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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환 북한 인권운동가 중국서 50일째 구금 본문

자유화 민주화운동 세력-탈북민 자료

김영환 북한 인권운동가 중국서 50일째 구금

CIA Bear 허관(許灌) 2012. 5. 15. 18:15

한국의 북한인권 운동가인 김영환 ‘북한민주화네트워크’ 연구위원이 중국 당국에 의해 체포돼 강제구금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북한인권 운동가 김영환 석방대책위원회’는 14일 발표한 보도자료에서, 지난 3월23일 출국한 김 연구위원이 다른 한국인 3명과 함께 3월29일에 중국 다롄에서 랴오닝성 국가안전청에 체포돼 50여일째 강제구금돼 있다고 밝혔습니다.

대책위원회는 선양 주재 한국 총영사관이 김 연구위원과 다른 3명이 중국의 국가안보를 위협한 혐의로 구금돼 있는 것으로 확인했다며, 총영사가 4월26일 김 연구위원을 접견했지만 나머지 3명과의 만남은 허용되지 않았다고 덧붙였습니다.

선양 한국총영사관은 김 연구위원을 위해 변호인를 선임했고, 현재 변호인이 접견 신청을 해 놓은 상태라고, 대책위원회는 밝혔습니다.

대책위원회는 중국 정부가 김 연구위원을 비롯해 강제 구금한 한국인들을 석방할 것을 촉구했습니다.

김 연구위원은 1980년대 한국 대학가에 주체사상을 처음 제시한 인물로, 1991년 북한을 방문해 김일성 주석을 만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북한 방문 뒤 주체사상에 회의를 갖게 됐으며, 1990년대 중반부터 ‘뉴 라이트’ 쪽으로 전향해 북한 민주화 운동을 벌이고 있습니다.

 

 

北인권운동 김영환(80년대 주사파 대부), 中서 47일째 구금

"탈북자 돕던 중 잡혀"… 일부 "다른 배경 있다"
동료 3명도 함께 억류… 선양 한국 총영사관 지난달 26일 접견

1980년대 대학가에 주체사상을 전파했으나 1990년대 전향해 북한 민주화 운동가로 활동 중인 김영환(48·사진)씨가 중국 랴오닝(遼寧)성에서 동료 3명과 함께 공안에 체포돼 47일째 구금 중인 것으로 14일 밝혀졌다.

'북한인권운동가 김영환 석방 대책위원회'에 따르면 3월 23일 중국으로 출국한 김씨는 한국인 동료 K씨 등 3명과 함께 같은 달 29일 랴오닝성 다롄(大連)에서 공안에 체포됐다.

선양(瀋陽) 주재 한국 총영사관은 "랴오닝성 국가안전청이 김씨 등을 '국가안전위해죄'로 구금하고 있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이들은 이 지역에서 탈북자들을 한국에 보내기 위한 활동을 하다가 붙잡힌 것으로 알려졌지만, 국가안전위해죄로 구금됐다는 점 등으로 미뤄볼 때 김씨의 체포 배경에 다른 이유가 있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서울의 외교소식통은 "중국이 김씨의 구금사유로 밝힌 국가안전위해죄는 탈북자와 관련된 문제보다 훨씬 더 포괄적이고 큰 범죄"라며 "앞으로 김씨가 정식 재판을 받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북한 정권의 체제 전환을 주장해 온 김씨가 중국에서 체포되면서 이번 사태는 한국과 중국, 북한 간의 외교 문제로 비화될 가능성도 있다.

일각에서는 김씨가 체포된 배경에는 접경 지역에서의 김씨 활동을 주시하고 있던 북한 정보당국이 있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북한 공안이 탈북자와 연계된 김씨의 활동을 적극적으로 중국 당국에 알린 후 철저한 처벌을 요청했다는 것이다. 선양 총영사관은 지난달 26일에야 구금된 김씨를 접견했다. 하지만 다른 한국인들은 랴오닝성의 국가안전청이 접견을 불허해서 영사접견이 이뤄지지 못했다고 김영환 석방대책위가 밝혔다.

서울대 법대 82학번인 김씨는 1980년대 중반 ‘수령론’ ‘품성론’ 등의 내용이 담긴 ‘강철서신’을 통해 국내에 주체사상을 본격적으로 들여온 인물이다. 이후 주체사상은 대학가와 노동계에 급속히 퍼져 NL(민족해방·범주체사상)계가 학생 운동의 주류로 성장하는 토대를 제공했고, 김씨는 국내 ‘주사파 이론의 대부’로 불리기도 했다.

김씨는 국내에서 노동당에 입당한 뒤 1991년 서해안에서 북한이 보낸 잠수정을 타고 밀입북해 김일성 주석을 만나기도 했다. 그는 북한에서 김 주석을 만난 후부터 주체사상에 회의를 느끼게 됐다고 훗날 밝혔다. 김씨는 1992년 서울대 법대 동기인 하영옥씨와 함께 민족민주혁명당(민혁당)을 만들었고, 진보당을 장악한 ‘경기동부연합’의 실세로 알려진 이석기 당선자도 민혁당에 참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 당선자는 “민혁당과는 전혀 관계가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씨는 전향을 거부했다.

김씨는 이후 ‘사상 전향문’을 썼으며 1990년대 중반부터는 북한의 주민 인권과 민주주의 도입을 강조하는 북한인권 운동가로 활동해왔다. 1998년에는 계간지 ‘시대정신’ 창간에 참여, ‘김정일 정권 타도를 위한 투쟁’의 필요성을 주장해왔다. 김씨는 현재 북한 관련 연구 및 저술 활동을 하며 북한민주화네트워크 연구위원과 시대정신의 편집위원을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