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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S, “중국 다롄항, 북한 불법 무기 수출의 주요 환적지” 본문

Guide Ear&Bird's Eye/북한정부 마약, 밀수, 인신매매 자료

CRS, “중국 다롄항, 북한 불법 무기 수출의 주요 환적지”

CIA bear 허관(許灌) 2010. 9. 19. 20:29

중국의 항구가 북한의 불법 무기 수출의 기항지와 환적지로 이용되고 있다고 최근 발표된 의회조사국의 보고서가 지적했습니다.

미 의회 산하 의회조사국은 지난달 발표된 “중국, 대량살상무기와 미사일 확산: 정책 이슈 (China and Proliferation of Weapons of Mass Destruction and Missiles: Policy Issues)”라는 제목의 보고서에서 이 같이 지적했습니다.

보고서는 먼저 수출용 스커드 미사일을 싣고 예멘으로 향하던 북한 선박 ‘소산호’가 지난 2002년 12월 스페인과 미국 해군에 검거됐던 사건을 지적했습니다. 당시 스페인 국방부 장관은 검거 전 소산호의 마지막 기항지 (port of call)가 중국이었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보고서는 또 한국 언론의 보도를 인용해 지난 2002년 2월과 11월 이란 선박이 북한에 입항해 미사일과 로켓 연료를 인수하기 이전에 중국 톈진항에 정박해 미사일 부품들을 선적했었다고 지적했습니다.

의회 조사국은 그 가운데서도 북한의 남포항에서 가까운 중국의 다롄항이 북한 불법 무기 수출의 주요 환적지라고 지적했습니다.

지난해 8월 중동의 아랍에미리트연합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채택한 대북 제재 결의안 1874호의 이행의 일환으로 북한산 무기를 싣고 이란으로 향하는 화물선 ‘ANL 오스트레일리아’를 검거했습니다.  보고서는 당시 문제의 화물이 북한 남포항에서 선적돼 중국 다롄항을 거쳐 이란의 반다르 압바스로 향하는 것으로 알려졌다고 지적했습니다.

또 지난해 12월에는 북한산 무기들을 수송하는 것으로 의심되는 IL-76  운송기가 태국 방콕에 재주유를 위해 착륙했다가 태국 경찰에 검거됐습니다.  당시 운송기에 실려 있던 북한산 무기들은 중국 다롄에서 선적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 밖에도 중국의 영공 역시 북한의 불법 무기 수출의 통로로 이용되고 있다고 의회조사국은 밝혔습니다.

보고서는 지난 2002년 11월 24일자 ‘뉴욕 타임즈’ 신문을 인용해, 2002년 7월 파키스탄이 중국 영공을 통과해 C-130 수송기로 북한에서 미사일 부품들을 적재한 사실을 지적했습니다. 보고서는 당시 거래가 북한과 파키스탄간의 군사 무역의 형태로 이뤄진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또 중국은 지난 2003년 4월부터 7월까지 이란에 영공 통과권을 부여해, 이 기간 중 이란의 I-76 화물 운송기가 북한을 6번 비행해 쿠르즈 미사일이 담긴 것으로 의심되는 나무 상자들을  선적했었다고 보고서는 지적했습니다.

보고서는 이에 대해 2003년 7월 14일자 타임즈 아시아판 기사를 인용해 당시 부시 행정부는 이란에 영공 통과권을 허용한 중국에 대해 외교적으로 항의했었다고 밝혔습니다.

 

 * 다롄[大連], 다이렌이라고도 함.

중국 랴오닝 성[遼寧省] 랴오둥[遼東] 반도에 있는 항구도시
주급(州級) 시의 행정중심지이다. 랴오둥 반도의 남쪽 절반을 이루는 5개의 현(縣)과 해군항인 뤼순[旅順:옛 이름은 포트아서]이 포함된다. 뤼다라는 이름은 뤼순과 다롄을 합한 것이다.
1898년 랴오둥 반도를 조차했을 때, 러시아는 포트아서에 있던 중국 해군기지를 확장하여 태평양 함대를 위한 부동항으로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칭니와[靑泥圭]라는 작은 어촌을 선택하여 달니라는 이름의 주요 상업항으로 발전시켰고, 달니에서 하얼빈[哈爾濱:헤이룽장 성]까지 철도를 놓아 중국 동부철도와 연결시켰다. 그들은 널찍한 서구식 시가지를 설계했고 항구를 준설했으며, 부두와 선창 및 방파제를 건설했다. 1904년에 러일전쟁이 일어났을 때에는 건설계획의 첫 단계만 겨우 마무리되어 있었다. 전쟁이 끝난 뒤에 맺어진 포츠머스 조약(1905)에 따라 랴오둥 반도의 지배권은 일본으로 넘어갔다. 일본인들은 항구의 이름을 달니에서 다이렌으로 바꾸고 러시아인들의 건설계획을 마무리하여, 다이렌을 아름다운 근대 도시와 유용한 근대 항구로 만들었다. 큰 배가 들어올 수 있도록 항구를 준설했고, 새로운 방파제와 부두를 건설했다. 가까운 간징쯔[甘井子]에는 별도의 석탄항을 건설했고, 건선거(乾船渠) 설비와 창고도 건설했다. 1931년에 이르자 다이렌은 상하이 다음으로 교역량이 많은 중국의 주요관문이 되었다.
일본의 지배를 받는 동안 다이렌은 주요한 산업중심지가 되었다. 1901년에 남만주철도가 완공된 뒤 철도기지가 되었고, 남만주철도뿐 아니라 조선 및 중국 북부지방의 철도망에 기관차와 열차 및 철도장비를 공급하기 위해 거대한 공장이 건설되자 다이렌의 기계조립 산업은 더욱 발달했다. 1930년대에는 조선업도 중요해졌고, 1941년에 이르자 이 항구는 8,000t급 배를 생산하게 되었다. 1920년대에 일본의 오노다회사는 다이렌에 만주에서 가장 큰 시멘트 공장을 세웠다. 일본의 지배를 받는 동안 화학공업도 발전했다. 1935년에는 간징쯔에 거대한 화학공장이 건설되어 비료와 폭약에 쓰이는 황산뿐 아니라 암모니아 황산염도 생산했다. 1936년에는 다이렌에 소다회와 가성소다를 만드는 공장이 세워졌다. 이 도시는 또한 면직물공업의 중심지가 되었지만, 같은 랴오닝 성의 도시인 진저우[錦州]에 면직물공장이 들어서고 1920년대에 일본 면직물산업이 불황에 빠지는 바람에 다이렌의 면직물산업은 타격을 입었다. 제2차 세계대전 직후 소련에 점령된 이 도시는 만주에 있는 다른 도시들에 비해 피해가 적었고, 약탈도 그리 심하게 당하지 않았다. 그후 다롄은 항구이자 산업중심지로서 활기차게 발전했다. 전쟁 전부터 발달했던 조선업, 철도장비와 기관차 및 열차, 시멘트, 화학제품 등의 제조업은 더욱 발전했고, 공작기계를 생산하는 현지의 공업도 발달했다. 제2차 세계대전말에는 철강공장도 세워졌지만 1945년 이후에는 생산량이 크게 줄어들었다. 그러나 1955~57년에는 철강산업이 확대되었다.
1957년에는 이 도시의 산업생산량이 1943년의 5배에 이르러 산업의 다양성을 볼 수 있다. 중공업 이외에도 식료품가공·면직물·정유·비료·제지를 비롯한 경공업도 광범위하게 발달했다. 뤼다는 중요한 어항이자 수심이 깊은 석유 항구로 북쪽의 톄링[鐵嶺] 및 안다[安達]와 이어져 있다. 뤼다에는 공과대학과 해운대학이 있다. 인구 1,723,302(19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