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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알(I=intelligence)센터:범청학련 소개, 역사, 강령과 규약 그리고 범청학련 비판 자료 본문

Guide Ear&Bird's Eye/국가안보 위해사범(NLPDR) 자료

동아시아 알(I=intelligence)센터:범청학련 소개, 역사, 강령과 규약 그리고 범청학련 비판 자료

CIA bear 허관(許灌) 2006. 9. 3. 13:48
1.조국통일범민족청년학생연합(약칭:범청학련)이란?

범청학련은 조국의 자주적 평화통일을 염원하고 범청학련의 강령과 규약을 승인하는 남과 북, 해외의 각계각층 청년학생조직들을 망라하는 전민족적인 청년학생통일운동연합체입니다.

청년학생답게 7천만겨레의 조국통일투쟁의 구심체인 범민련을 사수하고 강화하는 것과 청년학생들의 일상적이고 안정적인 조국통일투쟁을 위해 1992년 8월 15일에 결성되었습니다.

 

(1)범청학련 조직체계

범청학련 총회: 남북해외 각 200인 총 600명으로 구성
범청학련 중앙위원회: 남북해외 각 25인 , 총 75명으로 구성
범청학련 공동의장단: 남북해외 각 11인(해외는 의장2인), 총 34명으로 구성
범청학련 지역조직:북측본부, 남측본부, 해외본부(일본지부, 중국지부, 러시아지부, 미국, 카나다, 유럽, 오스트레일리아 등에 지부를 두고 있으며 각 지부산하에 지회를 두고 있다.)
범청학련 공동사무국: 현재 해외본부에서 임시 공동사무국의 역할을 진행중

 

(2)범청학련 공동의장단 소개

범청학련 공동의장단은 각 지역별로 중앙위원중 의장 1인 (해외는 2인), 부의장 10인씩을 선출하여 전체 34인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해외본부는 공동의장만 소개합니다.)

ㄱ.북측본부

의장- 김인호
부의장- 최국건 조선학생위원회 위원장
조영민 사무국장
박정철 김일성사회주의 청년동맹중앙위원회 부부장
최대영 문화성청년동맹 1비서
환호영 평양시청년동맹 비서
양순철 김일성종합대학 학생위원회 위원장
장원섭 강원도 학생위원회 위원장
리남섭 량강도 학생위원회 위원장
옥수복 평안북도 학생위원회 위원장
성영순 평양제사공장 청년동맹 비서

ㄴ.남측본부

의장- 윤기진

상임부의장- 정재욱 한총련 의장

부의장- 황선 대변인

한총련 조국통일위원회 위원장

서총련의장   

 

경인총련의장

충청총련의장

남총련의장

대경총련의장

부경총련의장  

 

청년대표

 

ㄷ.해외본부

공동의장- 강성실 재일 한국청년동맹 중앙본부위원장
고덕우재일본조선청년동맹중앙상임위원회위원장

 

(3)범청학련 남측본부 조직체계

남측본부 중앙위원회 25명(의장단, 사무부국장, 의장단에서 추천한 중앙위원)
남측본부 의장단회의 11명
남측본부 중앙집행위원회(의장, 상임부의장, 사무국장, 사무부국장)

 

2.범청학련의 역사

 

(1)범청학련 결성배경

87년 6월 항쟁 이후 이남민중들 사이에 조국통일에 대한 열망들이 봇물처럼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특히나 민중들의 투쟁참여를 소극적으로 만드는 반북이데올로기를 경험하였던 청년학생들은 통일의 상대방인 이북에 눈을 돌리기 시작하였다.

88년 당시 서울대학교 총학생회장 후보가 김일성 종합대학에 제안한 남북 청년학생 체육회담건을 시작으로 하여 일어난 청년학생들의 과감한 투쟁은 사회전반에 통일이라는 두 글자를 새롭게 인식시키기 시작했던 것이다.

이때부터 조국통일을 위한 북측과의 연대문제는 초보적인 형태로나마 그 물꼬를 트기 시작했으며 이러한 노력의 결과로 1989년 임수경 대표의 방북이 뜨거운 열기속에서 성사될 수 있었다. 임대표의 방북활동을 통해 남녘의 대학생들은 조선학생위원회라는 조직에 대해 직접적인 자각을 갖게 되었고 북녘의 대학생들과 전체인민들은 전대협이라는 이남 대학생들의 조직에 대해 직접적인 자각을 갖게 되었던 것이다.

이렇듯 전민족적으로 단합된 역량이 조국통일 투쟁의 주체로 서는 과정은 서로의 존재를 자각하기 위한 청년학생들의 투쟁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이듬해 전대협은 범민족대회 등 안에서 <남북해외동포 청년학생 통일대축전>을 진행할 것을 계획하였고, 1991년 초 북과 해외의 청년학생들에게 이를 제안하였다.

 

(2)범청학련 결성 준비과정

1991년 8·15 청년학생통일대축전은 범청학련의 결성을 합의하게 된 주요한 계기였다.

이미 남북해외 청년학생 차원의 연대조직을 결성하는 문제가 대두되기는 했었지만 8·15통일대축전을 통해 확인된 청년학생의 통일열기는 연대조직의 결성의 필요성과 자신감을 더욱 확고히 해주었다.

평양에서 진행된 1차 청년학생통일대축전 총화회의를 통해 남녘의 전대협과 북녘의 조선학생위원회 그리고 해외동포 청년학생들은 1년간의 준비기간을 가진 뒤, 조국통일범민족청년학생연합(애초에 전대협은 조국통일범민족학생연합, 즉 범학련의 결성을 제안하였으나 해외측 대표단은 해외의 경우 재일본조선대학교를 제외하고는 민족대학이 없으며 주요 역량이 청년단체들에 있는 점을 들어 조직명칭에 청년을 추가할 것을 제기하였고 이에 따라 조국통일 범민족 청년학생연합으로 명칭이 수정되었다)을 결성하기로 합의하였다. 또한 3자는 결성준비 사업을 위해 베를린에 연락본부를 건설하기로 하였고 전대협은 이 연락본부에 박성희 성용승 두 대표를 파견하였다.

1991년 12월 베를린에는 남 북 해외 청년학생들의 최초의 공동기지, '범청학련 결성을 위한 남, 북, 해외 공동연락본부(이하 공동연락본부)'가 건설되었다. 공동연락본부는 범청학련의 결성 이전부터 남북해외의 3자의 상시적인 회담의 장으로서, 연결의 매개고리로서 남쪽의 파견대표가 직접 상주 운영하였다. 이는 그 어떤 정형도 없던 3자연대운동을 균형적으로 안정적으로 발전시켜나가는데서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당시 남북해외 청년학생들이 범청학련을 결성하기로 합의하게 된 데에는 몇 가지 주요한 이유가 있었다. "남과 북 해외에서 벌어지는 통일투쟁을 하나로 집결하며, 3자연대 연합을 실현하고 통일적인 운동을 전개하기 위해서는 투쟁의 구심체가 있어야 한다.(1991년 8·15청년학생 통일대축전 총화보고문 중에서)"는 말처럼 그간 반국적 차원에서 진행되었던 통일운동이 가질 수밖에 없었던 한계에 대한 자각이 있었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남북해외가 연대운동을 안정적으로 전개할 수 있는 틀이 필요하다라는 인식이 있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남북해외가 연대운동을 안정적으로 전개할 수 있는 틀이 필요하다라는 인식이 있었다. 더불어 위에서 언급한 바 있지만 전민족적 통일운동체의 건설이 요구되어지는 시점에서 당시까지 조직적으로 완결되지 못했던 범민련을 지원 강화해야 한다는 것과, 각 계급계층별 연대조직의 건설을 추동해야 한다는 문제의식도 작용하였다.

보다 현실적인 이유는 이남학생운동 자체의 요구성에 기인하다. 88년 이후 이남의 청년학생 통일운동은 점차 대중적인 지평을 넓혀가고 있었으며, 조국통일의 구체적인 경로까지도 모색되어지고 있었다. 이 속에서 이남의 청년학생 통일운동은 남북해외 청년학생들과의 본격적인 연대를 통해 분단 2세대간의 차이점을 극복하고 민족대단결의 기초를 마련해야 한다는 전망을 내오게 된다. 그 당시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었던 편지교환투쟁의 경우만을 보더라도 공동연대의 틀을 형성하는 문제는 매우 절실한 과제였다.

1992년 3월 25일 전대협은 92년 8·15에 범청학련을 결성할 것을 목표로 남북해외에서 4월 중순에 공히 범청학련 건설준비위원회를 발족시키자는 것을 제의했으며 이에 따라 4월 12일 범청학련 건설을 위한 남측준비위원회, 북측준비위원회가 결성되었으며 해외의 경우 "범청학련건설을 위한 재일 동포 청년학생준비위원회"(후에 범청학련 건설을 위한 해외준비위원회로 확대됨)가 발족되었다.

건준위가 주요하게 생각한 향후 사업은 4월 28일 평양회담, 6월 25일 서울회담을 통해 2차 청년학생통일대축전과 범청학련 결성식을 준비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남당국의 극심한 방해책동으로 범청학련 남측건설준비위원회의 활동은 원활하게 가져갈 수 없었다.

7월 15일로 예정된 2차 실무회담을 팩스를 통해 진행하기로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성사시키지 못하였으며 8월초에 이르러서야 8·15 청년학생통일대축전(서울)행사와 범청학련 결성식에 사용될 각종 문건들을 주고 받을 수 있었다. 결국 8월 15일 범청학련은 평양과 서울에서 결성을 선포하였는데 남측본부의 경우 대회장의 침탈로 결성식 하루 전에 의장이 연행되었고 장소를 옮겨가며 행사를 진행한데다 범청학련의 결성식이 시작되자마자 다시 또 대회장이 침탈되어 '너무 매워서 눈을 감고 결성선언문을 읽었다'는 이야기가 있는가 하면 '선언한다'라는 얘기밖에 못들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웃지 못할 눈물겨운 이야기들로 범청학련은 탄생의 순간을 맞았다.

이러한 범청학련의 결성은 기존에 진행되어오던 반국적 통일운동의 한계를 뛰어 넘게 하였으며, 전민족적 통일운동체의 건설에 있어 청년학생들이 사명을 실천적으로 검증하는 계기가 되었다.

 

(3)범청학련의 투쟁역사

1993년 범청학련 3차 축전

팀스피리트 저지를 위한 남북해외 공동 결의대회
6.12조국반도의 평화실현과 자매결연 성사를 위한 판문점회담
1차 범청학련 공동의장단 회의

1994년 4차 축전

반미반전 평화실현과 민족대단결 실현, 연방제 통일방안을 확산, 범청학련 강화, 95년 통일원년 실현을 위한 투쟁과제를 합의

1995년 5차 축전

평화협정체결과 국가보안법 철폐, 연방제 합의확산을 기조
정민주, 이혜정 대표들의 방북은 남북해외3자가 5차 통일대축전의 장에서 연방제 통일방안을 합의하고 널리 확산시키는데 커다란 역할을 하였다.
6.3남북해외 청년학생대회
2,3차 공동의장단 회의
1차 중앙위원회

1996년 6차 축전

1차 범청학련 총회와 연석회의 진행
9박 10일의 연대항쟁
4.27 광주학살 배후조종 미국반대와 한미군사훈련의 영구중지, 조-미 사이의 평화협정체결을 위한 범청학련 결의대회
5월의 조국의 평화와 민족대단결을 위한 남북해외 청년학생 선언대회
미국개입규탄과 전쟁군사훈련 반대를 뛽나 범청학련 공동집회

1997년 7차 축전

2차 총회 진행
14차 세계청년학생축전과 2차 연석회의는 꾸바 아바나에서 범청학련 남측본부 대표 조응주 학우가 참여하여 성사하였다.
4.28범청학련 공동집회
7.4남북공동성명 25돌 기념집회와 공동호소문

1998년 8차 축전

3차 총회와 연석회의를 진행
김대원, 황선 대표를 파견하여 총회를 성사하였으며 북녘문화유적답사를 진행
4.28김세진 범청학련 반미투쟁선포식
6.13 남1대학 북1대학 자매결연 예비회담과 북녘문화유적답사를 뛽나 6.13 남북청년학생회담
7.27 조국반도 평화정착 실현을 위한 범청학련 결의대회
10.3범청학련 민족의 날 선포 투쟁

1999년 9차 축전

자주교류의 활성화로 지역별 체육대회를 진행
미국의 한반도 전쟁책동 분홰를 위한 4.28범청학련 집회
미국의 전쟁책동 분쇄와 조국의 자주, 평화, 통일을 위한 4.28범청학련 결의대회
10.3 범청학련 민족의 날 선포 기념집회

2000년 10차 축전

6.15 공동선언 채택 이후 변화된 정세에 맞게 지역별 행사로 개최.

 

* 2001-2003년 활동은 별도로 정리

 

3.범청학련의 강령과 규약

일제의 가혹한 식민지배 아래서도 세차게 전개되었던 반일반봉건 투쟁의 빛나는 전통을 이어받아 우리 청년학생들은 미제에 의해 조국이 분열된 이후에도 통일된 자주독립국가의 건설을 열망하여 줄기찬 투쟁을 전개하여 왔다. 세계에서 가장 강하다는 제국주의도 나라와 맞서 싸워온 민족해방투쟁의 과정은 실로 험난한 시련의 길이었으며 또한 우리 민족의 위대성을 내외에 과시한 영광찬 승리의 길이었다.
  남과 북(북과 남)에 각각 체제를 달리하는 정부가 들어선 이후에도 남과 북, 해외동포 청년학생들의 조국통일 투쟁은 꺼질 줄 모르고 타올랐다.
  4·19민주혁명을 계기로 분출된 남녘의 통일열망은 때를 같이한 북녘, 해외동포 청년학생들의 투쟁과 함께 우리 민족의 통일운동을 한 단계 발전시켰으며 80년 광주민주항쟁은 반미의 무풍지대였던 남녘 땅을 반미의 열풍지대로 바꾸어놓고 말았다. 이 투쟁들의 최전선에 서있던 것이 바로 우리 청년학생들이었다.
  88년 남북청년학생회담 성사투쟁으로부터 대중적으로 다시 불붙기 시작한 청년학생들의 조국통일투쟁은 89년 평양 남북(북남)청년학생공동선언문의 채택이라는 커다란 성과를 이루었으며 91년 남북(북남), 해외동포청년학생통일대축전 성사투쟁을 통하여 청년학생들의 조국통일투쟁은 질적으로 비약하는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였다.
  이러한 투쟁의 성과 우에서 우리 청년학생들은 남과 북(북과 남), 해외동포 청년학생들을 모두 포괄하는 단일한 조직, 조국통일범민족청년학생련합(범청학련)을 건설하는 역사적위업을 이루어낸 것이다.
  우리 남과 북(북과 남), 해외 청년학생들은 범청학련의 깃발아래 2000년 가까운 몇 해안에 조국의 통일을 기필코 실현하겠다는 굳은 결의로 다음 강령을 채택한다.    

(1)강    령

1. 조국통일 3대헌장의 정신이 구현된 6.15남북공동선언을 범청학련의 통일운동강령으로 틀어쥐고 2000년대 가까운 앞날에 조국통일을 실현하기 위해 투쟁한다.
2. 민족의 내부문제와 관련한 어떠한 외세의 개입과 간섭을 배제, 반대하여 민족의 자주성을 옹호, 실현하기 위해 투쟁한다.
3. 조국통일의 최대 장애물인 남조선 강점 미군과 그의 핵무기를 완전히 철수시키고 남과 북(북과 남)의 군축을 실현하여 조국반도를 비핵, 평화지대로 만들기 위해 투쟁한다.
4. 일본의 군국주의화와 재무장화를 반대, 배격하며 일본의 재침기도를 저지하기 위해 투쟁한다.

5. 민족의 자주적, 평화적, 통일의 유일한 길은 연방제 방식의 통일임을 천명하며 그의 실현을 위해 투쟁한다.
6. 각계각층 통일애국 단체들의 자유로운 활동을 가로막는 온갖 책동을 반대하고 남과 북 (북과 남) 해외청년학생들간의 자주적인 교류와 협력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한다.
7. 같은 동포형제들을 <적>으로 규정하고 있는 <국가보안법>의 철폐와 장기수들의 비롯한  모든 양심수들의 석방을 위해 투쟁한다.
8. 조국통일범민족연합(범민련)이 남과 북(북과 남), 해외동포들을 모두 망라하는 유일한 애국적 통일운동단체임을 인정하며 범민련의 선봉대로서 투쟁한다.
9. 조국반도도 평화와 통일을 지지하는 전 세계 진보적 청년학생들과의 적극적 연대를 실현하기위해 투쟁한다.

(2)규    약

제1장 총칙

제1조 범청학련은 조국의 자주적 평화통일을 염원하고 범청학련의 강령과 규약을 승인하는 남과 북(북과 남), 해외의 각계각층의 학생조직 및 청년조직을 망라하는 전민족적인 청년학생통일운동연합이다.
제2조 범청학련은 민족의 자주와 평화통일을 가로막는 외세를 반대하고 민족의 대단결을 실현하기 위해 투쟁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제3조 범청학련은 7.4남북공동성명에서 천명한 자주, 평화통일, 민족대단결의 조국통일 3대  원칙과 조국통일을 위한 전민족대단결 강령, 연방통일국가창립방안의 조국통일 3대헌장을 지침으로 삼는다.
제4조 범청학련은 조국통일을 실현하는 과정에서 민족적 이익을 최우선에 두며 남과 북(북과 남), 해외동포청년학생들의 의사를 대변한다.
제5조 범청학련은 범민련의 소속단체로서 활동한다.

제2장 조직원칙과 조직구조     

제6조 범청학련은 조국의 자주적 평화통일을 염원하고 범청학련의 강령과 규약을 승인하는 남과 북 해외의 모든 학생조직 및 청년조직들로 구성한다.
제7조 범청학련은 민주주의원칙, 3자합의 원칙에 의하여 조직되고 운영된다.
제8조 범청학련에 가입한 남과 북(북과 남), 해외의 모든 청년학생조직들은 동등한 자격과 권리를 가지며 조국통일을 위한 투쟁에서 공동행동의 의무를 가진다.
제9조 범청학련은 중앙조직과 남과 북, 해외에 각각 지역조직을 가지며 공동사무국을 둔다.

제3장 중앙조직

제10조 범청학련의 최고의사결정기구는 조국통일 범민족청년학생연합 총회이다.
제11조 총회는 다음과 같이 구성하고 운영한다.
   1) 남북, 해외 각각 200인의 대의원으로 구성한다.
   2) 각 지역 대의원은 각 지역중앙위원회에서 그 구성을 책임진다.
   3) 각 지역 대의원들은 범청학련에 포괄된 그 지역의 모든 조직원을 대표할 수 있어야 한다.
   4) 총회는 원칙적으로 중앙위원회 결정에 따라 1년에 한 번 소집한다. 단, 공동의장단의 결정에 따라 소집할 수 있다.
   5) 총회의 성립 요건은 3자합의와 1/2이상의 참여로 한다.
제12조 총회는 다음과 같은 사업을 한다.
   1) 한(조선)반도에 조성된 정치정세를 토론하고 조국의 자주와 평화통일을 촉진하기 위한 대책적 과업들을 협의 결정한다.
   2) 범청학련 강령과 규약을 채택, 수정, 보충한다.
   3) 기타 필요한 사안을 심의 결정한다.
제13조 범청학련중앙위원회는 총회와 총회사이에 제기되는 모든 사업을 협의 결정한다.
   1) 범청학련중앙위원회는 각 지역대표 25명씩 총 75명으로 구성한다.
   2) 범청학련중앙위원회는 총회의 결정에 따라 범청학련의 실천지침을 정하고 그 집행을 추진한다.
   3) 범청학련중앙위원회는 1년에 두 번 정기적으로 소집하며 필요에 따라 임시 또는 비상 중앙위원회를 소집할 수 있다.
   4) 범청학련중앙위원회는 그때그때 제기되는 중요한 문제들을 토의 결정한다.
   5) 범청학련중앙위원회는 총회의 소집을 결정하고 총회날짜와 장소 및 의사 일정을 결정한다.
   6) 범청학련중앙위원회는 소집은 의장 또는 공동의장단1/3이상, 총회대의원 1/3이상의 요청에 의해 소집을 제기할 수 있으며 3자합의와 1/2이상의 참여로 성립한다.
제14조 범청학련공동의장단은 중앙위원회가 개최될 때까지 제기되는 모든 문제들을 협의 결정한다.
   1) 공동의장단은 각 지역별로 중앙위원 중 의장 1인(해외는 의장 2인), 부의장 10인씩을 선출하여 전체 34인으로 구성한다.
   2) 범청학련 4인의 공동의장은 중앙위원회와 공동의장단회의 사회를 윤번제로 실시한다.  이 경우 해외는 2인의 공동의장 중 1인이 사회를 맡는다.
   3) 범청학련공동의장단은 범청학련에 참여하는 각 조직들 사이에 제기되는 제반 문제들을 협의 결정한다.
   4) 공동의장단회의는 의장 또는 의장단 1/3이상의 요구가 있을 때 소집하며 3자합의와  1/2이상의 참여로 성립된다.
제15조 총회대의원, 중앙위원, 공동의장단의 임기는 원칙적으로 1년으로 한다. 북과 해외는 연임할 수 있다.
제16조 남과 북의 현 상태를 고려하여 총회와 중앙위원회, 공동의장단회의 설립에 필요한 정족수는 각 본부 해당 중앙조직의 위임에 의한 대표의 참가로 대신할 수 있다.

제4장 지역조직

제17조 범청학련 지역조직으로 남과 북, 해외에 각각 지역본부를 둔다.
   1) 범청학련지역본부는 중앙위원회를 구성하며 중앙위원회에서 의장단을 선출한다. 각 지역 의장단의 수는 11인(의장 1인, 부의장 10인, 해외는 12인 즉 의장 2인 부의장 10인)으로 한다.
    2) 범청학련해외본부 밑에는 일본, 미국, 캐나다, 유럽, 독립국가협동체련합, 중국, 오스트랄리아 등에 지부를 둘 수 있으며 각 지부 산하에는 지회를 둘 수 있다.
제18조 범청학련지역본부에는 사무국과 그 외 필요한 실무 부서들을 둔다.
제19조 범청학련지역본부 의장단회의, 중앙위원회, 총회는 다음과 같은 사업을 한다.
    1) 해당 지역에서 중앙조직의 결정을 집행하며 해당 지역의 활동을 통일적으로 지휘, 조성한다.
   2) 지역에서의 통일운동방향과 투쟁과업을 정하고 총괄한다.
   3) 지역본부의장단을 선출, 교체하며 사무국장을 비준한다.
제20조 지역조직 간부들의 임기는 원칙적으로 1년으로 한다. 지역실정에 따라 연임할 수 있다.
제21조 각 지역조직은 17, 18, 19, 20조를 준수하는 한에서 자기 실정에 맞게 시행세칙을 가질 수 있다.

제5장 공동사무국

제22조 범청학련공동사무국은 중앙위원회와 공동의장단이 결정한 사항들을 구체적으로 집행하고 각 지역조직들 사이의 연계를 보장하며 공동의장단회의를 보좌한다.
   1) 범청학련공동사무국장은 3본부 상부대표들이 1년을 임기로 윤번제로 맡아한다.
   2) 공동사무국에는 남북, 해외 공히 1명 이상 동수의 상근자를 마련하여야 하며 장소는 파견이 가능한 제3국으로 한다.

제6장 재정

제23조 범청학련의 재정은 가입조직의 회비와 헌금, 수익사업 등으로 공동 부담한다.
   1) 지역본부의 재정은 각 지역에서 해결한다.
   2) 공동사무국의 수입은 남북, 해외지역본부의 의무분담금과 헌금, 자체 내 수익사업으로 충당하고 지출은 공동사무국의 제반 운영으로 쓴다.
   3) 공동사무국의 예산안은 공동사무국에서 작성하고 각 지역본부는 의무 분담금납부를 책임진다.
   4) 각종 행사비와 중앙조직 회의 운영비는 남, 북, 해외가 공동 부담한다.

제7장 부칙

제24조 강령과 규약의 수정, 보충은 총회대의원 1/3이상이 발의할 수 있고 총회에서 2/3이상 대의원이 동의로 수정 보충할 수 있다.
제25조 본 규약은 범청학련 제 5차 총회에서 공표한 직후부터 공식적인 효력을 갖는다.
제26조 본 규약은 범청학련 제 5차 총회에서 개정한다.
제27조 범청학련 제 5차 총회가 열리기 전까지는 본 규약을 범청학련 공동의장단의 안으로 하고 범청학련 운영의 기준으로 삼는다. 범청학련 제 5차 총회에서 본 규약을 비준하면 이 조항은 자동적으로 폐기된다.

범청학련 홈페이지 http://bchy.jinbo.net

 

 

4.범청학련의 비판

(1)범청학련은 전대협(한총련) NLPDR(민족해방인민민주주의 혁명) 주사파 학생들의 모임단체이다

남과 북이 통일을 하기 위해서는 자본주의민주주의 혁명 후 자유주의와 사회주의 공존 열린사회가 돼야 한다는 것이 국제적 시각이다 러시아 푸틴정부는 자유민주정부이고 중국 호금도 정부는 사회정부 그리고 북한 김정일정부는 공산정부이다

미국과 서방의 적은 자본주의민주주의 혁명 후 자유주의자나 사회주의자가 아닌 전쟁신봉 항미론자 반자(反資).반제(反帝) 공산주의자 그룹이다

한총련이나 범청학련이 남과 북 통일주도세력이 되기 위해서는 민주화운동이 자본주의민주주의 혁명 후 자유주의와 사회주의 공존 열린사회를 추구해야 하며 북한 김정일 공산정부도 비판세력이 돼야 한다는 것이다

북한 김정일 공산정부가 수평적 권력교체 중국 호금도 사회정부 모델나 수직적 권력교체 러시아 푸틴 자유민주정부 모델로 권력교체를 추진할때는 자연히 남과 북은 통일이 될 수 밖에 없다고 본다

범청학련이 전쟁신봉 항미론자 공산주의를 신봉하는 NLPDR(민족해방인민민주주의 혁명)세력이라면 21세기 지금의 시대에는  범청학련을국제테러단체로 한국정부나 미국정부, 유엔이 규정할 수 밖에 없다고 본다

 범청학련이 전쟁신봉노선 항미론  NLPDR(민족해방인민민주주의 혁명)을 포기하고 자본주의민주주의 혁명 후 자유주의 노선(우파)과 사회주의 노선(좌파) 공존 열린사회를 추구하는 것이 남과 북 통일에 도움이 되는 세력이 될 것으로 본다

(2)범청학련은 북한 대남공작기관 통일전선부 하부 "반제민족민주전선" 조직노선과 비슷하다는 것이 문제가 있으며 "반제민족민주전선 서울대표부" 지역 조직이라는 말도 나오고 있다

반제민족민주전선은 과거 통일혁명당과 한국민족민주전선 조직이다 반제민족민주전선은 NLPDR단체로 대한민국을 부정하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인정하는 월북자들의 대남활동 조직이다 반제민족민주전선은 남한정부에서 볼때 간첩이나 고정간첩망이고 북한정부에서 볼때는 애국자나 애국투쟁단체로 취급되고 있으며 미국이나 일본, 러시아 정부에서 볼때는 극력민족주의 NLPDR 테러단체로 취급되고 있다

중국에서도 반제민족민주전선이 중국정부 자유화 개방화 그리고 주은래. 등소평 실용주의를 비판하고 전쟁신봉 항미론를 부추기는 임표노선으로 상당히 우려대상 조직으로 취급하고 있다

(3)범청학련이나 친북 전쟁신봉 항미론자들이 남북군사정부 등장을 지원하는 배후세력으로 지목하는 자료도 나오고 있다 북미수교를 반대하고 북한 핵무장을 주장하는 국가사회주의 정부를 옹호하는 자료들이 범청학련이나 범민련,한총련등이 반제민족민주전선 동일조직으로 남한이 공산화돼야 한다는 입장을 옹호하고 그 과정도 전쟁을 추구하고 있다는 것이다

반제민족민주전선은 남한정부에 대한 테러를 중단하고 대한민국과 미국을 인정하는 현실적인 노선을 추구해야 할 것이다

 

 

*반제민족민주전선(한국민족민주전선, 통일혁명당)
서울에서 활동하고 있는 <반제민족민주전선>은 1968년에 <자주. 평화. 민족대단결>이란 구호를 웨치며 <통일혁명당>이란 이름으로 남녁 민중들에게 첫 얼굴을 보이였다
이 단체에서는 미국이 우리나라에서 군사적 행동을 하고 있는 것에 대해 강력하게 비난하고 하루 빨리 미군이 철수하고 자주적 평화통일을 이룰 것을 주장하였다
한편, <반제민족민주전선>에서는 <구국의 소리방송>(통일혁명당 목소리 방송)을 운영하면서 남녘에서 활동하고 있는 진보적 단체와 평화단체들의 활동 소식을 이북 인민들에게 널리 선전하였다
<반제민족민주전선>에서는 <구국전선>과 <통일전선>이라는 두 기관지들을 발행하고 있으며 <통일전선>은 지난 2002년 2월 16일부터 발행되고 있다
정녕 <반제민족민주전선>은 조선반도의 평화를 위하여 몸을 바쳐 싸운 애국단체이며 오늘날에도 통일을 위한 길에 열심히 투쟁하고 있다
<반제민족민주전선>에서는 지난 1998년부터 인터네트 봉사를 하고 있으며 <반제민족민주전선>의 홈페이지에 접속하면 김일성주석의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을 전자문서와 조선문워드프로세서 파일로 내려 받을 수 있으며 다매체 영상물과 기관지 <구국전선>(1998년부터 2003년까지)의 기사들을 인터네트에서 볼 수 있다
<반제민족민주전선>에서는 서울본부와 일본본부가 있으며, 아시아대륙과 구라파대륙, 아프리카 대륙에서 8개가 운영되고 있다
<반제민족민주전선>은 지난 2005년 3월 29일 <한국민족민주전선>(한민전)에서 <반제민족민주전선>으로 이름을 바꾸였으며 올해로 37돐을 맞는다
http://aindf.dyndns.org
-----반제민족민주전선과 구국전선 선언문---

(1)반제민족민주전선이란
ㄱ.반제민족민주전선 노선
NLPDR(민족해방인민민주주의 혁명)=반미민족해방 인민민주주의 혁명론
1단계---반미민족해방전선=반미인민전선=무장투쟁과 전쟁 그리고 통일전선구축
2단계---인민민주주의 혁명=사회주의 혁명과 사회주의 국가수립--공산주의 국가수립
ㄴ.반제민족민주전선 역사
한국전쟁 전후 북로당 중심의 김일성계열 조국전선(조국통일위원회)--->통일혁명당---->반미청년회---->한국민족민주전선(1990년 1. 1)--->반제민족민주전선(2005.3.29)
(2)반제민족민주전선 계보---반미청년회 계보(NLPDR---김일성.김정일주의자)
(3)활동지역
일본지역 조총련과 남한지역 친북단체(전국연합 주축으로 범민련. 범청련. 한총련.농민단체나 노동단체등) 그리고 유럽이나 남미. 동남아. 아프리카 지역에서 NLPDR 반미단체나 공산주의자 그룹등
(4)활동자금
북한정부 지원으로 각종 사업으로 자금모금으로 활동(숙박이나 주류. 술집. 서점. 인터넷상으로 쇼핑몰이. 주식.매춘. 노동조합 회비. 마약거래나 무기거래등으로 자금활동:주점과 서점 그리고 조합회비로 모금함)
(5)주요 투쟁
ㄱ.유언비어 살포나 북한정부 선전 그리고 김일성 김정일 홍보나 선전
ㄴ.미국이나 우파 건물이나 인사 피습이나 파괴
ㄷ.남북전쟁이나 미국과 전쟁 때 무장혁명 학습이나 무장 게릴라활동 연습
ㄹ.잠수함등으로 남북군사활동과 남한지역에서 모의 입북이나 잠수함 입항 연습--군사고문단 활동
ㅁ.사이버전쟁 연습과 침투방법 교육
(6)반제민족민주전선 계보
한국민족민주전선 서울대표부 위장단체 명칭이다
http://ndf-sk.dyndns.org
*SK-South Korea
북한정부 대남공작부서는 대남사업담당 비서 산하에 통일전선부(사회문화부=통일전선구축-조국평화통일위원회), 대외 정보조사부(35호실, 통일전선 구축 점조직 조사와 자료 수집 분석 판단등), 대외연락부(35호실 분석 자료 바탕으로 간첩선 구축 즉 연락선이나 점조직망 구축), 작전부(대외연락부 파견과 복귀등 안내원-간첩선)등으로 구성돼 있다
김일성 집권 시기에는 대외연락부 산하에 서울, 경기,강원, 충남북, 전남북, 경남북, 제주등 10개 지역 담당과를 설치하고 대남공작을 전개했으며 김정일 집권시기에는 대남사업을 관장한 후 10개지역 담당과를 4개 지역과로 축소 통폐합하고 그 대신에 4개의 남한(남조선) 지도층 고위인사 포섭담당과를 신설했다 아울러 1976년 3월 15일 대남공작전술을 강화하기 위한 연구기관으로써 315연구소를 산하에 신설했다
한국민족민주전선(통일혁명당)은 북한 대남사업부서 중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언더(반합법단체)통일전선부(사회문화부) 조직이며 북한정부 대내외정책을 추진하는 정찰요원들이다
대외연락부는 통일전선부(사회문화부)조직 한국민족민주전선을 각 단위별로 점조직으로 연락으로 장악하고 있다 한국민족민주전선은 NLPDR 합법단체 전국연합이나 통일연대, 한국총학생회연합(한총련)등에 침투하여 점조직으로 합법단체 장악하고 있으며 한국민족민주전선이 남한내 반미 인민전쟁과 인민민주주의 혁명 공산주의 운동을 주도하고 있다
ㄱ.통일혁명당과 한국민족민주전선
통일혁명당은 북한 김일성정부가 4.19혁명이 일어나자 대남 통일전선 조직으로 조국평화통일위원회를 구성하여 대남 평화공세과 연합전선 구축 공세를 강화하게 됐다 그때 남파 간첩 김송무를 남파시켜 김종태. 이문규. 김질락등을 포섭 월북시켜 간첩교육을 시킨 뒤 1964년 3월 통일혁명당을 결성하였으나 1968년 7월 김종태(통일혁명당 총책 겸 서울시 책임자), 이문규(조국해방전선 책임자), 김질락(민족해방전선 책임자)등 통일혁명당 관련자 검거 체포와 통일혁명당 기관지 청맥 보급로 제거등으로 조직 와해되었다
북한정부는 <통일혁명당> 당 명칭을 1985년 7월 27일부터 <한국민족민주전선>으로 변경해 사용해오고 있다 일본지역에서 1986년 8월 8일부터 <통일혁명당 일본대표부>를 <한국민족민주전선 일본대표부>로 명칭을 변경하여 사용해왔다
남한지역에서는 1985년 7월 27일 이후 <통일혁명당> 명칭이 <한국민족민주전선>으로 공식 변경하지 않고 한국민족민주전선 위장단체 <반제청년동맹> <반미청년회>로 사용해오다가 1990년 1월경 <한국민족민주전선 서울대표부>로 공식 사용해왔다
2003년도부터 노무현정부의 한민전 세력 제거작업로 공식 명칭 <한국민족민주전선 서울대표부>를 사용하지 않고 2005년 1월경부터 과거처럼 위장단체 <반제민족민주전선>으로 사용해오고 있다
(ㄱ)통일혁명당 간첩사건---울진. 삼척 무장간첩 사건 연계
김종태. 이문규. 김질락등은 대남간첩 김송무의 지시에 따라 모두 월북해 북한 노동당에 입당해 노동당 당원이 되었으며 이들은 통일혁명당 서울시 창당준비 위원회(위위장-김종태) 산하에 김질락이 중심이 된 민족해방전선과 이문규가 중심이 된 조국해방전선을 두었으며 전라남북도(책임자-최영도), 부산, 경상북도까지 세력을 확대하고 있었다 또한 통일혁명당 서울시 창당 준비위원회 기관지인 <청맥>을 발간 당시 지식인 사이에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다
--->통련당과 북한정부 연계로 남한내부 준(準)군사조직 친북 NLPDR 반군(反軍)세력을 건설하다가 발견되어 제거됨
(ㄴ)한국민족민주전선 간첩 사건---북한 반잠수함이나 잠수함을 간첩 운반선으로 이용한 점
반미청년회(구국의 소리)--->한국민족민주전선(90년 1월-새세대.여명.아리랑. 백두산. 백두넷등)--->반제민족민주전선(승리)
a.1992년 10월 중부지역당 사건(이선실 한민전 부위원장과 접촉으로 당 건설, 강원 경기 중부지역 한민전 관련자 접촉)
-이선실(李善實) 여간첩 사건(이선실은 한민전 부위원장 출신)
b.1995년 10월 24일 부여침투 무장간첩 김동식 사건( 삼민투위-반제청년동맹 관련자 접촉)
c.1996년 9월 18일 강릉무장 간첩사건
d.1997년 10월 최정남 강연정 부부 간첩사건(울산지역 한민전 관련자 접촉-영남위 사건)
e.1998년 12월 17일 여수근해 반잠수함 사건(민혁당 관련자와 접촉)
f.1999년 9월 14일 김영환등 민혁당 간첩사건(한민전 서울대표부 지칭)
--->한민전과 북한정부 연계로 남한내부 준(準)군사조직 친북 NLPDR 반군(反軍)세력을 건설 하다가 발견되어 제거됨
ㄴ.남한지역에서 한국민족민주전선 계보 명칭
통일혁명당--->반제청년동맹--->반미청년회---->한국민족민주전선---->반제민족민주전선
ㄷ.반제민족민주전선 특징
(ㄱ)NLPDR(민족해방인민민주주의 혁명) 단체
반제민족민주전선(한민전)은 스탈린 모택동 김일성 세력들의 NLPDR 모임단체이며 그 중에서도 김일성 김정일주의자 모임단체이다 반제민족민주전선은 주체사상파로 김일성 김정일 세력들이다
-반미민족해방 인민민전쟁론과 인민민주주의 혁명 공산주의를 표방하고 있다
-남과 북 군사적 충돌을 획책하고 있는 인민전쟁신봉자들이다
-북미수교 반대와 핵무기 보유 추진 그리고 항미론자로 구(舊)소련과 중국 정부의 항미론자 세력과 연대를 추구하고 있다(반미 반일 반영 반프랑스적 군사연대조직으로 파악)
(ㄴ)주체사상파--김일성 김정일주의자
주체사상연구소(통일학연구소) 운영
(ㄷ)대한민국을 부정하고 조선민주인민공화국을 인정하는 세력---대한민국 정부입장에서 볼때 반제민족민주전선(한민전)을 간첩단체으로 규정함
(ㄹ)반미국제테러단체--준군사조직 모델
(ㅁ)밀입북이나 월북조직
(ㅂ)잠수함이나 반잠수함으로 월북하여 간첩교육을 받고 남한에 침투하여 간첩활동
(ㅅ)북미수교 반대와 북한정부 핵무기 보유 정당성 옹호
북미수교가 되었을 때는 북한정부에게도 반국가단체로 규정하여 제거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반제민족민주전선(한민전) 조직원은 반미계열 월북자나 국방위(인민무력부) 소속 극렬 반미투쟁가 유가족 소년소녀 만경대 단원 로 구성되어 있는 항미론자들이다
ㄷ.한국민족민주전선과 반제민족민주전선 사이트
(ㄱ)한국민족민주전선 사이트(국정원 차단하고 있음)
http://ndfsk.dyndns.org
(ㄴ)반제민족민주전선 사이트(파악과 차단 중)
http://ndf-sk.dyndns.org
SK-South Korea

 


 

*한국민족민주전선 부위원장 이선실(李善實) 대남공작원

 (1)주요 경력
ㄱ.중앙당 금강학교 출신---정치공작원 학교
박헌영 이승엽등의 빨치산 정치학원 강동정치학원과 비슷한 성격
ㄴ.79년 당 통일전선부 부부장(통일혁명당 전위대)
최고인민회의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집행 행정기관으로 통일전선부를 두고 있다
ㄷ.80년 1월 당 정치국 후보 위원
ㄹ.82년 2월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제7.8.9.10대
ㅁ.91년 1월 한국민족민주전선 부위원장
한민전은 1990년 1월 반미청년회를 해체하고 등장한 단체이다
ㅂ.94년 7월 김일성 국가장의위원회 위원
ㅅ.2000년 8월 사망
민혁당(한민전 서울지부) 지도부 자수와 검거 그리고 잠수함 격침
(2)이선실 주요 동정
92년 4월 김일성 80회 생일 기념 연회에 당 정치국 후보 위원으로 참석
(3)한민전 추적과 이선실등 대남 공작원 생포과정
1990년 말 한민전 새세대가 미국정부 요원에게 발견되어 한민전 추적 과정에 이선실과 대남 공작원 그리고 한민전 지도부, 잠수함 일방타진 되었음...
추적 열쇠고리<한민전 90년 최초 1월호 새세대 지하신문 자료>
반제동맹(강철서신: 김영환씨 편지 글)--->반미청년회(구국의 소리)--->한국민족민주전선(새세대--여명--아리랑--백두산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