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朴槿恵政権悩ませる現金授受疑惑 歴代秘書室長の名がズラリ… “暴露”の前与党議員は自殺 본문

-미국 언론-/일본 언론

朴槿恵政権悩ませる現金授受疑惑 歴代秘書室長の名がズラリ… “暴露”の前与党議員は自殺

CIA Bear 허관(許灌) 2015. 4. 12. 11:56

 

韓国の李明博(イ・ミョンバク)政権時代の「資源外交」にからむ事業の横領疑惑で、自殺した与党セヌリ党前議員で会社会長の成完鍾(ソン・ワンジョン)氏が、死の直前に、朴槿恵(パク・クネ)大統領の側近らに巨額の金を渡していたと“暴露”したことが、韓国社会を揺るがせている。成氏証言の真偽など真相解明はこれからだが、朴政権の元前現の秘書室長3人の名前が出てきたことで、クリーンさを売り物にしてきた朴政権のイメージは大きく傷つきそうだ。(ソウル 名村隆寛)

 李前大統領の資源外交を側近として支えた成氏は、検察から逮捕令状が出されていた9日、ソウル市内の山中で自殺する直前に、韓国紙、京郷新聞の電話インタビューに応じていた。

 成氏はインタビューで、「2006年9月、金淇春(キム・ギチュン)前秘書室長がVIP(朴大統領を指すとみられている)に付き添ってドイツを訪問する際、10万ドル(約1200万円)を両替して渡した。07年には許泰烈(ホ・テヨル)元秘書室長に7億ウォン(約7700万円)を3、4回に分けて渡した」と語った。京郷新聞はこのインタビューの音声を電子版で公開した。

韓国メディアの報道によれば、自殺した成氏のポケットから見つかったメモには、金、許両氏を含む計8人の名前と、そのうち6人に渡したと推測される金額が記入されていた。

 許泰烈氏は朴政権発足時の大統領秘書室長で、金淇春氏は2代目の秘書室長。これに、金額は記されていないものの、現秘書室長の李丙●(=王へんに其)氏や李完九首相らの名もメモには記されていた。

 京郷新聞は11日、新たに成氏へのインタビュー内容を続報し、8人のうち、朴大統領が大統領選に出馬した12年に、セヌリ党の洪文鐘(ホン・ムンジョン)議員(当時、朴槿恵陣営の中央選挙対策委組織総括本部長)へ選挙資金として2億ウォン(約2200万円)が渡されたと報じた。

 真相はともかく、名前の上がった人物のほとんどが、朴大統領の最側近らだ。13年の政権発足時からの3人の大統領秘書室長の名前が出ていることに、世論は騒然となっている。

 つい先日まで熱を帯びていた歴史認識をめぐる対日非難報道は、すっかり影を潜めた格好だ。

現金授受疑惑に名前の挙がった有力者はいずれも疑惑を強く否定しているが、朴槿恵政権は発足当初から「道徳性」、すなわちクリーンさを前面に押し出してきた。

 複数の韓国メディアは、成氏の証言やメモが事実だと立証された場合の政権に与えるダメージに言及している。

 一時、30%を割った朴大統領の支持率は、最近40%にまで回復している。こうした中、前政権の疑惑を追及する過程で、現政権に関わる思いもよらない疑惑が暴露され、政治的な攻防が始まるのは時間の問題だ。

 朴大統領を選出した12年の大統領選挙で、当選に重責を果たした洪文鐘(ホン・ムンジョン)議員らの名前が挙げられる中、野党側からはすでに「大統領選の資金問題とのからみ」を追及する動きもある。

 韓国では16日に、旅客船「セウォル号」の沈没から1年を迎える。同日に関連行事を済ませ、朴大統領は南米4カ国歴訪に出発する。

 検察当局は、「毅然(きぜん)とした捜査に基づく真相解明」を進める姿勢を示しており、韓国メディアもその立場を支持している。

 

한국의 이명박 정권 시대의 '자원 외교'에 얽힌 사업의 횡령 혐의로 자살 한 여당 새누리 당 전 의원에 회사 회장의 成完鍾 (성완종) 씨가 죽음 직전 에 박근혜 대통령의 측근들에게 거액의 돈을 전달했다고 "폭로"한 것이 한국 사회를 흔들 수있다. 성 씨 증언의 진위 등 진상 규명은 앞으로이지만, 박정권의 원래 전에 현 비서실 장 3 명의 이름이 나온 것으로, 클린을 팔아왔다 박정권의 이미지는 크게 손상 보인다.

이 전 대통령의 자원 외교를 측근으로 지원 한 성 씨는 검찰에서 체포 영장이 나와 있었다 9 일 서울 시내 산에서 자살하기 직전에 한국 신문, 경향 신문의 전화 인터뷰에 응하고 했다.

성 씨는 인터뷰에서 "2006 년 9 월, 금 淇春 (김 기츈) 전 비서실 장이 VIP (박 대통령을 가리킨다 고 볼 수있다)에 시중 독일을 방문 할 때 10 만 달러 (약 1200 만엔 )를 환전 해 전달했다 .07 년에는 許泰烈 (허 태열) 전 비서실 장에 7 억원 (약 7700 만엔)을 3-4 회에 나누어 전달했다 "고 말했다. 경향 신문이 인터뷰의 음성을 인터넷 판에 공개했다.

한국 언론의 보도에 따르면 자살 한 성 씨의 주머니에서 발견 된 메모에는 김, 허 두사람을 포함 해 총 8 명의 이름과 그 중 6 명에 전달했다고 추측되는 금액이 기입되어 있었다.

허태열(許泰烈) 씨는 박근혜 정권 출범 당시 대통령 비서실 장으로 김기춘 씨는 2 대째의 비서실장. 이에 금액은 적혀 있지 않지만, 현 비서실 장의 이병기씨와 이완구 총리들의 이름도 메모에는 적혀 있었다.

경향 신문은 11 일 새로운 성 씨의 인터뷰 내용을 속보하여 8 명 중 박 대통령이 대선에 출마 한 2012년 새누리 당의 洪文鐘 (홍문종) 의원 (당시 박 박근혜 진영의 중앙 선거 대책위원회 조직 총괄 본부장)에 선거 자금으로 2 억원 (약 2200 만엔)가 전달됐다고 보도했다.

진상은 차치하고, 이름이 오른 인물 대부분이 박 대통령의 최측근들이다. 2013년 정권 출범시에서 3 명의 대통령 비서실의 이름이 나와있는 것을 여론은 어수선하고있다.

엊그제까지 열띤 있던 역사 인식을 둘러싼 대일 비난 보도는 완전히 자취를 감춘 모습이다.

현금 수수 의혹에 이름이 거론 된 유력 인사들은 모두 혐의를 강하게 부인하고 있지만, 박근혜 정권은 출범 초기부터 '도덕성', 즉 클린을 내세워왔다.

여러 한국 언론은 성 씨의 증언이나 메모가 사실이라고 입증 된 경우 정권에 주는 데 이미지를 언급​​하고 있다.

한때 30 %를 나눈 박 대통령의 지지율은 최근 40 %까지 회복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지난 정권의 의혹을 추궁하는 과정에서 현 정권에 관한 생각지도 못한 의혹이 폭로 된 정치적 공방이 시작되는 것은 시간 문제이다.

박 대통령을 선출 한 12 년의 대통령 선거에서 당선에 중책을 완수 한 洪文鐘 (홍문종) 의원 등의 이름을들 수 가운데 야당 측에서는 이미 "대선 자금 문제와 맞물려 '을 추구 하는 움직임도있다.

한국에서는 4월 16일 여객선 세월호의 침몰에서 1 년을 맞는다. 같은 날 관련 행사를 마친 박 대통령은 남미 4개국 순방에 출발한다.

검찰은 "의연 으로 한 조사에 근거 진상 규명 '을 진행 자세를 나타내고 있어 한국 미디어도 그 입장을 지지하고 있다.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은 누구인가

초등학교 중퇴 후 자수성가 2조원 대 그룹 총수
2003년 자유민주연합 김종필 총재 특보로 정치 입문
2012년 국회의원 당선 후 선거법 위반으로 당선 무효
이명박 정부 시절 자원개발사업 비리 의혹 검찰 수사
“결백하다” 억울함 토로 유서 남긴 채 9일 숨진 채 발견

성완종(64) 전 경남기업 회장이 9일 사망했다.
성 전 회장은 이날 오전 서울 강남구 청담동 자택에 유서를 남겨 두고 자취를 감춘 뒤 북한산 형제봉 인근 산 속에서 목을 매 숨져 있는 채 발견됐다.
성 전 회장은 이명박 정부 시절 해외 자원개발사업에 참여 과정에서 250억여원의 회삿돈을 횡령하고 800억원대의 사기 대출을 받은 혐의 등으로 사전구속영장이 청구돼 이날 영장실질심사를 앞두고 있었다.
성 전 회장은 11곳의 계열사를 거느린 2조원 규모의 대아그룹 회장으로 건설업계에선 유명 인물이었으나, 대중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정치권에 입문한 2000년대 초반.
초등학교 중퇴인 성 전 회장이 기업인으로 성공한 과정은 그의 자서전 ‘새벽빛’을 통해 소개돼 있다.
충남 서산 해미가 고향인 성 전 회장은 초등학교때 아버지가 어머니를 내친 뒤 새어머니를 맞으면서 동생들과 함께 내쫓기는 신세가 됐다.
돈을 벌겠다며 서울로 올라간 어머니를 찾아 어린 동생들과 함께 무작정 상경, 가정부 일을 하던 어머니를 만난 뒤 낮에는 약국 심부름을 하고 밤에는 교회 부설학교에서 공부하며 억척 인생을 꾸려갔다.
남의 집 헛간에서 잠을 자고, 신문 배달과 휴지 수집은 물론 막노동까지 하며 생계를 이어가면서도 돈을 모으기 시작했다.
1974년, 성 전 회장은 100만원을 들고 고향으로 내려와 화물영업소를 차린 뒤 트럭중개업을 시작했다.
성 전 회장이 건설업계에 뛰어든 것은 1977년, 서산토건에 입사하면서다.
성실히 일하는 성 전 회장을 눈여겨보던 당시 최순기 사장이 성 전 회장에게 회사 인수를 권유, 서산토건을 매입했다.
회사명을 대아건설로 바꾼 뒤 플랜트 산업 설비 분야에서 토목주택까지 사업영역을 확장, 거침없이 성장하며 1993년 코스닥에 상장하기도 했다.
1996년에는 서울시 가락동 농수산물시장의 중?도매법인 ‘중앙청과’와, 온양관광호텔을 인수하며 사업 영역을 유통과 레저 분야까지 넓혀 갔다.
그러나 외환금융 위기에 부딪혀 경영난을 겪으면서 1999년 워크아웃을 신청, 3년만인 2002년 워크아웃에서 벗어나며 재기를 채근했다.
2003년 중견건설사로 한 때 대우그룹 계열사이기도 했던 경남기업 지분 51%를 확보하면서 제2의 전성기를 맞는다.
이후 계열사 11개를 거느린 자산 2조원 규모의 경남기업의 총수에 오르며 성공한 기업인으로 평가돼 왔다.
기업인으로 성공한 성 전 회장은 정치인의 꿈을 꾸기 시작했다.
2000년 고향인 서산·태안 16대 총선에서 자민련 공천을 신청했으나 탈락한 뒤 2004년 17대 총선에서 김종필 자민련 총재 특보단장을 맡아 비례대표에 도전했으나 역시 실패했다.
이후 2008년 18대 총선에선 한나라당 공천을 희망했으나 공천을 받지 못하면서 정치와는 인연이 없는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그는 2012년 19대 총선에서 자유선진당 소속으로 출마, 4수 끝에 마침내 금배지를 다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그토록 꿈꿔왔던 정치인으로서 성공을 가로막은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그가 장학사업을 위해 설립한 서산장학재단이었다.
재단을 통해 기부활동을 한 것이 공직선거법에 저촉돼 2013년 대법원에서 당선무효형이 확정되는 바람에 1년여만에 정치인의 꿈을 접어야 했다.
기업인으로 돌아온 뒤 경남기업에 복귀했으나 전반적인 경기 침체와 가중된 적자를 감당하지 못하면서 심각한 어려움을 겪는 와중에 이명박 정부 시절 해외 자원개발사업 참여 과정에서 정부로부터 받은 성공불융자금을 횡령, 수백억원대의 비자금을 조성한 혐의 등으로 검찰의 수사를 받았으며, 9일 영장실질심사를 앞두고 있었다.
그는 전날인 8일 기자회견을 자청, “나는 ‘MB맨’(이명박 전 대통령 측근)이 아니라 MB정부의 피해자”라며 “자원개발 융자금을 횡령한 적이 없다. 유독 경남기업만 특혜를 받았다는 것은 사실과 다르다”고 항변했다.
이명박 정부 인수위원회 자문위원으로 참여한 인연 때문에 ‘MB맨’으로 불리는 데 대한 해명과 그로 인해 표적수사 대상이 됐다는 억울함을 토로한 셈이다.
그리곤 하루만인 9일 오전 “억울하다”는 내용의 유서를 남긴 뒤 자택을 떠나 산 속에서 싸늘한 시신으로 발견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