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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직 의원 피살에 충격에 빠진 英.."브렉시트 찬반 캠페인 중단" 본문
일간 가디언은 "정치적 스펙트럼을 떠나 정치인들이 콕스 의원의 사망에 충격과 공포를 나타내고 있다"고 전하면서 영국 노동당의 새로 떠오른 별이었던 콕스 의원이 짧은 생을 마감했다고 보도했다.
AP통신은 "영국에서 정치인에 대한 폭력은 1990년대 북아일랜드 평화협정 이후 거의 없었기 때문에 정치권이 깊은 충격을 받았다"며 "콕스 의원은 25년 만에 처음으로 숨진 현역 의원이다"라고 전했다.
캐머런 영국 총리는 이날 EU 잔류를 호소하기 위한 지브롤터 방문을 취소하면서 브렉시트 캠페인도 중단하는 게 맞다고 말했다. 제러미 코빈 노동당 대표 역시 주말까지 모든 캠페인을 중단하겠다고 밝혔다.
콕스 의원의 사망으로 23일 브렉시트 투표를 앞둔 영국의 정치적 상황이 더 극한 대립으로 치달을지 유럽의 정치권도 상황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
EU 국가들 역시 극한 분열로 치닫는 영국의 사태를 우려했다.
프랑스와 독일 등 영국의 EU 탈퇴를 우려했던 EU 중심 국가들은 콕스 의원의 사망 소식을 극한 대립에서 빚어진 충격, 비극이라고 표현하며 실시간 메인 뉴스로 전했다.
프랑스 일간 르 몽드는 16일(현지시간) 콕스 의원 사망 소식을 인터넷판 메인 뉴스로 올리고 "콕스 의원의 죽음은 비극이다"라고 말한 캐머런 영국 총리의 말을 인용했다.
독일 일간 디 벨트지는 콕스 의원이 EU 잔류를 지지했으며 시리아 내전 종결과 IS에 대한 군사적 대응 등을 주장했다고 소개하면서 "조는 더 나은 세상을 꿈꿨다"라는 부제를 달았다.
디 벨트지는 "그녀의 사망 소식을 듣고 충격받았고 슬픔을 느낀다"는 보리스 존슨 전 런던시장의 말도 전했다. 존슨 전 런던시장은 영국 보수당 내에서 브렉시트 운동을 이끌고 있다.
피습 사망 英 여성의원은 인권에 헌신해온 활동가 출신
She was a self-proclaimed "proud Yorkshire lass" whose work for charity took her around the world and whose political success led her to Westminster.
16일(현지시간) 길거리에서 52세 남성에 의해 총격과 흉기로 피습당해 목숨을 잃은 조 콕스(41) 의원은 인권을 위해 애써온 활동가 출신이다.
제러미 코빈 노동당 대표는 콕스 의원의 사망을 애도하면서 "인권과 평화, 정의를 지켜온 훌륭한 여성"이라고 평가했다.
공장 노동자의 딸로 때어난 그녀는 케임브리지대학에서 정치사회학을 공부했다. 가족 중 유일한 대졸자였다.
그녀는 의원이 되기 전에 국제구호단체인 옥스팜(Oxfam)에서 10여년 넘게 일했다.
옥스팜의 정책부장을 지냈고, 미국 뉴욕에서 인도주의 캠페인을 이끌기도 했으며 벨기에 브뤼셀 소재 유럽사무소 책임자로도 일했다.
두 아이를 둔 엄마인 그녀는 또 여성 문제에 관련해 이름을 알렸고 전국 노동당 여성 네트워크의 의장을 맡기도 했다.
이후 그녀는 지난해 5월 총선에서 자신이 태어난 웨스트 요크셔의 한 선거구에서 노동당 후보로 출마해 당선되면서 하원에 입성했다.
하원의원이 된 콕스 의원은 수많은 민간인 희생과 난민을 쏟아내는 시리아 내전에 깊은 관심을 기울여왔다. '시리아를 위한 초당적 의원모임'을 이끌었다.
시리아 내전에 대한 해결책으로 인도주의적 접근을 강조하면서 영국의 시리아 공습 표결에는 기권했다.
아울러 콕스 의원은 브렉시트(Brexit·영국의 유럽연합 이탈) 국민투표를 앞두고 EU 잔류 캠페인을 벌여왔다. 대학을 졸업한 직후 하원의원의 보좌관으로 일하면서 열정적인 EU 잔류론자로서 잔류 캠페인 '유럽 내 영국'을 만드는 데 힘을 보태기도 했다
그녀는 지난해 6월 하원 첫 연설에서 자신 지역구의 인종적 다양성을 높이 평가하고 이민이 영국에 가져다주는 혜택을 강조했다.
그녀는 "우리 지역들은 이민에 의해 가치가 높아져 왔다. 아일랜드 기독교도, 인도 구자라트주의 무슬림들, 카슈미르 지방의 파키스탄 출신 이민자들이 있다"며 "우리가 다양성을 칭찬하는데 지역을 돌아다니면서 때때로 놀라운 건 우리가 매우 단합돼 있다는 것, 우리를 구분 짓는 것들보다 우리에게 공통으로 있는 게 더 많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그녀의 남편 브렌단 콕스는 이날 성명에서 "나와 조의 친구들, 가족들은 우리 삶의 모든 순간을 사랑하고 우리의 아이들을 돌보고 조를 살해한 증오에 맞서 싸워왔다"며 콕스 의원이 증오에 맞서 헌신한 삶을 살아왔음을 알렸다.
콕스 의원은 의정 활동을 위해 런던에서 지낼 땐 템스강의 보트에서 생활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2011년 머리에 총상을 입는 테러를 당한 적 있는 미국 민주당 가브리엘 기포드 하원의원은 이날 트위터에서 "조 콕스의 살해 소식은 정말 끔찍하다. 그녀는 젊고, 용기 있고, 부지런했다, 떠오르는 스타, 엄마, 부인이었다"며 애도했다.
한편 영국 의원이 테러를 당해 살해된 것은 26년 만이다.
1990년 보수당 이언 고 의원이 아일랜드공화군국(IRA)이 집앞에 둔 차량에 설치한 폭탄 테러로 목숨을 잃은 바 있다.
또 목숨을 잃지 않았지만 피습당한 가까운 사례로는 2003년 한 대학생이 이라크전쟁 지지에 격분해 노동당 스테픈 팀스 의원의 런던 사무실에서 그에게 흉기를 휘둘러 부상을 입힌 사건이 있다.
잔인하게 살해된 것으로 알려진 콕스 의원의 테러는 영국 정치권을 충격에 빠뜨렸다.
헬렌 조앤 콕스 (Helen Joanne Cox)[1], 간단히 조 콕스(Jo Cox), 결혼 전 이름은 리드비터(Leadbeater)[2] 1974년 6월 22일 ~ 2016년 6월 16일)는 영국의 노동당 소속 정치인이다. 2015년 총선에서 배틀리 스펜 선거구에 출마해 늘어난 과반득표로 의석을 지켰고, 2016년 6월 16일 사망할 때까지 13개월 동안 국회의원으로 재임했다.
배틀리에서 태어난 콕스는 1995년 케임브리지 대학교를 졸업하고, 정치계에서 어시스턴스로 지내다 국제 인도 자선단체 옥스팜에 가입했다. 그곳에서 콕스는 정책부장으로도 활동했다. 2015년 배틀리 스펜 지역구 의원이었던 노동당의 마이크 우드 의원이 총선에 나오지 않기로 결정하면서 후보로 임명되었고, 노동당 하원의원으로 당선됐다. 의원에 재직하면서 콕스는 시리아 내전 관련 현안을 다루는 운동가가 되어 초당적 의원모임인 '시리아의 친구들'을 설립해 대표에 올랐다. 콕스는 '시리아 난민을 위해서라면 지칠 줄 모르는 운동가'라고 소개되기도 했다.
2016년 6월 16일 콕스는 버스톨에서 지역구민들과 의원 면담을 진행하고 난 뒤, 총에 맞고 수차례 칼에 찔리는 공격을 당했다. 중태에 빠진 콕스는 사건이 발생한지 한시간도 되지 않아 사망했다. 사건 발생 직후 범죄와 연루된 52세 남성이 체포됐다.
어린 시절과 학업
콕스는 1974년 6월 22일 웨스트요크셔 주 배틀리에서 태러나 헤크먼드와이크에서 자랐다. 어머니는 학교 주임이었고 아버지는 치약과 헤어스프레이를 만드는 공장에서 일했다 콕스는 그래머 학교인 헤크먼드와이크 중학교에 진학하고, 이후 펨브로크 대학교에서 사회정치학을 전공하다 1995년에 졸업했다. 가족 중에 대학에 간 사람은 콕스가 처음이었다. 대학 생활 도중 런던 정치경제대학교에서도 공부하기도 했다
초창기 활동
졸업하자마자 콕스는 존 월리 노동당 의원의 자문관으로 일하다가, 이후 브뤼셀로 가서 글레니스 키녹 당시 유럽 의회 의원에게 자문해주는 일을 2년간 맡았다. 그와 더불어 콕스는 2001년부터 2009년까지 국제 구호단체인 옥스팜과 옥스팜 인터네셔널에서 활동했다. 처음에는 브뤼셀에서 옥스팜이 벌이는 무역개혁 운동의 대표로 있다가 2005년 영국지부인 옥스팜 GB의 정책변호부장이 되었고, 뒤이어 2007년에는 뉴욕에서 옥스팜 인터네셔널의 인도주의 운동 대표를 맡았다. 옥스팜 활동 시절 다르푸르와 아프가니스탄의 빈곤 지역을 접했던 경험은 정치 경력에도 영향을 끼쳤다.
이후 콕스의 자선활동은 임신분만 중 사망 예방 운동에 앞장서던 사라 브라운 여사 (고든 브라운 전 총리의 부인)에게 자문해주는 역할까지 이어졌다. 콕스는 노동 여성 네트워크의 전국대표와 반노예 자선단체인 프리덤 펀드의 수석고문을 맡기도 했다
사망
2016년 6월 23일 열리는 영국의 유럽 연합 탈퇴 찬반 국민 투표에서 잔류를 지지하고 있었으며, 6월 16일, 웨스트요크셔 리즈 근교에서 국민 투표를 둘러싼 집회 준비 중 총격되어 사망했다.
목격자에 따르면, 3회 발사가 있으며 그 중 1발이 머리 근처에 쏘이고 그 후 여러 차례 찔렸다고 증언하고 있다. 습격자는 "Britain first"를 외치며 범행을 했다고 한다. 이 "Britain first" 슬로건은 영국의 유럽 연합 탈퇴를 지지하는 극우정당의 이름과 같다. 이 정당은 본건에 대해 관여를 부정했다
*유로터널[영국의 포크스톤과 프랑스의 칼레 사이 도버해협]
도버 해협 해저 터널이라고도 부른다. 유로 터널은 1987~88년에 도버 해협 양쪽에서 굴착 공사를 시작해 1991년에 완성되었으며, 공식적으로는 1994년 5월에 개통되었다.
이 터널을 건설하려는 계획은 나폴레옹 시대에까지 거슬러 올라가지만, 그 계획이 구체적으로 나타난 것은 영국의 저명한 철도·운하 토목 기술자인 존 호크쇼(1811~91)가 사우스이스턴철도회사와 로스차일드 가문의 지원을 받아 1865년에 해저지질조사에 착수한 이후였다.
그 조사 결과 해저터널의 굴착이 기술적으로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그 결과 영국과 프랑스 양국은 1882년 해저에 굴착갱을 시설하는 작업에 착수했다. 그러나 그 이듬해 영국의회가 국내 보안을 이유로 굴착작업에 대한 반대입장을 의결해 공사가 중단되었다. 그후 1916, 1924, 1930년 이 계획이 재검토되었으나 실제 착공에까지 이르지는 못하다가1966년에야 영국과 프랑스 정부가 터널 굴착작업 재개에 합의했다.
터널은 총연장 55㎞(해저구간은 약 37㎞)로 3개의 터널로 이루어져 있다. 이 중 2개는 고속 열차가 다니는 곳이고 나머지 하나는 안전과 서비스를 위한 곳이다. 터널은 영국 측의 채링턴(포크스턴 부근)과 프랑스 측의 코크뉴(칼레 부근)를 연결하고 있으며 화물수송과 여객용으로 사용되고 있다.
현재 이 터널에서 시속 300㎞의 고속열차인 유로 스타(Euro-star)가 런던-파리, 런던- 브뤼셀 구간을 운행하고 있다.
유로스타(Eurostar)
런던에서 파리 또는 브뤼셀까지 시속 300km로 해저 터널을 통과하여, 도심에서 도심까지 운행하는 고속 기차다.
유로스타(Eurostar)
Capitalism Anti Communism! Democracy Anti Totalitarianism(Dictatorship)!
After the capitalist democracy revolution, liberalism(Civil liberties) and Socialist(social rights, Right to life) coexist (respect) is a free society. -Freedom Society[Democratization government]"
*Three principles of capitalism:Private property, pursuit of profit, Principle of free market competition Etc
*Three principles of Democracy: government of the people, by the people, for the people Etc
-EU[European Union] with 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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