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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레사 메이 차기 영국 총리 13일 취임 본문

Guide Ear&Bird's Eye/영국 BBC

테레사 메이 차기 영국 총리 13일 취임

CIA Bear 허관(許灌) 2016. 7. 12. 17:12

 

                                                               Theresa May will become the UK's second female prime minister

테레사 메이 영국 내무장관이 13일 영국 총리가 됩니다.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는 13일에 공식적으로 물러나겠다고 밝혔습니다.

캐머런 총리는 메이 차기 총리에 대해 “강인하고 능력이 있으며 앞으로 영국이 필요로 하는 지도력을 보여줄 것”이라고 11일 기자들에게 말했습니다.

메이는 일찌감치 총리후보군으로 꼽혔던 5선 중진 하원의원입니다. 2002년에는 보수당 최초의 당 의장에 임명됐고, 2010년 이후 최장수 내무장관으로 재임했습니다.

영국에서 여성 총리가 등장하는 것은 ‘철의 여인’ 마거릿 대처 총리이후 26년 만입니다.

 

 '제2의 대처' 테레사 메이는 누구?

영국의 테레사 메이 내무장관이 모레 새 총리로 취임하게 됐습니다.

마거릿 대처 전 총리 이후 26년 만에 영국의 두 번째 여성총리가 탄생하는 건데요.

1956년생으로, 올해 예순 살인 메이 장관은 옥스퍼드대학에서 지리학을 전공했습니다.

영국 중앙은행에서 컨설턴트로 일하다 1997년 하원의원에 당선돼 정계에 입문했고, 정치인의 무덤이라는 내무장관을 역대 최장 기간 재임했습니다.

1980년, 은행원인 필립 메이와 결혼해 36년째 결혼생활을 유지해 오고 있는데요.

슬하에 자녀는 없습니다.

경선 라이벌이었던 앤드리아 레드섬 에너지 차관이 "나에게는 아이들이 있고 이 아이들은 향후 영국이 처할 상황과 직접적으로 연관돼 있다"며 자녀가 있는 자신이 총리직에 더 적합하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가 비난 여론이 거세지자 사과하고 사퇴하기도 했죠.

메이의 정치 스타일은 강성입니다.

대표적인 예가 오사마 빈 라덴의 오른팔로 알려진 아부 카타다를 요르단으로 추방한 일인데요.

2001년 9.11 테러 이후 10여 년간 역대 내무장관들이 못했던 일을 2013년, 메이가 해낸 겁니다.

그래서 영국 언론들은 메이를 '철의 여인' 마거릿 대처와 비교하곤 하는데요.

차분히 상대를 설득하는 화법과 꼼꼼한 성격이 독일의 앙겔라 메르켈 총리를 닮았다는 시각도 있습니다.

미국 뉴욕타임스는 메이에 대해 "메르켈처럼 체계적으로 행동하는 사람"이라고 평가했고, 영국 언론들은 향후 EU와의 협상에서 메르켈을 상대할 사람은 메이뿐이라고 입을 모았는데요.

하지만 메이는 메르켈과 달리 패션에 신경을 많이 쓰고 독특한 패턴이나 디자인의 신발을 사랑하는 신발 애호가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종종 표범 무늬 구두를 신고 나타나기도 하는데요.

구두 애호가인 메이를 두고 주위에서는 수천 켤레의 구두를 가지고 있던 필리핀 독재자 마르코스의 부인이죠.

"이멜다보단 적다"고 우스갯소리를 했다고 합니다.

메이는 동료 정치인들에게 차갑다는 평을 많이 듣습니다.

사적인 대화를 잘 하지 않고, 감정을 드러내지 않으며 방송 출연도 즐기지 않습니다.

보수당 중진인 켄 클라크가 "지독하게 어려운 여자"라고 평할 정도입니다.

차갑고 강인하지만 요리책을 100권 이상 갖고 있는 반전 매력의 여성 정치인 메이.

그가 이끌어갈 브렉시트 이후의 영국이 세계 정세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지 주목됩니다.

 

 

*테리사 메리 메이 (Theresa Mary May, 결혼전 이름은 브레이저; Brasier, 1956년 10월 1일~)는 영국의 제57대 총리이다.

1997년부터 메이든헤드 지역구 서민원(하원) 의원이며, 2010년부터 영국 내무부 장관, 그리고 2016년 7월 11일부터 보수당 대표를 맡고 있다. 당내에선 원네이션 보수주의 계파로 분류되며 성향은 자유보수주의다. 메이 의원은 현지 시간으로 2016년 7월 13일, 엘리자베스 2세를 알현하고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의 뒤를 이어 총리에 취임하여, 마거릿 대처에 이은 영국 사상 두번째 여성 총리가 되었다.

서섹스 주 이스트본에서 태어난 메이는 옥스퍼드대학교 세인트휴스 칼리지에서 지리학을 전공했다. 1977년부터 1983년까지는 영국은행, 1985년부터 1997년까지는 영국 지불교환협회에서 일했고 (Association for Payment Clearing Services), 중간에 런던 머튼 구의회의 던스퍼드 지역구 구의원도 역임했다. 1992년과 1994년 두번에 걸쳐 영국 서민원 의원에 도전했다가 실패한 뒤, 마침내 1997년 총선에서 메이든헤드 지역구 의원으로 당선됐다. 노동당 집권 기간에는 윌리엄 헤이그, 레인 덩컨 스미스, 마이클 하워드, 데이비드 캐머런과 함께 예비내각에서 예비 서민원 원내대표와 예비 노동연금장관 등 주요 자리를 여럿 맡았다. 2002년부터 2003년까지는 보수당 의장도 맡았다.

2010년 총선 이후 연립 내각이 성립되자 메이는 내무장관과 여성평등차관에 임명됐다. 여성평등차관직은 2012년에 사임했다. 2015년 총선에서 보수당이 승리한 뒤 다시 내무장관으로 임명된 메이는 60년 전 제임스 추터 에드 장관 이래 최장 기간동안 자리를 맡은 내무장관이 되었다. 장관에 취임한 메이 의원은 경찰 개혁을 추진하고 마약 정책에 더 강경 노선을 취하며, 이민에는 제한을 두게 되었다.

2016년 6월 캐머런 총리가 급작스럽게 사임함에 따라 메이는 보수당 대표 후보로 나설 것을 선언했고 선두주자로 급속히 떠오르게 되었다. 7월 5일에 열린 보수당 의원 대상 1차 투표에서는 상당한 격차로 승리했고, 이틀 뒤에는 의원 199인의 표를 얻어 안드레아 리드솜과의 대결에서 보수당 의원들의 지지를 사로잡는 데 앞서나가게 되었다. 결국 리드솜 후보가 7월 11일 경선이 치뤄지자마자 후보 자리에서 물러나면서, 동시에 같은 날 메이는 자동으로 보수당 대표에 오르게 되었다.

어린 시절과 학창 시절

테리사 메이는 1956년 10월 1일 잉글랜드 서섹스 주 이스트본에서 어머니 제이디 메리 (결혼전 이름은 번스, 1928~1982)와 아버지 휴버트 브래지어 (1917~1981)의 외동딸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성공회 신부로, 옥스퍼드에서 몇킬로 떨어진 휘틀리 교구 목사를 맡았던 적이 있었다.

메이는 옥스퍼드셔의 주립 초급중학교에서 공부했고 잠깐 동안 가톨릭 학교에 머무르기도 했다. 맨 처음에는 옥스퍼드셔 히드롭 초등학교에 입학했다가, 세인즈 줄리아나 수녀원 부속 여자학교를 거쳐, 베그브로크에 있던 로마가톨릭 독립학교 (1984년 폐교)로 전학을 갔다. 13살이 되자 메이는 휘틀리에 있는 홀턴 파크 여자중학교로 자리를 잡았다. 그곳 학생으로 있던 도중 1971년에 학교가 폐교되고, 같은 자리에 휘틀리 파크 종합중학교가 새로 들어서면서 학적이 다시 바뀌었다. 이후 메이는 옥스퍼드 대학교에 입학해 세인트 휴스 칼리지에서 지리학을 전공, 1977년에 차석 BA 학위를 받고 졸업했다

초기 경력

메이는 1977년부터 1983년까지 영란은행에서 일하고, 1985년부터 1997년까지 영국 지불교환협회 국제사무과에서 금융 컨설턴트와 주임 고문으로 있었다. 이 기간 동안 메이의 양쪽 부모님이 모두 돌아가셨는데 아버지는 1981년 교통사고로, 어머니는 그 다음해 다발성 경화증으로 사망했다.

한편 메이는 1986년부터 1994년까지 런던 머튼 구의 구의원으로 재임하여, 구의회 교육부장 (1988~1990년), 의회 부대표 및 원내 대변인 (1992~1994년)을 맡았다. 이후 1992년 총선에서 노스웨스트더럼 지역구 후보로 출마하고 1994년 바킹 재보궐선거에도 나섰지만 두 번 모두 당선되는 데 실패핬다. 그러나 1997년 총선에 다시 한번 메이든헤드 지역구에 후보로 출마, 국회의원으로 당선됐다.

국회의원

의회에 입성한 메이는 교육학교장애인여성부 대변인 (1998~1999년) 자리에 오르면서, 윌리엄 헤이그 당시 보수당 대표가 이끈 야당 지도부의 일원이 되었다. 1999년부터는 예비 교육고용차관에 임명되면서 초선 의원으로선 처음으로 예비 내각에 참가하게 되었다. 2001년 총선 후 이언 덩컨 스미스 신임 보수당 대표는 메이를 교통장관직으로 자리이전하면서 예비 내각에 머물도록 했다.

2002년 7월 메이는 여성으로선 처음으로 보수당 의장에 내정됐다. 2002년 보수당 당대회 연설 도중 메이는 자신이 보기에 당이 바뀌어야만 하는 이유를 다음과 같이 역설했다. "여러분들도 국민들이 우리 당을 뭐라고 부르는지 아실 겁니다. 바로 추잡한 당 (Nasty Party)이죠." 2003년 11월 보수당 대표 및 야당 대표로 마이클 하워드가 당선된 후, 메이는 추밀원에 임명되어 예비 교통장관으로 내정됐다.

2004년 6월에는 예비 문화미디어스포츠장관으로 자리를 옮겼다. 2005년 12월 새로 선출된 데이비드 캐머런 대표는 예비 서민원 대표로 메이를 내정했다. 2009년 1월에는 예비 노동연금장관이 되었다.

2010년 5월 6일 치러진 총선에서 메이는 메이든헤드 지역구에서 이전보다 늘어난 16,769표, 득표율 60%로 국회의원에 다시 당선됐다. 이는 지난 2005년 총선 당시 자유민주당의 '파면전략' 우선 대상 중 한 명으로 포함되어, 의석에서 물러날 위기에 처했다가 일찍이 철회됐던 일에 따른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