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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상 수상 중국 인권운동가 류샤오보 사망 본문
中 민주활동가 류샤오보(劉曉波,류효파) 타계
중국 민주화 운동의 상징적인 인물인 노벨평화상 수상자 류샤오보(劉曉波 61)가 13일 끝내 세상을 떠났다.
랴오닝성 선양(瀋陽)시 사법국은 이날 오후 9시20분께 류샤오보가 간암 말기 입원 치료를 받아온 중국의과대학 제1부속병원에서 장기부전으로 사망했다고 발표했다.
지난달 복역 중 말기 간암 판정을 받고 병보석으로 풀려난 병원에서 집중 치료를 받았지만 원하던 해외 출국도 이루지 못하고 병마에 스러졌다.
류샤오보는 베이징 사범대학 강사이던 1989년 학생들이 베이징 톈안먼 과정에서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위를 벌이자 연구를 위해 머물던 미국을 떠나 귀국, 데모에 참여하고 단식을 주도했다.
인민해방군의 투입과 유혈진압 위험이 높아지자 군간부와 협상을 갖고 학생들을 톈안먼 광장에 철수시켜 희생자를 줄였다.
이로 인해 류샤오보는 '4군자(四君子)'라는 칭송을 받기도 했지만 톈안먼 사건 후 반혁명죄를 1년7개월을 감옥에서 살아야 했다.
출소 후에도 중국에 머물면서 톈안먼 사건 희생자의 명예회복과 민주화를 구하는 운동을 펼쳐 당국에 반복해소 구속당하는 핍박을 받았지만 정부와 공산당 비판을 멈추지 않았다.
베이징 올림픽이 열린 2008년 중국공산당 일당독재 포기와 언론의 자유 등을 촉구하는 '08 헌장' 기초자의 중심이 됐다.
많은 찬성 서명을 모았지만 중국 당국은 류샤오보를 국가정권 전복선동죄를 체포했다. 2010년 2월 징역 11년 실형판결이 확정, 랴오닝성 친저우(錦州) 교도소에 갇혔다.
2010년 10월 노르웨이 노벨상 위원회는 류샤오보를 "20년 이상에 걸쳐 중국에서 기본적인 인권 보장을 주창하며 인권을 요구하는 폭넓은 투쟁의 최대 상징이었다"고 평가해 평화상 수상자로 결정했다.
수감 중인 류샤오보는 시상식에는 참석하지 못했지만 원한과 폭력을 극복하면서 민주화를 구하려는 그의 "내게는 적이 없다"는 말이 낭송돼 장내를 숙연하게 했다.
이에 대해 중국 정부는 '내정간섭'이라고 반발하며 노르웨이와 외교 마찰을 빚었지만 류샤오보의 노벨상 수상은 중국 인권상황에 대해 다시 세계의 이목이 쏠리는 계기가 됐다.
지난 5월 말 복역하던 교도소에서 복부에 이상이 발견됐으며 정밀검사 결과 간암 말기를 앓는 사실이 드러났다.
류샤오보는 부인 류샤(劉霞 56)와 함께 출국해서 독일이나 미국에서 치료를 받고 싶다고 희망했다.
방중해 지난 8일 류샤오보 병세를 진찰한 독일과 미국 의사는 "안전한 이송이 가능하다"며 조속한 해외치료를 강조했지만 중국 당국이 출국을 허용하지 않았다.
올가을 최고 지도부를 대폭 교체하는 제19차 당 대회를 앞둔 중국으로선 세계적인 지명도가 있고 당과 정부에 비판적인 류샤오보를 해외로 보내면 재차 비난 세례를 받을 것으로 우려했기에 끝까지 출국을 불허했다는 지적이다.
반체제 활동을 펴다가 당국에 구속된 후 노벨평화상을 받은 사람이 자유를 잃은 상태에서 숨진 것은 나치스 독일에 맞서다가 1938년 별세한 독일 평화운동사 카를 오시에츠키 이래 류샤오보가 처음이다.
1935년 노벨평화상을 받은 오시에츠키는 나치독일 치하에서 수감생활을 하다가 발병해 병원에서 숨졌다.
류샤(劉霞 56) 및 류샤오보(劉曉波 61)는 중국 내외부에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중국 개혁세력, 류샤오보 별세로 ‘정신적 지주’ 잃어
민주화 운동 역량에 상당 타격···큰 파장은 기대 힘들듯
중국 노벨평화상 수상자 류샤오보(劉曉波)는 민주화 운동의 상징으로서 국내외 인권 활동가와 변호사, 체제 내 개혁파 지식인으로부터 폭넓은 지지와 존경을 받았다.
오는 2020년 형기 만료 후 다시 민주화 운동의 기수로서 활약이 기대된 만큼 류샤오보의 타계는 개혁 세력으로선 '정신적인 지주'을 잃은 셈이다.
다만 올가을 최고 지도부를 대폭 교체하는 최대 정치행사인 제19차 당 대회를 앞둔 시진핑(習近平) 지도부에게는 류샤오보의 부음이 체제에 대한 불만을 일시에 확산하는 '불씨'로 작용할 만일의 상황을 완전 배제할 수는 없다는 지적도 있기는 하다.
이런 사태를 우려하는 중국 당국은 류샤오보의 별세 사실의 전파를 가급적 차단하면서 그 추이에 신경을 곧추세우고 있다.
시진핑 지도부에 대해 류샤오보는 중국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가진 인권 활동가였다. 그래서 옥중에 있는 류샤오보를 끈질기게 회유하고 위협을 가했다.
류샤오보의 절친한 반체제 동반자로 2008년 유럽의회가 주는 '사하로프 인권상'을 받은 후자(胡佳 43)는 "그가 중국 민주화의 긴 여정 도중에 스러짐으로써 우리의 역량은 크게 약화할 수밖에 없다"고 안타까워했다.
후자는 류샤오보가 애초부터 국외 망명 권유를 거부했으며 출소 후에는 민주화 운동에 몸을 던져 앞장서겠다는 약속을 굳게 믿었기 때문이라고 애통해 했다.
하지만 후자는 류샤오보가 당국의 해외 출국 거부로 사실상 '옥사'함으로써 중국의 민주화를 추구하는 사람이나 민주화를 바라는 많은 이들을 재차 일깨우는 계기를 제공할 것으로 기대했다.
시진핑 지도부는 2012년 가을 출범한 이래 '중국 부흥'의 대의명분을 앞세워 언론과 신앙, 정치 활동의 자유를 억제하고 탄압했다.
인권 활동가와 변호사를 수백 명을 일거에 연행해 투옥하는가 하면 부패척결을 명분으로 정적 세력을 쳐냈다.
지도부와 다른 목소리를 내는 것을 철저히 봉쇄하는 것은 중국의 급속한 경제화 사회 발전으로 공산당 일당체재를 유지하는데 어려움이 많다는 사실을 방증한다.
학생 민주화 요구 시위를 유혈 진압한 1989년 톈안먼(天安門) 사건 이래 중국 당국은 애국주의 교육을 실시하고 자유와 평등의 서방 가치관을 적대시했다.
30년 가까운 오랜 언론 통제와 애국 교육 결과 류샤오보의 존재 자체를 모르는 젊은층이 압도적 다수이다.
중국 지식인 사이에서도 류샤오보의 죽음이 "앞으로 어느 정도 영향을 일으킬지 정말 모르겠다"고 토로하고 있다.
사실 베이징에서는 존경 받아온 지도적 인물의 추모활동이 중국 역사를 뒤바꿀만한 사건으로 비화한 예가 적지 않다.
저우언라이(周恩来) 총리를 애도하는 활동이 탄압을 받은 1976년 제1차 톈안먼 사건과 후야오방(胡耀邦) 당 총서기를 추모하는 시위가 발단이 된 1989년 제2차 톈안먼 사건이 대표적이다.
제1차 톈안먼 사건으로 문혁 4인방이 쫓겨나고 결국 덩샤오핑(鄧小平)이 실권을 잡고 개혁개방 노선의 길을 열었다.
제2차 톈안먼 사건은 자오쯔양(趙紫陽) 총서기 실각과 장쩌민(江澤民) 체제의 부상을 가졌다.
개혁파 인사들은 "류샤오보를 정권이 살해한 것과 마찬가지다. 이는 의식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가 알고 있다. 그의 타계로 많은 이들이 인도적인 배려조차 인색한 공산당의 무자비한 실체를 알게 됐다"고 강조하고 있다.
그렇지만 경제성장을 거듭하면서 자신감을 가진 중국은 인권상황의 개선을 촉구하는 국제사회의 목소리에는 점차 귀를 기울이지 않고 있다.
중국은 경제성장이 민주화의 길을 튼다는 지금까지의 역사적 경험칙에는 역행하는 행보를 걷고 있다.
민주화 운동에 호응하는 중국 내 역량도 극히 제한적이다.
여기에 더해 중국 민주화 운동을 대표하는 류샤오보의 타계로 국제사회의 중국 인권상황에 대한 관심도 엷어질 우려가 많다.
그 때문에 류샤오보의 죽임이 중국 국내외에서 상당한 파장을 일으킬 것으로 기대하기는 난망이라고 관측이 대체적이다.
시핀핑 '1인체제'가 강화되면서 중국 민주화 운동이 더욱 후퇴할 수도 있다는 비관적인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간암 투병중이던 중국의 민주화인사 류샤오보 씨 사망
중국의 민주화운동의 상징적인 존재로 복역중에 노벨평화상을 받은 작가 류샤오보 씨가 어제 숨졌습니다.
류샤오보 씨는 중국 동북부의 지린 성 출신으로 베이징사범대학에 재적했던 1980년대 중반에 문예평론가로 중국의 민주화의 중요성을 호소해 주목을 받았습니다.
1989년 톈안먼사건 때에는 민주화를 요구하는 학생들의 운동을 주도했으며 그 후에도 정치개혁의 필요성을 호소하는 평론 등을 계속 발표했습니다.
2008년에는 중국의 민주화의 필요성을 호소하며 공산당 1당지배를 비판한 08헌장을 발표했다가 국가전복선동죄로 징역 11년형을 선고받고 교도소에 수감됐습니다.
류샤오보 씨는 복역중인 2010년에 중국에서 기본적 인권을 위한 투쟁을 일관되게 비폭력의 입장에서 전개한 공로로 노벨평화상을 받았지만 중국정부는 시상식 참석을 불허해 전세계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그 후에도 계속 복역하던 류샤오보 씨는 간암 말기 판정을 받고 지난달 가석방돼 중국 동북부의 랴오닝성 선양에 있는 병원에서 치료를 받아 왔지만 선양시 사법국에 따르면 어제 61살의 나이로 숨졌습니다. 류샤오보 씨에 대해서는 본인과 가족이 독일이나 미국에서 치료를 받기를 희망했지만 중국 측이 승인하지 않아 결국 실현되지 않았습니다.
미국과 EU, 유럽연합 등은 그동안 류샤오보 씨의 조기석방을 계속 요청해 왔지만 중국정부는 범죄자라며 류샤오보 씨를 계속 수감하고 석방하지 않았기 때문에 중국 정부의 인권문제에 대한 자세에 거듭 논란이 일 것으로 보입니다.
간암 투병 중인 중국 인권운동가 류샤오보가 가족과 의료진에 둘러싸인채 병원 침대에 누워있는 모습을 담은 영상이 11일 공개됐다.
류샤오보 씨가 외국행을 희망한 배경에는 아내의 존재
류샤오보 씨는 중국의 민주화의 필요성을 호소하고 당국에 여러 번 체포되거나 수감됐었는데 민주화를 진전시키기 위해서는 중국 국내에서 언론활동을 펼칠 필요가 있다고 밝혀왔습니다.
그러나 최근 들어서는 입장을 바꿔 외국에 가서 암치료를 받고 싶다고 밝혔습니다. 이러한 배경에는 아내인 류샤 씨의 존재가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류샤 씨는 류샤오보 씨가 2010년에 노벨평화상을 받은 직후부터 베이징 시내의 자택에서 가택연금상태에 놓여 외부와의 접촉도 거의 끊겼기 때문에 우울증세를 보이는 등 건강이 악화됐습니다. 그러나 류샤오보 씨 부부와 오래전부터 알고 지내는 지인에 따르면 류샤 씨는 교도소에 있는 남편에게 걱정을 끼치고 싶지 않다며 자신이 오랜세월 가택연금상태에 놓여 있는 사실과 건강이 악화된 점을 최근까지 남편에게 숨겼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그러나 류샤 씨가 자신의 증세 등을 남편에게 사실대로 전하자 류샤오보 씨가 매우 걱정하면서 아내의 치료를 위해서라도 외국에 가고 싶다는 의향을 밝힌 사실이 류샤오보 씨의 지원자가 지난달 트위터에 공개한 류샤 씨의 직필서한을 통해 밝혀졌습니다.
류샤오보 씨의 지인은 "류샤오보 씨는 간암이 악화되자 자신이 죽은 후에도 아내에게 가택연금조치가 계속 내려질 가능성이 있는 점을 우려해 외국행을 강력히 희망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일 정부, 류샤오보 씨의 서거에 애도 표명하고 중국의 인권상황 주시
일본의 스가 관방장관은 각료회의를 마친 후 기자회견에서 "자유와 민주주의의 추구에 인생을 바친 류샤오보 씨의 서거 소식을 접하고 진심으로 애도의 뜻을 표한다"고 말했습니다.
이어서 스가 관방장관은 "일본정부는 자유와 기본적 인권 존중, 법의 지배는 국제사회의 보편적 가치로, 이러한 가치가 중국에서도 보장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보고 있다"면서 계속해서 높은 관심을 갖고 중국의 인권상황을 주시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스가 관방장관은 또, 류샤오보 씨가 해외에서 치료를 받고 싶다고 밝혔음에도 중국 정부가 불허한 데 대해 자세한 사항은 언급을 자제하겠다면서도 실은 다양한 경로를 통해 일본정부의 입장을 중국 측에 전달했다고 말했습니다.
일 전문가 "류샤오보 씨의 사망은 화근을 남긴 셈"
현대중국론 전공인 간다외어대학의 고로기 이치로 교수는, 류샤오보 씨의 사망이 중국에 미칠 영향에 대해, "중국 당국은 항의활동 등이 일어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향후 언론 통제와 억압을 강화할 것으로 보여, 단기적으로는 사회 불안정과 같은 큰 영향은 나타나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한편, 장기적인 영향에 대해서는 "류샤오보 씨의 사망이 일당독재에 희생된 비극적인 영웅이자, 민주화를 요구하는 상징으로 역사에 각인될 것이기 때문에, 공산당 입장에서는 화근을 남긴 셈이 됐다"고 말했습니다.
또, 류샤오보 씨의 출국을 허용하지 않았던 당국의 대응에 대해서는 "국력이 강해짐에 따라, 중국은 타국과 타협하지 않게 됐다"며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인권문제를 소리높여 주장하지 않았기 때문에, 외교적 영향은 억제할 수 있을 것이라는 판단도 있었을 것"이라고 분석했습니다.
이어, 올해 하반기에 5년에 한 번 열리는 당대회 개최가 예정돼 있는 것을 언급하며, "강한 지도자상을 연출하기 위해서도, 외국의 압력에 굴복했다는 인상을 대내적으로 줄 수 있는 타협은 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노벨위원회, "류샤오보 씨 죽음에 중국의 책임 무겁다"
노벨평화상 수상자를 선정하는 노르웨이의 노벨위원회는, 류샤오보 씨의 사망과 관련해 성명을 발표했습니다.
성명은, 류샤오보 씨의 사망에 대해, "낙담과 깊은 슬픔을 느낀다"고 밝히고, "류샤오보 씨는 자유와 민주주의, 그리고 보다 나은 세상을 위해 싸우는 모든 사람들에게 강력한 상징으로 남을 것이라 확신한다"면서 "류샤오보 씨의 이상은 감옥에 가둘 수 없고 결코 죽지 않을 것"이라며 그의 공적을 기렸습니다.
한편, 성명에서는 "류샤오보 씨는 어떠한 범죄행위도 하지 않았고, 단순히 시민으로서의 권리를 행사했을 뿐"이라면서 "류샤오보 씨가 수감된 것은 불공정하며, 그의 너무 이른 죽음에는 중국 정부의 책임이 무겁다"고, 중국 정부의 류샤오보 씨에 대한 일련의 대응을 신랄하게 비판했습니다.
류샤오보, 아무도 미워하지 않은 자의 죽음
화가이자 사진작가인 아내 류샤가 찍은 류샤오보의 사진. EPA 연합
중국 노벨평화상 수상자이자 민주화운동가였던 류샤오보가 13일 세상을 떠났다. 향년 61
중국 랴오닝성 선양시 당국은 간암 말기 판정을 받고 가석방돼 중국의과대학부속제일병원에 입원했던 류샤오보가 이날 사망했다고 발표했다.
시인이자, 문학평론가, 학자이자 민주화 운동가였던 류샤오보는 수십년 동안 계속된 탄압 속에서도 끊임 없이 민주화를 희망하고 요구했다. 그에게는 여러차례 해외로 망명할 기회가 있었으나, 그는 끝까지 중국에 남아 민주화를 염원하며 분투했다. 노벨평화상을 수상했으나 감옥에서 고통받다가 간암에 걸린 뒤에도 감시 속에서 비극적으로 숨졌다. 류샤오보의 죽음은 중국의 인권 상황에 대한 국제적 비판을 부를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중국 체제 내에서 민주화 개혁을 꿈꿨던 희망의 종말로 여겨질 것이다.
1955년 12월 지린성 창춘에서 태어난 류샤오보는 문화대혁명(1966~1976년) 시기 하방(下放·지식인을 농촌 등 노동 현장으로 보냄)돼 건축공사 근로자로 일했다. 문혁이 끝난 뒤인 1977년 지린대학 중문과에 입학했고, 베이징사범대학에서 석·박사 학위 과정을 이수했다. 강단에 선 그는 촉망받는 시인이자 평론가, 교수였다.
1989년 봄 베이징 천안문(톈안먼)에서 민주화와 부정부패 타파 등을 요구하는 시위가 벌어졌을 때, 그는 미국 콜럼비아대학에 방문학자로 가 있었다. 그는 천안문 시위 소식을 듣고 베이징으로 돌아와 광장 한가운데로 들어갔고, ‘천안문 4군자’의 일원으로 단식투쟁을 했으며, 6월 3일 밤 군대의 진압이 시작될 때 학생들이 진압을 피해 광장에서 나갈 수 있도록 군대와 협상을 했다.
무력 진압 뒤 이틀 후인 6월6일 중국 공안당국에 '반혁명선전선동죄'로 체포된 그는 강단에서 쫓겨나는 공직박탈 조치를 당했다. 그는 1990년대 초반 미국에서 제작된 천안문 시위 관련 다큐멘터리 촬영 당시에도 망명 권유를 받았으나 중국 내에서 개혁을 위해 노력하겠다며 망명을 거부했다. 1995년 5월 베이징 교외에 1년여 감금됐다가 그 다음해 10월 ‘사회질서교란죄’라는 명목으로 법원에서 3년의 노동교화형을 선고받았다.
2008년 6월 AP와 인터뷰하고 있는 류샤오보. AP 연합
이후로도 중국 정부에 비판적인 글을 발표하며 여러차례 투옥된 그는 2008년 12월 세계인권의 날에 발표된 ‘08헌장’ 작성과 서명운동을 주도했다. 체코인들이 소련의 억압적 정책에 반발해 발표했던 77헌장을 모델로, 공산당 일당체제 종식과 다당제 도입, 삼권분립, 당의 군대를 국가의 군대로, 사법독립 등 광범위한 민주개혁을 요구하는 내용이었다. 그는 헌장이 발표되기 며칠 전 체포됐고, 2009년 12월 국가 전복선동죄를 적용받아 징역 11년형을 선고받았다.
재판을 받을 당시 그는 ‘나에게는 적이 없다’는 글을 발표해 이렇게 말했다. “증오는 지혜와 양심이 아니다, 적대적인 감정은 국가의 영혼을 오염시키고, 야만적인 삶을 악화시키고, 사회의 관용과 인간성을 파괴한다. 또, 국가가 자유와 민주를 향해 나아가는 것을 방해한다.”
2010년 12월10일 노르웨이 오슬로 시청에서 열린 노벨평화상 시상식, 류샤오보가 앉아야할 자리에 빈 의자가 놓여 있다. 오슬로/EPA 연합
2010년 노벨위원회는 그를 노벨평화상 후보자로 발표했으나, 감옥에 갇혀 있던 그의 시상식 참석은 중국 당국에 의해 불허됐다. 시상식에는 ‘빈 의자’만 놓였다. 노르웨이 노벨위원회는 당시 “류샤오보가 중국에서 기본적인 인권을 위해 길고 비폭력적인 투쟁을 벌였다”며 “중국 인권 개선을 위한 광범위한 투쟁을 대표하는 인물”이라고 시상 이유를 밝혔다. 중국은 류샤오보의 노벨평화상 수상을 이유로 노르웨이에 몇년 동안 경제 보복조처를 취했다. 08헌장에 대해서는 중국 개혁파 내에서도 찬반 논란이 있고, 중국 현실에 맞지 않는 내용이라는 비판도 존재한다. 또한 중국 정부의 철저한 검열로 인해 08헌장과 류샤오보의 노벨평화상 수상 자체가 중국인들에게는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다.
간암 말기 판정을 받고 가석방돼 병원에서 치료 받을 때 아내 류샤가 류샤오보를 돌보는 모습. AP 연합
류샤오보는 지난 5월 말 감옥에서 간암 말기 진단을 받았으며, 중국 당국은 6월에야 그를 가석방해 선양 소재 중국의대 제1병원에서 치료를 받도록 했다. 하지만 마지막 한달 동안도 류샤오보는 외부와의 접촉이 철저히 차단된 채 당국의 통제 아래 있었다. 병상에 누워 죽음을 기다리고 있는, 깡마르고 허약해진 류샤오보의 모습은 중국 체제 내에서 민주화를 실현하려던 희망의 촛불이 꺼져가는 것처럼 보였다.
류샤오보는 죽음이 임박한 최근 아내 류샤를 위해 해외로 나가 치료받기를 소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류샤는 류샤오보의 노벨평화상 수상 직후부터 가택연금을 당해 외부와 격리된 채 고통스런 생활을 해왔다. 류샤는 류샤오보가 민주화를 위해 어려움을 겪는 내내 그와 함께 했던 동지였다. 촉망받던 시인이자 화가, 사진작가였던 류샤는 1996년 류샤오보가 갇혀 있던 노동교화소 식당에서 결혼식을 올렸고 이후 힘든 세월을 항상 함께 했다. 아내와 함께 해외로 나가고 싶다는 그의 마지막 소망은 끝내 이뤄지지 않았다.
minggu@hani.co.kr
류샤오보는 지난 5월 말 감옥에서 간암 말기 진단을 받았으며, 중국 당국은 6월에야 그를 가석방해 선양 소재 중국의대 제1병원에서 치료를 받도록 했다. 하지만 마지막 한달 동안도 류샤오보는 외부와의 접촉이 철저히 차단된 채 당국의 통제 아래 있었다. 병상에 누워 죽음을 기다리고 있는, 깡마르고 허약해진 류샤오보의 모습은 중국 체제 내에서 민주화를 실현하려던 희망의 촛불이 꺼져가는 것처럼 보였다.
노벨상 수상 중국 인권운동가 류샤오보 사망
지난 2008년 1월 베이징 자택에서 인터뷰 중인 중국 인권운동가 류샤오보.
투병 중이던 중국의 인권운동가 류샤오보 씨가 13일 사망했습니다.
중국의 민주화를 요구하다 중국 당국에 체포돼 지난 2009년 징역 11년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던 류 씨는 최근 간암 말기 진단을 받고 병원으로 이송돼 치료를 받아 왔습니다.
류샤오보 씨는 중국의 민주화와 인권 개선을 위한 비폭력 투쟁을 이끈 공로를 인정받아 지난 2010년 노벨평화상을 받았습니다.
투병 중이던 중국 인권운동가 류샤오보의 사망 소식이 알려진 13일, 홍콩에서 추모 집회가 열렸다.
한편 류 씨에게 노벨평화상을 수여한 노르웨이 노벨위원회는 이날 성명을 내고 류 씨의 죽음에 중국 정부의 책임이 크다고 비난했습니다.
국제인권단체인 휴먼라이츠워치 중국 지부는 류 씨에 대한 중국 정부에 처사에 충격받았다며 그러나 중국의 민주화와 인권을 위한 류샤오보 씨의 노력이 영원히 살아있을 것이라고 평가했습니다.
자이드 라드 알후세인 유엔 인권 최고대표는 이날 성명을 통해 깊은 애도의 뜻을 나타내고 국제 인권운동이 큰 인물을 잃었다고 밝혔습니다.
렉스 틸러슨 미국 국무장관도 13일 성명을 내고 류샤오보 씨가 정의와 자유를 위한 투쟁을 통해 인류 정신을 드높였다고 칭송했습니다.
또 현재 가택연금 상태에 있는 부인 류샤 씨를 석방하고 중국을 떠날 수 있게 허용하라고 촉구했습니다.
VOA 뉴스
진행자) 중국의 인권운동가, 류샤오보 씨가 끝내 사망했군요.
기자) 네, 중국의 인권 운동가 류샤오보 씨가 목요일(13일) 향년 61세를 일기로 사망했습니다. 그동안 류샤오보 씨의 신병을 관장해왔던 중국 랴오닝 성 선양시 사법당국은 이날 인터넷 웹사이트에 올린 공지문에서 간략하게 류샤오보 씨가 장기 기능이 급속히 저하돼 13일 오후 사망했다고 발표했습니다. 류샤오보 씨는 최근 간암 말기 진단을 받고 가석방된 후 치료를 받아왔는데요. 이로써 1938년 나치 독일 치하에서 복역 중 사망한 독일의 반전 평화운동가, 카를 폰 오시에츠키 이후 복역 중 사망한 첫 번째 노벨 평화상 수상자가 됐습니다.
진행자) 류샤오보 씨는 중국의 유명한 반체제 인사로 국제 사회에서도 잘 알려진 인물이죠?
기자) 맞습니다. 류샤오보 씨는 1989년 중국에서 있었던 대규모 민주화 운동, 톈안먼 민주화 운동을 주도한 인물 중 한 명인데요. 텐안먼 민주화 운동이 일어났을 당시 류샤오보 씨는 미국 컬럼비아대학에 방문학자로 체류하고 있었습니다. 류 씨는 중국에서 민주화 운동이 일어났다는 소식에 급히 귀국해 그때부터 민주화 운동에 앞장섰는데요. 하지만 중국의 민주화를 요구하는 이른바 `08헌장' 작성을 도운 혐의로 체포됐고요. 2009년에 ‘국가정권 전복선동죄’로 11년형을 선고 받고 수감 생활을 했습니다. 류샤오보 씨가 국제적 관심을 받게 된 건 이듬해 중국의 민주화와 인권향상을 위한 비폭력 투쟁을 이끈 공로로 노벨평화상을 받으면서였는데요. 국제 사회는 꾸준히 류샤오보 씨의 석방을 요구했지만 중국 정부는 이를 일축해왔습니다.
진행자) 중국 정부가 류샤오보 씨를 가석방한 건 류 씨가 간암 말기 진단을 받은 후였는데요. 국제사회는 그간 류 씨가 외국에 나가서 치료받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라고 중국 측에 촉구해왔죠?
기자) 맞습니다. 류샤오보 씨 역시 해외에서 치료받기를 희망했고, 독일과 미국 등 그를 받아들이겠다는 나라들도 있었는데요. 하지만 이달 초, 중국 의료진은 류샤오보 씨가 치료를 위해 해외 여행을 할 수 있을 만큼 건강하지 못하다고 반대했습니다. 이 때문에 미국과 독일 의사들이 직접 중국을 방문해 류샤오보 씨의 건강 상태를 살피고, 치료는 가능하지만 응급 상황이기 때문에 한시라도 빨리 이송해야 한다고 밝히기도 했는데요. 하지만 중국 정부는 이런 요구에 대해 내정간섭이라며 거듭 일축했습니다.
진행자) 류샤오보 씨의 사망 소식에 국제 사회도 함께 애도하고 있다고요.
기자) 그렇습니다. 렉스 틸러슨 미 국무장관은 류샤오보 씨의 사망 후 발표한 성명을 통해 류샤오보 씨는 중국의 자유와 평등, 법치를 위해 투쟁하면서 인류 정신을 구현한 인물이라고 애도했습니다. 틸러슨 국무장관은 또 류샤오보 씨의 부인인 류 씨의 가택 연금을 해제하고 류 씨의 뜻대로 중국을 떠날 수 있도록 허용할 것을 중국 정부에 촉구했습니다. 낸시 팰로시 미 하원 민주당 원내 대표도 류샤오보 씨의 사망을 애도하는 한편 중국 정부가 류 씨에게 적절한 치료도 제공하지 않고 해외 치료로 허용하지 않았다고 지적했습니다. '휴먼라이츠워치' 등 국제 인권 단체들도 일제히 인권운동계의 크나큰 손실이라며 애도하고 있고요. 또 중국 정부의 조치도 비판하고 있습니다. 노르웨이 노벨상 위원회는 중국 정부가 류샤오보 씨의 사망에 중대한 책임이 있다며 비난했습니다.
진행자) 국제사회의 이 같은 반응에 중국 정부는 어떤 입장을 내놨습니까?
기자) 중국 정부는 서구의 비판에 강한 불만을 표시했습니다. 겅솽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오늘(14일) 정례 브리핑에서 “우리는 법에 따라 일을 처리한다"면서, 류샤오보 처치에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고 밝히고 서방 측의 반응에 “강력한 불만과 결연한 반대를 표한다”고 말했습니다. 겅 대변인은 이어 "중국 법률을 위반한 사람에게 노벨 평화상을 수여하는 것은 원래 취지에 맞지 않는다"며 노벨상의 의미를 폄하하기도 했습니다.
民主化는 中國의 敵이 아닙니다
中華民國이나 中華人民共和國(一个中國)은 民有、民治、民享之民主政府(人民政府)입니다
民主化 運動도 愛國의 路이며 民主化 勢力도 愛國者입니다
中國發展은 經濟發展(經濟 先進國)도 重要하지만 政治發展(政治 先進國)도 重要합니다
中國 分裂主義者(中國의 敵)는 全體主義(1人 長期執權이나 國家社會主義 指導者理論) 勢力이나 小數民族 獨立國(小數民族 獨立 武裝勢力) 理論입니다
人民政府에서 民主化 勢力을 敵으로 規定한다면 人民政府가 崩壞될 수 밖에 없습니다
中國 民主活動家 劉曉波 先生도 中國政府의 愛國者입니다
두 분의 커플 로맨스(couple's romance)가 노동 수용소, 감옥 및 가택 연금이었습니다
중국의 '어머니의 날'
母亲是慈爱的,母亲也是坚强的。十五年来,丁子霖长期受公安监视,连上街都被人跟踪。
어머니는 자애롭고, 어머니는 강하다. 15년간, 정자림은 장기간 공안의 감시를 받았으며, 길에서까지 미행을 당했다.
今年3月底,67岁的丁子霖、张先玲和黄金平被当局拘留,在中国乃至世界引起强烈震动,在舆论和外界压力下,三人最终获释。
금년 3월 말, 67세의 정자림, 장선령과 황금평은 당국에 의해 구류되었다. 이것은 중국 더 나아가 세계에 강렬한 반향을 일으켰고, 여론과 외부 압력하에 3사람은 결국 석방된다.
丁子霖曾表示,「天安门母亲」希望「用爱来治愈恨」,但是这必须建立在正义的基础之上。
정자림은 "천안문어머니"가 "사랑으로 한을 치유하다"를 희망지만, 이것은 반드시 정의를 기반으로 세워져야 한다는 것을 표명하였다.
最近她在接受美国希望之声电台采访时说:「我的儿子是为中国的未来而死的;我也只有为中国的未来而活著。我希望在我们这块灾难仍频的国土上不再有杀戮,不再有无辜的黎民百姓横尸街头。这就是我为什么要包好自己的伤口,擦乾泪痕,一家一家地寻访受难者及其亲属,要把寻访过程中一桩桩、一件件沾满了血和泪的事实公诸于世的原因。」
최근 그녀는 미국 "희망의 소리" 방송국의 취재시 이렇게 말하였다.
"내 아들은 중국의 미래를 위해 죽었습니다. 나는 단지 중국의 미래를 위해 살아가고 있습니다. 재난이 속출하는 이 땅에 더 이상의 살육이 일어나지 않기를, 더 이상의 무고한 서민들의 시체가 거리에 뒤덮이지 않기를 바랍니다. 이것은 왜 제가 스스로의 상처를 품고, 눈물을 닦으며, 한 가정씩 피해자와 그 가족들을 방문하고, 방문과정 중 피와 눈물로 적셔진 이 사건을 세상에 공개하는지의 이유입니다.
十几年来「天安门母亲」的爱和勇敢赢得了全世界正义人士的尊敬和支持,她们曾获诺贝尔和平奖提名。
십여년간 "천안문어미니"의 사랑과 용기는 전세계 정의 옹호자들의 존경과 지지를 얻었으며, 노벨평화상에 지명되기도 한다.
著名作家刘晓波在「受难母亲的泪与爱」中这样评价,「天安门母亲们都是平凡的女人,但她们十几年来的坚持人道救助的行为,却显示出了爱的无私与博大、信的坚定与执著、殉难的激情与勇气、承担的责任和意志。在极为严酷的环境下,母亲们以爱的坚韧担当苦难,用爱的力量消弭苦难。」「天安门母亲,是公道,是正义,是信仰,是爱! 」
저명한 작가인 유효파는 "수난 속 어머니의 눈물과 사랑"에서 "천안문 어머니들은 모두 평범한 여성이지만, 십여년간의 인도주의적 구조 행위의 지속은 사랑의 무댓가성과 넓음, 믿음의 확고함과 고수, 희생의 격정과 용기, 감당한 책임과 의지를 나타냈다. 지극히 잔혹한 환경아래서 어머니들은 사랑의 강인함으로 고통을 감당하였고, 사랑의 힘으로 고통을 제거하였다" "천안문 어머니는 정도이고, 정의이고, 신앙이며, 사랑이다" 라고 평가하였다
"資本主義 反對 共産主義!! 民主主義 反對 全體主義(獨栽主義)!!
資本主義民主主義革命以后, 自由主義(自由權)和社會主義(社會權, 生存權) 共存(尊重)是自由社會.-自由社會[民主化 政府]-"
*資本主義 三代原則(經濟):私有財産, 利潤追求, 市場競爭原理 等等
*民主主義 三代原則(政治):民有、民治、民享之民主政府 等等
-民主政治要求 "人民(民主)本位"-
*極端的自由主義:自由放任(同性愛,痲藥服用, 無政府主義) 等等
*極端的社會主義:國家社會主義(國營企業,國營農場,軍國主義,洗腦指導者論) 等等
-中国政府爲軍政分離星期的左翼軍政[軍委]至軍政合倂星期的文民政府(人民政府、民間政府)[主席和内閣]要成爲權力變更, 才能以解放軍不是小党的國家和聯合国軍往前走地位和作用-
동아시아 지역 중국
중국은 한족, 만주족(동북3성), 몽골족(내몽골), 후이족(회족, 신강), 티베트족(티벳) 등 5개 큰 민족과 조선족 등 50개 이상 소수민족으로 건국한 연합국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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