 감회깊이 돌이켜보고있으며 위대한수령을 모셔야 민족의 존엄과 영예도 빛난다는 력사의 진리를 다시금 뜨겁게 새겨안고있다.

경애하는최고령도자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위대한 김일성동지는 자주시대 해외교포운동의 개척자, 총련의 창건자이시며 재일동포들의 삶의 은인, 자애로운 어버이이십니다.》

총련이 걸어온 장구하고 영광에 찬 로정을 더듬어볼 때마다 총련일군들과 재일동포들은 위대한수령 김일성동지의 따뜻한 사랑의 손길에 의해 주체적인 해외교포운동의 시원이 열리던 못 잊을 나날이 가슴에 사무쳐와 격정을 금치 못하고있다.

해방전 망국노의 설음을 안고 현해탄을 넘어가 인간이하의 천대와 멸시속에서 살인적인 노예살이를 강요당해야만 했던 재일동포들이였다. 나라가 해방된 후에도 재일동포들은 극심한 민족차별에 의해 이역살이의 고달픈 처지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민족적권리와 리익을 옹호하기 위한 그들의 투쟁은 옳바른 로선을 세우지 못한것으로 하여 많은 애로를 겪지 않으면 안되였다. 특히 1940년대말-1950년대초에 이르러 재일조선인운동은 일본반동들의 악랄한 탄압과 재일동포들의 민족적애국투쟁을 저해하는 좌경적로선의 영향으로 하여 커다란 피해를 입고 존망의 길에 놓이게 되였다.

파도에 부대끼는 난파선과도 같이 갈길을 잃고 헤매이는 재일동포들의 처지를 누구보다 가슴아파하시며 따사로운 사랑의 손길을 펼쳐주신분은 위대한수령님이시였다.

언제나 재일동포들의 운명을 두고 마음쓰신 위대한수령님께서는 조국의 운명이 판가름되던 전화의 나날 주체적인 로선전환방침을 제시해주시여 재일조선인운동을 위기에서 구원하고 자주적인 민족적애국운동으로 발전시켜나갈수 있는 길을 뚜렷이 밝혀주시였다.

조선사람은 비록 일본땅에서 살더라도 자기 조국과 자기 민족, 자기 나라 혁명을 위하여 투쟁해야 한다는 주체적인 로선전환방침!

진정 위대한수령님께서 제시하신 주체적인 로선전환방침은 숨져가던 재일조선인운동을 소생시킨 생명수였고 어둠속을 헤매이던 재일동포들의 앞길을 밝혀준 희망의 등대였다.

재일동포들은 위대한수령님께서 밝혀주신 주체적인 로선전환방침에 접하고 너무도 감격에 겨워 《이젠 재일조선인운동이 살아났다!》라고 하늘이 떠나갈듯 환성을 올리였으며 절세위인에 대한 다함없는 감사의 정으로 하염없이 솟구쳐오르는 격정을 금치 못하였다.

자기들의 생을 그처럼 아껴주고 보살펴주시는 자애로운어버이의 품으로 재일동포들의 마음은 끝없이 달리여갔다.

돌이켜보면 해방된 이듬해 새 조국건설로 그처럼 바쁘신 속에서도 재일동포들에게 력사적인 서한 《재일 100만 동포들에게》를 보내주시여 망국노의 설음속에 얼어들었던 가슴들에 조선사람이라는 민족적긍지를 안겨주시고 재일동포들이 나아갈 길을 환히 밝혀주신 위대한 수령님.

절세위인의 뜨거운 동포애가 어린 력사적인 서한의 구절구절은 재일동포들의 가슴속에 앞날에 대한 새로운 희망을 안겨주고 생의 활력을 부어주었다.

어찌 이뿐이랴. 위대한수령님께서 우리 공화국이 창건된 후 조국에 온 재일조선인경축단 성원들에게 베풀어주신 사랑과 은정은 또 얼마나 만사람의 심금을 세차게 울리였던가.

공화국창건을 경축하기 위하여 조국에 온 재일조선인경축단 성원들을 위해 성대한 연회를 마련해주시고 새 조국건설의 빛나는 성과들을 목격하며 뜻깊은 나날을 보내도록 다심한 은정을 베풀어주시였을뿐아니라 그들을 몸가까이 불러주시고 따뜻한 혈육의 정을 안겨주시며 재일조선인운동과 관련한 강령적교시도 주신 어버이수령님이시였다.

그후에도 조국과 멀리 떨어진 이역땅에서 고생하는 재일동포들의 모습을 항상 마음속깊이 새겨두시고 그들을 위해 온갖 심혈과 로고를 다 바치신 위대한수령님께서 그처럼 어려운 전화의 나날 재일조선인운동을 위기에서 구원할 주체적인 로선전환방침을 제시해주시였으니 재일동포들의 감격과 기쁨을 어찌 한두마디의 말과 글로 다 전할수 있으랴.

하기에 재일동포들은 주체적인 로선전환방침을 관철하기 위한 투쟁에 적극 떨쳐나섰다. 그리하여 마침내 주체44(1955)년 5월 재일본조선인총련합회(총련)가 결성되였다.

당시 《해방신문》은 이 력사적사변에 대해 이렇게 소리높이 전하였다.

《우리들은 이제야 진실로 전체 3천만 조선인민들이 걸어가는 승리에 찬 거창한 총로선우에 확고부동하게 올라서게 되였다. … 이것은 오로지 영명한수령김일성원수님을 모신 우리들만이 능히 달성할수 있는 자랑이며 또 하나의 승리이다. … 우리들은 얼마나 이날을 고대하고 주목했던가! 또한 이 력사적인 전환을 저애하려고 내외의 적들의 음모와 도발책동은 얼마나 혹심했던가!

재일 60만은 그를 물리치고 기어이 승리하고야만것이다.》

참으로 총련의 결성은 재일조선인운동과 재일동포들의 운명에서 새로운 전환을 가져오게 한 일대 사변이였다. 바로 이때부터 재일조선인운동은 주체의 궤도를 따라 힘차게 전진하였고 재일동포들은 존엄높은 공화국의 해외공민이라는 크나큰 긍지와 자부심을 안고 애국위업의 한길을 억세게 이어올수 있었다.

진정 위대한수령님은 재일조선인운동을 위기에서 구원해주시고 걸음걸음 이끌어주신 재일동포들의 삶의 은인이시고 자애로운 스승이시며 총련일군들과 재일동포들의 심장속에 영생하시는 민족의 위대한 태양이시다.

 

조선총련 회원들이 27일 오후 일본 도쿄 하네다국제공항에서 북한 국기를 들고 입국하는 김일국 북한 체육상을 환영하고 있다. 

일본 도쿄에서 오는 28~29일 열리는 국가올림픽위원회연합(ANOC) 총회에 참석하기 위해 27일 도쿄(東京) 하네다국제공항에 도착한 김일국 북한 체육상(가운데)이 조선총련의 환영단에 둘러싸여있다. 그는 기자들의 질문에는 아무 대답을 하지 않았다

北, 조총련 결성 60돌 기념우표 발행

북한이 재일본조선인총련합회(조총련) 결성 60돌을 기념해 새 우표(소형전지 1종)를 발행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25일 보도했다.
소형전지의 웃부분에는 '재일본조선인총련합회 결성 60돐기념', '주체44(1955)-주체104(2015)'이라는 글발이 씌여져 있다고 통신은 소개했다.

소형전지에는 김일성 주석이 조총련중앙상임위원회 한덕수 의장을 비롯한 총련의 책임일군들을 만나는 사진문헌이 모셔져있는 우표가 북한 국기를 배경으로 있다.
재일본조선인총련합회(조총련)은 1955년 5월 25일에 결성됐다

재일본조선인총련합회 중앙본부

 

3.재한조선인총련합회[반제민족민주전선 중앙위원회 서울, 재한총련]

반제민족민주전선의 로고

한국 내부 북한 주체연호 세습제 1인 종신직 좌익군정의 사회주의 국가(김일성 김정일주의)를 지지하는 동포들이 결성한 단체가  반제민전 중앙위원회(재한총련)이다. 반제민족민주전선 중앙위원회(재한총련) 는 지하조직으로 실질적 친북단체이며 명목상(의례적) 친북 합법조직은 범민련(범청학련)이나 민중당 내부 NLPDR계열 단체들이다 

반제민족민주전선 중앙위원회(재한총련)는 주체연호 세습제 1인 종신직 좌익군정의 북한식 사회주의 국가(김일성 김정일 김정은주의)를 지지하고 북한 조국통일민주주전선 소속단체이며 대남공작기구[ 통일전선부 산하기관인 제225부(구 대외연락부)]이다. 대표적인 단체는 통일혁명당과 민족민주혁명당(민혁당)이다

재한총련(반제민족민주전선 중앙위원회, 서울)도 재중총련 조직처럼 범민련 조직으로 파악할 수 있으며 재일총련처럼 남한정부 대표부(북한 통일전선부 대화창구) 성격으로 파악할 수도 있다

 

(1)반제민족민주전선 중앙위원회(반제민전)

반제민족민주전선(反帝民族民主戰線, 약칭 반제민전(反帝民戰))은 북한을 지원, 지지하는 대한민국(남한)의 지하 조직이다. 공산주의, 주체사상, 선군정치를 지도 이념으로 하며 대한민국(남한)에 주둔하고 있는 주한 미군과 주한 미군 기지 철수, 북한 주도의 한반도 통일을 목표로 한다. 현재는 존재 여부를 정확히 알지 못한다.

 

반제민전의 공식 홈페이지에 따르면 반제민전은 1964 3 15일에 비밀리에 결성된 통일혁명당 준비위원회(統一革命黨 準備委員會)가 전신이라고 한다. 1969 8 25일에 통일혁명당(統一革命黨, 약칭 통혁당(統革黨))이 설립되었고 1985 7 27일에 한국민족민주전선(韓國民族民主戰線, 약칭 한민전(韓民戰))으로 이름을 바꿨다. 2005 3 23일에 지금과 같은 이름으로 바뀌었다.

 

1968 8 24일 대한민국 중앙정보부가 김종혁이 결성한 통일혁명당 준비위원회 관련자들을 검거한 통일혁명당 사건으로 인해 통일혁명당은 소멸되었다. 이후에 설립된 조직인 한국민족민주전선에 대해서는 실체가 확인되지 않고 있다.

 

반제민전은 대한민국(남한)의 서울특별시에 본부를 두고 있다고 주장하며 북한의 평양직할시, 일본 도쿄도에 지부를 두고 있다고 주장한다.

 

대한민국(남한)에서는 국가보안법에 따라 반국가 단체, 이적단체로 분류되어 있으며 반제민전의 공식 홈페이지 또한 대한민국에서 접속이 차단되어 있다. 따라서 평양지부가 사실상의 본부 역할을 한다.

 

반제민전 편집국은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각종 논평, 칼럼 등을 발표한다. 대한민국의 시사 문제에 관한 뉴스도 발신하고 있지만 이러한 활동에 대해서는 실체가 확인되지 않고 있다. 공식 홈페이지에서는 평양에서 보도한 뉴스를 발신하고 있지만 조선중앙통신, 로동신문을 인용한 기사에 불과하다.

 

반제민전의 라디오 방송으로는 1967 3월 평안남도 순안군에 남조선해방민주민족연맹방송을 시작하였으며, 이후 1970 3월에는 통일혁명당의 목소리방송, 1985 8월에는 구국의 소리 방송, 2005년에는 반제민전 방송으로 명칭을 바꾸었다.

Founder: Kim Jong-tae(김종태)

                     Choi Yong-do(최영도)

Headquarters: Seoul(서울)

 

Founded: 25 August 1969(Revolutionary Party for Reunification)

27 July 1985(National Democratic Front of South Korea)

23 March 2005(Anti-Imperialist National Democratic Front

Ideology: Juche, Songun

-반제민족민주전선 중앙위원회(서울, 재한총련)는 통일혁명당과 민족민주혁명당으로 알려지고 있다

통일혁명당과 민족민주혁명당은 북한 김일성주의를 표방했고 지지했다

 

(2)통일혁명당 사건

1968년 11월 28일 ,  통혁당 공판에서의 김종태와 김질락 ( 가장 오른쪽부터 )

통일혁명당 사건은 1968 8 24일에 중앙정보부가 발표한 지하당 조직 사건이다

a. 시대적 배경[편집]

4.19 혁명과 5.16 군사정변의 파도가 지나간 뒤, 1962년에 쿠바 미사일 위기가 일어나고 미국이 베트남 전쟁에 개입하는 등 국제 정세가 급격히 변동하기 시작했다. 세계 전쟁이나 미국의 공격에 대한 위기감이 쌓인 북한 정부는 우선 자체의 힘을 기르는 데 주력하기로 결정했다. 가장 중요한 건 국방이었다. 1962 12월에 개최된 조선로동당 중앙회의 전원회의에서 "전군의 간부화, 전군의 현대화, 전 인민의 무장화, 전국의 요새화"를 주 내용으로 한 4대 군사노선을 발표했다.

 

다른 한편으로 북한은 남한에서의 혁명을 기대했지만, 그건 북한이 일방적으로 지원해서 되는 게 아니며 남측 스스로의 힘에 의해서 일어나야 한다고 판단했다. 또한 국제적인 반미 혁명세력과 단결하여 범세계적인 반제/반미 전선을 결성하고자 했다. 1964년에 열린 전원회의에서도 이와 같은 방안을 '3대 혁명역량 강화방침'으로 정리했다. 이 방침은 북한의 혁명기지 강화, 남한의 혁명역량 강화, 국제 혁명역량과의 강화를 내세웠으며 이는 북쪽의 '민주기지'를 강화한 뒤 주로 무력에 의지해서 남북통일을 달성하고자 한 한국전쟁 때와는 다른 모습이었다. 따라서, 남쪽은 그 자체의 힘에 따라 '남조선혁명'을 이룩해야 함이 강조된 것이다. 참으로 무시무시한 발상이라 할 수 있다.

b.경과 및 주요 활동[편집]

북한 정부는 남한에서 4.19 혁명이 실패한 주 이유가 바로 공산혁명을 이끄는 당 조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고 판단했다. 이로써 북한이 만든 '남조선혁명론'이 남쪽에 퍼지면서 지하 혁명조직이 만들어지게 되었다. 1964 3 15일에 남한에서 비밀리에 '통일혁명당 창당준비위원회'가 조직되었다. 당시 주요 참가자들은 김종태, 김질락, 이문규, 신영복 등이었다. 이들은 지하신문 <혁명전선>과 합법 대중잡지 <청맥>(주간 : 김질락) 등을 발간했으며, 대학가에서 학사주점을 운영하기도 했다.

“1964 3 15. 역사적인 날이 밝아오고 있었다...약속장소에 와서 보니 이미 김질락, 이문규 동지가 와 있었다. 신영복 동지가 들어오면서 분위기는 전보다도 훨씬 고조됐다.

그러면 전원 모이셨습니다. 민족의 태양 김일성 장군께서 교시하신 주체의 당 창건 방침을 받들고, 그 사이 동지들께서 필사의 노력으로 분투하신 결과 오늘로서 우리는 <통일혁명당 창당준비위원회>의 결성을 보게 됐습니다.

어디까지나 우리 당이 민족의 태양, 김일성 장군의 혁명사상을 구현하기 위한 한국혁명의 전위당인 만큼 당원과 각계의 애국민중을 하나의 혁명전선으로 결속해야 할 것이라는 정치활동의 목표로부터 출발해 우리 당 기관지를 <혁명전선>이라고 하면 어떤가 하고 생각합니다.

전원이 찬성했다...철필로 긁은 등사판으로 인쇄된 수십 부밖에 안 되는 신문이었지만 한국에서 발간된 최초의 김일성주의 출판물에 접했던 순간, 편집위원 전원의 눈이 잠시 뜨겁게 빛났다.

우리들은 이 힘 있는 정치선전수단으로 보다 많은 김일성주의자를 육성하고 각계각층 애국민중을 하나의 혁명전선, 통일혁명의 깃발 아래 강고하게 결집시키도록 합시다[통일혁명당 기관지 <혁명전선> 중에서]“

 

1964 3 15, 비밀리 약속 장소에 모인 <통혁당> 무리들이 <혁명전선>의 창간을 공식 선언하는 장면을 묘사한 대목. 참석자로는 김질락, 이문규, 신영복 등의 이름이 언급돼 있다.

 

학생운동에 대한 직간접적인 영향력의 행사 및 참여, 기층민중운동에로의 접근, 또 다른 혁명적 조직과의 결합시도, 무장투쟁을 위한 목적의식적인 노력 등이 이루어지고 있었다는 것이 단편적으로 알려져 있다. 이에 따라 1967년의 국회의원 선거 및 대통령선거에 대한 반대투쟁, 그리고 미국 부통령 험프리 방한 반대투쟁, 사토 일본수상 방한 반대투쟁 등에 통혁당 산하의 학생운동 조직이 동원되었다고 한다

 

통혁당 서울시위원회는 자신의 임무 중에 "모든 조직을 장래 유격대로 발전시키기 위한 전술적 간부의 획득" "각지에 무기고의 설정과 무기획득 및 그 비축을 위한 방법 연구" 등을 설정하여 무장투쟁을 준비하고 있었다. 이러한 통혁당의 무장투쟁노선에 대해서 조희연은 통혁당의 성원들간에 "무장투쟁이라는 것이 원칙적인 수준에서 볼 때 혁명투쟁의 궁극적 최고의 형태이며, 구체적인 수준에서 볼 때 제3세계 혁명투쟁의 일반적 형태라고 하는 데 공감"되고 있었지만 그것이 현실화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그는 통혁당이 무장투쟁을 실제로 전개하지는 않았으며, 단지 장기적 혹은 단기적 전망으로 사고했을 뿐이라고 파악한다.

 

통일혁명당은 전위정당으로서의 지도이념을 명확히 내걸었으며, "당면의 최고 목표는 민중민주주의혁명(인민민주주의 혁명, PDR)을 수행, 부패한 반봉건적 사회제도를 일소하고 민주주의제도 수립, 민족 재통일 성취"를 당강령으로 삼고 있었다. 이후 79년까지 통혁당 재건운동은 지속적으로 전개되었으며, 사건 적발지역도 서울경기에서 호남과 부산 경북지역까지 확대되는 특징을 갖는다.

 

통일혁명당은 지도이념을 명확히 내걸었으며 노동계급의 전위당임을 자처했다. 통혁당의 지도이념은 주체사상이며 최고의 목적을 사회주의 공산주의 건설에 두고 있다. 당강령은 "당면의 최고 목표는 민중민주주의혁명(인민민주주의 혁명, PDR)을 수행, 부패한 반봉건적 사회제도를 일소하고 민주주의제도 수립, 민족 재통일 성취"로 규정하였다.

 

구체적 목표로는 "첫째 미 제국주의의 식민지 지배 철폐와 자주적 민주정권의 수립, 둘째 파쇼독재체제의 일소와 사회 민주주의의 실현, 세째 민주적 토지개혁과 농.어촌 빈곤 일소, 네째 중요산업의 국유화와 자립적 민족경제의 실현, 다섯째 민주적 노동법령의 실시와 노동자의 사회 경제적 처지 개선, 여섯째 여성의 권익보장과 사회적 지위 향상, 일곱째 민주적 민족문화 창달과 지식인의 생활보장, 여덟째 교육쇄신과 무료교육제.장학금제 실지,아홉째 선진적인 의료보험제 실시와 무상치료제실시, 열번째 자위적 민족군대 창설, 열한번째 자주외교 구현과 반제평화애호국과의 교류, 열두번째 조국의 자주적 평화통일 성취" 등의 사항을 들고 있다.

 

<청맥>은 합법적인 대중잡지로, 그 역할은 민족주체의식과 반미의식의 선전선동의 무기, 양심적이고 애국적인 청년, 지식인 결집의 장, 당내 지도핵심 발굴의 장이었다. 전체적으로 청맥의 논조는 반정부, 반미노선으로 향했고 반공적인 기사는 일체 게재하지 않았고, 마찬가지로 보안상의 이유로 사회주의를 논평하는 기사도 게재되지 않았다.

 

통혁당은 "선 진보적 인텔리, 후 기층인자"라는 조직화 방식 아래 조직의 확장을 추진했다. 조직방법은 처음에 포섭대상자를 모색하되 가족, 친지, 동창, 친우, 직장 등 생활의 가장 가까운 주변에서 찾아내고 출신성분과 가족관계, 학력, 직업, 성품 등을 미리 조사, 가급적이면 특수기관이나 경찰관 등의 가족이 아닌 자를 선정 사회적 영향력이 큰 사람을 고르고 일단 포섭대상자가 결정된 후엔 부단한 열의로 접촉, 구두교양을 위주로 필요에 따라 문건을 사용하여 조직화하는 방식을 취했다고 알려진다.

 

한편 당시 서울시위원회의 임무는 혁명의 대중적 기반 축성 당의 조직 강화 각종 학술연구 써클의 조직과 당 지도 간부의 양성 기초 써클 강화에 의한 당세포 조직의 재편 ... 모든 조직을 장래 유격대로 발전시키기 위한 전술적 간부의 획득 등이었다. 이러한 임무의 달성을 위한 조직화와 관련, 주요 대상은 학생들이었다.

 

민족해방전선 책임자 김질락의 회고에 따르면, 서울대를 비롯 고대, 연대, 중대, 숙대 등 주요 대학에 조직의 영향력을 미칠 수 있을 만큼 민족주의 단계의 교양이 끝난 포섭대상자들이 선정되어 있었다. 그 외 민중부문에 대한 조직화와 관련, 서울대 구농회, 농진회 등 멤버들과 접촉하거나 영등포 지구 하층 청소년의 교양, 덕소의 농민학교 운영, 화남농장, 백운산농장 등에 실무자로 참여했다고 한다

(a)주요 관련자

먼저 통혁당 서울시 위원장이던 김종태는 46년 대구 10.1 사건의 혐의로 상당 기간 고향에서 자취를 감추었고, 54년 제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둘째형인 김상도 선거운동을 하기도 했다.

 

그는 표면적으로는 의원비서직에 전념했지만, 56년에는 서울대 문리대에 '청맥전선'이라는 비밀 써클을 조직하기도 했다. 한편, 4월 항쟁이후 경북노동연합회 지도고문, 경북피학살자유족회 고문, 교원노조 등에 김종태는 개입했다.

 

5.16 군사정변 이후 김종태가 서울에서 자리를 잡을 무렵, 전쟁 기간 다양한 형태로 잔존하던 활동가들이 전위 조직을 형성하려는 흐름이 나타난다. 물론 이런 인식 변화는 61년 북한 로동당 제4차 당대회에서 남한의 독자적인 당 건설 노선을 채택한 배경도 있었다.

 

이후 김종태는 남파된 김수영과 동반 월북했던 김송무와 만나, 전라남도 신안군 임자도로 가 노동당 대남사업총국으로부터 청년학생과 노동조합 간부를 포섭하고, <청맥>지를 창간하라는 임무를 부여받게 되고, 이것이 통혁당 서울시위원회의 시발이 된다.

 

김종태는 4차례에 걸쳐 북한을 왕래하면서 김일성을 면담하고 미화 7만 달러, 한화 3,000만 원, 일화 50만 엔의 공작금을 받고 A-3지령만 167회를 수신했다. 그는 민중봉기, 간첩의 무장 집단유격투쟁을 통한 수도권 장악, 북한으로부터 무기수령을 위한 양륙거점 정찰, 특수요원 포섭, 월북 등 14개 항목의 공작임무를 띠고 있었다.

 

다음으로 민족해방전선을 담당했던 김질락은 김종태의 친조카였다. 그는 서울대 문리대를 졸업하고, 경남매일신문사 논설위원 등을 지내다가 김종태의 제안으로 청맥을 만들면서부터 통혁당 활동을 개시한다. 김질락은 이문규에 비해 대학 시절 써클 활동이 활발하지는 않았다고 알려진다.

 

마지막으로, 이문규는 대구 지역 부호 집안 출신으로, 대학 시절 서울대 문리대 이념써클인 '신진회'의 핵심인물로, 4월 항쟁 이후 학생운동을 비밀리에 지도한 지도부로 알려 졌다. 그 역시 <청맥>지 활동을 시작하면서, 통혁당과 관계를 맺기 시작한다.

c.결말

통혁당 총책격인 김종태가 검거된 시기는 사건 발생 두 달여 전인 1968 6월이었다. 김종태가 체포된 후 조국해방전선 책임자 이문규는 경남 지역을 다니며 도피하다 대구에서 검거됐으며, 그의 집을 압수수색하는 과정에서 암호문건이 발견됐다. 중앙정보부를 비롯한 정보당국은 도피 상태에 있던 이문규를 북한이 어떻게든 데려가기 위해 작전을 펼칠 것이라 판단, 이문규를 체포했다는 사실을 비밀에 부쳤다. 7~8월 무렵 민족해방전선 책임자 김질락 등 서울 조직의 지도급들이 체포되고 호남에선 전라남도위원회위원장 최영도, 정태묵 등이 체포된다.

 

암호문건을 토대로 대북(對北) 통신 공작에 착수한 정보당국은 1968 8 4일 새벽 북한에서 보내온 A-3 지령문 해독에 성공했다. 북한은 그때까지도 이문규가 체포된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우리 정보당국은 북한이 이문규에 대해 필사적인 구출 시도를 할 것으로 판단했다. 만약 북한이 이문규를 구출하기 위해 간첩선을 보낸다면, 통혁당과 북한과의 연계를 가장 명백하게 증명하는 것이기도 했다. 정보당국은 이때부터 본격적인 북한 무장공작선 유인·섬멸 계획(Z작전)에 들어갔다.

1968 8 20, ··정 합동작전을 통해 우리 측은 북한군 12명 사살, 2명 생포와 함께 공작선을 나포하는 전과를 올렸다. ‘독 안의 쥐 작전(훗날 Z 작전으로 불림)’으로 불렸던 이 작전에는 중앙정보부를 비롯해, ···해병대 작전참모부와 합동참모본부, 치안국이 동시에 참여했다. 통혁당의 실체가 드러난 것이다. 이로부터 4일이 지난 1968 8 24, 김형욱 중앙정보부장은 "김종태가 전후 4차례에 걸쳐 북한의 김일성과 면담하고 '통일혁명당'을 결성하여 혁신정당으로 위장한 뒤 합법화하여 반정부 및 반미데모를 전개하는 등 대정부공격과 반정부적 소요를 유발시키려는 데 주력했다"라고 발표했다. 이때 중정은 김종태 등 3명을 포함해 관련자 158명을 검거하여 73명을 검찰에 송치했고, 23명을 불구속 입건했다. 그들 중 절대 다수는 김종태 등의 실체와 북한 연루 사실을 몰랐고, 심지어 통혁당이라는 조직의 이름조차 들어보지 못한 이들이었다.

 

통혁당 사건으로 북한에 가서 로동당에 입당한 김종태, 김질락, 이문규는 사형을 당했다. 신영복, 이재학, 오병철, 신광현, 정종소는 무기징역을 선고받았고, 박성준[3] 15년형, 김종태의 아내 임영숙은 12년형을 선고받았으며, 기타 인물들은 5년 이하의 형을 선고받았다. 참고로 당시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신영복은 전향서를 쓴 뒤 1988년에야 가석방으로 출소했다. 1971년에 체포된 류낙진[4] 역시 무기형이었으나 20년형으로 감형되었다.

 

1969 7 10일에 통일혁명당 서울시당 위원장이었던 김종태의 사형이 집행되자, 북한측은 그에게 공화국영웅 칭호를 수여한 뒤 대규모 추모집회를 열었다. 이후 평양전기기관차공장은 '김종태전기기관차공장'으로, 해주사범대학은 '김종태사범대학'으로 바꾸었다. 69 11 6일 이문규가 사형집행을 당하자 역시 영웅 칭호가 수여됐다. 그러나 죽기 직전 공산주의자였던 것을 뉘우친 김질락은 북한정권으로부터 변절을 이유로 외면당했다. 조직이 와해된 뒤에도 통혁당을 재건하고자 하는 시도가 여러 차례 있었으나 줄줄이 발각되었고, 1979년에 통혁당 강원도 재건위가 발각된 것을 끝으로 완전 소탕되었다.

 

한편 북한측의 주장에 따르면 1969 8월에 당 중앙위원회가 지하에서 조직되었고, 1970 2월에는 당 선언과 강령이 발표되었다. 그해 6월에는 <통일혁명당의 소리>라는 방송이 시작되었다, 이후 통혁당은 1985년에 '한국민족민주전선'으로 바꾸었고, 방송 명칭도 '구국의 소리'로 바꾸었다가 2003년에 방송을 중단했고, 2005년에는 반제민족민주전선으로 바꾸어 잔존했다고 알려져 있지만 실상은 남쪽이 아닌 북쪽에서 활동하는 유령단체일 가능성이 높다.

 

북한은 통일혁명당 사건이 "미제와 남조선파쑈당국이 애국적 통일혁명당의 일부 성원들을 체포하여 사형을 비롯한 무기징역에 이르기까지의 극형과 중형을 선고한 사건"이라고 주장한다. 또 통혁당 관계자들의 활동을 '김일성혁명역사' 교과서에 '조국통일을 위한 남조선 혁명가들의 투쟁'이라는 한 개 절로 만들어 통혁당 건설과 최후에 대해 교육하고 있다. 교과서는 "통일혁명당은 조선로동당의 붉은 혈통을 이어받아 남조선에 주체사상을 전파하기 위한 전위부대였다"고 평가하고 있다.

 

(3)민족민주혁명당 사건(한국민족민주전선 중앙위원회, 서울)

강철서신(반제청년동맹)->구국의 소리(반미청년회)->새세대(1990년 1월 한국민족민주전선 서울대표부, 민족민주혁명당)

 

민족민주혁명당 사건(民族民主革命黨 事件, 약칭 민혁당 사건) 1999년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지령을 받아 대한민국 내에서 지하 정당 활동을 하던 민족민주혁명당을 적발하여, 그 구성원인 김영환, 하영옥, 이석기 등이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체포되어 유죄판결을 받은 사건이다.

 

북한은 1980년대 학원가 친북 투쟁을 주도한 주사파 핵심세력을 포섭해 조선노동당에 가입시켜 남한 내 혁명 전위조직으로 민혁당을 구축했다. 이에 따라 김영환, 이석기, 하영옥 등은 1989년 주체사상을 지도이념으로 하는 청년혁명조직인 반제청년동맹 을 결성하고, 이후 전국적인 조직사업을 위해 이를 당으로 전환하기로 결정하고 1992년 민혁당을 결성하였다. 이들은 남한 사회를 '식민지 반자본주의사회'로 규정하고, 민족자주권을 쟁취하고 민주주의를 발전시키며 조국을 평화적으로 통일한다는 당면목표 아래, 노동자, 농민,인텔리, 학생, 도시 소시민, 소자본가들을 동력으로 하여 반미 자주화와 반파쇼 민주화를 투쟁노선으로 채택하여, 민족해방 인민민주주의혁명(NLPDR)을 달성하는 것을 목표로 하여 활동하였다.

 

민혁당 중앙위원 김영환은 조선노동당에 가입하고 2차례 밀입북해서 김일성을 만나 공작금을 수령하였으며, 하영옥은 김영환의 권유로 조선노동당에 가입하고 북한훈장을 수여받았다. 민혁당은 김영환, 하영옥, 박아무개(이석기는 나중에 중앙위원이 됨)로 구성된 당 중앙지도부 아래에 도당 성격의 경기남부위원회, 영남위원회, 전북위원회와 지역별위원회(울산, 성남, 부산, 마산·창원), 부문별 사업지도부(청년운동, 통일운동, 시민단체, 학생운동, 수도남부지역)를 두었다.

 

이석기는 민혁당 경기남부위원회 위원장이었고, 이상규는 수도남부지역을 담당하였으며, 이의엽, 박경순은 민혁당 지역조직인 영남위원회 위원장(부산위원회 및 울산위원회 등)이었으며, 김창현, 방석수는 영남위원회 조직원이었고, 서울대의 애국청년선봉대를 비롯한 학생운동도 민혁당의 지도 하에 있었다.

 

민혁당의 존재는 1998년 여수에서 격침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반잠수정에서 하영옥이 간첩과 연락해 왔다는 증거가 나오면서 처음 밝혀졌다. 이후 민혁당 및 이른바 '영남위원회'는 법원에서 반국가단체 또는 이적단체로 인정되었고, 위 사건 관련자들은 국가보안법위반죄로 유죄판결이 선고되어 확정되었다.

 

서울고법 형사1부는 피고인 이석기에게 징역 2 6개월을 선고하면서 민혁당은 김일성 주체사상으로 철저히 무장하고 북한의 대남 혁명전략 전술에 따라 사회주의 사회 건설을 목표로 활동하기 위해 국가를 변란할 목적으로 구성된 반국가단체라며 “(민혁당을 만든 김영환 씨가 북한과 수시로 연락하며 지침을 받고 상황을 보고하는 등 북한과 연계해 왔던 사실을 인정할 수 있다고 하면서 이석기에 대해선 민혁당 경기남부위원장으로 종사했다고 명시했다.

 

한국민족민주전선 서울대표부 민족민주혁명당은 전국적 단위로 결성된 친북 지하무장조직이고, 오픈조직(합법단체)은 한국총학생회연합이나 대학 총학생, 농민회, 노동단체등으로 활동했다  해방 50년 1995년, 문민 김영삼정부 때 남북전쟁 시기로 규정하고 대남활동을 하다가 김일성 전주석 사망과 함께 와해되기 시작했다

한국민족민주전선 서울대표부 민족민주혁명당은 주체사상 김정일주의를 표방함으로 김정일 집권에 공헌했다는 평가도 있다 

북한정부의 대남 공작기구는 재중총련, 재일총련, 재한총련(반제민족민주전선 서울대표부) 등의 조직으로 대남공작을 추진해오고 있다. 재한총련(반제민족민주전선 서울대표부)은 남한지역의 주체연호 세습제 1인 종신직 좌익군정 북한식 사회주의 국가 북한을 지지하는 친북단체들이다

[1999년에 국가정보원이 발표한 반체제 공안사건. 반체제 지하정당인 민주민족혁명당을 국가정보원이 적발하고 그 구성원인 하영옥, 김영환, 박준X, 이석기 등을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기소하여 법원이 유죄판결한 사건이다. 국정원은 당시 민혁당을 1980년대 학원가의 주사파 핵심세력들이 북한에 포섭돼 조선로동당에 입당하고 남한 내 혁명전위조직으로서 결성한 지하당으로 발표했다.

적발된 계기는 코미디 같은 황당함에서 시작되었다. 최정남·강연정 부부간첩 사건이 민혁당의 실체를 드러내게 한 중요한 시발점이다. 1997 8, 조선로동당 사회문화부 5과 소속인 부부간첩 최정남, 강연정은 공해상을 통해 우회하여 거제도에 상륙, 남한 사회에서 생활을 하며 재야인사 포섭, 유사시 서울 도시철도 철도망 파괴 및 경북대 김순권 교수가 개발한 슈퍼옥수수의 종자를 획득할 목적으로 침투한다. 이들은 1997 10월 민주주의민족통일전국연합(전국연합)의 울산지부인 울산연합의 간부 정모씨에게 접근, "김영환 소개받고 왔다. 북에서 왔으니 통일사업을 위해 함께 하자"라는 제안을 하게 된다.

 

그런데 이 정 씨가 "아무래도 북한에서 온 게 아니라 안기부에서 나를 검거하려고 함정을 파는 것 같다."라고 생각하여 이 남파간첩을 안기부에 신고하게 된다 그야말로 소 뒷걸음치다 쥐잡는 격으로 간첩을 하나 검거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최정남을 취조하던 중 "90년대 초반 남조선의 대학생들 두 명이 공화국을 찾아와 김일성 주석님을 만나고 갔다"라는 진술을 확보하게 된다. 이로 인해 안기부를 비롯한 정보당국은 남한에 북한과 연계가 있는 주체사상 지하조직이 있을거라는 추리를 하게 된다. 남한의 NL운동권 내부에 주체사상을 신봉하며 친북 성향을 보이는 그룹이 존재한다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었지만, 이들이 북한과 연결되어 있다는 증거는 명백하지 않은 상태였다.

 

그러던 중 1998 12월 대한민국 해군이 여수시 앞바다에서 북한의 공작원 6~8명을 태운 반잠수정을 격침시키면서 민혁당에 대한 보다 명확한 사항들이 파악할 수 있었다. 침몰한 반잠수정을 수색해서 북한 공작원 진운방 등의 시신과 각종 유류품을 발견하였는데, 해당 반잠수정에 탑승한 공작원이 민혁당 인사들과의 접촉사실과 민혁당의 내부조직을 기록한 문서가 나온 것이다.

 

민혁당 자체는 '주사파의 대부'이자 강철서신으로 유명한 김영환이 1989 2월 출소 후 가입한 반제청년동맹(반청)의 후신이다. 반청은 준비위원 하영옥, 이석기, 박금0, 0, 0 5인으로 구성 되었으며, 이석기는 준비위원이 그대로 중앙위원이 되는 것이 모양새가 안 좋다며 스스로 하방 하고, 대신 준비위원 4명에 김영환이 포함된 중앙위원으로 구성 되었다. 여기서 이석기만 외국어대 용인캠퍼스고 나머지는 전부 서울대 출신이다. 특히 하영옥과 김영환은 서울대 법대 82학번으로 3학년 시절 '고전연구회 언더'라는 비밀 서클을 만들어 활동하던 사이로 다른 3명은 후배였으니 결국 하영옥과 김영환이 반청의 리더였다.

 

김영환은 반청 시기인 1989 7, 북한간첩 윤택림에 의해 조선로동당에 현지 입당해서 '관악산 1'라는 암호명을 부여받았다. 그리고 자신이 조선로동당에 입당하여 북한에 선을 대고 있다는 사실은 하영옥에게 귀띔 해주어 반청내에 주도권을 쥐었다.(주사파들은 북한에 선을 대고 있는 사람이 절대 권력을 쥐고 나머지는 이에 복종하는 매커니즘을 같고 있다.) 이어 윤택림의 주선으로 1991년 북한에 밀입북하여 김일성과 만나고 조선로동당에 정식 입당한 후 공작금 20만불을 받아서 돌아왔다. 이때 연락책 1명을 선발해서 대동하라는 지시를 받고, 서울대 후배인 조유식을 대동하고 월북 하였다.

 

1992년 발전적 해산 후 민족민주혁명당(민혁당)을 결성한다. 반청 중앙위원 5명 중 3명이 그대로 지도부가 되었는데 김영환(서울대 법대 82학번), 하영옥(서울대 법대 82학번), 박준X(서울대 후배, 변호사) 3인이 중앙위원으로 지도부를 형성하고 산하에 경기남부위원회(위원장 이석기), 영남위원회, 전북위원회를 두었다. 1997년 당시에 민혁당원은 전국적으로 약 100명 정도였는데 철저한 점조직, 단선조직 형태로 구성되어 있었기 때문에 조직원 상호간에도 서로 몰랐다고 한다. 중앙위원 3인은 각기 전북(김영환), 수도권(하영옥), 영남(박준0)으로 나누어서 하부조직을 관리하였다.(, 김영환은 하영옥이 울산위원회, 경기동부와 남부, 부산, 마산, 창원지역을 관리 했다고 주장함)

 

다만 이중에서 경기남부위원회의 경우 원래 성남시와 외대 용인캠퍼스를 연고지로 활동하던 조직이 그대로 들어 온 것으로 어느 정도 독립적인 조직이었다. 통진당 부정경선을 거치면서 경기동부연합의 실체가 폭로된 뒤에, 운동권 출신인사들이 인터뷰에서 '경기남부위원회'가 원래 명칭이라고 하는데 이런 사유가 있었던 것이다.

 

정조직원외에도 민혁당은 지하당 준조직원 수준의 역량을 갖춘 사람들을 수십 명 단위의 조직으로 묶어 RO(혁명 조직)라고 부르며 관리하였는데, 김영환의 주장으론 17개의 RO조직원 300여명이 있으며, 다시 민혁당과 RO 산하에 RMO(혁명적 대중 조직)'라고 부른 외곽 서클 존재하며 활동가가 수천 명에 달한다는데 이는 확인된바는 없다. 하지만 RO는 대법원 판결 결과 실체가 인정되지 않는다고 판결되었다.

 

정리 하자면 조선로동당 내 사회문화부(후에 대외연락부로 개칭) 5과장 윤택림이 김영환을 시켜 만든 조직이 민혁당이었다.

또한 민혁당 창설 전후인 1990~91년 사이 수도권 지역에서 '우리 조직원들을 다른 지하조직에서 자꾸 포섭하려 접근한다'는 보고가 김영환에게 들어 왔는데, 김영환이 어떻게 된 것이냐고 윤택림에게 물어보니, 이후 북한측에서 민혁당 활동지역을 서울, 경기, 전북, 영남등으로 한정 지어주었다. 그러다가 1992년에 터진 사건이 충청과 강원 일대를 중심으로 활동하던 지하당이 드러난게 일명 '조선로동당 중부지역당 사건'이다. 북의 대남공작기관들끼리 서로 경쟁을 하다보니 같은 시기에 북의 지령을 받는 지하조직 두개가 만들어졌고, 서로 활동이 겹치게 되니까 북에서 활동구역을 정해준 것이다. 마피아처럼

 

김영환은 90년대 이후 북한의 경직된 사회상 목격, 주체사상에 대한 회의와 북한의 고난의 행군을 보며 1995년경부터 심경에 변화를 보이는데, 진보월간지 월간 말 1995 4월호에 기고한 '반미, 북한, 90년대에 대한 나의 생각'이란 칼럼에서 이런 모습이 보인다. 그러다가 1997년 중앙위원 투표를 거쳐서 결국 민혁당을 해체하였다. 투표 결과는 해체찬성2 (김영환,박준0) vs 해체반대1 하영옥이었다. 이후 하영옥을 중심으로 해체반대파들이 전국을 돌면서 조직을 재건한 것이다.

 

또한 북한로동당 사회문화부에서 화교를 가장한 진운방(가명)이라는 새로운 간첩을 보내어 김영환과 연결 되었는데, 김영환이 민혁당을 포기하자 진운방은 하영옥과 접촉하여 그를 조선로동당에 화선 입당 시키고 민혁당의 새로운 총책으로 추인한다. 그리고 하영옥과 새로운 연락책인 심재춘을 북한으로 데려 가기 위해 잠수정으로 왔다가 하영옥이 개인 일정으로 못 가게 되자, 그냥 승조원 5명과 함께 돌아 가다가 격침되어 전원 시체로 발견 되고, 진운방의 수첩 속에 김영환과 하영옥의 이름이 나오게 된 것이다.

 

이때 김영환은 중국에 체류 하고 있는 중이었는데 월간조선의 조갑제의 주선으로 선처를 조건으로 1999년 국내로 들어와 자수한다. 민혁당 사건에서 김영환은 징역 10, 하영옥 징역 8, 심재춘 징역 5, 김경환 징역 4 6개월등 중형이 선고되었다.

 

1991년 간첩 윤택림에 의해 밀입북한 게 민혁당 총책 김영환과 연락책 조유식(서울대 후배, 당시 월간 <>지 기자)이며, 1998년 간첩 진운방에 의해 밀입북할 뻔 한게 민혁당 총책 하영옥과 연락책 심재춘(대학강사)인 것이다. 김경환은 민혁당 영남위원회 산하 울산위원회 조직원으로 어쩌다 보니 간첩 진운방과 접촉하였고, 이를 중앙에 보고하여 김영환에게 연결 시켜 주며 본인도 소속을 민혁당 중앙으로 옮겼다. 또한 1989 9월 조선로동당에 입당하였다. 김영환이 민혁당을 포기하자, 진운방의 부탁으로 하영옥과 연결을 주선하였고, 이에 하영옥이 민혁당 총책으로 추인받게 된 것이다.

 

그러나 김영환은 이미 북한에 대해 환멸을 느낀 상태로 모든 것을 불었고, 국정원과 자수자에 한하여 처벌하지 않는다는 거래를 한다. 이에 기소 후 구치소에서 1개월간 대기하며 준법서약서를 쓴 후 공소보류로 풀려났다. 그리고 중앙위원 박준0과 연락책 조유식 등 10여명이 자수하여 수사에 협조하였고 대부분 사법처리없이 풀려 났다.

 

다만 하영옥 계열만은 끝까지 자수하지 않았는데, 잠수정 사건이 일어나기 전해인 1997 7월에 일명 '영남위원회'사건으로 민혁당 영남위원회 산하 '울산위원회(위원장 박경순)' 15명이 기소되었다. 그러나 체포 후 일관된 부인으로 민혁당이 상부 조직이라는 것은 밝혀지지 않고 넘어 갔었다.

 

이후 김영환은 데일리NK와 북한민주화네트워크를 만들어서 북한민주화운동에 나서고 있다. 사실 김영환은 3년 전인 1996년 한국민주청년단체협의회(한청협) 기관지 <자주의 길> 2호에 '세상이 바뀌면 시대정신도 바뀌어야 한다'라는 칼럼에서 NL노선과의 결별을 선언했고, 1998년 진보언론 월간 말 5월호에 <북한 수령론은 완전한 허구이자 사기극>라는 글을 기고하면서 주체사상과의 완전한 단절을 선언하였으며 이후 뉴라이트의 토대가 되는 시대정신을 창간해서 활동하고 있었다.

 

박준0는 사법고시에 합격해서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었는데 전향서를 제출하고 수사에 적극 협조하였기 때문에 역시 풀려났고 지금도 신원은 비공개로 되어 있다.(성만 알려져 있었는데, 김영환이 2015년 자서전에서 가운데 이름인 ''까지 공개하였다.)

 

함께 기소된 하영옥은 징역 8년형을 받았으며 끝까지 자신의 신념을 고수하였고, 출소후 대외활동 없이 학원강사를 하면서 살고 있다. 통합진보당 비례대표 후보 부정경선 사건 이후 보수언론들이 자신을 경기동부연합의 배후라고 지목하자 이제 자신은 평범한 생활인이자, 통진당 평당원일뿐이라며 반박하였다.

 

경기남부위원장 이석기는 사건 이후 3년을 도주하다가 2002 5월 체포, 1심에서 징역 3년 자격정지 2년이 선고되었으며 2003 3 2심에서 감형되어 징역 2 6개월이 선고되었다. 이석기는 대법원에 상고하였으나 6일만에 이를 취하하여 형이 확정되었다. 2003 4월 노무현 대통령이 취임하면서 특별사면을 단행할때 민혁당 관련자 전원이 포함되었으나 이석기는 형이 확정된지 얼마 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사면대상에서 제외되었다 이석기는 4개월 뒤 2003 8월 광복절 특사 때 가석방되었다. 하영옥, 이석기 등 민혁당 관련자들은 2년 뒤 2005년 광복절 특사 때 특별복권되어 공무담임권 및 피선거권 제한이 풀리면서 공직에 출마할 자격을 되찾았다.

 

1991년 김영환과 함께 밀입북했던 연락책 조유식은 수사에 적극 협조하였기 때문에 검찰에서 공소보류 처분되었다. 조유식은 이후 인터넷서점 알라딘을 창업해서 기업인으로 변신하였다.

 

이석기의 민혁당 판결에 대한 현재 태도는 사실상 판결 부정에 가깝다. 그는 민혁당 사건 수사 때부터 재판 때까지 단 한 번도 혐의 사실을 인정한 적 없다”(<한겨레> 2012 59일치 참조)거나 예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북한과의 아무런 연계가 없다”(517 YTN 라디오)고 밝혔다. 이석기는 재판 당시 김영환의 진술 중 피고인(이석기)의 행위에 대한 진술은 전문진술(전해들은 말)이고 하영옥이 김영환에게 피고인의 행위에 대해 전달한 사실을 (훗날 재판에서) 인정하지 않은 이상 위 진술은 증거능력이 없다고 주장했다. 당시 공안사건 관련자 가운데 이렇게 주장한 사람이 적지 않았다. 수사기관이 국가보안법 사건에서 고문수사·증거조작 등을 통해 사실을 부풀리는 일도 많았음을 고려하면, 충분히 제기할 수 있는 주장이다.

 

해산된 통합진보당의 핵심 지도부가 민혁당 사건 관련자로 알려져 있다. 이석기 외에도 서울연합 출신으로 항상 경기동부와 함께하던 이상규는 민혁당 수도남부지역사업부를 맡고 있었으며 울산연합의 리더 김창현은 1999년 울산 동구청장 당선 23일만에 반국가단체인 민혁당 산하 '영남위원회' 사건으로 체포돼서 징역 2년을 선고받았다. 같은 영남위원회 사건으로 징역 7년을 선고받았던 박경순은 통진당내 진보정책연구원 부원장을 맡았다.

 

하영옥과 이석기는 모두 이정희 전 통합진보당 대표의 남편인 심재환 변호사가 변호했다. <한겨레21> 이석기 의원이 법정에서 주체사상이나 민혁당과 관련된 내용을 진술한 것이 있느냐고 물었으나, 심 변호사는 “(나도) 물어봤는데 당시 이석기씨는 일관되게 그런 조직(경기남부위원회)은 없었다고 답했다고 답했다. 심 변호사는 자신도 사건의 실체적 진실은 모른다며 법원 판결에 대해 신뢰하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한동안 사람들이 잊고 있었던 이 사건은 이후 통합진보당 설립 이후 통합진보당 비례대표 후보 부정경선 사건과 통합진보당 내란음모 수사 사건으로 인해 해당 구성원들이 깊게 관련되어 있었다는 점에서 다시 주목받았다. 사실상 이 사건은, 진짜 주사파의 실체가 드러난 사건이며, 이미 운동권이 1996년 연세대 사태등으로 위축된 상태에서 완전히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결정타를 날렸고 이들이 각자 살길을 찾으면서 좌우로 갈라져 좌측은 통진당 NL, 우측 전향자들은 뉴라이트가 되는 분열의 시작이기도 한 것.

 

통진당 사건 이후 경기동부연합, 울산연합, 인천연합, 전남광주연합등의 이름이 거론되어, '혹시 경기 동서남북연합에 전국 8도 연합 다 있는거 아냐?'라는 의심이 있었는데, 이것은 지하조직과 공개적인 대중조직간의 차이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지역 이름이 붙은 XX연합들은 원래 1991 12월에 결성한 "민주주의민족통일전국연합"(이하 전국연합)의 각 지역 지부들이었다. 전국연합은 노태우 정권 당시 진보적 노동운동, 농민운동, 인권운동, 도시빈민운동 등 각 분야별 운동단체들을 모두 모아서 만든 공동투쟁조직이었다. 재야와 운동권 세력이 전부 결집했다고 보면 된다. 그래서 상당히 다양한 성향의 단체와 인물들이 참여했으나 문민정부의 출범 이후 내부의 의견차이로 여러 세력들이 계속 이탈하면서 점점 NL주사파들만 남게 된다. 그리고 1998년이 되면 중앙조직도 공중분해되고, 이미 각 지역의 자생적인 주사파지하조직들이 장악한 지역연합들만 남게 된것이다.

 

위에서 설명한 것 처럼 지역적으로는 서울,경기,전북,영남만 민혁당의 활동구역이었고, 이들이 해당 지역의 XX연합을 장악해서 자신들의 간판으로 활용한 것이다. 대표적인게 바로 경기남부위원회가 장악한 경기동부연합과 영남위원회 계열이 장악한 울산연합이다. 실제 서울연합, 부산연합 등 지역별로 연합은 다있다. 하지만 이들은 강력한 조직력을 갖춘 경기동부, 울산연합, 인천연합의 영향력 하에 놓이게 되어, 세곳의 지역연합이 사실상 NL내의 분파를 지칭하는 용어로 사용되게 된다.

 

원래 이석기가 이끌며 자생적으로 존재하던 성남시와 외대 용인캠쪽 조직이 민혁당에 '경기남부위원회'라는 이름으로 편입되고 이들이 전국연합에도 침투해서 경기동부연합을 장악한 것이다. 그래서 실제로는 민혁당 경기남부위원회지만, 공개적으론 경기동부연합의 간판으로 활동한 것이고 이들이 세력을 불리면서 서울연합도 집어삼키게 되고 나중에 민주노동당, 통합진보당까지 계속 경기동부라고 불리면서 활개를 친 것이다.

 

민혁당 영남위원회 계열은 이미 1990년대 초중반에 울산연합을 완벽하게 장악해서 자신들의 위장막으로 활용하고 있었다. 1999년 리더인 김창현이 영남위원회 사건으로 잡혀간 뒤에도 계속 조직을 유지하면서, 울산연합이란 간판으로 민주노동당, 통합진보당에 계속 참여하였고, 현재도 활동중이다. 물론 이들은 종북, 주사파라고 할 수 없는 것이 대중정치와 지역활동을 하면서 NL색이 자동으로 희석되어 온건한 방향으로 변화되었기 때문이다.

 

간혹 인혁당 사건과 혼동하는 경우가 있는데, 인혁당 사건은 그야말로 무고한 시민이 사법부의 잘못된 판단에 의해 희생된 사건이지만 이 민혁당 사건은 남한 주민들이 북한 고위 간부와 접촉한 명백하게 실체가 있는 사건이다. 두 사건의 연결 고리는 그냥 이름이 비슷한 것밖에 없다. 북한이 노린 것도 이 점이다. 약칭으로 '민혁당'이 되니까 '인혁당 사건'과 혼동하는 사람이 나올테고, 그래서 "(민혁당은 실체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인혁당처럼 억울하게 옥살이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나오게 만드는 것이다. 실제로 북한에서 인혁당 이후 간첩을 파견해 남한 내 지하 조직을 만들 때에는 "XX혁명"같은 이름이 들어가게 짓고 있다고 한다. 이런 북한의 지하 조직은 북한의 경제 사정이 안 좋아지고 북한의 핵개발이 본격화하면서 2010년대 들어서는 많이 사그라들었다. 그러나 북한의 남한 내 지하 조직이 아예 없다고 볼 수는 없다]

 

-남한(대한민국)은 민(民有), 민치(民治),민향(民享)의 민주국가이며 북한(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주체연호 세습제 1인 종신직 좌익군정의 사회주의 국가이다

 

북한의 국정(國政)은 주체연호 세습제 1인 종신직 좌익군정의 북한식 사회주의 국가이며 북한의 사회구성체는 국영자본체제이다

북한정부를 지지하는 단체는 주체연호 세습제 1인 종신직 좌익군정과 국영자본체제를 인정하는 세력들이다

이들은 극렬민족주의 노선 국가사회주의 성향 인사로 자주노선이나 사회주의 국가를 인정하는 세력들이다

한국민족민주전선(반제민족민주전선) 서울대표부 민혁당 계열은 NLPDR노선으로 민중당 내부 자주계열이다

민중당 내부 반미, 반일, 사회주의 행동세력이 한국대학생진보연합이다 

 

북한정부는 1990년 1월 남한지역 반미청년회를 한국민족민주전선(민혁당)으로 개편하여 김정일 중심으로 세력개편을 추진했으며 1990년 5월 국방위원회 제1부위원장, 1991년 12월 김정일 인민군 총사령관, 1992년 4월  북한국가 원수, 1993년 4월 국방위원회 위원장으로 추대돼 북한 인민군과 북한 권력을 장악하게 되었습니다 (1990년 5월 국방위원회 제1부위원장 직무를 맡았으며 1991년 12월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 직무를 맡았다. 1992년 4월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 원수로 당선되었다. 1993년 4월 국방위원회 위원장으로 당선되었으며 1997년 10월 조선노동당 총서기 직무를 맡았다. 1998년 9월과 2003년 9월에 재차 국방위원회 위원으로 추천받았다-북한관련 중국자료)

 

반제민족민주전선 "경애하는 김정은국무위원장님께 삼가 드립니다"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반제민족민주전선중앙위원회'의 단체 이름으로 "희세의 천출위인이시며 민족의 최고령도자이신 경애하는김정은 국무위원장님께 삼가 드립니다"고 15일 보도하였다.

 

다음은 보도 전문.

 

희세의 천출위인이시며 민족의 최고령도자이신

경애하는김정은국무위원장님께 삼가 드립니다

 

오늘 온 겨레는 반만년민족사에 가장 빛나게 아로새겨질 주체조선의 비상한 국력과 눈부신 위상을 절감하며 강성번영할 민족의 찬란한 미래를 환희롭게 내다보고있는 격동적인 시기에 민족의 태양이시며 만고절세의 애국자이신 위대한김일성주석님의 탄생 108돐을 뜻깊게 맞이하고있습니다.

화창한 4월의 봄과 더불어 민족의 영원한 어버이에 대한 그리움이 사무쳐오는 태양절의 이 아침 반제민족민주전선 중앙위원회는 남녘의 전위투사들과 각계 애국민중의 다함없는 경모의 마음을 담아 위대한김일성주석님께 최상최대의 경의를 삼가 드리며 백두에서 개척된 주체혁명위업을 승리와 영광의 한길로 향도하시는 경애하는 김정은국무위원장님께 가장 열렬한 축하의 인사를 드립니다.

돌이켜보면 위대한김일성주석님께서 탄생하신 1912년 4월 15일은 삼천리강토에 무겁게 드리운 망국의 암운을 헤가르며 위대한태양이 찬란히 솟아오른 민족사적대통운의 날, 자주의 새시대가 열린 인류사적사변의 날이였습니다.

장장 80여성상에 이르는 위대한주석님의 한평생은 겨레의 운명과 민족의 밝은 앞날을 위해 자신의 모든것을 다 바치신 걸출한혁명가, 탁월한 정치가, 자애로운어버이의 성스러운 행로로 빛나고있습니다.

천리혜안의 비범무쌍한 예지로 시대발전의 추이와 민중의 념원을 과학적으로 통찰하신 위대한주석님께서는 10대에 벌써 근로민중을 력사의 주체로 내세우는 영세불후의 주체사상을 창시하시여 우리 민족을 자주시대를 앞장에서 열어나가는 영광스러운 선구자로 내세워주시였으며 민족과 인류가 나아갈 가장 정확한 운명개척의 길을 밝혀주시였습니다.

20성상 항일혈전의 불바다, 백두의 설한풍을 헤치시여 포악한 일제를 격멸하고 조국해방의 력사적대업을 이룩하시였으며 3년간의 반미대전에서 세계《최강》을 자랑하던 미제의 《강대성의 신화》를 불사르시여 영웅조선의 기개를 만방에 떨쳐주시고 반제반미투쟁의 세계사적모범을 창조하신 주석님은 정녕 불세출의 전설적영웅, 백승의 령장이시였습니다.

이민위천의 숭고한 민중관을 지니신 위대한주석님께서는 한평생 민중과 생사고락을 함께 하시면서 북녘땅우에 자주정치로 존엄높고 자립경제로 번영하며 자위군력으로 위용떨치는 주체의 사회주의강국, 민중이 하늘로 떠받들리우는 인류의 리상향을 펼쳐주시였습니다.

우리 겨레에게 통일된 조국을 안겨주시기 위해 끝없이 로심초사하시며 조국통일3대원칙과 전민족대단결10대강령, 고려민주련방공화국창립방안을 비롯한 가장 공명정대하고 현실적인 통일방략을 제시하시고 온 겨레의 자주통일운동을 힘있게 떠밀어주시였으며 정력적인 대외활동으로 20세기의 정치흐름을 주도하시며 세계자주화위업실현에 특출한 업적을 쌓아올리신 주석님의 영광찬란한 력사는 오늘도 세인의 끝없는 칭송을 받고있습니다.

참으로 탁월한 사상과 현명한 령도, 숭고한 덕망과 거창한 혁명실천으로 조국과 민족, 시대와 력사앞에 영구불멸할 업적을 이룩하신 위대한주석님을 주체의 영원한 태양으로 높이 모신것은 우리 민족의 무상의 영광이고 행운입니다.

위대한김일성주석님께서 개척하신 주체혁명위업은 절세의 애국자이신 위대한 김정일국방위원장님의 고결한 충정과 비범특출한 령도에 의해 빛나게 이어지고 오늘은 천하제일위인이신 경애하는 김정은국무위원장님을 모시여 최전성기를 맞이하였습니다.

경애하는 국무위원장님께서는 가장 숭고한 도덕의리로 수령영생위업의 빛나는 귀감을 창조하시고 탁월한 사상리론활동으로 위대한김일성-김정일주의를 주체조선과 우리 민족을 이끄는 영원한 향도적기치로 더욱 빛을 뿌리게 하시였습니다.

특히 천재적인 군사적예지와 무비의 담력을 지니신 경애하는 국무위원장님께서는 주체조선을 무적의 군사강국으로 더욱 빛내이시기 위해 불면불휴의 령도로 주체병기탄생의 승전포성을 련속 터쳐올리시여 그 어떤 대적도 감히 덤벼들수 없는 위대한 강국의 전성시대를 펼쳐주시였으며 우리 민족의 존엄과 위상을 만방에 높이 떨쳐주시였습니다.

철의 신념과 의지의 최고체현자이신경애하는 국무위원장님께서 이북민중을 백두의 혁명정신, 백두의 칼바람정신을 지닌 사상과 신념의 강자들로 억세게 키워주시였기에 주체조선에서는 사회주의전진을 가로막는 미증유의 시련과 난관속에서도 자력자강의 정면돌파전으로 민중의 행복을 위한 창조대전이 힘있게 벌어지고 기념비적창조물들이 우후죽순처럼 일떠서 세인을 끝없이 격동시키고있습니다.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는 악성전염병이 전세계를 휩쓸고있는 오늘 국민의 생명과 건강을 최우선시하는 강력한 국가적초특급방역조치들이 취해지고 수도중심부의 풍치수려한 명당자리에 민중의 무병무탈과 건강증진을 위한 현대적인 평양종합병원이 건설되고있는 희한한 현실은 민중제일주의를 자기의 본성으로, 신성한 정치리념으로 내세운 조선로동당이 령도하는 주체조선에서만 펼쳐질수 있는 경이적인 화폭입니다.

세계적인 동란과 온갖 적대세력들의 악착하고 비렬한 압살책동에도 끄떡없이 신심과 락관에 넘쳐 영광스러운 조선로동당창건 75돐을 향하여 질풍노도쳐 나아가는 이북의 용용한 기상과 자랑찬 성과들은 위대한 령수를 대를 이어 모실 때 위대한 나라, 위대한 민중의 승리의 력사가 변함없이 이어지고 민족만대의 강성과 번영의 확고한 담보가 마련된다는 철리를 깊이 새겨주고있습니다.

하기에 지금 남녘의 전위투사들과 각계 애국민중은 현시대의 가장 걸출한위인이시고 민중사랑의 숭고한 체현자이신 경애하는 국무위원장님을 일구월심 따르는 길에 조국통일도 민족의 찬란한 래일도 있다는것을 더욱 확신하고있습니다.

우리 반제민전은 앞으로도 위대한김일성주석님과 위대한 김정일국방위원장님을 영원한 민족의 태양으로 높이 받들어모시고 경애하는 김정은국무위원장님만을 굳게 믿고 따르는 불패의 전위대오, 애국의 충신대오로 철저히 준비하며 백전백승의 위대한 김일성-김정일주의기치밑에 자주, 민주, 통일을 위한 변혁운동을 더욱 과감히 전개해나가겠습니다.

우리들은 출중한 령도력으로 주체조선을 이끄시고 겨레의 운명과 이 땅의 평화를 수호해가시는 경애하는 국무위원장님의 절세의위인상을 마음속깊이 간직하고 경향천지에 우리 민족의 위상과 겨레의 전도에 대한 옳바른 인식을 새겨주며 통일운동의 선도자, 선봉대가 되여 반미자주화투쟁을 더욱 힘있게 벌려나가겠습니다.

친미사대를 배격하고 민족자주를 지향하는것은 오늘 이 땅의 민심으로 되고있으며 자주정치, 군사강국으로 위용떨치는 주체조선은 우리 남녘의 전위투사들과 애국민중의 앞길을 밝혀주는 희망의 등대, 투쟁과 전진을 가속화해주는 원동력으로 되고있습니다.

우리들은 력사적인 조국해방 75돐이 되는 뜻깊은 올해에 조국통일위업실현의 전환적국면을 열어나가며 민족의 열망과 대세에 도전해나서는 외세와 온갖 반역무리들을 청산하기 위한 투쟁에 총매진해나가겠습니다.

경애하는 국무위원장님의 건강과 안녕은 우리 민중과 온 겨레의 한결같은 념원입니다.

반제민족민주전선 중앙위원회는 남녘의 전위투사들과 각계 애국민중의 열화같은 충성의 일편단심을 모아 민족의 존엄과 위상의 상징으로 빛나는 주체조선의 무궁창창한 앞날을 위하여, 조국통일위업과 인류자주화위업의 승리를 위하여 절세의 영웅이시며 민족의 최고령도자이신김정은국무위원장님께서 부디 건강하시기를 삼가 축원합니다.

 

반제민족민주전선중앙위원회

2020년 4월 15일 서울

 

반제민전 창립 50주년 담화

통혁당을 재건한 반제민전이 창립 50주년을 맞아 담화를 발표했다.

반제민전 부위원장은 담화에서

자주 민주 통일의 활로를 개척해 온 그 기세로 앞으로도 내외의 역풍을 뚫고 역사적 임무를 수행할 의지를 분명히 했다.

 

8 26일 우리 민족끼리에 게재된 담화 전문을 게재한다. <편집자 주>

 

남조선 인터넷홈페이지 구국전선(http://www.aindft.com)에 의하면 반제민족민주전선 중앙위원회 선전국이 창립 50돐이 되는 것과 관련하여 반제민전 중앙위원회 부위원장의 담화를 발표하였다.

 

 

절세의 위인 받들어 주체의 항로 따라 나아가는 반제민전의 위업은 필승, 불패이다.

 

-창립 50돐에 즈음한 반제민전 중앙위원회 부위원장 담화-

위대한 향도의 빛발 따라 남녘의 전위투사들과 각계 애국 민중의 변혁 운동이 새로운 전환적 국면을 맞이하고 있는 역사적 상황 속에서 반제민족민주전선창립 50주년을 맞이한다.

 

 

1969 8 25일 통일혁명당으로 창건되어 한국민족민주전선을 거쳐 2005 3월 반제민족민주전선으로 강화, 발전되어온 우리 당은 지난 50토요일을 이룩하기 위한 간고하고도 성스런 혈로를 헤쳐왔다.

 

그 나날은 우리 반제민전이 영생불멸의 위대한 김일성-김정일 주의 기치 밑에 이남 변혁운동을 승리로 결속하는 일로 매진시켜온 자랑찬 노정이었으며 민족해방과 민주주의, 자주통일을 위한 경향 민중의 성스러운 투쟁을 선도하는 애국적 전위대로서의 사명과 임무를 훌륭히 수행하여온 자랑스러운 연대기였다.

 

반제민전은 연대와 세기의 교차 속에서도 일구월심 백두산 절세위인들을 불세출의 영웅, 조국통일의 구성으로 높이 우러러 모시고 우리의 전위투사들과 경향 각지 각계 민중 속에서 열화와 같은 위인숭배 심을 뜨겁게 분출시키기 위한 활동에 총력을 경주하여왔다.

 

 쉼 없이 몰아치는 전대미문의 광풍과 동서 좌우에서 덮쳐드는 형형색색의 돌풍 속에서도 영생불멸의 주체사상만을 유일무이의 향도 이념으로 삼고 이 땅 변혁 운동을 수미일관 주체의 항로로만 편차 없이 전진시켜온 우리 당이다.

 

반제민전은 절세의 애국자들이신 백두산 절세위인들의 숭고한 애국애족의 뜻을 받들어 주체 조국의 자주적이고 평화적인 통일방안들을 적극 지지·환영하고 그를 실천하기 위한 투쟁을 내외 반통일세력들의 악랄한 대결과 전쟁 도발 책동을 반대하는 투쟁과 결부하여 줄기차게 전개해왔다.

 

변혁 운동의 매 시기, 매 단계마다 각종 문건들을 발표하여 이 땅의 정치정세와 현안문제들에 대한 반제민전의 정당한 입장과 의지를 내외에 엄숙히 천명하고 민중운동에 대한 좌표와 향방을 제때에 명시해줌으로써 우리 당은 자주, 민주, 통일을 위한 각 계층의 투쟁을 중단과 탈선 없이 정확하게 이끌어올 수 있었다.

 

하기에 반제민전의 정의의 주장들과 괄목할 애국 투쟁은 우리 민중과 국제 반제역량의 적극적인 지지 성원을 받고 있으며 그 영향력은 비상히 확대되고 있다.

 

반제민전의 자랑찬 50년 행로와 날로 드높아지고 있는 위상은 찬란한 향도의 위인을 높이 모신 최상최대의 영광으로 하여 받아안은 고귀한 결실이며 주체의 광휘로운 빛발을 따르는 길에서 차려진 필연적 귀결이다.

 

오늘 반제민전 앞에는 세기를 이어 지속되고 있는 외세의 강점통치에 종지부를 찍고 불의의 어지러운 사회풍토를 변혁시키며 평화와 통일을 갈구하는 민중적 염원을 하루빨리 성취하기 위한 투쟁을 일층 강화해야 할 중차대한 과제가 나서고 있다.

 

지난 세기 중반기로부터 장장 70여 년 우리 민중이 일관되게 새 사회, 새 정치, 새 생활을 갈구해 왔지만 그 성취의 꿈은 아직도 요원하기만 하다.

 

절세 위인의 광폭의 도량과 숭고한 애국애족의 뜻, 담대한 결단에 의해 마련된 역사적인 대사변들이 내외 적대세력들의 악랄하고 비열한 방해 책동으로 하여 응당한 결실로 이어지지 못하고 있다.

 

이남의 호전세력들은 막대한 군비를 탕진하면서 최신 첨단 전쟁 장비들을 대대적으로 끌어들이는 한편 외세에 추종하여 북을 반대하는 침략적인 전쟁연습을 광란적으로 벌이면서 정세를 극도로 긴장시키고 있다.

 

이 땅의 극우 보수 패당은 역사적인 공동선언들의 이행을 피를 물고 반대해 나서면서 각계 민중의 지향과 시대적 흐름에 공공연히 도전해 나서고 있으며 반역적인 보수통치시대를 되살려보려고 필사 발악하고 있다.

 

조성된 정세는 반제민전의 전위투사들과 각계 민중으로 하여금 지난 수십 년간 전개해온 정의의 투쟁을 조금도 중단함이 없이 더욱 강력히 전개해나갈 것을 요구하고 있다.

 

우리는 반제민전을 천하 절세의 위인들을 대를 이어 높이 모신 무상의 영광과 자긍심을 안고 어떤 역경 속에서도 경애하는 김정은 국무위원장님을 조국 통일의 구성으로 추앙하는 남녘의 향일화, 영생불멸의 위대한 김일성-김정일주의 기치 따라 전진하는 주체의 전위 대오로 더욱 튼튼히 다져나갈 것이다.

 

우리는 외세의 지배에 하루빨리 종지부를 찍고 친미·친일의 사대 매국적인 반역통치와 수구 보수세력을 척결하고 민중이 주인 된 자주 정치, 민주가 실현된 정의사회를 안아오기 위한 투쟁을 기어이 승리의 종착역으로 견인해갈 것이다.

 

가장 애국애족 적이고 공명정대한 주체 조국의 통일방안들을 확고한 이정표로 삼고 자주통일 투쟁을 보다 강력히 전개하며 그에 역행해 나서는 내외 반통일세력들의 악랄한 동족 대결과 북침 전쟁 도발 책동을 단호히 짓부숴버리기 위한 투쟁을 더욱 가열차게 전개해 나갈 것이다.

 

투쟁은 험로 역경이지만 천하 절세의 위인 받들어 찬란한 향도의 빛발 따라 주체의 항로로 나아가는 반제민전의 위업은 필승불패이다.

 

반제민전은 지난 50년간 간고한 투쟁 속에서도 추호의 흔들림 없이 동고동락해온 전위투사들, 각계 애국 민중과 함께 자주와 민주, 통일을 위한 성스러운 투쟁의 혈로를 선봉에서 헤쳐나감으로써 이 땅 변혁 운동의 애국적 전위대로서의 역사적중임과 역할을 다해나갈 것이다.

 

반제민족민주전선 격문

범국민적분노와 증오의 총폭발로 천년숙적을 징벌하고 세기의 한을 풀자!

전국민에게 격함
전체 국민들이여!

지금 이 땅에서는 일본의 파렴치하고 강도적인 경제침략을 반대하는 목소리가 높이 울려나오고있다.
경향천지를 진감하는 이 반일의 함성은 우리 경제와 국민을 상대로 침략의 칼을 또다시 빼여들고 재침야망을 실현해보려는 일본에 대한 참을수 없는 저주와 분노, 증오와 단죄의 폭발이다.

이 땅에서 일제강점기가 종식된 때로부터 세월은 아득히 흘렀지만 장장 40여년에 걸친 그 모진 민족적수난과 고통, 불행과 희생을 우리 어찌 한순간인들 잊고 살았던가.

수많은 꽃다운 젊은이들이 허망한 《대동아공영권》야망의 대포밥이 되고 수백만의 청장년들이 강제징용으로 죽음의 고역장들에 끌려가 떼죽음을 당하였으며 20만명에 달하는 이 나라 녀성들이 성노예의 운명을 강요당하지 않으면 안되였다.

우리 민족의 말과 글, 이름까지 깡그리 말살하고 수많은 지하자원과 귀중한 민족문화유산을 강탈해갔으며 가장 야수적인 방법으로 무고한 민중을 무자비하게 도륙한 일본이였다.

아직도 눈도 감지 못한채 구천을 떠도는 수십, 수백만의 일본군성노예들과 강제징용자들의 령혼들이, 지금도 두눈을 부릅뜨고 살아있는 생존자와 그 후손들, 온 겨레가 천백배의 사죄와 배상을 받아낼것을 피터지게 절규하고있다.

그러나 오늘 일본의 아베일당이 놀아대는 뻔뻔하고 파렴치한 작태를 보라.

과거죄악에 대한 사죄와 반성은커녕 그에 대한 책임인정까지 한사코 회피하다 못해 강제징용피해자배상문제에 대한 대법원의 판결을 《국제법위반》이라고 생떼를 쓰며 무차별적인 경제침략의 칼을 휘둘러대고있다.

그야말로 적반하장의 극치가 아닐수 없다.

더욱 참을수 없는것은 일본반동들이 이번의 날강도적인 보복조치를 얼토당토않게 북과 련계지으며 우리 민족전체를 표적으로 삼는가 하면 우리 국민을 《추한 한국인》, 《버릇없는 꼬마》라고까지 모독하며 길길이 날뛰고있는것이다.

온 겨레의 피가 거꾸로 솟구치게 하는 일본놈들의 파렴치하고 오만방자한 망동은 오늘날 이 땅에서 산생된 모든 불행과 고통의 원인이 바로 일본에 있다는 사실을 더욱더 각인시켜주고있다.

《한》반도에 대한 침략야욕이 없이는, 우리 국민, 우리 민족을 집어삼키려는 탐욕을 버리고서는 순간도 존재할수 없는것이 일본통치배들이다.

이 땅에 대한 일본의 경제보복은 단순히 강제징용피해자배상판결에 대한 불만에서 비롯된것이 아니다.

지난날 우리 민족을 짓밟고 온갖 전횡과 략탈을 일삼던 식민지지배자로 또다시 군림해보려는 력대 일본반동들의 뼈속까지 들어찬 침략야망의 발로이다.

지금의 일본지배층이 그 모든 야망실현의 첨병으로, 21세기 《정한론》실현의 돌격대로 나서고있다.

세계도처에서 무역전쟁을 일삼는 미국을 본따 가뜩이나 어려운 이 땅의 경제를 질식시키고 남북화해를 가로막아 아시아의 《맹주》로 부상해보려는 일본의 간특함과 악랄함에 우리 어찌 격노하지 않을수 있겠는가.

Collapse
경향각지에서 끊임없이 타오르는 반일의 불길은 우리 민중, 우리 민족의 자존심과 존엄을 감히 우롱하고 롱락하려드는 일본통치배들을 추호도 용납치 않으려는 국민적요구와 의지의 분출이다.

전국민이 일본반동들의 오만방자한 작태에 격노하여 들고일어나는 이 시각 《자유한국당》을 비롯한 친일매국세력은 그에 찬물을 끼얹는 친일매국행위를 일삼고있어 우리 국민을 더욱 격분케 하고있다.

우리 국민의 반일기세에 힘을 보태지는 못할망정 《감정외교, 갈등외교가 가져온 참사》로 매도하고 《반일감정의 자제》와 《강경일변도 반대》를 떠들어대며 《국회》에서의 대일규탄결의안채택마저 공공연히 반대한것이 바로 보수패당이다.

심지어 보수패당은 일본반동들의 경제침략을 극구 비호두둔하다 못해 《반일이 북에 리롭다.》는 천하에 비렬한 《색갈론》궤변까지 늘어놓고있다.

사실 일본반동들이 지금처럼 파렴치하고 오만무례하게 놀아대게 멍석을 깔아준것도 바로 력대 보수《정권》이 아니란 말인가.

이 땅에 일본을 끌어들인 본당도, 일본군성노예문제와 강제징용피해자배상문제를 희석시키고 유야무야해버린 주범도 보수역적무리들이였다.

《정권》탈취야욕에 환장하여 국민의 의지와 요구는 외면하고 천년숙적과도 서슴없이 야합하는 《자한당》을 비롯한 보수패당의 추악한 망동은 만고역적 《을사오적》들도 무색케 하는 친일매국행위가 아닐수 없다.

현 시국은 일본정치깡패들과 보수역적무리들의 반민족적, 반국민적광태를 철저히 분쇄하지 않는다면 이 땅에 을사년의 망국사가 재현되고 현대판 《시일야방성대곡》의 참상이 도래하게 될것임을 실증해주고있다.

전체 국민들이여!

일본의 강도적전횡과 망동을 짓부시기 위한 투쟁은 민족의 자존과 국민의 운명을 지키고 이 땅의 친일매국세력을 청산하기 위한 정의의 항전이다.

방관은 죽음이고 타협은 굴종이다.

전국민적대일분노의 총분출로 섬나라족속들의 파렴치한 날강도적전횡을 단호히 짓부시자!

날로 확산되는 일본상품불매, 배척운동에 너도나도 동참하자!

지난날의 조선총독처럼 행세하며 이 땅, 우리 국민을 깔보는 아베가 다시는 머리를 쳐들지 못하게 버릇을 톡톡히 가르쳐주자!

전국민적인 대일항전으로 우리 민족에 대한 과거 일본의 피비린 살륙만행과 강탈의 대가를 기어이 받아내자!

《전쟁이 가능한 나라》를 꿈꾸며 군사대국화 획책하는 사무라이후예들의 야망을 단호히 짓뭉개버리자!

전민족의 단합된 힘으로 강도 일제를 타도하고 조국해방을 안아온 자랑스러운 전통과 불굴의 투쟁정신으로 인륜도 법도도 모르는 후안무치한 야만무리들에게 준엄한 철추를 내리자!

오늘 일본반동들이 멋없이 날뛰는것은 《자유한국당》과 같은 친일매국세력이 아직도 도사리고있기때문이다.

일본의 치떨리는 과거죄악에 면죄부를 주며 일장기 들고 재침의 문을 열어주는 토착왜구당-《자한당》에 무자비한 징벌을 안기자!

일본의 경제침략을 호기로 삼고 정쟁과 막말을 일삼으며 권력야욕에 광분하는 《자한당》을 단호히 매장해버리자!

국민에게는 위험천만한 독버섯이 되고 파렴치하고 후안무치한 일본반동들과는 한짝이 되여 반일의 열풍에 찬물을 끼얹는 보수언론, 친일매문가들을 쪽발이들의 소굴로 추방하자!

위정자들은 사대와 외세의존은 망국의 길이라는 력사의 교훈을 똑똑히 새기고 민족자주의 길에 과감히 들어서라!

일본은 우리 민족의 천년숙적이며 반일은 전민족의 열화같은 의지이다.

모두다 반일항전에 총분기하여 민족의 존엄을 지키고 민중을 살리며 자주와 정의를 지향하는 국민적기개를 남김없이 떨치자!

반제민족민주전선 중앙위원회
2019년 7월 25일 서울

 

인터네트홈페지 《구국전선》에 의하면 반제민족민주전선 중앙위원회가 유엔총회무대에서 우리 국가를 《완전파괴》하겠다는 미치광이나발을 불어댄 미국집권자를 규탄하는 성토문을 발표하였다.

성토문은 다음과 같다.

 

전국민적분노를 터쳐 미치광이괴수의

천인공노할 《완전파괴》망언을 강력히 성토한다

지금 이 땅은 전고미문의 《북 완전파괴》를 운운하며 전민족을 대상으로 용납 못할 침략전쟁을 도발하려는 미국의 트럼프에 대한 국민적분노로 끓고있다.

수많은 언론매체들과 각계층 민중이 트럼프의 유엔총회연설은 《즉흥발언이 아니라 사전에 작성된것》, 《미국이 줄곧 표방해온 〈대북선제공격〉과 〈예방전쟁〉을 넘어 전면전까지 예상해야 하는 불길함을 주는 망언》으로 평하면서 《전쟁발발은 시간문제》라고 우려를 표하고있다.

경향각지에서 《야수의 본성을 드러낸 포효》로, 《서울과 평양 등 모든것을 재더미로 만들려는 망언》으로 단죄하며 《지구우의 큰 암덩어리인 늙은 개새끼, 전쟁미치광이 트럼프를 잡아치우자.》고 웨치고있다.

미국의 력대 대통령들치고 북을 적대시하지 않은자 없지만 트럼프와 같이 초보적인 인격도 갖추지 못한채 유엔무대를 일대 폭언의 란무장으로 전락시키며 《북점령》과 우리 민족의 절멸을 노린 상상 못할 악담을 그처럼 공공연히 내뱉은 미치광이괴수는 없었다.

반제민족민주전선 중앙위원회는 세계평화와 안전을 론한다는 유엔무대에서 존엄높은 주권국가인 북의 명성과 전략적지위를 허물어내리고저 미친개처럼 짖어댄 트럼프의 폭언을 인디안을 멸족시킨 양키의 괴수만이 줴칠수 있는 천인공노할 망발로, 북뿐아니라 《한》반도전체를 완전초토화하고 우리 민족을 멸살시키려는 로골적인 대살륙전선언으로 락인하면서 전국민의 이름으로 준렬히 규탄한다.

자칭 《초대국》의 권력자로서의 초보적인 론리와 체모를 깡그리 줴던져버린 트럼프의 광태는 히틀러와 무쏠리니, 닉슨과 부쉬 등 악명을 떨친 동서고금의 정치깡패들을 무색케 하는 추태의 극치이다.

애초에 트럼프는 권력욕에 사로잡혀 민주당과 공화당에 많은 선거자금을 기부하고 당적을 바꾸어댄 정치이단자이고 국회의원이나 주지사, 행정관료직을 한번도 맡아본적 없는 정치문외한이다.

아이적에는 중학교에서 너무도 말썽을 부려 13살에 벌써 퇴학당할 정도로 불량아였고 어른이 되였을 때에는 돌발적인 언동과 무지막지한 주먹행사로 저질인간, 뒤골목깡패로 취급받았다.

변태적이고 추잡한 사생활과 상스러운 언행으로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받다 못해 자기보다 24살이나 아래인 딸같은 녀자를 겁탈하여 세번째 안해로 만들고 그것도 성차지 않아 안해의 라체를 사진찍어 잡지표지에까지 내게 한 타락할대로 타락한 호색한이 다름아닌 트럼프이다.

이렇듯 세상에 삐여져나올 때부터 정신적기형아였고 성숙기에는 불망나니로 변하였으며 늙다리가 되여서도 환상적오만의 치매증세에 빠져있는 정신병자의 혀바닥에서 세계를 파멸에로 몰아넣을 위험천만한 폭언과 망발이 거침없이 터져나온것은 어찌 보면 크게 놀랄 일은 아니다.

《누구도 못 말리는 괴짜》, 《돈 끼호떼》, 마피아두목, 정치초학도인 트럼프가 미국정치의 우두머리자리를 차지한것은 침략과 살인 등 온갖 죄악으로 이어진 악의 나라 미국에서만 있을수 있는 특종사변이다.

트럼프가 《깡패두목》, 《신히틀러》로 명명되는데 따라 미국정부라는것이 깡패무리, 신히틀러집단으로 완전추락한것 또한 당연지사이다.

문제의 위험성은 트럼프가 유엔무대에서 줴친 《완전파괴》, 《산산쪼각》 등의 망발이 늙다리정신병자의 즉흥적언동이 아니라 미국정부의 《대북정책》, 대《한》반도정책을 려과없이 표출한것이라는데 있다.

지구상 그 어디에 《한》반도의 남쪽만큼 방대한 무력과 핵전쟁장비들이 집결되여있는 곳이 또 있는가.

민심의 드센 항거와 주변국들의 강력반발에도 불구하고 핵전쟁괴물 《싸드》가 성주기지에 영영 틀고앉은데 이어 괌에서 리륙한 《B-1B》핵전략폭격기편대들이 때없이 군사분계선상공에 날아들어 실탄폭격훈련을 강행하는것은 물론 위험천만한 일이 아닐수 없다.

핵항공모함타격단들과 핵잠수함들이 《한》반도와 그 주변수역에 몰려들고있는가 하면 하늘과 땅, 바다 할것없이 도처에서 수십만의 대병력이 동원된 각종 전쟁연습이 매일과 같이 벌어져 화약내가 가셔질 날이 없다.

생각만 해도 소름끼칠만큼 경악스러운 이 광경앞에서 북이 어찌 팔짱을 끼고 보고만 있을수 있겠는가.

결국은 미치광이 트럼프가 아무렇게나 던진 대책없는 말 한마디가 이 땅에 불뭉치를 던진 꼴이 되고말았다.

《한》반도라는 땅덩어리자체를 지구상에서 완전히 없애버리고 우리 민족모두를 절멸시켜서라도 반미자주의 보루인 북을 기어이 타고앉아 동북아시아와 전세계에서의 미국의 패권적지위를 유지하려는것이 바로 트럼프의 망발에 깔린 저의이다.

트럼프의 《완전파괴》폭언은 단순히 북에 대한 미국의 적대시정책, 북주민에 대한 미국의 대살륙기도만이 아니다. 우리 국민모두에 대한 살륙과 이 강토전역에 대한 초토화계획이다.

미국의 리익을 위해서는 우리 국민, 우리 민족, 우리 땅이 통채로 없어져도 좋다는것이 트럼프악당의 속심이고 미국의 정책이다.

그럼에도 집권자를 위시한 현 당국과 보수패당은 트럼프의 광기에 박수를 쳐 《지지》하는 반역적작태를 서슴없이 드러내고있다.

현 당국자는 이번 유엔총회마당에서 트럼프의 망발에 대해 《확고하고 구체적인 립장 표명》, 《북핵문제의 심각성》, 《최대한의 제재와 압박을 통한 북비핵화》를 떠들며 쌍수를 들어 환영했다.

미국의 추종국가들과 자국내에서까지 트럼프의 잔악무도한 망발을 《정치인답지 못한 발언》, 《경솔한 처사》라고 반대배격하고있는 때에 유독 현 당국자를 비롯한 이남의 위정자들만이 비굴한 작태를 드러내며 《지침서》나 받은듯이 호들갑을 떤것은 차마 눈뜨고 볼수 없는 정치만화이다.

트럼프의 홍두깨같은 망발이 현실화될 경우 과연 청와대나 《국회》의사당이 무사하리라고 생각하는가.

현 당국자가 《한미동맹》을 구걸하며 동족을 절멸시키려는 미국의 《완전파괴》책동에 가담해나서는것이 천추에 용납 못할 민족반역행위임을 정녕 모른단 말인가.

《한》반도와 《한》민족을 이 지구상에서 없애버리겠다는 트럼프깡패무리들과 그에 아부굴종하는 현 당국의 향방없는 친미굴종행위는 미구에 닥쳐올 핵전쟁의 참혹한 재난을 예감케 하고있다.

미국의 핵전쟁불뭉치가 《한》반도 《완전파괴》라는 대재앙을 부르며 온 민족의 운명을 시시각각 위협하고있다.

이제 우리 국민은 미국의 발굽에 짓밟힌것도 모자라 최악의 전쟁위험, 극단한 절멸의 위기에 놓이게 되였다.

트럼프와 같은 전쟁미치광이의 발작증세와 친미사대매국노들의 비루한 추태로 하여 이 땅의 모든것이 완전히 파괴되고 민족이 핵전쟁의 참화를 당하는것을 절대로 수수방관할수 없다.

전국민은 트럼프의 망동을 강력성토하며 미국의 북침전쟁책동을 단호히 짓부셔버리기 위한 성전에 총분기해나서야 한다.

트럼프의 망발을 통해 드러난 미국의 《한》반도초토화전략의 흉심을 똑바로 알고 미국을 배척하고 미군기지를 철페하며 미군을 몰아내기 위한 범국민적투쟁을 가렬차게 벌려나가야 한다.

민족멸살 노리는 미국의 발악적인 북침전쟁책동을 분쇄하기 위한 투쟁에 총매진하자!

경향각지에서 반미반전평화수호투쟁의 불길을 더욱 거세차게 지펴올리자!

노예의 사슬, 치욕의 올가미 《한미동맹》 깨버리고 민족의 존엄을 되찾자!

외세와 공모결탁하여 동족대결과 북침핵전쟁책동을 추구하며 국민을 미국의 핵볼모로 섬겨바치는 사대매국노들을 력사의 시궁창에 처박아버리자!

전국민이 일치단합하여 침략자와 매국노를 쓸어버리고 반미총결사전의 최후승리를 안아오자!

 

반제민족민주전선 중앙위원회

2017년 9월 28일      서울

-반제민족민주전선 중앙위원회(재한총련)는 한국 내부 북한 주체연호 세습제 1인 종신직 좌익군정의 사회주의 국가(김일성 김정일주의)를 지지하는 동포들이 결성한 단체이다. 대표적인 단체는 통일혁명당과 민족민주혁명당(민혁당)이다

주체연호 세습제 1인 종신직 좌익군정의 북한식 사회주의 국가 김정은 정부를 지지하는 세력이다

 

4.김일성 김정일 가계 세습제 유일사상과 조국통일민주주의 전선

북한 주민들은 김일성, 김정일주의자가 돼야 국가 보호를 받을 수 있다

북한 주민들은 김일성주의 주체사상(주체연호)과 김정일주의 선군정치를 지지해야 정치범이 아니다

북한정부에서는 김일성, 김정일 가계 세습제 유일사상 이외는 모든 세력이 적이다

-중국 공산당 지도자를 버려야 종파분자가 되지 않는다 김일성 주체사상과 김정일 선군정치 유일사상으로 무장하라

-국제적 반미투쟁가와 연대를 하라 그래야 반미전선을 구축할 수 있다 중국정부 내 친미인사를 제거하라 일본정부나 한국정부 내부 반미인사를 포섭하라

 

북한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후보 자격은 다음과 같다

"선거에 참여할 정당과 개인은 선거연합인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에 가입하며 해당 선거연합은 모든 지역구에서 후보를 단일화한다"

후보를 내는 곳이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 뿐이기에 모든 지역구에서 단독 후보가 출마하게 되고 홍보나 선전 활동 등 선거 유세도 없다. 투표용지에 적힌 후보자를 지지할 경우에 기표소에 들리지 않아도 된다고 보장하였으니 기표소에 들리는 것 자체가 해당 후보자를 반대한다는 표시가 되는 '공개투표'가 된다. 선거가 끝나면 다 같이 모여서 춤을 추는데, 개표가 끝난 뒤가 아니고 투표가 끝난 뒤에 한다는 점도 선거에서 반대 의견을 내기 어려운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다.

 

통일전선: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

조선로동당 (여당) ·

조선사회민주당 ·

천도교청우당

해외 김일성 김정일 가계 세습제 유일사상 단체[재일총련, 재중총련,반제민전등]

민전의 통합은 남조선로동당과 북조선로동당의 합당으로 조선로동당이 탄생한 것과 같은 시기에 이루어졌다.

민주주의민족전선은 미군정 시기인 1946 2월에 박헌영과 여운형, 허헌 등이 만든 단체이다. 민주주의민족통일전선은 소군정 영역에서 김일성과 김두봉, 최용건 등이 주축이 되어 구성되어 있었다. 모두 사회주의 계열의 여러 정당과 사회단체가 연합해 창립했다.

그러나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면서 민주주의민족통일전선은 불법 단체로 규정되었다. 이에 1949 6 25일부터 평양에서 회의가 열려 두 단체는 조국통일민주주의 전선으로 통합했다.

조국통일민주주의 전선은 "노동계급이 영도하는 노농동맹에 기초하여 조국통일을 지향하는 우리나라의 모든 애국적 민주주의 역량을 묶어 세운 강력한 정치적 조직체"로 규정한다. 북한 노동당의 통일전선 전술의 전위를 맡고 있었으며, 남한 내부의 북한 노동당 지지 세력을 단합시켜 북한 노동당과 연계 활동을 펼치는 것이 목적이었다.

현재는 정당 및 사회단체의 연합체로서 총선거 후보자를 배출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북한 대의원이나 해외 주체사상 연구회나 친북단체 대표들이 조국통일민주주의 전선 단체 구성원들이다

남한 친북 주체사상파들이 북한정부 대의원이 될 수 있는 방법은 일본 조총련처럼 조국통일민주주의 전선에 가입하고 활동하는 단체로 보면 된다 일본 조총련이나 남한 친북세력 김일성 김정일주의(주체사상이나 선군사상) 단체[한국민족민전선 서울대표부] 그리고 해외 친북세력 김일성 김정일주의(주체사상이나 선군사상) 단체들이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祖國統一民主主義戰線)[통일전선] 하부조직으로 활동하면서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으로 활동하는 경우도 있다

북한 최고 인민회의 대의원은 북한 김정은정부 친위대이며 자금줄(돈줄)이다

특히 해외 단체 북한정부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은 북한정부 인적자원단체이며 자금줄(돈줄)이다

북한 조국통일민주주전선 소속단체이며 대남공작단체는  재중총련, 재일총련, 재한총련(반제민족민주전선 중앙위원회, 서울) 등이다

남한에서는 북한 김일성정부가 박헌영과 남로당을 체제전복 범죄행위와 미국의 간첩으로 처형된 이후 남한에서 친북세력이 와해 되었고 박정희정부 때 남한 최초의 김일성노선 통일혁명당을 조직했고 1972년도 주체사상 선포와 함께 남한, 조총련 해외단체에 대의원을 선출하여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을 구축해왔다

5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선거에서 노동당이 크게 패배하고 인민민주주의 노선 인민회의정부론 인민공화국을 포기하고 자국 사회주의 국가 주체사상과 사회주의 공화국 헌법으로 변경하게 되었다

그리고 1972 12 27일 최고인민회의 제5기 제1차회의에서 사회주의 공화국 헌법을 채택하여 북한 제2공화국을 선포했다

-인민민주주의 인민공화국(1공화국 헌법)과 주체사상 자주적 사회주의 국가(2공화국 헌법), 주체연호 세습제 1인 종신직 좌익군정 사회주의 국가(3공화국 헌법)-

http://blog.daum.net/007nis/15875476

 

5.북한 노동당 통일전선부

통일전선부[1]는 북한 조선로동당 산하의 대남공작 및 정보기관이다. 흔히 통전부로 불리며 주로 대한민국에 있는 민간단체나 해외 동포, 유학생들을 포섭하기 위해 선전, 선동, 대남방송, 삐라 살포, 친북조직 관리 같은 임무를 담당한다.

 

소위 3호 청사로 불리는 북한의 대남공작기구는 조선로동당 통일전선부, 작전부, 대외연락부를 말하는데 이중 통일전선부는 비밀리에 대남공작업무를 하면서도 우리의 통일부와 같은 남북대화, 교류나 한국 내 기업들의 대북사업도 공식적으로 관리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다른 부서에 비해 정치적 입지가 가장 크며 대남공작의 핵심 부서이기도 하다.

 

대남공작을 공개적으로 한다고 해도 대부분의 요원들은 공개적인 행사나 회담 시 가명과 가짜 직위를 사용하는데 남북대화에 참여한 임춘길(본명 임동옥), 전금진(본명 전금철), 안병수(본명 안경호)등이 대표적이다.

 

통일전선부의 초대 부장은 2007년부터 2015년 사망 시까지 김양건이 맡았으며 이 사람은 2009년 김대중 대통령 서거 당시 조문 특사로 파견되기도 했고, 2014년에 인천아시안게임 폐막식을 위해 방남하기도 하였다.

 

통전부는 범민족대회, 조국통일범민족연합(범민련), 조국통일범민족청년학생연합(범청학련)에 관련된 공작업무도 담당하며 대한민국의 특정 사회 단체 관계자나 종교인이 북한의 초청장을 받고 방북하게 될 경우에도 방북 동기나 의도에 관계없이 일단 통전부의 공작 대상이 된다.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조국전선), 재북평화통일촉진협의회, 조선아시아태평양위원회(아태평화위), 반제민족민주전선, 구국의 소리방송 같은 단체도 관리, 운영하고 있으며, 최근 개성공단 개발총국을 산하기관으로 두고 있다는 것이 밝혀졌다.

 

2015 12월 김양건이 사망한 후 후임으로 대남 강경파인 정찰총국장 출신 김영철 대장이 신임 통전부장 겸 대남담당비서 자리까지 차지하게 되어, 대남 도발이 매우 우려되는 상황이다.

 

2016년에 사이버심리전에 열을 올리는 것으로 알려졌다.

 

2016년 산하에 있던 조국평화통일위원회가 국무위원회 산하 국가기구로 승격되면서 대한민국 통일부와의 대화, 교류 기능은 조평통으로 옮겨갔고, 대신 통전부는 청와대 국가안보실과 격이 맞춰지게 되었다.

 

2018년 남북미 화해무드인 상황에서 수장인 김영철이 평창 올림픽 기간 방남은 물론이고 2018 1차 남북정상회담과 2018 2차 남북정상회담에 배석해서 회담을 진행하는 듯 주도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그리고 북미정상회담에서 실무 접촉을 담당했던 외무성의 김계관, 최선희가 막말에 가까운 벼랑 끝 전술을 사용했다가 오히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취소 통보에 7시간만에 저자세로 담화문을 발표해서 겨우 수습하고 있는 상황인만큼 북미정상회담에서도 외무성 대신에 통일전선부가 주도적으로 나설 가능성이 높은 상황이다.

 

2019년 북미관계가 교착상태에 빠지고 남북관계가 어려움을 겪고 있는 가운데 제2차 북미정상회담이 베트남 하노이에서 합의없이 결렬되고나서 김영철 부장이 부장직에서 물러나고 장금철이라는 인물로 새로이 교체되었으며, 대미협상도 통전부에서 다시 외무성으로 옮겨갔다고 한다. 북미정상회담 결렬에 통전부에 대한 김정은의 문책이 호되게 이루어졌다고 한다. 김영철의 위상도 대폭 감소되었고 김성혜 통전부 실장도 실각하였다고 한다.

(1).연혁

1977년 김일성의 직접교시에 따라 조선로동당 산하에 문화부가 창설되어 대남공작업무를 시작했다.

1983년에 문화부에서 지금의 통일전선부로 명칭을 변경되어 현재까지 유지중이다.

(2)조직

a.직접침투과: 대한민국 내부에 반정부 통일전선을 형성하기 위한 간첩의 우회 침투담당

b.북남회담과: 북남회담과 교류업무를 전담

(a)교류1: 민족화해협의회(민화협)라는 위장명칭 사용, 친북 및 이적단체 담당

(b)교류2: 단군민족통일협의회라는 위장명칭을 사용, 북한의 기독교, 불교, 천주교, 천도교, 조선사회민주당으로 위장된 1~5국으로 구성되며 남한과의 종교 교류를 담당.봉수교회도 여기 소속이다.

c.해외담당과(대외연락부): 해외의 반한(反韓)단체 육성 및 친한(親韓)단체 와해 공작 담당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 재중총련, 재한2013년 이후 통일전선부 산하기관인 제225(구 대외연락부)가 일본의 재일본조선인총련합회, 중국의 재중국조선일총련합회, 한국의 재한국조선인총련합회(반제민족민주전선)를 지도하고 있다.총련(반제민족민주전선 중앙위원회)

 

d.학습조: 조총련의 중추적 비밀 조직으로 조총련 조직 강화, 재일동포 이탈방지, 대북송금, 일본과 남한에 대한 정치공작을 담당

e.남조선연구소: 일본에서 대한민국의 정보를 수집한다.

f.외곽단체과

(a)조국평화통일위원회 등

(b)구국의 소리 방송 등

g.조국통일문제연구소: 대남 심리전 및 대남정보 자료 분석

(3)북한의 민간단체

통일전선부는 북한 국내의 민간단체를 지휘하고 있다.

 조선기독교련맹 (KCF)

 조선불교도련맹

 조선사회민주당

 천도교청우당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 중앙위원회

 

북한 조국통일민주주의 전선 소속단체이며 대남공작기구의 재중총련, 재일총련, 재한총련(반제민족민주전선 중앙위원회) 은 남한 대화창구(남북회담) 지위와 역할을 할때는 평화공세 세력으로 한국정부 안보 위협세력이 되지 않을 수 있지만 주체연호 세습제 1인 종신직 좌익군정의 북한식 사회주의 국가를 수립목표로 한국정부와 투쟁할 때는 반국가단체 간첩죄가 성립된다. 주체연호 세습제 1인 종신직 좌익군정의 북한식 사회주의 국가를 지지하면서 반미, 반일운동을 하는 단체는 대부분 반제민족민주전선 중앙위원회(재한총련) 계열로 반국가단체나 간첩 그리고 국가보안법으로 처벌 받을 수 있다

남한(대한민국)은 민유(民有), 민치(民治),민향(民享)의 민주국가(민주공화국)이라면 북한(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노동계급의 령도 노농연맹(勞農聯盟)의 사회주의 국가(사회주의 공화국) 주체연호 세습제 1인 종신직 좌익군정의 북한식 사회주의 국가이다

대북정책은 남한 통일부이며 대남정책은 북한 통일전선부이다

통일부는 대남정책이 아닌 대북정책으로 주체연호 세습제 1인 종신직 좌익군정의 북한식 사회주의 국가가 아닌 민유(民有), 민치(民治),민향(民享)의 민주국가(민주공화국)가 돼야 한다. 통일부가 대남정책이 될 때는 북한 통일전선부 대외연락부 재한총련(반제민족민주전선 중앙위원회 서울, 남한 대표부) 창구역할으로 전락될 수 있다

 

남한(대한민국)은 민유(民有), 민치(民治),민향(民享)의 민주국가(민주공화국)이라면 북한(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노동계급의 령도 노농연맹(勞農聯盟)의 사회주의 국가(사회주의 공화국) 주체연호 세습제 1인 종신직 좌익군정의 북한식 사회주의 국가이다

더불어 민주당(민생당)과 문재인정부는 남북한 브로커(중개인) 문화를 중단해야 하고 남북 경제 교류의 매개체(중개역)로서 개인적인 이익을 추구하는 당 내부나 정부 내부의 풍조를 쇄신해야 할 것이다

노동계급의 령도 노농연맹(勞農聯盟)의 사회주의 국가(사회주의 공화국) 주체연호 세습제 1인 종신직 좌익군정의 사회주의 국가 김정은 독재정부 타도와 남북한 민유(民有), 민치(民治),민향(民享)의 민주국가(민주공화국)를 수립 합시다

 

 

 

"Form Guide Ear(Language, Intelligence) to Bird's Eye(Reading,Investigation)"

당신은 긴급상황 일때 귀가 빙빙 돌아가면서 뇌가 통제되는 머리소리함 Guide Ear 요원입니까?

East Asia((Asia-Pacific) Region various data collection, research, analysis, judgment instituti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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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uide Ear & Bird's Eye Hur Kwan(許灌, 허관)-

*머리소리함 Guide Ear 요원?
태어날 때부터 생존 당시까지 뇌 기억이 검증된 요원들로 각종 자료를 머리소리함 Guide Ear(Language) 발신, 수신이 되는 분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