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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국무부로부터 올해의 용기 있는 국제 여성상을 수상한 탈북자 이애란 본문

자유화 민주화운동 세력-탈북민 자료

미국 국무부로부터 올해의 용기 있는 국제 여성상을 수상한 탈북자 이애란

CIA bear 허관(許灌) 2010. 3. 14. 02:53

 

 U.S. Secretary of State Hillary Clinton and First Lady Michelle Obama stand with Honoree Dr. Lee Ae-ran of the Republic of Korea at the 2010 International Women of Courage Awards at the U.S. Department of State, Washington, D.C. March 10, 2010. [미국 국무부로부터 올해의 용기 있는 국제 여성상을 수상한 한국 내 탈북자 출신 첫 여성박사  이애란 경인여대 식품영양조리학과 교수(가운데)와 나란히 선 미 국무장관 힐러리 클린턴(왼쪽), 미 영부인 미셀 오바마(오른쪽)]

 

 

                                          

 

3월 8일은 유엔이 지정한 국제기념일 세계여성의 날(International Women's Day) 이다. 세계 여성의 날을 맞아 한국을 비롯해서 세계 각국에서도 여성의 지위향상을 위한 갖가지 행사가 펼쳐졌다.

특히 미국에서는 미국 국무부가 수여하는 `용기있는 국제 여성상'(International Women of Courage)수상식이 3월 10일 오후 3시 미국 국무부 청사에서 열렸다. 한국에서는 탈북여성 1호 박사인 이애란 씨가 탈북자로서 북한의 인권 개선을 위해 노력하고 한국 내 탈북자들의 정착을 도운 공로로 수상했다.

'용기있는 국제 여성상'은 국무부가 매년 세계 여성의 날(3월8일)을 전후해 여성 인권, 정의 실현에 공로가 큰 전 세계의 여성 지도자들을 뽑아 수상하는 상이다.

올해 이 상은 이애란 박사를 포함해 여성 인신매매, 여성 인권차별과 싸우거나 여성 지위 향상을 위해 힘쓴 아프가니스탄, 키프로스, 도미니카 공화국, 이란, 케냐, 스리랑카, 시리아, 짐바브웨 등에서 10명의 여성이 수상했으며, 가정폭력 추방운동을 벌이는 에이본 국제홍보대사인 유명 영화배우 리즈 위더스푼도 참석, 축사했다

세계의 한국인 오늘은 미국 국무부가 수여하는 ‘용기있는 국제 여성상’을 받은 탈북자 출신 이애란 박사의 ‘인생 역정의 삶 그 현장’을 찾아가 본다.

이날 미국 국무부가 수여하는 ‘용기있는 국제 여성상’ 수상식에는 퍼스트레이디 미셸 오바마와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이 이 박사의 수상을 축하했으며 많은 여성 지도자들도 참가했다.

미셸 오바마는 축사에서 ‘북한 정치범 수용소에서 어린 시절 8년을 보냈고, 역경을 뚫고 북한을 탈출한 뒤에는 쉼 없이 탈북자들을 위한 활동을 해 왔고 탈북자 최초로 국회의원으로 출마했다’고 이 박사를 소개했다. 이 박사가 어린 시절 평양에 살았지만, 조부모가 월남한 지주 출신이라는 이유로 감시를 받다가 11살 때 온 가족이 양강도 삼수군 오지로 추방돼 살았던 점도 언급했다.


클린턴 장관은 ‘한국사회에서 탈북자들의 삶과 교육수준을 증진시키는 선봉역할을 했고, 여성의 권리를 신장시키고 북한의 끔찍한 인권상황을 알리는데 공헌했다’며 수상자 선정 배경을 설명했다.

이애란 씨는 '용기 있는 국제 여성상'을 수상한 데 대해 자유아시아방송과의 회견에서 자신은 ‘북한 주민과 탈북자를 대표해서 왔다’며 벅찬 감격으로 소감을 밝혔다.

이애란: 저에게 이런 행운의 시간이 왔다는 것이 놀랍고, 제가 참으로 북한에 살 때 너무 불행한 일에 습관이 돼 있어서 행운은 남의 이야기인 줄 알았는데 제가 이런 국제적인 여성상을 받게 됐다는 것이 잘 믿어지지 않습니다. 앞으로 더 많은 일을 해 달라는 격려 때문에 이 상을 받게 된 것 같습니다.

이애란 씨는 1964년생이다. 그녀의 북한생활을 어떠했을까? 북한에서 출신성분이 좋지 않은 가정이다. 할아버지 할머니가 6.25때 월남한 기독교 집안이기 때문이다.

이 사실이 알려지면서 이 씨는 11살 때 양강도 삼수군 관동리에 있는 혁명화 구역으로 온 가족이 추방당하게 된다.

어린 소녀 이애란 씨가 본 혁명화 구역은 바로 ‘지옥’이라고 표현한다. 어린 그녀가 혁명화 구역에서 벗어나기 위해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은 공부였다. 그런 어려운 가운데 죽기 살기로 공부했다고 한다. 그리고 8년 만에 그곳을 나와 혜산으로 이주하게 된다. 그녀는 혁명화 구역은 벗어났지만 원하는 의과대학에는 갈 수 없었고 어머니의 영향으로 신의주 경공업대학에서 발효공학을 공부한다. 그리고 1990년에는 평양경공업대학에서 석 박사 과정에 지원했지만, 어머니의 권유로 포기하게 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녀는 북한에서 이루지 못한 박사 학위를 이화여자대학교에서 꿈을 성취했다.

그녀는 이날 상을 받으면서 지난날을 회고한다.

이애란: 저는 우아한 여성상을 받고 싶어요. 너무 감사드리고요. 꿈인지 생시인지 잘 분간이 안 가고요. 나한테도 행운의 시간이 있다는 게 이해가 안되어요. 출신 성분이 나빠서 11살 때 산간 오지에 강제로 추방을 당했었고요. 늘 열심히 노력을 했지만, 출신 성분이 나쁘기 때문에 많은 기회를 얻을 수 없었어요. 너무 많은 불행에 습관이 되다 보니까 행복이라는 것은 나랑 인연이 없는 거라고 생각을 했었어요. 그래서 우리가 탈북해서 베트남까지 왔을 때 저희 동생이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어요. 누나 우리가 빨리 죽으려고 하는 거 아냐! 너무 갑작스러운 행운 같은 것이 내 것이 아니기 때문에 남의 것 같고 이것은 무언가 불길한 것을 예고하는 걸로 생각했었거든요. 그랬는데 제가 남쪽에 와서 생활하면서 여러 가지 행운의 시간을 갖게 되니까 가끔은 이것은 꿈이 아니냐 그런 생각이 들고요.

이애란 씨는 어떻게 해서 북한을 탈출하게 됐을까 1996년 결혼하자마자 죽은 줄 알았던 할머니와 미국의 친척들과 연락이 닿았다고 한다. 미국 가족이 보내 주는 달러로 안정되게 살 수 있었는데, 1997년 그녀의 인생에 또 한 번 회오리가 몰아치게 된다. 할머니가 그녀를 만나기 위해 중국으로 찾아온 것이다. 이 씨는 할머니를 만나기 위해 중국으로 건너갔고 중국에서 만난 할머니가 미국의 한국계 소설가가 북한을 배경으로 쓴 소설을 보여줬는데, 어찌 된 영문인지 아버지 이름이 실명으로 등장한 것이다. 이 책에 등장하는 남자의 딸이 이애란이다. 만일 당국이 알면 혁명화 구역으로 끌려가겠다는 공포감에 도저히 북한에 남아 있을 수 없어 압록강을 넘게 된다. 그리고 사선을 넘어 도착한 베트남 대사관, 그곳에서 본 한국 신문이 지금의 그녀를 만들 것이다. ‘안찬일 씨가 탈북자 최초로 건국대학교에서 박사가 됐다는 기사를 보게 된다.

이애란: 베트남에 갔을 때는 사실 가서 잘 살겠다는 생각은 없었고요. 그때 가족이 북한에서 못 떠난 줄 있었거든요. 그래서 그 가족 걱정 때문에 남쪽으로 가지 않을까 참 많이 생각했어요. 내가 얼마나 행복하겠다고 거기까지 가랴 그래서 그냥 가능하면 거기서 멈췄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많이 했고 당시에 잡지에 안찬일 박사님 이야기가 나왔어요. 한국에 78년도에 남쪽으로 오셔서 그때 97년도인데 박사 학위를 받으시더라고요. 야 부럽더라고요. 그렇지만, 제가 그걸 할 수 있다는 생각은 못해 봤고요.

탈북해서 오늘 상 받기까지 얼마의 시간이 걸렸느냐고 물어봤다. 그녀는 13년 걸렸다고 한다. 그녀가 탈북인으로서 박사 대학교수 등 여러 가지 호칭이 많이 따르는데 그러기까지 탈북여성으로서의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물어봤다.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이애란: 저는 요. 어느 만찬에 갔을 때 생각해 봤는데요. 제가 어떤 거대한 뜻이 있었거나 위대한 꿈을 가졌던 것은 전혀 아니었어요. 그런데 지금으로부터 8년 전에 기도회에 갔다가 (종교적인 이야기를 해서 미안하지만) 하나님께서 저에게 그런 이야기를 하신 적이 있었어요. 제가 기도를 하는데 하나님은 저보다 훨씬 긍휼하신 분이니까 북한 사람들이 이렇게 불쌍하게 사는 거 마음 아프시지 않나! 나같이 평범한 인간도 마음이 아픈데, 당신이 보시기에 그 사람들 얼마나 불쌍해 보이겠느냐고! 그런데 왜 이렇게 침묵하시냐고! 당신이 정말 살아 계신 것 맞느냐고! 이렇게 제가 기도를 한 적이 있었어요. 그랬는데 그때 제가 받은 메시지가 뭐 였느냐면은 준비가 됐느냐는 말씀을 주셨거든요. 그러고 제가 생각해보니까 준비가 안 되어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저는 이렇게 뭔가 해야 되는구나 하는 생각들을 하고 있었지만 제가 할 수 있는 역할이 별로 없더라고요. 근데 끊임없이 이런 기회들이 주어졌었어요. (할 수밖에 없는 상황들이) 그러잖아요. 저는 그냥 너무 똑똑하지 않고 앞을 모르기 때문에 어떤 일이 닥치면 그 일을 할 뿐이에요. ---웃음 참 수동적인데 그런 일들을 많이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었는데 열심히 했어요. 그런데 그 일들이 이렇게 되어서 상을 받게 된 것 같아요. 그래서 하나님께 감사드리고요.

이애란 박사가 오늘이 있기까지 어려운 일들이 많지 않았을까를 물어봤다. 그는 남보다 덜 자고 성실함이 오늘을 있게 했다고 전해준다.

이애란
: 다 열심히 살지요. 다 열심히 사는데요. 저도 이제 늦깍이로 30대 중반에 남쪽에 와서 참으로 다른 것도 많고 따라 배워야 할 것도 많고 정말 그런 형편이잖아요. 처음에는 눈이 두 개 뿐인 게 속상하고 귀가 두 개 뿐인 게 너무 안타깝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가진 것 중에는 잠을 줄이는 것밖에는 없으니까, 시간밖에는 없잖아요. 제가 돈이 있습니까 아는 것이 있습니까 한 두 시간 씩도 자고 너무 피곤하면 한 몇시간씩도 자고 그러다 보니까 늘 잠이 모자라요. 어떤 때 운전하다 졸아서 뒤에서 빵 빵 할 때도 있고, 시간이 제일 없었던 것 같고요. 늘 또 시간이 없다 보니까 아이한테 제대로 잘 해주지 못해서 늘 미안하고요.

이 박사는 탈북여성으로서 국제무대까지 진출하게 됐다. 탈북여성으로서 어머니로서 역할을 물어봤다.

이애란: 제가 생각하기에는 가정의 뿌리는 어머니라는 생각이 들어요. 어머니가 건강하고 어머니가 바로 서면 가정이 바로 서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거든요. 그래서 정말 어렵지만, 우리 아이들에게 더 좋은 세상 더 좋은 나라 더 좋은 환경을 물려 주기 위해서는 탈북여성들의 역할이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어렵지요. 쉽지는 않아요. 저도 살아보니까 쉽지는 않아요. 탈북할 때보다 더 어려운 측면도 있어요. 탈북할 때는 그냥 사선의 고비만 넘으면 되는데 이거는 넘기면 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수렁 같은 곳을 걸어가야되는 많은 인내가 필요한 그런 과정들이 있거든요. 그럴 때 정말 탈북하던 때를 (수만 번의 탈북을 계속 해야 되지 않느냐!)그래서 그걸 극복하고 어쩌든 우리가 일어서야지 우리 아이들이 설 수가 있잖아요. 그래 어머니는 강하지 않아요. 난 아이를 위해서 뭐든지 할 수 있다. 난 우리 아이를 위해서 할 수 있다. 이런 생각들을 하고 용기를 내서 같이 열심히 좋은 나라 만들었으면 좋겠어요.

이애란 박사는 이번 수상을 계기로 세계가 앞으로 북한에 대해 더 많은 관심을 갖고, 북한의 인권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피력했다.

이애란
: 제가 남쪽에 와서 가끔은 참 미안한 생각이 들어요. 북한주민들에게요. 나만 잘살아도 되는 건지, 나만 행복해도 되는 건지, 너무너무 미안하거든요. 저희가 잘 생활을 못해서 통일이 늦어지는 것은 아닌지 우리가 제대로 역할을 못해서 북한 사람의 고통이 계속 지속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이런 생각이 많이 들거든요. 그래서 저희가 좀 더 열심히 할 테니까 북한에 계시는 분들이 아무리 어려운 상황이더라도 포기하지 마시고 열심히 살아 주셨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언젠가 여러분에게도 기회가 올 거예요. 오면 저희가 그동안 쌓았던 경험들 지식 가지고 여러분과 같이 힘을 합쳐서 정말 북한땅에 남쪽이 세계 선진국이지 않습니까 이번에 동계 올림픽에서도 얼마나 잘했어요. 북한에도 충분히 그러한 재능있는 사람들이 많거든요. 우리가 능력이 있어요. 그래서 그 사회를 바꾸고 우리 엄마들의 힘으로 아이들에게 정말 좋은 나라를 물려 줘야 되지 않아요. 그래서 다 같이 노력할 수 있는 그런 시간까지 잘 버티고 잘 살아 줬으면 좋겠어요.

이애란 박사는 세계 어느 나라와 비교해도 북한처럼 인권을 유린하는 국가는 없다며 이 상을 계기로 국제사회가 북한의 인권상황에 관심을 갖고 이를 개선해 줄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애란
: 미국에 와서 세계 여러 나라 활동가들을 만나보니까 그 나라에도 물론 향상될 부분들이 많이 있더라고요. 하지만, 어느 나라 어느 나라 해도 가장 최악의 상황에 있는 나라는 역시 북한이고 북한 주민들이 받는 인권탄압이라든가 인권유린 인권말살은 정말 어디에도 비교할 수가 없더라고요. 그래서 이번 기회를 통해서 이러한 열악한 북한의 인권상황을 국제사회가 관심을 가지고 향상시켜줄 수 있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이애란 씨는 지난 97년에 탈북해 남한에 정착해 갖은 역경을 이겨내고 박사학위를 받은 데 이어 결국 국제적인 상을 받게 된 것은 북한여성들과 탈북여성들을 대신해 받게 됐다고 말하고 이 소식이 북한 주민들에게 전해지면 큰 희망과 용기를 불러 넣어줄 수 있을 것이라면서 모든 북한 주민이 함께 행운을 누리자고 했다.

이애란: 북한 주민들에게 얘기 드리고 싶은 것은 북한만 벗어나라 북한만 벗어나면 세계 어디에도 갈 수 있고 어떤 행운도 누릴 수 있고 그 어떤 훌륭한 일도 할 수 있다고 얘기 드리고 싶어요.

이애란 박사는 통일 한국의 음식을 세계 각국에 알리고 싶단다.

이애란: 북한 사람들을 위해서 탈북자들을 위해서 남북한의 통일을 위해서 많은 일을 하고 싶고요. 통일이 되면 제가 음식 선교 교회를 만들어서 세계 각국의 한국도 알리고 통일 한국도 알리면서 음식을 통해서 복음을 전하는 선교사가 되고 싶습니다.

세계의 한국인 오늘은 미국 국무부가 수여하는 ‘용기있는 국제 여성상’을 받은 탈북자 출신 이애란 박사의 ‘인생 역정의 삶 그 현장’을 함께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