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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집회 배후에는 "반제민족민주전선 서울대표부" 본문

Guide Ear&Bird's Eye/국가안보 위해사범(NLPDR) 자료

촛불집회 배후에는 "반제민족민주전선 서울대표부"

CIA bear 허관(許灌) 2008. 6. 22. 08:42

촛불집회 배후에는 반제민족민주전선 평양대표부 지령에 따라 움직이는 반제민족민주전선 서울대표부로 추정하는 자료가 등장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반제민족민주전선 서울대표부는 어느 단체들로 구성되어 있는지 관심의 대상..............

반제민족민주전선 평양대표부는 월북자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반제민족민주전선 서울대표부는 NLPDR(민족해방민중민주주의 혁명) 단체 구성원으로 조직화 되어 있습니다  NLPDR(민족해방민중민주주의 혁명) 단체는 반미단체나 친북단체 중 반미 인민전쟁과 무장혁명을 인정하는 세력들입니다  국가정보원 고위 관계자 정보망에 따르면 반제민족민주전선 서울대표부는 촛불시위나 각종 반미집회를 배후에서 조종하는 각 단체 핵심 요원 반미투쟁가(정책국과 선전국) 중심의 NLPDR 무장혁명 세력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과거 민혁당(한국민족민주전선 서울대표부) 지도부 처럼 잠수함이나 각종 형태로 월북하여 정치, 군사고문단 교육을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문제는 이들 단체들이 대남밀수(마약,뱀술,바아그라,담배, 남한 중고자동차, 아편성 수면제등) 행위나 동아시아 각종 무장 좌익단체와 연계되어 있는지가 추적대상입니다 그리고 대남 밀수행위로 각종 이권개입이나 자금줄 확보로 남한내부 폭력단체(깡패단체)를 확보하고 있는지도 관심대상입니다  또한 남한 기업들과도 연계되어 정치적 경제적 문화적으로 각종 단체를 장악하려고 시도하는지도 관심대상입니다 (반미단체나 친북단체의 언론계 자금줄을 대어주는 기업들이 대체로 반미세력이나 친북기업들입니다)  

1.반제민족민주전선 평양대표부(월북자 단체)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재북평화통일촉진협의회, 조국통일범민족연합(범민련)등     

<반제민전 평양지부 대표 담화(6.7 중통) >  이OO 패당은 미국산 소고기 수입개방을 비롯한 반민족적이며 반민중적인 행위를 중지하고 사죄해야 하며 시위참가자들에 대한 탄압을 즉시 중단하여야 함. 이OO 정권을 반대하는 투쟁을 미군을 몰아내기 위한 반미 자주화 투쟁으로 승화시켜야 하며 반제민전은 민중과 함께 반미․반이OO 투쟁을 과감하게 벌려 나갈것임.

 

2.반제민족민주전선 서울대표부(NLPDR단체=반미단체)

전국연합(진보연대) 내부 각종단체 중 반미그룹(NLPDR단체).......

(예) 반미청년회(반제청년동맹), 반미여성회, 반미넷등

 

*전국연합은 2001년 9월22~23일 충북 괴산군 보람원수련원에서 가진 소위「민족민주전선일꾼전진대회」에서 『3년의 계획, 10년의 전망, 광범위한 민족민주전선 정당건설로 자주적 민주정부를 수립하여 연방통일조국을 건설하자』고 결의했었다

 

 

3.반제민족민주전선 일본대표부(학습조나 친북 남한출신 모임단체)

 

4.각국 해외 반제민족민주전선 대표부(반미 국가 내부 친북 남한인사들의 위장단체--각국 반미 좌익무장단체 연계)

시리아 반제민족민주전선 대표부, 쿠바 반제민족민주전선 대표부등

남한출신 중에 반미투쟁나 북한정부 활동을 도와주면서 반미국가 내부에서 경제적 활동으로 이득을 챙기는 그룹(반미투쟁이 돈이라는 인식으로 반미투쟁을 하는 사람들. 반미투쟁가 중심으로 형성된 자금줄)

 

*반제민족민주전선 내부 북한정부 최고지도자 비밀그룹 뇌파로 짜여진 송수신기 그룹이 있는지와 알카에다 빈 라덴처럼 테러계획을 주도적으로 추진할 수 있는 자금줄 국제인물이 있는지도 관심대상이었는데 민혁당 지도부 김영환씨의 잠수함 밀입북과 김일성 면담등이 드러나면서 사실로 확인되고 있다 

 

*<정책반대시위연대·광우병국민감시단 주축은 진보연대>
우선 「정책반대시위연대」와 「광우병 국민감시단」이 어떤 단체인지 살펴보자. 「정책반대시위연대」는 4월23일 daum인터넷카페가 개설됐으며, 한국진보연대(進步連帶)를 비롯해 한총련·전농(전국농민회총연맹)·민노총·전교조·참여연대 등 50여개 단체가 참여해 있다.
얼핏 보면 많은 단체가 참여한 것처럼 보이나, 실제 참여연대 등을 제외한 대부분의 단체들은 연합체에 해당하는 「진보연대」라는 틀 안에서 움직인다. 「광우병 국민감시단」은 지난해 6월 한미FTA저지범국민운동본부(FTA범국본)이 주축이 돼 발족된 단체이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정책반대시위연대」를 주도하는 《진보연대》와 「광우병 국민감시단」을 주도하는 《FTA범국본》은 동일조직이다.
2007년 9월16일 「진보연대」는 출범식 보도자료에서 『진보연대 위원장단은 동시에 파병반대 국민행동·한미FTA저지범국민운동본부·이랜드 공대위 공동대표』이며 『진보연대 상임운영위원장은 위 세 단체의 상임집행위원장이고, 소속 집행간부들 역시 위 세 단체와 그 外 사업의 실제 집행 역할을 맡고 있다』고 밝혔다.
즉 진보연대가 「FTA범국본」·「파병반대국민행동」·「이랜드 공대위」도 이끌고 있다는 말이다.

 

진보연대는 스스로 「전국연합」·「통일연대」·「민중연대」 등 3개 단체를 계승했다고 밝히고 있다. 실제 3개 단체는 진보연대 결성 이후, 발전적으로 해소(解消)됐다.
또 『그간 진보민중운동진영의 단일연합체는 「민통련⇒전민련⇒전국연합⇒통일연대·민중연대」로 이어져 왔다』며 진보연대가 전국연합·통일연대·민중연대를 소위 『발전적으로 해소하고 건설하는 조직』이라고 밝혔었다. 한마디로 전국연합·통일연대·민중연대를 해산해 진보연대를 만들었다는 주장이다.

 

*반제민주민족전선(평양지부)와 연계된 반제민족민주전선(서울지부) 동향을 강화하여 그들이 남북에서 극단적 세력으로 반미인민전쟁 남북전쟁을 추진하고 있는지 조사와 분석이 돼야 유엔과 각국정부에 통보하여 이들 세력을 제거하는데 도움을요청할 수 있을 것입니다 남북전쟁세력으로 확인될때 중국이나 러시아 정부 도움으로 반제민족민주전선 주요인물을 검거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반제민족민주전선 조직은 월북자들과 반미청년회, 반미여성회 조직으로 파악하고 있으며 이들이 NLPDR(민족해방인민민주주의 혁명) 운동을 주도하고 있습니다


 


 

 

 

 

 

 

 

 *통일혁명당과 민족민주혁명당(한민전 서울대표부) 사건(자료)

유엔 이념:자본주의 반대 공산주의! 민주주의 반대 독재주의! 자본주의민주주의 혁명 후 자유주의와 사회주의 공존 복지사회로
http://www.un.org
http://www.USFK.OR.KR

-통일혁명당과 민족민주혁명당(한민전) 북한정부 자료 수록 사이트-
한국민족민주전선(통일혁명당) http://ndfsk.dyndns.org
조선노동당 http://www.dprkorea.com/20031010/index.php
반제민족민주전선 http://ndf-sk.dyndns.org
1.통일혁명당 간첩사건
1968년 발표된 통일혁명당의 대규모 대남 간첩단 사건이다
북한 김일성정부는 4.19혁명이 일어나자 대남 통일전선 조직으로 조국평화통일위원회를 구성하여 대남 평화공존과 연합전선 구축 공세를 강화하게 됐다 그때 남파 간첩 김송무를 남파시켜 1964년 3월 통일혁명당을 결성했으나 1968년 7월 통일혁명당과 청맥 잡지등이 체포되거나 검거됨에 따라 조직의 와해 되었다
김종태(金鍾泰)를 정점으로 이문규(李文奎, 조국해방전선 책임자), 김질락(민족해방전선 책임자), 최영도(통일혁명당 전라남도 위원회 위원장), 정태묵,윤광수등이 활동한 통일혁명당(약칭:통혁당)은 북한 노동당의 재남(在南) 지하당(地下黨) 조직으로 1964년 무렵부터 활동을 시작하였다
이들은 당시 박정희 정권 아래서 억눌린 변혁적 사회운동을 잠재력을 가진 혁신적 지식인, 학생, 청년등과 전(前) 남로당 당원을 포섭하여 결정적 시기에 무장봉기하여 수도권을 장악하고 요인암살, 정부전복을 결행할 것을 기도하였으나 통일혁명당 서울시 창당 준비위원회 활동이 드러남으로써 사전에 발각되었다
이 사건과 관련하여 158명이 검거되었으며 문화인. 종교인. 학생등이 많이 포함되어 김종태. 이문규, 김질락. 이관학. 송승환등 5명이 사형이 선고되고 신영복교수등 무기징역 4명 등 관련 피고인 30명 전원에게 유죄판결이 내려졌다
이들은 통일혁명당 서울시 창당준비위원회 산하에 김질락이 중심이 된 민족해방전선과 이문규가 중심이 된 조국해방전선을 두었으며 전라남북도, 부산. 경상북도까지 세력을 확대하고 있었다 또한 통일혁명당 서울시 창당 준비위원회 기관지인 <청맥>을 발간 당시 지식인 사이에서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다
통일혁명당(통혁당)의 이념. 조직활동에 대한 평가는 시각에 따라 다른데 북한의 지령을 받은 단체로 보기도 하고 독자적인 혁명세력으로서 6.25 한국전쟁 이후 남한 내에서 전위조직을 건설하려는 최초의 주체형 김일성주의 정당 시도로 평가하기도 한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혁신 정치세력의 입지를 좁히고 남한 정치사회의 보수화를 초래하였다
통일혁명당은 1971년 재건을 기도하였으나 또 검거되어 실패하였다
-전위당 문헌 해설(한민전 구국전선 통일여명 편집국 자료)
통일혁명당 선언과 통일혁명당 강령(통일혁명당 중앙위원회 1969년 8월 서울)
http://ndfsk.dyndns.org/kuguk8/ku22/ic_030202.htm
-열린우리당 한명숙의원 남편인 박성준(현 상공회대 교수)씨는 지난 1968년 8월 24일 당시 중앙정보부가 발표한 북한 노동당 지하조직인 통일혁명당(통혁당) 산하조직인 경제복지회 주동자로 15년형을 선고받고 13년간 감옥생활을 했다
-통일혁명당 경북지역 조직원 권양섭
http://ugh.or.kr/ja/jangkisu1.html
1972 년 2월 경북지역 통일혁명당 사건으로 검거되었다
권양섭은 22년동안 복역하다가 형집행정지로 석방되었으나 1997년 3월 18일 사망
-1968년 2월 15일(조총련 자료)
남조선통일혁명당 전라남도 위원회 위원장 고(故) 최영도씨를 추도하는 재일조선인의 모임 진행 그리고 남조선통일혁명당의 김종태를 비롯한 사형수(애국자)에 대한 사형을 반대하는 재일일본 조선인 중앙대회
-1969년 7월 12일 최고인민회의 상임위, 가칭 통일혁명당(통혁당) 간부 김종태에게 <영웅칭호> 수여
-1969년 11월 25일 통일혁명당 공판을 규탄하는 평양시 집회 개최

(1)통일혁명당사건 주요 인물
ㄱ.김종태(사형)--통일혁명당 위원장(당수) 및 서울시 창당준비위원회 위원장(통일혁명당 서울시위원회 위원장)
-1926년 경상북도 영천군 금호면 냉천리(동) 출생
-통일혁명당 주도자였던 김종태, 김질락, 이문규등은 모두 월북해 북한 노동당에 입당한 노동당원들이었으며 김종태는 사형집행 후 김일성으로부터 영웅칭호가 내려졌다
(ㄱ)김종태의 북한정부 한민전(통일혁명당 후신) 자료
-통일 애국전위 투사 김종태 동지
http://ndfsk.dyndns.org/kuguk8/02_7_11/18.htm
-충신, 전위투사 김종태 동지
http://ndfsk.dyndns.org/kuguk8/45/15.htm
64년 3월 통일혁명당 준비위원회를 결성했으며 <창당준비선언문>을 채택했다
또한 <조국해방전선> <민족해방전선>과 그 산하에 <60년 대학사회> <새문화연구회> <�년문학가협의회> <불교도 청년회> <동창회> <청맥회> <민족주의연구회> <학사주점>등 각종 합법, 비합법 대중단체들을 조직하여..
(ㄴ)검찰변천사(연도별 주요사건)
http://www.sppo.go.kr/intro/his_main0313.htm
1968년 1월 21일 김신조등 서울에 무장공비 31명 침투(1.21사건)
1968년 8월 12일 서울지방검찰청, 12월 19일까지 <통일혁명당 사건> 피의자 31명 기소
북한은 이 사건의 수괴인 간첩 김종태등을 구출하기 위하여 무장특공대 14명을 공작선편으로 침투시켰고 김종태의 사형이 집행되자 영웅칭호를 부여함
(ㄷ)김종태전기 기관차공장(평양시 서성구역)
김종태는 1960년대 중반 북한의 남조선혁명전략에 따라 남한내에 지하혁명조직인 통일혁명당(한국민족민주전선 전신)결성을 기도했던 인물이다
-1999년 4월 27일 북한 김종태 전기 기관차 공장은 궐기모임을 열고 김정일 총비서에게 충성다짐
-김종태 전기 기관차 공장 종업원들은 2001년 12월 6일 일본경찰의 재일본조선인 총연합회 중앙본부 수색을 규탄하는 집회를 열었다고 평양방송이 12월 7일 보도 했다
-2002년 3월 21일 김종태 전기 기관차 공장에서 반미궐기 집회 개최
-평양지하철(역별사진) http://wesleyc.com/kr/metro/map1.shtml
평양 DK4지하철 차량이 김종태 전기 기관차 공장에서 제작되었다고 주장 함
(ㄹ)평양방문기--애국렬사릉의 사라진 묘, 생겨난 묘
http://www.khistory.or.kr/connection/read.asp?num=7&page=1
가묘--1969년 통일혁명당 사건으로 체포돼 이듬해 사형 당한 김종태와 체포과정에 사망한 최영도등..
(ㅁ)통일혁명당과 김종태 미화 신격화 소설책--애국시대(상.중.하)
주인공 김종태(장준호)와 통일혁명당이 남한지역 최초의 김일성주의 정당으로 묘사
ㄴ.김질락(사형)---통일혁명당 서울시 창당준비위원회 산하 민족해방전선 총책
ㄷ.이문규(리문규, 사형)--통일혁명당 서울시 창당준비위원회 산하 조국해방전선 총책
ㄹ.최영도(검거과정 사망)---통일혁명당 전라남도 위원회 위원장

(2)통일혁명당 기관지(청맥) http://ndfsk.dyndns.org

(3)통일혁명당(1968년 8월 21일-12월 19일)과 관련된 무장간첩 사건
-김종태는 북한대남사업총국장 허봉학으로부터 직접 지령과 공작금 미화 7만달러, 한화 2,250만원을 받고 남파된 거물 간첩이었다 허봉학은 통일혁명당 와해 책임과 베트남식 남한점령 실패에 대한 책임을 물어 제거되었으며 지금까지 정치 사상범 수용소에 수감되어 있다
ㄱ.1968년 1월 21일--청와대 기습사건
1968년 1월 21일 김신조등 31명 북한군 제124군 부대 소속 무장공비 31명이 휴전선을 넘어 침투하여 청와대 기습사건
ㄴ.1968년 10월 30일--울진. 삼척지구 무장공비 침투사건
북한은 통일혁명당 수사와 검거, 체포과정에 1968년 10월 30일부터 11월 2일까지 3차례에 걸쳐 울진 삼척지구에 무장공비 120명을 15명씩 조를 편성 침투시켜 군복, 신사복, 등산복등으로 위장하여 게릴라전을 펴쳤다

(4)북한의 통일혁명당 재건 기도 자료
입북 간첩 이상진(李尙珍). 김영복(金英福)사건을 통해 북한이 지난 60년대말 적발돼 와해된 <통일혁명당> 조직 재건을 기도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1998년 9월 23일 안기부에 따르면 북한은 1994년 7월 이상진과 김영복이 2차 입북하자 통일혁명당수였던 김종태(사망)가 월북했을 당시 머물렀던 평양 근교 초대소에 수용시키고 김종태의 처와 아들이 어디서 어떻게 살고 있는지 확인하라는 지령을 내렸다
지령을 내린 북한 대외연락부 부부장 지성용은 김일성도 <남조선 혁명사에 걸출한 인물인 김종태>의 가족을 찾아 도와주고 그들이 원하면 북한으로 데려오라는 뜻을 밝혔다고 이상진과 김영복에게 전했다
지성용은 또 김종태가 1969년 7월 남한당국에 적발돼 사형된 후 그의 혁명정신을 기리기 위해 김종태가 묵었던 초대소도 2층으로 크고 웅장하게 증축했으며 김종태의 유족 소재만 확인되면 통혁당 조직을 재건하겠다고 강조했다
이상진과 김영복은 1994년 8월 김종태의 처 이름과 나이, 전화번호가 적힌 메모지를 갖고 입북하여 심부름 센터를 통해 김종태 처의 소재를 찾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상진은 심부름센터로부터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애기를 듣고 1994년 12월 비엔나에서지성용을 만나 <계속 확인하고 있는 중>이라는 보고만 했다
안기부는 북한이 1970년대에 남파 간첩 김용규와 지난 1998년 8월 15일 사면된 공안사범 1명에게도 김종태 가족의 소재파악 및 입북공작을 지령한 사실이 있어 통혁당 재건사업을 지속적으로 추진 중인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2.민족민주혁명당 간첩사건
민족민주혁명당(민혁당)은 북한이 1980년대 학원가의 친북투쟁을 주도해온 주사파 핵심세력들을 포섭, 조선노동당에 가입시킨 뒤 북한의 직접 지도를 받는 <민족민주혁명당>을 구축하여 이른바 <남조선혁명운동>을 사주해온 전형적인 지하당 사건으로 북한은 남한내 주사파를 대남적화혁명의 전위대로 삼기 위해 학생운동권에 영향력과 조직적 기반을 갖고 있던 김영환을 포섭, 입북시킨 후 남한내 주체사상을 신봉하는 지하혁명지도부를 구축토록 지령하였고 김영환은 북한의 지령에 따라 주사파 지하조직 <반제동맹=반미청년회>의 핵심세력들을 하부망으로 포섭, 노동당에 현지 입당시켜 <관악산>등의 암호명을 부여하고 북한의 공작금으로 전국적인 조직기반을 갖춘 <민족민주혁명당>(약칭:민혁당)을 결성 암약해 왔으며 북한은 총책인 김영환이 사상적 변화를 일으켜 <민족민주혁명당>을 이탈하려는 조짐을 보이자 주체사상이 투철한 <민족민주혁명당> 중앙위원 하영옥을 접촉한 후 그를 통한 <민족민주혁명당>을 재결속시켜려 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국가정보원은 지하조직 <반제청년동맹> 관련 혐의 및 1997년 10월 검거한 최정남 부부 간첩 사건 연루의혹 관련 김영환을 내사해 오던 중 1998년 12월 18일 남해에서 북한으로 복귀하다가 격침된 반잠수정에서 김영환등의 전화번호가 암호로 기재되어 있는 것을 확인 증거확보에 주력해 오던 차에 1997년 10월부터 중국에서 체류 중이던 김영환이 정부당국에 입국허용 탄원서를 제출한 후 7월 29일 김영환이 자진 귀국함에 따라 자연스러운 분위기하에 4회에 걸쳐 심사를 실시 <1989년 7월 북한 직파 간첩에 포섭 되어 입북 귀환 후 북한 지령에 따라 지하당을 결성하였다>는 등의 자백을 받아내고 자수자에 준한 선처방침을 검토하고 있던 중 8월 16일 김영환이 돌연 <말>지에 찾아가 <국정원이 간첩단 사건을 조작하려고 한다>는 거짓내용의 인터뷰를 하여 관련 혐의자들에 대한 수사를 방해하고 잠적하였다가 8월 18일 18시 35분발 대한항공편을 이용 홍콩으로 출국하려던 김영환을 공황에서 긴급체포하고 관련자 조유식.하영옥. 심재춘. 김경환등을 차례로 연행 본격적인 수사에 착수하게 된 것이다
수사과정에 김영환과 조유식은 자수와 반성문으로 대한민국정부로 귀순하였다
-1997년 김영환씨가 베이징에 있을 때 울산 간첩 최정남이 붙잡혔다
그리고 최정남이는 김영환씨를 팔아 재야인사에 접근했다고 증언.
-1998년 12월 17일 남해안에서 북한 반잠수정 격침
북한의 반잠수정은 북한 공작원 배모씨와 하영옥씨를 밀입북시키려고 내려왔던 것이다 그런데 해병대 2사단이 이 배를 발견하고 조명탄을 쏴 확인을 시도하자 아군 고속정이 접근할 수 없는 얕은 수로를 통해 북한으로 도주해 버렸다
북한은 이때 데려가지 못한 공작원을 월북시키고 한달 뒤 여수로 반잠수정을 침투시켰던 것이다
남해안으로 침투한 북한 반잠수정이 상륙한 사실은 민혁당 연루자인 하영옥(36세), 심재춘(29세)가 국정원에서 "1998년 12월 17일 북한 공작원 배모씨(44세)를 여수 해안으로 안내했다"고 진술하고 지난 1999년 3월 17일 건져 올린 반잠수정에서 이 공작원의 시체가 발견됨으로써 확인됐다
-국정원 발표에 따르면 김영환씨는 지난 1989년 7월 남파간첩 윤택림에게 포섭돼 노동당에 입당한 후 1991년 입북하라는 명령을 받고 대학 후배인 조유식(말지 기자출신)씨와 함께 반잠수함으로 월북한 후 운동방향등에 논의하고 귀환하여 주사파 운동권 조직인 반제청년동맹을 결성한 뒤 간첩활동을 해왔다고 발표함(예:반제청년동맹-->반미청년회--1990년 한국민족민주전선)
-국정원 발표에 따르면 김경환씨(말지 기자)는 한국외국어대 용인캠퍼스 <민민투>위원장 등을 역임한 후 3차에 걸쳐 위장취업하여 노동자 의식화 활동을 하다가 1994년 4월부터 월간 말지 기자로 재직 중인자로 말레이시아인으로 위장침투하여 서울 강남에서 <삿떼리아>라는 말레이시아식 음식점을 운영하며 암약 중이던 간첩 진운방을 1989년 9월 중순 대학 후배의 소개로 알게 된 후 김영환과 진운방간의 중간 연락책으로 암약하면서 1991년 8월 원주 치악산에서 김영환의 주재로 노동당 현지 입당식을 갖고 <관모봉>이라는 암호명을 부여 받았다
1998년 10월말 진운방이 원진우로 위장하여 재차 침투하자 남파 간첩 원진우를 하영옥과 접선하도록 주선하고 그후 원진우를 여러 차례 접촉하여 그간의 활동내용과 국내정세등을 보고한 혐의이다
-1999년 9월 14일 김영환(서울대 법대 공법과)씨에게 포섭되어 노동당에 입당한과 민혁당 중앙위원으로 활동한 혐의등을 받고 있던 박모(35세) 변호사 자수의사 밝힌 뒤 공소보류..
-1999년 9월 17일
8월 범민족대회와 관련하여 방북을 시도한 민족통일 부산연합의장 이성우씨 민혁당 가입죄로 추가 기소
-국가정보원은 민혁당 산하 영남위원회 총책 혐의를 받은 최진수씨와 고등학생 사업담당 혐의의 박정훈씨등 4명의 긴급체포했다
-1999년 10월 7일
민족민주혁명당 연루자가 100명-200명에 달한다고 발표함
서울지검 공안1부(정병욱 부장검사)는 7일 북한 전위혁명조직인 <민족민주혁명당>에 지난 1996년 4월 11일 총선 및 1995년 지방선거 출마자 5명을 포함해 20여명이 연루되었다고 발표
검찰, 민혁당의 영남위원회와 경기남부위원회, 서울지역 학생운동 사업부 소속, 고등학생사업부의 활동 가담자 20여명을 추가 확보 수사 중이라고 발표함
-한나라당 박진의원 자료
국군기무사령부가 국회 국방위 박진 한나라당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를 보면 2000년부터 지난2004년 8월까지 검거한 간첩은 2000년 1월 교수출신 간첩 한단석을 비롯해 2002년 5월 반국가단체 민혁당 경기남부 위원장 이석기씨와 2001년 9월 재중(在中) 조선족 간첩 모씨, 2004년 4월 재일(在日) 대남공작부 지도책 모씨등 모두 4명이라고 밝혔다
-Prochosun
http://prochosun.com.ne.kr/aaa/hwanginoh.html
<95년 위원회>를 이끌어 온 혐의를 받고 있는 최경호씨는 자신이 조직원 변의숙씨를 북한에 보낸 사실등 모두 시인하면서 <북한 노동당이 아닌 남한의 자생적인 운동조직 한민전의 지시를 따라..>
-한민전 영남위원회(일명:동창회)
양심수 홈페이지 http://www.yangsimsu.or.kr/freeboard_jaryosil_read.php?num=2
부산경찰청의 발표에 따르면 한민전 영남위원회(일명:동창회)는 울산지역 <희망의 젊은 연대>를 비롯해 12개 조직단체, <부산노동자회>등 7개 단체, 양산지역 1개 단체등 재야 합법, 반합법 조직에 조직원을 침투 및 외곽..
http://hrights.or.kr/tanwon.html
부산보안수사대는 영남위원회가 처음에는 한민전 영남위원회라고 했다가 나중에는 조선노동당 영남위원회 또는 반제동맹 영남위원회로 번복
-한총련 제10기 의장이 소지한 한민전 문건과 강령
http://gs.kwpolice.go.kr/news/view.asp?num

(1)한국민족민주전선 등장 과정
<통일혁명당> 중앙위원회는 1985년 7월 27일 당의 명칭을 <한국민족민주전선>으로 개칭했고 일본에서는 1986년 8월 8일 통일혁명당 일본대표부를 한국민족민주전선 일본대표부로 조직 확대 개편 개명했다
한국(남한)에서는 1990년 1월 1일 전후 반미청년회를 한국민족민주전선으로 조직 확대 개편 개명했다
반제청년동맹(강철서신)--->반미청년회(구국의 소리)---->한국민족민주전선(90년 1월,새세대.여명.아리랑. 백두산등)
ㄱ.반제청년동맹기관지--강철서신(김영환씨의 편지형식 글)
강철서신은 NLPDR이론과 북한 주체철학사전, 정치사전, 역사사전등에 수록된 NLPDR 반미이론을 체계적으로 제작하여 만든 소(小) 선전물이다
대표적 합법단체-----삼민투위와 자민투 등 내부 주사파계열 조직원
ㄴ.반미청년회 기관지---구국의 소리
구국의 소리는 김일성주의 표방과 한국전쟁은 북침에 의한 정의의전쟁으로 묘사 그리고 각종 NLPDR, 김일성 신격화 글 등 수록
대표적 합법단체---전대협과 한총련 그리고 전국연합(범민련,범청련, 전국농민회, 전국노동자단체등) 내부 주사파 조직원
ㄷ.한국민족민주전선 기관지---새세대. 여명.아리랑. 백두산등
한민전이 90년 1월 창당하여 기관지를 <새세대>를 내걸고 반미청년회 구국의 소리를 중지하고 NLPDR 김일성노선보다는 주체사상 김정일 노선을 표방함으로 김정일 노동당 비서가 1990년 말경 인민군 총사령으로 추대되었다
이때 민혁당이 창당되었다고 본다
민족민주혁명당이 통일혁명당 모델로 창당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북한에서는 1985년 7월 27일 <통일혁명당>을 <한국민족민주전선>으로 개명했고,일본에서는 통일혁명당이 1986년 8월 8일 민족민주전선 일본대표부로 개명했고, 남한에서는 반미청년회를 1990년 1월경 민족민주전선(민혁당)으로 개명했다
(2)한국민족민주전선 서울대표부가 민족민주혁명당(민혁당)인가
ㄱ.통일혁명당도 서울시 창당준비위원회 산하에 민족해방전선과 조국해방전선을 두었다 민혁당이 한민전 조직이라는 것을 입증할 수 있는 자료는 다음과 같다
반제청년동맹(강철서신)--->반미청년회(구국의 소리)--->한국민족민주전선(90년 1월, 새세대.여명.아리랑, 백두산등)
김영환씨가 반제청년동맹 지하 기관지 강철서신 저작이다
강철서신 인적 자원 토대로 등장한 조직이 반미청년회와 한민전이다
1990년 1월에 반미청년회를 해체하고 민족민주혁명당(한민전)이 창립되었으며 반미전선 한국민족민주전선으로 구축되었다 민혁당 지도부가 바로 강철서신과 구국의 소리 지하그룹이었다
1980년대와 1990년대 남한 땅에서 반미투쟁과 김일성주의 투쟁 배후세력이 반제청년동맹(반미청년회) 강철서신(구국의 소리)이었다
한국민족민주전선 조직이 남한 재야 반미세력 배후이며 그들의 전위당(민혁당)이 전국적으로 반미자주화 반파쇼 민주화 NLPDR 지하당으로 구축되어 왔다
ㄴ.한국민족민주전선이 통일혁명당이라는 사실 입증 자료도 있다
북한정부는 통일혁명당을 1980년대 왔어 한국민족민주전선으로 개편 개명하였고 일본에서는 1986년 8월 8일 통일혁명당대표부를 한국민족민주전선 대표부로 개명하였다 그리고 각국 해외에 주체사상 조직이나 친북세력이 결집하여 통일혁명당 대표부를 한국민족민주전선 대표부로 개편. 개명하였다
남한에서는 반미청년회를 1990년 1월에 왔어 확대 개편하여 한국민족민주전선으로 개명했다 한민전 조직원들은 통일혁명당 소설책자 애국시대(1.2.3권)를 학습교재로 활용하여 민족민주혁명당을 통일혁명당으로 재건하려고 했다고 본다
(3)북한정부 대남공작부 한국민족민주전선(통일혁명당) 구국전선(청맥) 홈페이지 사이트에서 통일혁명당이 한국민족민주전선이라고 선언하고 있다
한민전 사이트 http://ndfsk.dyndns.org
(4)1998년 12월 17일 해군이 남해에서 격침시킨 북한 반잠수정이 여수해안에 상륙
남해안으로 침투한 북한 반잠수정이 여수해안 상륙한 사실은 민혁당 연루자인 하영옥 심재춘씨가 국정원에서 <1998년 12월 17일 북한 공작원 배모씨를 여수해안으로 안내했다>고 진술했고 지난 1999년 3월 17일 건져 올린 반잠수정에서 이 공작원의 시체가 발견됨으로써 확인됐다
http://www.donga.com/docs/magazine/news_plus/news202/np202bb050.html
(5)민혁당과 관련된 무장간첩사건
-이선실 여간첩 사건(이선실은 한민전 부위원장 출신)
-1995년 10월 24일 부여침투 무장간첩 김동식 사건
-1996년 9월 18일 강릉무장간첩 사건
-1997년 10월 최정남 강연정 부부간첩 사건(울산지역)
-1998년 12월 17일 여수근해 반잠수함 격침사건
(6)남한지역의 한국민족민주전선 변천사
반제청년동맹-->반미청년회--->한국민족민주전선(90년 1월)-->반제민족민주전선(2005년 1월)

3.통일혁명당과 민족민주혁명당 비교분석
(1)같은 점
ㄱ.통일혁명당의 이론과 조직을 계승한 정당이 민족민주혁명당(한국민족민주전선)이다
통일혁명당과 한국민족민주전선(민혁당)의 이론은 김일성. 김정일주의 노선인 민족해방인민민주주의 혁명(NLPDR)과 주체사상에 있다
남한에서 자생적으로 태동한 김일성주의나 주사파조직이 북한에 포섭되어 북한 노동당의 직접 지령을 받은 혁명전위조직으로 탈바꿈한 첫번째 정당이 통일혁명당이며 두번째 정당이 민족민주혁명당이다(남로당은 김일성주의 정당이 아닌다 남로당은 강동정치학원과 박헌영의 조선공산당 기반으로 창당한 정당이다 그러므로 북한정부나 김일성 김정일주의자 주사파들은 공식의견으로 남한 최초의 김일성주의 정당은 통일혁명당으로 언급하고 있다)
-통일혁명당 미화 소설책 애국시대(1.2.3권)
- 한민전 홈페이지 자료 http://ndfsk.dyndns.org
(ㄱ)전위조직결성의 고귀한 첫 열매(통일혁명당 창당준비위원회 결성 38주년에 부쳐 한민전 자료)
오는 3월 15일은 한민전의 전신인 통일혁명당 창당 준비위원회가 결성된지 38주년이 되는 날이다 통일혁명당 창당준비위원회 결성은 이 땅에서 처음으로 되는 주체형의 혁명적 전위조직 건설의 고귀한 첫 열매였다
http://ndfsk.dyndns.org/kuguk8/471/11.htm
(ㄴ)<한민전> 평양대표부 박광기 대표 <통일혁명당> 창당준비위 35돐 기자회견
http://www.kcna.co.jp/item2/1999/9903/news03/14.htm
<통일혁명당> 중앙위원회는 주체 74(1985)년 7월 27일 당의 명칭을 <한국민족민주전선>으로 개칭하여 자기의 역사적 출범을 새롭게 선포하였다고 그는 말하였다
(ㄷ)일본지역에서는 1986년 8월 8일 통일혁명당 일본대표부를 한국민족민주전선 일본대표부로 개명하였고 남한지역에서는 1990년 1월 1일 반미청년회를 한국민족민주전선으로 개명하였다
ㄴ.통일혁명당(민족민주혁명당)은 사회주의나 공산주의 정당이 아닌 NLPDR 김일성주의와 주체사상 김정일주의 정당이다 중국이나 구소련 공산당 개방화 자유화 세력들도 그들의 적으로 규정하고 있으며 오직 김일성 김정일주의 이익만을 옹호하고 있다
ㄷ.통일혁명당(민족민주혁명당)은 북한노동당 내부 김일성주의 계열로 북로당 전위대 구소련군부(소련군 극동사령부 휘하부대)세력들이었다 통일혁명당(한국민족민주전선)은 북한정부내 내각이나 노동당 소속보다는 국방위원회 소속으로 알려지고 있다
1991년 한국민족민주전선은 김일성 김정일의 방침대로 소련군부쿠데타를 지지했다
-통일혁명당과 울진. 삼척무장공비 사건이나 민혁당과 강릉, 여수잠수함 사태에서도 잘 드러나고 있다
-통일혁명당(민족민주혁명당)은 김구나 김두봉노선 남북협상 입장보다는 남한점령 노선 전쟁신봉자로 NLPDR(민족해방 인민민주주의 혁명) 김일성주의자들이다
이들의 주장은 항미론자 입장으로 소련이나 중국, 북한등지에서 반미 인민전쟁 입장을 지지하고 있다 남북전체 자유화 개방화 민주화 입장에서 본다면 통일혁명당(민족민주혁당)은 극좌모험주의 노선으로 전쟁이나 폭동으로 많은 동포를 죽음으로 몰아갈 수 있는 극단주의 이론이다 그리고 이들의 노선이 남북통일과 자유화 개방화 민주화를 저해하는 세력들이다
ㅁ.통일혁명당(민족민주혁명당)이 월북조나 월북 운동을 주도해왔다
통일혁명당(민족민주혁명당)은 대한민국정부를 부정하고 조선민주인민공화국을 지지하는 정당이다
그러므로 월북이나 월북행동을 우상화하고 월북자들의 인적행동을 영웅적 행동으로 묘사하여 각종 지하신문에 알려주고 있다
ㅂ.통일혁명당(민족민주혁명당) 특징
-반미투쟁과 반미테러 단체
-대한민국을 부정하고 조선민주인민공화국을 인정
-사회주의나 공산주의 단체가 아닌 김일성 김정일주의자들의 모임단체(주사사상파 모임)
-태양절 그룹(日神敎 숭배나 주체연호 사용)
-민족해방인민민주주의 혁명(NLPDR)내 김일성주의자 그룹
-김일성 가계를 우상화 신격화하는 그룹
ㅅ.체포와 검거, 와해----기관지 루트 사고
(ㄱ)통일혁명당---청맥
(ㄴ)민족민족혁명당---기관지 변천사 자료 열쇠
반제청년동맹(강철서신)--->반미청년회(구국의 소리)--->한국민족민주전선(90년 1월 민족민주혁명당,새세대-여명-아리랑-백두산)

(2)차이 점
ㄱ.등장시기
(ㄱ)통일혁명당--5.16군사쿠데타와 한일회담-->반일단체(反日團體)로 출발하여 반일 반미전선 구축
통일혁명당이 등장한 시기는 한일회담으로 남한과 일본이 수교하고 북한이 동해상으로 봉쇄되어 군사적으로 취약한 혁명역량을 고취하고 반일감정을 이용하여 전국적으로 NLPDR 김일성주의 정당을 결성하여 반일 반미투쟁을 주도하다가 검거된 사건이다
-일본 자민당 등장과 베트남 공산화
-울진.삼척 무장공비 사건과 통일혁명당 사건
(ㄴ)한국민족민주전선과 민족민주혁명당---광주민주화운동과 반미투쟁 그리고 북방정책으로 중국 소련과 수교---->항미론과 김정일주의 새세대 등장(북한핵무기 보유 추진)
박정희정부가 무너지고 등장한 전두환정부는 광주 민주화운동 굴곡이나 뚜렷한 노선상의 정립도 없이 등장한 정부로 국내외적으로 암초가 많았다 그런 가운데에서도 올림픽유치, 아시아게임유치와 국내외적 자유화 개방화 조치로 급진적 사회적 변혁이 일어났고 그런 시기에 북한정부의 대남조직 반미청년회가 등장했고 노태우정부때는 반미청년회가 한국민족민주전선(민혁당)으로 탈바꿈하여 남침 전위대 지위와 역할을 해왔다
-노태우정부의 북방정책 추진과 민혁당 등장
1990년 1월 반미청년회가 한국민족민주전선(민혁당)으로 개편 개명
-1990년 12월경 김정일 비서의 인민군 총사령관 추대와 핵무기 개발 추진
-1991년 소련군부쿠데타 실패와 후세인 김일성등의 제거
-민혁당과 강릉, 여수 잠수함 사건등
ㄴ.기관지
http://ndfsk.dyndns.org
(ㄱ)통일혁명당 기관지--청맥
청맥은 통일혁명당 기관지로 대학가나 공장 주변 그리고 문화계, 교육계, 정치단체등의 인쇄물로 공급되었으며 각종 남한 반정부 투쟁 자료로 많이 활용되어 왔다 청맥이 지식인 사회의 영향력은 상당했다
-청맥은 대학가나 공장주변, 문화계등의 인쇄소나 서점 그리고 주막(술집)등으로 점조직으로 보급루트로 조직화하여 운영되어왔다
(ㄴ)민족민주혁명당 기관지---구국의 소리(민민전 방송)
구국의 소리 방송은 한국민족민주전선(前 통일혁명당)의 대남(對南)방송기관이다
평양특별시 흥부동에 위치한 한국민족민주전선 산하 칠보산연락소에서 운영하고 있다 1970년 6월 남한에서 활동하던 반체제 지하조직인 <통일혁명당>이 와해되자 이 곳에서 <통일혁명당 목소리 방송>이라는 이름으로 방송을 시작했으며 1985년 8월 지금의 이름으로 개칭했다
마치 남한에서 방송되는 것 처럼 위장하고 있는데 방송요원들은 월북자. 납북자등 남한 출신자들로 구성되어 있다
노동당 대외연락부의 지도를 받는다
구국의 소리방송의 대남 전파소는 해주지역에 있다..
(ㄷ)남한출신 칠보산 연락소 종사 인물(자수간첩 오길남 증언자료)
1992년 5월 자료이기 때문에 나이 차이가 있다
A.이창균(李彰均. 54세 칠보산 연락소 고문)
->1957년 3월 인천제물포고 졸업
->1965년 2월 서울대학교 철학과 졸업
->1965년 3월-1969년 8월 서울덕화여상 교사 근무
->1969년 9월 프랑크푸르트대 유학차 도독(渡獨)
->1982년 10월 독일에서 처 오군임등 가족대동 입북
->1986년 5월 칠보산연락소 고문
->이창균 처 오군임(48세) 광주 숭의 실업고를 졸업하고 1964년 2월 간호원으로 도독(渡獨) 그리고 1975년 3월 결혼, 2남2녀 출산, 1982년 10월 남편을 따라 입북
-->현재 평양 거주 중
B.성경희(成敬姬, 46세 구국의 소리 방송요원)
->1964년 2월 창덕여고 졸업
->1968년 2월 이화여대 사회생활학과 졸업
->1968년 8월 10일 대한항공 여승무원으로 입사
->1969년 12월 11일 고정간첩 조창희 KAL(YS-11)기 피납시 입북
->연고가족으로는 부친 성충영(71세)과 모친 이후덕(68세) 남동생(43세) 여동생(38세)등이 서울 성북구 석관동에 거주
->북한에 조부모등 거주(1969년 1월 피랍 당시)
C.정경숙(鄭敬淑, 46세 구국의 소리 방송요원)
->1964년 2월 창덕여고 졸업
->1968년 2월 연세대 도서관학과 졸업
->1969년 4월 10일 대한항공 여승무원으로 입사
->1969년 12월 11일 고정간첩 조창희 KAL(YS-11)기 파납시 입북
->1970년 2월 15일 평양방송을 통해 <나는 공산주의자였으나 이곳에 와보니 많이 발전 하였다 저주스러운 남한생활을 청산하고 성경희와 같이 보람찬 새 생활이 기약된 북반부에 남겠다>고 말함
->연고 가족으로는 모친 김금자(83세)와 오빠(61세), 언니(48세)등이 서울 영등포 거주
->북한에 부친 정연길(80세) 거주(47년 5월 전 가족 남하 당시 신병으로 잔류)
D.허홍식(許弘植, 57세 구국의 소리 영어방송 요원)
->1956년 2월 서울 문리대 졸업 후 유학차 도불(渡佛)
->1959년 제네바대학 경제학과 졸업
->1965년 파리대 법학과 수료
->1974년 12월 재프랑스(在佛) 한인회 회장
->1979년 11월 재프랑스 한국민족문제연구소 국제부장
->1985년경 입북
->부친 허영복(79세), 여동생(32세)은 미국 거주
E.정현룡(鄭玄龍, 51세 민중의 메아리 방송국 부소장)
->1964년 2월 서울대 공대 금속공학과 졸업
->1966년 10월 유학차 도불(渡佛)
->1967년 4월 프랑스 유학 중 처 한성애와 함꺼 입북
칠보산 연락사무소에서 장석규란 가명을 사용하면서 민중의 메아리 방송담당 부소장으로 종사 중이며 처 한성애는 구국의 소리 영어방송요원으로 종사함
->연고가족으로 큰 형(58세)은 1968년 4월 동백림 간첩단사건 관련자로 무기징역을 받고 복역 하다 1970년 8월 15일 특사로 출소하여 경기도 광명시 철산동 거주, 둘째 형은 (56세)은 대전시 석봉동 거주. 남동생(46세)은 경기도 성남시 신흥2동 거주
F.윤로빈(尹老彬, 51세 민중의 메아리 방송요원)
->1959년 3월 서울 보성고 졸업
->1964년 8월 서울대 철학과 졸업
->1967년 2월 서울대 대학원 철학과 수료
->1972년 12월 부산대 조교수(철학)
->1982년 9월 싱가포르에서 모스크바 경유 가족 5명 대동 입북
->1982년 9월 입북 후 칠보산연락소에서 정영호란 가명을 사용, 민중의 메아리 방송 요원(선전문 작성)으로 활동하면서 <지성인의 각성> 책자 저술
->북한 국기훈장 1급을 수여 받음
->북한에서 처 정수남(48세) 및 2남 2녀의 자녀가 평양거주
->연고가족으로는 부친 윤운석(85세)와 모친 장복례(72세)등이 본적지 거주
G.유성근(兪成根, 59세 한민전 기관지 편집담당 요원)
->1955년 3월 대전고 졸업
->1960년 9월 서울대 사회학과 졸업
->1961년 3월 노동청 근로감독관
->1964년 4월 노동청 근로기준과 사무관
->1967년 11월 노동청 직업안정국 조정계장
->1968년 8월 주독일대사관 근무(노무관)
->1971년 4월 처 정순섭(58세) 대동 입북
->연고가족으로 형(66세), 남동생(51세), 남동생(46세)등은 본적지서 거주
H.이진영(李鎭永, 59세 전 칠보산연락소 소장)
->1958년 2월 서울대 정치학과 졸업
->1968년 4월 통일혁명당 사건 주범 김종태(66세, 사망)와 함께 북한의 지령 받기 위해 월북 칠보산연락소 부소장 역임
-신숙자(申淑子, 50세 민중의 메아리 방송요원)
->1961년 2월 마산 간호고등학교 졸업
->1961년 7월 3일-1966년 5월 30일 부산 적십자병원 간호원
->1966년 6월 2일-1970년 3월 서울 명동 성모병원 간호원
->1970년 4월 취업차 도독(渡獨)
->1972년 11월 오길남(50세)과 결혼
->1985년 12월 남편, 딸 혜원(16세), 규원(13세)과 입북
I.양모(48세. 이름 미상, 구국의 소리 방송요원)
->제주도 출신 납북 어부
J.김수경(62세 가량. 구국의 소리 방송요원)
->서울출신으로 경기중학 졸업 후 6.25동란 당시 의용군 입대 월북
->방송원고 작성담당
->1986년 9월경 한국민족민주전선 대표 자격으로 동독에서 개최된 노동자대회에 참석
K.한성애(가명 50세, 구국의 소리 영어방송 요원)
->칠보산연락소 부소장 정현룡의 처
->경기여고와 이화여대 졸업 후 영국 옥스포드대학 유학
->1964년 4월 남편 정현룡(51세)을 따라 입북
L.하모(河某 이름 미상, 54세 가량. 민중의 메아리 방송요원)
->광주출신으로 입북(연도 미상)
->간첩으로 남파, 복귀(연도 미상)
M.장철호(41세, 민중의 메아리 방송요원)
->경기도 출신으로 아버지가 국회의원 역임
->군 복무 중 월북(연도 미상)
->인민배우와 결혼
N.김철진(42세, 민중의 메아리 방송요원)
->경주 출신으로 군 복무 중 월북(연도 미상)
->인민배우와 결혼
O.김동수(56세, 칠보산연락소 총괄책임자)
-->1972년 11월 남북적십자 4차회담(서울) 수행기자
-->1973년 5월 남북적십자 6차회담(서울) 수행기자
-->1984년 9월 북적 수재물자 인도(인천항)시 수행기자
-->1985년 5월 남북적십자 8차회담(서울) 수행기자
-->1985년 9월 북적 고향방문단 및 예술단 공연시 (서울) 수행기자
-->1985년 12월 남북적십자 제10차 회담(서울)시 수행기자로 위장 도합 6회에 걸쳐 입경한 바 있는 김동수(56세)로 확인

*반제민족민주전선이란

1.반제민족민주전선이란

서울에서 활동하고 있는 <반제민족민주전선>은 1968년에 <자주. 평화. 민족대단결>이란 구호를 웨치며 <통일혁명당>이란 이름으로 남녁 민중들에게 첫 얼굴을 보이였다이 단체에서는 미국이 우리나라에서 군사적 행동을 하고 있는 것에 대해 강력하게 비난하고 하루 빨리 미군이 철수하고 자주적 평화통일을 이룰 것을 주장하였다 한편, <반제민족민주전선>에서는 <구국의 소리방송>(통일혁명당 목소리 방송)을 운영하면서 남녘에서 활동하고 있는 진보적 단체와 평화단체들의 활동 소식을 이북 인민들에게 널리 선전하였다

<반제민족민주전선>에서는 <구국전선>과 <통일전선>이라는 두 기관지들을 발행하고 있으며 <통일전선>은 지난 2002년 2월 16일부터 발행되고 있다 정녕 <반제민족민주전선>은 조선반도의 평화를 위하여 몸을 바쳐 싸운 애국단체이며 오늘날에도 통일을 위한 길에 열심히 투쟁하고 있다

<반제민족민주전선>에서는 지난 1998년부터 인터네트 봉사를 하고 있으며 <반제민족민주전선>의 홈페이지에 접속하면 김일성주석의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을 전자문서와 조선문워드프로세서 파일로 내려 받을 수 있으며 다매체 영상물과 기관지 <구국전선>(1998년부터 2003년까지)의 기사들을 인터네트에서 볼 수 있다  <반제민족민주전선>에서는 서울본부와 일본본부가 있으며, 아시아대륙과 구라파대륙, 아프리카 대륙에서 8개가 운영되고 있다

<반제민족민주전선>은 지난 2005년 3월 29일 <한국민족민주전선>(한민전)에서 <반제민족민주전선>으로 이름을 바꾸였으며 올해로 37돐을 맞는다

(1)반제민족민주전선 노선
NLPDR(민족해방인민민주주의 혁명)=반미민족해방 인민민주주의 혁명론
1단계---반미민족해방전선=반미인민전선=무장투쟁과 전쟁 그리고 통일전선구축
2단계---인민민주주의 혁명=사회주의 혁명과 사회주의 국가수립--공산주의 국가수립
(2)반제민족민주전선 역사
한국전쟁 전후 북로당 중심의 김일성계열 조국전선(조국통일위원회)--->통일혁명당---->반미청년회---->한국민족민주전선(1990년 1. 1)--->반제민족민주전선(2005.3.29)

2.반제민족민주전선 계보---반미청년회 계보(NLPDR---김일성.김정일주의자)

3.활동지역
일본지역 조총련과 남한지역 친북단체(전국연합 주축으로 범민련. 범청련. 한총련.농민단체나 노동단체등) 그리고 유럽이나 남미. 동남아. 아프리카 지역에서 NLPDR 반미단체나 공산주의자 그룹등

4.활동자금
북한정부 지원으로 각종 사업으로 자금모금으로 활동(숙박이나 주류. 술집. 서점. 인터넷상으로 쇼핑몰이. 주식.매춘. 노동조합 회비. 마약거래나 무기거래등으로 자금활동:주점과 서점 그리고 조합회비로 모금함)


5.주요 투쟁
(1)유언비어 살포나 북한정부 선전 그리고 김일성 김정일 홍보나 선전
(2)미국이나 우파 건물이나 인사 피습이나 파괴
(3)남북전쟁이나 미국과 전쟁 때 무장혁명 학습이나 무장 게릴라활동 연습
(4)잠수함등으로 남북군사활동과 남한지역에서 모의 입북이나 잠수함 입항 연습--군사고문단 활동
(5)사이버전쟁 연습과 침투방법 교육

6.반제민족민주전선 계보

한국민족민주전선 서울대표부 위장단체 명칭이다

http://ndf-sk.dyndns.org

*SK-South Korea

북한정부 대남공작부서는 대남사업담당 비서 산하에 통일전선부(사회문화부=통일전선구축-조국평화통일위원회), 대외 정보조사부(35호실, 통일전선 구축 점조직 조사와 자료 수집 분석 판단등), 대외연락부(35호실 분석 자료 바탕으로 간첩선 구축 즉 연락선이나 점조직망 구축), 작전부(대외연락부 파견과 복귀등 안내원-간첩선)등으로 구성돼 있다

김일성 집권 시기에는 대외연락부 산하에 서울, 경기,강원, 충남북, 전남북, 경남북, 제주등 10개 지역 담당과를 설치하고 대남공작을 전개했으며 김정일 집권시기에는 대남사업을 관장한 후 10개지역 담당과를 4개 지역과로 축소 통폐합하고 그 대신에 4개의 남한(남조선) 지도층 고위인사 포섭담당과를 신설했다 아울러 1976년 3월 15일 대남공작전술을 강화하기 위한 연구기관으로써 315연구소를 산하에 신설했다

한국민족민주전선(통일혁명당)은 북한 대남사업부서 중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언더(반합법단체)통일전선부(사회문화부) 조직이며 북한정부 대내외정책을 추진하는 정찰요원들이다

대외연락부는 통일전선부(사회문화부)조직 한국민족민주전선을 각 단위별로 점조직으로 연락으로 장악하고 있다 한국민족민주전선은 NLPDR 합법단체 전국연합이나 통일연대, 한국총학생회연합(한총련)등에 침투하여 점조직으로 합법단체 장악하고 있으며 한국민족민주전선이 남한내 반미 인민전쟁과 인민민주주의 혁명 공산주의 운동을 주도하고 있다

(1)통일혁명당과 한국민족민주전선

통일혁명당은 북한 김일성정부가 4.19혁명이 일어나자 대남 통일전선 조직으로 조국평화통일위원회를 구성하여 대남 평화공세과 연합전선 구축 공세를 강화하게 됐다 그때 남파 간첩 김송무를 남파시켜 김종태. 이문규. 김질락등을 포섭 월북시켜 간첩교육을 시킨 뒤 1964년 3월 통일혁명당을 결성하였으나 1968년 7월 김종태(통일혁명당 총책 겸 서울시 책임자), 이문규(조국해방전선 책임자), 김질락(민족해방전선 책임자)등 통일혁명당 관련자 검거 체포와 통일혁명당 기관지 청맥 보급로 제거등으로 조직 와해되었다

북한정부는 <통일혁명당> 당 명칭을 1985년 7월 27일부터 <한국민족민주전선>으로 변경해 사용해오고 있다 일본지역에서 1986년 8월 8일부터 <통일혁명당 일본대표부>를 <한국민족민주전선 일본대표부>로 명칭을 변경하여 사용해왔다

남한지역에서는 1985년 7월 27일 이후 <통일혁명당> 명칭이 <한국민족민주전선>으로 공식 변경하지 않고 한국민족민주전선 위장단체 <반제청년동맹> <반미청년회>로 사용해오다가 1990년 1월경 <한국민족민주전선 서울대표부>로 공식 사용해왔다

2003년도부터 노무현정부의 한민전 세력 제거작업로 공식 명칭 <한국민족민주전선 서울대표부>를 사용하지 않고 2005년 1월경부터 과거처럼 위장단체 <반제민족민주전선>으로 사용해오고 있다

ㄱ.통일혁명당 간첩사건---울진. 삼척 무장간첩 사건 연계

김종태. 이문규. 김질락등은 대남간첩 김송무의 지시에 따라 모두 월북해 북한 노동당에 입당해 노동당 당원이 되었으며 이들은 통일혁명당 서울시 창당준비 위원회(위위장-김종태) 산하에 김질락이 중심이 된 민족해방전선과 이문규가 중심이 된 조국해방전선을 두었으며 전라남북도(책임자-최영도), 부산, 경상북도까지 세력을 확대하고 있었다 또한 통일혁명당 서울시 창당 준비위원회 기관지인 <청맥>을 발간 당시 지식인 사이에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다

--->통련당과 북한정부 연계로 남한내부 준(準)군사조직 친북 NLPDR 반군(反軍)세력을 건설하다가 발견되어 제거됨

ㄴ.한국민족민주전선 간첩 사건---북한 반잠수함이나 잠수함을 간첩 운반선으로 이용한 점

반미청년회(구국의 소리)--->한국민족민주전선(90년 1월-새세대.여명.아리랑. 백두산. 백두넷등)--->반제민족민주전선(승리)

(ㄱ)1992년 10월 중부지역당 사건(이선실 한민전 부위원장과 접촉으로 당 건설, 강원 경기 중부지역 한민전 관련자 접촉)

-이선실(李善實) 여간첩 사건(이선실은 한민전 부위원장 출신)

(ㄴ)1995년 10월 24일 부여침투 무장간첩 김동식 사건( 삼민투위-반제청년동맹 관련자 접촉)

(ㄷ)1996년 9월 18일 강릉무장 간첩사건

(ㄹ)1997년 10월 최정남 강연정 부부 간첩사건(울산지역 한민전 관련자 접촉-영남위 사건)

(ㅁ)1998년 12월 17일 여수근해 반잠수함 사건(민혁당 관련자와 접촉)

(ㅂ)1999년 9월 14일 김영환등 민혁당 간첩사건(한민전 서울대표부 지칭)

--->한민전과 북한정부 연계로 남한내부 준(準)군사조직 친북 NLPDR 반군(反軍)세력을 건설 하다가 발견되어 제거됨



(2)남한지역에서 한국민족민주전선 계보 명칭

통일혁명당--->반제청년동맹--->반미청년회---->한국민족민주전선---->반제민족민주전선

(3)반제민족민주전선 특징

ㄱ.NLPDR(민족해방인민민주주의 혁명) 단체

반제민족민주전선(한민전)은 스탈린 모택동 김일성 세력들의 NLPDR 모임단체이며 그 중에서도 김일성 김정일주의자 모임단체이다 반제민족민주전선은 주체사상파로 김일성 김정일 세력들이다

-반미민족해방 인민민전쟁론과 인민민주주의 혁명 공산주의를 표방하고 있다

-남과 북 군사적 충돌을 획책하고 있는 인민전쟁신봉자들이다

-북미수교 반대와 핵무기 보유 추진 그리고 항미론자로 구(舊)소련과 중국 정부의 항미론자 세력과 연대를 추구하고 있다(반미 반일 반영 반프랑스적 군사연대조직으로 파악)

ㄴ.주체사상파--김일성 김정일주의자

주체사상연구소(통일학연구소) 운영

ㄷ.대한민국을 부정하고 조선민주인민공화국을 인정하는 세력---대한민국 정부입장에서 볼때 반제민족민주전선(한민전)을 간첩단체으로 규정함

ㄹ.반미국제테러단체--준군사조직 모델

ㅁ.밀입북이나 월북조직

ㅂ.잠수함이나 반잠수함으로 월북하여 간첩교육을 받고 남한에 침투하여 간첩활동

ㅅ.북미수교 반대와 북한정부 핵무기 보유 정당성 옹호

북미수교가 되었을 때는 북한정부에게도 반국가단체로 규정하여 제거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반제민족민주전선(한민전) 조직원은 반미계열 월북자나 국방위(인민무력부) 소속 극렬 반미투쟁가 유가족 소년소녀 만경대 단원 로 구성되어 있는 항미론자들이다

(3)한국민족민주전선과 반제민족민주전선 사이트

ㄱ.한국민족민주전선 사이트(국정원 차단하고 있음)

http://ndfsk.dyndns.org

ㄴ.반제민족민주전선 사이트(국정원 차단하고 있음)

http://ndf-sk.dyndns.org

SK-South Korea

*북한정부 밀수 자료

1.마약류

(1)“북한 관련 마약밀매조직 단속에 큰 성과” - 일본 경찰청 스팸신고

일본 경찰청은 1일 지난해 북한 관련 마약밀매조직 단속에서 큰 성과를 거뒀다면서 그 결과 일본 내 마약반입이 줄고 마약 가격은 급등했다고 밝혔습니다.

일본 경찰청은 1일 발표한 마약범죄 관련 연례 보고서에서 일본 항구에서의 마약검색 등 단속을 크게 강화한 결과 지난 2006년 한해 77명의 마약 밀매범을 검거했다고 밝혔습니다. 이같은 검거실적은 2005년에 비해 두 배가 늘어난 숫자입니다. AP 통신 보도에 따르면 일본 경찰 당국이 강력한 마약단속 정책을 시행한 결과 불법 마약류인 각성제 엠페타민의 일본 내 공급이 최근 급격히 줄어들었고 그 결과 가격도 지난 2002년에 비해 10배가 올랐습니다.

특히 분말형 마약은 2006년 말 그램 당 15만엔에서 20만엔에 거래돼 2006년 봄에 비해 4배가 올랐다고 일본 마이니치 신문은 1일 보도했습니다. 이 신문은 지난해 모두 135킬로그램의 마약이 일본에서 적발됐는데 이는 2005년에 비해 9%가량 증가한 것이라고 전했습니다.

보도에 따르면 특히 일본 경찰당국은 북한 관련 마약밀매조직 단속에서 큰 성과를 거뒀다고 밝혔습니다. 지난해 5월에는 북한으로부터 엠페타민을 일본으로 밀반입하려던 북한의 선박을 나포했다고 밝혔습니다. 이 선박에서 일본 항구 앞바다에 마약을 일부러 떨어뜨리면 그 곳에서 마약밀매 조직원들이 이를 수거해 일본으로 밀반입한다는 것입니다. 일본 경찰청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2002년 일본에서 적발된 마약 메탐페타민의 1/3이 북한산이었습니다.

하지만 AP통신은 최근 일각에서는 북한의 마약밀수범들이 밀매방법을 바꿔 중국인들을 중간 유통책으로 사용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일본 경찰청은 2006년 중국산 엠페타민을 67킬로그램 정도를 압수했는데 이는 전체 압수량에 65%에 달한다고 밝혔습니다.

한편, 지난 25일 미 의회조사국이 발간한 북한 마약 관련 보고서는 지난 2003년 이후 전반적으로 북한산 마약과 그 밀매 관련 사건의 적발 건수가 줄어들었지만 북한산 마약이 중국산으로 잘못 알려져 중국을 통해 수출되고 있는 것도 그 원인 중 하나라고 지적했습니다. 보고서는 또 지난 1976년 이후 마약거래와 관련해 북한 외교관 등 북한 관리가 적발된 건수가 20개 나라에서 모두 50건에 이르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2)북한정부의 각성제 밀수사건
최근 계속되고 있는 북한으로부터의 각성제 밀수사건에 대해 2006년 7월 21일 어제 일본 경찰청의 우루마 이와오 장관은 `북한이 국가차원에서 관여를 한 것으로 보인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밝혔습니다.

우루마 장관은 또 북한이 국가차원에서 관여한 것으로 보이는 2001년 가고시마 현 아마미 오시마 앞바다에서 총격전끝에 침몰한 공작선은 1998년 고치현 앞바다에서 대량의 각성제가 발견됐을 때 사용됐던 북한의 선박과 동일한 사실을 최근들어 경찰당국이 확인한 것입니다.

또 고치현 앞바다에서의 사건과 2000년 시마네 현 항구에 정박중이던 어선에서 대량의 각성제가 압수됐던 사건 그리고 4년전에 한국국적 남성들이 북한으로부터 각성제를 대량으로 밀수하려다가 실패하는 바람에 돗토리 현 해안에 각성제가 흘러들어온 사건이 지난달 적발됐는데 이때 압수한 각성제의 성분을 자세히 분석한 결과 모두 북한에 있는 같은 공장에서 만들어졌을 가능성이 높은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이로 인해 우루마 경찰청 장관은 `일련의 각성제 밀수사건은 북한이 국가차원에서 관여한 것으로 보인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나타냈습니다.

(3)일본 경찰은 각성제를 밀수한 혐의로 민단 계 재일동포 우시윤(59)씨 등 3명을 체포하고 사카이 항에 입항한 북한 화물선 <두루봉 1호> 선내를 강제 수색했습니다.

12일 일본 경찰이 밝힌 민단 계 재일동포 우시윤 씨 등과 북한 화물선 <두루봉 1호>에 대한 혐의는 무엇입니까?

채명석 기자: 일본 경찰에 따르면 민단계 재일동포 우시윤 씨와 극동회 계열 폭력단 두목 미야다 가쓰히코 등은 2002년10월9일 북한 화물선 <두루봉 1호>를 이용하여 각성제 수백 킬로그램을 밀수한 혐의를 받고 있습니다.

일본 경찰에 따르면 <두루봉 1호>가 반입한 각성제를 돗토리 현 부근 바다에 떨어트리면 우시윤 씨 등과 함께 체포된 낚시배 임대업자 곤다 오사무 등이 낚시배로 각성제를 회수해 돗토리 현의 야스기 항으로 몰래 들여왔다는 것입니다. 일본 경찰은 2002년 말 돗토리 현 해안에 표류해 온 각성제 200킬로그램도 이들이 저지른 밀수 사건일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관련성을 추궁하고 있습니다.

한편 북한 화물선 <두루봉 1호>는 일본 경찰의 움직임을 사전에 파악하지 못한 듯 중고 자전거와 자동차 등을 싣고 12일 낮 돗토리 현 사카이 항에 입항했습니다. 일본 경찰은 즉각 사카이 항에 입항한 <두루봉 1호>에 대한 선내 가택 수색을 실시하고 혐의 내용을 입증할 물증 확보에 나섰습니다.

이 각성제 밀수 사건은 어떻게 해서 밝혀진 것입니까?

채명석 기자: 2001년12월 가고시마 현 아마미 오시마 부근 동중국해에서 북한 공작선과 해상 보안청 순시선이 교전을 벌여 북한 공작선이 격침당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일본 경찰은 이 때 침몰한 북한 공작선 선내에서 휴대전화를 수거했는데, 통화 기록 중에 폭력단 관계자와 우시윤 씨의 휴대전화 번호가 남아 있는 것을 발견하고 이들과의 관련성을 수사해 왔습니다. 우시윤 씨는 2004년8월 도난 차를 북한에 수출한 혐의로 후쿠오카 지방법원에서 징역 2년 6개월, 벌금 50만 엔을 선고받은 전력이 있는데, 일본 언론들은 그가 조총련이 아니라 민단 소속이었음에도 북한과 각종 암거래를 저질러 온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일본 경찰은 우시윤 씨 일당이 돗토리 현과 고치 현을 무대로 일어난 각종 북한 산 각성제 밀수 사건을 주도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여죄를 추궁하고 있습니다.

 

(4)북한, 일본 밀수 마약 주요 루트

북한에서 일본으로 밀수돼 압수된 마약이 지금까지 1500kg을 넘어, 일본으로 밀수되는 마약의 주요 루트가 되고 있음에 따라, 일본 경찰청은 해상보안청 등과 연대해서 단속을 강화하고 있습니다.

경찰청에 따르면, 북한으로부터의 마약밀수는 1997년에 처음으로 적발됐습니다.

그후 1999년에는 가고시마현에서 한번에 560여kg이 압수되는 등 지금까지 총 6건이 적발돼, 말단가격으로 800억엔에서 900억엔에 상당하는 1530kg이 압수됐습니다.

마약의 압수량이 가장 많았던 1999년에는 압수된 마약의 40% 이상이 북한에서 밀수된 것으로, 중국 루트와 함께 북한이 밀수의 주요 루트가 되고 있습니다.

북한으로부터 밀수된 마약은 순도가 높고 일정량으로 나누어져 포장돼 밀수되고 있음에 따라, 경찰청에서는 높은 기술과 자금력을 배경으로 조직적으로 제조돼서 밀수되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경찰청은 해상보안청과 세관 등과도 연대해서 단속을 강화하고 있습니다.

(5)북한 마약 밀수의 중심인물 한국국적 우시윤 빈번히 북한 방문

북한에서 수백 킬로그램의 마약을 시마네 현 해안으로 밀수한 혐의로 한국 국적의 남자 우시윤와 도쿄 폭력단 미야타 카쓰히코두목 등이 체포된 사건에서, 이 가운데 한국 국적의 남자가 중국을 경유해 빈번히 북조선에 왕래했던 것으로 보여, 도쿄 경시청은 마약을 밀수하기 위해 북한측과 교섭을 했을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보고 조사하고 있습니다.

이 사건은 2002년 북한에서 수백 킬로그램의 마약을 화물선 등으로 시마네 현 항구에 밀수한 혐의로 한국 국적의 우시윤 용의자와 도쿄의 폭력단 두목이 미야타 카쓰히코 용의자 등 3명이 어제 체포된 것입니다.

이 가운데 우시윤 용의자는 2001년 가고시마 현의 아마미 오시마 앞바다의 동중국해에서 총격전 끝에 침몰한 북한 공작선에서 발견된 휴대폰 주인으로 보여, 북한에서의 마약 밀수에서 이전부터 중심적인 역할을 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6)“北 마약 3대조직은 軍-보위부-깡패”

 “북한 인민군대 산하에 마약거래를 하는 부서가 있다”며 “보위부 산하에 있는 부서와 달리 북한에 있는 깡패들이 제조하고 판매하는 조직도 있다”고 밝혔다.
이 대표는 8일 자유아시아방송(RFA)과의 인터뷰에서 “북한의 마약 판매‧제조 조직이 3개로 나뉜다”며 “서로 경쟁하면서 해외로 판매하고, 최근 주변국의 통제로 마약 밀수 경로가 막히면서 국내로 판로를 바꿨다”고 말했다.


2.북한 담배 밀수

(1)북한의 위조담배 "일본물건" 대량으로 유통. 일본정부 현장분석에 착수 스팸신고

"마일드 세븐"등으로 년수익 7억 달러 

 해외에서 대량으로 유통되고 있는 북한으로부터 출하된 위조 담배 가운데에, 마일드 세븐 등 일본의 상표를 위조한 제품이 대량으로 포함되어 있다고 해서, 일본정부가 대책의 검토에 들어갔다.

 수출액은 년간 1억5000만 달러에 이르며, 김정일 정권의 유지에 공헌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경찰이나 공안조사청이 치안, 외교문제를 상의하는 「합동정보회의」에서도 거론될 방향으로, 금후, 밀조라든가 유통실태의 파악을 진행하여, 적용법령과 형사・외교상의 조치를 검토, 새로운 “대북압력”으로 해 나갈 태세다.

 북한의 가짜 담배밀조를 둘러싸고는, 미정보기관이나 국무성이 조사. 금년4월에는 상원국토안전보장・정부문제위원회의 공청회에서, 취체 당국자가 상세한 조사결과에 근거하여, 미국의 말보르라든가 일본의 마일드 세븐 등의 가자담배의 대량밀조・밀수의 실태를 보고했다.

 재일(在日 ) 미국정부 소식통에 의하면, 북한은, 각국에 투자를 유치하고 있는「나진・선봉 자유경제무역지대」라든가 수도・평양 등 약 10개소에 밀조공장을 두고, 연간 약 20억 상자(400억本)을 제조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한국・연합뉴스에 의하면, 이러한 가짜담배에 의하여 북한은 연간 5억-7억 달러의 수입을 올리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미당국은 2005년 9월까지의 약 3년간 미국 내 23주에서 약 1300건, 위조담배의 유통을 확인했다.

 일본의 관계기관도, 북한에 여행한 경험자라든가 해운관계자 등의 증언 등으로부터 북한의 나진항 등이 선적지로 되어 있다는 사실을 파악. 대만, 중국남부를 포함한 동남아시아 지역에서 유통되고 있는 가짜 담배 가운데, 마일드 세븐 등 대량의 일본의 브렌드를 위조한 제품이 존재하는 것을 확인했다.

 북한은 가짜담배에 의해서, 위법에 년간 1억5000만 달러 이상의 수출실적을 올리고 있는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공안당국은, 상용으로 나진・선봉을 방문한 인물 등이 「상품견본(商品見本)」으로서 일본으로 향해 수출된 담배의 일부를 입수했다. 일본담배산업에서 감정한 바, 외장(外装)필림에 인쇄된 제조기호 ▽ 페키지의 성형방법이라든가 잎담배 쪽이, 정교한 위조품이라는 것이 판명, 「잎의 향기라든가 맛에 대해서는, 한 모금만으로도 진한 떫은맛을 느낄 수 있는 대용품」(공안당국자)이다.

 담배의 제조라든가 유통・판매는, 담배사업법에 의하여 규제되며, 상품으로서의 취급은 등록이 필요. 위법으로 제조, 판매되었을 경우에는 최고로 1년 이하의 징역 등이 과해진다.

 하지만, 「북한처럼, 외국에서 제조한 일본(日本)브랜드의 가짜담배를 제삼국에 매각하고 있을 경우, 취체 할 수 있는 법률이 없다」(경찰당국). 이 때문에 일본정부는, 대처방법을 연구하기 위해, 북한에 대한 종합적인 압력을 검토하고 있는 납치문제특명 팀으로서, 이미 현장의 분석에 착수했다. 또한, 합동정보회의에서 의제로서 상정시킴으로서, 멤버의 외무, 경찰, 방위, 공안조사 등 각성청 간의 정보공유화를 촉진하여, 대응책을 검토할 방침이다.

(2)北, 불법적인 외화획득 위조 담배・의약품, 미사일… 美청문회 증언
産經新聞 2006. 4. 27

【워싱턴=古森義久】미국의회상원이 25일에 열린 청문회에서, 북한의 국가주도의 마약밀매, 위조 담배와 의약품의 수출, 위조지폐 인쇄 등「범죄국가」의 실태가 부시 정권의 고관들에 의해 증언되었다. 북한이 최근, 이란에핵탄두장착이 가능한 탄도 미사일을 몰래 판매한 것도 보고되었다. 

同상원국토안전보장・정부문제위원회의 국제안전보장 등의 소위원회가 「북한=정권에 자금을 제공하는 위법활동」이라는 제목으로 열린 청문회에서,국무성국제마약단속실의 피터・플레이어 실장은, 북한이 과거 30년정도 국가가 주도하여 마약을 제조하는 한편, 해외의 자국외교관을 동원해서, 마약을 밀매하여, 합계 20개국에서 50명이상의 외교관이 체포되었다는 사실을 보고했다. 同실장에 의하면, 북한의 마약밀매는 김정일 정권하에서 더욱 활발해져, 일본과 중국으로의 밀수가 최대로 되어 있다. 

同실장은 또한, 북한 당국이 위조 담배를 대량을 제조, 밀매하고 있다면서,미국의 말보로나 일본의 마일드세븐이라는 브랜드 위조의 실례를 제시했다. 

국토안전보장성 소속의 시크리트・서비스 대표인 마이클・메릿트씨는 북한당국의 美달러지폐 위조에 대해서, 「미국수사당국은 16년전부터 북한제 위조 백달러 지폐을 발견하고, 현재까지로 5천만 달러상당을 압수했다」고 증언했다. 

前국무성 동아시아태평양국고문의 데이비드・아샤씨는, 북한이 최근, 미국과 일본의 의약품의 위조를 시작했다고 보고함과 동시에, 북한 당국이 매년, 평균 5억5천만달러 정도의 외화를 이러한 유의 위법활동에 의하여 조달하고 있다고 증언했다. 

그는 북한의 불법적인 외화획득 방법으로서, 핵무기, 화학무기 등의 관련기술이나 재료의 수출을 들면서, 가장 현저한 실례로서 작년 말에 판명된 북한의 BM25탄도미사일 18기의 이란으로의 비밀수출을 밝혔다. 同미사일은 구소련의 SSN6탄도미사일의 개량형으로서, 핵탄두의 장비가 가능. 射程은 수천킬로로서, 이란이 배치할 경우, 중동뿐만아니라 유럽 대부분의국가가 射程內에 들게 된다고 한다. 

*북한정부의 위조 담배(미국의 말보로, 일본의 마일드 세븐등)와 의약품(비아그라등) 판매 개시

*북한정부의 마약밀매

*북한정부의 위조지폐발행

*북한정부의 미사일 판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