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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이 60년간 주고 받은 '삐라' 살포의 역사 본문

Guide Ear&Bird's Eye/영국 BBC

남북이 60년간 주고 받은 '삐라' 살포의 역사

CIA Bear 허관(許灌) 2020. 6. 23. 16:38

대북전단(좌)과 대남전단(우)

탈북민 단체 자유북한운동연합이 22일 밤 경기도 파주시에서 대북전단을 살포했다고 주장했다.

자유북한운동연합 박상학 대표는 23일 "전날 밤 11시부터 자정 사이 경주 파주시 월롱면 덕은리에서 대북 전단을 보냈다"라고 말했다.

이 단체는 6·25 전쟁 70주년을 맞아 오는 25일을 전후해 대북전단을 살포하겠다고 밝혀왔다.

'자유북한운동연합' 회원들이 지난 22일 밤 경기도 파주시 월롱면 덕은리에서 대형애드벌룬을 이용해 뿌린 대북전단

앞서 북한도 대남전단 1200만 장과 이를 뿌릴 풍선 3000개가 준비됐다고 밝혔다.

북한 기관지 노동신문은 22일 "중앙의 각급 출판인쇄기관들에서 1200만 장의 각종 삐라(대남전단)를 인쇄했다"며 "남조선 깊은 종심까지 살포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살포기재·수단이 준비됐다"고 전했다.

북한은 최근 남한 민간 단체들의 대북 전단 살포를 강하게 비판하며 이에 맞서 대남 전단을 뿌리겠노라 예고했다. 문재인 대통령의 합성 사진과 조롱 문구가 담긴 사진도 공개했다.

통일부가 유감을 표시했지만, 북한 노동당 통일전선부는 대변인 담화를 통해 대남전단 살포 계획을 변경할 의사가 없다고 강조했다.

지금까지도 남북간 긴장감을 유발하는 전단(삐라)의 역사는 6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심리전을 위해 상대측에 뿌려졌던 '종이 폭탄'을 두고 남북이 어떻게 대치해왔는지를 정리했다.

한국 전쟁 당시 뿌려진 전단은 28억 장

한국전쟁 당시 투항을 권유하는 대북전단

남북간 전단 살포는 한국 전쟁을 시작으로 활발히 이뤄졌다. 당시 유엔군이 심리전 차원에서 북측에 전단을 뿌렸고, 북한도 유엔군을 대상으로 전단을 살포했다.

휴전 협정이 체결된 1953년 7월 27일까지 뿌려진 전단은 총 28억장. 남한과 유엔군이 25억 장, 북한, 소련 등이 3억 장을 뿌렸다. 한반도 전체를 20번 이상 덮을 수 있는 분량이다.

전단 색깔은 대부분 눈에 잘 띄는 빨간색이었고, 주로 투항을 권유하는 내용이었다. 전단을 가져오면 신변을 보호해준다는 '안전보장 증명서'도 있었다

연합군에게 뿌려진 대남전단. 미군내 흑인 병사를 대상으로 백인 병사들과 차별을 받으며 헛되게 죽지 말고 미국으로 돌아가라는 내용이 실렸다

휴전 이후에는 '체제 과시용'

전단 살포는 휴전 후에도 계속됐다. 내용은 각 지도자와 체제를 비난하는 것으로 채워졌다.

1960~70년대 북한은 당시 발전한 평양의 모습을 부각하고, 김일성 주석의 업적을 선전하는 내용을 담았다.

1970년대 북한이 대남용으로 보낸 '월북 장병들에게'라는 제목의 전단에는 "공화국 공민의 권리와 자유 보장, 직업·직장 알선, 고급주택 무상 배정, 생활보장금 1억 1100만 원~3억 3300만 원(남한 돈으로), 상금 185억 원까지(남한 돈으로)"라고 적혀 있다.

북한의 대남전단.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안전보장증 형태를 띄고 있다
1980년대 대북전단. 월남하면 보상금을 준다는 내용을 담았다

당시엔 북한이 남한보다 경제 사정이 더 나아 전단을 보고 월북하는 사람도 있었다.

1980년대까지 남한의 경우 학생들이 북한 측이 날려 보낸 전단을 줍는 일이 일상이었다.

학교나 파출소에 가져가면 자, 책받침, 공책 등 각종 학용품을 포상으로 받을 수 있었다. 관공서에는 간첩 및 간첩선 포상금 지급과 대남 전단 수거에 대한 공고가 붙었다.

이후 남북의 경제적 상황이 역전되면서 남한은 이 부분을 대북전단에 활용했다.

특히 88 서울올림픽 개최를 중심으로 '배불리 먹고 싶지 않습니까' 등 직접적으로 이를 표현했다.

대북전단. 공산권 국가의 88 서울 올림픽 참가를 홍보하고 있다
대남전단. 남한에서 인기있는 드라마 인물을 소재로 남한 정치를 비난하는 내용을 담았다

공식 중단에도 이어져 온 전단

그러다 1991년 남북기본합의서 체결과 2000년 남북 상호비방 중지 합의에 따라 양측의 전단 살포가 공식 중단됐다.

2007년에는 경찰청이 북한 불온선전물 수거·처리규칙을 폐지해 학용품 등을 지급하는 포상도 사라졌다.

대남전단. 남한에 익숙한 연예인의 이미지를 활용했다

정부 차원의 공식 전단 살포는 중단됐지만, 전단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2008년 이명박 정부 당시, 남북관계가 악화되면서 상호 비방과 심리전이 재개됐고 양국 간 전단 살포도 다시 시작됐다.

2010년대는 '정치 이슈' 비판하는 내용이 주

2017년 청와대로 날아든 북한 대남전단

남한의 경우 2000년대 이후는 민간 단체들이 대북 전단 전면에 나섰는데 이들은 전단 외에도 컵라면, 1달러 지폐, 소책자 등의 물품도 함께 날려보냈다.

대북 전단은 특히 2010년 천안함 사건 이후 확대됐다.

인천아시안게임이 열리고 남북간 대화 분위기가 펼쳐지던 2014년에도 전단을 둘러싼 갈등은 계속됐다.

이후 박근혜 정부가 2016년 1월 북한이 4차 핵실험을 강행하자 대응 차원에서 대북 확성기 방송도 재개했다.

당시 방송에는 인권 탄압 등 북한의 내부 소식 외에 한국에서 유행하는 아이돌 음악도 실렸다.

이에 대응해 북한은 대남 전단 살포를 본격적으로 재개했다. 미국의 대북정책이나 한국 내 정치 상황을 비난하는 전단이 대부분이었다.

'최순실 게이트' 진상 규명과 박 전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는 촛불집회가 진행 중인 2016년 말에는 '현 정부는 각성하라'며 '촛불민심을 외면한다면 준엄한 심판을 면치 못할 것이다'라는 문구가 담긴 전단이 뿌려졌다.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북한 김정은 위원장이 말폭탄을 주고 받을 때도 전단은 계속됐다.

트럼프를 비난하는 내용의 대남전단

판문점 선언 이후에 다시 불거진 전단 살포

2018년 4월27일,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판문점 공동선언'을 통해 "5월1일부터 군사분계선 일대에서 확성기 방송과 전단살포를 비롯한 모든 적대 행위들을 중지"하기로 했다.

군사분계선 지역에 설치된 확성기도 모두 제거됐다.

이와 맞물려 2018년 5월5일 자유북한운동연합이 경기 파주 일대에서 전단 살포를 시도하다 제지를 받았다.

하지만 자유북한운동연합 등 대북 민간 단체들의 전단 살포는 계속됐다. 그러다 지난 4일 북한 김여정 노동장 제1부부장이 탈북자 단체의 전단 살포를 원색적으로 비난하면서 대북전단 살포 문제가 남북 관계의 주요 현안으로 등장했다.

김 부부장은 당시 개인 명의로 낸 담화문에서 한국 정부가 "쓰레기들의 광대놀음을 저지시킬 법이라도 만들고 애초부터 불미스러운 일이 벌어지지 못하게" 하지 못하면 남북관계는 더 파국으로 치닫게 될 것이라고 했다.

한국 통일부는 김 부부장의 담화문이 공개된 지 불과 몇 시간만에 대북전단 살포를 중단시킬 수 있도록 법률 정비를 계획하고 있다고 발표했다.

여당인 민주당 소속의 국회의원들도 잇달아 관련 법안을 내놓았다. 17일까지 대북전단 관련 총 4건의 법률 개정안이 국회에 올라있다. 전단 등의 살포에 대해 통일부의 승인을 받게끔 하는 개정안부터 '대북적대행위'에 대해 최대 7년의 징역으로 처벌하는 개정안까지 있다.

그러나 북한은 한국에 대한 비난 수위를 높이며 연락사무소를 폭파한 데 이어, 대남전단을 뿌리겠다고 예고했다.

이에 대해 강원도 접경 지역인 양구, 화천, 철원군은 22일 주민들에게 "북한 대남전단 발견 시 안전을 위해 전단이나 살포 장치에 전급하지 말고 즉시경찰이나 안보지원사령부에 신고해 달라"는 재난 문자를 발송했다[BBC 뉴스 코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