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ia-Pacific Region Intelligence Center
평화적인 핵포기의 모범사례: 우크라이나 본문
"미국, 러시아, 우크라이나 3개국 협상으로 구소련 핵무기 포기 그리고 안전보장[핵무기 폐기 및 이에 따른 보상원칙을 합의]"
우크라이나는 핵무기가 배치된 소련의 네 개 공화국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냉전이 종식되고 소련이 해체되면서 핵무기가 배치되어 있던 벨로루시, 카자흐스탄, 러시아 그리고 우크라이나 네 공화국은 핵무기보유국의 지위를 러시아에 이양하는 협정을 합의습니다. 그러나 우크라이나 정부가 이런 결정을 내리는 데는 반대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당시 1,900여기의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던 우크라이나 군부가 핵무장을 강력히 선호했기 때문입니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핵을 포기하는 대신에 러시아와 미국 정부로부터 구체적인 안전보장을 희망했고, 그 결과로서 1994년 1월에 3자 선언이 채택되었습니다. 당시 세 나라의 대통령이 서명한 이 선언에서 미국과 러시아 양국은 비핵국인 우크라이나에 대해 다음 두 가지 안전보장을 약속했습니다.
첫째, 우크라이나가 핵무기가 사용되는 침략에 희생되거나 그런 침략위협을 받는 경우 즉각 유엔안보리 차원의 지원을 강구하겠다는 것입니다. 둘째, 우크라이나가 핵무기보유국과 동맹 하에 미국과 러시아를 공격하지 않는 한 우크라이나에 대해서 핵무기를 사용하지 않겠다는 약속이었습니다.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기술적, 재정적인 지원은 우크라이나의 핵무기 능력을 해체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우크라이나가 갖고 있던 일부 핵능력은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을 위한 민간영역으로 전환되기도 했습니다. 예를 들어, 핵과학자와 기술 그리고 물질이 해외로 유출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 1995년에 우크라이나 과학기술센터가 설립되었는데, 2000년 중반 현재 이 연구센터에는 6,700여명의 과학자들이 290여개 프로젝트에서 일하고 있었습니다.
우크라이나가 핵무기보유국에서 비핵국가로 전환하는 데는 몇 가지 긍정적인 요인들이 작용했습니다. 첫째, 정권핵심부가 핵무기를 포기하는데 주저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러시아의 막강한 핵전력을 감안할 때, 소규모의 핵무기를 갖는 것이 안보에 도움이 되지 않을뿐더러 오히려 러시아의 안보우려를 자극할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둘째, 우크라이나의 핵능력은 소련 핵전력의 일부였기 때문에 처음부터 완전한 투명성이 확보되어 있었습니다.
셋째, 우크라이나가 신생국가로서 국제사회에 처음 등장했기 때문에 협정위반이나 기만과 같은 불미스런 전력이 없었고 따라서 국제사회의 신뢰를 얻기가 쉬웠습니다.
-1994년 1월 14일에는 우크라이나, 미국, 러시아 3국 정상이 만나 우크라이나의 핵무기 폐기 및 이에 따른 보상원칙을 합의했다
-1991년 2월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에서 전술, 전략 핵무기를 이관하기로 합의했고, 1992년 5월에는 전술 핵무기 전량을 러시아에 이관했다. 1994년 1월 핵무기 폐기에 관한 미국과 러시아, 우크라이나 3국 간의 협정을 체결하고 우크라이나 보유 핵무기인 SS-19형 130기, SS-24형 46기, 핵탄두 1840개 전량을 3년 내 해체하기로 했다. 해체된 핵물질은 러시아로 이관하고, 러시아는 이에 대한 대가로 원자력 발전소용 핵 원료를 제공하기로 했다.
또 미국은 해체에 따르는 비용을 지원하기로 결정했다. 1996년 6월 레오니드 쿠치마(Leonid Kuchma) 대통령은 우크라이나에 있는 핵무기를 폐기 완료했다고 발표했고 2010년 4월에 빅토르 야누코비치(Viktor Yanukovych) 대통령은 농축우라늄을 전량 폐기했음을 선언했다. 1994년 핵무기 폐기 문제가 타결됨에 따라 우크라이나 국회는 핵확산금지조약(NPT, Nuclear nonProliferation Treaty) 수탁국가들의 우크라이나 안전 보장을 조건으로 이 조약에 가입하는 것을 비준하였다. 이에 우크라이나는 핵확산금지조약에 가입하였다.
1994년 12월 부다페스트에서 열린 유럽안보협력기구(OSCE, Organization for Security and Co-operation in Europe) 정상회의에서 핵확산금지조약 수탁국가인 미국과 영국,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안전보장 각서 교환과 함께 비준서 기탁이 있었다
-우크라이나식 핵해법은 핵을 완전 폐기하는 대신 경제지원과 안전보장을 제공받는 것을 골자로 하는 핵문제 해결 방식.
구 소련(소비에트 연방)에 독립공화국으로 속해있다가 1991년 구소련의 몰락과 더불어 연방에서 탈퇴, 독립한 우크라이나는 구소련으로부터 176기의 핵미사일과 1800기의 핵탄두를 물려받아 세계에서 3번째로 핵을 많이 보유한 국가가 됐다.
우크라이나는 처음에는 러시아가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다는 점 때문에 핵무장 해제를 꺼렸다. 당시 우크라이나의 비핵화는 국제사회의 초미의 관심이었고, 우크라이나는 미국, 러시아와의 수년간에 걸친 협상끝에 미국, 영국, 러시아 3개국이 공동으로 우크라이나에 안전보장(security assurance)을 제공하는 다자 안전보장 및 경제지원을 받는 조건으로 핵을 포기하고 핵확산금지조약(NPT)에 가입했었다.
즉, 우크라이나 모델은 러시아의 안보위협을 이유로 핵무기 폐기를 거부한 우크라이나에 대해 미국.영국이 러시아까지 참여한 다자간 합의각서를 통해 집단안전보장을 해줌으로써 핵무기 폐기를 성사시킨 방식이다.
-우크라이나 국방부 (우크라이나어: Міністерство оборони України)는 소련에게서 독립한 지 1개월 후인 1991년 9월 24일 설립한 군사 기관이다. 이후 우크라이나 내의 모든 소련군은 우크라이나 국방부의 지휘를 받게 되었다. 이 거대한 군은 재편성하는 데만 매우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 이후로, 우크라이나는 자발적으로 모든 핵무기를 포기했다. 우크라이나 국방부는 핵무기 사일로, 이를 기반에 둔 군사 기지 및 참모, 장비를 줄이는 데 대대적인 비용을 사용했으며, 유럽의 보편 군사 조약에 따라서 재편성했다.
우크라이나 핵포기 서명 직후의 미국, 러시아, 우크라이나 대통령 Bill Clinton (from left)[클린턴], Boris Yeltsin[옐친], Leonid Kravchuk[크라브추크]
'수소핵폭탄(핵탄두) 실험과 KN-08' 카테고리의 다른 글
EU “평창올림픽 후 대북 제재와 관여 함께 추구” (0) | 2018.02.18 |
---|---|
북한정부 핵무기 포기 방법은 남아프리카공화국 모델로 가능하다는 입장 (0) | 2018.02.18 |
남아프리카 공화국 핵무기 개발과 포기 (0) | 2018.02.17 |
한국 대통령, 올림픽 중 미국에 북한과의 대화 요청했다고 (0) | 2018.02.17 |
유엔 “예멘 후티 반군, 북한 미사일 기술로 사우디 공격” (0) | 2018.02.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