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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중간선거: 낙태 이슈가 강력한 투표 동인으로 작용할 수 있을까? 본문
미국 중간선거: 낙태 이슈가 강력한 투표 동인으로 작용할 수 있을까?
CIA Bear 허관(許灌) 2022. 11. 7. 12:30
미국 미시간주의 랜싱에서 열린 낙태권 옹호 운동에서 수잔 반 호크라는 여성을 만났다. 긴 회색 머리를 늘어뜨린 채 손에 플래카드를 든 호크는 50년 전에도 낙태권 지지 시위에 참여했다면서, 똑같은 일을 또 한 번 반복해야 한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고 했다.
호크는 눈물을 글썽이며 1973년 여성의 낙태권을 보장한 '로 대 웨이드' 판결이 올해 초 연방 대법원에서 뒤집혔을 때 어찌나 실망했는지, 심정을 표현할 단어를 찾기 힘들다고 털어놨다.
"타인이 나를 통제할 수 있는, 일종의 노예제가 다시 회귀한 느낌"이라는 것이다.
올여름 '로 대 웨이드' 판결의 번복으로 연방 정부 차원에서 보장됐던 임신중지권이 사라지자 임신중지권 존폐 결정은 각 주 정부의 몫이 됐다. 이에 13개 주에서 낙태를 금지하거나 엄격히 규제하는 주 법이 통과됐다.
그리고 오는 8일, 적어도 5개 이상 주에선 유권자들이 낙태 시술 접근에 관한 주 법의 개정안을 지지하거나 거부하는 형태로 결정을 내리게 될 것이다. 캘리포니아, 미시간, 버몬트주에선 낙태 접근성이 더욱 보장될 수 있으나, 켄터키와 몬태나주에선 낙태권이 제한될 수도 있어 보인다.
8일은 민주당과 공화당 중 어느 당이 의회에서 권력을 장악할지를 결정하는 중간선거가 미국 전역에서 치러지는 날이다. 이번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은 낙태권 옹호를 주요 메시지로 내세우고 있는 모습이다.
여론 조사에 따르면 전국 유권자 중 약 3분의 2가 낙태권 보장을 원하고 있다. 만약 중간 선거 결과에서도 이 비율이 유지된다면 여당인 민주당은 의석을 보장받을 수 있는 것은 물론, 심지어 야당보다 훨씬 더 많은 의석을 차지하며 의회를 장악할 수도 있게 된다.
이에 대해 뉴저지주 럿거스대 공중보건학과 교수이자 성 및 생식 보건 분야의 전문가인 로라 린드버그는 "이번 [대법원의 판례 폐기] 결정으로 여성들의 유권자 등록 수가 늘어났지만, 그 에너지가 당일 투표장에서도 그대로 나타날지는 지켜봐야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린드버그 교수는 "미국에선 일반적으로 중간 선거 투표율이 높진 않지만, 올해는 예외일 수 있다"면서 "민주당은 국민들이 (낙태권 관련) 우려와 분노를 표출하기 위해 투표장에 가도록 독려하는 데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현재까지 민주당도 공화당도 연방법 차원의 낙태법을 통과시킬 만큼의 의석수를 얻기 어려워 보인다. 낙태를 금지하거나 낙태권을 보장하든지 간에 50개의 모든 주에 적용되는 법을 제정하기 위해선 상원의원 60명의 동의를 얻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조 바이든 대통령은 "낙태권에 관심이 있다면 투표해야 한다"면서 유권자들의 투표를 독려하고 있다.
이에 대해 버지니아 대학에서 여성과 정치에 관해 연구하는 제니퍼 로리스 교수는 "민주당의 전략은 투표율 (상승)에 초점을 두고 있지, (낙태 금지를 외치는 이들의) 마음을 바꾸는 데 있지 않다"고 설명했다.
"민주당이 접전 끝에 승리할 수 있는 최고의 방법은 민주당을 지지하는 유권자들이 대거 투표하는 것"이라는 로리스 교수는 "오는 8일 선거에서의 핵심 질문은 '로 대 웨이드' 판결이 번복된 지 수개월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해당 이슈가 투표율과 유권자의 열정을 자극해 투표율 상승으로 이어질 수 있느냐 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민주당이 전하고자 하는 선거 메시지가 (유권자들을 자극하기에) 충분할지는 불분명합니다."
한편 민주당 소속인 엘리사 슬롯킨 미시간주 하원의원은 낙태권을 지지하기에 이번 선거 만큼은 전통적으로 지지해온 당 대신 민주당을 지지하고 있는 여성들이 있다고 설명했다.
가족 모두가 공화당을 지지하기에 남편에게는 평범한 독서 모임이라고 말했지만, 실제론 민주당을 지지하는 선거 운동에 참여하는 여성들이 모인 "가짜 독서 모임"이 적어도 2개는 운영되고 있다는 것이다.
한편 반대로 낙태권이 미시간의 주 법으로 보장되는 것을 막기 위해 열렬히 노력하는 사람들도 만나볼 수 있었다.
미시간주 디트로이트 외곽 지역에 있는 '세인트 메리 성당'에서 만난 어느 여성 신도는 BBC와의 인터뷰에서 "나는 보통 선거에 관여하지 않지만, 이는 매우 중요한 일"이라면서 "이는 우리 아이들과 미래에 관한 사안이자, 국가로서 우리 자신에 대해 무엇을 말할 것인지에 대한 사안"이라고 말했다.
이 신도는 선거 당일 투표소 입구에서 유권자들에게 낙태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기 위해 휴가까지 냈다고 한다.
지난달 '세인트 메리 성당'에선 '생명을 위한 성스러운 시간'이라는 이름으로 특별 기도회가 열렸다.
미시간주에서 낙태권 보장법이 통과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함께 기도하는 자리였다. 해당 기도회를 주최한 알렉스 크라츠 신부는 임신 말기의 낙태와 부모의 동의 없는 미성년의 낙태 가능성에 대해 경고했다.
성당에서의 선거 운동이 적절하냐는 질문에 크라츠 신부는 "선거 운동이라 여기지 않는다"면서 "복음을 전하는 일이다. 낙태와 같은 중대한 도덕적 이슈를 눈앞에 둔 상황에서 어디에 투표할지 생각하기란 어렵지 않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미시간주의 여론 조사에 따르면 이 성당 신도들의 바람은 이뤄지지 않을 가능성이 커 보인다. 전체 유권자의 50% 이상이 낙태권 보장을 지지한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전통적으로 보수적인 캔자스주에서도 지난 8월 낙태 시술 접근을 제한하자는 내용의 유사한 투표가 실시됐으나, 예상보다 훨씬 많은 유권자가 더 이상 주 법으로 낙태권을 보장하지 말자는 제안을 단호히 거부했다.
게다가 여성들이 생식권이 위기에 처했다고 믿는 주에선 여성들의 유권자 등록이 늘어나고 있다. 일례로 뉴욕이나 로드아일랜드와 같이 아직 주 법으로 낙태권을 보호하는 곳에선 여성과 남성 유권자 등록 수가 거의 같다.
그러나 여론 조사 결과 유권자의 56%가 이번 선거에서 낙태 이슈가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으나, 인플레이션과 경제 문제가 더 중요한 현안인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달 10~16일에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79%는 이번 중간 선거에서 경제가 매우 중요한 고려 요소라고 답한 것이다.
그리고 82%는 현재 경제 상황이 "나쁘다" 혹은 "그저 그렇다"고 답했으며, 경제 상황이 "훌륭하다"는 비율은 2%, "좋다"는 응답은 16%에 그쳤다.
범죄, 총기 규제법, 이민자 이슈 등이 대두된 상황에서 낙태 이슈만으로는 민주당의 승리를 보장하기 힘들 수도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해 로리스 교수는 "공화당은 범죄와 경제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데, 여기엔 2가지 이유가 있다"면서 "범죄와 경제, 이 두 이슈를 통해 공화당에 충성하는 유권자들을 투표장으로 이끌며, 부동표층에겐 두 이슈를 다루기엔 공화당이 더 적합하다고 설득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공화당으로선 유권자들이 범죄와 경제에 대해 생각하도록 유도하는 것이 낙태권 제한을 외치는 것 보다 훨씬 더 확고한 지지 기반을 확보할 수 있을 것입니다."
물론 생식권에 대한 개인의 의견이 반드시 정치적 노선을 따라 깔끔히 나뉘는 것은 아니다. 낙태에 반대하는 민주당 지지층도 있고, 낙태 접근을 지지하는 것은 물론 낙태 경험이 있는 공화당 지지층도 있기 때문이다.
언제까지 혹은 전면적으로 임신 중절을 허용해야 하는지에 대해 어렵고도 상세한 질문에 직면한 상황에서, 이전까지만 해도 강간이나 근친상간 등의 예외조차 인정하지 않는 낙태 전면 금지를 공개적으로 주장했던 공화당 후보들조차 낙태 이슈에 대해 견해를 밝히길 매우 꺼리는 모습이다.
반면 민주당 쪽에선 바이든 대통령의 낮은 지지율과 치솟는 물가 이슈라는 약점을 극복하는데 생식권 관련 담론이 도움이 되기를 바라고 있다.
수십 년 만에 선거 주요 이슈로 존재감을 드러낼 예정인 지금, 낙태 이슈는 과연 강력한 투표 동인으로 작용할 수 있을까. 이번 주 우리는 그 답을 알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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