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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sia-Pacific Region Intelligence Center

2008년 6월 27일 냉각탑 폭파와 6차 핵을 실시한 북한 북부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선언 본문

수소핵폭탄(핵탄두) 실험과 KN-08

2008년 6월 27일 냉각탑 폭파와 6차 핵을 실시한 북한 북부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선언

CIA Bear 허관(許灌) 2018. 5. 24. 06:37






북한은 미국이 테러지원국가 지정 해제 절차에 들어감에 따라 2008년 6월 27일 오후 5시 5분에 영변에 있는 핵시설 냉각탑을 미국이 비용 전액 부담하여 폭파했다 영변은 북한의 중요한 핵공업지역이고 1986년에 가동을 시작한 5메가와트의 핵원자로 폐기 연료봉은 핵무기를 제조하는 원료인 플루토늄을 제련 추출할수 있는데, 열교환장치 냉각탑은 바로 핵원자로의 중요한 구성부분이다
북한이 2007년 11월 영변의 핵시설에 대해 불능화를 시작한 후 5메가와트 핵 원자로가 운행을 멈췄으며 냉각탑도 사용을 중지했다  냉각탑 폭파 이후 북한은 5차례 핵실험을 했다.


조선이 영변핵시설냉각탑 폭파 (중국 국제방송)

오늘 이시간에는 <조선이 녕변핵시설냉각탑을 폭파시킨데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조선은 현지시간으로 27일 17시 05분 저들의 녕변지역의 핵시설 냉각탑을 폭파시켰습니다. 조선은 이날에 앞서 정식으로 조선핵문제 6자회담 의장국인 중국에 핵프로그램 신고서를 회부하였습니다. 미국은 조선이 회부한 핵명세를 확인한 동시에 조선에 대한 부분적인 무역제재를 해제하는 한편조선을 "테러리즘지지국가" 명단에서 제거하는 사업에 착수할것이라고 선포했습니다. 6자회담 관련 여러측들은 조미간의 이런 양성적인 상호 연동은 조선핵문제행정 해결을 다그치는데 유리할것이라고 보편적으로 인정하고 있습니다.

27일 폭파시킨 냉각탑은 조선녕변핵원자로의 중요한 구성부분입니다. 녕변은 평양에서 북쪽으로 약 130킬로미터 떨어져 있는데 이는 조선핵공업의 중요한 기지입니다. 녕변에는 핵무기생산에 필요되는 원자재인 풀루토늄을 제련할수 있는 5메가와트 핵원자로가 있습니다. 2006년 10월 조선은 이 원자로에서 제련한 풀루토늄을 이용하여 핵장치를 제작하여 처음으로 지하핵시험을 진행하였습니다. 조선은 6자회담 공동문서의 요구에 따라 지난해 11월 녕변핵시설의 불능화사업을 가동하여 5메가와트핵원자로의 운영을 중지하였습니다. 그리하여 냉각탑은 상징적인 의의가 되여 별로 쓸모가 없는 진렬물로 되였습니다.

조선은 27일 6자회담 기타 5개국의 기자들이 현장에서 전반 냉각탑폭파 과정을 취재하도록 초청하였습니다. 높이 30미터, 밑부분직경 22미터, 상부직경 13미터인 냉각탑은 콘크리트구조물입니다. 현지 시간으로 17시 05분 조선관원의 명령에 따라 콘크리트로 된 건축물은 꿍꽝소리와 함께 연진속에서 무너졌습니다. 조선외무성과 조선원자력총국관원과 조선을 방문중인 미 국무부 한국과 김성과장, 그리고 녕변핵시설 불능화사업에 참여한 미국기술인원들이 현장에서 전반 폭파과정을 봤습니다.

6자회담 관련 여러측들은 27일 조선의 핵프로그램 신고와 냉각탑 폭파사건과 관련해 론평들을 발표하고 무핵화를 위한 조선의 노력을 적극 평가했습니다.

조선외무성 대변인은 이날 논평을 발표하고 조선은 미국이 "테러리즘지지국가" 명단에서 조선을 제거하는 절차와 조선에 적응되는 <적국무역법>을 중지하는 것을 가동한데 대해 환영한다고 했습니다. 이 대변인은 반도무핵화행정의 순조로운 추진을 확보하기 위해 미국은 조선에 대한 적대시정책을 전면적으로 포기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는 6자회담에 참가한 기타나라들은 자기의 승낙에 따라 경제적 보상의무를 제때, 완벽하게 이행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는 이와 동시에 <5 .19 공동성명>의 원칙에 따라 6측은 의무이행에서 검사와 감독을 받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이 대변인은 조선이 회부한 핵프로그램 신고서는 완벽하고 정확한 것이라고 하면서 이것은 미국이 명단제거가동절차에 대한 답복이라고 했습니다.

이에 대해 한국매체들은 조선이 강조한 경제보상문제는 일본에 비추어 말한것이라고 분석했습니다. 일본은 시종 인질납치문제가 해결되지 못했다고 것을 이유로 대조선경제원조참가를 거부하고 미국이 "테러리즘지지국가"명단에서 조선을 제거하는 것을 반대하고 있습니다. 이밖에 조선이 여러측들이 검사와 감독을 받도록 제기한 것은 한국과 미국에 비추어 말한 것입니다. 조선은 미국이 한국에 핵무기를 배치하는 것을 비난하고 있으며 조선반도비핵화에는 한국의 비핵화가 포함되여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조선이 저들의 핵신고내용은 완벽하다고 강조한 것은 조선이 외계에서 제기한 조선이 진행한 것은 고농축우라늄프로그램과 핵전파활동이라는 것을 재차 부인한 것을 의미합니다.

조미쌍방이 현재 모두 적극적인 자태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조선핵문제가 향후 순조롭게 진행될수 있다는 것을 결코 의미하지 않습니다. 일본에서 G8 정상회의 외무상회의에 참가한 미 국무부 라이스장관은 27일 조선이 냉각탑을 폭파시킨 것은 불능화에로 나아가는 중요한 한 걸음이라고 하면서 그러나 "이야기"는 채 끝나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그는 미국이 향후 검증문제에서 조선과 대결할것이라고 암시했습니다. 그리하여 다음단계 행동은 의연히 주로 조선의 "포기"와 미국의 "적대시정책 개변"이라는 과정이고 의연히 "행동대행동"의 과정이라는 것을 예견할수 있습니다.

한국여론들은 현재 조선핵문제가 중대한 진전을 거두었으며 조미관계가 변화되고 있는때 한국정부는 기회를 틀어쥐고 대조선정책을 조절하고 조선에 친선적인 신호를 내보내고 남북관계회복에 힘써야 한다고 했습니다. 한국여론들은 조선핵진전을 추진하고 남북관계를 발전시키는 것은 양호한 상호연동으로 되여야 한다고 하면서 이는 남북화해와 교류에 유리하고 조선반도평화체제건립에 유리하다고 인정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조선이 녕변핵시설냉각탑을 폭파시킨데 >대해 말씀드렸습니다. [중국 국제방송] 


 미-북 관계, 대결과 탐색의 58년

북한의 핵 신고서 제출에 상응해 미국이 대북 테러지원국 지정 해제 절차에 착수함에 따라 미-북 관계에도 적잖은 변화가 예상됩니다. 지난 1950년 한국전쟁에서 교전 상대로 처음 관계를 맺은 두 나라는 냉전 시절 줄곧 적대 상태에 있었고, 냉전 해체 이후 북한의 핵 문제를 둘러싸고 본격적인 대화를 시작했습니다. 조은정 기자와 함께 58년에 걸친 미-북 관계를 간략하게 알아보겠습니다.

문: 조은정 기자. 미국과 북한은 한국전쟁을 거쳐 1953년 중국과 함께 정전협정을 체결한 이후 '90년대 초반까지 약 40여년 간 직접적인 교류가 거의 없었죠?

답: 그렇습니다. 미국과 옛 소련을 주축으로 자본주의 세계와 사회주의 세계가 대립했던 냉전 시기에는 미국과 북한 간 군사적 충돌 사건이 몇 차례 있었을 뿐입니다. 1968년 미 해군 정보수집함 푸에블로 호가 원산 앞바다에서 북한군에 나포된 사건, 1969년 북한 전투기가 동해에서 미군 정찰기 EC-121를 격추한 사건, 1976년 판문점 공동경비구역에서 미군 장교 2명이 북한군 50여 명에게 도끼로 살해 당하는 사건 등이 있었는데 이 때마다 미국과 북한은 비공식 또는 비밀접촉을 통해 타결을 봅니다.

문: 1980년대 말 사회주의 국가들이 체제 전환을 시작하고 냉전이 해체되면서 북한의 입장에 변화가 생겼나요?

답: 예. 북한은 심각한 안보불안을 갖게 됐고요, 이에 따라 한국, 미국과의 관계 개선에 나서게 됩니다. 미국은 지난 1988년 북한의 대화 제의를 받아들여 12월부터 미-북 간 비공식 참사관급 대화가 베이징에서 1991년까지 18회 이뤄집니다. 곧이어 1992년 1월, 당시 북한 노동당 국제 담당 비서 김용순이 뉴욕을 방문해 미 국무부의 아놀드 캔터 정무차관과 회담을 하는데, 이것이 미-북 관계 개선을 위한 최초의 고위급 회담입니다.

문: 그런데 미국과 북한이 이같이 상호 탐색을 벌이는 중에 제 1차 북 핵 위기가 불거지지 않습니까? 이후 체제 안전을 원하는 북한과 핵 확산을 막으려는 미국 사이에 지리한 줄다리기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데요. 1차 핵 위기 당시 미-북 관계는 어떤 양상을 보였습니까?

답: 옛 소련으로부터 원자력 기술을 일부 전수받은 북한은 '80년대 들어 원자로와 재처리 시설 등을 만들며 본격적인 자체 핵 개발을 시작했고, 이 때 핵무기도 염두에 둔 것으로 파악되고 있습니다. 1992년 북한이 국제원자력기구 IAEA에 제출한 핵 신고의 내용이 허위라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북한은 IAEA 탈퇴, 미사일 발사 등 초강수를 뒀습니다.

북한 핵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미국과 북한은 고위급 회담들을 열었고 이 때 관계개선 문제도 논의했습니다. 이 시기 북한의 벼랑끝 전술에 미국도 한 때 강경대응을 하며 빌 클린턴 행정부 시절 영변의 핵 시설에 대한 폭격 계획까지 세웠던 것으로 알려졌는데요, 1994년 지미 카터 전 미 대통령이 북한을 방문해 김일성 주석을 만나면서 위기 상황이 진정됐습니다. 또 미-북 고위급 회담의 결과로 1994년 10월에는 제네바 합의로도 알려진 기본합의서가 채택됩니다. 합의서는 북한의 핵 동결과 경수로 지원, 그리고 미-북 연락사무소 설치 등 관계 개선을 주요 내용으로 담고 있습니다.

문: 기본합의서 체결 이후에는 처음으로 미-북 간 관계 정상화가 시도됐지요?

답: 예. 그런데 이같은 관계 진전은 짧은 위기 기간을 거쳐 나타납니다. 기본합의서 이행이 3년 이상 순조롭게 진행되지 않은데다 북한 금창리에 지하 핵 시설이 있다는 의혹이 제기됐고, 북한은 이에 대해 장거리 미사일 발사로 대응했습니다. 이후 미국은 실효성 있는 대북정책을 모색하게 되고, 윌리엄 페리 대북정책조정관은 '페리 보고서'를 통해 미국이 북한 붕괴론에서 벗어날 것을 제안합니다.

다시 화해의 길에 들어선 미국과 북한은 2000년 미-북 공동코뮤니케를 발표해 적대관계 해소를 천명하고, 북한의 조명록 국방위원회 수석 부위원장이 워싱턴을 방문해 빌 클린턴 대통령을 면담하고, 이어 매들린 올브라이트 국무장관이 평양을 방문해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만나는 등 관계 정상화를 위한 활발한 움직임을 보입니다. 양측의 대화는 당시 클린턴 대통령의 평양 방문 가능성이 제기될 정도로 진전을 이뤘습니다. 하지만 공화당이 주도하는 미 의회가 클린턴 행정부의 대북 포용정책을 견제하고, 또 임기 말을 맞은 클린턴 대통령이 중동평화 문제에 매달리면서 방북은 결국 성사되지 못했습니다.

문: 이후 조지 부시 행정부가 출범하면서, 미-북 관계가 다시 급격히 경색됐지요?

답: 부시 대통령은 취임 1년 뒤인 2002년 1월 북한을 '악의 축'으로 규정하고, 같은 달 미 국방부는 의회에 제출한 보고서에서 핵무기를 사용해 공격할 수 있는 나라에 북한을 포함시켰습니다. 몇 개월 뒤 미국 정부는 제임스 켈리 국무부 차관보를 평양에 보내 북한의 고농축 우라늄 개발 의혹을 추궁했습니다. 미-북 간 신경전이 벌어지는 와중에 우라늄 관련 의혹은 기정사실이 되고 미국은 1차 핵 위기 때 북한과 타결한 기본합의서를 폐기했습니다. 북한은 이에 대응해 핵확산금지조약 NPT를 탈퇴하고 플루토늄 제조에 힘을 쏟았습니다. 이 것이 이른바 제2차 북 핵 위기입니다.

문: 당시 미-북 관계가 또다시 최악으로 치달았는데 어떻게 양측이 다시 대화에 나서게 됐습니까?

답: 한국과 중국, 러시아가 적극 중재해 2003년 8월 베이징에서 미국과 남북한, 중국, 일본, 러시아 등 여섯 나라가 참가하는 제1차 6자회담이 개최됩니다. 그렇지만 미국이나 북한이나 서로 먼저 양보하라며 입장을 굽히지 않았는데요. 2005년 한국 정부가 미국에 북 핵 해법을 제안하고 동의를 얻은 뒤 북한을 적극 설득해 6자회담 참가국들은 비핵화 원칙을 담은 9.19 공동성명을 타결합니다. 하지만 불과 사흘 뒤 미 재무부가 불법 금융 거래를 들어 북한에 대한 금융제재 조치를 취했고, 이후 6자회담은 13개월 간 중단됩니다.

문: 중단 기간 동안 북한은 미사일 시험발사와 핵실험을 강행하고,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대북 제재결의안을 채택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오히려 이후 대화 국면이 조성됐지요?

답: 그렇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부시 행정부의 태도가 바뀐 점입니다. 부시 행정부는 북 핵 해결에 강한 의지를 보이며 대북 관계 개선과 안전보장 제공, 평화협정 체결 용의를 밝혔습니다.

이후 6자회담도 큰 위기 상황 없이 전개돼 비핵화 초기단계 이행에 대한 2.13 합의, 2단계 조치에 대한 10.3 합의 등이 타결됐습니다. 비핵화 조치들이 처음 예상보다는 오래 걸린 부분도 있지만 북한이 6개월여 늦게 마침내 미국에 핵 신고를 해 2단계가 마무리 됐습니다. 현 시점에서 관심사는 미-북 양국이 얼마나 정치적 의지를 갖고 이번 호기를 잘 활용해 국교 정상화를 달성할 수 있을지 여부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미국의 소리]



북한, 플루토늄 신고량 38kg

북한은 이번 핵 신고서에서 과거에 재처리 해서 보유했던 플루토늄의 양과 함께 현재 원자로에서 제거하고 있는 연료 봉 8000개를 재처리 해서 나올 플루토늄의 양까지 계산해서 신고한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워싱턴의 외교소식통은 북한이 이번에 중국에 제출한 핵 신고서에서 명시한 플루토늄의 양은 38 킬로그램이라고 알고있다고 전했습니다. 이는 지금까지 짐작으로 알고 있던 북한 플루토늄의 추출 량 37KG보다 1 KG이 많은 것입니다.

북한은 이번 핵 신고서에서 기존에 보유하고 있던 플루토늄의 양은 31 kg 정도로 명시했고 여기에 연료 봉 8,000개를 재처리 해서 나올 플루토늄 양을 합해서 38kg으로 신고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워싱턴의 전문가는 말했습니다.

이 전문가는 불능화 작업 11가지 중에서 현재도 진행중인 3가지 작업 중 하나가 원자로 안에 담긴 연료 봉을 꺼내는 작업이라고 전하면서 지난 12월 미국과의 대화에서 북한은 보유중인 플루토늄의 양을 31kg 정도라고 미국측에 말하자 이 같은 양이 너무 적다고 판단한 미국측이 북한과 협의 끝에 앞으로 폐기할 연료 봉 8000개를 재처리 하면 나올 플루토늄의 양까지 합쳐서 앞서 미국이 북한이 보유했을 것이라고 추산한 플루토늄의 양 37 kg에 근접하는 플루토늄의 양을 계산해 신고서에 넣게 됐다고 설명했습니다.

따라서 앞으로 미국은 이미 북한이 미국에 건 낸 만8천 쪽에 달하는 핵 시설 '가동 일지'를 철저히 검토해서 정확한 플루토늄의 양을 검증해야 할 것이라고 이 전문가는 덧 붙였습니다.


북한 핵실험

 

북한은 6차례 핵실험으로 3번 원자폭탄 핵무기 실험과 1번 수소폭탄 실험(핵무기 소형화), 2번 수소폭탄(미사일 핵탄두) 실험을 했다[1962년 미국 네바다 핵 실험장의 세단 핵 실험은 핵출력 TNT 104 kt의 수소폭탄을 터뜨려, 리히터 규모 4.75의 인공지진이 발생했다. 4.95면 208 kt, 5.15면 416 kt이라는 의미이다]

(1)1차 핵실험

북한은 한국 표준시로 2006년 10월 9일 10시 35분 풍계리 핵 실험장에서 지하 핵 실험을 성공적으로 시행했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한국지질자원연구원은 이날 오전 10시35분께 함경북도 화대리 지역에서 진도 3.58에서 3.7 규모의 지진파를 감지했다[북한정부는 4kt 핵 실험 통보를 했다 우리 정부에 통보한 국가에서 북한의 핵 실험 규모가 10kt 정도라고 알려준 것으로 안다]


2006년 북한 1차 핵 실험, 진도 4.2, 핵출력 TNT 2 kt[독일 연방지질자원연구소(BGR) 분석]


(2)2차 핵실험

 북한은 2009년 5월 25일에  풍계리 핵 실험장에서 2차 핵무기의 지하 핵 실험을 했다

2009년 5월 25일, 새누리당 핵심관계자는 "북한 함경북도 길주 지역에서 강도 5.4의 지진이 발생했다고 하는데 지질자원연구원에서 인공 지진으로 추정했다"고 말했다.

2009년 5월 25일, 러시아 국방부는 북한의 2차 핵 실험의 폭발력이 20킬로톤(kt. 1kt는 TNT 폭약 1천t의 폭발력)에 달하는 것으로 확인하고 있다고 러시아의 이타르타스 통신이 보도했다.

2009년 5월 25일, 일본 기상청 지진파 감시과의 세키타 야스오(關田康雄) 과장은 기자회견에서 진도 5.3의 강진이 감지됐음을 밝히며 "지난번 핵 실험 때 일본 기상청이 관측한 지진 규모는 4.9로, 일반적으로 자연 지진일 경우 이번 에너지는 지난번의 4배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2009년 북한 2차 핵 실험, 진도 4.8, 핵출력 TNT 13 kt[독일 연방지질자원연구소(BGR) 분석]


(3)3차 핵실험

 북한은 2013년 2월 12일 오전 11시 57분 51초, 함경북도 길주군 풍계리 핵실험장에서 세 번째로 핵 실험을 진행했다

세계적인 핵 전문가 지그프리드 헤커 2차 핵 실험의 2배 폭발력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2차 핵 실험의 폭발력은 2∼7㏏으로 추정됐기에 3차 핵 실험은 4∼14㏏에 이른다는 것이 헤커 박사의 추정이다. 우리 국방부는 3차 핵실험 직후 그 파괴력을 6∼7㏏으로 추정했으며 핵 실험이 성공적이지 않았다고 평가했다.

인공지진 규모 4.9는 기상청과 지질자원연구원, 유엔 포괄적핵실험금지조약기구(CTBTO)가 분석한 실체파 규모다. 미국 지질조사국(USGS)은 5.1, 독일 연방지질자원연구소는 5.2로 모두 국내 기관보다 크게 잡았다. 독일 연방지질자원연구소는 진도 5.2에 미국 머피 공식을 적용해 폭발력이 40 kt이라고 추정했다.

2013년 2월 13일, 독일 연방지질자원연구소(BGR)는 진도 5.2, 폭발력 40 kt이라고 홈페이지에 발표했다. BGR에 따르면 북한의 핵 실험 진원지에서 8,200 km 떨어진 독일 바이에른 숲 내 핵 실험 감시 시설인 GERE에서 폭발이 일어난 지 11분 6초 만에 지진 신호가 감지됐다. GERE는 국제감시제도(IMS)의 규정에 따라 BGR이 운영하고 있다. 독일 주간지 슈피겔은 한국 국방부가 발표한 6~7㏏의 위력은 정치적인 측면을 고려해 축소한 수치일 수 있다고 보도했다

2013년 북한 3차 핵 실험, 진도 5.2, 핵출력 TNT 40 kt[독일 연방지질자원연구소(BGR) 분석]


(4)4차 핵실험[수소폭탄 실험]

 북한은 2016년 1월 6일, 한국 표준시로 오전 10시 30분 길주군 풍계리 핵 실험장에서 4차 핵 실험 수소폭탄 실험을 감행하였다


대한민국 기상청, 일본 기상청, 미국 지질조사소(USGS), 유럽지진센터는 모두 진도 5.1이라고 판단했다.

이번 4차 핵 실험에서, 북한은 최초의 수소폭탄 핵 실험이 성공했다며, 축구공 모양인 KN-08 핵탄두의 실물까지 공개했다. 반면에, 한국, 미국 등은 수소폭탄이 아니라 증폭형 핵분열탄 시험이었다고 본다. 1953년 소련이 폭발력 400 kt인, 축구공 모양의 RDS-6 수소폭탄을 핵 실험하자, 미국은 수소폭탄이 아니라 증폭형 핵분열탄 시험이라고 주장했다. 축구공 모양의 수소폭탄은 미국의 에드워드 텔러가 설계만 해보았고, 핵 실험한 적은 없는 반면에, 소련은 최초의 RDS-6 수소폭탄을 축구공 모양으로 만들었다


(5) 5차 핵실험[미사일 핵탄두 실험]

미사일 핵탄두를 보유하기 위해서는 수소폭탄 실험에 성공한 후 1-2회 이상 미사일 핵탄두(수소폭탄) 실험을 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2016년 9월 9일 오전 9시 30분 경 북한은 정권 수립일에 맞춰 2016년 1월 핵 실험에 이어 8개월만에 풍계리 핵 실험장에서 핵 실험을 감행하였다. 조선중앙통신은 공식 성명을 통해 5차 핵 실험이 성공적이었고, 핵탄두를 탄도 미사일에 장착할 수 있는 단계에 도달했음을 최종적으로 검토 확인했다고 밝혔다.


(1)폭발력

대한민국 국방부는 본 핵 실험은 진도 5.0 규모의 인공 지진을 일으켰다고 파악되며, 추정 핵출력은 10kt 정도로 현재까지 핵 실험 중 가장 큰 규모라고 밝혔다.

미국 미들버리 국제학연구소의 제프리 루이스는 "핵 실험 위력이 최소 20∼30kt(킬로톤)으로 지금까지 북한의 핵 실험 가운데 최고"라고 말했다.

2013년 함형필 국방연구원(KIDA) 연구위원은 "진도 4.7~4.8 정도면 TNT폭약 15kt 위력을 보인 히로시마급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2013년 대한민국 기상청은 "진도 4.9면 20kt 정도로 추정되며, 진도 규모가 0.2가 상승한 5.1이면 50kt, 5.3이면 100kt까지 커진다"고 본다. 모멘트매그니튜드(Mw)가 0.1 증가하면 지진에너지는 약 1.4배가 된다.

유럽지진센터는 최초 속보에서 5.5라고 판단했다가 5.3으로 수정했다.[7] 진도 5.5면 200 kt 핵출력이다.

미국 지질조사소(USGS), 유럽지진센터, 일본 기상청은 진도 5.3으로 본다. 즉 2016년 1월의 4차 핵 실험 당시 진도 5.1 보다 폭발력이 2배 증가했다고 본다.

대한민국 기상청도 4차 핵 실험보다 폭발력이 2배 증가했다고 본다. 그런데, 4차 핵 실험 당시 한국은 미국 일본 유럽과 동일하게 진도 5.1로 보았는데, 이번 5차 핵 실험은 폭발력이 2배라면서 진도 5.0이라고 발표했다. 4차 핵 실험 당시 한국 기상청은 처음엔 5.1이라고 했다가, 4.8이라고 수정했었다.

2013년 대한민국 기상청은 진도 5.3이면 100 kt 핵출력이라고 말했다. 국방연구원은 통상적인 기상조건 하에서, 서울을 대상으로, 100kt 핵무기가, 지면폭발 방식으로 사용된다면 24시간 이내 서울 인구의 절반인 580만 명이 사망하거나 다친다고 본다.

2015년 2월 데이비드 올브라이트 ISIS 소장은 북한 전문 웹사이트인 38노스에 "2020년까지 북한이 많게는 100개의 핵무기를 만들 수 있다"는 보고서를 올렸다. 2015년 12월 16일, 38노스 운영자인 조엘 위트 존스홉킨스대 방문연구원은 2020년까지 100 kt급 수소폭탄을 제조할 수 있는 능력을 보유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1962년 미국 네바다 핵 실험장의 세단 핵 실험은 핵출력 TNT 104 kt의 수소폭탄을 터뜨려, 리히터 규모 4.75의 인공지진이 발생했다. 4.95면 208 kt, 5.15면 416 kt이라는 의미이다.

(2)핵 운반체 개발과의 연계

2016년 북한에서 일어난 두 차례의 핵 실험은 모두 잠수함발사 탄도유도탄 KN-11 실험 직후 이루어져, 잦은 핵 실험이 SLBM에 장착할 핵탄두 소형화를 목표로 하고 있다는 분석이 제기되었다. 북한은 2016년 8월 24일 KN-11 시험발사에 최초로 성공했다.

북극성(KN-11)의 개발원형이라고도 보도되는 러시아 R-27U는 200 kt 수소폭탄 3발이 탑재된다. 북한의 북극성과 이름이 같은 미국 UGM-27C 폴라리스 A-3도 무게 117 kg, 핵출력 200 kt인 W58 수소폭탄 3발이 탑재된다.

미국 폴라리스 미사일은 1959년 6월 9일 진수된 세계 최초의 SLBM 잠수함 USS 조지 워싱턴 (SSBN-598)에 탑재된 SLBM이다. 즉, 세계 최초로 실전배치된 SLBM이다.

(3)대응조치

2016년 8월 24일 북한이 북극성 발사에 최초로 성공하자, 이에 대한 대응조치로, 미국 공군은 2016년 9월 5일 미니트맨 미사일을 시험발사해 무력시위를 했다.

북한 14톤 북극성(Polaris)의 참조모델인 미국 폴라리스 미사일, 러시아 R-27은 핵출력 200 kt 수소폭탄 3발을 탑재한다. 미국 공군이 대응조치로 발사한 35톤 미니트맨 미사일도 170 kt 수소폭탄 3발을 탑재한다. 최근에 475 kt으로 개량했다. 즉, 미니트맨은 연료량이 2배 이상 많아 사거리가 길고 무게가 무겁지만, 탑재하는 핵탄두 3발의 폭발력은 서로 비슷하다.

2016년 9월 9일 북한은 5차 핵 실험을 단행했는데, 일부에서는 핵출력 20 kt의 진도 5.5의 인공지진이 관측되었다.

 

(6)6차 핵실험[2차 미사일 핵탄두 실험, 대륙간 탄도 미사일(ICBM)에 탑재 가능한 수소폭탄 실험]

 

9월 3일 낮 12시 29분, 북한의 함경북도 풍계리 부근에서 인공적인 지진이 관측됐는데 북한은 관영 조선중앙텔레비전을 통해 ICBM, 대륙간탄도미사일에 장착하기 위한 수소탄 시험에 성공했다는 핵무기연구소의 성명을 발표했습니다.
발표에서 북한은 ICBM에 장착할 수소탄 시험의 완전한 성공으로 북한의 핵탄두가 고도로 정밀화됐을 뿐만 아니라 동작의 신뢰성을 얻어 핵무력 완성의 목표를 달성하는 데 매우 의의 있는 계기가 되었다면서 이번 시험이 ICBM에 장착할 핵무기 개발의 일환이라고 밝혔습니다.
또 이번 핵실험은 전례 없이 큰 위력으로 진행돼 신뢰성을 높이는 결과를 얻었다며 폭발 규모가 컸다는 점을 강조하고 기술이 진전됐다고 과시했습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핵무기연구소 성명

대륙간탄도로케트장착용 수소탄시험에서 완전 성공

조선 로동당의 전략적 핵 무력 건설 구상에 따라 우리의 핵 과학자들은 9월 3일 12시 우리나라 북부 핵 시험장에서 대륙간탄도로케트장착용 수소탄 시험을 성공적으로 단행하였다.

이번 수소탄 시험은 대륙간탄도로케트전투부에 장착할 수소탄 제작에 새로 연구·도입한 위력조정 기술과 내부구조 설계 방안의 정확성과 믿음성을 검토·확증하기 위하여 진행되었다.

시험측정결과 총폭발위력과 분열 대 융합위력비를 비롯한 핵 전투부의 위력지표들과 2단 열핵무기로서의질적 수준을 반영하는 모든 물리적 지표들이설곗값에 충분히 도달하였으며 이번 시험이 이전에 비해전례없이 큰 위력으로 진행되었지만, 지표면 분출이나 방사성 물질 루출 현상이 전혀 없었고 주위 생태환경에 그 어떤 부정적 영향도 주지 않았다는 것이 확증되었다.

시험을 통하여 수소탄 1차계의 압축기술과 분열연쇄반응 시발 조종기술의 정밀성을 재확인하였으며 1차계와 2차계의 핵물질리용률이 설계에 반영한 수준에 도달하였다는것이 다시금 실증되었다.

수소탄 2차계의 핵융합위력을 높이는 데서 핵심 기술인 핵장약에 대한 대칭압축과 분열기폭 및 고온핵융합점화, 뒤이어 매우 빠르게 전개되는 분렬-융합반응들 사이의 호상강화과정이 높은 수준에서 실현된다는것을 확증함으로써 우리가 수소탄제작에 리용한 1차계와 2차계의 지향성결합구조와 다층복사내폭구조설계가 매우 정확하며 경량화된 열복사차페재료와 중성자차페재료가 합리적으로 선정되였다는것을 확인하였다.

이번 시험을 통하여 우리는 1차계와 2차계에서 일어나는 복잡한 물리적과정들에 대한 우리 식의 해석방법과 계산 프로그람들이 높은 수준에 있으며 2차계의 핵장약구조 등 주체식으로 설계한 핵전투부로서의 수소탄의 공학구조가 믿음직하다는 결론을 얻었다.

시험에서는 또한 핵탄두폭발시험과 각종 탄도로케트시험발사들을 통하여 충분히 검토된 밀집배치형 핵폭발 조종체계의 믿음성을 다시한번 확인하였다.

대륙간탄도로케트장착용 수소탄 시험에서의 완전 성공은 우리의 주체적인 핵탄들이 고도로 정밀화되었을뿐 아니라 핵전투부의 동작 믿음성이 확고히 보장되며 우리의 핵무기 설계 및 제작 기술이 핵탄의 위력을 타격 대상과 목적에 따라 임의로 조정할 수 있는 높은 수준에 도달하였다는 것을 명백히 보여주었으며 국가 핵 무력 완성의 완결단계목표를 달성하는데서 매우 의의있는 계기로 된다.

대륙간탄도로케트장착용 수소탄 시험이 성과적으로 진행된것과 관련하여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는 북부 핵 시험장의 우리 핵과학자, 기술자들에게 뜨거운 축하를 보내여왔다.

 

북한 제4공화국 북한 헌법 서문에서 핵보유국 표방

"김정일동지께서는 세계사회주의 체계의 붕괴와 제국주의 련합 세력의 악랄한 반공화국 압살 공세 속에서 선군정치로 김일성동지의 고귀한 유산인 사회주의전취물을 영예롭게 수호하시고 우리 조국을 불패의 정치사상강국, 핵보유국, 무적의 군사강국으로 전변시키시였으며 강성국가건설의 휘황한 대통로를 열어놓으시였다.[북한 제4공화국 북한 헌법 서문 내용]"


북한정부는  제4공화국 헌법-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사회주의헌법[김정은 헌법]에서 핵 보유국을 표방하고 있습니다

북한 김정은정부의 한반도 비핵화 입장에 대해서 의심할 수 밖에 없습니다


북한이 처음으로 핵실험을 감행한 지 9일로 11년이 지났습니다.

북한은 11년 전인 2006년 10월 9일 함경북도 풍계리 핵실험장에서 처음으로 핵실험을 단행한 뒤 지난달까지 모두 6차례 핵실험을 거듭해왔습니다.

폭발 규모가 1차 핵실험 때는 TNT화약으로 환산해 1킬로톤 이하였는데 6차 핵실험은 사상 최대인 160킬로톤으로 추정돼 일본 히로시마에 투하된 원폭보다 10배가 넘습니다. 6차 핵실험 이후 북한은 대륙간탄도미사일, ICBM에 탑재하는 수소폭탄 실험에 성공했다고 발표한 바 있습니다.

지난 7월 ICBM급인 '화성 14형' 2발을 잇따라 발사한 북한이 미국 본토를 겨냥한 ICBM에 탑재하는 핵무기의 소형화 기술을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가운데 김정은 북한 노동당위원장이 지난달 15일 "핵무력의 완성 목표는 거의 종착점에 달했다"며 과시한 바 있습니다.

김정은 위원장은 또, 7일 열린 당의 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서 가진 연설에서 "핵무력 건설의 역사적인 대업을 완수할 것"이라고 강조해, 10일 노동당 창건기념일을 맞는 북한은 자국이 '핵보유국'이라는 주장을 기성사실화하기 위해 핵과 미사일 개발을 한층 더 가속화할 것으로 보입니다.[일본 NHK]


작년 북한 6번째 핵실험 폭발위력 171~209kt



  "수소 폭탄"으로 보이는 물체를 시찰하는 북한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중앙). 조선 중앙통신이 2017년 9월 3일에 전달했다(조선 통신 = 연합)


지난해 9월 북한이 감행한 6번째 핵실험의 폭발 위력이 그간 추정치 160kt보다 큰 것으로 나타나면서 수소폭탄 실험에 성공했다는 평가가 나왔다.

요미우리 신문은 11일 싱가포르와 미국 등 국제 합동연구팀 조사 결과 6번째 핵실험 폭발 위력이 TNT 화약 환산으로 171~209kt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됐다고 보도했다.

신문은 이 같은 폭발 위력이 1945년 일본 히로시마(廣島)에 떨어진 원자폭탄(15kt)의 11~14배에 상당하는 것이라고 전했다.

핵폭발 규모는 통상적으로 폭발로 생긴 지진 규모에서 추산하고 있다.

합동연구팀은 이에 더해 독일 인공위성이 포착한 핵실험장 부근 지표면의 변화를 분석했다.

핵폭발에 따른 지면의 움직임을 컴퓨터로 시뮬레이션 계산하는 등 폭발 규모를 거듭 상세히 살펴보았다고 한다.

연구팀은 "인공위성에 의한 관측이 현재 핵실험 감시에는 사용하지 않지만 이번 연구에서 그 유용성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강조했다.

관련 논문은 10일자 미국 과학학술지 사이언스에 실렸다.

핵반응에 정통한 다카키 나오유키(高木直行) 도쿄 도시대학 교수(원자로 물리학)는 "폭발 위력으로 볼 때 북한이 설계한 규모로 수소탄 실험을 성공시킨 것은 의심할 나위가 없다. 미사일에 핵탄두를 탑재해 대기권에 재돌입시키는 것은 어렵기 때문에 직접적인 위협은 안 된다고 생각하지만 북한의 기술력이 상당히 높은 것은 틀림없다"고 평가했다.

앞서 6차 핵실험 후 북한 외교를 총괄하는 노동당 부위원장 리수용은 작년 9월 핵실험의 폭발 위력이 TNT 환산으로 "수백kt에 달했다"고 주장했다.

리수용은 당시 평양을 찾은 안토니오 이노키 일본 참의원을 만나 핵실험 규모와 관련해 이같이 밝혔다.

북한 당국은 6번째 핵실험에 관해 "수소탄 실험에 성공했다"고 발표했지만 폭발 규모에는 언급하지 않았다.

일본 방위성은 포괄적 핵실험 금지조약기구(CTBTO)가 북한 핵실험으로 인한 지지 규모를 5.8에서 6.0으로 변경함에 따라 폭발 위력을 160kt으로 상향 수정한 바 있다.

 

 




  사거리가 5,500km 이상인 탄도미사일로 핵탄두를 장착한 전략핵무기 탄도 로켓[대륙간탄도미사일(ICBM , Intercontinental Ballistic Missile) 화성 15호

2017년 11월 29일 화성 15호 탄도 로켓  발사는 통상보다 각도를 높이 올려 발사하는 '로프티드 궤도'방식으로 실시됐는데 "예정대로 궤도를 53분간 고도 4475킬로미터에 달했고 950킬로미터를 비행했다"며 "미국 등이 압박을 가하는 가운데 발사에 성공했다는 것은 우리 조선인민의 승리"라고 강조했다.




탄도 미사일과  탄도로켓



당신은 북한 미사일을 탄도 미사일과  탄도로켓로 구분할 수 있습니까?

 미사일 엔진이 단거리는 1단식이며 중거리는 2단식이며 장거리는 3단식 비행거리 탄도미사일(탄도로켓, 비행체 살상무기)입니다

북한의 탄도미사일 개발 수준이 고저(高低) 각도 발사로 비행거리를 조정하는 "로프티드 궤도(lofted trajectory)[高低角度 발사] 모델" 수준입니다

탄도로켓은 "로프티드 궤도(lofted trajectory)[高低角度 발사]" 모델 중장거리 탄도 미사일입니다


*탄도 (彈道)

총포로부터 발사된 탄환, 로켓 따위의 물체가 움직이면서 그리는 궤도



*탄도 미사일

발사된 후 로켓의 추진력으로 유도 비행하다가 추진제가 다 연소되면 지구의 인력에 의해 탄도를 그리면서 비행하는 미사일

로켓 엔진으로 추진, 원거리에 도달하도록 탄도를 비행하는 미사일을 말한다. 로켓은 연료와 산소를 내장, 화학 반응으로 생긴 고압, 고열 가스를 뒤로 분사하여 그 반동에 의해 추진력을 얻으며 연소를 위한 공기가 필요없기 때문에 대기권 외에서도 완전히 작동한다. 큰 추진력을 낼 수 있어 대륙간 목표의 공격, 우주 궤도에 쏘아올리는 데 적합하다.

탄도 미사일은 대부분 핵탄두 장착이 가능하다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 Intercontinental Ballistic Missile]은 사거리가 5,500km 이상인 탄도미사일로 핵탄두를 장착한 전략핵무기로 다른 대륙에 있는 적의 기반 시설을 파괴할 수 있다. 다륙간 탄도 미사일을 탄도 로켓으로 부르고 있다

북한 탄도 미사일 중 화성 14호[사거리 6,700km] 와 kN-08[11,500 km] 그리고 화성 15호 등이 탄도 로켓이다 

*탄도 로켓

탄도를 따라 날아가는 로켓. 발사한 다음 얼마 동안은 로켓에 의하여 일정한 궤도와 방향을 잡지만, 그 뒤에는 보통 포탄처럼 탄도 비행을 한다.[탄도를 따라 날아가는 로켓. 발사한 다음 얼마 동안은 로켓에 의하여 일정한 궤도와 방향을 잡지만, 그 뒤에는 보통 포탄처럼 탄도를 그리며 날아간다.]





                                                           다수의 핵탄두를 탑재한(MIRV) 미니트맨 III의 공격 예상도

KN-08 엔진(Engines)은 구소련 RSD-10 파이오니어(SS-20 세이버)를 개량한 모델로 미사일 1기에 1개의 핵탄두(Warhead)를 탑재할 수 있으며

화성-14. 15형 엔진(Engines)은 상당히 강력해 미사일 1기에 핵탄두 10개

(Warhead)를 탑재하고 대륙간을 비행할 수 있다고 한다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사드 시스템

 

'로프티드 궤도(lofted trajectory)' 방식으로 북한 후방구역에서 핵탄두를  탑재한 장거리 미사일 방어시스템이 바로 사드구축입니다

사드(THADD)의 정식 명칭은 'Terminal High Altitude Area Defense'이다. 영어를 그대로 직역한다면 ‘종말고고도지역방어’이며. 흔히 영어 앞글자를 따서 사드, 또는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라고 부르고 있다. 사드는 중단거리 탄도미사일이나 대륙 간 탄도미사일의 공격을 방어할 목적으로 고안된 미국의 탄도미사일 방어체계이다

미사일 방어 전투는 미사일 탄두를 식별하고 그 미사일 탄두를 파괴하기 위한  한 순간의 전쟁이다. 한국도 나토나 이스라엘처럼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THADD) 배치로 탄도 미사일이나 탄도 로켓은 물론이고 지구 궤도를 도는 인공위성까지 요격할 수 있는 미사일 방어체제(MD)를 갖출 수 있게 되었다 연합군 입장에서는 재래식 핵무기(구형 핵무기, 핵폭탄이나 원자탄) 등 쓸모 없는 무기도 많다 21세기  핵 전쟁은 핵 대포, 핵 배낭, 핵 어뢰, 핵 기뢰등 전술 핵무기와 탄도 미사일(공중발사 순항 미사일이나 잠수함 발사 탄도미사일. 단거리 탄도미사일) , 탄도 로켓(대륙간 탄도 미사일)  등 전략 핵무기이다
사드배치로 북한도 대화의 장으로 나올 것이다[머리소리함 허관 자료]


[전문]북한, 23~25일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 공식 발표

                                                                              A satellite image of the Punggye-ri nuclear test site in North Korea

 북한이 오는 23일부터 25일 사이에 북부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 의식을 진행한다고 12일 밝혔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4·27 남북정상회담에서 북부 핵실험장 폐쇄를 5월 중 실행할 것이며 한·미 전문가와 언론인을 초청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다음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외무성 공보 전문이다.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제7기 제3차전원회의 결정에 따라 핵무기연구소를 비롯한 해당 기관들에서는 핵시험(실험) 중지를 투명성 있게 담보하기 위하여 공화국 북부 핵시험장을 폐기하기 위한 실무적 대책을 세우고 있다.

핵시험장을 폐기하는 의식은 5월 23일부터 25일 사이에 일기조건을 고려 하면서 진행하는 것으로 예정되어 있다.

핵시험장 폐기는 핵시험장의 모든 갱도들을 폭발의 방법으로 붕락시키고 입구들을 완전히 폐쇄한 다음 지상에 있는 모든 관측 설비들과 연구소들, 경비구분대들의 구조물들을 철거하는 순차적인 방식으로 진행된다.


핵시험장 폐기와 동시에 경비 인원들과 연구사들을 철수시키며 핵시험장 주변을 완전 폐쇄하게 된다.

이와 관련하여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외무성은 위임에 따라 다음과 같은 결정사항들을 공보한다.

첫째 ,당중앙위원회 제7기 제3차전원회의 결정에 따라 진행되는 북부 핵시험장 폐기를 투명성 있게 보여주기 위하여 국내언론기관들은 물론 국제기자단의 현지 취재활동을 허용할 용의가 있다.

핵시험장이 협소한 점을 고려하여 국제기자단을 중국, 러시아, 미국, 영국, 남조선에서 오는 기자들로 한정시킨다.

둘째, 국제기자단 성원들의 방문 및 취재활동과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실무적 조치들을 취하게 된다.

1) 모든 국제기자단 성원들이 베이징-원산 항로를 이용할수 있도록 전용기를 보장하며 영공개방 등 필요한 조치들을 취하게 된다.

2) 국제기자단 성원들을 위하여 원산에 특별히 준비된 숙소를 보장하며 기자센터를 설치하여 이용하도록 한다.

3) 원산으로부터 북부 핵시험장까지 국제기자단 성원들을 위한 특별전용열차를 편성한다.

4) 핵시험장이 인적이 드문 깊은 산골짜기에 위치한 점을 고려하여 국제기자단 성원들이 특별전용열차에서 숙식하도록 하며 해당한 편의를 제공한다.

5) 국제기자단 성원들이 핵시험장 폐기 상황을 현지에서 취재 촬영한 다음 기자센터에서 통신할수 있도록 필요한 조건을 보장하고 협조한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앞으로도 조선반도와 세계의 평화와 안정을 수호하기 위하여 주변국들과 국제 사회와의 긴밀한 연계와 대화를 적극화해 나갈 것이다.

주체107(2018)년 5월12일
평양   





                                                            북한 함북 길주군 풍계리 高山 지하 터널 2차 핵실험 현장 (사진)


                                                        A satellite image of the Punggye-ri nuclear test site in North Korea




                                                                     6차 핵을 실시한 북한 북부 풍계리 핵실험장(사진)


3단계 비핵화와 통미봉남정책 그리고 북미평화협정 체결과 한반도 미군철수, 중국측 주도 다자간 동북아 안보협정 체결

미-북 정상회담에서의 현실적인 목표는 북한으로부터 핵.미사일 동결과 핵 시설 폐기 약속을 받아내는 것이라고 제임스 제프리 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부보좌관이 밝혔습니다. 북한이 곧바로 완전한 비핵화에 나설 가능성은 적으며, 미국인들 역시 미국을 타격할 수 있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역량만 동결돼도 만족할 것이라는 진단입니다


중국과 러시아는 북한이 핵무기와 미사일 개발을 동결하면 북한 체제의 안전을 보장할 가능성을 검토할 방침이라고 닛케이 신문과 교도 통신 등이 8일 보도했다.

매체에 따르면 알렉산드르 마체고라 북한 주재 러시아 대사는 러시아 뉴스 TV '로시야 24'와 인터뷰에서 북한 핵과 미사일 문제와 관련해 이같이 밝혔다.

또한 마체고라 대사는 북한이 핵미사일 개발은 미국 위협 때문에 이뤄진 점에서 이를 둘러싼 문제를 미국하고만 논의하겠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고 전했다



북한정부는 핵과 탄도로켓개발 동결로 북미수교, 체제보장 그리고 경제적 보상 원조, 한반도 현상유지를 원하고 있다 북한, 중국, 러시아는 한미군사훈련 중지와 미군철수 등의 단계적 비핵화입장이고 미국은 안전보장과 체제보장, 북미(북일)수교, 경제지원을 맞바꾸는 일괄타결방식 완전한 비핵화입장이다


*러시아과 중국 북핵 로드맵

러시아와 중국이 제안한 3단계 로드맵이며, 한국과 미국은 이 제안에 매우 부정적이다. 비핵화 국제법을 위반한 범죄자 북한을 단호하게 처벌해서 문제해결을 해야지, 괜히 한미연합군을 건드리면 더욱 국제평화가 깨진다고 인식한다.

 

3단계 절차는 다음과 같다:

1단계: 북한의 핵실험, 미사일 발사실험과 한미연합훈련 동시 중단

2단계: 북미 평화협정 체결

3단계: 군비통제, 주한미군 문제를 포함한 동북아 안보 다자협정 체결


*통미봉남정책

김일성은 다 이긴 한국전쟁을 미군의 참전으로 패배하여 침략에 실패한 이후, 통미봉남 정책을 추진해 왔다. 자체 핵무기 및 탄도미사일 개발로 미국과 직접 대화해 남조선을 고립시키고, 미국과 북미 평화협정을 맺어 주한미군을 철수시킨 뒤 한반도를 적화통일 한다는 전략이다.

1973127, 프랑스 파리에서 북베트남, 남베트남, 미국 사이에 평화협정인 파리 협정 (1973)을 체결해, 남베트남의 미군이 철수했으며, 미군 철수 직후 바로 북베트남이 재침공 하여, 남베트남이 멸망하고 공산화 되었다. 김일성은 이 파리협정을 북미간에 체결하기를 원했다

1단계:핵실험과 미사일 발사 중지와 한미군사훈련 중지 그리고 아시아 태평양지역 미국측 군사연합 균열

2단계:북미 평화협정 체결과 북미, 북일수교

3단계:주한미군 철수와 중국 중심의 동북아지역 안보다자협정 체결 그리고 한국이나 일본 등 친중국 좌파정부 수립(자국식 사회주의 국가 수립)[러시아 미사일 방어체계  S-400 구축]

4단계:중국측 중심의 아시아 태평양 군사안보기구 구성

-중국 공산당정부는 인민민주주의 독재체제 중국식 사회주의 국가로 중국 중심의 동북아 안보다자협정 체결에는 일본정부나 자본주의민주주의 국가에서는 거부 반응입니다. 당군을 인정하는 중국 공산당과 공산주의 세력이 무장력으로 일본이나 한국등 장악할 수 있다는 의견입니다

중국 중심의 동북아 안보다자협정 체결하기 위해서는 중국 공산당정부는 일당 독재체제와 사회주의 공화국을 청산하고 자유선거, 자유민주정부가 돼야 합니다



남한(대한민국)과 북한(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중국 길림 연변조선족 자치정부 등 한민족(조선족)의 3개 정부입니다. 중국에 한국어(조선어)를 사용하는 조선족이 약192만명에서 약 200만명이 거주하고 있습니다

중국은 한족, 만주족(동북3성), 몽골족(내몽골), 위구르족(후이족=회족, 신장), 티베트족(티벳) 등 5개 큰 민족과 50개 소수민족으로 건국한 연합국가입니다 

만국(만주국)은 한족, 만주족, 조선족, 몽골족, 일족(일본족, 야마토민족) 등 5개 종족 연합국이었습니다

만주국의 국기에는 노란색(만주족) 바탕 왼쪽 상단에 네 가지 색[빨간색(일본 민족), 파란색(한족), 하얀색(몽골족), 검정색(조선인)]의 가로 줄무늬가 그려져 있는데 이는 오족협화의 이념을 뜻합니다

조선족이 만주국에서도 조선족 자치정부로 참여하여 상류층으로 생활했습니다


"김일성 교시 민족해방 인민민주주의 혁명(NLPDR)노선 말 따라 움직이면서 무장투쟁을 하는 사람들, 반미구국전선"

1단계 반미전선

민족해방(NL, 반미투쟁)=좌우익연합전선 구축(우파 민족주의 세력과 연합)

반미전선은 친미, 친서방세력 제거

2단계 인민민주주의 혁명(인민회의정부론)

인민민주주의 혁명은 좌파연합전선 구축으로 우파세력 제거

3단계 김일성주의 유일사상(세습제 좌익군정)

김일성 직계 선군정치노선으로 반김일성 세력 제거

-김일성 책자를 배우고 학습해라

-유엔,미국이나 유럽 등 각종 자료나 책자를 버려라 그들은 자본주의 세력(친미세력)이다

-눈(目, Bird's Eye=자유)이 아닌 귀(耳, Guide Ear=지도자의 교시)가 되어라

-중국 공산당 지도자를 버려야 종파분자가 되지 않는다 김일성 유일사상으로 무장하라

-국제적 반미투쟁가와 연대를 하라 그래야 반미전선을 구축할 수 있다 중국정부 내 친미인사를 제거하라 일본정부나 한국정부 내부 반미인사를 포섭하라



베트남전 종식으로 베트남 공산화 무력통일과 민주인사


1975년 4월 30일 오전 11시, 북베트남의 월맹군이 남베트남 사이공의 대통령궁 회의실로 들어닥치는 순간 두옹 반 민(즈엉 반 민) 대통령(가운데), 부 반 대우 수상(오른쪽),응웬 반 후옌 부통령(왼쪽서 두번째)이 남베트남 임시혁멍정부를 기다리고 있다[사진]


1975년 4월 월남(남베트남)의 지도자들은 각각 자기나름의 다른 착각에 빠져 있었다. 그리고 그들의 착각 도미노패는 하나씩 하나씩 쓰러졌다.

구엔 반 티우 월남 대통령은 17도선 휴전선에 배치된 월남 정예군이 무너지자 모든 군관민에게 남부 사이공 일대 지역으로 철수를 명령했다.

                                                                    구엔 반 티우 대통령과 박정희 대통령(사진)

 월남군이 월맹군의 상대가 되지 못하고 월남 국민이 공산 지배를 원하지 않는다는 것을 과잉 연출함으로써 한국전 때 처럼 미국이 즉각 개입하도록 유도하기 위해서였다. '각주구검(刻舟求劍)'의 착각이었다.

티우의 '패배 과잉 코스플레'에 그의 핵심 지지 세력인 월남 해병대는 티우의 선산을 불도저로 밀어 버리며 분노를 드러냈다. 티우는 사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쿠데타 세력에게 사형당한 응오딘지엠[고 딘 디엠] 대통령의 시체[사진]

1963년 고 딘 디엠 정권을 무너뜨린 군부 쿠데타의 지도자였으나 티우와 공군을 대표하는 구엔 카오 키 등 소장파 세력에 밀려나 자의반 타의반으로 재야지도자가 된 즈엉반민은 그토록 갈망하던 대통령 자리를 차지했으나 밀려오는 월맹군은 평화협상을 제의한 그를 상대하지 않았다.

즈엉반민은 패전 국가의 수반이 아닌 포로 취급을 받으며 대통령궁에서 끌려 나와야 했다. 얼굴도 못들고 끌려 나오는 그는 착각에서 그제서야 깨어났다.

역시 티우와 벌인 권력투쟁에서 패배, 총리에서 밀려난 구엔 카오 키는 월맹군이 밀려 올 때 지지 시위 군중을 모아 놓고 자신만이 위기 속의 월남을 구원할 수 있다고 역설했다. '월남의 처칠' 코스플레였으나 미국은 눈썹 하나 까닥하지 않았다.

착각에서 벗어나 주제를 파악한 구엔 카오 키는 미국대사관 철수 헬기에 탑승하여 탈출하였다. 구엔 카오 키는 미국에서 주류상을 운영하며 제 주제 걸맞은 만년을 보냈고 공산화된 베트남을 방문하기도 했다.

착각한 이들은 이들뿐만 아니었다. 반체제 학생 지도자들은 월맹과 협상하겠다며 대통령궁에서 월맹군의 입성을 기다리다 모두 체포되어 재교육 센터로 끌려갔다.

반정부 시위를 주도하며 티우 정권의 몰락에 한몫을 했던 이른바 민주 인사들은 재교육 수용소에서 "미군은 언제 오지'라며 착각에서 벗어나지 않았다고 한다












남부 베트남의 즈엉반민대통령이 사이공(현 호찌민) 대통령 궁에서 북부 베트남군에 포로가 됨으로써 베트남전이 종결되고 베트남이 통일되었다.(1975.4.30).

이는 다른 한편으로 미국이 베트남 개입의 이론적 근거가 되었던 '도미노 이론'의 부분적 실현이었다.

그러나 이를 미국의 참담한 실패로만 규정할 수 없는 것은 동남아의 공산화가 베트남, 캄보디아 그리고 라오스 등 3개국에 그쳤기 때문이다.

만약 미국의 군사적 개입이 없었다면 동남아에서 공산화의 대폭적 확산이 이루어졌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당시 미국 지도부는 미중화해로 최대 전략적 주적인 소련에 대한 견제가 이루어졌고 베트남 공산 세력이 미국과 벌인 10년전쟁으로 군사력이 소진되었기 때문에 호찌민이 구상하였던 베트남을 맹주로 한 '인도차이나 반도의 연방화'가 이루어질 수 없다는 판단 아래 고비용 저효율의 전략적 자산 남부 베트남을 버렸다고 해석할 수 있다.

미국은 남부 베트남을 버림으로써 '전략적 혈우병'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미군 철수 후 중국은 북베트남 국경지역에 배치되었던 24개 사단을 중소국경 지역으로 이동시켜 소련의 침공에 대한 우려를 덜었다.

소련은 유럽 지역에서 미국과 대립하고 등 뒤에서는 중국의 견제를 받아 전략적으로 안팎 곱사등이 신세가 되었다.

미국은 남베트남 멸망과 중국과 화해로 1981년 로널드 레이건 행정부가 들어선 이후 군비 경쟁을 소련 견제에 집중시킬수 있었다.

소련은 소련판 베트남전인 아프카니스탄 전쟁의 수렁에 빠져든 데다 미국과 펼친 해군력 경쟁, 레이건이 촉발한 '스타워즈 전쟁'에 대응하느라 경제적으로 완전 파산상태에 빠졌다. 결국 1991년 소련 체제의 붕괴를 가져왔다.

미국은 베트남에서 완전 철수한 지 18년 만에 그리고 남베트남이 지구상에서 사라진지 16년 만에 소련의 붕괴를 보게된 것이다.

미국은 전략적 불량자산을 과감히 버리고 전략적 환경을 최적화 한 뒤 선택과 집중으로 전략자산을 주적에 집중시켜 이런 결과를 가져오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북베트남(월맹) 군부 지휘관과 군단 지휘관은 남부 해방 직후 마지막 회의에서 기념 사진을 찍었습니다

                                                                 남베트남 패망 후 보트피플이 돼 탈출하는 남베트남 국민(사진)

*고 딘 디엠[Ngo Dinh Diem , 吳廷琰(오정염)]은 1954년 베트남 공화국(남베트남)의 대통령이 되어 독재정치를 하다가 1963년 암살되었다.

 

고 딘 디엠은 베트남의 명문집안에서 태어났다. 17세기 그의 선조는 로마 가톨릭으로 개종한 최초의 베트남인들 가운데 끼어 있었다.

 

젊은시절에는 베트남 황실과 절친하게 지냈고 1930년대 바오 다이황제의 내무대신을 지냈다. 1945년 호치민[胡志明]의 공산군에 체포되어 가톨릭의 지원을 얻어보려던 호치민으로부터 북베트남 독립정부에 가담해달라는 요청을 받았으나 거절했고, 거의 10년 동안 망명생활을 했다. 1954년 디엠은 미국의 지원을 받는 남베트남 정부를 이끌기 위해 돌아왔다. 그는 반정부집단과 정치당파들로 분열되어 있는 남베트남에 자신의 친족들을 중심으로 독재정권을 세웠다.

 

그는 자신이 믿는 가톨릭 신앙과 가톨릭교도에 대한 편애 때문에 남베트남의 절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던 불교도들의 호응은 얻지 못했으며 토지개혁에 대한 공약을 이행하지 않음으로써 공산주의와 베트콩이 세력을 확장할 수 있는 빌미를 제공했다. 공산주의 봉기를 부추긴다는 이유로 수많은 불교도들을 투옥·처형하자 미국도 지원을 중단하게 되었다. 군부 쿠데타 때 부하 장군들에 의해 암살되었다

 


*즈엉반민[베트남어: Dương Văn Minh/ 楊文明(양문명), 1916216~ 200185일] 베트남의 군인이자 정치가이다.

메콩 강 삼각주에 위치한 띠엔장 성의 미토에서 태어났다. 달라트 사관학교를 졸업하고 프랑스군 중위로 근무하였으며, 1963년 쿠데타를 일으켜 응오딘지엠을 암살하고 총통에 올랐다. 그러나, 1년 만인 1964, 응우옌카인에 의해 다시 쿠데타가 일어나 퇴진했다. 그리고 순회대사 명목으로 태국 의 방콕 으로 갔다가 1968년 귀국했다.

1975421일 응우옌반티에우 가 베트남을 탈출해 망명하였고, 부총통으로서 후임 총통이 된 쩐반흐엉 도 426일 베트남을 탈출해, 즈엉반민이 428일 다시 남베트남의 총통이 되었다. 1975430일 사이공 함락 되자 즈엉반민은 남베트남 마지막 총통으로 항복했다.

 1983년 망명이 허락되어 프랑스로 이주하였다. 얼마 뒤 다시 미국으로 옮겨 여생을 보냈으며, 2001년 사망하였다.


*구엔 반 티우[Nguyen Van Thieu/阮文紹(완문소)] 1967년부터 북베트남의 침공으로 공화국이 함락되던 1975년까지 재임했다.

 소지주의 아들로 태어나 1945년 공산주의를 지향하는 베트남 독립동맹에 가입했으나 나중에는 프랑스 식민정권 편에 서서 베트남 독립동맹과 싸웠다.

1954년 베트남 육군사관학교 교장이 되었으며 1956년 이후로는 고 딘 디엠정권을 위해 일했다. 1963년 고 딘 디엠에 대항하여 일어난 쿠데타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고 1965년 구엔 카오 키총리가 이끄는 군사정권의 국가원수가 되었다. 1967년에는 그해에 공표된 새 헌법에 따라 대통령으로 뽑혔으며 1971년에 만장일치로 재선되었다.

 티우 정권이 출현하면서부터 미국은 베트남 전쟁에 본격적으로 개입하기 시작했다. 티우 정권은 권위주의적이라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린든 B. 존슨대통령부터 리처드 M. 닉슨대통령에 이르기까지 줄곧 미국정부의 지지를 받았다. 1973년 평화협정(남베트남 정부는 다소 불만스러운 가운데 협정안을 수락했음)이 조인되어 미군이 철수한 뒤에도 티우는 계속 권력을 강화했다.

 1975년초 공산주의자들이 북부지방을 장악하자 부대를 철수시켜 수도 사이공을 방어하도록 했으나 공산군이 사이공을 포위할 수 있도록 길을 터준 결과가 되었다. 티우는 얼마 버티지 못하고 자신이 사임한다면 전쟁을 외교적으로 해결할 수도 있다는 설득을 받아들였다. 1975421일 미국을 비난하는 한 연설에서 부통령 트란 반 흐엉을 지지한다는 사임의사를 밝히고 곧바로 고국을 떠났다.

 처음에는 타이완으로 갔다가 뒤에 영국 런던을 거쳐 미국 보스턴에 정착했다.

 


*구엔 카오 키[Nguyen Cao Ky , 阮高祺(완고기)]는 193098일 베트남 북부 손타이에서 태어났다


과시적인 태도와 급진노선으로 잘 알려져 있다. 프랑스 식민지군에 복무하다가 1954년 국토가 분단되자 남베트남 공군에 들어갔다. 그는 허세를 부릴 뿐만 아니라 열렬한 반공주의자로 주목을 끌었고 미국 고문단으로부터 상당한 지지를 받았다. 그결과 1963년 고 딘 디엠 정권이 무너진 뒤 공군 사령관으로 임명되었으며, 미국의 도움을 받아 단시일 내에 1만 명의 전투요원을 양성했다.

 

19656월 육군 소장 구엔 반 티우, 대장 두옹 반 민 등과 함께 판 후이콰트 정부를 축출하기 위한 군사 쿠데타를 주동했으나 그의 권위주의 노선은 주위의 반발을 사게 되었다. 1967년 군 최고지휘관들은 민정이양(民政移讓) 총선에 대비하여 대통령후보에 티우, 부통령에 키를 지명했다. 이에 불만을 품은 키는 티우 정부를 노골적으로 비판하게 되었다. 1971년 선거에서 티우를 제치고 대통령에 입후보하려 했지만 후보사퇴 압력을 받아 공군에 복귀했으며, 19754월 베트남이 공산화되자 미국으로 망명했다.

 

미국에서는 몇몇 대학을 돌며 강의도 하고 1976년에 출판된 저서 스무 해, 스무 날 Twenty Years and Twenty Days의 판촉활동을 벌이기도 했다.



*베트남 평화협정(Paris Peace Accords) 1973127일 파리에서 북베트남, 남베트남, 미국 사이에 조인된 베트남 전쟁 종결을 약속한 협정으로 파리 협정등으로 불린다.

1973127일에 협정이 조인되었다. 모든 참가국들은 "1954년 베트남에 대해 제네바 협정에 의해서 승인된 베트남의 독립, 주권, 통일성, 영토를 존중한다"를 인정하였다. 그 후 미국은 1969년에 개시한 미군의 철수를 계속하여, 1973129, 닉슨 대통령은 베트남 전쟁의 종전을 선언 하였고, 미군은 329일에 남베트남에서 완전히 철수하였다. 평화협정 조인에 대한 공적을 높이 사서 헨리 키신저 대통령 특별 보좌관과 북베트남의 레득토 특사에게는 노벨평화상이 주어졌지만, 레 특사는 거부하였다.

 

베트남전쟁 종결 및 평화회복에 관한 파리협정[전문]

베트남에 관한 파리회의에 참가한 당사자(PARTY)들은 베트남인들의 기본적 국민의 권리와 남베트남 국민의 자결권을 존중하는 바탕위에서 남베트남에서의 전쟁 종결과 평화회복 그리고 아시아 및 세계의 평화에 기여할 목적으로 다음 여러 규정에 합의하고 이를 존중, 이행할 것을 다짐한다.

1장 베트남 인민의 기본적 국민 권리

 

1조 미국과 모든 다른 나라들은 베트남에 관한 1954년 제네바협정에 의해 인정된 베트남의 독립, 주권, 단일성 및 영토적 보전을 존중한다.

 

2장 적대행위의 종식, 철군

 

2조 휴전은 1973127GMT 24시를 기해 남베트남 전역에서 준수된다. 같은 시각 미국은 베트남민주공화국 영토에 대하여 그 주둔지를 막론하고 육공군의 모든 군사활동을 중지하고 베트남민주공화국의 영해항구항만 및 수로에 대한 기뢰부설을 중지한다. 미국은 이 협정이 발효되는 즉시 월맹 영해항구항만 및 수로에 부설한 모든 기뢰를 제거, 영구해체 또는 파괴한다.

 

3조 당사자들은 휴전을 준수하고 영속적이고 안정된 평화를 확보하기 위해 노력할 것을 다짐한다. 휴전이 발효되는 즉시

 

(A) 미군 및 베트남공화국군의 연합군은 철수계획이 시행되는 동안 현 위치에 머문다. 철군은 제16조에 규정된 4개국 공동군사위원회만이 그 방식을 결정한다.

 

(B) 남베트남의 두 당사자의 군대도 현위치에 머문다. 17조에 규정된 2개 당사자 공동군사위원단은 쌍방의 장악지역과 주둔형태를 결정한다.

 

(C) 남베트남 내의 쌍방의 각종 정규군과 비정규군은 상대방에 대한 모든 공격을 중지하고 다음 사항을 엄수한다.

 

- 지상, 공중 및 해상에 있어서의 모든 군사행동을 규제한다.

 

- 모든 적대행위, 테러행위, 보복행위를 금지한다.

 

4조 미국은 군사적 개입을 계속하지 않으며 남베트남의 내정에 간섭하지 않는다.

 

5조 본 협정 조인 후 60일 안으로 미군과 제 3(A)에 규정된 외국은 남베트남에서 군대군사고문단평정계획에 관련된 기술 및 군사요원군장비탄약 및 군수물자를 모두 철수한다. 상기 외국으로부터 모든 유사 군사단체와 경찰에 파견된 고문들도 같은 기간 내에 철수한다.

 

6조 미국과 제3조 그 밖의 외국 월남내 기지는 본 협정조인 후 60일 안으로 모두 철거된다.

 

7조 휴전의 발표로부터 본 협정의 제9(B)및 제 14조에 규정된 정부의 구성에 이르기까지 남베트남의 두 당사자는 병력군사고문기술군사 요원을 포함한 군사요원장비탄약 및 전쟁물자의 남베트남 도입을 수락치 않는다.

 

남베트남의 두 당사자는 두 당사자의 공동군사위원회 및 국제통행감시 위원단의 감시하에 휴전 이후 파괴, 파손 및 폐품이 된 장비, 탄약 및 전쟁물자를 동일 특성 및 용도의 11 교환기준에 따라 정기적으로 교체하는 것을 허용한다.

 

 3장 포로가 된 군사요원 및 외국 민간인과 포로, 억류된 베트남 민간인 송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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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포로가 된 당사자들의 군사요원 및 외국 민간인의 송환은 제5조에 명시된 병력 철수와 병행하여 동일한 날짜 이전에 완료되어야 한다. 당사자들은 본 협정을 조인하는 날 상기 포로가 된 군사요원 및 외국 민간인의 완전한 명단을 교환해야 한다.

 

(B) 당사자들은 전투 중 실종된 당사자들의 군사요원 및 외국 민간인에 관한 정보의 입수와 사망자 묘지의 소재를 확인하여 보호함으로써 발굴 및 송환의 신속화를 위해, 또한 전투 중 실종된 것으로 판단되는 자들에 관한 정보를 얻는데 필요할 그 밖의 여러 조처를 위해 상호 협력한다.

 

(C) 남베트남에서 생포되어 억류되고 있는 베트남 민간인의 송환문제는 1954720일 조인된 베트남전쟁 종결에 관한 협정 제1(B)의 원칙에 따라서 두 베트남 당사자가 해결한다.

 

두 베트남 당사자는 이산가족의 고통을 덜어주고 재결합을 주선해주기 위한 목적으로 증오와 적대를 종결시킬 수 있는 민족화해와 단합의 정신으로 이 문제를 해결한다. 두 베트남 당사자는 휴전 발표 후 90일 내에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4장 남베트남 국민의 자결권 행사

 

9조 미합중국 정부와 베트남민주공화국 정부는 베트남 인민이 자결권을 행사하도록 제원칙을 존중하기로 약속한다.

 

(A) 남베트남 국민의 자결권은 신성불가침한 것이며 모든 국가에 의해서 존중되어야 한다.

 

(B) 베트남 국민은 국제감시하에 진정으로 자유민주 총선거를 통해서 베트남의 정치적 장래를 스스로 결정한다.

 

(C) 외국은 남베트남 국민에게 여하한 정치노선이나 인물을 강요해서는 안 된다.

 

10조 두 베트남 당사자는 남베트남에서 휴전을 준수하고 평화를 유지하며 모든 문제를 협상을 통해 해결하고 무력 충돌을 회피하기로 약속한다.

 

11조 두 베트남 당사자는 휴전직후 민족적 화해와 단합을 성취하고 증오와 적대를 종결하며, 어느 한쪽에 가담한 개인이나 단체에 대한 모든 보복행동과 차별행위를 금지하고 국민의 민주적 제권리, 즉 개인의 자유의사표시의 자유언론의 자유집회의 자유결사의 자유정치활동의 자유신앙의 자유이전의 자유주거의 자유노동의 자유사유재산의 권리 및 자유 기업의 권리를 보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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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휴전직후 두 베트남 당사자는 민족적 화해단합, 상호존중, 상호 불배제의 정신에서 평등한 3개 당파로 구성되는 민족적 화해단합의 국민회의를 창설하기 위한 목적으로 협의를 가진다. 동 국민회의는 만장일치의 원칙으로 운영한다. 민족적 화해단합 국민회의가 발족한 후 두 베트남 당사자는 하급회의의 구성문제를 협의한다. 두 베트남 당사자는 되도록 빨리 남베트남 내정문제에 관한 협정을 체결하되, 베트남 국민의 평화독립 민주주의에의 염원에 따라 휴전 발효 90일 이내에 이를 성취하도록 최선을 다한다.

 

(B) 민족적 화해단합 국민회의는 두 베트남 당사자의 본 협정 이행을 촉진하고 민족적 화해단합 성취와 민주주의적 자유의 보장을 이룩하게 하는 과업을 맡는다. 민족적 화해단합 국민회의는 제9(B)에 규정한바 자유로운 민주주의적 총선거를 준비하며 이 총선거의 절차 및 방식을 결정한다. 총선거에서 결정할 제도는 두 베트남 당사자간의 협의를 통해서 합의한다. 민족적 화해단합 국민회의는 또한 두 남베트남 당사자간에 실시하기로 결정하는 지방선거의 절차 및 방식을 결정한다.

 

13조 남베트남 안에서 베트남인 군대문제는 전후 정세에 따라 민족적 화해단합, 평등상호존중의 정신에 따라 외부의 간섭 없이 두 베트남 당사자들이 해결한다.

 

두 베트남 당사자들 간에 토의되어야 할 문제 가운데는 전투병력감축과 각군 병력의 동원해제 등을 위한 조치도 포함된다. 두 베트남 당사자는 이를 되도록 빨리 성취시킨다.

 

14조 남베트남은 평화와 독립을 지향하는 외교정책을 추구한다. 남베트남은 정치 및 사회체제에 상관없이 모든 국가와 상호 독립주권존중의 원칙에 입각하여 관계를 수립하며 정치적인 조건이 따르지 않는 기술 및 경제원조를 어떤 국가에서라도 받아들이려는 입장을 취한다.

 

남베트남이 장차 군사원조를 받아들이는 문제는 제9(B)항에 규정된 남베트남 총선거에 의하여 수립될 정부의 권한에 속한다.

 

5장 베트남 통일과 남북 베트남 관계

 

15조 베트남의 통일은 남북 베트남 간에 이루어질 협정이나 토의에 입각한 평화적 수단을 통해 단계적으로 실현하며, 어느 일방에 의한 강제나 합병, 또한 외국의 간섭이 없어야 한다. 통일의 시기는 남북 베트남 간에 합의한다.

 

<통일이 성취되기까지>

 

(A) 북위 17도선 상에 설치된 두 구역간의 군사분계선은 1954년 제네바회의의 최종 선언(F)에 규정된 바와 같이 단지 잠정적인 것이며 정치적 또는 영토상의 경계선은 아니다.

 

(B) 남북 베트남은 잠정 군사분계선을 중심으로 한 비무장지대의 존재를 존중한다.

 

(C) 남북 베트남은 제반분야에서의 정상관계를 재수립하기 위해 빠른 시일 안에 협상을 개시한다. 협상에서 토의될 사항 중에 잠정 군사분계선을 통한 민간의 이동방식 문제를 포함한다.

 

(D) 남북 베트남은 1954년 제네바협정에 따라 여하한 쌍무 또는 집단 군사동맹에 가입하지 않으며 외국이 각자의 영토 내에 군사기지군부대고사고문단(원문의 오자 차용)군사요원을 두지 못하도록 한다.

 

6장 공동군사위원회, 국제통제감시위원단 및 국제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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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베트남에 관한 회담 참가 당사자들은 본 협정의 아래규정 시행을 위해 당사자들간의 공동행동을 보장하는 의무를 띨 4자 공동군사위원회 구성에 필요한 대표를 즉시 임명한다.

 

- 남베트남 전역에서의 휴전 발효: 2

 

- 미군 및 기타 외국군의 휴전: 3(A)

 

- 남베트남에서의 전 당사자간의 휴전: 3(C)

 

- 미국 및 기타 외국군의 남베트남 철수: 5

 

- 미국 및 기타 외국군의 남베트남 내 군사기지 철거: 6

 

- 포로가 된 당사자들의 군사요원 및 외국 민간인의 송환: 8(A)

 

- 전쟁중 실종된 당사자들의 군사요원 및 민간인에 관한 정보를 입수하기 위한 당사자들의 상호지원: 8(B)

 

(B) 4자 공동군사위원회는 협의 및 전원합의의 원칙하에 활동한다. 표출된 이견은 국제통제감시위원단에 이첩한다.

 

(C) 4자 공동군사위원회는 본 협정 조인직후 활동을 개시하여 제3(A)에 명시된 미군 및 기타 외국군의 철수가 완료되고 포로가 된 당사자들의 군사요원 및 외국 민간인의 송환이 완료되는 60일후에 활동을 완료한다.

 

(D) 4개 당사자는 4자공동군사위원회의 구성업무절차활동수단 및 경비에 관해 즉각 합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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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두 남베트남 당사자는 본 협정의 조항들을 이행하는데 있어 두 남베트남 당사자간의 공동활동을 보장하는 임무를 띨 2개 당사자 공동군사위원회를 구성하기 위한 대표를 즉각 임명한다.

 

- 4자 공동군사위원회가 그 활동을 종결할 때 남베트남 전역에서 휴전을 실시하는데 관련한 사항: 2

 

- 두 남베트남 당사자간의 휴전에 관한 사항: 3(B)

 

- 4자 공동군사위원회가 그 활동을 종결했을 때 남베트남의 모든 당사자간의 휴전에 관한 사항: 3(C)

 

- 남베트남으로의 군대투입 금지에 관한 것과 본 조의 기타 모든 조항에 관한 사항: 7

 

- 남베트남에서 생포되어 억류되고 있는 베트남 민간인의 송환문제에 관한 사항: 8(C)

 

- 13조 두 베트남 당사자의 전투병력 감축 및 감축된 병력의 동원해제에 관한 사항: 13

 

(B) 의견이 상충되는 사항들은 국제휴전감시감독위원회(ICCS)에 회부한다.

 

(C) 본 협정 조인후 2자 공동군사위원회는 남베트남에 휴전을 실시하고 평화를 유지하기 위한 조치와 구성에 관해서 즉시 합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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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본 협정 조인 후 국제통제감시위원단을 즉각 설치한다.

 

(B) 19조에 규정한 국제회의가 특정한 조치를 취하기까지는 국제통제감시위원단이 본 협정 규정의 이행상태의 감시감독에 관하여 4당사자에게 보고한다.

 

- 남베트남 전역 휴전시행에 관한 사항: 2

 

- 미군과 기타 외국군의 휴전에 관한 사항: 3(A)

 

- 남베트남 내전 당사자간의 휴전에 관한 사항: 3(C)

 

- 미군 및 기타 외국군의 남베트남 철수에 관한 사항: 3조 및 제5

 

- 미군 및 제 3(A)에 언급된 기타 외국군의 남베트남 내 군사기지의 철거에 관한 사항: 6

 

- 포로가 된 군 및 외국 민간인의 송환에 관한 사항: 8(A)

 

국제통제감시위원단은 이 과업을 실행하기 위해 감시반들을 편성한다. 4개 당사자들은 이들 감시반의 배치와 활동에 즉각 합의한다. 남베트남의 두 당사자들은 그들의 활동에 필요한 편의를 제공한다.

 

(C) 국제회의가 명확한 조치를 취할 때까지 국제통제감시위원단은 본 협정의 다음 조항의 이행 및 통제 및 감시에 관한 사항을 남베트남 두 당사자에게 보고해야 한다.

 

- 4국 공동군사위원회가 그 임무를 완료했을 때 남베트남 전역에 걸친 휴전 실시를 규정한 제 2조에 관한 사항

 

- 남베트남 두 당사자간 휴전을 규정한 제 3(B)에 관한 사항

 

- 4개국 공동군사위원회가 그 임무를 완료했을 때 남베트남 안의 모든 당사자간의 휴전을 규정한 제 3(C)에 관한 사항

 

- 남베트남에 군대와 그 밖의 군 설비를 도입하는 것을 금지한 제7조에 관한 사항

 

- 월남에 생포 구류되어 있는 베트남 민간인의 송환을 규정한 제8(C)에 관한 사항

 

- 남베트남에서의 자유 민주주의 총선거에 관한 9(B)에 관한 사항

 

- 남베트남 두 당사자의 전투병력 감축 및 감축 병력의 동원해제를 규정한 제13조에 관한 사항

 

국제통제감시위원단은 그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감시반들을 편성한다. 남베트남 두 당사자는 이 감시반들의 위치 및 활동에 즉각 동의하고 그들의 활동에 편의를 제공해야 한다.

 

(D) 국제통제감시위원단은 캐나다항가리인도네시아폴란드 4개국 대표로 구성하며 의장은 이 위원단이 정하는 기간을 주기로 회원국 대표들이 윤번제로 맡는다.

 

(E) 국제통제감시위원단은 남베트남의 주권을 존중하는 원칙에 따라 그 직무를 수행한다.

 

(F) 국제통제감시위원단은 협의와 만장일치의 원칙에 입각하여 운영된다.

 

(G) 국제통제감시위원단은 베트남에서 휴전이 발표한 후 활동을 개시한다. 본 협정 제 18(B)의 규정에 관련하여, 국제통제감시위원단은 이 규정에 관련된 통제감독의 소기의 업무가 끝났을 때 활동을 종료한다.

 

남베트남의 2개 당사자들의 본 협정 제 9(B)에 의거하여 남베트남에서 총선거를 통하여 구성된 정부의 요청이 있으면 해당 활동을 끝낸다.

 

(H) 4개 당사국은 즉시 국제통제위원단은 조직활동수단 및 예산에 관하여 합의한다. 국제회의와 국제통제감시위원단간의 관계는 국제회의와 국제통제감시위원단 간에 합의하고 결정한다.

 

19조 당사자들은 본 협정 조인 후 30일 안으로 전쟁종식, 베트남 평화유지, 베트남 국민의 기본적 국민권 존중, 남베트남 주민의 자결권, 인도차이나에서의 평화 증진과 보장에 관한 서명된 합의문을 확인하기 위하여 국제회의를 개최할 것에 합의한다.

 

미국과 베트남민주공화국은 베트남에 관한 파리회담의 당사자들을 대표하여 중화인민공화국프랑스소련영국으로 구성된 국제통제감시위원단의 4개 국민국제연합 사무총장이 베트남에 관한 파리회담 당사자와 함께 본 국제회의에 참석하도록 제의할 것이다.

 

7장 크메르 및 라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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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베트남에 관한 파리회담에 참가하는 당사자들은 크메르 및 라오스 국민의 기본적 국민권, 즉 이 국가들의 독립주권단합영토보전을 인정한 캄보디아에 관한 1954년 제네바협정과 라오스에 관한 1962년 제네바협정을 엄중히 존중한다. 당사자들은 또 캄보디아 및 라오스의 중립을 존중한다.

 

베트남에 관한 파리회담에 참가한 당사자들은 서로 간에 또는 다른 나라에 대한 주권 및 안전의 침해를 위해 캄보디아와 라오스의 영토를 사용하지 않도록 한다.

 

(B) 외국은 캄보디아와 라오스에서의 모든 군사활동을 중지하고 이 두 국가로부터 완전 철수하며, 군대군사고문관군요원무기탄약전쟁물자를 다시 이 나라에 반입하지 않는다.

 

(C) 캄보디아 및 라오스의 국내문제를 외세의 간섭 없이 각자 국민이 이를 해결한다.

 

(D) 인도차이나 국가간에 존재하는 문제는 인도차이나 국가 당사자끼리 독립주권영토보전불간섭 원칙에 입각하여 이를 해결한다.

 

8장 미국과 베트남민주공화국 간의 관계

 

21조 미국은 본 협정 체결로 베트남민주공화국 또는 인도차이나 국민들과 화해의 시대가 도래하기를 기대한다. 미국은 그 전통적인 정책에 따라 베트남민주공화국과 전 인도차이나의 복구와 전후 재건에 기여한다.

 

22조 전쟁의 종식, 베트남에서의 평화회복 및 본 협정의 엄수는 미국과 베트남민주공화국간에 상호 독립주권의 존중 및 내정 불간섭 원칙에 입각한 새롭고 평등하며 호혜적인 관계 수립을 위한 여건을 조성할 것이다. 동시에 이 협정은 베트남의 안정된 평화를 성취하고 인도차이나와 동남아에 영구적인 평화를 보존하는데 기여할 것이다.

 

기타조항

 

23조 본 협정은 파리 베트남회담 참가 당사자들의 전권대표의 서명을 거쳐 발효한다.

 

모든 관계 당사자들은 본 협정 및 부속의정서를 엄중 이행한다.

 

1973127일 파리에서 월남어 및 영어로 작성된다. 월남어 및 영어 원본은 공식적이며, 다같이 진본임을 확인한다.

 

미합중국 정부를 대표하여 윌리암 로저스 국무장관

 

베트남공화국 정부를 대표하여 트란 반 람 외상

 

베트남민주공화국 정부를 대표하여 구엔 루이 트린 외상

 

남베트남 임시혁명정부를 대표하여 구엔 티 빈 외상


트럼프 대통령 “비핵화 일괄타결 선호…미북회담 미뤄질 수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문재인 한국 대통령이 22일 백악관 집무실에서 정상회담에 앞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사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다음 달로 예정된 미-북 정상회담이 열리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비핵화는 한번에 모든 걸 타결하는 게 훨씬 낫다고 밝혔습니다. 문재인 한국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이 미-북 관계 개선을 이끌어낼 것으로 확신한다고 말했습니다


“미-북 정상회담이 (다음 달 12일에) 열리지 않을 아주 상당한 가능성이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22일 백악관에서 문재인 한국 대통령을 만난 뒤 기자들에게 미-북 회담이 다음달 12일에 열리지 않으면 나중에 열릴 수 있고 그래도 괜찮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트럼프 대통령] “There’s a very substantial chance that it won’t work out”

하지만 회담이 예정대로 다음달 12일 싱가포르에서 열릴 충분한 가능성도 있다면서 여지를 남겼습니다.

회담이 연기될 수 있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차 북중 정상회담 뒤 한국과의 고위급 회담을 전격 취소하고 미-북 정상회담을 취소할 수 있다고 협박한 뒤 분위기가 냉랭해진 가운데 나온 겁니다.

트럼프 대통령도 이날 김 위원장의 태도가 지난 8일 다롄에서 있었던 2차 북중 정상회담 뒤 “어느 정도 변했다”며 “나는 이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트럼프 대통령] "I think there was a little change in attitude from Kim Jong Un. So I don’t like that"

2차 북중 정상회담 뒤 김 위원장의 어느 정도 달라진 태도에 자신도 약간 놀랐다며 이를 훌륭한 회담으로 보지 않고 달갑지도 않다는 겁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또 북한의 비핵화가 일괄타결(all-in-one) 방식으로 이행돼야 하는지, 혹은 보상을 줘가며 점진적으로 이뤄져야 하는지 묻는 질문에, 일괄타결을 선호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습니다.

[녹취: 트럼프 대통령] “It would certainly be better if it were all in one. Does it have to be? I don’t think I want to totally commit myself..”

완전히 그렇게 해야 한다는 것은 아니지만, 그 방식이 훨씬 더 낫다는 겁니다.

이어 물리적 이유로 이런 방식이 그대로 적용되지 않을 수도 있다며, 그런 물리적 이유로 아주 짧은 시간이 걸리더라도 본질적으로 그것은 일괄타결이라고 말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또 북한이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돌이킬 수 없는 비핵화(CVID)를 하면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안전을 보장할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녹취: 트럼프 대통령] “I will guarantee his safety. Yes, we will guarantee his safety. And we’ve talked about that from the beginning. He will be safe.”

김 위원장에 대한 안전 보장은 처음부터 했던 얘기로 북한이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돌이킬 수 없는 비핵화를 하면 김 위원장은 행복해지고 북한은 부유한 나라가 될 것이란 겁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러면서 미국이 한국을 과거에 도왔다는 것을 잊지 말라고 강조했습니다.

미국은 몇십 억 달러가 아니라 몇십조 달러를 쓰면서 아주 오랫동안 한국을 도왔고 한국은 전 세계에서 가장 놀라운 나라 가운데 하나가 됐다는 겁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김정은 위원장이 전례 없는 기회를 맞고 있다며 완전한 비핵화를 할 경우 25년 혹은 50년 뒤 미래에 가서 뒤를 돌아볼 때 자신이 북한과 세계에 한 일에 대해 매우 자랑스러워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남북통일에 관해서는, 장기적으로 이는 남북한 당사자들에 달려있다면서도 지금 당장의 목표는 남북한 모두의 성공이라고 강조했습니다.

[녹취: 트럼프 대통령] “I would say that we are looking, certainly, right now, at two Koreas. Two very successful Koreas…”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의 세계적인 기업인 삼성과 LG, 조선업 등 한국이 이룬 번영을 거듭 언급하며 북한도 이렇게 성공한 뒤 궁극적으로 미래에 하나의 코리아로 돌아갈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한편 문재인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이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와 미-북 수교를 이뤄낼 것으로 확신한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문재인 대통령] “저는 트럼프 대통령이 북미정상회담을 반드시 성공시켜 65년 동안 끝내지 못했던 한국전쟁을 종식시키고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를 이룸과 동시에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체제를 구축하고 북미 간에도 수교하는 등 정상적 관계를 수립해내실 것으로 확신합니다"

문 대통령은 또 완전한 북한의 비핵화에 대해 회의적 시각이 미국에 많다는 것을 잘 안다며 그러나 “과거에 실패했다고 이번에도 실패할 것이라고 미리 비관한다면 역사의 발전이란 있을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어 미-북 정상회담이 예정대로 열릴 것으로 확신한다며 자신은 중재 입장이라기보다 북미 정상회담이 한국의 운명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회담의 성공을 위해 미국과 긴밀히 공조하고 협력하는 관계라고 덧붙였습니다.

VOA 뉴스 김영권입니다.



김일성 김정일 헌법으로는 남북협력이나 평화는 사실상 어렵다


김일성 김정일 헌법으로는 남북협력이나 평화는 사실상 어렵다는 것입니다

김일성, 김정일 헌법은 자국 사회주의 공화국 이론으로 중국 등소평 헌법, 러시아나 일본 등[수정주의(실용주의)나 자본주의] 주변국의 적으로 규정하는 헌법입니다 김일성, 김정일헌법을 수정개정하여 주변국에 편승하는 헌법권력으로 변경돼야 북한 김정은 권력을 보장할 수 있을 것으로 봅니다


미국과의 정상회담을 다시 생각해보겠다는 북한의 경고에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의 체제 안전 보장을 시사했습니다

김 위원장은 몰락한 지도자 카다피와 사정이 다르다며, 핵을 포기하면 미국의 강력한 보호를 받게 될 것이라는 설명입니다.

하지만 미국의 전직 당국자들은 미국이 북한 정권을 보호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진단했습니다.

게리 세이모어 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대량살상무기 조정관은 18VOA와의 전화통화에서 김정은에 대한 정치적 위협은 외부에서만 가해지는 게 아니라 북한 내부에도 존재한다고 지적했습니다

만약 정권에 반발하는 주민 봉기가 일어나거나 정치적으로 불안정한 상태가 되면, 미국은 김정은 정권의 생존을 전혀 담보할 수 없으며 북한도 이 사실을 알고 있다는 설명입니다.

세이모어 전 조정관은 북한이 근대화를 꺼리는 건 이런 이유와도 관계 있다고 말했습니다.

경제 개발과 개혁이 이뤄지면서 번영을 누리게 될 북한 주민들은 정치적 개혁 역시 갈망하게 될 것이며, 이는 바로 김정은에 대한 위협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진단입니다



대니스 와일더 전 백악관 아시아담당 선임보좌관은 트럼프 대통령의 해당 발언은 렉스 틸러슨 전 국무장관이 제시한 ‘4Nos’와 비슷한 의미로 북한 정권을 안정시키겠다는 뜻이 아니라고 말했습니다.

틸러슨 전 국무장관은 북한의 정권교체와 붕괴, 침공, 흡수통일을 하지 않겠다는 4가지 불가론을 언급한 바 있습니다.

와일더 전 보좌관은 미국이 북한 정권의 존립을 보장할 수 없고, 정권에 반발하는 주민들로부터 김정은을 보호할 수도 없다고 말했습니다.

 

로버트 갈루치 전 국무부 북 핵 특사는 북한에 대한 체제 안전 보장은 4, 혹은 8년 임기를 갖는 미국 행정부에 의해 이뤄질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지적했습니다.

여러 미 행정부를 거치면서 지속될 수 있는 북한에 대한 안전 보장은 미-북 관계에 달린 만큼,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대체해 미국과의 관계를 정상화하겠다는 북한의 목표는 최선의 선택이라는 설명입니다.

갈루치 전 특사는 양국 관계가 정상화되면 미국이 북한의 주권을 존중하고 관계를 발전시킬 가능성이 더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고 내다봤습니다.

 

반면 세바스찬 고르카 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부보좌관은 북대서양조약기구 (NATO) 형태의 군사 협력 체제를 통해 북한의 체제 안전을 보장할 수 있을 것이라는 의견을 내놨습니다.

지난해 8월까지 트럼프 행정부에 몸담았던 고르카 전 부보좌관은 나토가 반세기 넘게 유럽을 보호해왔듯이 북한에도 이런 종류의 안전 보장을 제공하는데 문제가 없어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중국군, 이르면 2020년 대만 무력침공 감행

"중공군이 타이완 무력통일을 추진한다면 전략핵무기를 타이완에 배치하는 것이 올바르다 중국이 평화적 입장에서 통일 국가를 준비한다면 평화적 통일을 할 수 있는 중국정부 내부 정치개혁을 해야 한다 무력통일을 하겠다면 타이완 내부 전략 핵무기를 배치하는 것이 필요하다 중국과 북한이 연합으로 태평양 진출이론이 러시아나 미국, 영국 등 견제를 받을 수 있다"

경제력을 바탕으로 군사력 증강에 박차를 가해온 중국군은 이르면 2020년께 대만을 무력 침공할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 나왔다.

중국시보(中國時報)는 20일 미국 USA 투데이를 인용, 미국을 대신해 아시아 태평양에서 군사대국을 지향하는 중국이 늦어도 2030년 이전에 대만을 무력으로 통일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신문은 다양한 정보를 취합해 분석한 결과 2020~2030년 사이가 중국의 '대만 침공'과 관련해 가장 우려되는 '10년'으로 나타났다고 보도했다.

현재 제네바 안보정책 싱크탱크 GCSP 연구원으로 일하는 제임스 파넬은 최근 하원 정보위원회에서 증언을 통해 이같이 경고했다.

파넬은 중국 군사력에 정통한 미국 제7함대 정보부 부국장을 역임한 해군 대령 출신이다.

그는 "중국 최고지도자가 인민해방군에 2020년까지 대만 침공에 필요한 모든 전력을 갖추라고 명령하는 한편 2049년에는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 목표'를 실현하겠다고 천명했다"고 지적했다.

이는 공산중국 수립 100주년을 맞이하는 2049년에는 '대만 통일 대업'을 이루겠다는 선언이라고 파넬은 설명했다.


파넬은 2030년은 하나의 결정적인 분수령이 될 것이라며 중국이 대만 통일에 그치지 않고 최종 목표는 미국의 개입을 저지하고 나아가서는 아시아 태평양에서 미국을 내쫓으려고 한다고 설명했다.

국제평가전략센터(IASC)의 리처드 피셔 연구원은 "중국군이 이르면 2020년 중반 대만에 대한 무력행사에 나설 것"이라고 관측했다.

피셔 연구원은 그렇기에 미국이 대만에 공중급유기를 제공해 대만으로 하여금 인민해방군의 위협에 대응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건의했다.

대만이 무력 점령당하면 중국의 '전략적 발판'으로서 대륙간 탄도 미사일(ICBM)과 항공모함, 전투기 등을 대거 배치하게 될 것이라고 피셔 연구원은 전망했다.

미국 전문가들은 중국군이 대만 일부 위협 비행을 확대하고 있으며 전주에는 러시아제 신형 전투기 수호이-35와 훙(轟)-6K 전략폭격기를 동원해 남북 양쪽에서 대만섬을 포위하듯이 비행하는 위력 시위를 했다고 지적했다.

앞으로는 스텔스 전투기 젠(殲)-20과 랴오닝(遼寧) 항모전단, 막 해상시험을 끝낸 제1호 중국 국산항모 002함까지 가세할 것으로 미국 군사전문가들을 경계하고 있다.



 

                                                                                                          동아시아 국가 중국



중국식 사회주의 국가 인민민주주의 독재(공산당 일당독재) 중국 시진핑(습근평) 사회정부


1조 중화인민공화국은 로동계급이 령도하고 로농동맹에 기반을 둔 인민민주주의독재의 사회주의국가이다.

사회주의제도는 중화인민공화국의 기본제도이다. 중국공산당의 령도는 중국특색의 사회주의의 가장 본질적인 특징이다. 어떤 조직 또는 개인이든지 사회주의제도를 파괴하지 못한다.

2조 중화인민공화국의 모든 권력은 인민에게 속한다.

인민을 대표하여 국가권력을 행사하는 기관은 전국인민대표대회 및 지방 각급 인민대표대회이다.

인민은 법률이 정한 데 따라 여러가지 경로와 형식을 통하여 국가사무를 관리하고 경제, 문화 사업을 관리하며 사회사무를 관리한다.

3조 중화인민공화국의 국가기구는 민주주의중앙집권제원칙을 실시한다.

전국인민대표대회 및 지방 각급 인민대표대회는 민주주의적 선거에 의하여 구성되며 인민에 책임지고 인민의 감독을 받는다.

국가 행정기관, 감찰기관, 재판기관, 검찰기관은 인민대표대회에 의하여 구성되며 인민대표대회에 책임지고 그의 감독을 받는다.

중앙국가기구의 직권과 지방국가기구의 직권은 중앙의 통일적인 령도 밑에 지방의 능동성과 적극성을 충분히 발휘시키는 원칙에 따라 구분한다.

 

79조 중화인민공화국 주석, 부주석은 전국인민대표대회가 선거한다.

선거권과 피선거권을 가진 만 45세 이상의 중화인민공화국 공민은 중화인민공화국 주석, 부주석으로 선거될 수 있다.

중화인민공화국 주석, 부주석의 매기 임기는 전국인민대표대회 매기 임기와 같다

80조 중화인민공화국 주석은 전국인민대표대회의 결정 및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회의 결정에 근거하여 법률을 공포하며 국무원 총리, 부총리, 국무위원, 각 부 부장, 각 위원회 주임, 심계장, 비서장을 임명 또는 해임하며 국가 훈장과 명예칭호를 수여하며 특별사면령을 발포하며 비상사태돌입을 선포하며 전쟁상태를 선포하며 동원령을 발포한다.

 81조 중화인민공화국 주석은 중화인민공화국을 대표하여 국사활동을 진행하고 외국사절을 받아들이며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회의 결정에 근거하여 외국 주재 전권대표를 파견 또는 소환하며 외국과 체결한 조약 또는 중요협정을 비준 또는 페기한다.


93조 중화인민공화국 중앙군사위원회는 전국의 무장력을 령도한다.

중앙군사위원회는 다음의 인원들로 구성한다.

주석, 부주석 약간명, 위원 약간명.

중앙군사위원회는 주석책임제를 실시한다.

중앙군사위원회의 매기 임기는 전국인민대표대회 매기 임기와 같다.

94조 중앙군사위원회 주석은 전국인민대표대회와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회에 책임진다

 [현행 중화인민공화국 헌법.  중국식 사회주의 국가 인민민주주의 독재(공산당 일당독재) 사회정부 성향 국가주석이나 최고권력기구 수장  연임(세습) 가능](제한 선거: 대의원을 정당에서 선출하여 주민투표에서는 찬반투표방식)


1. 1982년 12월 등소평 헌법과 2018년 3월 습근평헌법 같은 점-인민민주주의 독재 사회주의 국가론(자국식 사회주의 국가이론)[인민의회정부론]

PDR(인민민주주의 혁명)은 회의제 정부론(의회 정부제) 이론이다

순수내각책임제 형태 정부이론으로 의회가 가장 우월한 정부형태(권력주체)로 의회는 정부를 불신임 할 수 있지만 내각은 의회를 불신임할 수 없다

ㄱ.민선의회에 권력이 집중

ㄴ.집행부(내각, 행정부)는 의회에 예속 종속됨

 의회는 내각을 불신임하지만 내각은 의회를 불신임하지 못한다(권력이 의회에 집중돼 있고 내각은 의회에 예속, 종속돼 있다 공산주의 국가나 자국 사회주의 헌법 국가들은 1당 독재 국가체제로 당 총서기나 당 총비서가 내각 수상이나 국가주석이다)

인민의회정부론에서 국가수반(국가대표)은 주석이나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위원장(대통령)이다 국가주석이나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위원장이 의례적 상징적 인물이고 실질적 권한은 수상이 해오고 있다

 중국은 국가주석이 국가수반(국가대표)이고  군사위원장이 군 통수권자이며 총리(수상)는 행정부 수반이다.  등소평 헌법은 국가주석은 공산당 대표가 아닌 중국 전체 인민의 대표자(국가대표자)로서 국가주석 임기는 5년 중임제이고 총리는 의원 임기와 동일하다 군사위원장 임기는 제한이 없는 것이 특징이다

등소평 헌법은 형식상 국가를 대표하는 주석 밑에 국가권력이 유지하는 형태로  국가주석 임기를 제한했다

습근평 헌법은  공산당이 일당독재정부로 수평적으로 국가주석이나 군사위원장, 수상의 임기제한을 하지 않았다

인민민주주의 독재형태를 공산당 독재로 이해하고 있다 

중국은 공산당 국가가 아닌 중국 전체 인민의 정부이다

인민해방군은 공산당 당군으로 공산당 총서기가 군사위원장이 돼야 한다는 이론이 습근평 이론이며  인민해방군은 중국 전체 인민의 군대로 공산당 총서기가 아닌 다른 분이 될 수 있다는 것이 등소평 이론이다 그리고 1982년 등소평 헌법은 권력이 집중한 마오 시대의 반성에서 국가주석 3선 금지를 했다 그래야 민주주의 원칙과 인민 전체 경제환경이 나아질 수 있다는 입장이다

등소평 헌법은 실용주의 노선 수정주의자라면 습근평 헌법은 공산주의 교조주의자이다 


2.1982년 12월 등소평 헌법과 2018년 3월 습근평헌법 다른 점

(1)1982년 12월 등소평 헌법 국가주석 임기제한

제79조 중화인민공화국 주석·부주석은 전국인민대표대회가 선거한다. 선거권과 피선거권이 있는 만 45세의 중화인민공화국 공민은 중화인민공화국 주석·부주석으로 피선될 수 있다.

중화인민공화국 주석·부주석의 매회 임기는 전국인민대표대회 매회 임기와 같고, 연임은 2회를 초과 할 수 없다 [1982년 등소평 헌법-권력이 집중한 마오 시대의 반성에서 3선 금지]

(2)2018년 3월 습근평헌법 국가주석 임기제한 철폐(연임 가능)

79조 중화인민공화국 주석, 부주석은 전국인민대표대회가 선거한다.

선거권과 피선거권을 가진 만 45세 이상의 중화인민공화국 공민은 중화인민공화국 주석, 부주석으로 선거될 수 있다.

중화인민공화국 주석, 부주석의 매기 임기는 전국인민대표대회 매기 임기와 같다[국가주석과 부주석 임기 제한 철폐]


3.중국 모택동 공산당의 국제적 원조 정당[마스-레닌주의(공산주의)]: 공산당은 자본주의 3대 원칙 '개인의 사유재산과 이윤추구, 자유시장경쟁원리'등을 부정한다 


마르크스-레닌주의자당 연맹, 혁명적 국제주의자 운동,  아프가니스탄 해방전선 , 아르헨티나 혁명공산당, 볼리비아 인민혁명전선,  부탄 공산당,  캐나다 혁명공산당, 중국 공산당(1969 ~ 1976),  콜롬비아 혁명공산당, 에콰도르 공산당,  인도 공산당 (마오쩌둥주의), 이란 공산당,  이탈리아 마오쩌둥주의자당, 네팔 공산당 (마오쩌둥주의), 노르웨이 노동자당,  필리핀 공산당,  포르투갈 노동자공산당,  터키 공산당,  미국 혁명공산당, 흑표당,  홍위병, 일본 적군파 등

 

중국공산당의 정책은 2002년 11월에 열린 제16대 중국공산당 전국 대표대회에서 장쩌민 주석 겸 비서장이 대표적인 정책 변화에 관한 내용을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중화인민공화국은 중국공산당의 통제 아래 있는 "인민의 민주 독재" 상태이지만, 기업가와 자유직업에 종사하는 인민들이 당의 의사결정에 어느 정도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되었으며 고위 공직자의 부정부패를 막기 위해서 공산당 간부가 자본가와 개인적인 관계를 갖지 못하도록 되어 있다.

2008년 중국공산당 제17기 중앙위원회 3차 전체회의에서는 농촌경제 성장을 위한 토지 경작권의 매매허용(토지유동화정책), 통화와 재정정책 규제완화, 경기 부양을 위한 거시 경제정책마련 등의 변화가 있었다.

중국 공산당은 마스-레닌주의와 무산계급 정책으로 자본가(상공인, 자영업이나 자작농 등)들에게 지지를 받지 못하고 있으며 자본주의 3대 원칙 '개인의 사유재산과 이윤추구, 자유시장경쟁원리등'을 경시(輕視)함으로 경제적 빈곤과 국가사회주의(국영자본체제, 국영기업이나 국영농장) 노선을 추구 해오고 있다[히틀러의 독일 노동자당(나찌즘)의 경제 군사정책을 추종할 수 있다]

 -중국 공산당 모택동주의는 스탈린노선으로 마르크스, 레닌, 스탈린 등을 추종하는 교조주의 노선이다 자국 사회주의(일국사회주의) 모택동 노선은 마스-레닌주의(레닌의 공산당) 보다  스탈린 계열 소련 공산당 중앙위원회 내 노동자의 당(노동당) 계열이다 교조주의 노선은 반미 반서방 반자본주의 노선을 추구하면서 자국 사회주의 노선(중국식 사회주의 노선) 사회주의 공화국이론이다

-중국 공산당 등소평주의는 실용주의 노선 즉 자본주의를 인정하는 수정주의자들이다

등소평주의는 인민민주주의 원칙으로 자본주의민주주의 혁명 후 사회주의 노선을 견지하고 있다

등소평은 권력이 집중한 마오 시대의 반성에서 국가주석 3선 금지를 함으로 중국 모든 기관이나 단체의 장 임기를 사실상 3선 금지를 했다[국가기관 수장의 임기를 제한했다]

 

-중국공산당은 각 도시·읍·촌락·학교·지구(地區)·주요작업장 등에 당의 소조(小組)를 두고 있다

중국 공산당 대의원 의석은  전국인민대표대회 2,157 / 2,987(3분의 2이상) 이다

 

4.공산당 군사조직-중국 인민해방군[당군이론]

중국 공산주의 청년단 출신 대부분이 중국 인민해방군 군인들이다

군정분리주의는 군정과 군령을 분리된 국가제도이다 군정분리주의는 군정기관과 군령기관의 역할을 내각과 군사위원회(국방위원회, 군사평의회)로 분리함으로써 군정은 정부의 책임과 의회의 통제 아래에 두지만 군령은 정부나 의회보다 우월한 군령권을 군사위원회(국방위원회, 군사평의회)에 두고 있다 그러므로 군 통수권에 정치적 판단(의회통제)이 개입할 여지가 없고 오로지 최고 지도자에게만 모든 군 인사권이 주어지고 있다

군정분리주의는 군(軍)통수권 독립이 허용되는 모델로 국가수반(국가주석이나 총통, 대통령)이 군 통수권자가 아닌 군사위원회(국방위원회, 군사평의회) 위원장이 군 통수권자이다

 

중국(중화인민공화국):중국 공산당 중앙군사위원회가 중앙군사위원회 조직이다(당군이론)


제4절 중앙군사위원회(中央軍事委員會)

제93조 ①중화인민공화국 중앙군사위원회는 전국 무장역량을 영도한다. 중앙군사위원회는 아래 자로 구성한다.

주석·부주석약간인·위원약간인

②중앙군사위원회는 주석책임제를 실행한다.

③중앙군사위원회의 매회 임기는 전국인민대표대회 매회 임기와 같다.

제94조 중앙군사위원회 주석은 전국인민대표대회와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회에 책임을 진다.[중화인민공화국 헌법 제4절]

 

중화인민공화국을 이끌어가는 정치 권력 중 지금까지 설명한 것 이외에 두 가지 주요기관이 더 존재한다. 그 중 하나는 형식적인 중화인민공화국 국무원(내각)이며, 나머지 하나는 중국 인민해방군(군사위원회)이다.

 

"中国政府爲軍政分離星期的左翼軍政[軍委]至軍政合倂星期的文民政府(人民政府、民間政府)[主席和内閣]要成爲權力變更, 才能以解放軍不是小党的國家和聯合国軍往前走地位和作用.


중국정부는 군정분리주의 좌익군정[군사위원회]에서 군정통합주의 문민정부(인민정부, 민간정부)[주석과 내각]로 권력변경이 돼야 인민해방군이 당군이 아닌 국군과 유엔군으로 지위와 역할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중국 인민의회 내부 경제성장과 군비확장론 중국식 사회주의 보수파(공산주의 계열)과 평민경제존중, 자유화 개방화 민주화를 지지하는 개혁개방세력 민주파(사회주의와 인민민주주의, 자유민주주의 계열)가 있습니다 개혁개방세력은 자유화 민주화 정책으로 군정분리주의 군사정책을 군정통합주의 군사정책으로 변경돼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중국 등소평정부는 모택동주의 1인 장기집권을 청산하고 등장한 5년 중임제 주석제 실용주의 정부입니다  중국은 아직도 모택동주의 무장단체 좌익군정 잔재 군정분리주의로 국가주석은 국가원수이며 군사위원장이 군 통수권자입니다


                        

                          

                                                                                

                                                                                      중국 해군의 항모 '랴오닝(遼寧)'호


                                                 중국 관영 신화 통신이 17일 배포한 항공모함 '랴오닝'의 갑판에 머무르고 있는 함재기(신화 = 연합)
랴오닝(요녕)호는 갑판 길이가 302m, 최대 속력이 29노트에 달하며 2,000여명의 장병을 태우고 항공기(함재기) 17여대를 탑재할 수 있다 중국 북해 함대소속 항공모함 '랴오닝(遼寧,요녕)호'는 중국 요녕성과 북해를 방위 하기 위하여 건조된 항공모함이다
중국 해군은 남해함대와 동해함대, 북해함대 등 3개 함대로 구성돼 있다








이번 훈련에 항공모함 "랴오닝(遼寧)함 전단"이  등장했다. 신형 잠수함, 수상함 작전 부대가 집결했다. 이번 훈련에서 중국 인민해방군이 항공모함이나 주요 해군 군사력이 증강 되었다는 평가이다





중국 인민해방군 해군의 3대 함대


1.동해함대는 북해함대(北海艦隊), 남해함대(南海艦隊)와 함께 중국 인민해방군 해군의 3대 함대 중의 하나이다.

타이완해협 남단 이북에서 롄윈강(连云港, 연운항) 이남의 동해 및 황해 해역을 관장하며, 상하이기지(上海基地), 저우산 기지(舟山基地), 푸젠기지(福建基地)3개 군급편제(军级编制)의 해군 기지로 이루어졌으며 사령부는 닝보 시(宁波, 영파)에 위치하고 있다.롄원강 남쪽부터 Dongshan까지로 북위 35º10`에서 23º30`까지 담당한다.

 

난징 군구가 여기에 포함되며 총 7개 해안 지역을 방어한다. 본부는 닝보시 둥첸후, 주요 시설은 푸젠성, 저장성 저우산시, 닝보시 둥첸후에 위치해 있다.

 

2.남해함대(南海艦隊)는 북해함대, 동해함대와 함께 인민해방군의 해군에 소속된 중화인민공화국의 3개 함대 중의 하나이다.

서사군도(西沙群岛), 남사군도(南沙群岛)의 방어를 포함한 타이완해협 남단의 서남방향 해역을 관할하고 있으며 잔장기지(湛江基地), 광저우기지(广州基地), 위린기지(榆林基地)3개 군급편제(军级编制)의 해군기지로 이루어 졌으며 사령부는 잔장(湛江)에 주둔하고 있다.

 

Dongshan부터 베트남과 경계되는 해안선 북위 23º30`까지 담당한다. 광저우 군구가 여기에 포함되며 서사군도(Paracel Islands)와 남사군도(Spratly Islands)까지 작전지역이다. 본부는 광저우 시, 주요 시설은 위린, 광저우, Zuanjiang에 위치해 있다

 

3.북해함대(北海艦隊)는 인민해방군 해군에 소속되어 있는 중화인민공화국의 함대이다.

 전신은 인민해방군 초기의 해군부대인 화동해방군(华东解放军) 해군지대(海军支队)로 북해함대, 동해함대, 남해함대의 중국 3대함대 중 유일하게 핵잠수함을 보유하고 있는 등 최강의 전력과 장비를 갖추고 있으며 사령부는 칭다오 시에 위치하고 있다. 북해함대의 방위 구역은 롄윈강(連雲港) 이북의 황해 및 발해만 지역으로 주요 임무는 수도의 해상 문호에 대한 주변지역의 경계 및 해상위협에 대한 대처이다.

 

함대의 편제는 3개 군급(軍級)으로 여순, 호로도, 칭다오 기지로 이루어져 있다.북한과 인접한 해안선(압록강 포함)에서 시작해서 롄원강 남쪽 북위 35º10`까지 담당한다.해당되는 지역중 심양, 베이징, 지난 군구가 여기에 포함되며 총 9개 해안 지역을 방어함. 본부는 칭다오, 주요 시설은 뤼순커우 구에 있다

 



롄윈강 [連雲港(연운항), Lianyungang] 이북-북해[북중국해]

롄윈강 [連雲港(연운항), Lianyungang] 이남-동해[동중국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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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orm Guide Ear(Language, Intelligence) to Bird's Eye(Reading,Investigation)")"[Guide Ear로 수집,조사, 토의,분석하고 Bird's Eye의 정상(頂上,Headquarters)들이 판단, 결정하는 기구 머리소리함]

"민주주의 반대는 공산주의가 아닌 전체주의(독재주의)고, 자본주의 반대가 공산주의입니다. 자본주의민주주의 혁명 이후 자유주의(자유권)와 사회주의(사회권=생존권) 공존(존중) 자유사회입니다"
*자본주의 3대 원칙[경제]:사유재산, 이윤추구, 자유시장경쟁 등[공산주의는 자본주의 3대 원칙을 부정함으로 자영업(자작농)을 할 수 없다]
*민주주의 3대 원칙[정치]:국민의(民有), 국민에 의한(民治), 국민을 위한(民享) 정부[국민주권과 기본권 보장, 권력분리과 국가권력의 수장 임기제한, 법치주의, 사법부의 독립,복수정당과 의회정치, 국제평화주의 등]

1단계 자본주의 민주주의 혁명 추진(경제 기반으로 정치)

2단계 자유주의(자유권)와 사회주의(사회권) 기반 구축(행복한 복지국가 구축) [대러시아나 중국, 북한 정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