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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주정상회의, 성공 평가속 과제도 남겨 본문
17~19일 카리브 지역의 작은 섬나라 트리니다드 토바고에서 열린 제5회 미주정상회의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 정부 출범 이후 전개될 미국-중남미 관계의 큰 줄기를 가늠할 수 있는 계기라는 점에서 국제사회의 관심을 모았다.
미국-중남미 관계는 조지 부시 전 대통령 정부를 거치면서 최악의 수준으로 꼬여 있는 상태다. 지난해 9월 이후 베네수엘라와 볼리비아가 미국과 외교관계를 중단했으며, 중남미 좌파정권 블록은 갈수록 세를 불리면서 미국에 대한 공세를 늦추지 않고 있다.
이런 환경 속에서 열린 이번 미주정상회의는 오바마 대통령의 외교력에 대한 시험대라는 의미도 있었다.
◇ 오바마 성공적 데뷔 평가 = 국제문제 전문가들은 일단 오바마 대통령에게 후한 점수를 주고 있다.
브라질 유력 일간 폴랴 데 상파울루는 19일 전문가들의 견해를 인용해 "오바마 대통령이 지난해 미국 대선에서 승리한 뒤 이번에는 남미.중미.카리브 지역도 승리를 거뒀다"면서 오바마가 중남미 무대에 성공적으로 데뷔했다고 보도했다.
신문은 오바마 대통령의 성공이 지난달 중순 루이스 이나시오 룰라 다 실바 브라질 대통령과의 워싱턴 정상회의와 쿠바에 대한 제재 완화 조치를 통해 이미 예고됐다고 전했다.
셀소 아모링 브라질 외무장관도 전날 "역대 미국 대통령 가운데 오바마 대통령처럼 중남미 지역을 존중한 인물은 없었다"며 '오바마 예찬론'을 펴면서 "오바마 대통령은 매우 솔직하고 우호적인 자세로 중남미 정상들을 만났으며, 미국과 중남미 간에는 앞으로 '독백'이 아닌 '대화'만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실제로 오바마 대통령은 쿠바에 대한 경제봉쇄 해제, 중남미에 대한 미국의 간섭 중단 등을 앞세운 중남미 정상들의 예봉을 차단하고 중남미 국가들이 미국에 대해 갖고 있는 거부감을 상당 부분 완화했다.
오바마 대통령을 향해 맹공을 퍼붓겠다던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도 뜻밖에 '짧고 점잖은' 내용으로 연설해 참석자들을 놀라게 했다.
이어 차베스 대통령이 미주기구(OAS) 베네수엘라 대표부의 로이 차데르톤 대표를 워싱턴 주재 새 대사로 임명하고, 미국 국무부가 베네수엘라 수도 카라카스 주재 대사 파견을 추진중이라고 밝히면서 미국-베네수엘라 외교관계가 정상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이에 따라 미국 정부의 정부 전복 음모 지원을 이유로 지난해 미국 대사를 추방했던 에보 모랄레스 볼리비아 대통령도 차베스 대통령과 마찬가지로 곧 대미 관계 정상화에 나설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와 함께 중남미 지역의 성장과 발전을 위해서는 미국의 존재가 여전히 중요하다는 사실을 인식시키면서 중남미에 대한 미국의 영향력 유지를 확인하는 성과를 거두었다는 평가도 받고 있다.
◇ 美-쿠바 정상화엔 상당한 시간 = 이번 미주정상회의에서 가장 많은 관심을 모았던 쿠바 문제에 대해서는 조심스럽기는 하지만 낙관론이 지배적이다.
차베스 대통령은 다음번 미주정상회의를 쿠바 수도 아바나에서 갖자고 제의했으며, 룰라 대통령은 차기 미주정상회의에 쿠바가 반드시 참석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쿠바에 대한 경제봉쇄 해제와 이를 통한 미국-쿠바 관계 정상화를 위해서는 앞으로도 상당한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오바마 대통령도 정상회의 폐막에 맞춰 가진 기자회견을 통해 미국-쿠바 관계 개선을 위해서는 미국 정부의 제재 완화에 상응해 쿠바 당국이 정치범 석방과 언론자유 등 민주주의 확대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는 단시일 안에 미국-쿠바 관계가 정상화되기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시사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쿠바 문제와 관련해서는 앞으로도 브라질의 역할에 관심이 모아질 것으로 보인다.
오바마 대통령이 미주정상회의를 앞두고 쿠바에 대한 제재 완화 조치를 취한데 이어 쿠바 당국과의 대화 의사를 밝히고, 라울 카스트로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이 "미국과 모든 사안을 놓고 대화할 수 있다"는 입장을 나타내는 과정에서 미국 및 쿠바와 브라질 간에 상당한 교감이 오간 것으로 전해졌다.
룰라 대통령이 미주정상회의에 앞서 오바마 대통령에게 쿠바를 포함해 중남미 문제를 전담할 특사 설치.운영을 제의한 것도 미국과의 관계 개선을 바라는 쿠바 당국의 뜻을 담은 것으로 전해졌다.
OAS 미국 대표부 관계자가 전날 차베스 대통령 등 좌파 정상들의 별다른 공세 없이 미주정상회의가 우호적인 분위기로 진행된데 대해 룰라 대통령과 브라질 외무부에 사의를 전달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이루어졌다.
◇ 금융지원 인색, 수출확대 필요 = 한편 오바마 대통령이 중남미와의 새로운 관계 구축 의지를 밝혔음에도 불구하고 경제 분야에서는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미주정상회의에서 중남미 국가들의 세계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지원을 약속했다. 그러나 미국 백악관 국가경제회의(NEC)로부터 흘러나온 내용은 1억9천600만달러 규모의 투자 계획뿐이었다.
브라질 일간 에스타도 데 상파울루에 따르면 NEC가 마련한 지원 계획은 소액 신용대출 1억달러, 카리브 지역 공공치안 3천만달러, 멕시코의 마약퇴치 활동을 위한 헬기 구입비 6천600만달러 등이다.
신문은 이에 대해 "중남미에 대한 금융지원 규모가 지난해 미국 의회를 통과한 은행구제금융 7천억달러의 0.028%에 불과하다"면서 오바마 대통령이 중남미와의 폭넓은 협력관계 구축 의사를 밝힌 것에 비교하면 형편없는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또 세계경제위기 이후 크게 위축된 미주개발은행(IDB)의 금융지원 활동을 대폭 확대하겠다는 입장도 밝혔으나 구체적인 재원 확충방안은 알려지지 않고 있다.
중남미 국가들의 미국에 대한 수출 확대도 절실하게 필요한 상황이다.
미국.캐나다과 함께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을 체결하고 있는 멕시코가 82.2%에 달하는데 이어 트리니다드 토바고가 57.7%, 베네수엘라가 48.8%, 에콰도르가 43.3%, 온두라스가 42.8%, 과테말라가 42.6%, 코스타리카가 42.5%, 도미니카공화국이 40.2%의 대미 수출 의존도를 기록하고 있다.
이밖에 자메이카 37.2%, 파나마 35.7%, 콜롬비아 35.4%, 니카라과 31.2%, 페루, 19.4%, 칠레 16%, 브라질 15.8%, 우루과이 11.2%, 볼리비아 8.6%, 아르헨티나 7.8% 등이다.
중남미 국가들은 세계경제위기 이후 미국 경기침체에 따른 대미 수출감소 해소대책을 요구하고 있으나 국내경기 부양에 급한 미국으로서는 이 같은 요구를 수용하기 어려운 형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