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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평화상' 에티오피아 총리 누구?..동아프리카 '평화전도사' 본문

Guide Ear&Bird's Eye/21세기 동아시아인 노벨상

'노벨평화상' 에티오피아 총리 누구?..동아프리카 '평화전도사'

CIA Bear 허관(許灌) 2019. 10. 11. 18:57


                                                                    Abiy Ahmed became Ethiopia's prime minister in April 2018

올해 노벨 평화상 수상자인 아비 아흐메드(43) 에티오피아 총리는 동아프리카의 평화 전도사로 평가 받는다.

2018년 4월 집권한 아비 아흐메드 총리는 에티오피아와 에리트레아 간 수십 년간 이어진 유혈 분쟁을 종식시키고 평화를 구축하는 데 기여한 공로로 올해 노벨평화상의 주인공이 됐다. 그는 인접국 소말리아, 수단-남수단 갈등중재를 위해서도 발벗고 나서는 등 동아프리카 평화를 위해서 노력을 기울여왔다는 점에서 올해 노벨 평화상을 수상할 만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아비 아흐메드 총리는 2018년 4월 총리에 당선된 이후 1억명 이상의 인구를 가진 아프리카 최다 인구국 중 하나인 에티오피아에서 대담하고 진보적인 개혁을 단행했다. 정치범들을 대거 석방하고, 고문 관행을 공개적으로 비판했으며, 구속된 언론인들을 석방하며 언론자유를 역설했다.

정치,사회 개혁을 위해 야당 지도자들과도 적극적으로 만나 의견을 들었으며, 해외로 망명한 정당들의 귀국을 촉구했고, 안보와 사법 관련 개혁을 추진했다. 또 내각의 절반을 여성으로 임명해 성적으로 평등한 정부를 구현했다. 기후변화를 막기 위해 전국에 수백만그루의 나무심기 캠페인을 벌인 것도 바로 아비 아흐메드 총리였다.

아비 아흐메드 총리의 최대업적은 에티오피아와 에리트레아의 오랜 국경분쟁에 종지부를 찍었다는 것이다.

본래 에티오피아의 땅이었던 에리트레아는 이탈리아 식민지를 거쳐 2차세계대전 이후 에티오피아 연방이 됐다가 강제합병 당하자 30여년에 걸친 독립투쟁 끝에 1993년 결국 독립을 성취하게 된다.그러나 불분명한 국경으로 인해 1998년 시작된 전면전은 8만 명 이상이 희생된 뒤 2년 만에 휴전에 들어갔으나 긴장은 계속됐다.

아비 아흐메드 총리는 2018년 7월 9일 이사이아스 아페웨르키 에리트레아 대통령과 전격적으로 종전선언을 발표하고 외교관계 정상화를 단행해 양국 국민을 물론 전 세계 깜짝 놀라게 만들었다.

같은 해 8월에는 또다른 앙숙국가였던 소말리아와 관계개선에 합의하고 무려 41년만에 민항기 운항을 재개하기도 했다. 그는 서쪽 접경국인 수단과 남수단 분쟁에도 뛰어들어 올해 3월 아페웨르키 대통령과 함께 남수단을 방문해 동아프리카 평화를 위해 손을 맞잡기도 했다. 수단 군부와 야권 간의 협상도 중재해, 지난 8월 권력이양협정 서명식을 이끌어내는데 기여했다.

한편 아비 아흐메드 총리는 지난 8월 한국을 방문해 "에티오피아와 에리트레아 간 관계가 남북 관계와 흡사한 면이 많다"며 "에티오피아와 에리트레아 간 관계가 개선됐던 것과 같은 성과를 남북 관계에서도 볼 수 있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영국 킬대학의 아울 알로 부교수는 CNN방송에 "그는 에리트레아 문제를 매우 용기있고 뛰어나게 다뤘다"며 "가족들이 다시 만나고 양국 간 항공편도 복구됐다. 지난 20년간의 관계가 재설정되고 있다"고 말했다.

aeri@newsis.com


아흐메드 에티오피아 총리, 노벨평화상 수상

아비 아흐메드 에티오피아 총리가 올해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선정됐습니다.

노르웨이 노벨위원회는 오늘(11일) 아흐메드 총리를 2019년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선정했다고 발표했습니다.

노벨위원회는 아흐메드 총리가 평화와 국제협력, 특히 국경분쟁을 겪고 있는 이웃 에리트레아와 화해를 주도한 공로가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아흐메드 총리는 노벨 평화상 수상과 함께 상금 약 92만 달러를 받습니다.

에티오피아와 에리트레아는 국경 문제 때문에 지난 1998년부터 2000년까지 전쟁을 벌였습니다.

지난해 4월 집권한 아흐메드 총리는 이해 7월 20년에 걸친 에리트레아와의 군사적 적대관계를 끝내고 외교 관계를 복원했습니다.

올해 노벨평화상 부분에는 개인 223명과 기관 78곳이 후보에 올랐습니다. 노벨평화상 시상식은 오는 12월 10일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열립니다.

올해 노벨상은 오는 14일 경제학상 발표를 끝으로 마무리됩니다.

VOA 뉴스









                                              Sahle-Work Zewde is the ceremonial head of state, while Abiy Ahmed (r) holds the political power



                                                        Prime Minister Abiy has been taking part in the tree-planting campaign


아비 아흐메드[Abiy Ahmed Ali,Abiy Ahmed]

출생: 1976815, 에티오피아

소속: 에티오피아 총리

직업: 정치인

학력: 애슐랜드대학교 대학원 경영학 석사

 

학력

- 애슐랜드대학교 대학원 경영학 석사

- 그리니치 대학교 대학원 변혁적리더십 석사

경력

2018.4 에티오피아 총리

2015.10 ~ 2016.11 에티오피아 과학기술부 장관

수상내역

2019 미국 타임지 선정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 지도자부문








에티오피아 연방 민주 공화국(암하라어: የ ኢትዮጵያ ፈደራላዊ ዲሞክራሲያዊ ሪፐብሊክ 예 이티오피야 페데랄라위 디모크라시야위 리페블리크, 문화어: 에티오피아 연방민주공화국), 약칭 에티오피아(암하라어: ኢትዮጵያ 이티오피야)는 아프리카에 있는 공화국이며 수도는 아디스아바바이다. 1931년 이전에는 '아비시니아'라 불렀다.

1.역사

에티오피아 인들은 기원전 1000년 경 , 이스라엘의 솔로몬 왕과 지혜로운 스바 여왕 사이에서 낳은 아들 메넬리크 1세가 북에티오피아로 이주하여 에티오피아를 건국했다고 믿는다. 고대에는 발원한 도시의 이름을 따 악숨 왕국으로 불렸다. 악숨 왕국은 홍해를 건너 남아라비아를 영토로 삼고 메카에 따라갈 정도로 크게 세력을 떨쳤다. 4세기 경 기독교를 받아들여 국교로 정했고 6세기경 이슬람의 발흥으로 영토를 빼앗기고 쇠퇴하여 940년에 멸망한다. 12세기 초반에 자그웨 왕조에 의해 에티오피아 제국이 건설되었으며 1270년 예쿠노 암라크 황제가 일으킨 솔로몬 왕조가 1974년 쿠데타로 군주제가 폐지될 때까지 존재했다.

 

에티오피아 고원을 중심으로 아프리카 문명 중 이집트를 제외하고 유일하게 고유한 문자와 국가체제를 유지해 왔다. 19세기에는 이집트, 이탈리아의 침략까지 막아내어 독립국으로서의 위상을 전 세계에 알렸다. 1931년에는 입헌 군주제 국가가 되었다. 그러나 1935102일부터 이탈리아의 에티오피아 침략이 개시되었고 193652, 이탈리아의 2차 공격에 패배하여 황제가 예루살렘으로 망명을 하기도 하였다. 마침내 55일 오후 5(역사적 대사실을 기념하기 위하여 일부러 택한 날짜와 시간이다.)를 기해 이탈리아군은 수도 아디스아바바에 입성하였다.[2]1941, 영국의 도움으로 이탈리아군을 몰아내었으며 외국으로 망명 간 황제는 복위하여, 에티오피아를 재건하는 데 힘썼다.

 

그 후, 1952년 에리트레아와 연방을 맺었고 1962년에는 자국 영토로 병합하였다. 한국 전쟁 때는 대한민국에 병력을 지원하여 123명의 전사자와 536명의 부상자를 냈다. 1960년 로마 올림픽 때는 육상선수 아베베 비킬라가 금메달을 획득하였다. 1974년에는 멩기스투 소령을 비롯한 마르크스주의자들의 쿠데타로 황제가 폐위되고, 제정도 폐지되었다. 군부는 에티오피아를 사회주의 국가로 선포하였고, 군부의 공포정치에 의하여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었으며, 2천년 동안 이어져 온 에티오피아 정교회는 교회가 문을 닫는 등 박해를 받았다.

 

1987년 국민투표에 의하여 군부의 기구인 에티오피아 임시 군사 평의회(EPMAC)가 폐지되었고, 멩기스투는 초대 주석으로 당선된다. 그러나, 에티오피아 내전에 패배한 멩기스투는 1991년에 대통령 직을 사임하였다. 그 이후, 에티오피아는 민주화되었다. 한편, 에티오피아의 영토였던 에리트레아는 1993년에 독립하였다. 하지만 사회주의 정권에 의해 피폐되어버린 경제를 다시 되살려야 하는 등 많은 일이 남아 있다

 

2. 지리

에티오피아는 아프리카의 뿔 에 위치한 에리트레아의 독립으로 내륙국되었다. 북쪽으로는 에리트레아, 동쪽으로는 지부티와 소말리아, 남쪽으로는 케냐, 서쪽으로는 수단, 남수단과 국경을 접하고 있다. 동아프리카 지구대가 지나간다. 전체 면적은 1,127,127 km²이며 세계에서 27번째로 큰 나라이다. 볼리비아와 크기가 비슷하며 알래스카 주의 3분의 2에 해당한다. 에티오피아의 주요 부분이 아프리카의 뿔에 해당하여 아프리카 전체의 가장 동쪽 부분에 해당한다


3. 정치

국가 원수는 대통령이며 내각수반은 총리로, 의원 내각제는 1987년에 도입되었다. 의회 제도는 양원제이며, 1995년부터 연방제를 시행했다

국가원수는 샐워크 주드대통령이고 내각수반은 아비 아흐메드총리이다

 

4.행정구역


 기본적으로 연방 정부로서 9개 주(티그레 주(11), 아파르 주(2), 암하라 주(3), 베니샹굴구무즈 주(4), 감벨라 주(6), 하라리 주(7), 오로미아 주(8), 소말리 주(9)), 남부 국가 민족 주(10))2개의 특별시(아디스아바바(에티오피아의 수도(1), 디레 다와(5))가 존재한다. 각 지역에는 별도의 행정 자치권을 행사하는 지방 정부가 있다.

5.군사

방위는 국방부(Ethiopian National Defense Force)에서 책임을 지며 육군과 공군과 헌병이 존재한다. 예전에는 해군(1956~1991)도 존재하였으나 에리트레아가 독립한 이후, 해군 전력이 없다. 병력은 182,500명이며, 징병제를 채택하고 있다.

 

6.주민

암하라족, 오로모족, 티그레족이 3대 종족을 구성하지만 전체적인 세부 부족 및 언어는 대략 80개에 달한다. 한편 가장 많은 인구와 지역을 차지하는 것은 오로모족(오로모인)으로 이들은 수도 아디스아바바를 중심으로 중부 및 중서부, 중남부 지역에 걸쳐 거주하고 있다. 다음으로 많은 것이 암하라족이며 티그레족이 그 뒤를 잇는데 현재 집권 세력은 티그레족 출신이다. 암하라족은 1970년대 공산정권이 수립되기 이전까지 약 2,000년간 솔로몬 왕조를 구성하고 있었다.

 

7.인구

이 나라는 아프리카에서 나이지리아에 이어 2번째로 인구가 많으며 내륙국 중에서 인구가 가장 많다. 1995년부터 2000년까지 연평균 인구 증가율은 2.92%, 유아 사망률은 1,000명당 99.96(1999년 기준)이다. 2016년에 드디어 1억명을 달성하였고, 그래서 에티오피아는 나이지리아 다음으로 아프리카에서 인구가 많다.

 

8.언어

1994년 헌법 52항에 "암하라어는 연방정부의 업무어이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또한 9개주 2개 자치시는 각주별로 독자적으로 공용어(일부는 "업무어"라고 표현)도 인정되고 있다. 영어는 행정 언어로서 많이 사용된다. 인도의 산스크리트어나 유럽의 라틴어처럼 그으즈어라는 사멸된 고대 언어도 존재한다. 그으즈어는 정교회의 전례에 사용된다.

 

9.종교

에티오피아는 역사적 뿌리가 깊은 기독교 국가로, 국민의 43.5%가 에티오피아 정교회 신자들이다. 에티오피아 정교회는 비 칼케돈 계열 기독교 교회 즉, 칼케돈 공의회의 결정을 따르지 않는 오리엔트 정교회의 일파이며, 멩기스투 대통령 치하에는 교회가 문을 닫고 사제들이 체포되는 등 탄압을 받았다. 에티오피아 정교회 이외의 기독교 교파로는 성공회를 비롯한 개신교(KHC 등의 복음주의적인 교단이 대부분)가 있다. 그 외의 종교로는 이슬람교가 존재하며 기타 샤머니즘 성격의 토착 신앙도 존재한다. 조사에 따르면 에티오피아 정교회 43.5% 개신교 18.6% 가톨릭 0.7% 이슬람교 33.9% 전통종교 2.6% 그 외 0.7%이다

 

10.문화

공용어인 암하라어는 그으즈 문자라는 고유의 문자를 사용한다. 그으즈 문자는 남아라비아 계통을 잇고 있는 유일한 문자이다. 기본적으로 자음 문자에 모음 기호의 변형을 통해서 음의 변화를 표시하는 음절문자이다. 그레고리력 외에 독자적인 에티오피아력을 사용하고 있다.

 

11.스포츠

육상 경기가 발달하였으며 주로 마라톤 경기에서 강세를 보이고 있다. 반면 축구는 FIFA 월드컵 본선 경험이 전혀 없고 아프리카 네이션스컵에 9번 본선에 진출해서 1962년 대회에서 우승한 것이 메이저 대회에서 거둔 유일한 최고 성적이다

 

12. 기아 문제

에티오피아의 기아 문제는 심각한 상태이다. 매년 아일랜드의 NGO인 컨선월드와이드(Concern Worldwide), 독일의 NGO인 세계 기아 원조(Welthungerhilfe) 그리고 미국의 연구기관인 국제식량정책연구소(IFPRI)가 협력하여 발표하는 세계 기아 지수(GHI)에 따르면 2016년 에티오피아의 기아지수는 100점 만점 중 33.4점으로 가장 심각한 기아점수를 기록한 중앙아프리카 공화국의 46.1점과 비교해봐도 심각한 수준이다. 이는 조사 대상이었던 118개의 개발도상국 중 107위에 해당하는 수치로 상당한 기아 수준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13. 대미 관계

이 나라는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연합국으로 참전하여, 국제 연합의 창설회원국이 되었다. 제정이 폐지되기 전까지는 미국의 지원을 많이 받았으며, 하일레 셀라시에 1세는 케네디 대통령을 만난 적이 있었다. 그러나, 멩기스투 정권의 집권 이후 미국과의 관계가 소원해졌다. 1991년에 멩기스투 정권이 전복된 이후, 미국과 다시 협조 관계를 맺고 있다

 

14.대한 관계

에티오피아는 남북한 동시 수교국이다. 대한민국과 에티오피아는 19631223일에 수교하였다. 수교 이전인 1950년 한반도에서 일어난 한국 전쟁에 에티오피아는 아프리카에서 남아프리카 연방과 함께 더불어 전투병력을 파견하였다. 에티오피아 전투병력은 황제의 친위대로서 한국 전쟁에서 최정예 군인에 걸맞은 전투 성과를 내고 명예롭게 귀국하였다. 이에 셀라시오 황제는 직접 그들의 전공을 치하하였다.

 

1974년에 입헌 군주제가 폐지되었는데 멩기스투 공산주의 정권은 황제를 살해하고 암매장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그들은 마르크스주의에 근거한 공산주의 체제를 표방하며 북한과 가까운 관계가 되었다. 공산정권은 한국 전쟁 참전 용사들을 핍박하였으며 많은 참전 용사들이 죽고 다쳐 고국을 등질 수밖에 없었다. 1988년 서울 올림픽에는 불안정한 국내 사정(내전)으로 불참하였다.[3] 1991년에 옛 동유럽 공산주의 정권들의 붕괴와 남북동시 유엔 가입, 멩기스투 공산주의 정권 종식과 멜레스 제나위 총리의 집권으로 대한민국과의 관계를 개선하기위해 노력 중이다. 모두 255(재외국민 255, 시민권자 0)의 한민족들이 에티오피아에 거주(201012월 기준)하고 있다.[4]

 

20138월에 북한 외교관이 에티오피아에서 근무하던 도중 대한민국 대사관으로 넘어가서 망명을 요청했다. 결국 대한민국에 넘어오는데 성공했다고 전해지나 고위급 외교관은 아니었다