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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그린 중국 영화 '장진호', 007 제치고 중국 흥행 1위 본문

-平和大忍, 信望愛./韓中日 동북아역사(한자언어문화권)

한국전쟁 그린 중국 영화 '장진호', 007 제치고 중국 흥행 1위

CIA bear 허관(許灌) 2021. 10. 18. 16:49

영화 '장진호'는 2주 만에 6억3300만 달러 이상의 박스오피스 매출을 거뒀다

현재 세계에서 가장 흥행하는 영화는 최신 007 시리즈인 '노 타임 투 다이'도 아니고 본드 영화 노 타임 투 다이도 아니고 '샹치와 텐 링즈의 전설'도 아니다.

바로 1950년대 한국전쟁에 관한 중국의 선전 영화 '장진호에서의 전투(장진호)'다. 이 영화의 줄거리는 작은 규모의 중국군이 온갖 고난에도 불구하고 미군을 물리치는 내용이핵심이다.

영화 장진호는 개봉 2주 만에 6억 3300만 달러 이상의 박스오피스 매출을 거뒀다. 이는 샹치와 텐 링즈의 전설이 전 세계에서 거둔 4억 200만 달러를 단 절반의 기간 내 훌쩍 뛰어넘었다.

장진호는 중국 역사상 가장 높은 수익을 올린 영화가 될 전망이다.

이 영화의 흥행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중국 내 극장들이 잠정 폐관과 재개관을 반복하는 등 대유행으로 타격받은 중국 영화계에 희소식이다.

중국 정부에게 이는 더욱 좋은 소식이다. 전문가들은 이 영화가 중국 인민에게 선전을 호소하는 공식을 확고히 한 것 같다고 분석하고 있다.

그러나 세계 최대의 영화시장인 중국에서 입지를 굳히려는 할리우드의 관점에서 보면, 이 같은 중국 영화의 국내 인기는 훨씬 더 큰 과제를 의미할 수 있다.

'영화를 봐야 할 애국적 의무'

중국 정부 의뢰로 제작된 장진호는 최근 몇 년간 중국에서 크게 흥행한 일부 민족주의 영화들 중 하나다.

중국 군인 렁펑이 아프리카 전쟁 지역에서 수백 명의 사람들을 테러단체로부터 구해낸 줄거리를 그린 2017년 영화 '특수부대 전랑2'는 일주일 만에 16억 위안 (한화 약 2946억 원)이라는 기록적인 수익을 올렸다.

장진호는 중국인들이 '한국전쟁의 전환점'이라고 주장하는, 혹독한 추위 속에서 벌어진 잔혹한 전투를 그리고 있다. 중국에서 사용하는 한국전쟁의 공식 명칭은 '항미 원조 전쟁', 즉 "미제의 침략에 대항하고 북한을 원조한 전쟁"으로 알려져 있다.

미군에 맞선 수천 명의 젊은 중국군은 결정적인 승리를 거두기 위해 싸우다 장진 저수지 근처에서 사망했다.

한 관객은 영화 리뷰 사이트 더우반에 "군인들의 희생에 감동했다. 극심한 추위에도 그들은 이기고야 말았다. 정말 자랑스럽다"는 후기를 남겼다.

이 영화가 미·중 긴장관계가 고조되는 가운데 인기몰이를 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서던캘리포니아대학(USC) 정치학 교수인 스탠리 로젠 박사는 "장진호의 인기는 계속 이어지는 미·중 긴장관계와 틀림없이 연관돼 있다. 이러한 인기는 이따금 간접적이면서도, 이와 같은 방식으로 매우 확실하게 증가해 왔다."

영화가 성공한 또 하나의 이유는 영화 스튜디오와 중국 정부가 영화 제작을 함께 추진했다는 것이다. 중국 정부는 한 번에 배급될 수 있는 영화의 수와 종류를 엄격하게 통제하고 있다.

현재 장진호의 관객을 빼앗아갈 경쟁작은 거의 없다. 메이저급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인 노 타임 투 다이와 '듄'은 중국 외 전 세계에 이미 상영 중이지만, 중국에서는 이달 말에야 개봉한다.

장진호가 개봉한 시기도 절묘했다. 영화는 지난 1일부터 시작한 중국의 국경절 연휴에 개봉됐으며 중국 공산당이 올해 창당 100주년을 기념하는 가운데 상영됐다. .

로젠 박사는 "중국인이 이 영화를 보는 것은 거의 애국적인 의무와 같다"고 설명했다.

USC 정치학 교수인 로젠 박사는 "영화 장진호를 보는 것은 중국인에게 거의 애국적인 의무와 같다"고 말했다

네덜란드 라이덴 아시아 센터 소장인 플로리안 슈나이더 박사는 "이러한 선전 영화를 관람하는 것은 중국 공산당 간부들에게 종종 의무로 부과된다"고 설명했다.

슈나이더 박사는 BBC와 인터뷰에서 "중국의 노동 단위는 종종 단체 관람을 조직한다"며 "공산당원이 9500만 명에 이르는 것을 고려하면 이는 엄청난 박스오피스 흥행을 약속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온라인에는 이 영화에 대한 긍정적 후기가 압도적으로 많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이 후기들이 완전히 진실한 내용은 아닐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우선 영화를 비판하면 감옥에 가게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경제 주간지 '차이징'의 부편집장을 지낸 전직 언론인 뤄창핑은 영화 장진호에 나온 중국군에 대해 "모욕적인 발언"을 한 혐의로 지난 주 구금됐다.

중국 하이난성 하이난 섬의 싼야시 경찰은 뤄창핑이 "국가를 위해 순교한 사람들의 평판과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구금돼 있으며 사건을 조사 중이라고 말했다.

미 아이오와주립대학의 정치학 전문가 조너선 하시드 박사는 이전에 BBC와 인터뷰에서 "강한 민족주의 감정을 가진 중국의 젊은층이 온라인에서 편파적인 목소리를 내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일각에서 이러한 목소리가 더욱 커지는 이유는 국가에 대한 정당한 비판이 점점 더 수용되지 않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블록버스터 선전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 장진호의 팬들은 이 영화를 다른 메이저급 주류 영화들과 동등한 수준으로 만든 블록버스터적 요소를 좋아한다.

로젠 박사는 "이 영화 제작비는 2억 달러로 알려져 있다"며 "제작 가치와 특수 효과가 매우 좋다. 영화를 연출한 감독 3명은 모두 훌륭한 스토리텔러이며 중국에서도 저명하다"고 말했다.

'패왕별희' 감독 천카이거, '황비홍' 시리즈의 쉬커, 액션 영화 전문 감독 린차오셴(단테 람)은 모두 유명한 영화 제작자들로 영화 장진호 연출에 의기투합했다.

영화 장진호를 연출한 단테 람, 쉬커, 천카이거 감독

쉬커는 특수 효과와 무술 영화로 유명하며 단테 람은 거대한 폭발 장면을 배경으로 한 액션 스펙터클로 잘 알려져 있다. 천카이거는 중국인들의 삶을 예리하게 묘사하는 감독으로 인기가 높다.

한 관객은 웨이보에 "우리 모두 이 영화가 애국을 지향하는 작품이라는 걸 알지만, 나는 보면서 정말 눈물이 났다. 굉장히 진정성 있게 느껴졌다"고 적었다.

할리우드의 큰 골칫거리

그러나 할리우드 등 해외 영화업계가 수익성 높은 중국시장을 차지하기 위해 여러 과제를 풀어가는 가운데, 중국에서 국산 영화의 인기는 이들이 풀어야 할 숙제를 더할 가능성이 있다.

중국은 외국 영화 쿼터제를 통해 공식적으로 매해 34편까지 상영한다.

일부 해결책 중 하나는 할리우드가 중국 기업들과 영화를 공동 제작해 쿼터에 포함되지 않는 것이다.

지난해 한 보고서에 따르면 할리우드 주요 인사들도 중국시장을 달래기 위한 방편으로 영화를 검열해 왔으며, 중국의 검열에 대한 유화 정책으로 캐스팅, 콘텐츠, 대사, 줄거리를 중국시장에 점점 맞춤화하고 있다.

할리우드 등 해외 영화제작업계는 수익성이 높은 중국 영화시장에 뛰어들기 원하지만, 이는 쉽지 않다

하지만 이러한 방식이 박스오피스의 성공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중국과 해외가 공동 제작한 일부 영화들은 흥행에 참패했다.

중국의 유명 감독 장이머우가 연출하고 맷 데이먼이 주연한 2016년 판타지 액션 영화 '그레이트 월'은 미국과 중국에서 "서양 백인이 구원한다는 줄거리"로 비판받았다.

이러한 난제에도 불구하고, 전문가들은 해외 영화 제작자들이 중국과의 협업을 금방 포기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BBC에 말했다.

또한 중국과 할리우드는 궁극적으로 서로를 필요로 한다고 덧붙였다.

로젠 박사는 "중국은 코로나19 이후 세계 1위 영화시장의 자리를 지키길 원하며, 북미 시장에서 우위를 유지할 수 있도록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영화들, 특히 아이맥스나 3D 영화관에서 상영돼 티켓 가격이 더 높은 영화들을 여전히 필요로 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중국 영화의 제작비가 계속 상승하면서 할리우드와의 연관성은 낮아질 수 있다. 하지만 할리우드는 중국이 들려줄 수 없거나 들려주지 않을 보편적 이야기를 그린다"고 덧붙였다.

한국전쟁 그린 중국 영화 '장진호', 007 제치고 중국 흥행 1위 - BBC News 코리아

 

한국전쟁 그린 중국 영화 '장진호', 007 제치고 중국 흥행 1위 - BBC News 코리아

미중 갈등이 격화되는 가운데 중국인들의 애국심을 고취하는 영화 '장진호'가 중국 영화 역사상 최고 성공작이 될 전망이다.

www.bbc.com

중국 '애국 영화' 장진호, 007·마블 누르고 세계 매출 선두

영화 장진호 포스터

한국 전쟁을 소재로 한 중국 영화 장진호(長津湖)가 007·마블 시리즈 영화를 따돌리고 상영 중인 영화 중 세계 최고 매출을 기록하며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17일(현지시간) 미국 경제 매체 포브스에 따르면 국경절 황금연휴인 지난달 30일 개봉한 장진호는 이날까지 누적 입장 수입이 7억6천300만달러(약 9천60억원)를 넘었다.

이는 지난 8일 개봉한 영화 007 시리즈 '노 타임 투 다이'의 수익 4억4천752만달러(약 5천313억원)와 지난달 3일 개봉한 마블의 첫 아시안 히어로 영화 '샹치와 텐 링즈의 전설'의 수익 4억1천430만달러(약 5천억원)를 크게 상회한다.

장진호는 이미 개봉 13일 만에 매출액 6억6천817만달러(약 7천928억원)를 넘었다.

이에 장진호가 올해 세계 박스오피스 1위는 물론, 역대 중국 흥행 영화 1위에 등극할 수도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박스오피스 집계 사이트 모조에 따르면 올해 세계 박스오피스 1위는 8억2천200만달러(약 9천753억원)를 기록한 중국 영화 '안녕, 엄마'(你好,李煥英)이다..

중국 영화 사상 최고의 흥행 실적은 '특수부대 전랑(戰狼) 2'로 티켓 판매액 8억7천32만달러(약 1조325억원)를 기록했다.

영화 장진호 포스터

영화는 한국 전쟁의 결정적 전투 가운데 하나인 장진호 전투를 소재로 했다.

장진호 전투는 1950년 겨울 개마고원 장진호 일대까지 북진했던 미 해병1사단(1만5천명)이 중공군 제9병단 소속 7개 사단(12만명)에 포위돼 전멸 위기에 처했다가 17일만에 포위망을 뚫고 철수한 전투를 일컫는다.

영국 BBC방송은 해당 영화를 '선전 영화'로 명명하며, 미중 갈등이 심화하는 가운데 중국인의 애국심을 자극한 것을 흥행 요인으로 꼽았다.

중국 평점 사이트 더우반(豆瓣)에는 "군인 희생에 감동했다"면서 애국심이 고취됐다는 감상평이 올라왔다.

마침 영화 개봉일이 공산당 창당 100주년인 올해 국경절 연휴와 맞물리기도 했다.

사우스캘리포니아대 스탠리 로젠 교수는 "이 영화 관람은 사실상 애국적 의무"라고 밝혔다.

네덜란드 라이덴 아시아 센터 소장인 플로리안 슈나이더 박사 역시 "공산당 간부는 자주 이런 영화를 의무적으로 관람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극장에 배급되는 영화 수·종류를 통제하는 중국 정부의 정책 역시 흥행 요인으로 꼽혔다.

007 '노 타임 투 다이' 등 기대작이 10월 말에 개봉을 앞둔 중국 극장가에서는 현재 장진호에 대적할 경쟁작이 없는 상황이라고 BBC는 전했다.

중국 '애국 영화' 장진호, 007·마블 누르고 세계 매출 선두 | 연합뉴스 (yna.co.kr)

 

중국 '애국 영화' 장진호, 007·마블 누르고 세계 매출 선두 | 연합뉴스

(서울=연합뉴스) 이의진 기자 = 한국 전쟁을 소재로 한 중국 영화 장진호(長津湖)가 007·마블 시리즈 영화를 따돌리고 상영 중인 영화 중 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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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한국전쟁 왜곡 심각...마오쩌둥 전쟁 지지와 북한 남침 사실에 침묵"

지난 2910년 5월 한국 서울에서 열린 한군전쟁 관련 전시에 전쟁을 일으킨 인물들로 북한 김일성(왼쪽부터)과 중국 마오쩌둥, 소련 이오시프 스탈린의 사진이 나란히 걸려있다.

최근 시진핑 국가주석 등 중국 지도부가 대대적으로 한국전쟁을 미제의 침략에 맞선 정의로운 승리로 주장하는 데 대해 우려가 커지고 있습니다. 한국전쟁은 스탈린과 마오쩌둥의 지원으로 북한 정권이 일으킨 것으로 이미 입증됐고, 미군 참전도 유엔 결의에 따라 합법적으로 이뤄졌기 때문에 중국의 주장은 사실이 아니라는 지적입니다. 

모건 오테이거스 미 국무부 대변인은 23일 인터넷 사회관계망 서비스인 ‘트위터’에 중국 지도부의 한국전쟁 왜곡 주장을 공개적으로 반박하는 글을 올렸습니다.

“중국 공산당은 70년 전 한국전쟁이 단순히 발발했다고 주장하지만, 사실은 1950년 6월 25일에 마오쩌둥의 지지를 받은 북한이 남침했다”는 겁니다.

이어 “자유 국가들이 이에 맞서 싸우자 중국 공산당은 압록강을 건너 수십만 명의 병력을 보내 한반도의 참화를 불러왔다”고 밝혔습니다.

오테이거스 대변인의 발언은 최근 시진핑 국가주석과 중국 공산당이 한국전쟁을 미 침략에 맞서 북한을 돕고 평화를 지킨 정의로운 전쟁이었다며 중국인들에게 애국주의를 대대적으로 강조하는 가운데 나왔습니다.

시 주석은 23일 ‘항미원조(미국의 침략에 맞서 조선을 지원함) 출국작전 70주년’ 행사 연설에서 미국에 맞서 “제국주의 침략 확장을 억제”하고 “아시아와 세계의 평화를 지켰다”고 주장했습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 23일 베이징에서 열린 한국전 참전 70주년 행사에서 연설하고 있다.

중국 지도부는 각종 뉴스는 물론 거금을 투입한 영화와 장편 다큐멘터리 등을 통해 항미원조의 정당성과 성과를 대대적으로 선전하고 있습니다.

아울러 중국 외교부는 홈페이지에서 미국이 한국전쟁 발발 직후 병력을 바로 파견해 북한을 침공했고, 파병 결의안 채택을 위해 유엔 안보리를 선동하고 조작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중국 외교부] “After the outbreak of the Korean War, the United States immediately dispatched its troops to invade Korea. It instigated and manipulated the Security Council of the United Nations to adopt a resolution on dispatching.”

그러나 한국전쟁에 대한 이런 중국 지도부의 주장은 유엔 등 국제사회의 역사적 평가와 큰 차이가 있습니다.

한국전쟁이 소련과 중국 지도자의 지원 속에 북한의 남침으로 발발했다는 것은 이미 유엔과 기밀해제된 수많은 옛 소련 정부 자료들을 통해 광범위하게 입증됐기 때문입니다.

옛 소련과 중국의 한국전쟁 관련 자료를 대거 수집해 증거 자료집을 냈던 캐스린 웨더스비 아메리칸대 교수는 과거 서울에서 연 강연에서 마오쩌둥이 북한의 남침을 지지한 것은 옛 공식 자료들에 명백히 나타나 있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웨더스비 교수] “So the middle of May Kim Il-sung went to Beijing, as required by Stalin met with Mao. Mao agreed to the plan, explaining that he understood the Soviets couldn't send forces to Korea but the Chinese could do so.”

김일성 북한 주석이 1950년 5월 중순(15일)에 스탈린의 요구로 베이징에 가서 마오쩌둥을 만나 남침 계획에 대해 동의를 받았고, 마오쩌둥은 추후 병력 지원까지 약속했다는 겁니다.

아울러 보리스 옐친 전 러시아 대통령이 과거 김영삼 한국 대통령에게 제공한 300여 종에 달하는 문서에도 마오쩌둥이 스탈린과 함께 남침을 지지한 사실이 자세히 담겨있습니다. 

미 국가기록원은 미국이 앞서 방어경계선 밖에 설정했던 한국을 지원해 전쟁에 개입한 이유는 소련과 중국이 공산주의 영역을 아시아 전역으로 확대하려는 의도에 대한 트루먼 대통령의 우려 때문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미 국가기록원] “The invasion of South Korea made Truman genuinely fearful that the Soviet Union and China intended to expand the sphere of communism throughout Asia. 

유엔이 한국전쟁 직후 채택한 파병안 등 3개 결의안 역시 미국의 조작이 아닌 적법한 표결 과정을 거쳐 승인됐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합니다. 한국전쟁 전문가인 한국군사문제연구원의 허남성 석좌연구위원입니다. 

[녹취: 허남성 위원, ‘6·25 전쟁의 개관’ 동영상 중] "“북한이 1950년 6월 25일에 기습 남침을 하자 그 직후부터 유엔 안보리는 아주 중요한 3개의 결의안을 잇달아 채택합니다. S1501호 결의안은 북한을 침략자로 규정하고 38선 이북으로 즉각 철수하라는 요구안입니다. 이틀 후 27일에 S1511호 결의안을 채택했는데, 유엔 회원국들로 하여금 침략당한 대한민국을 군사적으로 지원하라는 권고안이 채택됐습니다. 7월 7일에는 S1588호가 채택됐는데, 유엔군사령부를 창설하는 결의안이었습니다.”

김계동 한국 건국대 초빙교수는 최근 자신의 ‘페이스북’에 통상적으로 특정 국가가 다른 국가의 분쟁에 개입하기 위해서는 국제법적으로 사전에 승인을 받아야 한다며, 서방국가들의 한국전쟁 개입은 “유엔 안보리 결의에 따른 참전이기 때문에 국제법적 하자가 없다”고 말했습니다. 

반면 “중국은 이런 국제법적 절차 없이 한반도에 군대를 보내 참전했기 때문에 불법적인 개입이 된다”는 설명입니다. 

한국의 강경화 외교장관과 서욱 국방장관도 26일 국회 국정감사에서 시 주석이 북한의 남침으로 시작된 한국전쟁을 미 제국주의 침략으로 규정한 것은 역사 왜곡이란 입장을 분명히 했습니다.

[녹취: 서욱 장관] “명백한 남침이고 스탈린과 모택동의 사주를 받아 남침한 것으로. (의원 질문: 시진핑은 70년 전 항미원조의 승리는 정의의 승리이고 평화의 승리이며 인민의 승리라고 했습니다. 이 말에 동의하십니까?) 동의하지 않습니다.”

에이브러햄 덴마크 전 국방부 부차관보는 지난 2017년 미 의회 미-중 경제안보검토위원회 청문회에 출석해 중국 공산당이 한국전쟁을 어떻게 정치적으로 활용하는지 자세히 밝힌 바 있습니다. 

덴마크 전 부차관보는 중국은 일반적으로 한국전쟁을 계속 “전략적 승리”로 보고 있다며, 이는 중공군이 서방국에 대응해 처음으로 버티면서 어떤 전투에서는 승리했기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중국에서는 한국전쟁(항미원조)을 공산당 지도하에서 강대국으로서의 중국의 재등장, 서방의 패권과 지배 시도에 항거하는 의지와 능력의 과시로 보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덴마크 전 부차관보] “Thus, the Korean War is still seen in China as a demonstration of its reemergence as a great power under the Chinese Communist Party, and its will and ability to reject supposed Western attempts at hegemony and domination.”

덴마크 전 부차관보는 한국전쟁 중 중공군 전사자가 40만 명, 부상자가 48만 6천여 명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되지만, 중국 정부는 이런 정치적 의도 때문에 사상자 규모도 많이 축소하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실제로 시진핑 주석은 이번 항미원조 70주년 연설에서 중국군 19만 7천 명이 목숨을 잃었다고 말했습니다. 

VOA 뉴스 김영권입니다.

 

김정은, 한국전쟁 중국인민군 참전 70주년에 앞서 전사자묘 방문

1950년에 발발한 한국전쟁에서, 중국이 미국을 중심으로 한 유엔군과 싸우기 위해 파견한 '인민의용군'이 참전한지 오는 25일로 70년이 됩니다.
이를 앞두고 김정은 북한 노동당위원장이 북한 서부에 있는 중국인민군 전사자묘를 방문했다고 22일자 북한 노동당 기관지 '로동신문'이 보도했습니다.

김 위원장은 "중국의 병사들은 제국주의의 침략자를 격퇴하기 위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싸웠으며, 우리는 그들의 희생정신을 영원히 잊지 않을 것"이라고 말해 중국인 전사자에 경의를 표했습니다.
북한으로서는 중국과의 전통적인 우호관계를 강조하려는 의도가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아울러 경제제재와 더불어 코로나19 감염대책에 의한 국경봉쇄와 태풍으로 인한 수해로 경제가 타격을 받은 가운데, 최대의 지원국인 중국의 경제적 지원에 기대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한편 중국 베이징에서도 23일 시진핑 국가주석이 참석해 한국전쟁 참전 70주년 기념식이 열릴 예정으로, 미국과 중국의 대립이 계속되는 가운데, 미국에 승리했다고 주장하는 역사를 강조해 국위를 선양하려는 의도가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중국, 한국전쟁 70주년 '미국 대치' 강조

중국은 이달로 한국전쟁 참전 70주년이 되는 데 맞춰, 베이징의 박물관에서 특별전을 열었습니다.

특별전을 찾은 시진핑 국가주석은 당시 미국 측과 싸운 점을 강조해, 미중 대립이 계속되는 가운데 국민의 애국심을 고무시키려는 의도가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1950년에 발발한 한국전쟁에서 중국이 미국을 중심으로 한 유엔군과 싸우기 위해 대규모 '인민의용군'을 파견한 지 이달로 70년이 됩니다.

이에 맞춰 중국은 베이징에 있는 군사박물관에서 한국전쟁을 회고하는 특별전를 개최해, 첫날인 19일에는 시진핑 국가주석 등 최고지도부 전원이 관람했습니다.

국영 중국중앙텔레비전에 따르면 시 주석은 "중국은 북한 인민군과 함께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싸워 승리했으며 이 정신은 중요한 재산으로 중국 인민을 고무시킬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중국으로서는 미국 측과 싸운 것을 강조함으로써 국민의 애국심을 고조시키고 북한과의 전통적인 우호관계를 강조하려는 의도도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시진핑 등 지도부 중국인민지원군 항미원조 출국 작전 70주년展 관람

19일 당과 국가 지도부 시진핑(習近平), 리커창(李克強), 리잔수(栗戰書), 왕양(汪洋), 왕후닝(王滬寧), 자오러지(趙樂際), 한정(韓正), 왕치산(王岐山) 등이 중국인민혁명군사박물관에서 열린 ‘위대한 승리 되새김, 평화정의 수호-중국인민지원군 항미원조(抗美援朝) 출국 작전 70주년 테마전’를 관람했다

시진핑, 한국전 참전 기념식서 미국 맹비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23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중국 인민지원군 항미원조 출국 작전 70주년 기념대회’에서 연설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한국전쟁을 제국주의 침략에 맞선 전쟁이라고 평가하며 미국을 강하게 비난했습니다.

시 주석은 오늘(23일) 오전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중국 인민지원군 항미원조 출국 작전 70주년 기념대회’ 연설에서 “1950년 6월 25일 북한에서 전쟁이 발발했다”며 “미국 정부는 한국 내전에 무력간섭을 하기로 결정했다”고 말했습니다.

시 주석은 이어 중국은 “북한의 요청에 응해 항미원조를 하기로 결정했다”며 중국과 북한은 생사를 같이하며 우의를 맺었고, 힘겨운 전투를 통해 미군에 위대한 승리를 거뒀다고 주장했습니다.

현재 미-중 갈등이 고조되고 있는 상황에서 시 주석은 미국에 대한 강도 높은 비판을 이어갔습니다.

시 주석은 오늘날의 세계에서는 “일방주의, 보호주의, 극단적 이기주의가 통하지 않는다”며 “어떤 협박이나 봉쇄, 극단적 압박, 독선적이고 패권적 횡포도 결코 통할 수 없다”고 강조했습니다.

시 주석은 또 미국이 타이완과 군사적 협력을 강화하는 상황을 겨냥해 “중국은 조국의 영토를 침범하고 분열하는 그 어떤 세력도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며 엄중한 상황이 발생하면 이에 응수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VOA 뉴스

1950년 10월 19일 중국 인민해방군이 압록강 도하

중공군 14개 사단이 압록강을 도하하고 있는 모습

                                                                          

1950년 10월 19일 중국 인민해방군이 압록강 도하를 시작했다. 이날 이후 중공군 18개 사단이 압록강을 통해 한반도로 진입, 한국전에 개입했다.
이 날은 38선을 돌파한 유엔군이 평양에 입성한 날이다(백선엽 장군이지휘하는 국군 1사단은 이보다 4일 전인 10월 15일 평양에 진입했다).

미국이 한국전 발발 이틀 뒤인 6월 27일 해군과 공군을 한국에 파병하고 제7함대를 대만 해협에 출동시키자 저우언라이(周恩來) 중국 총리는 중국 정부를 대표하여 미국이 대만을 침략한 것이라고 비난, 중국의 한국전 개입을 예고했었다.

중국은 한국전 개입을 ‘항미원조(抗美援朝)’로 부르고 있으며 ‘집과 국가를 보호하고 지키기 위한 것(保家衛國)’으로 규정하고 있다.

 

서울을 점령한 북중(朝中)연합군

 1950년 12월 북중(朝中)연합군 창설과 중국 인민해방군 한국전쟁 개입[김일성과 팽덕회 모습]

1951년 1월 4일 북중(朝中)연합군[중공군]이 서울을 점령했습니다

 

 

 

 

 

 

 

 

 

 

북중(朝中)연합군[중공군]이 38도선 이남과 서울 그리고 한강이북을 점령한 후 축배를 즐기는 모습과 한강 이남을 점령하기 위하여 정찰하는 모습

모택동은 38도선 이남 월경과 서울 점령을 승인했다

*한국전쟁(6.25 동란) 중 북한을 지지하고 도왔던 국가들은 어떤 나라들입니까? 공식적으로 중국과 체코슬로바키아등 2개국

북한의 전격적인 남침은 유엔내에서는 유엔군을 구성하여 북한의 불법적 남침을 격퇴하려고 하였습니다. 소비에트연방(소련의 정식명칭)은 유엔의 투표에서 국제여론을 의식하고 기권을 하였으며 반대가 없었기 때문에 유엔군이 결성되어 전장에 투입되었습니다.

 당시 유엔군은 한국을 제외한 16개국이 군사적 지원을 하였으며 비공식적 지원국은 2개국, 의료지원국은 5개국이었습니다. 이에 반해 북한의 경우 중화인민공화국이 공식적으로 지원을 하였고 소비에트 연방은 비공식 지원국이었습니다. 여기에 체코슬로바키아가 의료지원을 하였습니다(소련은 유엔에서 한국전쟁 참전 결의안 선거에서 기권을 했으며 한국전쟁 개입을 하지 않았으며 한국전쟁 이후 소련 공산당 출신 허가이나 박헌영등이 북한 권력에서 제거되었다 그리고 한국전쟁 이후 중국 공산당 출신 김일성이가 북한 권력을 장악했다. 한국전쟁 때 인해전술 떼거리 중국 인민해방군 100만명이 희생했다 중국도 남북지역 구분으로 한국전쟁을 지지하는 세력은 한족보다는 남부지역 1억 규모 인구 장족과 만주지역 다수 민족인 거란, 만주족등이 지지하는 입장이다 이들은 한국전쟁과 한족이 전쟁에 개입할 때 독립운동과 세력확대로 새로운 군사대국으로 등장을 시도해왔다 중국지역에서 한족 이외 다른 민족의 인구 3억에서 4억 규모이다 김일성은 중국 공산당 출신으로 중국인, 만주인, 조선인 연합군 소련 극동사령부 88특별여단 소속 대대장 출신이다 소련군 극동사령부는 만주지역과 한반도지역 점령한 후 중국인과 조선인 혼성군 88특별여단 주축으로 중국 내전 공산혁명에 주력부대었다 임표 동북3성 총사령관으로 만주국을 소련군과 함께 점령하는 데 큰 공헌을 했으며 중국내전 승리에  결정적  지위와 역할을 했으며 내전승리 이후 조선의용대 출신 지원과 함께 남침을 추진했다 임표, 팽덕회 동북 3성등이 한국전쟁 배후세력으로 활동했다 임표는 모택동 다음 2인자로 문화혁명 주도와 중미수교 이후 모택동을 암살하려다가 실패이후 소련으로 망명 도중 살해되었다 중국정부 내부 반미 친북 김일성세력이 소련군 지원세력이다 임표나 김일성등은 소련군 즉 KGB 조직원이었다 이들 소련방위대로 중국과 북한에서 활동해왔다 중국 동북 3성이 남침을 도와줄때 북한정부가 남침을 할 것으로 본다 중국과 미국 수교이후 조국을 소련으로 생각하는 소련 공산당 전위대가 대부분 제거되었다 중국이나 북한 내부 공산주의 세력 태자당 출신이 과거처럼 외국세력에 아부할 가능성도 있다)

 

*2차대전 때 소련측 연합군 만주국 무력점령과 동시에 동북3성 소련군 88특별여단(임표등 팔로군) 장악 그리고 소련군 88특별여단 조선족(한국인) 출신이 소련군과 함께 38도선 이북지역 점령--->동북3성 주력부대 임표등 중국내전 개입-->중국 모택동부대 본토 장악---->중화인민공화국 수립---> 동북 3성 조선족(한국인) 북한 인민군 주축으로 구(舊) 일본 관동군 탱크로 남침-->남한지역 남로당이 지하세력이 무장봉기와 인민위원회 구성--->일시적으로 남한 점령-->유엔 한국전쟁 개입과 유엔군 구성-->유엔군 38도선 이북지역 진격---->중화인민공화국(중공군) 개입과 38도선 이남지역 진격--->정전협정 체결

-중화민국 장개석부대는 중국 남부지역 장악과 인도, 영국군 연합으로 동남아 점령을 했지만 동북3성이 모택동부대에게 넘겨주었기 때문에 만주지역에서 세력 상실

-극동지역과 일본 북해지역 소련군 장악 

-이승만 토지개혁으로 평민층 지지기반 확대와 인민위원회 설치로 공개재판으로 남한지역 민간인(양민) 처형 학살, 전쟁물자 현지에서 조달하는 약탈전쟁 방식등으로 남한지역 평민층 저항으로 북한정부 전면적 전쟁이 패배했다고 평가.  유엔이 남한과 일본등 그리고 동남아 공산화(공산정부 등장)에 대한 우려  

 

*민주전선 입장에서 남북 평화통일 준비

남과 북 통일은 전쟁이 아닌 민주전선 입장에서 평화통일로 준비하고 있습니다

민주전선은 자본주의민주주의 혁명 후 자유주의(자유민주주의 세력)와 사회주의(사회민주주의 세력) 연합정부입니다

민주전선 입장에서 남과 북통일은 만주지역을 중국정부 영토로 인정하며  극동지역은 러시아정부 영토로 인정합니다

만주지역이나 극동지역이 중국 소수민족 영토로 인정하여 독립국으로 등장하는 것을 사전에 와해(제거)할 수 있는 군사적 동맹을  중국, 러시아정부와 협력할 수도 있습니다

중국과 러시아정부는 북한  좌익군정과 협력하여 만주지역이나 극동지역 소수민족 독립운동 세력 등장 그리고 전쟁을 추진하는 세력 등장을 경계해야 할 것입니다

민주주의 반대는 공산주의가 아닌 독재주의(전체주의)이며 공산주의 반대는 민주주의가 아닌 자본주의입니다

 

1단계 세습제 좌익군정 타도와 사회민주주의 세력 북한권력 장악[민주전선 구축]

2단계 민주연합(민주공화국이냐 연방공화국이냐) [자유민주주의 세력과 사회민주주의 세력 연합정부 구성]

3단계 국가수립[남북한 권력분배]

동북아(아시아 태평양) 자유무역협정과 동북아(아시아 태평양) 연합군 단일군사기구 창설[중국, 일본, 러시아, 미국, 인도, 통일한국등]

 

장진호 전투

1950, 한국 전쟁이 발발하자 마오쩌둥은 김일성의 지원 요청으로 비밀리에 '인민지원군'이라는 이름으로 중공군의 일부를 한반도로 비밀리에 투입한다. 여기서 쑹스룬은 '인민지원군'으로 위장한 인민해방군 9병단을 이끌고 장진호 전투에서 미 10군과 싸워 승리를 거두었다. 다만 쑹스룬은 성격이 불같았기 때문에 올리버 스미스장군이 지휘하는 미 해병대를 전멸시키려고만 했기 때문에 미 해병대를 상대로는 승리를 거두었지만 반면 후퇴하는 미 육군과 대한민국 국군을 추격하는 데에는 실패했다

북중연합군 중국 모택동정부 인민지원군이 한국전쟁에서 인천상륙작전 만큼 평가하면서 큰 성과로 선전하는 전투가 바로 장진호 전투이다 장진호 전투는 중국정부 내 조선족 자치정부 중심으로 산악으로 잠입작전으로 성공한 한반도 전쟁에서 두번째 큰 전투이다

중국군은 맥아더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기도비닉을 유지한 체 압록강을 은밀하게 도강하고 있었다. 당시 중국군은 연합군에게 발각되지 않기 위해 낮에는 산속에 숨어있다 밤에만 행군하는 방법으로 백만군대를 소리 소문 없이 한반도로 이동시킬 수 있었다. [동북항일연합군 인민전쟁 모델]

http://blog.daum.net/007nis/15875802

 

미 전역에 방송될 장진호전투 영화는 힐러리에게 악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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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공산당 동북항일연군(東北抗日聯軍)과 제88독립 저격여단

동북항일연군(東北抗日聯軍) 1936년 중국공산당 지도 아래 만주에서 만들어진 항일 빨치산 조직(소련군의 저격여단이나 특수부대 성격)으로 지금까지 만주에서 활동하던 공산당계의 조선인, 중국인 빨치산 부대 동북인민혁명군(東北人民革命軍)이 문호를 넓혀 우파 항일 무장단체를 받아 들여 1936년부터 개편되어 갔다.

 

주보중이나 김일성 등 중국인과 조선인의 유명한 파르티잔(Partizan, 빨치산) 소속으로 나중에 소련군 제88 독립저격여단 조직으로 개편하여 그 구성원 중 김일성을 중심으로 북한 권력의 중추를 차지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동북항일연군을 만주파로 지칭하고 있다)

http://blog.daum.net/007nis/15875772

 

동북항일연군의 지도자 인물 저우바오중(周保中, 주보중)-붉은 군대 예하부대 각 민족 빨치산(공

1943년 10월 5일 야전 훈련 후 촬영한 제88독립저격여단(국제여단, 각 민족 빨치산 부대) 대원 사진. 제1열 좌로부터:바탈린( N. S. Batalin, 巴达林, 소련), 정치 부여단장 이조린(李兆麟, 일명 張壽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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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의 주도세력은 북한 노동당 내부 만주파(동북항일연군)이다

한국전쟁의 주도세력은 북한 노동당 내부 만주파(동북항일연군 내부 제 88독립저격여단)이다

만주파(滿洲派)란 북한에서 김일성과 함께 동북항일연군에서 항일유격대 활동을 한 인물들을 가리킨다. 김일성이 지휘했던 부대인 동북항일연군 1로군 제 6사에서 활동하지 않은 동북항일연군의 요인들 중에서도 최용건 등 같이 만주파에 포함된 인물들이 있다(김일성과 함께 만주에서 빨치산 활동을 한 출신자들로 이루어진 세력. 주요 인물로 김일성, 김책, 최용건, 최현, 김일 등이 있다)

이 만주파는 해방이후 갑산계 소련계 남로당계 등을 정권투쟁에서 몰아내고 북한의 정치·군사 분야를 이끌어가는 핵심세력이 되었으며 북한의 현대사는 김일성과 만주파를 따로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다. 8월 종파사건 이전까지 김일성은 북한과 조선로동당의 전체 권력을 장악하지 못했고 만주파의 영수에 불과했다.

한국전쟁의 주도세력은 북한 노동당 내부 만주파(동북항일연군)이다 (daum.net)

 

한국전쟁의 주도세력은 북한 노동당 내부 만주파(동북항일연군)이다

한국전쟁의 주도세력은 북한 노동당 내부 만주파(동북항일연군 내부 제 88독립저격여단)이다 만주파(滿洲派)란 북한에서 김일성과 함께 동북항일연군에서 항일유격대 활동을 한 인물들을 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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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정부의 남침(한국전쟁) 3대 군사 지휘

북한정부의 남침(한국전쟁) 3대 군사 지휘부는 88독립 저격여단(소련군 극동 정찰국)과 조선의용대(중국 공산당-중국 팔로군), 남부군(남로당, 조선공산당)이다
한국전쟁 이후 88독립 저격여단(소련군 극동 정찰국) 그룹이 조선의용대(중국 공산당-중국 팔로군) 그룹과 남부군(남로당, 조선공산당) 그룹을 제거하고 권력을 장악했다

남부군(남로당, 조선공산당) 그룹은 한국전쟁 패전 책임과 박헌영등 미국간첩으로 제거 되었고 조선의용대(중국 공산당-중국 팔로군) 그룹은 종파주의자로 제거 되었다

아직도 북한 권력층은 88독립 저격여단(소련군 극동 정찰국) 그룹 후손들이 장악하고 있다

김일성은 88독립 저격여단(소련군 극동 정찰국) 그룹 주도 인물로 소련군 도움므로 권력을 장악했다

중국에서는 김일성을 만주 조선족자치정부[만국 조선족자치정부] 공산주의(사회주의) 세대로 평가하고 있으며 일본 좌파는 김일성을 김광서(일본육사 23기 기병과 출신)으로 평가해왔다

소련에서는 한족과 조선족, 만주족, 몽골족 등  혼성 용병부대 88독립 저격여단(소련군 극동 정찰국) 그룹 조선인 지휘관으로 알려지고 있다

김일성주의 주체사상도 자본주의민주주의 혁명이론 도입으로 구소련이나 중국 모택동정부처럼 붕괴 되어가고 있다

북한정부의 남침(한국전쟁) 3대 군사 지휘부 (daum.net)

 

북한정부의 남침(한국전쟁) 3대 군사 지휘부

 한국전쟁 추진 세력  소련군 제88독립 저격여단 출신  김일성(인민군 총사령관), 최용건(방어총사령관), 김책(전선총사령관), 김일(인민군 문화부 사령관), 강건(인민군 총참모장) 모습 북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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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은 국가평가로 급변사태가 일어날 수 있는 실패국가입니다

안보능력은 핵무기와 핵탄두 탄도미사일을 보유했지만 인권침해와 반정부세력 확대로 인민군 120만명 배치(60%이상 치안군) 그리고 중국 러시아등 유엔안보리 입장 북한 핵무기 포기정책을 지지로 약한국가로 평가하고 있으며 경제능력은 기아와 평민층 식량난으로 외부로부터 식량원조국가로 실패국가로 평가되고 있으며 정치능력은 국가사회주의 군국주의노선 좌익파시즘 주체사상과 선군정치 세습제 좌익군정으로 실패국가로 평가되어 급변사태가 일어날 수 있는 실패국가이다
-머리소리함(知積能力團) 논의내용-

*안보능력: 내전위기 여부, 동맹국 여부 , 군사력 여부

*경제능력: 민생경제(식량난이나 의식주 여건)

*정치능력: 의회 민주주의와 주민 자치능력 그리고 지도자의 개인 능력

북한은 전쟁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는 것이 일반적 의견입니다

북한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의 권력은 세습제 좌익군정  체제유지에 주력해왔습니다

북한 김정은정부는 내전을 북한내부 지역 전쟁이나 북한 주민들의 반김정은세력 무장투쟁이 아닌  남북전쟁으로 착각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북한은 국가평가로 급변사태가 일어날 수 있는 실패국가입니다 (daum.net)

 

북한은 국가평가로 급변사태가 일어날 수 있는 실패국가입니다

                                                                                     북한 아동 훈련용 목총(木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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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이 북한을 버릴 수 없는 이유

중국은 북한 관련 몇몇 주요 목적을 지속적으로 추구해왔다. 북한 전문가인 안드레이 란코프 국민대 교수는 이를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고 말한다. 미국 외교·안보 전문지 ‘내셔널 인터레스트’에 기고한 내용이다.

 

“첫째, 인접국인 북한의 불안정과 혼란을 방치하지 않는다. 간단히 말해 북한이 안정돼 있어야 완충지대 역할을 제대로 할수 있어서다. 중·미 대립이 격화하고 있는 요즘, 존재 가치가 더 높아졌다.

 

둘째, 분단된 한반도를 유지하는 것이다. 현재 정세로 봤을 때 한반도 통일은 한국이 주도하고 압도하는 형태만이 상상 가능한 실정이다. 중국 관점에서 보면 미국의 동맹국이면서 미군을 주둔시키고 있는 현재의 한국이 더 커진 확대판을 국경에서 맞대야 한다는 것은 끔찍한 일이다.

 

셋째, 핵무기 없는 한반도를 도모한다. 북한의 핵 모험주의도 반기지 않는다. 북한으로 인해 핵확산 금지 체제가 무너지면 동북아 국가들도 핵무장을 하게 되고 그 견제력은 중국을 향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중국은 북한 경제가 완전히 붕괴해 수백만 명이 또 굶어 죽더라도 김정은이 절대 핵무기를 포기하지 않으리라는걸 안다. 자신의 생존을 위한 유일한 보장 수단으로 여기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은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가 경제적 곤란을 악화시켜 북한 내부의 심각한 소요 사태로 이어지는 것을 최악의 시나리오로 보고 있다. 그래서 일정량의 원조를 제공해 북한이 침몰하지는 않게 유지해 주는 것이다. 인민들이 옥수수 밥은 먹을 수 있게, 그리고 그들을 통제하는 사회안전성·보위부 요원들은 돼지고기를 먹을 수 있을 정도로 지원한다.

 

중국은 북한이 도발적으로 요란한 제스처를 쓰는걸 원하지 않는다. 미군 주둔에 좋은 명분을 만들어주고 한국과 일본을 한층 더 미국에 밀착시키는 결과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중국은 앞으로도 은밀히 북한의 붕괴는 막아주며 협상을 통한 남·북한 문제 해결을 떠벌이면서도 미·중 양측이 서로 받아들일 만한 일괄 거래 방안을 만드는 데는 결코 서두르지 않을 것이다.

 

조중우호협력 상호원조조약

1961년 7월 11일에 북한과 중국 사이에 맺은 조약.

조중우호협력 상호원조조약은 1961 7 11일 베이징에서 체결됐다. 북한 김일성 주석과 당시 저우언라이(주은래) 중국 총리가 양국 전권 대표로 서명했다. 양국이 평화와 안전을 지키는 것을 전제로 어느 한쪽이 타국의 침략을 받아 전쟁에 들어갈 경우 양방은 의무적으로 모든 노력을 다해 군사적 지원 등을 제공하도록 하고 있다. 지난 1981년과 2001년에 2차례에 걸쳐 자동 연장됐고 앞으로 유효기한은 2021년이다.

그러나 북한의 핵무와 탄두 미사일 개발이 평화와 안전을 지키는 의무를 위배한 것이라는 지적이 많다.

 

조중우호협력 상호원조조약 내용

1조 중화인민공화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양국은 아시아와 세계 평화 그리고 양국 국민의 안전을 위해 모든 분야에서 끊임없이 노력한다.

2조 중화인민공화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양국은 모든 조치를 공동으로 맡으면서 체결국에 대한 특정 국가의 침략을 방지한다. 체결국 가운데 한 쪽이 몇몇 동맹국의 침략을 받을 경우 전쟁 상태로 바뀌는 즉시 군사적 원조를 제공해야 한다.

3조 어느 체결국도 다른 체결국과 맺은 동맹에 참가하지 않으며 다른 나라에 대한 특별한 집단, 행동, 조치에도 참가하지 않는다.

4조 중화인민공화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양국은 양국 공통의 이해 관계가 있는 모든 중대한 국제 문제에 대해 서로 협의하기로 한다.

5조 중화인민공화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양국은 주권의 상호 존중, 내정 불간섭과 평등 호혜의 원칙, 우호-협력의 정신을 바탕으로 한 양국간의 사회주의 건설 사업에서 가능한 한 경제-기술 원조를 진행하며 양국간의 지속적인 경제, 문화, 과학, 기술 협력을 통해 발전시킨다.

6조 중화인민공화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양국은 조선의 통일이 평화와 민주주의를 바탕으로 실현되는 것을 원하며 이러한 문제의 해결은 조선 인민의 이익 및 동아시아의 평화 옹호 목적과 일치하는 것을 인정한다.

7조 이 조약은 양국 의회가 비준하지 않으면 효력이 생기지 않으며 양국이 비준서를 교환한 날부터 효력이 발생한다. 비준서는 평양에서 교환하며 양국이 조약의 개정 또는 효력의 상실에 대해 합의하지 않는 이상 효력이 유지된다

 

핵 보유를 위한 북한의 시도는 자국과 지역의 안전에 충격을 줬고 중국의 국가안보 이익에도 심각한 피해를 줬기 때문에 이는 조약 위반 사안으로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조약은 침략을 단호히 반대한다고 명시했는데 북한이 고집대로 핵을 개발하고 유엔 안보리 결의안에 위배되는 미사일 발사시험을 진행하고 있다"면서 "이는 조약을 체결했을 당시와 2001년 조약이 마지막으로 갱신됐을 때와는 다른 상황"이라고 주장했다. 신문은 "북한은 반드시 핵실험을 중단해야 하고 한미 양국도 북한을 겨냥한 군사적 위협을 멈춰야 하며 양측은 한반도 안정과 평화를 위해 각자의 노력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간의 북중관계가 외부로 비치는 것보다 그리 끈끈하지 않았다는 주장도 적지 않다. 한중 수교 다음 해인 1993년 북한은 2000년 올림픽 유치 경쟁에서 중국이 아닌 호주를 지지했고, 1997년 덩샤오핑(鄧小平) 사망 때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중국대사관에 조전을 보내지 않았다는 것이다. 선즈화(沈志華) 화둥사범대 교수가 북중 혈맹관계 와해를 주장하며 조선(북한)은 잠재적 적국이고 한국은 가능한 친구라고 말한 강연록도 회자되고 있다

 

북한헌법

-인민민주주의 인민공화국(1공화국 헌법)과 주체사상 자주적 사회주의 국가(2공화국 헌법), 주체연호 세습제 1인 종신직 좌익군정 사회주의 국가(3공화국 헌법)-

http://blog.daum.net/007nis/15875476

 

북한헌법

-인민민주주의 인민공화국(제1공화국 헌법)과 주체사상 자주적 사회주의 국가(제2공화국 헌법), 주체연호 세습제 1인 종신직 좌익군정 사회주의 국가(제3공화국 헌법)- Ⅰ.북한 제1공화국 헌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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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조 우리 나라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다.

2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주권은 인민에게 있다.

주권은 인민이 최고 주권기관인 최고인민회의와 지방주권기관인 인민위원회를 근거로 하여 행사한다.[인민 회의제 정부(의회정부제)와 인민 회의정부론(인민민주주의)]

북한 제1공화국 헌법은 인민회의제(인민민주주의) 헌법으로 최고인민민회의 상임위원장이 국가수반이고 내각은 의회에 예속, 종속돼 있은 권력형태었다 북한 노동당이 북한 의회를 장악 하였기 때문에 노동당 당수가 내각수반(행정부 수반) 수상이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전체 조선인민의 리익을 대표하는 자주적인 사회주의국가이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위대한 김일성-김정일주의를 국가건설과 활동의 유일한 지도적지침으로 삼는다[북한 제3공화국 헌법]

북한의 제2공화국과 제3공화국 헌법은 주체사상이다

북한 제3공화국은 주체연호 세습제 1인 종신직 좌익군정 자주적 사회주의 국가이다

주체사상이 띄고 있는 강한 민족주의적 성향은 히틀러의 독일 노동자의 당 국가사회주의 헌법이나 1940년대 일본 군국주의 대본영 제도를 모방하고 있다

 

북한 지역에서 개혁개방과 자유화, 민주화를 요구하는 세력을 민주파라고 부르고 있으며 반미 반일투쟁이나 국영자본체제, 주체사상과 선군정치를 주장하는  세력을 자주파라고 부르고 있다

북한 제1공화국 헌법은 민주파 입장의 인민민주주의 국가 헌법 모델이고 제2공화국 제3공화국헌법은 자주파 입장 자주적 사회주의 국가 헌법모델이다 남북 인민전쟁론을 추진할 수 있는 체제는 제1공화국이라면 정권수호와 체제유지에 주력하고 북한 내부 급변사태가 일어날 수 있는 체제는 제3공화국이다

 

주체연호 세습제 1인 종신직 좌익군정 북한정부는 자본주의를 인정하고 권력이 집중한 1인 장기집권 모택동 시대의 반성에서 국가주석 3선 금지표방과 국가주석 임기제한을 추진한 실용주의(수정주의) 노선 등소평헌법을 싫어했다

한중 수교 다음 해인 1993년 북한은 2000년 올림픽 유치 경쟁에서 중국이 아닌 호주를 지지했고, 1997년 덩샤오핑(鄧小平) 사망 때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중국대사관에 조전을 보내지 않았다는 것이다.

 

수정주의 노선(실용주의 노선)은 국영자본체제와 노농조합(지역 지방 의회) 도입 그리고 노동계급이 령도하고 노농연맹을 기초로 하는 인민민주 전제정치(인민민주주의 독재체제, 프롤레타리아독재체제)와 국가주석이나 대통령의 임기제한 등이다

국영기업이나 농장이 노농조합(지역 의회)에 의한 운영과 함께 개인의 사유재산, 이윤추구, 시장경쟁원리의 자본주의 3원칙을 인정하고 상업적 공농(工農) 생산품을 생산하여 판매하여 그 수익으로 세금과 경영 비용, 노동자나 농민들에게 임금으로 분배하는 것이다

국영기업이나 농장의 부패와 관료주의를 제거하기 위해서는 노농조합(지역의회)애 의한 책임자 선출과 임기제한 그리고 사업 의결권을 주어야 한다

그리고 인민 의회정부론(인민 회의정부론)이 의회보다 지도자론(영도론)으로 나아갈 때 군국주의 국가사회주의 국가(1인 전체주의 정부)가 될 수 있기 때문에 국가주석이나 대통령(최고지도자)의 임기제한을 해야 인민회의정부(인민의회정부)가 될 수 있다.

중국 등소평헌법이나 쿠바 신헌법은 국가주석 임기를 제한하고 있다. 베트남도 형식상 국가주석 4년 중임제이다

당(의회)이나 노농조합(지역의회) 독재나 우위는 인정하지만 국가주석이나 대통령, 농장 책임자나 국영기업 책임자 개인의 독재는 인정하지 않는다

노농조합이나 지역의회 그리고 연방의회(중앙의회)에서 선출된 국영기업(농장) 책임자나 국가주석(대통령)의 임기는 제한이 돼야 세습화나 부패를 척결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