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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마니아 통치자 차우세스쿠의 시작과 끝 본문

유럽연합(EU)

루마니아 통치자 차우세스쿠의 시작과 끝

CIA bear 허관(許灌) 2009. 3. 18. 10:50

매년 차우세스쿠의 생일과 12월25일이면 부카레스트 외각에 있는 겐짜 시립묘지에 안치된 차우세스쿠의 묘지 앞에 차우세스쿠를 좋아했던 사람들이 모여들어서 추모 행사를 가지고 있다.

지금도 차우세세쿠를 잊지못하는 루마니아 사름들도 있다.그리고 당시 시절의 향수를 떠오르기도 한다고 한다.

일부에서는 독재자 차우세스쿠로 다른 한편에서는 그래도 차우세스쿠는 좋은 사람이었다는 이야기들도 있다

그 이유는 차우세스쿠 시절에는 집과 직장 그리고 음식을 배급받았는데 지금은 자유경쟁 시대로 자기가 직접 돈을 벌어야 살수있는 시대로 변했기 때문이라고 말들을 하고있다.

루마니아의 독재자로 알려진 차우세스쿠 전 루마니아 대통령은 소련의 스탈린의 절대권력 그리고 북한 김일성의 개인숭배라는 두가지 통치술로 루마니아를 다스렸던 권력자 였다.

차우세스쿠... 그는 1918년 1월26일 올트주 스코르니체쉬티에서 가난한 빈농의 세째 아들로 태어났으며 방이 두칸뿐인 집에서 10 명 이상의 가족들과 살면서 너무나도 여려웠던 자신의 삶과 환경이 사회주의자가 되는데 기여했다고 한다.

어린시절의 차우세스쿠는 아주 영리하고 적극적인 면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그러나 당시 유럽은 1 차세계 대전이후 극심함 경제혼란이 있어고 루마니아라고 예외 일수는 없을것이다.

가난과 굶주림...어느 누구도 좋아할리가 없을 것이다. 차우세스쿠 가정에게도 어려운 생활이 계속되자 차우세스쿠는 학교를 중퇴하고 자신의 꿈을 그리며 무작정 루마니아의 수도 부카레스트로 올라오게 된다.


부카레스트로 올라온 차우세스쿠는 구두수선 견습공으로 제화공장에서 일하게 되고 14 세때 공산당에 입당하였다고 한다.

그에 눈에는 잘사는 사람들이 눈의 가시처럼 보였을 것이며 이러한 생각때문에 과격한 행동으로 자주 감옥에 들어갔다고 한다.

[정확한 근거는 없지만 감옥에 자주 들락거리다가 그곳에서 공산당 지도자격인 교르게 데지를 만났으며 그로부터 공산주의 사상을 배웠다는 이야기도 있다]

하여튼 젊은 청소년기에 사회주의 운동에 앞장서면서 두드러진 모습을 보여주었다고 한다.

당시 왕정시대에 공산당은 불법단체였다. 하지만 차우세스쿠는 당시 최고의 불법 단체인 공산당에 입당하였으며 프라호바 / 올떼니쨔/부카레스트 지역의 서기로도 활동했다고 한다.

이렇게 어려운 환경에서 자란 차우세스쿠는 자수성가라고 표현해야 될정도로 빠른 성장을 보여주게 된다.

무도회에서 만난 엘에나라는 여자와 결혼하여 가정을 꾸리면서 그후 경제연구 아카데미를 졸업했으며 특별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여 육군중장 그리고 한 국가의 대통령까지 한것만 보아도 짐작하고 남을것이다.

니꼴라에 차우세스쿠... 그는 1930년대 후반 정부에서 대대적인 공산당 탄압이 시작되면서 반 파시스트 행위로 두번 체포되어서 감옥에서 1944년까지 옥고생활을 치루게 된다.

2 차세계대전 당시 독일의 힘을얻고 독일에 우호적인 안토네스쿠 정권을 타도하는데 당시 루마니아 왕과 손을 잡고서 힘이 열악하지만 잘 조직된 결과로 안토네스쿠 정권을 무너트리고 독일과 싸우게 된다.

전쟁이 마감되고 그동안 꼭두각시 노릇을했던 루마니아 왕가를 퇴위 시키고 공산당이 소련의 힘을 얻어서 루마니아 정권을 잡게된다.

이런과정에서 차우세스쿠는 1946년 대 민족회 의원과 1948년부터 1954년까지 농업부 차관 그리고 국방부 차관까지 오르게 된다.

2차대전후 루마니아는 공산당은 정권을 잡고 30 대의 젊은 나이의 차우세스쿠는 정상을 향하여 자신의 발을 빨리 움직이면서 경쟁상대들을 집요하게 누르고 이겨서 공산당 서열도 몇단계씩 오르게되고 결국 당시 공산당 당서기인 교오르게 데지의 오른팔로 우뚝서게 된다.

1965년 3월19일 루마니아  최고의 실권자 교오르게 데지가 급사했다는 소식을 전해듣게 된다.

[ 이 부분에서 정확한 근거는 없지만 당시 당서기장 교오르게 데지가 급사한것은 다음과 같은 이야기로 전하고 있다. 루마니아 정권을 잡은 교오르게 데지는 처음에는 소련의 힘을 얻어서 루마니아에 공산정부를 세웠다고 한다.

그러나 점차적으로 시간이 흐르면서 소련의 행사권에 대해서 자주 반대의사표시를 했다고 하며 이에 소련은 루마니아의 당서기장 교오르게 데지가 더이상 필요없다고 느끼고 소련으로 회의로 인해서 초청받아서 가게 되었는데 이때 교오르게 데지가 소련으로 가면서 자기는 돌아올수 없을수도 있다는 말을 남겼다고 하며 다음 정권 당 서기장으로 차우세스쿠를 지목했다고 한다 ]

결국 차우세스쿠는 1965년3월22일 루마니아 당 서시장으로 선출되게 된다. 그리고 7월 노동당을 공산당으로 바꾸고 같은해 8월 루마니아 인민공화국에서 루마니아 사회주의 공화국으로 국가명을 바꾸고 소련이 제시한 헌법부분을 삭제하고 신헌법을 세우게 된다.

차우세스쿠는 47의 젊은 나이로 루마니아 최고의 자리인 당서기장 자리에 등륵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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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후 그는 뛰어난 외교 수완을 발휘하여 리처드 닉슨 미국 대통령의 루마니아 방문을 성사시키는 등 활발한 활동을 펼친다. 1971년까지 차우세스쿠는 자유로운 방식으로 루마니아를 통치하여 인기를 누렸다고 한다.

[ 차우세스쿠 공산주의 시대당시 육군 대령까지 군에 몸담았던 2 사람을 만난적이 있다. 두 사람의 말을 인용하면 차우세스쿠는 초장기에는 국가 운영과 정치를 잘했다고 한다. 그리고 국민들로 부터 존경을 받았는데 하면서 그당시의 시절을 생각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 중 한명은 당시 대위시절 북한병원에 군의관으로 파견되어 일을 한적도 있다고 하면서 김치맛이 지금도 그립다면서 나에게 김치가 있으면 갔다 달라고 부탁을 한적이 있다 ]

많은 루마니아 사람들로부터 들은 이야기는 초창기 차우세스쿠는 국민을 위한 인물이었다고들 한다.

그리고 국가 통치자로 일하면서 세계를 누비면서 많은국가들과 협력을 맺었고 수많은 훈장과 명예박사학위를 받았는데 총 63 개국에서 받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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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키의 차우세스쿠가 유럽에서 큰 나라중에 하나인 루마니아 정권을 잡고 항상 입가에는 흐믓한 미소가 흘렀다고 한다. 차우세스쿠는 스포츠를 좋아했다.그중에 사냥은 특히 더 좋아하여 년중 휴가때면 사냥을 즐겼으며 곰사냥을 좋아했다고 한다.

[ 차우세스쿠는 당시 곰사냥을 위해서 많은 곰들을 산속에 풀어서 방목했다고 한다. 자연스럽게 곰의 숫자는 늘어나게 되면서 전국 각지에 높은산이면 곰들이 서식하고 있다.

곰들도 작은곰들이 아니다. 대형곰들이다. 이직도 루마니아에서는 합법적으로 공샤냥을 시즌별로 허가하고 있을 정도이다.

본인은 곰의 실제를 확인하기 위해서 곰들이 사는 지역에가서 마을로 내려온 대형곰을 촬영하다가 죽을뻔한적도 있다.
어느날은 곰 식구들이 대거 내려올때도 있다.지금도 이지역에서는 사람들이 산속으로 들어가는것을 꺼리고 있으며 어느 휴양지에서는 잡아서 가둔 야생곰들이 철창을 뚫고서 다시 산으로 도주한일도 있다고 한다.]

이렇게 차우세스쿠는 루미니아의 당/정/군대를 장악하게 되고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 비밀경찰 제도를 세우고 반 국가단체 활동 구민과 그리고 외국인과 접촉하는 사람들을 감시 체포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정권을 장기적으로 세우기 위해서 친인척들을 사법기관과 군부대에 세웠고 3 천명의 양자를 두어서 주요부서 및 비밀경찰에 배치시켰다고 한다.

처음에는 루마니아를 잘 통치하던 차우세스쿠도 중국과 북한을 다녀오면서 그리고 루마니아 사람들의 밀을 빌리면 차우세스쿠 아내의 영향에 의해서 변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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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모택동 그리고 북한의 김일성의 정치체계를 그대로 루마니아로 반영하기 원했고 부인 엘레나도 정치에 관여하기 시작하면서 차우세스쿠의 움직임이 이상해졌다고 한다.

여기다가 북한의 김일성과 의형제를 맺었다고 한다. 김일성이 형님이고 차우세스쿠는 아우의 신분을 맺었다고 한다. 차우세스쿠는 처음에는 소련의 스탈린주의 그다음에는 중국의 모택동 주의에 입각했다고 북한의 김일성을 만난이후 점점 루마니아를 북한처럼 만들려는 계획을 갖었다고 한다.

북한의 붉은 소년단 시스템은 그대로 루마니아로 반영하여 루마니아 붉은 소년단을 만들었고. 김일성의 개인사상주의를 또 반영하여 북한의 김일성과 같은 시스템으로 전환시키기 시작하여 모든국가 행사에 국민을 동원시키는일부터 TV 프로그램에도 차우세스쿠 찬양보도 길거리마다 홍보선전등 여기다가 북한의 매스게임(단체체조)까지 하게된다.

북한을 방문하면 루마니아 장관들이 겁을 먹는다는 이야기도 전한다. 다음에 다녀오면 어떤 계획을 하고 돌아올까?
차우세스쿠가 북한을 방문하면 김일성은 최대한의 모든것을 동원하여 접재한다고 한다. 특히 김일성 주석궁전앞에 평양시민들을 동원시켜서 카퍼레이드를 하면서 평양시민들에게 루마니아 전통의상을 입혀서 루마니아 춤을 추게하는데 여기서 차우세스쿠가 놀래서 루마니아로 돌아오는데로 북한처럼 했다고 한다.

차우세스쿠 시대 후반부에 들어온면서 국민들로부터 신임을 잃어가는 보습을 보였다고 한다. 여기다 김일성의 주석궁을 본따서 루마니아에 인민궁전을 건축하게된다.

[ 이 인민궁전은 세계단위 건물로 2 번째의 크기건물이며 이 인민궁전을 완성한후 발코니에서 관제집회를 열어서 손을 흔들려는 차우세스쿠는 결국 하지 못하고 미국의 마이클 잭슨이 인민궁전 광장에 모인 루마니아 사람들에게 발코니에서 손을 흔들었다는 아이런한 일도 있었다.]

한 국가를 독재하다보면 좋은일도 있고 나쁜일도 있을수 있다. 그러나 1980년대이후 동유럽국가들은 점점 자유화의 물결로 바뀌어지면서 이 여향이 루마니아까지 타고오게되고 결국 서유럽 국경의 관문인 도시부터 혁명의 기운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점점 어려워지는 경제의 어려움으로 인해서 루마니아 사람들의 생활도 쉬운것은 아니였다. 경제가 어려워지면 억압도 강해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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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 최초의 민주화 혁명지 티미쇼아라 도시의 혁명집회

결국 이 불꽃이 국경도시 티미쇼아라부터 시작되었다. 이 혁명의 불길이 가속도가 붙어서 결국 수도 부카레스트까지 올라오게되면서 차우세스쿠의 마지막 관제집회도 무용지물로 마감되면서 공산당 본부 건물 옥상에서 백색헬기로 탈출을 시도하게 된다.

헬기로 도주하면서 차우세스쿠 부부는 왜 혁명이 일어났는지 이해를 못했다고하며 다시 헬기에서 내려서 지나가던 차량을 뺏어타고서 한 농장에 잠시 휴식을 취하다가 군관민에 붙잡히게된다.

비밀경찰세력들이 다시 차우세스쿠를 찾으려고 하는 상황에서 임시 구국전시위원에서는 12월25일 특별군사 재판을 통하여 차우세스쿠 부부에게 총살형을 언도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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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 군사재판시의 차우세스쿠 부부 모습

그래도 아직도 나는 루마니아 대통령이다 라고하면서 각력히 부정하다가 결국 형장의 이슬로 사라져갔다.

그리고 차우세스쿠는 아무도 모르게 일반 시립묘지 한구석에 조용히 묻힌다.

이와 함께 공산주의는 마감하고 12월25일 루마니아 전역에는 크리스마스 캐롤송을 듣게 된다.

이러한 모습을 보면서 어디든지 영원한 독재는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장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