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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영 전남지사 대선 출마선언 "정직한 농부대통령 되겠다" 본문

-미국 언론-/한국 언론

박준영 전남지사 대선 출마선언 "정직한 농부대통령 되겠다"

CIA Bear 허관(許灌) 2012. 7. 16. 00:10

 

박준영 전남지사가 15일 `탐욕과 분노를 넘어, 훈훈한 공동체 대한민국'을 슬로건으로 내걸고 연말 대선 출마를 선언했다.

박 지사는 이날 오후 영등포 민주당사에서 출정식을 갖고 "민주당 지킴이 박준영이 당의 정체성을 계승하고 정권교체를 이루는 선봉이 되겠다"며 대선후보 경쟁에 나섰다.

이로써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레이스는 문재인 손학규 정세균 상임고문, 김두관 전 경남지사, 김영환 조경태 의원을 포함해 7파전으로 치러질 것으로 보인다.

김대중 정부에서 공보수석 겸 청와대 대변인을 지낸 뒤 민주당의 전통적 텃밭인 호남에서 3선 내리 도백의 자리를 맡고 있는 박 지사의 대권 도전이 경선레이스의 풍향에 어떤 영향을 불러일으킬지 주목된다.

그는 출마선언문에서 ▲민족문제의 평화적 해결 ▲농업에서의 새로운 가치와 성장 기회확보 ▲복지 차원의 일자리 창출 ▲분권을 통한 균형발전 ▲교육의 국가책임 강화 ▲보편적 복지 ▲친환경 생태주의적 정부 운영과 국토개발 ▲경제부문의 공공성 강화 등 8대 대선공약을 제시했다.

박 지사는 "6ㆍ15와 10ㆍ4 남북공동선언의 정신을 계승하고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하겠다"며 한미 양국의 평양대표부 설치 및 북한의 서울ㆍ워싱턴 대표부 설치를 제안했다.

그러면서 "이런 과정을 통해 남과 북은 국가연합형식의 통일의 첫 단계를 밟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특히 "농업에서 새로운 가치와 성장의 기회를 찾겠다"며 "자유무역협정(FTA)에 대응해 친환경 중농정책을 적극 추진하고 23%인 식량자급률을 50%까지 올리겠다"고 다짐했다.

아울러 농업ㆍ농업인ㆍ농촌을 함께 살리는 3농(農)정책을 추진하고 북한에 대해 식량지원뿐 아니라 유기농 생태농업기술과 인프라 지원을 약속했다.

박 지사는 "농부의 아들로 흙과 함께 자랐다"며 "정직을 생명으로 한 농부처럼 `정직한 농부 대통령'이 되겠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그는 "분권이야말로 균형발전의 핵심"이라며 실질적인 지방자치의 확대를 위해 재정ㆍ경찰ㆍ교육 자치 확대를 강조했다.

교육 정책으로는 ▲고등학교까지 무상 교육 ▲소득 50% 이하 대학생 장학금 지급 ▲연리 1%의 학자금 융자확대와 연간 3천만원 소득이 있을 때부터 학자금 상환제 시행 ▲전 대학의 기숙사 시설 확충 의무화 ▲교사 임금 인상 등을 제시했다.

아울러 깨끗한 정부, 깨끗한 공기, 깨끗한 물, 깨끗한 흙으로 대표되는 `4깨 정부'를 구현하겠다고 다짐했다.

 

k0279@yna.co.kr

 

해직기자 출신 박준영 전남지사의 선택

밀양 박씨이면서 전남 영암 출신 그리고 해직언론인 출신

15일 대선출마를 선언하며 새로운 도전에 나선 박준영(65.민주통합당) 전남지사는 'DJ맨' 중 한 명으로 언행이 신중한 원칙주의자로 정평이 나있다.

전남 영암의 가난한 농촌가정에서 태어나 경제적인 사정으로 고교진학을 미루기까지 했으나 서울 인창고에 진학, 성균관대 정치학과를 고학으로 마쳤다.

1972년 중앙일보에 입사해 기자로 활동하던 중 1980년 7월 신군부의 `언론계 숙정'으로 해직됐다가 복직된 경험도 갖고 있다.

박 지사는 `국민의 정부' 출범과 함께 공직의 길에 들어선다.

국내언론 비서관(1급)으로 청와대에 입성했고 1999년 5.24개각 때 공보수석으로 발탁돼 2년 4개월여동안 김대중 전 대통령을 보좌한 뒤 2001년 9월 국정홍보처장으로 옮겼다.

하지만 '윤태식 로비의혹' 사건에 얽혀 곤욕을 치렀고 2002년 1월 건강상의 이유로 물러났다가 2004년 17대 총선에서 민주당 선대본부장을 맡아 정계에 들어왔다.

그해 박태영 전 전남지사의 자살 이후 우여곡절 끝에 6.5 보선에 출마, 열린우리당 후보를 물리치고 전남지사에 당선됐다.

당시 후보난을 겪던 민주당의 전략공천에 의해 전남지사 후보가 된 그는 지지율이 상대후보의 4분의1에도 미치지 못했지만 이를 극복하고 승리를 거둬 전국적인 주목을 받았다.

그후 재선ㆍ삼선에 비교적 수월하게 성공해 10년 가까이 전남 도정을 충실히 이끌었다.

해남영암기업도시 사업인 'J프로젝트' 추진과 F1대회 개최 과정에서 부정적인 여론이 없지 않았다.

하지만 친환경 농어업과 신재생에너지, 미래산업, 기업유치, 해양관광 활성화 등 전남이 가진 자원을 활용해 '잘사는 전남 만들기'에 앞장섰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는 `참배나무에서 참배가 나고 돌배나무에서 돌배가 난다'는 도산 안창호 선생의 격언을 좌우명으로 삼을 정도로 원칙주의자이며 노력파이다.

지사로서 힘든 스케줄을 소화하면서도 독서와 인터넷 서핑, 기사 검색 등으로 매일 새벽 1∼2시가 돼야 잠자리에 드는 것도 알려져 있다.

'지역 텃밭'에서만 선거를 치른 탓에 험한 선거판을 경험하지 못했다는 평가와 당내에서 정치적 입지가 취약하다는 일부 시각은 박 지사가 경선 과정에서 풀어야 할 숙제이다.

부인 최수복 여사와 슬하에 3녀를 두고 있다.

▲전남 영암 ▲성균관대 정치학과 ▲미 오하이오 주립대학 신문학과 석사 ▲성균관대 정치학 박사 ▲중앙일보 편집국 부국장 ▲김대중 대통령 공보수석 겸 대변인 ▲광주민주화운동 유공자 ▲국정홍보처장 ▲전남도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