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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남 기자회견 일문일답 본문

Guide Ear&Bird's Eye/일본

김영남 기자회견 일문일답

CIA Bear 허관(許灌) 2006. 6. 29. 20:06
김영남 기자회견 일문일답

    (금강산=연합뉴스) 황재훈 기자 = `납북 고교생'  김영남(45)씨는 이산가족  상봉 이틀째인 29일 "나의 입북은  납치도 자진월북도 아닌 대결시대 우연적으로 일어난 돌발적으로  일어난 입북"이라고 말했다.

    김씨는 이날 오후 금강산호텔에서 가진 기자회견을 통해  또 전 부인인 요코다 메구미씨와 관련 "메구미는  1994년4월13일 병원에서 자살했다"고 밝혔다.

    다음은 김씨의 기자회견 일문일답 요지.

    --북에서 그동안  어떻게 살아왔나
  ▲ 대학도 나오고 지금 중요한 직책에서 일도 하고 있다. 제  집사람은  당학교에서 공부하고 있다. 장인은 평양시 인민위원회 부위원장으로 사업을  하고 계신다.

    --지금 하는 일을 구체적으로 설명해달라
    ▲특수부문에서 일하고 있다. 통일부문 관련  사업을  하고 있다. 여기서는  통일사업 관심 높아 특수부문이라고 얘기를 한다.

    --1978년 어떻게 어머니와 헤어지게 됐나
▲1978년 8월5일경 여름방학을 이용해 남자 여자 친구들과  선유도 해수욕장에  놀러갔다. 남자는 해수욕장 천막, 여자 친구는 마을 민박을 했다. 선배 2명이 나에게 와서 내가 여자친구들에게 빌려줬던 녹음기를 찾아오라고 폭력과 욕을 했다. 줬던  녹음기를  찾아온다는게 자존심이 상했다. 그런데 찾아오지 않으면  선배들한테  또 다시 맞던지 더 큰 곤경에 빠질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 생각  끝에 바닷가쪽으로 나갔다. 일시적으로 몸을 피하자 생각하고 있는데 바다에 조그마한  나무쪽배가  있어 들어가 있다가 그래도 마음이  놓이지 않아 노를 찾았는데 바닥에 나무 쪽판자가 있어 배를 물에서 빼고 안심이 돼 휴식하려고 누웠는데 깜박 잠이 들었다. 눈을  떠보니 섬도 보이지 않았고 해수욕장 불빛도 보이지 않았다.

    이제 죽었구나 하면서 긴장했는데 멀지 않은 곳에서 배가 한척 지나갔다.  옷을벗어 구원을 요청했다. 그런데 그 배가 나를 알아보고 내게 왔다. 나는 살았구나 하고 배에 올랐다.  그러자 배에 있던 사람들이 이야기를 물었고 지난밤 이야기를  했고,  그랬더니 거기 가기는 힘들고 자기 좋지 못한 일도 있고  해서  가자고 했다.

    그런데 후에 알고 보니  북측  배였고 남포항이라고 했다.  북이라고  하다보니 그  때 당시로는 겁이나고 걱정이 앞섰다.

    --그 이후 어떤 일이 벌어졌나
▲처음 며칠동안은 잠도 못자고 밥맛도 없었다. 그러나 점차 북측 사람들의 친절과 나에 대한 특별한 대우로 해서 굳어졌던 마음도 풀어지고 그 과정에서 여러군데  돌아보며 북에 대한 인식이 바뀌기 시작했다.

    생각끝에 남에 다시 가야 집안 형편이 어려워서 여기서 공부좀 하고 가면  되겠지하는 생각에 거기서 떨어지게됐다. 세월이  흘러 28년이나 됐다.

    --은경양 어머니 메구미씨에 대해 얘기해달라
    ▲86년 초 메구미에게서 일본말을 배웠다. 이성적으로 가까워져 86년 8월  결혼하게 됐다. 메구미와 결혼해서 3년간  딸을 낳고 아주 잘 살았다. 그런데  메구미에게서 점차 병적 증상이 나타났다. 그런 병적 증상에다 아이를 낳은  후 건강관리를  잘 하지 못하다 보니 조금 더 악화됐고 우울즐을 동반하면서 정신 이상 증상까지 나타났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회복되지 못하고 94년에 사망했다.

    --메구미 유골을 일본에 건넸는데
    ▲2004년11월 평양에 왔던   일본 정부대표단 만났을때 그때 나는 메구미  문제에 대해 구체적으로 설명해줬다. 간곡한 부탁에 의해 유골도 넘겨줬다. 당시 일본측 단장은 유골 받으면서 내게 직접 받았다는 것과 메구미 부모에게 책임적으로 전달하고 공표하지 않겠다는 자필 확인서도 남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골을  여기저기 나눠주며 감정놀음을 벌인끝에 가짜라는 졸렬하고 유치한 주장을 하기 시작했다. 남편인 나와 메구미에 대한 모욕이고 참을 수 없는  인권유린이다.

    --메구미씨 사망 날짜와 사망동기는
▲94년4월13일이다. 메구미 사망 동기는 처녀때부터 앓던, 또 어렸을 때    사고를 당해서는 뇌를 많이 다쳤던 기억이 있다고 했다. 머리를 많이 아파했고 잘 낫지  않았다. 아내로서 어머니로서 가정생활을 진행할  수 없는 상태에 이르러서 병 전문적으로 치료하는 전문병원 보냈는데 치료사업이 잘안됐다.

    --메구미씨가 자살했다는 추측이 있는데
    ▲우울증에 의한 정신분열이라고 했는데 호전됐을 때 자살시도가 많다고 했다. 여러번 그런 시도가 있었다. 구체적으로  내용이나 방법은 말씀드리지 않겠는데  결국 병원에 가서 자살한 것으로 됐다.

    --은경양 외조부모(메구미씨 부모)가 일본으로 돌려달라고 하는데
    ▲은경이는 메구미 딸이자 내 딸이다. 그 요구 자체가 나로서는 납득이 잘 되지 않는다. 또 현재 조건에서 일본 당국이 취하는 사태 볼때 보내고 싶은 생각도 없고 스스로 가지 않겠다고 말하고 있다.

    --남쪽에는 혜경이로 알려져 있었는데
    ▲원래 본명은 은경이다. 어렸을 적 아명이 혜경이다.

    --김영남 이름은
    ▲남쪽에도 특수사업 하는 기관 있다고 하는데 그분들도 대외적으로 나갈 때는 이름 다르게 달고 나가고 하지 않나.  일본과의 관계에서 이름 공개가 사생활에  관한 부분이고,  본명이  알려지면 좋은 부분보다 나쁜 부분이 있고 그래서 다르게 말했다.

    --77년, 78년 남측에서 고교생 4명이 사라졌는데  이민교, 홍건표 등 들어본적 있나.

    ▲나 자신은 그에 대해 아는 바 없다. 잘 모른다. 이런 자리에서 내 문제가  아닌 다른 사람문제에 대해서는 말하고 싶지 않다.

    --조용히 살고 싶다고 하셨는데 일본측의  관심은  어떻게 보나
    ▲나에 대한 관심이 좋은 측면에서 관심이었다면 나도   기쁘겠다.그런데  그런 관심이 내가 이곳에 와서 당과 국가의 배려로 이 만큼 성장했는데 그에 대한 보답을 해야할 입장에서 내 문제로 북에 해가 되는 관심은 백번도 필요없다.

    --대학에 대해 말이 이래 저래 말이 많다. 압록강대, 정치군사대 등.

    ▲저에 대해 이러 저러한 부분 많은데 정확치도 않은  내용 많은데  자기  몸값 올리기 위해  모르는 것도  아는 것처럼 말하는 부분이 있다. 금성정치대학  졸업했다.

    --78년 실종에 대해 다르게 증언하는 사람이 있는데, 선유도에 상륙해서 데려갔다는 내용이 있어서.

    ▲내가 말한게 진실이다. 다른 증언이 소용있나.

    --남쪽에 대한 특별한 기억, 친구들이나.

    ▲월명공원 가서 놀던 생각, 낚시 하던 생각이 많다. 동무들 이름도 기억이  난다.

    --고향을 한번 방문하고 싶은 생각은.

    ▲고향에 대한 추억과 고향 그리는 생각, 추억과 가고 싶은 마음은 사람인데 왜 없겠나. 그런데 지금 북남 사이  처한  상황 볼 때 아직 그런 시기는 처하지 않았고 앞으로 기회가 조성되면 가보겠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