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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의 '가장 유명한 수감자' 알라 압둘 파타흐 본문
수감된 이집트 민주화 운동가 알라 압둘 파타흐의 이야기는 이집트 사름 엘 셰이크(Sharm El-Sheikh)에서 열리고 있는 COP27(유엔 기후변화 협약 당사국총회)에서 세계의 이목을 끌었다.
지난 6일, 기후 정상회담이 막을 올리던 바로 그때 압둘 파타흐는 7개월 간 지속해 온 단식 투쟁의 단계를 높여 물을 마시지 않기로 했다. 압둘 파타흐의 가족은 이때부터 그와 소식을 주고 받을 수 없다면서 이집트 당국이 그가 아직 살아 있다는 증거를 제시할 것을 요구했다. 압둘 파타흐와 그의 가족은 영국 시민권자다.
이러한 소식은 교도소 당국이 그를 강제로 먹이고 있다는 루머가 확산하는 가운데 전해졌다.
압둘 파타흐의 여동생 사나 세이프가 기후 정상회담장에 도착해 그의 이야기를 전하면서 압둘 파타흐를 석방하라는 국제사회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독일 총리 올라프 숄츠와 유엔인권이사회 고등판무관 볼커 투르크 등 국제급 거물들은 그의 석방을 요구했다.
이집트의 가장 유명한 수감자가 된 알라 압둘 파타흐는 누구인가?
민주화 운동가 집안
알라 압둘 파타흐는 2005년 이후 시기의 가장 저명한 이집트 블로거와 민주화 운동가들 중 한 명이다.
정보 프로그래밍 분야의 전문가인 그는 표현의 자유, 공인의 투명성, 그리고 무료 저장소 제공을 위한 다수의 디지털 플랫폼을 개발하는 것을 도왔으며 블로그들에게 조언을 하기도 했다.
알라 압둘 파타흐는 1981년 11월 변호사 집안에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저명한 좌익 변호사이지 민주화 운동가인 아흐메드 세이프 알 이슬람 압둘 파타흐 하마드인데 이집트의 안와르 사다트 전 대통령과 호스니 무바라크 전 대통령 시절 한 번 이상 수감됐다. 그의 어머니 라일라 수이프는 카이로 대학의 수학 교사이자 시민사회 분야 정치 운동가이다.
알아 압둘 파타흐에게는 모나와 사나 세이프 두 여동생이 있다. 이들 모두저명한 인권 운동가이자 오빠인 그의 가장 큰 지지자들이기도 하다.
이들은 국제사회에 오빠의 사례를 알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사나는 두 차례 수감도니 바 있는데 2014년 수감됐을 때는 대통령 사면 대상에 포함돼 풀려났고 2020년 수감 때는 "가짜 뉴스 유포"라는 혐의로 1년 반을 복역했다.
민주화 운동과 혁명의 상징
알라 압둘 파타흐는 사법부의 독립을 부르짖은 다른 많은 시위 참가자들과 함께 2006년 처음으로 수감됐다가 45일 후 풀려났다.
그 당시 그의 석방을 요구하는 웹사이트가 개설됐고 이는 트위터상에서 #FreeAlaa (알라—알라 압둘 파타흐—를 석방하라) 해쉬태그 운동으로 발전했다.
압둘 파타흐의 첫 번째 체포 경험은 그가 활동을 지속하지 못하게 막지 못했다.
그는 2011년 이집트 시민들이 헌법 구상에 참가할 수 있게 한 온라인 플랫폼들을 개발하면서 민주화 운동의 가장 유명한 인물들 중 한 명이 되었다.
그의 트윗들은 종교나 정치 개혁과 같은 이슈들을 공론장으로 이끄는 문이 되었다.
중동 특파원 욜랜드 크넬, '알라는 박해를 받았다'
나는 현재는 마흔 살이 된 알라가 지난 2011년 카이로의 상징적 타흐리르 광장 중앙 로터리에 서있던 모습을 기억한다. 젊고 곱슬머리를 한 그는 다른 블로거들과 IT 전문가들과 함께였다.
민주화 운동가 집안에서 자란 알라는 무바라크 전 대통령의 장기 집권 기간 동안 민주 개혁을 요구해 이미 많은 시간을 감옥에서 보낸 후였다.
그는 무바라크 정권이 전복된 후 이집트의 임시 군사 독재자들, 이어서 처음으로 선거를 통해 대통령에 당선된 무슬림형제단 지도자 출신 무함마드 무르시 정권, 그리고 압둘 팟타흐 시시 정권의 타겟이 되었다. 그는 지난 10년 중 8년을 감옥에서 보냈다.
알라는 현재 "가짜뉴스 유포" 죄로 5년을 복역하고 있다. 그의 여동생인 모나 세이프는 그가 감옥에서 죽을까 "극도로 불안하다"고 말했다.
그의 고모이자 소설가 겸 정치 평론가인 아다프 수이프는 BBC에 "그는 오래 박해 당해 인내심이 바닥났다"고 눈물지으며 말했다. 그러면서 "우리 중 누구도 이집트 정권이 그를 언젠가 놓아줄 것이라고 믿을 수 없다"고 말했다.
알라는 지난 해 영국 시민이 되었다. 영국 영사관 직원들은 그와 긴급히 접촉할 수 있는 방법을 강구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영국 외무성 대변인은 나에게 "총리가 COP27 참석을 위해 이집트를 방문할 때 논의를 진전시키려고 한다"고 전했다.
압둘 파타흐의 활약은 1.25 혁명(2011년 이집트의 민주화 운동)에서 두드러졌다. 시위가 진행될 당시 그는 이집트에 없었지만 뒤 이은 시위에 참가했고 이는 호스니 무바라크 전 대통령의 전복으로 이어졌다.
그는 그 이후 이집트 군 위원회의 지배 기간 동안 반대새력의 시위 조직을 도왔고 2011년 10월 말 발생한 소위 마스페로 사건의 여파로 수감됐다. 그가 기독교 시위자들과 경비 세력간의 갈등 소식을 전했기 때문이었는데 군 검사는 그를 군에 대한 선동과 공공의 평화와 안보 방해 혐의로 기소했다.
유엔인권이사회는 그의 석방을 요구했고 그는 같은 해 12월 풀려났다.
혁명 이후
압둘 파타흐는 2013년 11월 다른 시위 참가자들과 다시 체포됐다. 2014년 초 투표에 부칠 시위 법과 헌법 초안에 대해 의회 앞에서 시위에 참가했기 때문이다.
알라는 "허가 없이 시위했다"는 혐의로 보안 당국에 기소돼 징역 5년형을 받았다. 이집트 대법원은 2017년 판결을 확정했다.
그가 복역했던 기간 중 가장 긴 이 기간 동안 압둘 파타흐의 아버지가 죽었고 당국은 그가 장례식에 참석할 수 있게 했다.
그는 2019년 3월 형을 마치고 풀려났지만 같은 해 9월 다시 체포돼 2021년 12월 "가짜뉴스 유포"로 5년형을 받고 수감됐다.
압둘 파타흐는 11월 6일 단식 투쟁의 강도를 높여 물 마시기를 중단했는데, 이날은 사름 엘 셰이크에서 기후 정상회담이 시작된 날이었다.
미국 고위 관료는 "알아 압둘 파타흐의 건강 상태에 관한 보도"에 우려를 표하며 조바이든 대통령 정권이 "이집트 정부에 그의 사례와 감옥에서의 상태에 대한 우려"를 표한 것으로 전해졌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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